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여우의 머리를 가진 호랑이
눈을 감은 채 혈도를 집힐 때마다 상경의 입가엔 검붉은 피가 새어 나왔다.
"컥컥."
다행이다.
백회혈을 밀어내며 천령마혈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다. 손바닥의 검은 기는 내리 상경이의 체내에 흡수되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치이이.
전기용접처럼 불꽃이 튀더니, 상경의 뚫린 심장에서 검은 살결이 돋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윤은지는 대관절 무슨 일이 벌어지냐는 듯, 날 뚫어지게 봤다. 그녀가 배운 의학지식으론 결코 범접할 수 없는 음흉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던 것이다.
"서, 성웅 씨. 대체 지금 무슨 짓을…."
"누나. 나중에."
난 그녀의 말을 끊었다. 아무리 게이트의 시대라지만, 윤은지는 이렇게 비과학적이고 비가역적인 현상에 이마에 고랑을 지었다.
비단, 그녀뿐만 아니라 장중에 있는 송현 길드원 모두 표정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그러나 내 목표는 오직 하나.
살릴 것이다.
상경이가 악마가 되든 괴물이 되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릴 거다. 아내를 언데드로 만들어서라도 살리려는 김명일의 마음을 이제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으어허어억. 컥. 킥킥."
상경은 틈틈이 발작을 일으키며 괴상한 소리를 내었다. 귀곡성(鬼哭聲)처럼 들리기도 했고, 광인의 발정 난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눈자위만 보이기도 했다.
팻시아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눈물만 뚝뚝 흘리며 바라보았다.
사마혈 작업은 계속되었다.
"으으읍."
시간의 개념이 무뎌졌다.
땅거미가 지고 해는 어두워졌다.
내 머리엔 땀방울이 떨어졌다.
윤은지가 손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
"헉, 헉."
팔이 미친 듯 떨려 오지만 꾹 참았다. 상경은 죽은 듯 죽지 않은 듯 미묘한 표정을 자아냈다.
이제 마지막 제문마혈이다.
윤은지는 옆에서 계속 간호를 해주었으나 이젠 그녀마저도 서서히 힘을 쓰지 못할 지경이다.
서둘러야 한다.
제문마혈은 하단전과 간 중간 부분에 위치했다. 잘못 집으면 단전의 혈도를 끊어버리고 평생을 미치광이로 살거나 죽어 버린다.
'넌 내가 반드시 살린다!'
최후의 힘을 짜내 제문마혈을 집었다.
탁.
'제발. 제발!'
손에 담긴 검은 기가 손톱 끝까지 빨려 나가더니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헉, 헉. 헉. 된 건가?"
팻시아는 바들바들 떨며 어찌할 줄 몰랐다.
그때였다.
번쩍.
순간 상경의 눈에 흉폭한 기운이 서렸다. 흰자가 마구 돌아가며 혼자서 뭐라 중얼거렸다. 섬뜩한 눈알과 뒤틀린 표정에 아찔한 낯빛을 지었다.
"상경 오빠! 정신이 들어요?"
팻시아가 상경을 잡으려 했지만 내가 그녀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어, 어째서?"
상경의 입이 벌어졌다.
"크크, 천마신공. 치심대법."
말투나 억양이나 다른 사람이다. 상경의 육체에 잠입한 천유희가 마공을 돌렸다.
크오오오오!
파장이 일었다.
"으윽."
상경 주위로 보랏빛 기운이 넘쳐나더니 불길한 기운이 솟구쳤다.
이윽고, 상경은 제 심장에 마공을 가했다. 보랏빛 마기를 머금은 상경은 손으로 중지와 검지로 가슴팍에 대었다.
치이이익.
살이 타는 냄새가 났다.
"으윽."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구멍 난 심장이 검게 부풀어 오르더니 자그마한 흑염소 문양이 새겨진 것이다.
흑염소는 천마신교의 신수다.
심장에 박힌 흑염소가 살아있는 것처럼 표정을 와락 일그러뜨리더니,
두근. 두근. 두근.
상경이의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송현 길드원들은 내게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성웅. 와, 왓더 퍽?"
"성웅. 무슨 짓을?"
난 윤은지를 보며,
"누나. 상경이는 어때?"
윤은지가 맥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안정적으로 뛰어. 살았어. 근데 성웅 씨.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난 고개를 떨구었다.
기쁘다고 해야 할지 슬프다고 해야 할지 만감이 교차한다.
"살리려면 어쩔 수 없었어."
난 그간 행한 술법을 일행에게 알려주었다. 마(魔)를 물리쳐야 할 내가 마를 이용해 친구를 살렸다.
