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02. 대위 이진우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진우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식 대령이 헌병대를 동원할 경우 많은 것들이 은폐되고 왜곡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육군헌병대에서 나선다면 또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다.
“그것뿐입니까?”
“추가로 자네가 편안하게 조사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놓겠네.”
지금 당장 김승철 소장이 진우에게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밖에 없었다.
비록 11보병 사단에서는 큰 힘을 쓰기 어렵지만 육군본부로 사건을 끌어 올리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평화회에서 자신을 버린 카드로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이진우를 움직일 수 있다고 보고한다면 평화회에서도 적극적으로 보호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진우는 김승철 소장에게 받아야 할 것이 더 있었다.
“일단 사단장님 말씀을 잘 알겠습니다.”
순간 김승철 소장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럼 나랑 손을 잡겠다는 건가?”
“아직은 아닙니다.”
“아직은 아니라니?”
김승철 소장이 바로 표정을 굳혔다.
“네. 아직 넘어야 할 것이 더 있습니다. 보배그룹이라고 아십니까?”
“그럼, 알지. 자네 부친께서 운영하시는 회사 아닌가.”
“그럼 보배그룹이 부도 위기라는 것도 아시겠네요.”
“부도 위기? 어떻게?”
“얘기를 하자면 깁니다.”
김승철 소장이 바로 손을 들었다.
“아, 자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겠네. 이준식 대령 때문이로군.”
“네, 아마도 저도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승철 소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놓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것은 걱정 말게. 내가 날 밝는 대로 조사한 다음에 잘못 된 것이 있다면 바로, 바로 잡겠네.”
“그 말씀을 믿어도 되는 겁니까?”
“그럼! 물론이지. 나만 믿게.”
김승철 소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진우는 그 말로만으로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김승철 소장에게 한 걸음 다가가서 말했다.
“사단장님, 제가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뭔가?”
“제가 이번에 블랙 게이트를 나오면서 특별한 힘을 얻었습니다.”
“힘? 힘이라면······.”
“아까 보셨지 않습니까. 사단장님 절 찾을 수 있었습니까?”
“그, 그렇지······.”
“전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들키지 않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구두약속이라도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러지 않을 경우 제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릅니다.”
진우가 나직한 목소리로 협박을 했고 김승철 소장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만약에 자신이 급할 게 없었다면 하늘같은 사단장을 겁박하는 거냐며 큰소리라도 쳐 봤겠지만 자신의 코가 석자다보니 아무런 반박도 할 수가 없었다.
‘하긴 천 명을 집어 삼킨 블랙 게이트에서 살아 돌아왔으니 뭔가 보상을 받았겠지. 그 보상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라면 군부대가 발칵 뒤집어 질지도 몰라.’
김승철 소장은 잠시 갈등을 했다.
‘그런데 과연 내가 이 대위를 통제할 수 있을까? 통제하지 못하는 이 대위와 손을 잡아도 괜찮을까?’
그러다 국회에서 보낸 출석 요구서를 보고는 마음을 굳혔다.
“알았네. 내 약속은 꼭 지키겠네.”
그때서야 진우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전 사단장님만 믿겠습니다.”
그렇게 진우는 김승철 소장과 거래가 이루어졌다.
2
은밀히 부대를 빠져나간 진우는 위병소에 좀 떨어진 곳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너무 일찍 움직이면 애꿎은 병사들만 고생할 테니까 쉬엄쉬엄 움직여야지.’
동이 트고 진우가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그러다 6시 30분이 되자 걸음을 움직였다.
“그럼 이제 슬슬 가 보실까.”
어스름한 새벽안개가 내려앉은 위병소.
그 곳에는 강수환 병장과 김기호 일병이 근무를 서고 있었다.
김기호 일병이 길게 하품을 하다가 위병소를 향해 걸어오는 진우를 발견하고 바로 말했다.
“어? 저기 뭡니까?”
“뭐가?”
강수환 병장은 졸린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기 걸어오는 사람은 군인인데 말입니다.”
“군인? 휴가 복귀자인가?”
