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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인데 내공이 좀 많네요-152화 (152/200)

152화. 버마에서 (1)

새벽 3시. 송현사.

두두두두두.

보잉사의 MH-139A 미 공군헬기가 착륙했다. 광택이 나는 그레이 색상으로 또 다른 이름으로는 그레이 울프.]

미군 두 장교가 내렸다. 소위랑 대위. 대위는 파일럿이었는데 법현 대사를 보자마자 거수경례를 했다.

법현은 합장 인사로 답했다.

"아미타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어웰컴. 마이플레져."

옆에는 젊고 말끔한 마스크를 지닌 소위가 조금 서툰 한국어로,

"통역을 맡은 에반 슬래터리라고 합니다. 에반이라 불러주십시오. 세계 최고 헌터인 미스터 고와 서브 마스터 함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는 어색한 영어로 인사를 덧붙이며 악수를 나누었다. 상경은 잠이 덜 깼는지 눈을 비비며 법현 대사를 향해,

"후암. 부처쨩. 다녀오겠다능."

"상경 시주. 몸조심하십시오."

"대사님. 다녀오겠습니다."

"무탈하셔야 합니다."

"네. 에반 고고."

"오케이."

모두가 잠든 새벽.

달빛을 받은 그레이 울프가 프로펠러를 맹렬하게 돌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스아아아아.

주변의 흙먼지가 송현사를 뒤덮었다. 법현 대사는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봐 주었다.

제주도 북단을 지나칠 때였다.

헬기 안에서 에반 소위는 우리에게 방수팩에 담긴 무언갈 줬다.

"응? 에반. 이게 뭐예요?"

달러로 된 현금다발이었다.

"돈입니다."

"미얀마로 가는데 왜 달러를 주세요?"

미얀마엔 따로 화폐가 있지 않나?

"아마 달러가 더 유용할 겁니다. 물론 필요할 때는 환전소에서 바꾸면 됩니다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에에?~ 왜요?"

"라오스와 태국도 그렇지만 미얀마는 특히 현재 장치오 때문에 국가가 매우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때문에 챠트(미얀마 화폐)의 가치는 바닥입니다. 호텔 및 레스토랑같은 웬만한 곳은 오히려 달러를 더 좋아하니까 넣어두세요."

"우왓. 감사합니다."

그리고 미얀마에는 동전을 안 쓴다니, 불시 검문할 때도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라는 말 등을 해줬다.

"그런데 어디에 내려드리면 될까요? 대사님도 종착점에 대해선 웃으면서 아무 말도 안 하셔서요."

"으음, 아무 데나요."

"네?"

이렇게 대책 없이 가도 되나 싶지만, 이번 여정은 변수에 변수가 더해지는 상황이기에 무작정 출발하기로 했다. 에반은 당최 이런 우리가 이해되지 않은 듯싶었다. 군인인 에반은 하나의 작전을 위해 수없이 계획을 세우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따지고 보면 언제는 내가 대책을 세워놓고 움직인 것도 아니었고 대책을 세웠어도 뜻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즉, 내가 가는 곳이 길이다.

에반이 파일럿 대위에게 현 상황을 말해주자, 뒤를 돌아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얼굴에선 '자살하러 가냐?'라고 하는 듯했다. 에반이 지도를 펼쳤다. 그리고 고군분투하며 형광펜으로 체크를 치밀하게 끝내더니,

"태국, 라오스는 경계가 철저해서 비행기로 내륙까지는 갈 수 없습니다. 놈들의 감시에 걸려버리죠."

"그럼 어떡하죠?"

"현재로선 버마 남부인 마르타반 만(Gulf of Martaban)에서 헤엄쳐서 올라가시는 게 제일 안전합니다."

"버마요? 미얀마 아닌가요?"

"저희는 버마라 부릅니다."

"…?"

버마(Burma)는,

미얀마(Myanmar)의 옛 이름이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후, 군부독재로 세계 최빈국 중 하나가 되었다.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수만의 무고한 시민이 죽거나 다쳤다. 아웅산 수치는 가택연금과 투옥을 수없이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군부는 나라 이름을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꾸어 버렸다.

즉, 버마라 부르는 이유는 미얀마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다.

세 시간이 지났다.

고도는 높게, 천천히 비행했다.

침묵이 감돌았다.

대한민국을 완전히 벗어났다.

지평선 아래에는 낯설고 작고 낡은 건물들이 수 없이 서 있었다. 타국에 오니 코를 간질이는 냄새부터 달랐다.

그레이 울프는 타국의 영토 침범 따윈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만, 라오스를 국경을 가뿐하게 지나쳤다. 물론 내륙 쪽으로 가지 않고, 국경의 테두리를 그리듯 나아갔다.

에반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곧 버마 하강 지점입니다. 준비하십시오."

"오케이."

우리가 떨어질 지점은 바다다.

