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07. 휴가는 알차게 (4)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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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가 이태경 회장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플레이어 초창기 시절에 몇몇 길드원들을 사주해서 진우를 곤경에 빠트리거나 위험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진우는 이태경 회장에게 넌지시 최명수 사장하고는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얘기도 했었다.
그러나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이태경 회장의 눈에는 최명수 사장이 약자로 보였다.
그전까지 최명수 사장이 저 혼자 잘 먹고 잘살 거라며 난리를 쳤는데 보배그룹이 잘 나가자 안면몰수하고 들러붙었고 이태경 회장은 왠지 그 모습이 안쓰럽고 짠하게 느껴진 것이다.
그렇게 지금 최명수 사장과 얽히며 까먹은 돈이 상당했다.
이진상에게 들은 최명수 사장의 수법은 이랬다.
어디서 새로 온 몬스터 핵 처리 기술이 나왔다며 여기에 투자를 하면 우리 모두의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아버지를 혹하게 만든 뒤 지금 당장은 자신이 유통할 자금이 모자라는 만큼 보배그룹에서 먼저 자금을 보태주면 어떻겠냐라는 식으로 제안을 했다.
그 기술이 있다면 회사에도 이득이기 때문에 이태경 회장이 군 말 없이 지원을 해 주었는데 알고 보니 그 기술이 사기였다. 한마디로 완전하지 않은 기술이었다.
100% 핵을 정제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사실 요즘 나온 기술 중 90%까지가 최고의 기술이었다. 그 이상은 다들 힘들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핵을 정제하는 과정에서 손실되는 것은 절대 막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100% 정제 기술은 불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해왔다. 정말 100%의 기술력이 있다면 그건 신의 기술이라고까지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또 어느 때는 쓸만한 하급 게이트가 매물로 나왔고, 그곳의 지분을 확보하면 여기서 나온 핵을 우선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며 이태경 회장을 속였다.
그 말에 속은 이태경 회장은 거금을 들여 지분을 확보했는데 그런데 알고 보니 게이트의 수명이 다 되어 더 이상 몬스터들이 나오지 않고, 핵의 수급도 되지 않는 폐급 게이트였다.
이런 식으로 이미 몇 번 최명수 사장에게 당했으면서 또 통화를 하고 있으니 진우로서는 너무 답답했다.
“하아, 진짜······. 우리 아버지지만 왜 저러는지 모르겠네.”
진우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면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귀를 기울였다.
“뭐? 신화그룹? 정말? 신화그룹에서?”
이태경 회장의 목소리를 들은 진우의 눈이 커졌다.
“신화그룹? 여기서 신화그룹 얘기가 왜 나와?”
신화그룹은 대한민국 10대 게이트 재벌 중 하나였다. 보배그룹도 그룹으로 불리고 있지만 신화그룹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강원도 내에서 이름이 있을 뿐이었다.
보배그룹이 강원도 내 군부대를 상대로 장사를 하는 수준이라면 신화그룹은 대한민국을 넘어서 전 세계 곳곳에 게이트 물품을 수출하는 대기업 중의 대기업이었다.
당연하게도 신화그룹과 거래를 할 수만 있다면 보배 그룹 입장에서는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신화그룹은 망할 리가 없는 꾸준히 납품할 수 있는 회사이기 때문이었다.
보배그룹은 얼마 전까지 그레이 게이트 사건으로 11사단으로부터 수금을 하지 못해 부도가 날 뻔했다.
그런 차에 안정적인 거래처를 확보할 수 있다면 회사를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신화그룹을 소개해 준 곳이 다름 아닌 최명수 사장이라는 점이었다.
“그 인간이 아무 이유 없이 신화그룹을 소개시켜 줄 리가 없는데······. 또 무슨 잔꾀를 부리려고 그러지?”
진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또 신화그룹의 이름을 팔아서 아버지 뒤통수치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진우는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진우는 망설임 없이 2층 창문을 통해 1층으로 훌쩍 뛰어 내렸다.
순간 이태경 회장이 화들짝 놀랐다.
“지, 진우야······.”
“아버지 뭐 하세요?”
“뭐, 뭐가?”
“지금 최 사장이랑 통화하죠?”
“아니야. 최 사장은 무슨······.”
“제가 통화하는 거 다 들었거든요.”
그러자 이태경 회장이 바로 통화를 끊었다.
“어어, 내가 나중에 전화할게.”
전화를 끊은 이태경 회장이 바로 진우를 나무랐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버지가 통화하는데 그걸 엿듣고 그래.”
“엿들은 게 아니라 아버지가 바로 내 방 아래에서 통화하셨거든요.”
“내가 그랬냐?”
이태경 회장이 슬쩍 고개를 들어보니 정말 진우 방 아래에서 통화를 한 것이었다.
‘어이구, 마누라 잔소리를 피해서 왔더니. 진우가 위에 있을 줄은 몰랐네.’