“에이, 강 병장님은 지금 이 시간에 휴가 복귀자가 있겠습니까. 어쨌든 최대한 늦게 복귀하려고 할 텐데 말입니다.”
“하긴······.”
강수환 병장이 바로 수긍을 했다.
“그런데 이 시간에 누구지?”
“간부 아니겠습니까? 이 시간에 외부에서 들어올 사람은 말입니다.”
“간부?”
강수환 병장이 고개를 갸웃하고는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리곤 김기호 일병에게 나직이 말했다.
“기호야.”
“일병 김기호.”
“모니터 잘 확인해봐. 간부면 저기 입구 통과할 때 이름과 얼굴 뜨니까.”
“안 그래도 보고 있었습니다.”
위병소 경계근무병이 있긴 하지만 군인 인식표에 내장된 마이크로칩 덕분에 위병소 10미터 전 센스를 통과하면 바로 소속이 어디며 계급이름과 얼굴까지 뜨게 되어 있다.
삑!
그 소리와 함께 모니터 화면에 신분이 떴다.
“어?”
“왜?”
밖에 있던 강수환 병장이 물었다.
“대위님이신데 말입니다.”
“그래?”
“네.”
“각성대대 중대장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는데 인마!”
“뭔가 좀 이상합니다.”
“뭐가?”
“분명 저희 사단 소속은 맞는데 나간 기록이 일 년 전입니다.”
“뭐라고?”
강수환 병장이 바로 들어와 확인했다.
출입기록에는 1년 전 사단을 빠져 나간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오늘 복귀 등록이 된 것이다.
“장기파견자 아닙니까?”
“장기파견자?”
“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1년이 지난 지금 복귀를 합니까.”
“그렇겠지?”
“네.”
강수환 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11사단에 소속된 장교였다. 하물며 계급이 대위에 각성대대 중대장으로 되어 있었다.
각성대대는 각성자들로 구성된 곳이었다. 그곳의 중대장이라면 당연하게도 플레이어였다.
그런데 그 사람이 지금 위병소를 지나지 않고,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강수환 병장과, 김기호 일병이 곧바로 경계 자세를 취했다.
“워워워. 진정해.”
진우가 곧바로 두 손을 들며 말했다. 강수환 병장이 긴장하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새벽부터 고생이 많다. 내가 누군지 확인했지?”
“네. 그렇습니다. 이진우 대위님.”
“그런데 뭐 다른 것은 없고?”
오히려 진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강수환 병장도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했다.
“너희들 제대로 확인했어?”
“네? 무슨 말씀이신지······.”
“내 신원 뜰 거 아니야.”
“맞습니다. 확인했는데 말입니다.”
“제대로 확인했으면 이런 반응이 나오면 안 되는데······?”
“······.”
강수환 병장이 무슨 소리인가 싶어 눈을 끔뻑거릴 때 김기호 일병이 화들짝 놀랐다.
“헉! 이, 이게 뭐야.”
그제야 나타난 반응에 진우가 피식 웃었다.
“이제야 제대로 본 것 같네.”
강수환 병장이 김기호 일병에게 갔다.
“왜 그래, 인마.”
“강 병장님 여기 보십시오. 저 사람, 아니 저 분 현재 사망자로 뜨고 있습니다.”
“뭐? 사, 사망자?”
“네.”
강수환 병장이 다시 확인했다. 좀 전에는 몰랐는데 사진에 붉은 색 두 줄이 대각선으로 그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사망이라고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헉!”
강수환 병장은 믿기지 않는 얼굴로 모니터의 사진과 미소를 보이고 있는 진우를 번갈아봤다.
“이제 확인했나보네.”
진우가 피식 웃었다.
강수환 병장과 김기호 일병은 어리둥절했다. 김기호 일병이 조용히 말했다.
“강 병장님. 저사람, 아니 저분 말입니다. 귀신입니까?”
“야이씨, 귀신이 어떻게 말을 해.”
“하, 하지만 지금은 새벽이지 않습니까.”
“해 떴다. 해! 저기 해 안 보이냐.”
