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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인데 내공이 좀 많네요-151화 (151/200)

151화. 닿지 못한 편지

검무(劍舞)가 흩날렸다.

'성웅 시주. 잘 계신지요?'

검에서 아리따운 분홍 잎의 매화잎들이 수 놓여 펼쳐졌다. 황홀하고도 아름답다고도 볼 수 있지만, 매화잎에 내려앉은 건,

푸찍!

"크허어억!"

사람의 피다.

결코 아름답지 못한 광경이다.

'엘리 시주도 강녕하시지요?'

인간의 육편이 널브러지며, 그 위로 붉은 매화잎이 내려앉았다.

몇몇 꽃들은 잘린 손목에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절단된 손목은 꿈틀거리며 부착을 애걸하고 있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상대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다.

송현사 냉철.

'전 잘 지내고 있습니다.'

팟, 하고 칠십의 나이를 훌쩍 넘은 늙은이를 향해 도약했다. 유교 사상과 경로우대가 사라진 게이트 시대일지라도 검엔 손속 따윈 두지 않았다.

상대는,

낮에는 이슬람 사원에 절을 올리며 밤에는 여자를 사고파는 포주다.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일대에 성매매업으로 부호가 된 쓰레기 새끼.

냉철은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 글쎄 등을 까보시라니까요."

그들은 아랍어로 말했다.

뚱뚱하고 포악하며 성질 사납게 생긴 녀석이 발버둥쳤다.

"크으윽, 난 이십사도가 아, 아니라고. 난 아무것도 모르는 늙은이야. 늙은이!"

"호오~."

냉철이 잔인하게 웃으며 잘린 손목을 손에 쥐고 만지작거렸다.

"영감님. 이십사도가 뭐죠?"

"뭐뭐뭣?"

"제 입에서 이십사도라고 말한 적은 없었는데요?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아시나요?"

냉철은 한 놈을 집요하게 추적 중이었다. 유년기의 기억에 각인된 그 녀석.

성매매 포주의 뒤꽁무니를 캔 것이다.

냉철이 포주의 등을 강제로 돌려 옷을 찢었다. 노인은 칠색 팔색하며 저항했으나 내공을 넣은 냉철의 힘을 당해낼 순 없었다. 다윗과 골리앗 수준이다.

"으아악! 보지 마! 보지 말라고! 이건 그냥 타투야, 타투!"

"반항하면 죽여버립니다."

그의 등이 벗겨졌다.

냉철이 비릿한 조소를 머금었다.

"역시 마지막 사도가 맞았군요."

드디어 찾았다.

20(اثنانعشرة)사도.

살기를 머금고 웃는 냉철을 노려본 포주 녀석의 안광이 동그래졌다.

90년대 후반, 당시 40~50대의 나이로 테러리스트의 우두머리로 활동한 이십사도는 세월이 흘러 추하게 늙어버렸다. 20사도가 치를 떨었다

"어, 어떻게 날 찾았나?"

이십사도를 찾는 건 어렵진 않았으나, 약간의 노동이 필요했을 뿐이다.

"태국 이슬람 사원을 샅샅이 뒤졌지요."

몇 달 동안이나 말이다.

태국에서도 남부 얄라주.

이슬람 사원을 몰래 관찰하며, 알라에게 절을 올리는 자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개 중, 양팔을 교차시켜 어깨에 두 번대고, 합장을 한 후 최종으로 절을 하는 녀석을 발견했다. 지금 냉철 앞에 등이 까발려진 이 녀석이다. 얼핏 보면 제대로 구분하기가 어렵지만, 냉철의 눈은 속일 수 없다.

"그, 그게 왜!"

"그건 알라에게 경배하는 의식이 아니거든요."

"무슨 소리냐!"

"시주의 두목인 라스콜에게 행하는 의식이죠. 아니, 오사마 빈 라덴이라 해야 하나?"

"가, 감히 그 더러운 조동아리로 신성한 이름을 입에 담지 말라!"

라스콜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이십사도에 들어가기를 간청했다.

