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04. 게이트가 이상한데? (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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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얘기를 듣던 안유정 중위가 슬그머니 다가와 물었다.
“부부대장님. 그럼 시스템이 가끔씩 잘못된 전달을 해주는 경우도 있습니까?”
“그건 확실히 잘 모르겠어. 하지만 시스템을 너무 의지하고 맹신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야. 던전에서 자신의 목숨은 스스로 지키는 거야. 그러니까 만에 하나를 위해서 항상 준비하는 것은 잊지 마.”
“네.”
“시스템은 처치했다고 하지만 쓰러진 몬스터가 마지막 순간에 모든 힘을 쥐어짜내서 공격할 수도 있다는 얘기야.”
실제 지난 블랙게이트에서도 시스템을 맹신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흔한 일은 아니겠지만 던전에서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었다.
진우의 시선이 쉬고 있는 병사들에게 향했다. 경험이 많지 않은 지휘장교의 지시를 받아서일까. 다들 필요 이상으로 지쳐 있었다.
‘장교들도 이번 기회에 조금 더 성장을 시켜야겠어.’
진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자신도 그래 왔지만 던전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다 보면 시야도 넓어지고 실력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귀찮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네들도 정신 바짝 차려. 혹시 알아? 그러다 좋은 스킬을 얻게 될지?”
과거 감지 스킬을 얻게 된 계기를 떠올리며 진우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병사들에게 다가갔다.
“얘들아. 괜찮니?”
“네, 괜찮습니다.”
진우의 물음에 각성병사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들 진이 빠진 상태였지만 홀로 몬스터들을 쓸어버린 진우 앞에서 앓는 소리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민철 병장은 그 와중에도 엄살을 부렸다.
“부부대장님. 죽을 것 같습니다.”
“뭐? 죽을 것 같아?”
“네. 농담 아니고 진짜입니다.”
“그래? 그럼 어서 유언을 말하렴. 이 부부대장이 너의 유언은 확실하게 들어 줄 테니까.”
“네?”
최민철 병장이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반문했다.
“그리고 부모님께 전해 드릴 것 있으면 지금 꺼내.”
“부, 부대장님!”
“너희들 뭐해? 어서 민철이 군번 줄 꺼내라.”
잠시 어리둥절해 하던 병사들은 진우가 장난을 치는 걸 알고는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최민철 병장이 바로 인상을 썼다.
“부부대장님. 그런 말이 아니잖습니까.”
“그러니까 누가 쓸데없이 던전에서 죽겠다는 소리 하래? 너 내가 던전 들어올 때 뭐라고 했어? 다치지 말고 살아 나가자고 했지? 그런데 죽을 것 같다는 소리가 나와?”
진우가 언성을 높이자 최민철 병장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죄송합니다.”
진우의 시선이 다시 주변을 향했다.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던전에 들어왔으면 살아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해라. 장난이라도 죽겠다는 소리 하면 정말 죽게 될 수 있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 진우는 제법 이름난 길드에 잠시 머문 적이 있었다. 그 길드에서 게이트 활동에 대한 기본들을 배우고 겪었는데 일단 던전에 들어가면 부정적인 표현은 꺼내지 않는 게 기본이었다. 말이 씨가 된다고 정말로 나쁜 일이 닥치게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을 다시 한 번 훑은 뒤 진우가 김슬기 대위를 불렀다.
“김 대위.”
“네. 부부대장님.”
“와서 애들 회복력 상승 버프 좀 걸어줘. 그 스킬 있었지?”
“아, 네!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겁니까?”
김슬기 대위가 살짝 당황스런 표정으로 바라봤다.
사실 게이트 활동 때 보조 계열 플레이어들은 보험 취급 받는 경향이 많았다. 위험한 던전에서 버프를 받는다는 건 생존 확률이 올라간다는 의미였다. 당연히 주력 플레이어들을 위해 최대한 마나를 아껴놓는 게 원칙이었다.
이 공략대의 주력 플레이어라면 누가 뭐래도 진우였다.
더욱이 C급 게이트도 아니고 B급 게이트에 들어 온 이상 김슬기 대위는 오롯이 진우에게만 집중하고 싶었다.
하지만 김슬기 대위의 버프가 전혀 통하지 않는 진우는 생각이 달랐다.
