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04. 게이트가 이상한데? (8)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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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하나가 비는데?”
“아, 제가 하나 못 드렸습니다.”
병사 하나가 손을 들었다. 유지태 중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얘들아! 부부대장님께서 말씀하셨잖아. 나중에 다 나눈다고. 이거 하나 가져가서 뭐하게.”
“정말입니다. 다른 쪽에 넣어 둔 것을 깜빡 했습니다.”
그 병사는 약간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유지태 중위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노파심에서 하는 얘기지만 너희들 말이야. 던전에서 나온 거 함부로 처리 했다가는 군법에 회부되는 거 알고 있지?”
“네.”
“가끔 빼돌린 것을 밖에다가 팔아먹으려는 애들이 있어. 걔네들? 다 걸려. 물론 널 의심하는 건 아니고. 혹시라도 이번처럼 잘못 보관했다가 실수로 가지고 나가지 말고 잘 확인해서 나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하자. 알았지?”
“알겠습니다.”
그런 유지태 중위를 보며 진우가 피식 웃었다.
“역시 우리 유 중위는 예나 지금이나 철두철미해. 변함이 없어.”
몬스터 핵 수거를 마무리 한 뒤 식사 시간을 가졌다.
경계를 서는 일부 병력을 제외하고 나머지 병사들이 둥글게 둘러앉았다.
“자! 이렇게라도 식사 마무리 하자. 그리고 유 중위.”
“네.”
“까먹지 말고 경계 병력들 바로바로 교대해 줘.”
“네. 알겠습니다.”
“그래. 다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 밥 먹자!”
진우의 말에 병사들은 각자의 전투식량을 집어 들었다.
게이트 형 전투식량이라는 이름이 붙긴 했지만 기존 전투식량과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오늘의 메뉴는 볶음밥.
따뜻한 물을 넣고 거기에 스프를 넣은 상태로 기다리면 볶음밥이 된다.
안유정 중위는 볶음밥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며 잠시 주변을 바라봤다.
유지태 중위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게이트 용 물티슈로 닦긴 했지만 전투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었다.
김슬기 대위는 전투가 끝난 이후에도 쉬지 않고 모두에게 버프를 걸어 줬다. 처음에는 팔자 좋다고 생각했지만 마나 포션까지 먹어가며 고생하는 걸 보니까 괜히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반면 자신은 그냥 멀리서 화살만 쐈다.
‘내가 정말 도움이 되고 있는걸까?’
안유정 중위는 그런 고민들로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진우가 그녀를 불렀다.
“안 중위.”
“네, 네?”
“뭐해. 입 맛 없어?”
“아뇨. 아닙니다.”
안유정 중위가 냉큼 수저를 움직였다. 옆에 앉은 유지태 중위가 먼저 말했다.
“안 중위. 고생했어.”
“아닙니다. 유 중위님께서 고생하셨죠.”
“고생은. 나보다는 부부대장님께서 고생하셨지.”
두 사람의 시선이 진우에게 향했다.
겉으로 보기에 진우는 말끔했다. 세 차례 전투를 치른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반면 자신은 몬스터들의 타액으로 엉망이었다.
“어휴, 꼴은 나 혼자 고생한 것 같네.”
그러자 안유정 중위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유지태 중위가 볶음밥을 한 숟가락 입 안에 집어 넣으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우리 부부대장님 예전보다 더 강해지신 것 같아.”
“네? 예전에는 어땠어요?”
“예전에 말이야. 내가 부부대장님 따라서 C등급 개미굴 에 들어갔다고 했잖아.”
“네.”
“그때도 병력이 많지 않았거든. 그런데 여왕개미방으로 가는 길이 안나오는 거야.”
“그래서 다 도셨어요?”
“그랬지. 그래도 그때는 C등급이라 방마다 100마리씩 나왔거든. 아무튼 그 때도 부부대장님이 선봉에 서셨는데 꼴이 말이 아니었어.”
“부부대장님이 혹시 다치거나 그러신 겁니까?”
“아니. 다치진 않으셨어. 그 때도 부대 내에서는 최고의 실력이셨으니까. 지금의 나처럼 다 뒤집어 쓰셨지.”
