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02. 대위 이진우 (5)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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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알았어. 그럼 자네 말대로 우리 쪽에서 조율하는 것으로 하지.
“네, 총장님.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육군 헌병대를 직접 보내주십시오.”
-육군 헌병대를 말인가? 거기 헌병대 있지 않나.
“여긴 헌병대는 전부 저쪽 세력이지 않습니까.”
-흐음, 이것 참······. 강 대장이 한 바탕 하겠는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일이 심각해지기 전에 저희가 무조건 주도권을 가져와야 합니다.”
-알았어. 육군 헌병대를 보내줄 테니. 알아서 잘 해봐.
“넵! 알겠습니다. 충성!”
전화를 끊은 김승철 소장이 긴 한 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러자 그 옆에 앉아 있던 진우가 슬쩍 물었다.
“사단장님. 어떻게 얘기는 잘 끝나셨습니까?”
“어, 자네도 들었겠지만 육군본부에서 헌병대가 내려 올 거야.”
“그럼 저는 그 쪽에서 조사받으면 되는 겁니까.”
“그래. 내가 얘기를 잘 해놓을 테니까. 자네는 성실하게 조사를 받으면 되는 것이네.”
“알겠습니다.”
진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김승철 소장의 시선이 안일국 비서실장에게 향했다.
“안 소령.”
“네.”
“자네 나가서 보배그룹 관련해서 일 처리 어떻게 되었는지 하나도 빼 먹지 말고 전부 조사해서 가지고 와.”
“보배그룹 말입니까?”
“왜? 자네 뭐 알고 있는 거라도 있나?”
“아, 아닙니다.”
안일국 비서실장이 진우의 눈치를 슬쩍 보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솔직히 비서실장인데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김승철 소장에게 따로 보고를 하지 않았을 뿐 보배 그룹이 어떤 처지인지는 안일국 비서실장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다만 지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대위인 진우가 김승철 소장 앞에서 당당하게 굴고 오히려 사단장이 진우의 눈치를 살피는 게 뭔가 있는 것 같았다.
안일국 비서실장이 잠시 뜸을 들이자 김승철 소장이 다시 지시를 내렸다.
“자네 말이야. 하나도 빼 먹지 말고 다 조사해와. 나중에 빠진 것 있음 알아서 해!”
“네, 알겠습니다.”
사단장실을 나서는 안일국 비서실장을 빤히 바라보던 진우가 슬쩍 말했다.
“사단장님. 안 소령님은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데요.”
“자네가 이해해 주게. 아무래도 사단장인 내가 힘이 없어서 비서실장도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진우가 물었다. 김승철 소장이 바로 답했다.
“뭘 어떻게 해. 자네는 육군 헌병대에서 조사를 받고, 보배그룹은 안 소령이 알아오는 대로 잘 처리해야지.”
“설마 그게 끝은 아니시죠?”
“그럼?”
“먼저 언론부터 손 대셔야죠.”
“언론?”
“육본에서 헌병대가 내려오면 분명 이준식 대령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사단장님께서 말씀 하셨지 않습니까. 이곳 강원도는 부국회쪽 사람들이 꽉 잡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지.”
“그러면 당연히 이곳 언론 역시 부국회쪽 사람 아니겠습니까. 사단장님이 힘을 쓰시면 저쪽에서 먼저 언론을 끌어들일지 모릅니다. 그럼 우리는 여론전에서 지고 들어가는 것 아닙니까.”
“으음, 확실히 자네 말이 일리가 있어. 그럼 그것에 대해서 자네도 생각한 것이 있을 것 같은데.”
“네. 일단 이렇게 가시죠.”
“어떻게?”
“사단장님께서 계속해서 구조팀을 파견해서 저를 구하려고 노력을 했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뭐? 내가?”
김승철 소장은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블랙 게이트 조사 때도 손을 뗐는데 구조팀이라니. 만에 하나 거짓인 게 드러날 경우 역풍이 불지 몰랐다.
“그러다가 일이 커지는 거 아닌가?”
