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07. 휴가는 알차게 (3)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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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 최 병장도 고생했다.”
진우가 최민철 병장에게 맥주잔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최민철 병장이 두 손으로 공손히 잡아 든 잔에 맥주를 가득 따라 주었다.
“잘 마시겠습니다.”
그 뒤로 김영호 상병이 일어나 진우에게 다가왔다.
“부부대장님. 저도 한 잔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병사들이 돌아가면서 진우에게 술을 따라줬다. 진우 역시 녀석들의 술을 거부하지 않고 다 받아 마셨다.
만약 일반인이 이 정도로 마셨다면 나가 떨어졌거나 벌써 쓰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플레이어다 보니 이 정도로는 끄덕 없었다. 기본적으로 체질이 달라진 탓에 어지간해서는 잘 취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등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안 취한다는 말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진우는 S급 플레이어.
아마 공략대 전원이 덤벼들어도 술로는 진우를 이기지 못할 터였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병사들의 얼굴에도 취기가 올라왔다.
김슬기 대위가 입을 열었다.
“부부대장님. 이만 끝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왜? 분위기 좋잖아.”
“제가 대충 중간 계산을 해봤는데 말입니다. 대략 천만 원 정도 나왔습니다.”
“뭐? 천만 원?”
호들갑을 떨긴 했지만 진우는 대충 그 정도는 나올 것이라 예상은 했다.
‘그 정도는 뭐······.’
진우가 회식을 한두 번 한 것도 아니었다. 예전 대위 시절에도 부대원들 데리고 종종 회식을 했는데 몇 명 가지 않았는데도 500만 원은 기본으로 나왔고, 가끔 천만 원도 넘게 나왔다.
워낙에 플레이어들이 많이 먹다 보니 이 정도 금액은 우스웠다.
그런데 김슬기 대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하니 장단을 맞춰 줄 수밖에 없었다.
“우이씨······. 너무 많이 나왔는데.”
“병사들도 대충 많이 먹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쯤에서 돌려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럴까?”
“네.”
진우가 고개를 돌려 최민철 병장을 봤다.
“최 병장.”
“네.”
“지금 있는 것까지만 먹고 그만 끝내자.”
“부부대장님. 저희 이제 시작입니다.”
“인마. 오늘만 날이냐? 그리고 너희는 오늘 휴가 아니고 외출이다. 다들 알고 있지?”
“네. 그런데 저희는 휴가 없습니까?”
“아니. 휴가가 없는 것은 아니고 일단 다음 주에 순차적으로 휴가를 보내주도록 하겠다. 지금 부대 병력도 모자라는데 한꺼번에 보낼 수는 없잖아. 안 그래?”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적당히 먹고.”
그렇게 진우의 말에 병사들이 마무리를 했다. 남아 있던 고기들도 빠르게 굽고 얼마 남지 않은 술들도 빠르게 비워졌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진우가 입을 열었다.
“최 병장. 네가 책임지고 애들 데리고 부대 복귀해라. 다른 곳에 새지 말고.”
김슬기 대위가 말했다.
“제가 인솔해서 부대 복귀시키겠습니다.”
“그럴래?”
안유정 중위도 손을 들었다.
“저도 하겠습니다.”
“하긴 두 사람 다 관사에 살지?”
“네.”
“그래. 두 사람이 애들 데리고 복귀시켜.”
“알겠습니다.”
진우는 유지태 중위를 봤다.
“유 중위는 어떻게 할 거야?”
“저는 여자 친구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래. 잘 만나고. 자, 그럼 다들 움직이자.”
진우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를 나갔다. 김슬기 대위와 안유정 중위는 병사들을 데리고 부대로 복귀하고 유지태 중위 역시 여자 친구 만나러 움직였다.
홀로 남은 진우가 계산대 앞에 섰다.
“얼마입니까?”
“천이백만 원 넘게 나왔는데······. 천이백에 끊어 줄게요.”
