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03. 다시 게이트로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국내최초! 그레이 게이트에서 탈출한 최초 생존자! 이진우 대위. 그러나 아쉽게도 추가 생존자는 발견되지 않아.
김승철 소장은 진우가 그레이 게이트에서 운 좋게 탈출한 것이라며 무책임한 지휘관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두둔했다. 그러면서 진우 덕분에 희생자들과 게이트 상황에 대해 알 수 있게 됐다며 진우의 노고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당연하게도 기자들이 수많은 질문들을 쏟아냈지만 군부대에서는 기밀사항이라 더 이상 알려 줄 수 없다는 답변만 내놓았다.
심지어 국회 의원들이 청문회를 해야 한다면 들고 일어났지만 국방부에서 그들을 막았다.
평화회와 부국회는 손을 잡고 강철회를 설득을 했다. 블랙 게이트가 그레이 게이트로 바뀌고 천 명의 각성 병사가 희생된 건 군의 책임이었다. 이걸 가지고 국회의원들이 왈가왈부하게 내버려 둔다면 추후 군의 게이트 관리에 태클이 들어 올 수도 있었다.
강철회도 나중을 위해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필요는 없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그렇게 군을 이끄는 3대 파벌이 힘을 합쳐 국방부장관을 움직였고 국방부장관이 대통령에게 직언을 했다.
“우리 군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나라를 지킨다는 일념으로 게이트 활동에 최선을 다 했습니다. 게이트 부산물로 성장한 기업들과 대형 길드가 나 몰라라 할 때도 군은 늘 앞장서서 궂은 일을 도맡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을 두고 군의 책임을 묻는다면 군의 사기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대통령도 국방부 장관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을 했다.
어떤 일이건 명암이 있는 법.
군에서 공을 세우기 위해 블랙 게이트 탐사를 밀어붙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군에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진우에 대한 청문회는 수포로 돌아갔다.
밖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동안 진우는 조용히 군 생활을 정리해 나갔다.
어차피 진우는 군대에서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다. 흑룡의 힘을 얻으면서 군대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군대 있는 동안 군대 전용 스킬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 그것만으로도 레벨이나 능력치를 많이도 올렸고.”
흑룡기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기존의 스킬들은 전부 새로운 스킬로 변해 버렸다.
게다가 모두의 바람대로 살아서 게이트를 빠져 나와 죽은 이들의 생사를 전했으니 자신의 마지막 임무도 다 한 셈이었다.
진우는 낮에는 성실히 조사에 임했고 밤에는 혼자 주어진 사무실에 앉아 관조를 통해 흑룡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흑룡기의 적응력을 높였다.
그렇게 조용히 군을 나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데 뜬금없이 김승철 사단장이 나타났다.
“어? 사단장님.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이 대위. 아무래도 자네가 상을 좀 받아야 할 것 같아.”
“상 말입니까? 갑자기 무슨?”
“자네 심정이 어떤지 알고는 있는데 군에서도 고민을 많이 했어. 솔직히 말해서 자네라도 살아 돌아오지 않았다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평생 몰랐을 것 아닌가? 그래서 천 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블랙 게이트에 들어가 활약한 공을 높이 사서 국방부장관님께서 포상을 하시기로 했네.”
진우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단장님. 이건 아닙니다. 저는 천 명의 병사를 허무하게 잃은 지휘관입니다. 벌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상이라니요.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 아네. 자네 심정은 나도 충분히 이해해. 그래서 나도 그렇게 얘기했어. 가뜩이나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는데 무슨 상이냐고. 그런데 자네가 상을 받지 않는다면 일각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자네가 모든 걸 뒤집어 쓰게 될 수도 있어. 혼자 천 명이나 되는 인원들 전부를 죽였다고 말이야.”
진우는 잠깐 동안 고민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지휘관으로서 좀 더 강했다면 제대로 부대원들을 통솔했다면 희생이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많은 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애당초 블랙 게이트의 클리어 조건은 천 명의 희생이었다. 병사들을 조금 더 살릴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다른 병사들을 살려내는 과정에서 진우가 희생됐을 수도 있었다. 최후의 생존자가 진우가 아니라 다른 이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최후의 생존자가 흑룡의 힘을 제대로 받아 들일 수 있었을까?
그것까지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어떻게 된 건지 전부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단순히 최후의 생존자라는 이유만으로 흑룡기를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래. 이렇게 된 거 군대에서 원하는 대로 해보자.’
진우가 마음을 다잡고는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받도록 하겠습니다.”
“잘 생각 했다. 참! 자네 진급도 해야 할 것 같아.”
“진급 말입니까? 저 대위로 진급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진우는 블랙게이트 들어가기 6개월 전에 대위를 달았다. 그 당시에도 진우의 진급에 대해서 말이 많았다.
진우는 병사부터 시작해 부사관을 거쳐 대위까지 올라갔다. 그렇다보니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장교들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
‘그런데 또 진급을 하라고? 이 나이에 벌써 소령이라고?’
진우가 김승철 소장에게 물었다.
“사단장님. 제가 진급을 하면 소령인데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하지 않을 것은 또 뭔가? 자넨 각성자야! 각성자! 군 특별법에 따라 정당하게 진급을 하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 게다가 자네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그레이 게이트에서 살아 돌아온 생존자야! 누가 자네 업적에 대해서 왈가왈부 할 수 있겠냐 이 말이야.”