“뭐 어떻습니까. 제대로 관리도 되지 않던 그레이 게이트입니다.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리고 말이 노력했다는 거지 사단장님께서 따로 병력을 운용했다고 거짓말을 하라는 건 아닙니다.”
“그럼?”
“포장만 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순간 김승철 소장이 책상을 탁 쳤다.
“오호라, 그러니까 자네 말은 내가 꾸준히 그레이게이트에 관심을 가졌다는 정도로 여론을 선동하자는 말이지?”
“네, 바로 그겁니다. 그래야 저 쪽에서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테고요.”
정치의 기본은 명분이었다. 사단장으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나면 진우를 조사할 명분이 없어지지만 반대로 인간적인 도리를 다 했다고 주장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괜찮은 방법이군. 내가 윗분들하고 논의해서 저쪽에서 움직이기 전에 터뜨리도록 하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진우가 길게 기지개를 폈다. 블랙게이트를 나오고 난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돌아다녔더니 갑자기 피곤함이 몰려왔다.
“사단장님. 저는 오늘 좀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쉬게. 육본에서 헌병대가 오려면 아직 멀었으니까.”
“그럼 저는 여기서 좀 신세를 졌으면 좋겠는데요.”
“여기서?”
“그럼 제가 어딜 가길 바랍니까?”
“아니야, 아니야. 여기서 쉬게.”
김승철 소장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만약에 진우가 밖으로 나갔다가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완전히 망하는 것이었다.
“그럼 전 좀 쉬겠습니다.”
그 말을 하며 진우가 소파에 몸을 기댔다.
잠시 후 진우의 코고는 소리가 드르렁 드르렁 사단장실을 울렸다.
5
진우는 짙은 어둠을 더듬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때 이곳저곳에서 빠져나온 손과 팔들이 진우를 붙잡았다.
그럴 때마다 들려오는 먼저 간 동료들의 목소리.
-대장······. 살려줘······.
-날 버리지 마. 대장······
-나······ 여기 있어. 대장······.
현실이었다면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겠지만 꿈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진우는 악착같이 앞으로 나아갔다.
“이놈들아 조금만 참아. 던전을 나왔으니까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
힘겹게 걸음을 옮길 때마다 진우는 각오를 다지고 또 다졌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블랙 게이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자포자기했다. 그래서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일념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막상 살아서 블랙게이트를 벗어나고 보니 솔직히 살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치밀어 올랐다.
그렇다고 혼자만 살아남은 게 너무 미안해서 진우는 부하들과 지켰던 약속을 되뇌었다.
그런 진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점점 더 많은 팔들이 튀어 나왔다. 저 만치 출구가 보이는데도 진우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시 힘을 주며 용을 쓰려고 하는데 갑자기 경망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 대애장~~.
“헉! 젠장······.”
진우는 화들짝 놀라며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그 상태로 거칠게 호흡을 내뱉었다.
그렇게 숨을 고른 후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08시23분이라······.”
기억하기로 7시 쯤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악몽에 이상한 소리 때문에 고작 한 시간여 만에 잠이 깨고 말았다.
“하아······.”
진우는 소파에 걸터앉은 채로 두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게이트를 벗어났는데도 악몽이라니······.’
블랙 게이트에 들어가 첫 번째 희생자가 나오기 전까지 정확하게 보름이 걸렸다. 그 보름 동안은 한 명도 죽지 않고 잘 싸웠다.
물론 매일같이 반복되는 전투에 부상을 피하긴 어려웠지만 그 정도는 얼마든지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보름 후에 치러진 전투에서 무려 27명의 희생자들이 나오면서 진우의 평정심이 무너졌다.
갑작스럽게 희생자가 쏟아진 가장 큰 이유는 명령불복종.
진우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이들이 멋대로 굴었다가 크게 당한 것이다.
블랙 게이트에 들어오기 전에도 각성 병사들을 이끌고 던전에 들어가긴 했지만 천 명이나 되는 인원을 데리고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물며 지휘체계도 명확하지 않았다.