포주는 이십사도가 됐다.

그리고 그 영역은 장치오 손바닥 안이었다. 성 상납을 했다. 얼굴이면 얼굴, 몸매면 몸매 심지어 아동 성애자까지의 맞춰주며 쓰레기의 삶을 연명했다.

이젠 죽을 때다.

백번 죽어 마땅하다.

백골이 닳고 마를 때까지 내리쳐야 한다. 살아야 할 이유 보다 죽어야 할 이유가 많은 녀석이다.

그런데도 포주는 여전히 죽기 싫어 아우성이다.

"이, 이봐 우리 말로 하자고."

냉철의 경직된 표정이 놈을 노려보았다.

"그쪽은 말로 여자를 대했나요?"

"……."

"어디 더 비굴하게 굴어보세요. 혹시 아나요? 제가 마음이 바뀔지도?"

"으으."

치욕스레 얼굴을 붉히는 놈을 향해 냉철이 채근했다.

"어서 해보라니까요. 라스콜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이십사도에 들어가기를 간청했던 그때처럼 말이에요. 지금 보니 눈에 참 익네요. 그렇죠?"

"뭐? 뭐! 내가 눈에 익다니? 어디서 날 본 거냐?"

"후후, 기억 안 나십니까? 수십 년 전, 라스콜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충성을 다 하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요? 푸흐흡."

냉철은 참지 못할 조소를 터뜨렸다.

"그, 그걸 어찌!"

포주는 냉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잿빛 승려복에 머리를 잔뜩 길러 눈매를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스아아.

바람이 흩날리자 가려진 눈매가 훤히 드러났다. 날카롭고 표독스러운 독특한 외형.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다. 어디였지?

포주는 냉철의 눈과 마주쳤다.

잊지 못할 그 날의 눈빛.

뇌리를 강타했다.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는 녀석. 유년의 아이가 사람을 죽이며 활짝 웃던 그때 그 아이.

악마다.

틀림없는 악마다!

"으아아아! 너너너, 이 새끼! 옛날! 그 꼬맹이 맞지?!"

"우와~ 드디어 알아보시나요?"

녀석의 정체를 확인한 포주의 눈동자는 급기야 파르르 떨렸다.

태생이 악(惡)으로 태어난 마귀.

라스콜이 갈아탈 몸으로 점찍은 아이!

냉철.

털썩.

포주의 사지가 벌벌 떨리더니 빌었다.

"사, 살려줘. 제발."

비굴하면 냉철의 마음이 바뀌기를 기대하며 말이다.

"으음. 포주 시주. 그건 곤란한걸요?"

칼을 목에 들이밀었다.

"으히이익."

포주가 무릎을 꿇었다.

손목 하나가 없어서 왼손을 오른편 손목에다가 비볐다. 멈추지 않은 피는 포주의 손바닥을 흠뻑 젖었다.

"제발 살려줘. 날 죽이면 라스콜 님께서 널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자폭의 권능을 쓸 수밖에 없다고. 너랑 나랑 둘 다 죽어! 당장 칼 치워. 칼 좀 치워달라고!"

냉철이 어깨를 젖히며 웃었다.

"와하하하하! 권능요오?~ 당신이랑 이완해는 라스콜의 권능을 받지 못했잖아요."

"……!"

"어리석고 무능해서."

정곡을 찔렸다.

포주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푸하하하하!"

냉철이 미친놈처럼 웃어 재꼈다. 칼을 흩뜨렸다. 광인처럼 웃느라 고개마저 하늘을 바라보았다.

포주의 눈빛이 번뜩였다.

살려면 지금이 기회일 것이다.

"제발 살려줘. 제발 살…."

포주가 목숨을 구걸하며 빌던 한쪽 손을 뒷주머니로 향했다. 금속의 무기가 빛을 번뜩였다.

스미스 웨건 M586 리볼버.

철컥, 어찌할 새도 없이 총구가 냉철의 미간에 닿았다. 망설일 것도 없다. 방아쇠를 당겼다.

