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밀리언 마켓 D-day (1)
모두가 장치오를 부르짖었다.
마치 나라를 지킨 영웅을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늘진 곳에서의 착취와 인권능멸에 따지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독재란 그런 것이다. 당해보지 않은 이는 음해일 뿐이라며, 공작일 뿐이라며, 오히려 목청에 핏대를 세워 멸시할 뿐이다.
이어 루크 폴로는 장치오가 이룩한 업적들을 나열하더니 마무리를 장식했다.
"…골든 트라이 앵글의 쿤사 장치오께서 밀리언 마켓을 개최하셨습니다!"
의자에 앉은 장치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들었다.
"와아아아아!"
장치오의 제스처에 미얀마, 라오스, 태국을 비롯해 세계 각지의 수만의 관광객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장치오는 더는 말없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연단을 내려왔다. 무뚝뚝 보다는 가까스로 분노를 참는 것처럼 보였다. 자리에만 모인 자들만 7만 명이 넘었다. 훼이싸이 광장엔 노점을 이룬 상인들이 전통음식인 방비엥 샌드위치, 카우삐악, 씬 싸완 등 먹거리 노점상은 북새통이었다. 진행자가 가늘고 간사한 목소리로 축제에 흥을 북돋을 가수를 소개했다.
"너튜브에서 이 노래가 화재죠? 요즘 이 노래 모르는 사람도 계실까요? 트리안나의 고우즈 다운!"
"꺄아아아!"
다시금 환호성이 대지를 울릴 듯 퍼졌다. 미국의 싱어 송 라이터인 트리안나가 폭죽을 터뜨리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 쿵짝. 쿵쿵짝짝~♬
디지털 멜로디가 훼이싸이를 축제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반대로 밀리언 마켓의 검문소와 이에 참가하는 자들은 그야말로 땡볕에 죽을 맛이었다.
- 툭툭.
아프간인을 건드렸다. 라슈라프가 뒤를 보자, 뒤에 줄을 서던 베트남인이 불만에 가득 찬 시선으로 태국어로 불만을 표출했다. 라오스 훼이싸이지만 태국어도 어느 정도 통용이 됐다.
"어제 오후와는 일행이 바뀐 듯합니다만?"
"네? 네…. 아. 그렇네요."
라슈라프가 허둥지둥 대답했다.
칠라와 따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젊은 남녀가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여자는 히잡을 뒤집어써서 눈밖에 보이지 않았으며 남자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라슈라프는 산으로 갔던 칠라와 따이는 시체가 되어 산속에 뒹굴고 있고, 지금은 비자발적으로 수상한 한국인에게 협력을 하고 있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 베트남인 역시 일행이었다. 위험천만하고 먼 길을 오갈 만큼 두툼한 덩치를 자랑했다.
"그렇네요? 그게 다요? 지금 우릴 무시하는 거요?"
라슈라프는 어눌한 라오어로 대꾸했다.
"음음… 아아, 치, 칠라와 따이는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일본에서 온 신혼여행 부부에게 매석하였습니다."
그러자 얼굴을 가린 새신부가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넸다.
"도우조 요로시쿠."
선글라스 남성이,
"오네가이시마스."
당연한 말이지만 통할 리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줄은 콘서트 줄이 아니라 밀리언 마켓 대기열이었다.
"웃기지 마!"
"케켁."
라슈라프의 목덜미가 잡혔다.
"매석이 어디 있어? 먼저 온 순서대로 기다려야지. 누군 바보라서 여기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아? 새치기를 했으면 응당 대가를 치르라고!"
기세등등하게 나오자 라슈라프는 오줌이라도 지리고 싶을 정도로 무서워졌다. 그때였다.
"무슨 일입니까?"
하급 군인들이 총대를 어깨에 메고,
"그게 이 사람들이 새치기를…."
"증거 있습니까?"
"그, 그건!"
"거참, 조용히 기다립시다. 날도 더워죽겠는데 웬 시비입니까?"
참가자들을 관리 및 감독하던 하급 군인이 힐난 섞인 어투로 지적을 하더니 휑하고 사라졌다. 오히려 베트남 3형제를 소인배로 만들어 버렸다.
그 시각, 지하 감옥.
예정대로라면 밀리언 마켓 오프닝 행사에 장치오 본인이 직접 친부인 장치푸의 업적을 기리는 연설 후 냉철 처형식을 진행하려 했으나, 손 한 번 흔들어주고 마쳤다. 그의 컨디션이 급속하게 나빠졌기 때문이다.
- 콰직!
찍소리 한 번 내지 못했다. 지하 감옥을 지키던 군인들의 머리통이 바스러졌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다. 피와 편육이 낭자하게 흩뿌려졌다. 장치오의 얼굴은 불지옥을 먹은 것처럼 시뻘게졌다. 그의 분노는 사그라들 줄 몰랐다. 그럴 것이 미끼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냉철 그놈을 뺏겼다고?"