"여기서 북쪽으로 2km만 헤엄쳐서 가시면 육지입니다."

"그것도 오케이!"

"끼야아아아! 못간다능!"

저 아래 지평선 너머 펼쳐진 푸른 바다를 보자 상경은 다리를 파르르 떨며 못 간다고 징징거렸다. 에반 소위는 그런 상경을 보며 피식 웃더니, 내게 시선을 두며,

"위쪽으로 며칠 쭉 올라가시면 세계에서 가장 긴 목조 다리인 우베인(တံတား)다리가 보일 것입니다. 가는 길에 들리십시오.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애초에 관광하러 온 것도 아니고 불법 입국 신분에 그런 짓을 한다는 건 시간 낭비다. 그래도 에반 입장으로선 호의를 표하는 거니 '땡큐'라고 답하긴 했다.

그리고,

치이잉.

그레이 울프의 문이 열렸다.

스와아아아.

"끼오오오!"

바람이 들어와 헬기가 순간 흔들렸다.

저 멀리 마르타반 만이 보인다. 위치는 버마 중부에 속했으며, 안다만해의 북부 시타웅강의 하구를 향하여 만입한 부분이다. 서해안 갯벌 같았다. 만의 모래 위에는 짚으로 엉성하게 지은 움막집이 몇 채 보였다.

"건투를 기원합니다. 파이브~ 포오~ 쓰리~ 투우~ 워언~"

문득 독도 대첩이 생각났다.

그땐 어찌어찌 반혼검을 뽑자마자 출격하고 정신이 없었는데 어떻게든 이겨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에반 소위가 손을 아래로 내렸다.

"점프!"

"에반과 파일럿 대위님. 고마워요!"

"굿럭!"

피슈우우웅~

"끼오오오오!"

난 거세게 저항하는 상경이를 끌어안고 바다를 향해 뛰어내렸다. 상경이의 눈은 기절초풍할 듯 보였다.

"마스터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라느으응!"

"상경이! 임마아아! 죽다 살아난 주제에 칭얼거리지 좀 마아아! 트라이 앵글 지역에 가면 네가 좋아하는 팻시아를 볼 수도 있다고오오!"

"없으며어어언?"

"없는 거고오오."

"내가 미쳐어어~."

첨벙~.

바다에 빠졌다.

상경이는 역시나 맥주병이었다.

"꼴꼴꼴~."

난 실신 직전인 뚱보를 끌고 육지로 겨우 헤엄쳐 올라왔다. 헤엄치는데 이 녀석이 미친 듯 발버둥 치는 바람에 임무고 뭐고 같이 물고기 밥이 될 뻔했다.

"어푸푸푸~ 죽을 뻔했다능. 아."

"상경이. 너 그렇게 발버둥 치면 나도 위험하다고."

"천화난추의 경지네 뭐네 잘난 척 다했으면 그 정도는 하라능."

"으이그. 내가 말을 말아야지."

라며, 상경이가 보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때는 해 뜰 녘이었는데 아침 햇살이 마르타반 강을 붉고 파랗게 빛을 띠었다. 신비한 색에 경이로움마저 느꼈다.

"이야~."

신비롭고 기이한 자연경관에 우린 어안이 벙벙한 채 한참을 바라보았다.

"불법 입국에 체류하는 신분에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아름답다능."

"인마. 영웅 놀이가 어디 쉬운 줄 알아? 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하는 거야."

우린 잠시 옷이 마를 때까지 홀딱 젖은 채로 강바닥에 앉아있었다.

새벽 일찍 출발해서인지 때는 아직 아침이었다.

나룻배를 탄 어부가 그물을 던지며 우릴 수상하게 봤다. 망한 사회주의 체제 국가에 어울리지 않는 독특한 사복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상경이가 벌떡 일어서며 두 손을 모아 현지인처럼 인사했다.

"밍글라바~."

그러자 어부도 활짝 웃으며,

"밍글라바~ 닐까운빠대~."

내가 물었다.

"너 버마어를 할 줄 알아?"

"인사말이라능. 해외로 출장 왔으면 그 정도는 할 줄 알라능."

출장인가?

"어이쿠~ 잘났다. 정말."

상경은 간단한 인사말밖에 할 줄 몰랐다.

"으음, 우선 옷부터 갈아 입자능. 젖은 건 둘째치고, 현지인처럼 보여야 눈에 덜 띈다능."

일리 있는 말이다. 상경이와 나는 강가에 접한 집에 몰래 침투하여 옷을 말리고 있는 옷을 훔쳐 와 갈아입었다.

타국 불법 체류에 절도까지 서슴지 않았다. 영웅이 되기란 눈물 날 정도로 고된 일이다.

"어엇? 옷이 꽉 낀다능."

"으이그! 평소에 살 좀 빼지 그랬어!"

내가 상경의 등에 끼인 옷을 강제로 당기고 있는 찰나,

"끼야아아~."