“아······.”
“그런데 지금은 저렇게 슈트에 타액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싸우시는 거 보니까 정말 존경스럽다. BS등급이 그렇게 센가?”
“그건 저도 잘······.”
“하긴 안 중위나 나나 등급은 비슷하지?”
“네.”
안유정 중위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지태 중위의 세부 등급은 C4. 안유정 중위는 C3였다.
세부 등급 한 등급 차이도 따지고 드는 게 일반적이지만 유지태 중위도 C4등급으로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참! 안 중위는 괜찮아?”
“네?”
“안 중위 게이트 들어오면 약간 울렁증 있잖아. 아니야?”
“그걸 어떻게······.”
안유정 중위는 진심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유지태 중위가 피식 웃었다.
“내가 안 중위하고 게이트 돈 게 몇 번인데 그걸 모를까.”
안유정 중위가 살짝 감동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설마하니 유지태 중위가 이렇게 세심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유지태 중위 입장에서 동료들을 체크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는 던전에 들어왔는데 옆에서 같이 싸우는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는 알아야 했다. 기본적으로 동료의 성향을 알아야 그에 맞는 조력을 요청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성향을 무시하고 무턱대고 임무를 줬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은 자신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유지태 중위는 안유정 중위의 울렁증을 알고 어려운 일은 거의 맡기려 하지 않았다. 그런 안유정 중위가 숨겨두었던 활까지 꺼내들고 싸우고 있으니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들었다.
게다가 안유정 중위는 그저 생색만 낸 게 아니었다. 두 번째 방과 세 번째 방에서 안유정 중위의 도움이 없었다면 유지태 중위도 전투를 수행하기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더 솔직히 말하면 장교 개미를 상대하다가 큰 부상을 입었을지도 몰랐다.
“아까 화살 고마웠다.”
“아닙니다.”
“이렇게 잘 쏘는데 지금까지 왜 숨긴 거야?”
“······유 중위님은 제가 잘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하지. 아까 안 중위 아니었으면 나 진짜 고생했을 거야. 안 중위가 위기 때마다 활로 견제해주고 그랬잖아.”
“그, 그건······. 유 중위님이 전방에서 혼자 고생을 하시니까.”
“에이.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직 멀었지. 제대로 된 탱커를 맡으려면 모든 어그로를 끌면서도 몬스터를 베어 넘겨야 하거든. 근데 난 고작 붙드는 게 전부였잖아. 난 아직 멀었어. 안 중위 아니었으면 계속 발만 묶여 있었을 거야.”
“아닙니다. 충분히 잘하셨습니다.”
“하하. 그렇게 봐주니 고맙네.”
“예전에 제가 길드에 있을 때 유 중위님 같은 분이 계셨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안유정 중위가 옛날 기억을 떠올리며 말끝을 흐렸다. 유지태 중위도 안유정 중위가 군대에 오기 전 길드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참. 안 중위도 길드 생활 했다고 했었지?”
“길드 생활까지는 아니고 들어갔다 바로 나왔습니다.”
“길드는 왜 나왔어?”
“테스트 때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테스트?”
유지태 중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알기로 안유정 중위는 C등급으로 각성했다. 같은 C등급이라고 해도 밑에서 올라온 C등급 보다는 C등급으로 각성한 플레이어를 조금 더 높이 쳐 주는 편인데 각성 레벨이 높을수록 성장할 가능성도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안유정 중위 쯤 되는 실력이라면 테스트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가능성을 보고 데려가는 게 옳았다. 게다가 안유정 중위는 원거리 딜러. 대형 길드라면 몰라도 중소형 길드에는 귀한 전력이었다. 그런데 테스트만 받고 나왔다고 하니까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지만 안유정 중위도 말 못할 사정이 있었다.
처음에 지인의 추천을 받고 근방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길드에서 테스트를 받았다. 그런데 길드 간부 중 한 명하고 약간의 악연이 있었다.
과거 그 간부가 안유정 중위의 친구와 교제하다 임신을 시키고는 나몰라라 도망쳐버렸기 때문이다.