“예? 아까 밥 빼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빼줬어. 내가 설마 거짓말을 했을까.”
아까 김슬기 대위는 천만 원이 좀 넘어간다고 했는데 천이백만 원이라고 한 것을 보면 분명 뭔가 바가지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따지고 들긴 싫어서 그냥 기분 좋게 계산을 했다.
어차피 이 정도 금액은 진우 가슴속에 있는 몬스터 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거 팔면 아무것도 아니지.’
진우는 기분 좋게 카드를 내밀었다. 그것은 나라사랑 카드였다.
그것을 보자 주인아주머니가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이거 잔고는 있는 거죠?”
“네. 걱정 마십시오. 활동비 들어와 있을 겁니다.”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진우의 통장으로 블랙 게이트 수당이 입금되었다.
정확히 확인은 하지 않았지만 억 단위가 넘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카드를 긁던 주인아주머니는 영수중이 올라오자 표정이 밝아졌다.
“어, 되네요. 다음에 또와요.”
카드를 받은 진우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밤하늘을 올려봤다.
“후우, 오랜만에 삼겹살도 먹고, 술도 마시니 좋구나.”
그렇게 중얼거리던 진우는 옛 생각이 났다.
예전에 함께 게이트를 돌던 이들과도 이렇듯 술잔을 나누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지금 전부 다 고인이 되어 있었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던 진우가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진우는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을 했을 때는 새벽 3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벨을 누를까 하다가 왠지 가족을 다 깨울 것 같아서 담을 훌쩍 넘었다.
마당에 착지한 진우는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저만치 집을 지키는 덩치 큰 개와 눈이 마주쳤다.
“야, 짖지 마!”
개가 이빨을 드러내며 짖으려고 했다. 그러자 진우가 눈을 매섭게 떴다.
“쓰읍! 너 시끄럽게 하면 진짜 혼난다.”
개는 그 말에 꼬리를 내리고는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진우는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진우의 방은 어머니가 항상 깨끗하게 청소를 해놔서 깔끔한 상태였다.
“하아······.”
진우가 침대 위로 몸을 눕혔다. 푹신한 침구에 몸이 닿아서 그런지 갑자기 졸음이 밀려왔다.
그 상태로 가만히 있다가 진우는 다시 상체를 일으켰다.
“그래도 양치질은 해야지.”
진우가 방을 나가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양치질을 했다.
그때 옆방 문이 열리며 동생 이진상이 나타났다.
“으앗! 깜짝이야!”
화장실 문을 벌컥 연 이진상이 깜짝 놀랐다. 하지만 오히려 진우가 더욱 놀란 모습이었다.
“아이씨. 내가 더 놀랐다. 너는 노크도 안 하냐.”
“뭐래. 원래 나 혼자 쓰는 화장실인데. 뭔 노크야! 그보다 형은 언제 왔어?”
“언제는 언제야. 방금 왔지.”
“그래? 오늘 오는 날이었어?”
“오늘부터 3일간 휴가다.”
“휴가? 그렇구나.”
이진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란히 섰다.
“근데 술 마셨어?”
“회식했어.”
“회식을 해?”
“게이트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고 회식했어.”
이진상이 고개를 홱 돌려 진우를 바라봤다.
“헐! 또 게이트에 들어갔어?”
이진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블랙 게이트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게이트에 들어갔단 말인가.
그 말에 진우가 피식 웃었다.
“야, 인마! 그러면 형이 플레이어인데 언제까지 놀고먹을까. 플레이어라면 게이트에 들어가야지.”
진우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입안을 헹군 후 화장실을 나섰다.
“아무튼 쓸데없는 걱정 말고 너도 어서 잠이나 자.”
그 길로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 온 진우가 침대에 누웠다. 불 꺼진 방 안으로 창가를 통해 쏟아진 어스름한 달빛이 비췄다.
“커튼을 칠까?”