밀리언 마켓 당일 새벽에 벌어졌던 일이다. 그러니까 바로 몇 시간 전이란 말이다. 공개 처형하기로 했던 냉철을 누군가 탈취해 사라졌다. 인근 감시 카메라를 판독해 보니 대나무 지팡이를 든 웬 구부정한 영감이 병사를 가볍게 제압하고선 유유자적 나간 거였다.
장치오는 그 작자가 누군지 아는 듯했다.
"내일 뒈져 마땅한 노친네한테!"
"죄송합니다! 쿤사!"
장치오의 살기가 찌릿찌릿하게 느껴졌다. 부관 탈루스는 이럴 때면 당장 일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싶었다. 쿤사 밑에서는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랄 듯했다. 이성을 잃어버릴수록 장치오의 육체 상태는 요상하게 변해갔기 때문이다.
"당장 찾아! 당장 잡아 오라고!"
냉철. 보패를 찾는 신비한 재주가 있는 놈이다. 하물며 고성웅의 약점이기도 하다. 만약을 위해서라도 그놈이 꼭 필요했다. 그 한 놈을 간수하기 위해 사병도 모자라 수십의 B급 이상의 각성자까지 배치해뒀다. 지나치다고 생각했지만 가치가 충분했다. 근데 힘도 제대로 못 쓰고 뺏겼다. 장치오는 이를 아득바득 갈았다.
"조필광…. 네놈이 정녕 날 방해하겠다는 거냐?"
아침 일찍 시작된 밀리언 마켓은 어느새 해가 중천까지 떴다. 땡볕의 마켓 참가자들은 죽상을 써댔으나 축제에 참가한 관광객과 시민들은 더없이 좋은 날씨라며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부스에 각종 이벤트가 진행됐으며, 유명 해외 연예인들의 자선 이벤트도 줄줄이 성황이었다. 친절한 미모의 여직원들이 하얀 장갑을 끼고선 밀리언 마켓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길 안내했다.
그 와중에 밀리언 마켓 검문소 군인은 오만 인상을 찌푸렸다. 2차와 3차 검문소는 그나마 숨 돌릴 틈이라도 있었지 1차 검문소의 군인들은 그야말로 죽상이었다.
그들의 임무는 자칭 '검은 침'이라고 갖고 온 물건 중 쭉정이 허접 쓰레기 물건을 되돌리는 거다.
"우산 손잡이 아닙니까?"
"개 몽둥이는 집에서 쓰세요."
"공사용 대못을 들고 오시면 곤란합니다."
대개가 이런 부류였다.
개 중 한 군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름은 아지르. 천막으로 그늘이 졌지만, 그의 표정은 썩어 문드러질 지경이었다. 병사 같은 나부랭이도 아니고 장교 3년 차다.
그는 대통령의 이름은 깜빡해도 영원한 황제인 쿤사의 말은 부처와 예수처럼 따랐다. 대통령은 이미 식물인간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오늘 임무 역시 완벽하게 수행할 것이다. 그가 맡은 임무는 '검은 침'으로 보이는 보패를 찾아내어 2차 검문소로 넘기는 거다. 그럼 2차 검문소에선 선별적으로 꼼꼼하게 체크한 뒤, 3차 검문소까지 넘기는 식이다.
아리송한 건 검은 침이 다들 정확히 어떻게 생긴 건지는 모른다는 거다. 상부에선 값비싸고 그럴듯한 물건은 죄다 솎아내란다. 찾아내는 이에겐 특진과 포상금을 미끼로 말이다. 대개가 허접한 가재도구와 부지깽이를 들고 온 참가자들이었기에 몇 시간이 지나니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짜증 나기 쉬운 무더운 날이다.
아니, 이런 건 서류 만지는 공무원이나 하급 경찰과 군인들을 시켜도 되는 일을 장교인 아지르 본인이 하고 있으니 염증이 돋는 것은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하물며 그 스트레스에 정점을 찍어주는 한 아프간인이 신경을 돋구었다.
"안 됩니다."
"아~ 글쎄, 열어 보시라니까요. 밀리언 마켓에 참가하셨으면, 물건을 보여주셔야 할 것 아닙니까?"
겁쟁이 아프간인은 얼마나 긴장했는지 종아리가 눈에 뜨일 정도로 파르르 떨고 있었다.
아프간인 옆의 동양인 남녀는 묵언수행 중이었다. 특이한 인종 조합이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쿠, 쿤사에게만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함부로 열어서는 안 됩니다."
"쿤사는 당신이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목적이라면 당장 돌아가슈."
"그, 그래도 이 관 안에는 쿤사께서 원하시는 물건이 있을 겁니다. 믿어 주십시오."
"거참. 말귀 못 알아먹는구먼."
아지르는 지금 백 명하고도 서른 번째 정도 돼도 안 한 소리를 늘어놓는 손님을 접대 중이다. 라오스말도 어눌하게 하기로서니 그냥 한 놈만 걸리라는 마인드다. 태국말도 섞여 있었지만, 어차피 라오어 70%가 태국어니 알아듣기 어려운 건 아니었다.
