144화. 오! 나의 여신님 (6)
함상경이 수제로 만든 고성능 수류탄이었다. 박격포가 한 대 후려칠 정도의 성능이다.
솨아아아아.
벽이 뚫려버려 외기가 고스란히 SHK 건물에 침투했다. 천장과 바닥도 무너졌다.
"으으으, 함상경."
불의의 기습에 단테가 이를 갈았다. 마석이 첨가된 수류탄은 단테의 몸에 생채기를 냈다. 아무리 십간령이라 할지라도 정면으로 맞은 이상 무사할 수만은 없었다.
단테가 비틀거렸다.
"팻쨩! 지금이라능! 어서 엄마를 업고 도망쳐!"
팻시아는 상경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더니 이리야를 들쳐 매고 뚫린 천장 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내, 복도 계단을 통해 옥상 문을 열고 올라갔다. 상경은 무너진 돌덩이를 밟으며 힘겹게 팻시아를 따라갔다.
"헉, 허억. 헉."
"하악, 학."
잠깐이나마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달콤한 시간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콰지지직! 쾅!
그들이 있는 옥상 바닥이 녹아내리더니 단테가 아무렇지 않게 우뚝 올라왔다. 옥상 바로 위에는 망령계 게이트가 열려 있었다.
"이익."
"뚱보. 제법이구나. 황 박사 밑에서 놀고만 있지 않았어."
단테가 유유자적하게 올라왔다.
"오, 오빠. 저 괴물을 알아? 아까부터 황 박사랑 아는 사이인 것처럼 말하는데?"
"으, 으. 그. 그게."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푸하하하하!"
낮고 서늘한 단테의 음성이 옥상에 울려 퍼졌다.
"함상경. 너야말로 간악하고 사악한 존재로구나. 아직도 네 더러운 과거사를 밝히지 않았느냐?"
"뭐, 뭔데?"
상경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단테는 비릿한 조소를 머금으며,
"이리야의 딸 팻시아여. 네 어미를 지금 이 꼴로 만든 사람이 바로 상경이니라."
"뭐, 뭐?"
팻시아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함상경은 고개를 숙였다.
단테의 저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팻시아에게만은 결코 들키기 싫은 비참한 사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저…. 상경은 죽고 싶었다.
팻시아가 상경을 잡고 흔들었다.
"오, 오빠. 저 말이 사실이야? 아니지? 아니라고 말해야지! 왜 아무 말도 못 해!"
그녀가 함상경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퍼억~.
"말해! 말하라고!"
퍽. 퍽.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함상경의 입은 꽉 잠긴 자물쇠처럼 미동도 할 수 없었다.
"이 개새끼야! 거짓말이라도 좀 해보라고! 아니라고! 아니라고! 어떻게 그런 순박한 면상을 하고서 우리 엄마를 살인 병기로 만들어! 그리고 내 앞에서 날 지켜준다네! 뭐네! 그딴 개소리를 했단 말이야?! 으아아악!"
"컥. 컥."
"내가 얼마나 우습고 같잖게 보였어? 응?! 말해봐! 어디! 지껄여 보라고!"
퍽. 퍽.
저항할 수 없었다.
그녀의 주먹에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차라리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
"그것도 모르고 난 오빠를 목숨 걸고 구해줬다고?! 으아아아아! 그냥 그 자리에서 죽지 그랬어!"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맞닥뜨린 현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인했다.
퍽! 퍽!
그녀의 주먹에 상경은 점점 의식을 잃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상경을 구해준 녀석은 다름 아닌 단테였다. 지루한 펀치를 보다 못한 단테가 지팡이에 보랏빛을 밝혔다.
"이리야의 각성이 실패했으니, 네놈들은 살아있을 가치가 없구나. 본 스피어(Bone Spear.)"
우지지직!
그들이 디딘 옥상 바닥 콘크리트에 균열이 생겼다.
"뭐, 뭐야?"
콰지지직!
불길하기 짝이 없다.
상경은 통(通)의 힘을 사용했다.
바닥에서 죽은 좀비들의 뼛조각들이 합쳐져 날카로운 흉기로 재조합되었다. 그것은 통의 능력을 지닌 상경의 눈에만 보였으며, 뾰족한 뼛조각들이 바닥을 깨부수고 올라오고 있었다.
위험하다.
"피해!"
눈이 팅팅 부은 채로 팻시아를 껴안고 옆으로 피했다. 뼛조각들이 바닥을 뚫고 하늘로 치솟았다.
콰지직!
"끼아아아아아!"
"으아악!"