그 당시 그렇게 수소문해봤지만 찾지 못했던 그 간부와 어떻게 이렇게 마주쳤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안유정 중위는 대번에 그 간부를 알아봤고, 그 간부도 전 여친과 가장 친했던 안유정 중위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만약 플레이어 등급이 낮았다면 간부 선에서 퇴짜를 놓았겠지만 안유정 중위는 길드 마스터가 기대를 가질 정도였다.
그렇다고 길드에서 함께 부대끼며 지내기란 불편했을 터.
간부는 자신이 직접 테스트를 돕겠다고 나섰다. 그리고는 안유정 중위가 정신없이 화살을 쏘아 댈 때 일부러 그녀의 사정권 안으로 들어와 화살을 맞아버렸다.
자연스럽게 테스트는 난리가 났다.
안유정 중위는 억울했지만 간부가 하마터면 죽을 뻔 했다고 호들갑을 떠니 길드 마스터도 안유정 중위를 받아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길드로 가려고 했지만 어느새 자신에 대해서 안좋은 소문이 퍼진 뒤였다.
-테스트 때 활로 사람을 쐈다. 눈먼 화살에 팀원들이 죽을 수도 있다.
결국 안유정 중위는 길드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했다. 그것도 자신이 활동했던 부산이 아닌 다른 지역에 있는 군대로 왔다.
그리고 다시는 활을 쏘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아무튼 안 중위 오늘 정말 좋았어. 앞으로도 안 중위 믿고 뒤를 맡겨도 될 것 같아.”
“저, 정말입니까?”
“그래. 그러니까 안 중위도 주눅 들지 말고 열심히 하자. 우리가 부부대장님 발목은 잡지 말아야 해. 큰 도움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야 한다고.”
“네.”
“자, 어서 식사 마저 하자.”
“맛있게 드십시오.”
유지태 중위의 칭찬 속에서 안유정 중위는 다시 수저를 움직였다. 싸늘하게 식어서 맛이 없어야 정상인데 오늘따라 볶음밥이 무척 맛있게 느껴졌다.
8
김슬기 대위는 얼마 남지 않은 마나 포션을 한 모금 마신 후 도로 뚜껑을 닫았다. 마나가 달릴 때 마다 별 생각 없이 마나 포션을 마셨더니 어느새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진우가 다가 와 한 마디 했다.
“김 대위. 뭘 그걸 아껴. 마저 다 마셔 그냥.”
“아, 아닙니다. 아직 한 모금 남았습니다.”
김슬기 대위가 잘못한 걸 감추듯 마나 포션을 품 안에 집어 넣었다. 그러자 진우가 피식 웃고는 다시 마나 포션 한 병을 더 건넸다.
“그거 마저 비우고 다음부터는 이거 마셔.”
“네?”
“뭐 해? 팔 아파.”
“······저에게 또 주십니까?”
“그럼? 여기서 김 대위가 가장 많이 마나를 소모하는데 당연하지.”
“그, 그래도 저에게만 포션을 주시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마나 포션 한 병 가격이 정말 많이 비싼데······.”
“으구, 별 소리를 다한다. 별 소리를 다 해. 김 대위가 건강해야 여기 병력들이 무사히 지낼 수 있는 거야. 안 그러냐?”
진우가 고개를 돌려 병사들을 바라봤다.
다들 김슬기 대위로부터 도움을 받아서일까.
“네. 맞습니다.”
병사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김슬기 대위는 괜히 입가가 간질거렸다. 설마하니 이렇게 인정받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네.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마나 포션을 챙긴 김슬기 대위는 병사들에게 다가가 많이 먹으라고 다독였다. 하지만 병사들은 다들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방금 전까지 사체를 처리했기 때문에 식욕이 생기지 않은 것이다.
“아······. 더 이상 못 먹겠습니다.”
한 녀석이 반쯤 남긴 전투식량을 내려놨다. 그러자 옆에 있던 고참이 말했다.
“야 인마. 그래도 억지로라도 먹어둬.”
“솔직히 너무 맛없습니다. 차라리 부대 식당에서는 먹는 밥이 훨씬 맛납니다.”
“맞습니다. 진짜 부대 짬밥이 생각나기는 처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