"괜한 쓰레기 들고 왔나 본데, 쫓겨나기 전에 당장 꺼지쇼. 재수가 없으려니. 퉷."
아지르가 노골적으로 침을 뱉고 주변 부하 군인에게 곁눈질을 줬다. 말마따나 어디서 재수 없게 사람 관짝을 끌고 와서 사기를 치는 건지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심지어 관 안의 내용물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슬럼가 시체 팔이에게 푼 돈 주고 얻은 관일 거라 여겼다. 아지르 부하들이 아프간인의 가냘픈 팔을 한쪽씩 거머쥐었다.
"제 말을 왜 안 믿어 주십니까?"
"빨리 끌어내!"
"네, 넵!"
발바닥을 질질 끌리며 쫓겨나는 아프간인을 보다 못한 히잡의 여성이 일갈을 토했다.
"블루 게이트와 연관이 있습니다!"
히잡의 여성은 말을 하고서도 아차 싶었다.
"뭐라고 했습니까? 그나저나 우리 나라말을 본토인같이 하시네요."
"오, 호. 호.호호호. 스미마셍."
괴상하게 웃는 히잡녀를 본 아프간인이 변명했다.
"아, 아. 그게 오늘따라 하늘이 파랗고 아름답길래 게이트가 열리는 날인 줄…. 이, 이게 아니지. 제가 미쳤나 봅니다."
군인은 심상치 않은 눈길로 작성한 신청서를 보더니,
"아프카니스탄 출신의 라슈라프 맞습니까?"
"네? 아니요! 네…. 네. 그렇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장교 아지르는 기분이 복잡해졌다. 장치오가 검문소 장교에게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던졌기 때문이다.
'성공하면 특진과 포상금!'
당근은 특진과 포상.
그렇다면 채찍은?
'검은 침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검문소 임무를 게을리한 사병 및 장교들의 죄가 가장 클 터! 강등 및 엄벌을 비롯한 상상을 초월한 고문을 받게 될 것이다.'
듣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거슬리는 쿤사의 말 중 하나는,
'반드시 명심하거라. 중동의 손님을 가까이하라.'
중동의 손님!
저 말라비틀어지고 수분기가 증발한 중동 놈을 쳐냈는데, 관짝에 든 게 검은 침이기라도 하면 아지르의 이번 생은 끝장이다.
하물며 의미심장한 '블루 게이트'라는 말도 서슴지 않고 뱉었다. 장교 아지르가 하늘을 보니 블루 게이트에선 당장이라도 괴물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사기꾼이라면 천재적인 배짱의 보유자다. 시선을 멀리 던지니 밀리언 마켓 지원자들의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인산인해가 눈앞에 펼쳐졌다. 서둘러 결정 내려야 한다. 해가 될 건 없다. 옆의 병사가 재촉했다.
"장교님?"
"통과."
포스트잇에 도장을 찍고선 관짝에 붙여주었다. 그리고 2차 검문소까지 '통과' 포스트잇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했다. 라슈라프는 뛸 듯 기뻤다.
"감사합니다!"
"하핫!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아지르는 찜찜한 기운을 감출 수 없었다. 모토로라 무전기를 들고 송신 버튼을 눌렀다.
치직.
"2차 검문소. 여긴 1차 검문소 리더다. 응답하라."
- 칙칙.
[여긴 2차 검문소. 말하라.]
"관짝을 들고 온 세 남녀의 동태가 수상하다. 블루 게이트를 언급했다. 혹시 몰라 2차 검문소로 통과시켰다. 주의 요망."
- 칙칙.
[카피 댓.]
그리고 무전에서 생소한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뭐라 했느냐?]
'응? 처음 듣는 목소리인데?'
아지르는 통신 오류인 줄 알았다. 2차 검문소에 일하는 전우들 목소리는 대개 알았다. 물론 실제 목소리와 무전 목소리의 갭도 있지만, 무전을 하루 이틀 하는 사이도 아니다. 사관학교까지 합치면 5년이 넘는 세월에 난생처음 듣는 시건방진 목소리다. 하물며 통신 보안의 규칙도 지키지 않은 막무가내 통신이다. 통신 주파수에 전파 오류나 합성이 들어있을지도 몰랐다.
아지르가 송신 버튼을 누르고,
"여긴 밀리언 마켓 1차 검문소. 귀하의 소속과 성명을 밝혀라."
- 치직.
무전기 저편에서 노한 음성의 사내가 협박을 가해왔다.
[쿤사 장치오다. 한 번만 더 내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삼족이 멸할 줄 알 거라.]
"헉!"
굵직하고 심해 저 밑에서 끌어온 목소리는 분명 장치오다. 그런데 장치오가 왜 일개 장교와 사병의 무전을 받은 걸까? 누군가의 농간인가? 아지르는 생각이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