"죽어! 이 악마 새끼야!"

탕! 탕! 탕!

삽시간에 여섯 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런데도 포주는 방아쇠를 계속 당겼다.

딸깍딸깍, 방아쇠는 탄창이 공허한 소리만 메아리쳤다. 리볼버의 탄은 여섯 발로 끝이기 때문이다. 총구에서 잿빛의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파르르, 하고 포주의 손이 미친 듯 떨렸다.

"헉, 허억. 어 어찌?!"

포주는 경악했다.

바로 코앞에서 권총을 난사했음에도 단 한 발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냉철은 여전히 웃는 얼굴을 고수했다.

"포주 시주. 수전증 있으신가요? 가만히 있어도 맞추질 못하시네요. 하긴 늙다리에 파킨슨까지 겹치니 아주 병신이 다 되셨군요."

입은 웃지만, 눈은 싸늘했다.

"자~ 발악은 끝나셨나요?"

포주는 가슴팍에 뜨겁고 시큰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제야 고개를 아래로 내려 몸 상태를 확인했다.

"으어어억."

냉철의 장검이 폐부를 꿰뚫었다. 갈고리 얼개의 갈비뼈가 부러지고 그 뼈는 허파를 찌른다. 고통을 둘째치고, 숨이 쉬어지질 않는다. 고문할 때도 요긴하게 쓰이는 방법이었다. 말 그대로 허파에 바람난 소리가 쓸쓸하게 퍼졌다.

"구, 구경만 하지 말고 살려 줘어어어."

대낮 길거리, 아니 홍등가에 노인이 피를 흘려 쓰러졌음에도 수십의 매춘부들은 아무도 포주를 불쌍하게 보거나 신고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되레 장내의 눈빛은 포주를 험악하게 노려보기 바빴다.

매춘부라고 하기엔 너무 어리다.

소녀(小女).

그녀들은 원한이 사무치고,

분노가 들끓어 오른다.

추욱.

"커어억."

냉철이 폐부에 꽂힌 칼을 빼며 합장했다.

"아미타불. 성불은 하지 마세요. 끝없은 윤회를 돌고 돌아, 평생 가축이 되어 저지른 만행을 반성하시길."

착, 검을 사선으로 내리며 칼에 묻힌 피를 바닥에 떨어냈다. 냉철이 발걸음을 뒤로 돌리자 소녀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포주 녀석을 걷어차고 찍어 내렸다.

"컥! 어억! 아악!"

20사도인 포주는, 누구의 딸, 누구의 언니. 누구의 가족을 팔아넘긴 천하의 몹쓸 놈이다.

냉철은 인간의 살육을 쓸쓸히 응시하더니, 고개를 돌려 동북쪽을 향해 바라봤다.

날이 참 좋다.

냉철의 여린 눈매를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엔 대한민국이 나온다. 그립고, 보고 싶다.

'전 잘 지내고 있습니다.'

'타국에서 사람을 죽이면서 말이죠.'

살인을 업으로 삼게 되면 자신의 타성을 자각하게 된다. 그래도 잊지 말고 놓지 말아야 할 인간성을 지키고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친구 덕분에.

우정을 가르쳐줬으며,

사랑을 배웠다.

"끄어어어…. 억."

소녀들의 매질에 인간의 생명이 끊기는 단말마가 냉철의 귓전에 싸하게 꽂혔다.

냉철은 신경 쓰지 않았다.

씁쓸한 냉철은 그 어느 때보다 그가 보고 싶어졌다.

'성웅 시주.'

이십사도였던 포주의 시체를 두들기는 폭력적인 작업은 30분 동안이나 계속됐다. 냉철은 광기에 찬 소녀들을 무심한 눈길로 지켜봤다.

퍽퍽.

냉철은 서둘러야 했다.

그의 임무는 엄연히 흑마침과 여타의 보패를 찾는 것이지. 여자 팔아 돈 버는 쓰레기를 죽이는 일이 아니다. 이번엔 단지 포주가 짜증 났을 뿐이다.