상경과 이리야의 괴성이 울려 퍼졌다. 상경은 팻시아를 껴안아 대신 맞는 바람에 온몸 곳곳에 피를 흘렸다. 그러나 이리야는 더욱 심각했다. 아니, 처참할 지경이었다. 팔다리가 덜렁거리며 내장기관마저 흘렀다.
"패, 팻. 시. 아. 아. 아."
이리야가 구슬피 자기 딸인 팻시아를 불렀다.
"어, 엄마! 엄마아!"
"팻쨩! 가면 죽어!"
팻시아가 이리야에게 가려 했지만, 상경이 꽉 붙들었다.
"놔! 놓으라고 이거! 으아악!"
팻시아가 절규를 토했다.
단테가 무릎을 구부려 이리야의 머리를 잡았다.
"죽어라. 실패작."
"엄마! 엄마아아!"
이리야가 간신히 고개를 돌리며 팻시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딸에게 마지막 말을 뱉었다.
"엄. 마. 가. 사. 랑…."
지지지직.
"아, 안 돼. 제발 멈춰…."
단테의 보랏빛 구체가 이리야의 머리통부터 녹여버리기 시작하더니 몸통까지 속절없이 녹여버렸다.
"아아…."
팻시아의 친부인 데비루에 이어 친모인 모쟈도 불귀의 객이 되었다.
"아아아아아악!"
팻시아의 괴성이 퍼졌다.
어머니의 죽음을 멍하게 보던 팻시아의 눈이 돌아갔다.
"아아아악! 죽여 버릴 거야!"
"안 돼!"
함상경을 뿌리친 팻시아가 단테에게 달려갔다.
"뭘 그리 서두르나?"
그러나 팻시아는 단테의 상대가 되질 못 했다. 지팡이로 그녀의 갈비뼈를 후려쳤다.
퍼억~.
"끄아악~."
그녀는 숨이 쉬어지지 않는 듯 입만을 벌린 채 고통의 눈빛으로 물들었다.
단테가 이번엔 팻시아의 머리통을 움켜쥐었다. 팻시아의 눈에는 강렬한 증오만이 담겨있었다.
"어미가 죽었으니 너도 아무런 효용가치가 없다. 죽어라."
단테의 팔에 보랏빛 구체가 서서히 강렬해졌다.
"으아아아!"
팻시아는 무력한 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상경 역시 얼굴과 몸통에 치명상을 입어 꿈쩍도 할 수 없었다. 리볼버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때였다.
"으음?"
단테가 미간을 살포시 모았다.
콰지지지직!
그들이 있는 SHK 옥상 건물 위,
망령계 게이트에서 강력한 기운이 퍼졌다. 이 혼전 속에 또 다른 적이라니? 상경은 모든 게 끝장났다 싶었다. 뻥 뚫린 아래에선 좀비들이 올라오려고 아득바득이고 옥상 문은 곧 부서질 것이다.
곧 흉측한 괴물이 튀어나오겠지.
촤아아아.
망령계 게이트에서 세 마리의 야수가 튀어나왔다.
아니, 괴물이 아니다.
사람이다.
망연자실한 상경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세 사람 중 하나가 더럽게 익숙했기 때문이다.
"으아얏~."
"꺗호~!"
"사부! 지구로 왔스무니다~!"
거지 몰골의 3인방이 내려왔다.
소년과 소녀 그리고 검과 몽둥이를 든 20대의 건장한 체격의 사내.
커다란 눈동자엔 장난기가 가득하고 해맑은 웃음을 지닌 이 세상을 구한 영웅.
함상경이 버럭 소리를 외쳤다.
"마스터!"
그도 함상경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상경아!"
고성웅이었다.
* * *
황의소를 죽이고 게이트를 넘어오자마자 또 아수라장이다.
대체 언제쯤 쉴 수 있을까?
황의소에게 말은 들어 대충 개판일 거라 짐작했지만, 완전 초토화다. 짜증스레 머리를 긁적이는 날 본 단테가 팻시아를 옆으로 툭 던지며,
"고성웅. 그때 뚫린 배는 괜찮나?"
남북협상단 때, 대나무 검선 채독선에게 일격을 당한 걸 가리킨다. 난 상의를 젖히며 울분을 토했다.
"뭐? 괜찮냐고? 여기 배 좀 보라고. 뻥~ 하고 구멍이 났잖아. 치료비와 정신적 피해 보상은 언제 할 거야? 근데 네 단짝인 쭈글탱이 독선 영감은 어디 갔어?"
"네 알 바 아니다."
"얼씨구? 안 불어? 황 박사처럼 너도 죽여줘?"
"음?"
단테의 흉측한 얼굴에 묘한 뒤틀림이 생겼다.
"황의소가 죽었다니?"
"방금 죽었어. 바로 이 칼에 의해 말이야."
