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06, 그냥은 못 넘어가지 (5)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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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장 소령은 이번 일에 직접적으로 간섭을 한 것이 없잖아. 그렇다면 전부 내가······.’
김세령 소령의 눈동자가 지진이 일어날 정도로 흔들렸다.
“부부대장님······.”
“왜요.”
“죄송합니다.”
“뭐가요.”
“그게······.”
진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존심 강한 김세령 소령의 입에서 죄송합니다란 말이 나왔다. 그것이면 끝이었다.
“하나만 물어보죠. 알았습니까, 몰랐습니까.”
“······.”
“마지막입니다. 알았습니까, 몰랐습니까.”
“······알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김세령 소령이 고개를 푹 숙였다. 진우가 헛웃음을 흘렸다.
“핫! 지금 작전과장님께서는 동료들의 등에 칼을 꽂으신 거네요.”
“그런 것이 아니라······ 부부대장님 실력이라면 충분히 무사히 클리어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그 판단을 누가했습니까?”
“네?”
김세령 소령이 눈을 크께 뜨며 진우를 바라봤다.
“그 판단 말입니다. 누가 했습니까.”
“작전과에서 했습니다.”
“그럼 김 소령님하고 홍 중위 두 사람이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사단 작전과란 말입니까?”
“······.”
김세령 소령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진우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사단작전과에서 할 일 없이 이걸 했다고요?”
“네······.”
“와, 재미있네. 재미있어. 너무 재미가 있어서 웃음이 다 나오네.”
진우가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다가 김세령 소령을 똑바로 쳐다봤다.
“김 소령.”
“네.”
“방금 한 말 진술서 작성할 수 있습니까?”
“그건······.”
김세령 소령이 당황했다. 하지만 진우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양자택일 하세요. 나는 솔직히 작전과장님이랑 홍 중위는 위에서 시킨 거라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결백을 증명하지 않겠다면 두 사람이 책임을 져야죠. 안 그래요?”
“하겠습니다.”
홍인욱 중위가 바로 대답했다. 김세령 소령이 바로 눈짓을 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그럼 저보고 다 뒤집어쓰라는 말씀입니까? 저에게 이런 말은 없었지 않습니까.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면서요?”
홍인욱 중위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발끈했다. 그런 홍인욱 중위를 보며 김세령 소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진우는 홍인욱 중위를 봤다.
“홍 중위는 쓸 거야?”
“네. 솔직히 진짜 저만의 잘못이면 책임지고 옷 벗으라면 벗겠습니다. 그런데 저 진짜 억울합니다. 위에서 시킨 대로 한 것뿐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상명하복입니다.”
“그래서 위에서 시킨 대로 했다고 해서 동료 등에 칼 꽂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네.”
“그건 아닙니다.”
“그럼 나가서 병사들에게 사과할 수 있어.”
“네?”
“사과할 수 있냐고!”
그 말에 김세령 소령이 나섰다.
“그건······.”
하지만 홍인욱 중위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하겠습니다. 그것보다 더 한 것도 하겠습니다. 막말로 이것으로 용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이제 알 것 같습니다.”
홍인욱 중위 말에 김세령 소령이 고개를 떨구었다. 진우가 그런 그녀를 보며 물었다.
“작전과장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알겠습니다. 부부대장님이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셔야죠.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왜, 작전참모님이 시키는 대로 했으니까, 이번에는 제가 시키는 대로 할 겁니까? 작전과장은 군 생활 그렇게 할 겁니까?”
김세령 소령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진술서 써서 올리겠습니다.”
“그래요. 당연히 이렇게 해야죠. 그래야 부대가 바로잡히죠. 막말로 각성부대는 각 사단마다 나름대로 독립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무슨 각성부대가 사단작전과에 휘둘립니까? 작전과장님 그래도 되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각성부대 소속은 사단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독립부대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단작전과와 각성부대 작전과와는 별개의 존재였다.
아무리 작전참모가 이래라저래라해도 무조건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세령 소령도 육사 출신이다 보니 하늘같은 선배인 이준식 대령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른 것이었다.
각성부대 부부대장이 된 이상 진우는 그런 사슬을 끊어버리고 싶었다. 특히나 자신의 뒤에서 음모를 꾀하는 이준식 대령과 김세령 소령의 관계를 말이다.
“일단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써 주십시오. 그럼 내일 내가 직접 처리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준식 대령에게 제가 한 말 그대로 전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을 테고요. 아마 다 같이 날아가는 거죠. 그러니 서로 의리 지켜도 상관없다는 말입니다.”
홍인욱 중위가 바로 말했다.
“저는 의리 같은 것은 없습니다.”
“오, 그래? 홍 중위 정말이야?”
“네. 만날 이리저리 부조리한 일 시키기만 했지 작전과 회식은커녕 따로 챙겨 준 것도 없습니다.”
홍인욱 중위는 아예 배신을 하기로 작심을 했다.
이대로 가다간 진급은커녕 군복을 벗게 될지 몰랐다.
그렇다고 홍인욱 중위는 군 생활을 오래 할 생각도 없었다.
‘연금 나올 때까지만 버티자. 아니면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만 가자.’
그는 이 생각뿐이었다. 바로 옆에서 김세령 소령이 이리치고 저리치고 뒤치다꺼리하는 모습을 보니 그다지 올라가고 싶지도 않았다.
물론 김세령 소령은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만약에 이 소령이 정말로 사단 작전과를 엎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사단작전과는 이준식 대령의 친위대나 다름이 없다. 만에 하나 이곳이 날아간다? 만약 그리 된다면 작전과 내에서 자신의 입지가 커질 수도 있다.
사단작전과에 이준식 대령의 사람이 아닌 김승철 소장의 사람이 들어간다면 예전처럼 힘을 못쓸 수도 있다.