흑마침이 움직였으며,

궤적은 골든 트라이 앵글이다.

흑마침만 찾게 되면 더는 송현 길드를 떠날 일도 없으리라. 투덜거리는 엘리와도 매일 대련을 할 수 있으며, 대책 없이 해맑은 성웅과도 즐거운 담소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매일 매일.

행복하게.

일 년도 되지 않았지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시절같이 느껴졌다. 돌아가기 위해서는 아직 칼에 피를 더욱 묻혀야 하기 때문일까?

퍽, 퍽.

포주는 주검을 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져졌다.

병기에 묻은 피를 소매에 닦았다. 이제는 떠나야 한다.

냉철 본인이 떠나면 남은 소녀들은 안 봐도 뻔하다. 천박한 업종의 이십사도일지라도 이십사도는 이십사도다. 그를 죽였으니 응당 보복이 따르리라. 중동의 용병부터 파견되어 포주를 지키는 어깨들 또한 곧장 들이닥칠 것이다.

소녀들에게 문책이 가해진다.

최하급 소녀는 즉시 찢겨 죽을 테고, 평범한 이는 방콕의 소이 카우보이로 팔려 가고, 출중한 소녀는 골든 트라이 앵글에 바쳐진다. 장치오의 노리개로 말이다.

그러나 어쩌란 말인가?

냉철은 매정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이만하면 충분했다.

도망치거나 잡혀 죽거나 그건 소녀들 팔자다.

냉철은 대의를 위해.

아니, 정확히는 성웅에게 돌아가기 위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걸음을 돌린다. 성웅과 함께 지내며 인간성을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냉철은 냉철했다.

"저기요!"

걸레짝이 된 옷을 입은 소녀들이 냉철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이미 순결을 잃은 지 오래된 애들이다. 그런 소녀들의 무기는 단 하나.

"저희도 데리고 가 주세요. 잠자리는 얼마든지 해드릴게요."

"저, 저도요!"

스님에게 성매매를 제안한다.

이러나저러나 몸 파는 건 매한가지지만 자신의 의지로 하고 싶은 열망이다. 더는 가축처럼 우리에 갇혀 사타구니를 벌리고 싶지 않다. 젊은 날의 청춘을 좀 먹는 행위에 지독한 염증을 느꼈다.

냉철은 합장을 하며 거절했다.

"커어톳.(ขอโทษ : 죄송합니다.)"

세상은 'yes or no'로 해결되지 않는다.

"음, 무슨?"

단칼의 거절에, 소녀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냉철 전면에 우르르 몰려들어 길을 막았다. 떠날 거면 차라리 베고 가라는 눈빛이다. 또한 세상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낯짝이다. 세상 벼랑 끝에 선 자들의 최후의 발악이리라.

소녀들에게 어딜 가든 시궁창에 역겨운 곳이란 건 변함없다. 다만 같은 지옥의 소굴로 들어갈 바엔 차라리 죽겠다는 각오.

굳이 신법을 펼치지 않더라도 소녀들을 따돌리는 건 일도 아니다.

뭔가 가슴에 툭툭 송곳 찌르듯 파고들었다. 이 송곳은 무엇을 찌르는가?

바로 양심이다.

어렸을 적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성웅과 함께 지내며 이 양심이란 게 부쩍 자주 솟구쳐올랐다.

냉철은 난감했다

어떤 일에 망설여질 때면 늘 그를 떠올리곤 한다.

'성웅 시주라면 여기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뿐인 친구 고성웅.

말썽꾸러기에 사고뭉치지만 불의는 죽어도 못 참는 재밌는 녀석.

정적이 흘렀다.

답은 정해졌다.

냉철이 소녀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사와디캅. 따라오시지요."

"꺄아아~."

냉철도 서서히 대책이 없어졌다.

훗날 성웅을 재회했을 때, 자신이 그의 친구임을 더는 부끄럽지 않기 위해.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냉철은 졸졸 뒤따라오는 소녀들을 이끌고 한적한 숲으로 갔다.

어깨는 무거웠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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