내가 반혼검을 뾰족 세웠다.
"……!"
- 꾸에에에!
- 추아아!
옥상을 향해 망령계 마물들이 올라왔다.
"슌스케. 옥상으로 오는 망령계 녀석들 좀 막아줘. 위험하다 싶으면 얼른 도망쳐야 해. 알겠지?"
"하잇!"
상경은 성웅을 보고 반가워했지만, 눈빛은 삶의 의미를 잃은 표정이었다. 팻시아의 낯짝도 형편없었다.
'이미 벌어졌나 보군.'
씁쓸했다.
슌스케는 옥상으로 오는 망령들을 퇴치하고 있었다.
미연이 내게 말했다.
"선배님! 저는 뭘 하면 될까요?"
난 단테를 노려보며 말했다.
"저 새끼를 죽여."
"네? 서, 선배님…."
미연은 당황했다.
지구로 넘어오자마자 딱 봐도 세 보이는 놈을 죽이라니?
"고성웅. 이계에서 오더니,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단테 또한 어처구니가 없었나 보다. 절정의 고수도 아니고 젖비린내 나는 소녀에게 자신을 처리하라니?
옷깃은커녕 근처에 가기 전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내 말은 아주 효율적이고 능률적이다. 망령술이 어둠이라면 신성계는 빛이다.
즉, 상극도 이런 상극이 없다.
피식자와 포식자다.
같은 십간령이더라도 황의소는 천재적인 두뇌로만 십간령이 된 자이기에 처치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단테는 순수한 무력으로 십간령에 올라선 자이다. 즉, 손이 많이 간다. 심지어 도망도 곧장 잘 쳐서 빌미를 주면 안 된다.
여기서 소멸시켜야 한다.
적임자가 바로 미연이다.
내가 직접 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미연의 힘을 온전히 각성시키는 거다. 그것도 엑토플라즘을 구현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엑토플라즘을 쓴다는 건,
어두운 권능인 크림슨 차크라와 카니발리즘을 쓰는 것이랑 마찬가지다. 미연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는 행위다.
세상은 둥글고, 등가교환이다.
얻는 힘에는 반드시 잃는 것이 있다. 신성계라고 해서 모든 기술이 신성한 건 아니다. 강제로 끌어내면 어두운 면이 생기기 마련이다.
"미연. 너도 알다시피 넌 신성계를 지니고 있다. 그게 얼마나 희귀한 건지는 네 자신이 잘 알지?"
"네."
미연은 이미 알고 있는 눈치다.
"그걸 발현시켜라. 지금."
"서, 선배님."
막무가내의 나의 요구에 미연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신성계? 가당치도 않은 소리."
단테가 비웃었다.
묘하게 뒤틀린 단테의 비웃음 뒤에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
"사령의 아트마(Aatma)시여. 힘을 주소서. 원혼(冤魂)의 손."
지팡이에서 빛이 났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위잉. 위잉. 위잉.
순간, 미연 사방을 감싼 자줏빛의 동그란 게이트 같은 것이 여러 개 형성되더니,
- 크아아아~.
망령의 손길이 무수히 뻗어 나와 붙잡으려 했다. 내가 몸을 던져 미연 대신 잡혔다. 그까짓 거 내공으로 쉽게 풀 수 있다.
"선배님!"
그리고,
"어? 안 풀어지네?"
X되기 시작했다.
"놔! 이 망령들아! 이거 놓으라고!"
마치 거역할 수 없는 차원의 힘과 같았다. 그런 아등바등하는 날 보며 단테가 말라비틀어진 광대가 실룩거렸다.
"힘의 영역이 다르지."
"뭐?"
"그 어쭙잖은 내공으로 대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몇 차례 발버둥을 친 나는 그만 숨이 가빠졌다.
"헉, 허억. 헉. 망령 놈이 어디서 잡기술을 배웠나 보네."
"잡기?"
단테의 화를 끌어올렸다.
"고성웅. 너부터 죽어줘야겠다. 황의소의 복수다."
"복수는 지랄하고 자빠졌네. 애초에 친하지도 않았으면서."
말을 마친 단테의 손에 무수한 뼛조각이 모였다. 이윽고 뾰족한 단검들로 얼개를 이루었다.
이내 보랏빛의 기를 머금은 죽음의 파동이 감지되었다.
"본 대거(Bone Dagger)"
파파팟!
뼛조각이 날아들었다.
"으아아아! 사람 살려!"
망령계 괴물들에 손발이 묶인 난 고래고래 괴성을 질렀다. 대체 뭔 짓을 했길래 내공으로도 안 풀어지는 거야!
"잘 가라. 고성웅."
푸슉! 푸슉!
"크허어어억."
난 비명을 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