어쩌면 김세령 소령 본인에게도 진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른다.
위로 올라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본인 스스로 잘해서 진급을 하는 경우와 내 위로 단체로 물을 먹거나 내 동기 놈들이 경쟁에서 나가 떨어지는 경우.
김세령 소령도 군 생활을 오래 했다 보니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줄을 갈아타자.’
김세령 소령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렇게 진우가 작전과를 나가고 난 후 김세령 소령과 홍인욱 중위가 얘기를 나눴다.
“홍 중위.”
“왜 그러십니까?”
홍인욱 중위가 약간 삐딱한 자세로 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홍인욱 중위 잘못을 했기에 잔소리를 들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김세령 소령은 잔소리를 할 생각이 없었다.
“미안하다.”
“네?”
“미안하다고. 솔직히 자네가 욕먹고 있을 때 내가 나서서 한마디 했어야 하는데 나도 겁이 났다. 그래서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아닙니다.”
김세령 소령의 솔직한 말에 홍인욱 중위도 목소리가 한결 누그러졌다.
“네 말이 맞아. 솔직히 사단작전과에서 우리에게 특별히 잘해준 것도 없는데 우리가 왜 이러고 살지?”
“그러게 말입니다. 솔직히 각성부대 작전과 전부 오기 싫어했지 않습니까.”
“그랬지. 나도 여자여서 여기까지 밀린 거잖아.”
“맞습니다. 원래라면 사단작전과에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저도 마찬가지이지만······. 이게 뭡니까 도대체. 궂은일만 도맡아 하고······.”
“그런 넌 어떻게 할 거야? 이준식 대령하고 손 끊을 수 있어?”
“솔직히 저는 말단이지 않습니까. 저보다는 과장님께서 걱정이죠.”
“나? 솔직히 나 생각을 바꿔 먹었다. 부부대장님 말이야. 그레이 게이트에서 나왔으니 예전처럼 설렁설렁할 거라 생각했거든. 그런데 오늘 하는 것을 보니 장난 아니더라. 진짜 어쩌면 부부대장님이 작전참모님 잡아 먹을 것 같아.”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래! 너는 어떻게 생각해?”
“저도 살짝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우리 이제 정신 바짝 차려야 해. 부부대장님이 한 얘기 들었지? 흘러나가지 않게 입단속 잘하고.”
“네.”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때마침 전화가 왔다.
따르릉, 따르릉.
김세령 소령이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통신보안. 각성부대 작전과 김세령 소령입니다.”
-나다.
이준식 대령이었다.
“충성.”
-어, 그래. 이 소령은 잘 들어갔나?
“네. 그렇습니다.”
-이 소령이 뭐래?
“게이트에 대해서 알고 있었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일단 모른다고 했습니다.”
-잘했어. 그렇다고 지가 어떻게 할 거야. 내가 아까 사단장 앞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을 했다. 내 선에서 잘 처리할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그것 말고 다른 말은?
“오늘부터 공략대에 참석한 지휘장교들과 2박3일 휴가를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뭐라? 재미있는 놈일세. 지금 각성부대장이 없다고 지맘대로 휴가 주고 그래? 그래도 되는 거야?
“그런데 원칙적으로 게이트 나오면 휴가를 지급하는 것이 맞긴 합니다.”
-며칠 있다가 줘도 되잖아.
“그것이 게이트 나오면 후유증이 있습니다. 그 후유증 때문에 바로 지급하는 편입니다.”
김세령 소령이 적당히 진우의 편을 들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이준식 대령이 입을 열었다.
-알았어. 다른 일 있으면 연락하고.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홍인욱 중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과장님. 휴가······ 아니지 않습니까?”
“뭐가?”
“게이트 나오고 일주일 있다가 지급하는 걸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김세령 소령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홍 중위. 생각을 해봐라. 게이트 나오고 일주일 후에 휴가를 나가면 그게 휴가겠니?”
“하긴 그렇지 말입니다.”
“군 생활 하는 병사들이야 일주일 뒤에 휴가를 가도 괜찮지. 어차피 게이트 안에 안 들어가니까. 하지만 각성부대는 병사들은 게이트 다녀와서 괜히 멍하니 부대 내에서 휴식만 취하고 있는 것보다 빨리빨리 휴가를 주는 것이 좋지. 사실 말이야. 일반병사들 때문에 일주일 뒤에 휴가를 주는 식으로 바뀐거지 처음에는 바로바로 줬어.”
“그렇습니까?”
“그래. 너는 각성부대 작전장교라는 놈이 그것도 몰라?”
“죄송합니다.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
“그래. 너나 나나 일 좀 잘하자. 그리고 홍 중위. 내 얘기 잘 들어.”
“말씀하십시오.”
“만약에······. 진짜로 부부대장님이 사단작전과를 날려 버리면 어떻게 될까?”
“네?”
“부부대장님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잖아. 그럼 어떻게 될 것 갔냐고.”
“그럼 결원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렇지. 결원이 생기지. 그럼 어떻게 돼?”
“그럼 보직이동······ 아!”
김세령 소령이 씨익 웃었다.
“이제부터 우리가 뭘 해야 할지 알겠지?”
“네.”
“나 아까 농담으로 한 얘기 아니야. 정신 바짝 차려.”
“알겠습니다.”
홍인욱 중위가 눈을 빛냈고 그런 그를 보며 김세령 소령이 다시 생각에 잠겼다.
‘사단장님께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고? 어이가 없군. 그 실수를 누가 했다고 할 건데? 또 그런 식으로 자신만 빠져나가겠다는 소리네. 어림없어. 그렇게는 안 둬.’
이준식 대령이 흘린 말을 곱씹은 김세령 소령이 다시 어금니를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