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02. 대위 이진우 (6)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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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최대근 중사가 발끈하듯 말했다.
-야이씨. 김철수! 그런 곳이 있다면 나한테도 말을 해 줬어야지.
-왜? 너도 오려고?
-블랙 게이트에서 1년 간 동고동락한 전우인데 당연한 거 아니냐? 제길. 난 오갈 때 없어서 지하철에서 노숙하게 생겼는데.
-그래? 아주 좋네. 잘 했어.
-뭐라고?
-잘 했다고. 넌 노숙이 참 잘 어울려.
-뭐라고? 그럼 내가 노숙자처럼 보인다는 거야?
-설마 너만 모르고 있었던 거야?
-너 이씨······. 나랑 한 판 뜰래?
-그래 제발 부탁이다. 나도 바라던 바거든? 시간 장소 정해라. 우리 둘 중에 하나는 죽어보자.
김철수 중사와 최대근 중사의 입씨름이 거칠어지자 임백호 상사가 나섰다.
-두 사람 다 그만해. 대장이 보고 있잖아.
“괜찮아요. 어디까지 하나 보죠.”
진우의 한 마디에 김철수 중사와 최대근 중사가 동시에 조용해졌다. 저럴 때 진우가 무서워진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최 중사는 어디 있어?”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지하철에 노숙할 판이라고요.
“최 중사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 중사는 노숙할 사람이 아니잖아. 안 그래?”
-그냥요. 바깥을 그냥 돌아다니고 있어요.
-설마 맨 얼굴로?
-최대근! 설마 진짜 뉴스 나오려고 환장한 거 아니지?
-어? 다들 얼굴 제대로 안 봤나 보네.
“뭐가?”
-얼굴 말이에요. 그냥 모자에 마스크 쓰고, 안경 하나 맞춰서 쓰고 다니면 그렇게 티가 안나요. 뭐 한 낮이라면 좀 그렇지만 밤이라면 전혀 문제없어요. 솔직히 사람들이 남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그러지는 않잖아요.
진우는 잠시 최대근 중사의 얼굴에 모자에 마스크, 안경을 조합해 봤다.
최대근 중사는 아무 문제없다고 말했지만 흑룡인의 얼굴로 다니는 것보다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범죄자 코스프레야 뭐야?
-뭐라는 거야? 그리고 범죄자라니! 나 법 없이도 살 사람이거든?
-헛 소리 그만하고 너 그런 식으로 돌아다니지 마라. 그러다 문제 생기기라도 하면 다 같이 골치가 아파지잖아.
-야! 김철수! 너나 잘해 너나! 너는 겨우 선택한 곳이 고작 너희 집이냐?
-그럼? 내 집 만큼 안전한 곳이 또 어디 있어?
-그래서 내 집에 못 들어가는 내 심정 따위는 신경도 안 쓰는 거야?
-뭔 소리야? 너 원래 관사 생활 했잖아? 네 집이 어디 있어?
-됐고, 대장도 집에서 편히 쉬고 싶은데 부대에서 저렇게 고생하고 있잖아! 넌 양심의 가책 같은 것도 안 느껴?
순간 진우가 흠칫했다. 막말로 집에 들어가서 집 밥까지 얻어먹고 나왔으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것보다 내가 부대에 와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괜히 머쓱해진 진우가 화제를 돌렸다. 그러자 김철수 중사가 냉큼 대답했다.
-대장! 제 상태창에는 대장이 어디 있는지 위치가 떠요.
“아, 그래? 그런데 왜 나에게는 세 사람이 안 뜨지?”
-대장. 그건 아무래도 대장과 저희가 종속관계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종속관계요?”
-예를 들면 대장이 우리의 주인, 아니지 마스터 같은 느낌이라서 아마도 대장의 위치가 우리에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렇구나. 그럼 한 가지 더. 상세한 주소도 뜨는 겁니까?”
-그것까지는 뜨지 않는데 마음만 먹으면 대장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임백호 상사의 차분한 설명에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똑같이 흑룡의 기운을 나눠 받은 처지라 비슷할 줄 알았는데 자신과 세 사람은 뭔가 시스템이 다른 모양이었다.
