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04. 게이트가 이상한데? (9)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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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밥이라 불리는 군대 식사는 원래 맛이 없었다. 시대가 바뀌고 전 병사들이 핸드폰을 들고 입대한 지도 오래 됐지만 군대의 식사만큼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나마 각성병사들에게 지급되는 식사는 제법 잘 나왔다. 아무래도 게이트 안에 들어가 몬스터들과 싸워야 하다 보니 간부들보다 더 잘 먹이는 편이었다.
하지만 플레이어 전용 전투식량은 아직 진전이 되지 않고 있었다. 게이트에서 먹을 수 있게 개량이 되긴 했지만 그 뿐. 일반 군인들이 작전에 나가서 먹는 전투 식량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가뜩이나 식사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맛없는 전투 식량을 먹어야 하니 병사들의 수저질이 굼뜬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지휘장교들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안유정 중위는 한 숟갈 입에 넣고는 가루를 만들 기세로 한참 동안을 씹어 댔고 유지태 중위도 억지로 입 안에 밀어넣는 게 눈에 보였다.
경계를 서고 돌아 온 병사들과 함께 식사를 시작한 김슬기 대위도 너무 맛없는 전투 식량에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먹는 것이 왜 그래? 맛이 없어?”
진우는 방금 먹은 전투식량이 꽤 맛있었다. 막말로 블랙 게이트에서 살기 위해 먹었던 질긴 몬스터 고기에 비하면 이런 음식은 진미나 다름없었다.
“아닙니다. 먹는 중입니다.”
“어이구. 이 친구들. 아주 배가 불렀구만. 배가 불렀어.”
“······.”
진우가 수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거 내가 이 얘기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모처럼 썰을 풀어줘야겠네.”
그 말에 다들 눈빛이 반짝였다.
블랙 게이트의 유일한 생존자인 진우의 경험담이다. 플레이어라면 돈을 주고 사서라도 들어야 할 이야기였다.
진우의 시선이 유지태 중위에게 향했다.
“유 중위.”
“네.”
“전투식량 유통기한이 얼마야?”
“군에서는 2,3년이 지나도 끄덕없다고는 하지만 제가 알기로 한 달 안에 먹어야 맛이 변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한 달 정도는 별문제 없이 먹을 수 있다는 거지.”
“네.”
“그래서 보통 게이트에 들어갈 때는 전투 식량을 한 달 치 지급받아. 물론 게이트 사정에 따라 다르지만, B등급 게이트 기준이면 기본 한 달. 맞지?”
“네, 그렇습니다.”
“내가 블랙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 말이야. 얼마 정도 지났을 때 전투식량이 동이 났을 것 같아?”
“한 달 아닙니까?”
안유정 중위가 바로 입을 얼었다. 모든 병사들이 한 달치 전투 식량을 들고 들어갔을 테니 최소 한 달은 버텼을 것 같았다.
그러자 진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보름 만에 다 떨어졌어.”
“네에? 보름 만에 말입니까?”
“그래. 보름이 딱 지난 시점에 쥐 떼를 만났거든. 그놈들이 가방들을 집어삼키더라고.”
블랙 게이트에 들어간 모든 병사들은 자기 키만 한 군장을 들었다. 그 안에 전투식량을 가득 채우고 필요한 것을 채웠다.
물론 게이트 생활을 하면서 꼭 전투식량으로 배를 채우는 것은 아니었다.
전투식량이 떨어져 없으면 바로 대체할 수 있는 영양캡슐도 상시 가지고 다녔다.
게이트 용 영양 캡슐은 우주를 탐사할 때 먹는 것처럼 캡슐 하나만으로 어느 정도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는 간편한 방법이었다. 인체에 별 무리가 가지 않고, 하나를 먹으면 보통 3~4일은 버틸 수 있어 애용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3대 욕구는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성욕, 식욕, 수면욕 말이다.
막말로 성욕은 어느 정도 게이트 안에서 버릴 수 있었다. 사방에서 몬스터들이 튀어나오는데 한가롭게 성욕을 느끼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식욕과 수면욕은 억누를 수가 없었다.