“김 대위.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는 건 아닌데 자네는 장교가 되어서 저렇게 힘들어 하고 있는 병사들을 그냥 보고만을 있을 거야?”
“아, 아닙니다.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김슬기 대위가 곧바로 모여 있는 병사들을 향해 회복력 상승 버프를 걸어줬다. 그러자 병사들 몸 주변으로 초록색 빛이 번졌고. 병사들의 표정도 한 결 밝아졌다.
김슬기 대위의 회복력 상승 버프 등급은 C등급이다. 전문 회복 계열 플레이어가 아니다보니 등급에 비해 효율이 높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공략에 합류한 병사들은 대부분 D등급 병사들이었다. 그렇다보니 김슬기 대위가 회복력 버프를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빠르게 회복이 되었다.
“오, 이제 살 것 같다.”
“감사합니다. 김 대위님.”
그렇게 25명이나 되는 병사들에게 모두 버프를 걸어주니 이번에는 김슬기 대위가 숨을 헐떡거렸다.
“후우······.”
“김 대위. 힘들어?”
“아, 죄송합니다. 제가 이렇게 몰아서 버프를 걸어 본 적은 처음이라 조금 버겁습니다.”
“어이구, 그래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던전 생활을 하려고 그래?”
“노력하겠습니다.”
“노력은 무슨. 자, 마셔!”
진우가 따로 보급받은 마나 포션을 따서 김슬기 대위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본 김슬기 대위가 놀랐다.
“어? 이건······.”
“왜 그래? 마나포션 처음 먹어봐?”
“그건 아닙니다만······.”
김슬기 대위가 기억하기로 행보관인 김태만 상사에게 중급의 마나 포션 10개와 생명력 포션 10개를 받아 왔다.
김태만 상사는 꼭 필요할 때만 써야 한다며 신신 당부를 했다. 그러면서 가능하면 마나 포션은 그대로 가지고 오라고 덧붙였다. 마나 포션이 생명 포션보다 훨씬 더 비싸기 때문이었다.
진우가 건성으로 알겠다고 하자 김태만 상사는 따로 김슬기 대위를 불러 부탁했다.
“김 대위님이 잘 좀 챙겨 주세요. 특히나 마나 포션! 마나 포션은 부대 비축분이 많지 않습니다. 아셨죠?”
“네. 행보관님.”
김슬기 대위가 단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마나 포션을 진우는 망설임없이 건넸다.
“왜? 싫어?”
“아, 아닙니다.”
김슬기 대위가 마지못해 마나 포션을 받았다. 미개봉 상태라면 정중히 고사했겠지만 이미 개봉을 한 터라 소비를 해야 했다.
꼴깍. 꼴깍.
가볍게 두 모금 마셨는데 텅 비었던 마나가 쭉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는 마시지 말고.”
“네. 부부대장님.”
자신도 모르게 한 모금 더 넘길 뻔 했던 김슬기 대위가 입에서 마나 포션을 뗐다. 이 귀한 마나 포션을 별 생각 없이 마셨으니 진우가 잔소리를 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진우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김 대위도 자연스럽게 마나 회복이 되지?”
“네.”
“그럼 자체 회복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야 해. 마나 포션에 의지하다 보면 나중에 마나 회복력이 시원찮아진다고. 그러니까 딱 갈증이 가실 정도만 마셔.”
“아, 네. 알겠습니다.”
김슬기 대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진우의 설명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내가 조금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 줄게. 김 대위 치킨 좋아하나?”
“네.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부위는?”
“저는 가슴살 좋아합니다.”
“술은?”
“치킨 먹을 때는 맥주 마십니다.”
“퍽퍽한 가슴살 먹고 맥주 한 모금 마시면 어때? 맛있지?”
“네.”
“하지만 맥주를 반 모금만 마시면 어떨까? 뭔가 아쉽고 씹어 삼킨 고기가 걸리는 거 같고 그럴 거 아니겠어?”
“······네.”
“마나 포션을 그런 느낌으로 마셔. 그렇다고 간에 기별도 안 가게 마시진 말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아, 네.”