한 여성이 우릴 보더니 비명을 질렀다.

"우왓! 들켰다! 도망쳐!"

"으악!"

이내 시민들이 몽둥이를 들고 쫓아왔다. 난 상경이를 들쳐 매고 경공술을 펼쳐 냅다 달아나야만 했다. 생각보다 버겁다.

"헥, 헥. 다시 한번 말해서 미안한데 살 좀 빼라. 천유희 무게까지 더해졌냐?"

"인간! 무례하다!"

"아아, 영감인가?"

상경에서 천유희로 바뀌었다.

툭, 하고 그를 내동댕이쳤다.

"으아아악! 허리야!"

"영감. 일어났으면 진즉에 말했어야지."

무슨 다중인격자랑 같이 있는 기분이다. 천유희는 혼자 허리 마사지를 하며,

"아흐윽. 인간. 근데 여긴 어딘가?"

"둘이 의식 공유하는 거 아니었어?"

"숙면을 취했느니라."

누군 꼭두새벽부터 헬기 타고 타국에 침입하는데 이 양반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퍼질러 자기나 하고.

"아아. 팔자도 좋으셔. 나랑 상경이는 죽어라 고생하는데 말이야."

난 빈정거리며 그간 겪은 일에 대해 간략하게 알려줬다. 천유희 역시 냉철이 갖고 있는 영약이 필요했기에 별다른 거부감은 없었다.

모기에 물리기 전까지는.

수풀이 무성한 곳.

- 에엥.

철썩.

-에에엥.

철썩. 철썩.

"으아아아! 더는 못 참아! 당장 돌아가자꾸나!"

"닥쳐!"

천유희가 공력을 발산하려 했지만 내가 뜯어말렸다. 밀림은 가도 가도 끝이 없고 습지투성이다. 서슬 퍼런 치아를 빛내는 악어도 종종 나왔다. 창세삼정, 반혼검 그리고 천화난추의 경지라지만 모기에는 장사가 없었다.

나와 천유희 몸은 울퉁불퉁 모기에 물린 자국으로 가득했다. 천유희는 온몸을 신경질적으로 벅벅 긁으며,

"인간. 우리 이러다가 과다출혈로 죽을 것 같다. 인적 많은 곳으로 가자."

"안 돼. 칭얼거리지 마. 근데 어디가 북쪽이지?"

미얀마 남부 해안에 떨어졌기 때문에 어떻게든 북쪽을 향해 움직여야 했다.

"모르느니라!"

큰일이다.

대책 없는 인간 둘이 해외에서 미아가 되었다. 이쯤 되니 우리가 냉철이를 구하는 게 아니라 냉철이가 우릴 구해줘야 할 판이다.

여행을 떠나면 에반이 준 달러로 맛있는 것도 사 먹으며 관광도 겸사겸사 즐기려 했는데 인적을 피하다 보니 어느새 밀림에 빠져버렸다.

"어이. 영감. 상경이 불러봐."

"시끄럽다! 그놈의 뚱보는 왜 자꾸 찾는 것인가!"

"영감은 동서남북도 모르고 외국말 할 줄 모르잖아."

"이익!"

천유희는 얼굴을 붉혔지만 달리 대꾸는 할 수 없었다.

- 에에엥.

탁.

"아야. 또 물렸어."

제 손등을 쳤다.

온종일 굶었다.

해는 어느새 어둑어둑해졌으며,

꼬르륵.

"인간. 배가 너무 고프다."

"나도 고파."

우린 둘 다 아무것도 먹질 못해 기력이 바닥을 긴 상태였다. 천유희가 내게 명령했다.

"인간. 나가서 어디 들짐승이라도 잡아 오거라."

"내가 영감 부하야? 왜 이래라 저래라야?"

내가 눈을 부라리자,

"어허! 말라비틀어진 유교 사상이구나! 손윗사람이자 천마신교의 교주가 친히 명을 내리는데…. 이, 인간! 웬 딴짓 거리냐!"

무시하고 앞을 보고 걸었다.

말할수록 얻는 건 없고 배만 고파진다. 평평하고 모기가 비교적 적은 지면이 보였다.

이내 근처에 널린 부채의 얼개를 한 열대 나뭇가지를 꺾어 바람을 막았다. 천유희는 신기한지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영감. 와서 좀 도와."

"크으윽. 이 몸이 어쩌다가…."

그리고 반혼검을 꺼내 날카로운 검면으로 땅을 팠다.

우우웅.

반혼검이 위대한 검을 이런 식으로 쓰면 안 된다고 반항했지만 어쩔 텐가? 주인이 난데.

병기 없는 천유희는 손으로 팠다.

"인간. 땅을 왜 파는 거냐?"

"자야지. 모기한테 물려 죽으려고?"

"으으. 힘들다."

우린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한참이나 땅을 팠다. 이렇게 원시적으로 돌아갈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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