-참! 대장. 몸 상태는 좀 확인해 보셨어요?
“아, 몸 상태? 그렇지 않아도 스킬들이 생겼어.”
-스킬이요?
“그러니까······.”
진우는 은신 스킬을 설명하기 위해 오늘 있었던 일들을 쭉 얘기했다. 그러자 다양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와, 사단장님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고요? 그게 말이 됩니까?
김철수 중사는 혀를 찼지만 임백호 상사는 수긍한다는 반응이었다.
-아니. 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봐. 나도 사단장님 사정에 대해 들은 게 있는데 사단장이지만 딱히 힘을 쓰지 못한다고 하더라고.
최대근 중사는 의문을 드러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군대는 계급 사회잖아요. 사단장님은 우리 사단에서 대빵이고요. 그런데 대빵 말을 안 듣는 게 말이 되나요?
그 말에 김철수 중사가 보란 듯이 비아냥거렸다.
-야, 계급이 깡패라서 너는 하늘같은 대장에게 만날 까부는 구나?
-웃기네. 너도 나 못지 않게 까불었거든?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진우가 피식 웃었다.
사실 몇 번 호흡을 맞췄던 임백호 상사와 달리 최대근 중사와 김철수 중사는 처음부터 자신을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전투가 거듭되고 사상자들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어쩔 수 없이 힘을 합치게 됐고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임백호 상사가 슬쩍 물었다.
-그래서 지금 사단장실에 계시는 겁니까?
“네, 행보관님. 방금 소파에 누워서 한 숨 잤습니다.”
-헉! 진짜요? 완전 대박. 정말이지 대장의 대범함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런데 거기서 얼마나 잔거예요?
최대근 중사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진우가 가볍게 한 숨을 내쉬었다.
“후우, 모르겠다. 잠을 잔 건지 안 잔 건지······.”
-왜요?
“그냥······.”
임백호 상사가 대번에 눈치를 채고는 말했다.
-설마 또 악몽을 꾸신 겁니까?
순간 최대근 중사와 김철수 중사의 말이 없어졌다.
잠시나마 진우를 부러워했던 게 미안해진 것이다.
“난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그보다 세 사람은 뭔가를 찾았어?”
임백호 상사가 먼저 말했다.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쓸 수 있는 마법을 테스트 하고 있는데 이게 뭔가 좀 이상해서요.
“이상해요?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긴 겁니까?”
-아닙니다. 문제라기보다는······ 더 좋아진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여튼 제가 좀 더 테스트를 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행보관님. 김 중사는?”
-저는 확실히 등급이 올라가서 그런지 몰라도 몸놀림이 빨라진 것 같고 좋습니다. 다만 저도 행보관님과 마찬가지로 스킬 같은 건 좀 더 체크를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어. 최 중사는?”
-에이, 아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오 갈 곳이 없다니까요.
“안했다는 소리네.”
-에헤이. 대장! 안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한 몸 뉘일 곳도 없다고요.
“알았어. 애당초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만 해.”
-우씨, 대장은 나한테만 그래······. 그럼 대장은 했어요?
김철수 중사가 끼어들었다.
-아까 대장이 한 말 못 들었어? 새벽부터 사단장 설득하고 지금까지 고생했는데 그게 대장에게 할 소리야?
-나는 뭐······ 놀았나?
-대장. 저 녀석 말 무시하세요.
세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어? 누가 왔다. 나 먼저 끊는다.”
진우는 메시지 창을 닫고 바로 고개를 돌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안일국 비서실장이었다.
“이 대위. 잘 쉬고 있나.”
“네. 비서실장님.”
“다름이 아니고 이 대위 아직 집에 연락 못했지?”
“네? 아, 네.”
“그래도 이렇게 살아 돌아왔는데 연락을 해야지.”
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집에 연락해도 되는 상황입니까?”
“사실 조사부터 받는 게 원칙인데 특별히 사단장님께서 지시를 내리셨어. 대신에 부모님에게는 당분간 군에서 보도가 나갈 때까지 외부에 발설하지 말아달라고 당부 좀 해줘. 그렇다고 기사 나가고 나서 부모님과 통화를 하게 해 줄 수는 없지 않은가.”
