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02. 대위 이진우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02. 대위 이진우
1
김승철 소장이 고개를 숙였다.
“면목 없게 되었네. 내 손을 떠난 일이긴 하지만, 사단장으로 참 부끄럽네.”
그런 김승철 소장의 면피성 발언에 진우는 속으로 혀를 찼다.
‘하아, 무슨 사단장이 이래.’
아까 들어올 때 총알이 장전되지 않은 총을 겨눌 때부터 알아 봤지만 블랙게이트에 대해서는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발뺌하는 모습을 보니까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정말 고질병이다. 문제가 생기면 일단 책임회피부터 하다니······.’
그러나 김승철 소장에게도 그럴만 한 사정이 있었다.
애당초 남의 자리에 앉아 있다 보니 블랙 게이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수가 없었다.
‘후우······. 그래. 내가 경멸스럽겠지. 하지만 이것이 현실인 것을 어쩌겠어?’
그때 김승철 소장의 머릿속으로 다른 것이 번뜩 떠올랐다.
‘아니야. 아니야. 어쩌면 나에게도 기회가 될지도 몰라.’
현재 진우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 누구도 아닌 제일먼저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 이 상황을 잘 활용해야 해. 이 대위가 나에게 유리하게 진술을 해 준다면······ 그러면 바꿀 수 있을지도 몰라.’
김승철 소장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래도 나름 군부에서는 정치력이 있다고 알려진 사람이었다. 중장 진급에서 물을 먹었을 때 모두가 옷을 벗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강원도에 와 사단장을 하며 영욕의 세월을 버티고 있는 것만 봐도 보통 노회한 게 아니었다.
김승철 소장이 표정이 굳은 진우를 보며 말했다.
“이 대위. 이제와 이런 말하는 것이 염치없지만 나에게 기회를 주게.”
“기회요? 무슨 기회를 말입니까?”
“내가 생각해도 블랙 게이트 건은 뭔가 꼬여도 단단히 꼬인 것 같네. 그레이 게이트가 되면서 군부에서는 덮고 그냥 넘어가려고 하는 것 같단 말이지. 그런데 이 대위가 이렇듯 살아 돌아 왔으니 내가 책임지고 자네의 실추된 명예는 회복시키겠네. 그러니 날 한 번만 믿어주게.”
진우가 김승철 소장의 말을 듣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할 일은 많지 않았다. 만약 이대로 자신이 블랙게이트 생존자라며 나서면 바로 헌병대나 기무사에 붙잡혀 한동안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11보병사단의 사단장이 저런 식으로 말을 하니 진우에게도 새로운 옵션이 하나 생겼다.
하지만 진우는 바로 답을 주지 않았다.
“이제 와서 제가 사단장님을 믿어야 되는 겁니까.”
“그럼 날 믿어야지. 지금 상황에서 누굴 믿을 수 있겠는가. 설마 작전참모 쪽으로 가려는 것은 아니겠지?”
김승철 소장이 슬쩍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이준식 대령에게 말입니까?”
“그래. 내가 이런 말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자네들을 블랙 게이트로 보내자고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이 바로 이준식 대령이야.”
“······.”
진우는 그것에 대해서 이렇다 할 답은 하지 않았다. 다만 추가 설명을 요구하듯 김승철 소장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김승철 소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현 군에서는 세 개의 파벌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진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얘기는 들었습니다.”
세 개의 파벌이라면 강철조국회, 평화수호회, 부국강병회였다.
약자로 강철회, 평화회, 부국회로 불리는데 진우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진우는 태생이 기업가의 아들이다. 어쩌다보니 플레이어로 각성을 했고 또 어쩌다보니 군대에서 추가 버프를 받게 되어 군대에 입대한 것 뿐이었다.
물론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진우가 보배그룹을 대신해서 군대에 입대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 진우가 가문을 위해서 희생하거나 할 성격은 또 아니었다.