먹는 즐거움이 사라지면 사람들의 인성이 점점 피폐해져 갔다. 가뜩이나 잠도 편히 못 자는데 먹는것까지 부실하면 신경이 곤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원만한 게이트 활동을 위해서 전투식량을 먹었다. 맛이 없더라도 말이다.
“우리가 전투를 할 때는 일부 병력을 경계로 해서 군장을 지키게 해. 군장을 들고 근접전을 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런데 보름 즈음이었나. 그 때 만난 쥐들이 아주 영악하더라고.”
“······.”
“군장을 따로 빼돌린 걸 어떻게 알았는지 그곳을 쥐들이 공격을 한 거야. 그래서 전투 식량이 거의 다 털려버렸어.”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뭘 어떻게 돼? 보름 이후부터는 영양캡슐로 버텼지.”
“와······. 그러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지 않습니까.”
“말도 마. 어떤 놈은 캡슐이라도 씹어야겠다고 오물거리다가 무의식적으로 자기 손가락을 씹더라고.”
“와······.”
진우의 얘기를 듣는 사람들 대부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들 게이트 경험이 적잖은 편이지만 진우처럼 극한의 상황에 몰린 적은 없었다.
그 때 김슬기 대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1년이나 계셨는데 그러면······. 나머지는 어떻게 버텼습니까?”
보통 군에서 게이트 작전에 들어가면 전투식량 1개월 치와 영양캡슐 6개월 치를 배급한다.
하지만 진우가 블랙 게이트를 나온 것은 일 년이 지난 후였다.
“후우······. 어떻게 버텼냐고? 남은 캡슐로 연명했지.”
진우는 억지로 몬스터 고기를 먹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전투 식량이 맛없다고 투덜거리는 이들에게 그 얘기를 하면 토악질을 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100% 거짓말인 것도 아니었다.
“남은 캡슐로 말입니까?”
“그래. 먼저 간 동료들이 남긴 영양캡슐 말이야. 죽은 친구들에겐 미안하지만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런데 말이야. 먼저 간 녀석들의 영양캡슐을 먹는데······. 좀 많이 쓰더라.”
그런 진우의 말에 모두들 숙연해졌다.
“이거 내가 너무 재미없는 말을 했나?”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 친구들아. 전투식량 먹을 수 있을 때 감사히 먹어. 그리고 이런 일이 익숙해져야 해. 사제 게이트 용 식량은 맛있을 거 같아? 무게 줄이고 휴대하기 간편하게 만들다 보면 전투 식량하고 별반 다를 것도 없어.”
“······.”
“지금 게이트에 소풍 온 거 아니잖아. 맛있는 음식 먹으려고 게이트 들어가는 것은 더더욱 아닐 테고. 안 그래? 게이트 안에서는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거야. 그러니까 먹을 수 있을 때 먹어 둬. 이런 맛없는 전투 식량도 맛있게 먹을 줄 알고 버틸 줄 알아야지 살아남는 거야.”
“네.”
병사들은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다시 남은 전투식량을 입에 넣었다.
방금 전 진우의 말을 들어서일까?
전투식량이 조금은 맛있게 느껴졌다.
9
진우가 게이트 작전을 한창 수행하던 그 시간.
육군 본부에 올라갔던 11사단장 김승철 소장은 보고를 받고 곧바로 차를 돌려버렸다.
“이런 미친놈의 새끼들! 아무리 내가 자리를 비웠어도 그렇지 이 소령을 게이트에 집어넣어?”
김승철 소장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러면서 운전병을 향해 소리쳤다.
“무슨 신호를 다 지키고 있어? 빨리빨리 안 밟아?”
“아, 네. 알겠습니다.”
운전병이 미친 듯이 차를 밟아서 부대에 도착을 했을 때에는 이미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김승철 사단장은 곧장 이준식 작전참모 사무실로 향했다.
“야, 이준식이!”
모처럼 느긋하게 업무를 보고 있던 이준식 작전참모는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했다.
“충성. 무슨 일이십니까?”
“무슨 일? 너 지금 무슨 일이냐고 했냐?”
“네?”