“네, 알겠습니다.”
부대에 들어오기 전에 집에 다녀왔기에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사단장이 억지로 알리바이를 끼워 맞추려는 것 같아서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내 걸로 전화할래?”
안일국 비서실장이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며 물었다.
“아닙니다. 저도 있습니다.”
“있어? 그게 멀쩡하던가?”
“네. 다른 것은 몰라도 핸드폰은 잘 숨겨놓고 다녔습니다.”
진우가 플레이어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깨먹은 핸드폰만 해도 수십 개가 넘었다. 돈도 돈이지만 매번 개인 정보들을 옮기고 어플을 까는 게 일이라서 월급과 보상금을 모아서 던전에서도 끄떡 없다는 A급 보호 케이스를 샀다.
덕분에 진우의 핸드폰은 액정에 조금 금이 갔을 뿐 멀쩡한 상태였다.
“그래! 그럼 편하게 전화하고 조금만 더 여기서 고생해주게.”
안일국 비서실장아 사무실을 나가려는데 진우가 붙잡았다.
“비서실장님.”
“말하게.”
“지금 상황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아, 너무 걱정 말게. 지금 사단장님께서 잘 풀고 계시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보배그룹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 그것도 걱정 말게. 오늘 중으로 밀린 대금 지급 될 것이네.”
“비서실장님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는 나에게 하지 말고 나중에 사단장님께 하게.”
“사단장님께 말입니까?”
“그래. 내 보고를 받자마자 바로 담당 부서 찾아가서 다 뒤집어 엎으셨네.”
“그러셨구나. 알겠습니다.”
“더 물어볼 말은?”
“없습니다.”
“그럼 쉬고 있게나.”
“네.”
진우는 대답을 한 후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리고 안일국 비서실장이 나가고 중얼거렸다.
“사단장님께서 한 바탕 뒤집어엎었다고? 모처럼 신이 나셨나보네.”
진우가 웃고는 자신의 손에 들린 단말기를 봤다.
“이거 왠지 엄마한테 한 소리 들을 것 같은데.”
그 시각.
진우가 사단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박순영 여사는 부엌에서 아들을 먹일 음식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태경 회장은 거실로 나오다가 구수한 냄새에 이끌려 부엌으로 갔다.
“어이구 이게 무슨 냄새야?”
“이제 일어났어요?”
“이게 뭐야? 아침부터 내가 좋아하는 걸 다 해놓고 말이야. 오늘 무슨 날인가?”
이태경 회장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하자 박순영 여사가 찌릿하며 바라봤다.
“아, 왜에.”
“이거 당신 먹으라고 만든 줄 알아요?”
“그럼? 또 진우 먹이게?”
“또? 또오오? 방금 또라고 했어요? 일 년 만에 장남이 돌아왔는데 또?”
박순영의 눈매가 날카로워지자 이태경 회장이 바로 꼬리를 내렸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어제 배터지게 먹였잖아.”
“어제는 어제죠! 죽었다고 생각한 아들이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서 돌아왔는데 이깟 밥 한끼 해주는 게 아까워요?”
“그건 아니지만······.”
이태경 회장이 말끝을 흐렸다. 그룹 사정 상 생활비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요리를 하는 박순영을 보니 차마 그 말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때였다.
지잉, 지잉.
박순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응?”
국을 담던 박순영이 핸드폰 화면을 봤다.
큰 아들 진우의 전화였다.
박순영이 환해진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응, 아들. 이제 일어났어?”
-엄마, 뭐해?
“엄마 지금 밥 차리고 있지.”
-맛있겠다. 나 아침 안 먹었는데.
“그럼 내려와. 그런데 무슨 집에서 전화를 하고 다 그러니.”
-엄마. 나 집 아니에요.
“뭐?”
-나 집 아니라고. 지금 군부대야.
“뭐어?”
박순영 여사는 깜짝 놀라며 손에 쥐고 있던 국자를 떨어뜨렸다.
“이 녀석아! 군에 들어간다면 말을 하고 가야지. 갑자기 그러면 어떻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