“그, 그렇지만 사망자라고······.”
“무슨 착오가 있겠지. 일단 보고부터 해!”
“아, 네에.”
강수환 병장은 그래도 병장이라고 금세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리고 바로 진우를 보며 말했다.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아무래도 위에 보고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야지. 여기서 기다릴게.”
진우가 느긋하게 하라며 웃었다. 그 사이 강수환 병장은 곧바로 수화기를 들었다.
“통신보안, 여기 위병소 강수환 병장입니다.”
-어, 그래. 왜?
“여기 위병소 앞에 이진우 대위님께서 와 계십니다.”
-이진우 대위? 뭔 소리야. 왔으면 그냥 들어가시라고 하면 되는 거지. 그걸 왜 보고를 해.
“그게 아니라, 확인해보니 사망자로 뜨고, 게다가 아무래도······, 블랙 게이트에 들어갔던 분 같습니다.”
강수환 병장은 모니터에 뜬 진우의 프로필을 보고 얘기를 했다.
-뭐? 지금 장난해!
“진짜입니다. 지금 당장 내려와 보시지 말입니다.”
-아, 진짜······. 이 새끼가 장난 하는 것도 아니고. 너 만약에 장난이면 연병장 10바퀴다.
“네.”
-기다려!
잠시 후 헌병대 당직사관인 이대호 중위가 나왔다.
이대호 중위는 곧바로 강수환 병장에게 갔다. 그리고 저만치 서 있는 진우를 보며 고갯짓을 했다.
“쟤야?”
“네, 그렇습니다.”
이대호 중위가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진우를 보고 위 아래로 훑더니 말했다.
“뭡니까?”
블랙 게이트가 그레이 게이트로 바뀐 지가 언제인데 복귀자라니.
분명 누군가 장난치는 게 틀림없다고 여겼다.
진우 역시 이대호 중위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계급 중위를 확인하고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슬쩍 명찰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이대호 중위. 자네는 상관을 확인했으면 먼저 경례부터 해야 하지 않나.”
“상관?”
이대호 중위가 보기에 낡은 군복을 입고 있지만 특정된 계급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인상을 쓰며 강하게 나갔다.
“당신 뭐냐고!”
“어이가 없네. 지금 확인 안 했나? 나 이진우 대위라고 봤을 것 아니야.”
“무슨 얘기를 듣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민간인이 군인신분을 사칭하면 큰일 납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돌아가십시오.”
이대호 중위는 귀찮다는 듯 말했다. 진우는 더욱 코웃음을 쳤다.
“야! 자, 다시 확인해봐. 내 신분증!”
진우가 곧바로 군번줄을 건넸다.
“가서 확인해봐!”
진우의 행동이 너무 당당했다. 그러자 움찔하는 이대호 중위였다.
‘뭐야. 진짜인가?’
군번줄을 확인한 이대호 중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군번줄을 모방한 제품들이 시중에 나돌고 있긴 하지만 이 촉감은 진짜 군번줄이 틀림 없었다.
이대호 중위는 다시 위병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인식기에 군번줄을 가져다댔다.
잠시 후 모니터에 이진우 대위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그런데 엑스자가 그려진 사진 속 얼굴이 저 앞에 서 있는 인물과 동일 인물이었다.
자연스럽게 이대호 중위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어?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소대장님 이거 위조는 아닌 것 같지 말입니다.”
“당연하지 인마. 위조는 인식기에 제대로 뜨질 않아!”
물론 해커를 동원해 위조를 한다면 진짜와 똑같은 군번줄을 만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굳이 그래야 할 이유는 없었다.
“최종 확인 된 것이 블랙 게이트에 들어 간 것이고······. 이렇게 우리 앞에 있다는 것은 귀환자라는 의미잖아.”
이대호 중위는 그제야 상황이 이해되었다.
“아, 제기랄······. 왜 죽었던 놈이 살아 돌아오고 난리야.”
이대호 중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어쩐지 오늘 당직을 서고 싶지 않더라니. 왠지 감당 못할 똥을 밟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