군은 이번 기회에 진우를 철저하게 영웅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일각에서는 진우를 조금 더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지 않지만 천 명의 희생자가 게이트의 클리어 조건이라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그 파장이 엄청나기 때문에 진우를 모두의 희생으로 살아 돌아온 지휘관으로 만드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각성자가 군대에 들어갈 경우 형제 중 한 명의 군대를 면제해주는 특별법이 있었다. 그래서 많은 각성자들이 각성병사제도를 이용해 군에 자원입대를 했다. 각성병사로서 나라를 지키면서 경험도 쌓고 겸사겸사 형제의 군복무도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각성자는 군 복무가 원칙적으로 면제였다.
게이트 세상에서 플레이어는 곧 전력.
그런 고급 인력을 고작 군대 머릿수 채우는 데 집어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실제로 플레이어가 희귀하던 시절에는 모든 플레이어가 군대 대신에 길드에 들어갔다. 하지만 각성의 방법이 진화하고 플레이어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상황이 변했다.
초보 각성자가 길드에 들어가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군에 입대하면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군이 관리하는 던전에 비해 각성 병사의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길드에 속할 때 보다 나은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각성병사로서 기본 군복무를 마치고 나면 보다 당당히 사회에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요즘 대형 길드들은 아예 각성부대 제대자를 스카우트 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군이 플레이어의 기본 교육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게 된 셈인데 이런 각성병사 제도를 통해 입대한 플레이어 천 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여론이 만들어지면 군의 입지도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블랙 게이트가 그레이 게이트로 바뀌었을 때도 여론이 좋지 않았다. 하물며 진우의 입에서 허튼 소리라도 나오는 날에는 군의 존폐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었다.
만에 하나 정부에서 각성병사 제도를 폐지하자고 나온다면?
플레이어 한 명 보유하지 못한 군은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될 거고 기업과 길드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평화회와 부국회는 진우를 영웅으로 만들기로 결정을 내렸다. 또 진우를 영웅으로 만들어 놓으면 게이트 안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함부로 떠들지 못할 거라 여겼다.
그 과정에서 진우에 대한 상장과 포상, 진급이 결정됐다.
-군부대에서 면밀히 조사한 결과 이진우 대위가 병사들을 사지로 몰았다는 일각의 주장은 인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진우 대위는 최선을 다해 병사들을 이끌었고 비록 그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그레이 게이트의 유일한 생존자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 했다. 이에 이진우 대위를 포상 및 진급한다.
‘진급이라······.’
상까지는 그냥 넘기려 했던 진우도 진급은 고민스러웠다.
“사단장님. 진급에 대해서는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상을 받았으니까 특진을 시켜 주겠다는 건데 뭐가 문제인가?”
“그래도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이 대위! 이건 생각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니까 그러네.”
평소 진급에 목이 말라 있는 김승철 소장은 진우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포상과 진급은 이미 결정이 된 사안이었다. 진우가 모든 걸 거절한다면 모를까 상을 받기로 한 이상 진급도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다고 한 배를 탄 진우를 하급자 다루듯 몰아붙일 수도 없는 노릇.
“하루면 되겠는가?”
“네.”
“그래. 그럼 내일까지 시간을 주겠네. 하지만 이 대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게. 요즘 같은 시대에 군대에도 영웅이 필요하네. 그리고 자네는 영웅이 될 자격이 충분하고.”
‘영웅? 정말 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진우의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김승철 소장을 돌려 보낸 뒤 진우는 자리에 도로 앉았다.
사무실에는 고요한 적막감이 맴돌았다.
“후우······.”
긴 한 숨을 내쉰 진우가 대화창을 클릭했다.
그러자 3명의 흑룡인들과 대화하던 창이 생성되었다.
“전달 사항이 있어.”
진우는 임백호 상사와 김철수 중사, 최대근 중사에게 조금 전 김승철 사단장과 나눴던 대화를 전했다.
그러자 최대근 중사가 먼저 반응했다.
-와아! 대장 장난 아닙니다. 그럼 소령입니까? 완전 멋지네.
최대근 중사는 진우가 또 다시 진급을 했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했다. 하지만 임백호 상사와 김철수 중사의 반응은 달랐다.
-군대에서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저도 여론을 면밀히 체크하고 있긴 합니다만 지금 상황에서 괜히 대장이 포상을 받고 진급을 했다가 또 다시 여론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입니다.
임백호 상사가 의문을 제기했다. 반면 김철수 중사는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저도 행보관님처럼 걱정은 되지만 진급은 일단 찬성입니다. 대장은 군과 잘 지낼 필요가 있습니다.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 군과 척을 지어봤자 좋을 것은 없습니다. 현재 대장을 지지해줄 곳은 군 뿐이지 않습니까.
김철수 중사의 말처럼 진우는 게이트 기업 소속도 아니고 대형 길드에 속한 것도 아니었다.
보배 그룹이 게이트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하지만 자체적으로 보유한 플레이어가 없다 보니 게이트 기업이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심지어 주 활동 무대가 강원도라 전국적인 기업도 아니었다.
그렇게 따졌을 때 진우의 인맥은 결국 군대밖에 없었다.
“진급을 받아들이면 날 어떻게든 이용해 먹으려고 할텐데 그래도 괜찮을까?”
-군이 대장을 이용하면 대장도 군을 이용하면 됩니다. 일단은 상부상조를 하는 게 좋습니다. 만에 하나 대장이 군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군에서 작심하고 대장을 공적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