장교라고는 진우뿐이고 그를 보좌해 줘야 할 부사관도 10명이 전부였다.
심지어 부사관들은 진우의 통제를 완벽하게 따르지 않았다.
우습게도 플레이어인 각성 병사들 사이에서도 장교와 부사관, 병사들은 서로를 견제했다.
장교는 장교들끼리 부사관들은 부사관들끼리. 그리고 병사는 병사들끼리 어울렸다.
병사에서 시작해 부사관을 거쳐서 장교까지 올라간데다가 금수저인 진우는 어디와도 섞이지 못했다.
실제 부사관들은 임백호 상사만 따를 뿐 딱히 진우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전투 중 휴식 군기를 철저하게 지키라고 주문했지만 그 말을 가볍게 여긴 부대에서 한꺼번에 사상자가 나왔다.
진우는 큰 피해를 입은 부대의 부사관에게 화를 내기 보다는 수습을 시도했다. 죽은 병사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남은 병사들을 통솔하기 위해서는 부사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건 현명한 결정이 아니었다. 안이한 대처는 계속해서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애꿎은 희생자들만 늘어갔다.
죽은 병사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하게 될 때 쯤.
진우는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블랙 게이트 안에서는 악몽을 당연하게 여겼다.
부하들의 희생 속에서 겨우겨우 목숨을 연명해 왔으니까.
지휘관으로서 조금 더 냉철해지지 못했던 스스로를 그렇게나마 질책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게이트를 나와서도 똑같은 꿈을 꾸니까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놈의 꿈은 조금이라도 달라지지가 않아.”
진우가 무거운 얼굴로 중얼거리는데 다시 최대근 중사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대장! 대장 없어요?
눈앞에 뜬 메시지를 보며 살짝 인상을 썼다.
“뭐야, 이거.”
-있으면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진우가 메시지 창을 클릭했다. 그러자 김철수 중사가 말한 대화창이 열렸다.
-어? 뭐야. 대장 들어왔어요?
“최 중사 지금 뭐해?”
진우의 육성이 그대로 메시지 창을 통해 전달되었다.
-대장 나 지금 죽겠어요. 너무 심심해. 진짜 너무너무 심심해. 나 어떻게 함?
“하아······.”
진우가 한 숨을 푹 내쉬었다. 기껏 찾아서 메시지 창을 확인했는데 심심해 죽겠다니. 정말 눈앞에 있다면 1대 1 대련을 해 주고 싶었다.
그러자 뒤늦게 김철수 중사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아, 대장. 뭐 하러 받아줘요. 우리 일부러 무시하고 있었는데.
-야! 김철수. 너 이씨······. 이런 식으로 나올 거냐?
임백호 상사도 한 마디 했다.
-허허······. 우리 대장은 다 좋은데 마음이 너무 착해.
-아니, 행보관님까지 그러십니까?
-그러게 적당히 했어야지.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심심하다고 난리야?
-심심하니까 그런 거지. 바깥세상이 이렇게 심심할 줄 알았나?
-너 설마 그 얼굴로 시내를 활보하고 다니는 거 아니지?
-미쳤냐? 뉴스 날 일 있어?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 다행이네.
여느 때처럼 티격태격거리는 김철수 중사와 박대근 중사의 입씨름을 듣다 보니 진우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악몽을 꾼 탓에 약간 기분이 우울했는데 생사를 함께 한 이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그런데 세 사람 다 지금 어디 있어?”
-아, 저는 부대 근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임백호 상사가 가장 먼저 대답했다. 헤어질 때 했던 말처럼 블랙 게이트에 대한 조사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저는 예전에 쓰던 저희 집에 와 있습니다.
뒤이어 김철수 중위가 말했다.
“집? 설마 부모님을 만난 거야?”
-아뇨. 예전에 제가 사용하던 옥탑방이 아직 그대로 있더라고요. 부모님께서 딱히 정리를 하지 않아서 지금 거기에 있습니다. 불도 끄고 조용히 지내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