김슬기 대위가 멋쩍게 웃었다. 뜬금없이 치킨 이야기를 해서 무슨 소리를 하려나 싶었는데 치킨으로 비유를 해 주니까 어떻게 마셔야 할지 대충 감이 왔다.
김슬기 대위는 진우가 건넨 마나 포션 마개로 마나 포션 입구를 막았다. 그리곤 새삼스러운 눈으로 진우를 바라보았다.
지금껏 플레이어 생활을 하면서 이렇듯 챙겨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런 김슬기 대위를 유지태 중위와 안유정 중위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4
잠시 병사들을 챙긴 진우가 몬스터 시체들을 가로질러 앞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리고 자신이 처리한 장교개미 시체에 도착했다.
장교개미를 확인하던 진우의 눈에 아이템 하나가 보였다.
-부식된 장교개미의 창(C)
공격력 : 25
공격속도 : 1.03
체력 : 30
지능 : 15
관통 : 27
장비가 부식되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에이, 장비가 부식되어서 제대로 쓰지도 못하겠네.”
진우가 인상을 썼다. 온전한 C급 던전템도 제 값을 받기 어려운데 부식이 됐으니 이건 챙겨봐야 짐일 뿐이었다.
“그보다 핵이 어디 있을 텐데······.”
진우는 장교 개미의 앞쪽에 쪼그리고 앉아 사체를 뒤졌다.
원래 대부분의 몬스터 몸에는 핵이 존재했다. 몬스터들의 등급에 따라 크기와 순도가 달라지는데 최소 C등급 이상 되어야 가공을 할 만 했다.
‘낮은 B등급이라고 해도 B등급이니까. 쓸만한 게 나오겠지?’
진우가 기대어린 얼굴로 사체를 이리저리 확인했다. 가끔 전투 후 핵이 사체 밖으로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핵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몸 안에 있다는 의미.
진우는 핵이 있을 것 같은 배 쪽을 단도로 갈랐다.
길게 찢어진 상처를 타고 내장이 울렁거리며 튀어 나왔다.
그것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걷어낸 후 진우는 다시 안을 살폈다. 그러자 주먹만한 돌멩이 하나가 보였다.
“오호. 제법 큰데?”
진우가 환하게 웃으며 그 돌멩이를 손으로 잡았다. 그러자 곧바로 알람 소리가 들려왔다.
띠링!
-B등급 핵을 발견하였습니다.
진우는 곧바로 감정스킬을 발동해 확인했다.
-B등급 핵
순도 : 27퍼센트
몬스터 핵의 순도는 간단히 몬스터가 가진 에너지를 의미했다.
순도가 높을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남아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보통 순도 10 퍼센트 이하의 핵은 거의 돈이 안 된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그렇다고 10 퍼센트 이하의 핵이 쓸모가 없는 건 아니었다. 순도가 낮은 핵들은 공장으로 들어가 2차 가공을 한다.
핵 속에서 잔여 에너지를 추출해 한 데 모아 제작 아이템의 재료를 만드는 것이다.
보배 그룹도 그런 식으로 게이트 부산물 처리를 맡고 있었다.
‘27%면 굳이 보배 그룹에 줄 필요가 없지.’
진우가 씩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때 유지태 중위와 눈이 딱 하고 마주쳤다.
그런데 유지태 중위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이 방의 중간 보스인 장교 개미는 진우 혼자 잡았으니 거기서 떨어지는 아이템은 다 진우의 몫이라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다른 지휘관들도 그런 식으로 제 몫을 챙겼다.
하지만 정작 진우는 아까 말했던 약속을 번복할 생각이 없었다.
“유 중위!”
“네.”
“뭐하고 있어? 얼른 이거 챙겨!”
“네? 아, 네.”
유지태 중위가 놀란 눈으로 진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진우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말했다.
“부부대장님. 이걸······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아까 말했잖아. 다 같이 나눈다니까?”
“안 그러셔도 됩니다. 솔직히 장교개미는 부부대장님께서 혼자 잡으셨지 않습니까.”
“그래서? 날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치사한 지휘관으로 만들 생각이야?”
“그런 것이 아니라······.”
“괜찮아. 다 같이 고생했는데······. 그게 아니면 유 중위 월급 많이 받나봐?”
“그,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당황하는 유지태 중위를 보며 진우기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