진우가 혼잣말을 중얼거렸지만 이내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잠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오늘은 악몽을 안 꿨으면 좋겠다.’
진우는 속으로 푸념하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방 안에 피곤에 찌든 듯 코 고는 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다음 날 아침.
“으으으······.”
진우는 힘겹게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상체를 일으켜 세운 후 슬쩍 시계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4시간 정도 잔 것 같은데······.’
속으로 중얼거리며 진우는 시간을 확인했다.
벽에 붙은 벽걸이 시계는 정확하게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쩝······. 휴가인데 잠을 좀 늘어지고 자고 싶었는데.”
하지만 군인 체질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미 몸의 밸런스가 적정 수면시간을 딱 맞춰 놓은 것 같다.
자리에서 일어난 진우가 침대의 이불을 정리했다.
그런데 습관이라는 것이 좀 무서웠다. 군대에서처럼 자신의 손은 어김없이 이불 각을 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것을 깨달은 진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각 잡힌 이불을 보며 피식 웋던 진우가 다시 적당히 접어 침대 위에 놨다. 그리고 환기를 시킬 겸 창문을 열었다.
아직 초봄이라 그런지 아침 날씨는 싸늘했다. 그러고 있는데 창문 밑으로 아버지 이태경 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어, 그래. 최 사장······. 이제 통화해도 괜찮아.”
‘최 사장?’
진우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버지가 통화하는 최 사장이라는 사람은 아마도 명수유통의 최명수 사장인 것 같았다.
명수유통은 보배그룹이 그룹이 되기 전부터 강원도에서 경쟁하던 회사였다.
보배그룹이 정석으로 운영한 반면, 명수유통은 항상 지저분하게 사업을 해오는 곳이었다.
명수유통이 주로 하는 쓰는 방법은 웃돈을 주거나 가격을 후려쳐서 경쟁회사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보배그룹도 여러 번 당했는데, 어디서 질 좋은 몬스터 핵이 들어왔다고 연락을 받고 어렵사리 계약을 하면 그다음 날 바로 명수 유통이 끼어들어 계약해지를 통보받곤 했다.
“미안하지만 다른 곳과 계약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미안합니다.”
나중에 알아보면 명수유통이 조금 더 웃돈을 주며 계약을 해버리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보배 그룹이 추진했던 수십 건의 계약을 빼앗겼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물건을 납품을 하려고 해도 명수유통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유통을 해버리니 보배그룹도 괜찮은 회사하고 선을 대기가 많이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 군부대에서 새로운 부산물처리업체와 계약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당시 수준급 플레이어였던 진우가 각성병사로서 입대한 덕분에 명수유통을 제치고, 보배그룹이 11사단의 파트너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진우가 군에 머물던 4년 간 보배그룹은 빠르게 성장을 했다.
그러자 최명수 사장이 다른 식으로 접근을 했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보배 그룹을 어찌할 수 없으니 이제는 보배그룹과 손을 잡자고 나선 것이다.
물론 보배그룹의 입장에서는 딱히 최명수 사장과 손을 잡을 필요는 없었다.
최명수 사장은 민간유통이 주 업무였다.
보통 중소 길드로부터 물건을 받아 처리하는 사업을 하는 쪽이었다.
반면 보배그룹은 11사단을 통해 강원도에 있는 모든 군부대의 물건을 받아서 처리하고 납품하는 회사였다.
따지고 보면 둘의 사업 방향이 전혀 다르다. 정확하게 말하면 시장이 달랐다.
그래서 딱히 부딪칠 것도 없고, 협력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시장의 가격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장난을 치면 피차 곤란했다.
게다가 그런 장난을 치는 쪽은 대부분은 명수유통 쪽이었다.
최명수 사장이 같이 잘 먹고 잘살자며 먼저 손을 내밀자 사람 좋은 아버지 이태경 회장은 보배그룹이 잘되어서 최명수 사장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온 것으로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진우는 최명수 사장의 본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