“너 이 새끼!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해?”
“무슨 말씀이신지······.”
“뭐? 무슨 말씀이신지? 이 새끼가 진짜······.”
“사단장님. 무슨 이유 때문에 화가 나신건지 모르겠지만 예의를 갖춰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준식 작전참모의 말에 김승철 사단장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야 이 새끼야! 너 지금 내가 우습지? 아니지, 원래부터 내가 우스웠지?”
김승철 사단장이 이준식 작전참모의 옆구리를 지휘봉으로 꾸욱꾸욱 찔렀다. 이에 이준식 작전참모도 바로 반응했다.
“아니, 진짜 왜 그러십니까.”
“야, 시발. 군대 진짜 많이 좋아졌다. 이준식! 고작 대령 달았다고 별 두 개 단 소장에게 개기는 거지? 그렇지?”
“사단장님 진정하십시오. 지금 보는 눈들이 많습니다.”
주위에는 잔뜩 긴장한 작전처 장교들과 부사관들이 있었다. 하지만 김승철 사단장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보는 눈이 많아? 그래서 너는 왜 그랬는데? 왜 그딴 짓거리를 했냐 말이야.”
“뭘 말입니까. 무슨 일인지 말씀을 해주셔야 알죠.”
“이 새끼가 진짜······. 너 뭔 배짱으로 이 소령을 게이트에 집어넣어? 몰래 작전 보내면 내가 모를 줄 알았어?”
김승철 사단장이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이준식 작전참모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사실 김승철 사단장을 엿 먹이기 위해 일을 벌인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김승철 사단장이 육본에 올라간 틈을 노려 진우를 게이트로 보내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육본으로 간 김승철 사단장이 이렇게 빨리 핸들을 꺾을 줄은 몰랐다.
“진정하십시오. 사단장님.”
“진정?”
“진정하고 제 말 좀 들어주십시오.”
“네 말을 들어? 왜 네 말을 들어야 하는데? 쓸 데 없이 변명 늘어놓을 생각 말고 사실대로 말 해. 이 소령을 왜 게이트로 보낸 거야? 왜! 이유가 뭐야!”
“아시다시피 지휘장교가 마땅치 않습니다. B등급 지휘장교들 태반이 블랙 게이트 따라 들어가서 생사가 불분명한데 이 소령이라도 나서야 하지 않습니까.”
진우는 블랙 게이트 탐사 인원이 전부 죽었다고 말했지만 군부대에서는 그 천 명을 아직은 사망자로 처리하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직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공식적으로 게이트 활동으로 실종된 인원은 설사 죽었다고 하더라도 일 년 정도는 사망 처리를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만 믿고 생사를 결정지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진우와 함께 게이트에 들어간 1천 명의 병력은 게이트 미복귀자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현재 전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각성 병사와 지휘 장교들을 다른 부대에서 보충 받을 수가 없었다.
“사단 사정은 사단장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준식 작전참모가 푸념하듯 주절거렸다. 하지만 김승철 사단장은 그 뻔한 수작에 넘어가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블랙 게이트에서 돌아온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다시 게이트에 집어넣는 놈이 어디 있어? 그게 제정신이야! 너 새끼야, 네가 그러고도 군인이야? 밑에 놈들 괴롭히니 재미있어? 재미있냐고!”
김승철 사단장은 얼굴이 붉어진 채 고함을 질렀다. 이준식 작전참모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면 지금 사단장님께서 저에게 하는 행동은 뭡니까. 똑같이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까?”
“뭐? 내가 널 괴롭혀? 어이가 없다. 말은 바로 하자. 야! 너 이번에 나 못 쫓아낸 것이 그렇게 억울했냐?”
“그것이 아닙니다.”
“아니야?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인데? 이 일이 어디 나 혼자만의 일이야? 사단 명예가 걸린 일이고 군의 명예가 걸린 일이야. 그리고 따지고 보면 결과적으로 네가 벌인 일이잖아! 그래도 사단장이라고 이 일을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이따위로 나와?”
“······.”
“만약에 이 소령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어떻게 할 거야? 문제 생기면 어떻게 할 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