"아니야. 이건 상경이 오빠가. 아니야."
팻시아는 단박에 상경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저기,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난 팻시아의 눈을 바라보지 못했다. 금지된 술로 상경의 육체를 기사회생시켰기 때문이다. 팻시아가 내 멱살을 움켜잡았다.
"상경이 오빠 어딨냐고!"
팻시아의 절규가 하늘을 울렸다.
상경은 눈을 감고 깨어나지 않았다.
그날 밤.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이 발칵 뒤집혔다. 피해의 규모를 떠나, 자칫했다간 수도가 전복될 수도 있었다. 불과 한나절 동안, 군인과 경찰 그리고 헌터들이 수없이 죽거나 다쳤다. 사상자는 천 명이 넘었다. 성내동 사건은 일파만파 세계 각지에 생중계되었으며,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골자는 이러했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
골드문 길드 즉시 폐쇄.
골드문 길드에 소속되거나 연루된 자 전원 소환 및 조사.
그날, 모든 방송 프로그램은 중단되었으며 수도를 지키다 숨진 자들에 대한 추모를 했다.
테일러 호텔.
상경은 여전히 의식불명이다.
그 옆은 팻시아가 지키고 있었다. 조세리는 혀를 차더니, 자리를 비켰다.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다. 세리는 나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상경을 가리켰다.
'너도 저 꼴 나지 않게 조심해.'
팻시아는 상경의 손을 꼭 잡고 뭐라 계속 혼잣말을 했다.
슌스케와 미연은 입사 첫날부터 우울한 분위기에 같이 젖어버려 축 처졌다.
- RRRRR.
전화가 울리고 난,
경찰 본청에 소환되었다. 정확하게는 헌터국.
을지회에 뒤통수를 때리고 ESC 원천 기술을 확보한 자. 권력을 공고히 다지기 위해 날 게이트에 집어넣어 김명일의 격살을 지시한 자.
본인이 똥 싸고,
남에게 치우게 한 자.
여우의 뇌에,
호랑이(虎) 상(相)
헌터국 국장.
정래한.
"어째 표정이 X랄 맞은데?"
조사실에서 담배를 꼬나물며 다리를 꼬았다. 옆을 보니 거울이다.
아마 건너편에서 수많은 경찰 간부들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을 거다.
헌터국은 순수 자기의 영역이다. 대통령이 와도 눈썹 하나 까딱 안 할 인간이다.
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정래한은 바닥에 ESC 디바이스를 던지더니 발로 지르밟더니 부수었다.
콰직.
"명일이 센서가 더는 작동을 안 하니 필요는 없고."
나타, 이리야, 황의소 그리고 단테의 사진을 펼쳐 들더니 찢어버렸다.
"십간령 중 네 놈이나 죽어버렸네? 데비루까지 합치면 다섯이고."
"그리고 중력술사 도사모아도 깔끔하게 제거를 했고."
"이야~ 완전 대박이구먼. 대박. 크허허허."
호탕하게 웃었다.
정래한은 타인의 심정이야 어떻든 본인의 목적만 이루면 아무 상관도 없는 인간말종이다.
신나게 웃던 그가 날 보며, 웃음을 멈췄다. 마치 언제 웃었냐는 듯,
"X발."
욕설을 내뱉었다.
"어이, 고성웅이. 경찰 아저씨가 표정이 지랄 맞다고 물었으면 대답을 해야지. 나이도 어린놈이 어르신의 말을 쌩까? 그것도 헌터국 국장의 말을?"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격이 딱 맞다.
내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당신이 조필광이랑 다를 게 뭐야?"
"뭐?"
굵직한 그의 눈썹이 꿈틀댔다.
"이 썩어빠진 인간아. 당신만 아니었으면 힘없는 내 친구는 이 꼴이 나지 않았다고! 당신이 날 게이트로 보내는 바람에 이 꼴이 난 거 아냐! 내가 옆에서 지켜줬어야 했어!"
불쌍한 상경이를 생각하니 다시금 목이 멘다.
"아직 애구만."
"뭐?"
"대승적 차원으로 생각을 해. 성웅이 네놈이 한 일에 대해 치하(致賀)를 하려는데 이렇게 나오면 섭섭하지. 안 그래?"
"치하?"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하나? 황의소의 수제자인 함상경을? 심지어 그 새끼는 몇 년 전, 내 눈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튀었어. 연기가 어찌나 오스카 수상감이던지. 그대로 속았지 뭔가?"
"……!"
역시 알고 있었다.