어쨌거나 진우는 군 복무가 끝이 나면 보배그룹으로 돌아가야 했다.
블랙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제대하고 나면 장남으로서 보배그룹의 경영에 참여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군 내부에 세 개의 파벌이 나뉘고 하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다.
그러나 진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군내 정치 한 가운데 서 있었다.
“자네도 기본적인 것은 알고 있으니까, 쉽게 설명하겠네. 블랙 게이트를 진두지휘한 곳은 이준식 대령이 있는 부국회네. 그리고 나는 평화회쪽이네.”
“평화수호회 말씀입니까?”
“그래. 자네도 대충은 들었겠지만 원래 이 사단으로 오려고 했던 사단장은 따로 있었네. 그런데 어쩌다보니 내가 급하게 온 것이라 내가 이 부대의 입지가 약할 수밖에 없네. 한 마디로 아무리 내가 사단장이라고 해도 원래 이 부대는 부국회쪽 라인이고 내가 사단장이더라도 부국회쪽 입장을 내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거지.”
“그래서 사단장님 말씀은 블랙게이트 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신다는 말씀입니까?”
“후우······, 솔직히 미안한 말이지만 아는 것이 많지 않아. 물론 나도 블랙 게이트가 터졌을 때 내가 나서서 진두지휘를 하고 싶었어. 그런데 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이 사단은 부국회 라인이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어.”
김승철 소장은 솔직히 자신이 처한 현실을 털어났다. 괜히 성난 짐승처럼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진우에게 거짓말을 했다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진우도 아무것도 몰랐다는 김승철 소장의 말을 100 퍼센트 믿을 수 없었다.
“그럼 하나만 여쭤보겠습니다.”
“물어보게.”
“왜 천 명이나 되는 병력을 보낸 것입니까?”
“천 명? 그건 나도 모르네. 솔직히 나는 블랙게이트 탐사대에 그렇게 많은 병력이 들어가는 것도 처음 알았고 무엇보다 병력 충원은 저쪽에서 강하게 요구를 한 것이네.”
“처음부터 천 명이 아니었습니까?”
“아니, 내가 알기론 처음부터 천 명이 아니었네. 백 명으로 된 탐사대를 준비하던 중 갑자기 천 명으로 늘었네.”
“그 이유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것까지는 잘 모르지만······, 왜? 그게 중요한 일인가?”
김승철 소장의 물음에 잠시 말을 아끼던 진우가 입을 열었다.
“그 천 명이 전부 죽었습니다.”
“뭐? 그렇다면 자네의 말은······.”
“네. 저 혼자 살아남았습니다.”
“허······.”
김승철 소장이 허탈한 얼굴로 자리에 털썩 앉았다. 손에 들고 있던 총을 책상위에 올렸다.
“이런 일이······.”
물론 그레이 게이트로 바뀌었기 때문에 모두가 갇혔고, 결국은 다 죽을 것이라 예상은 했다.
그러나 갇혀있다는 것과 다 죽었다는 것은 얘기가 전혀 달랐다.
막말로 자신이 11보병사단장으로 있는 동안 사망 사실이 확정되지 않으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임기만 채우고 다른 곳으로 옮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천 명이 죽었다고 발표가 나버리면 그때부터 모든 것을 다 김승철 소장이 책임질 수밖에 없었다.
‘이, 이건 아닌데······.’
김승철 소장이 속으로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진우가 입을 열었다.
“제가 블랙 게이트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천 명의 희생덕분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던전 안에서 있던 얘기를 하려면 끝도 없으니까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블랙게이트에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천 명의 희생이라는 말씀입니다.”
“뭐라고! 천 명의 희생? 가, 가만······. 그렇다면 그걸 저 쪽에서 알고 있었다는 건가?”
김승철 소장이 깜짝 놀라며 말했고 그 모습을 진우는 빤히 바라봤다.