"상경이 그놈이 깨어나면 어디 지하실로 끌고 가서 고문 좀 한 다음에 자백을 받아내고, 재판에 넘겨줘? 못 해도 사형일 텐데? 아아~ 요즘 시대에 고문이라니. 이건 취소하지."
"뭐, 뭐?"
"그 사형을 부활시킨 게 성웅이 네놈이지? 크크. 볼만하겠구먼. 사형을 부활시킨 친구에 의해 사형을 당한다라…."
몇 년 전,
이완해 시해사건으로 난 사형을 언도받고 집행까지 된 적이 있었다. 부활한 사형을 상경이를 죽이는 데 쓰려는 거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
정래한은 이때를 위해 아껴둔 카드를 내게 들이밀었다.
"이, 이 이!"
십간령과 이십사도 다음으로 이렇게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처음이다.
정래한이 내게 치하한다.
"상경이를 건들지 않으마."
여기서 끝낼 인간이 아니다.
"대신. 게이트에 벌어진 사건에 대해 입 밖으로 내지 말라는 거겠죠."
"어린 줄 알았는데 대가리란 걸 굴리는 새끼였구먼. 좋아. 나가봐."
결국 날 경찰 본청으로 불러들인 이유는 내 입단속을 하기 위해서다. ESC는 오로지 헌터국, 아니 정래한 본인만 가지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받고 한 가지 더."
"뭐?"
와장창!
"으아악~."
유리 건너편에 지켜보던 경찰 간부들이 기겁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기어검술로 반혼검을 불러들였다.
콰직.
정래한과 나 사이를 막고 있는 테이블을 반 토막 내버렸다. 걸리적거리는 책상을 바로 차 버리고선, 반혼검으로 정래한의 목덜미에 겨누었다.
그는 목에 칼이 들어왔음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지루하단 표정이다.
"다신 이런 X같은 청탁하지 마세요. 그땐 경찰이고 나발이고 다 죽여 버립니다."
"크허허허!"
정래한은 우렁차게 웃기만 할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좋아. 약속하지."
더는 이 자리에 있기 싫었다.
나가려고 하자, 몇몇 정복을 입은 경찰이 출구를 가로막았다.
"푸흐흐. 오늘 우리 고 헌터님께서 기분이 안 좋으신단다. 걸리적거리지 말아라."
정래한이 비꼬자 경찰들은 자리를 내주었다.
밖으로 나왔다.
달이 만개했다.
둥그런 보름달이다.
한숨을 돌릴 새도 없었다.
누군가 내 멱살을 꿰찬 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난 그저 상대방을 고요히 응시했다.
짐작은 했다.
"나윤아."
내 동생 고나윤이다.
여전히 도둑 모자로 얼굴을 진하게 가렸다. 그러나 눈빛만은 살기가 넘실거렸다. 살기보다는 곧장 울음이라도 터뜨릴 어린애다.
"크, 크리스티나는?!"
"……."
난 침묵을 고수했다.
나윤이도 알고 있다.
크리스티나는 불귀의 객이 됐다는 걸 말이다. 그러나 직접 듣고 싶었을 것이다. 내 입에서. 살아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실낱같은 희망 하나로 내게 찾아온 거다.
"나윤아. 알고 있잖아."
"X발! 닥쳐! 오빠 새끼야! 네 입으로 직접 말해!"
나윤의 눈에서 눈망울이 굵직하게 떨어졌다. 단순한 동료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크리스티나를 존경한 표정이다.
"죽었다."
"거, 거짓말! 시체 확인도 제대로 안 했잖아!"
나윤은 믿기 싫었다.
작금의 현실을 누구보다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정확하게는 자살했다. ESC의 실험체가 되지 않으려고 샷건을 제 머리통에 대고…."
"그만! 그만!"
나윤이 내 말을 끊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왜 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온통 죽음을 맞이하는 거야! 왜! 왜! 오빠. X발 너는 존나 저주받은 새끼야! 저주받은 새끼라고!"
퍽. 퍽.
그녀가 힘없는 주먹으로 내 안면을 후려쳤다.
"때려. 속이 풀릴 때까지."
나 역시 눈알에 힘이 풀린 놈처럼 그저 때리는 대로 맞았다. 그녀는 몇 대 때리지도 않더니 털썩, 하고 무릎을 꿇어 한참을 목 놓아 울더니 사라졌다.
달빛이 쓰라린 내 얼굴에 시원한 바람을 넣어줬지만, 마음은 납덩이로 꿰찬 듯 답답했다.
신법을 펼쳐 달렸다.
한없이. 정신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