진우에게 사람의 속내를 꿰뚫어보는 능력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김승철 소장의 반응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김승철 소장은 정말 몰랐다는 건데······. 그렇다면 부국회쪽은 알고 있었단 건가?’
진우가 속으로 의심을 했다.
부대로 발걸음을 돌릴 때 천 명의 병력을 블랙게이트에 보내고 가장 먼저 자신에게 지휘권을 부여했던 이준식 대령에게 찾아 가보려고 했다.
이준식 대령이 이 일에 당사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김승철 소장의 말을 들어보니 이준식 대령이 뭔가 감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단장을 맨 처음 찾아오길 잘한 것 같은데. 이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지?’
진우는 여기까지 왔지만 사단장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이 일에 대해서 몰랐다는 것도 그렇고 모든 일을 이준식 대령이 했다고 떠넘기는 것도 조금 웃겼다.
물론 김승철 소장은 진우가 갑작스레 나타나서 그 죄책감에 솔직히 말하는 것 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다가 나중에 말을 바꿔버리면 정말 답이 없었다.
그런 진우의 속내를 읽은 걸까?
김승철 소장이 국회청문회 출석 요구서를 들며 말했다.
“자네 이것이 뭔 줄 아나?”
“그게 뭡니까?”
“이거 국회에서 온 것이네.”
“국회 말입니까?”
“그래. 블랙 게이트 건으로 내개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서라네.”
“그렇습니까?”
진우는 그게 뭔 상관이라는 듯 말했지만 김승철 소장은 푸념을 늘어놓았다.
“솔직히 말해서 난 군대에 미련이 많네.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다시 한 번 중장에 도전하기 위해서고. 그런데 이 일로 국회에 출석해 버리면 결국 내가 이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지게 돼. 내가 결정한 게 아니지만 내가 사단장이니까 내가 결정한 것처럼 되어버린다는 거네. 그러면 내 진급 역시 물 건너 가버릴 테고. 이런 내 상황이 어떤지 이해를 하겠나?”
“네,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얘기를 해 보는 것이 어떨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쪽 말입니까? 어떻게 말입니까?”
“분명 자네가 나타난 것을 안다면 부국회쪽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네. 게이트 헌병대를 총동원해서 자네를 붙잡을 것이네. 그리고 쓸데없는 얘기를 못하도록 압력을 가할 것이 뻔하네.”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진우도 호락호락 당해줄 생각이 없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준식 대령이 자신의 생환을 반겨줄 것 같지 않았다.
“사단장님 생각은 다르십니까?”
“물론 내 코가 석자이기도 하지만 블랙 게이트에서 살아 돌아온 자네를 어떻게 나 몰라라 하겠나. 한 명이라도 살아 돌아온 것만이라도 어디인가? 솔직히 나도 자네들을 블랙게이트 안으로 들여보내며 밤잠을 설쳤었네. 그레이 게이트로 변하고 나서는 내가 집에 들어가도 잠을 쉽게 들지 못했네. 정 못 믿겠으면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게 내가 어땠는지 말이야.”
진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김승철 소장이 이 일에 대해서 손을 떼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죄책감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이기적인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 대위. 나를 좀 도와 주게. 자네가 날 도와준다면 나도 적극적으로 자넬 돕겠네.”
“어떻게 말입니까?”
“게이트 헌병대가 자네를 어쩌지 못하도록 내가 손을 쓰겠네.”
“게이트 헌병대가 아니면 어디서······.”
“사단의 게이트 헌병대는 부국회소속이야. 하지만 자네가 날 도와준다면 육군 헌병대에서 조사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네.”
“육군 헌병대 말입니까?”
“그래. 육군 헌병대는 사단 게이트 헌병대와 달리 중립적이네. 물론 세 조직의 힘이 다 미치고 있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평화회 쪽 입김이 강한 편이네. 자네가 날 도와준다고 약속하면 평화회 쪽 인물이 조사할 수 있도록 미리 조치해 두지. 그 편이 자네도 낫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