이태경 회장이 속으로 말을 한 후 바로 화제를 전환했다.
“그건 그렇고. 넌 언제 왔어?”
“언제 오긴요. 어제 왔죠. 어머니에게 얘기 못 들었어요?”
“너희 엄마?”
“네. 저 오늘부터 3일 동안 휴가에요.”
“휴가야? 그럼 좀 편안하게 있지. 이렇게 일찍 일어나.”
“아버지. 아침 11시가 넘었어요. 곧 있음 점심 먹을 시간이에요.”
“으흠, 그러냐?”
최명수 사장이랑 통화한 것이 들켜서일까? 이태경 회장은 시선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횡설수설거렸다.
그런 이태경 회장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진우가 한마디 했다.
“아버지.”
“어, 왜?”
“제가 아버지 장남 맞죠?”
“그렇지. 네가 장남이지. 누가 내 장남이야.”
“그럼 제 덕분에 보배그룹이 이렇듯 성장한 것도 맞죠?”
“그렇지.”
“그럼 아버지 제가 지금까지 보배그룹을 위해서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계시죠?”
“당연하지. 이 애비가 설마 그것을 모를까.”
“부탁인데요, 아버지. 제발 최명수 사장하고 그만 어울리세요. 딱 끊으시란 말입니다.”
“······.”
이태경 회장이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버지. 최 사장이 만날 아버지 뒤통수를 치는데 왜 자꾸 최 사장이랑 어울리세요.”
이태경 회장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도 바보는 아니었다. 회사의 오너였다. 설마 그 사실을 모를까.
다만 최명수 사장이 악의가 있어서 자신을 골탕 먹이지 않는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무엇보다 최명수 사장이 늘 그럴 듯한 말로 이태경 회장을 홀렸다. 이태경 회장이 가려워 하는 곳을 기가막히게 긁어댔다.
그래서 이태경 회장도 넘어가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이태경 회장이 슬쩍 진우에게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왠지 괜찮을 것 같아.”
“왜요. 신화그룹에서 같이 일하자고 그래요?”
“그것도 들었니?”
“다 들었다니까요. 아버지 저 플레이어에요. 귀가 얼마나 밝은데요.”
“으응, 그러니······.”
“그래서 솔직히 말해봐요. 신화그룹에서 뭐라고 했는데요?”
“신화그룹에서 일본 쪽으로 수출품을 담당할 협력 업체를 찾는다고 그러더라고.”
“일본으로요? 갑자기요?”
“갑자기는 아니고······. 일본 쪽에서 요새 수요가 많이 딸리나 봐.”
진우가 얘기를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일본에서 수요가 딸린다고요? 플레이어 숫자도 우리보다 더 많을 텐데요.”
꼭 인구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플레이어는 대한민국보다 3배 가까이 많은 상황이었다.
물론 최상위 플레이어의 수는 비등한 편인데 전 세계 S등급 게이트는 한정되어 있고, A등급 게이트 역시 많지 않은 상황이다.
보통 B등급 이하의 게이트들이 태반이라 플레이어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게이트 공략에 유리한 것 역시 사실이다.
일본은 대한민국에 비해 플레이어 숫자도 많고, 게이트 숫자도 많았다. 당연히 몬스터 핵이 모자랄 것 같지도 않았다.
진우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태경 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무슨 내용인지는 정확하게는 모르겠고. 최 사장 말로는 길드 간에 문제가 생겨서······. 뭐라고 얘기를 하던데.”
“길드 간의 문제요? 어떤 길드요? 아니면 어떤 길드가 독점을 하고 있다고 해요?”
“뭐, 비슷한 얘기인 것 같아. 일본 쪽으로 몬스터 핵을 공급할 회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나에게 얘기를 한 거야. 같이 손을 잡고 그 일을 맡아보지 않겠냐고 말이야.”
진우가 코웃음을 쳤다.
“아버지, 좋아요. 다 좋은데. 아니, 무슨 명수유통하고 손을 잡습니까. 명수유통은 그저 중소기업이고 우리는 그래도 나름 그룹인데요.”
“야, 인마. 말만 그룹이지 우리도 규모는 신화그룹에 비하면 말도 안 되지.”
“그 얘기를 지금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간단하게 말해서 우리가 신화그룹에게 명함 정도는 내밀 수 있지만 명수유통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우리가 명수유통하고 손을 잡습니까. 명수유통이 우리 밑으로 들어온다면 모를까.”
“그런가?”
이태경 회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진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버지. 신화그룹이 어떤 회사인데. 그런 대기업에서 알음알음해서 회사를 구하겠어요? 그것도 명수유통을 통해서요? 원래라면 정식 공고를 통해서 제대로 업체를 선정하겠죠.”
이태경 회장이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이놈아. 너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뭐가요?”
“원래 그런 대기업일수록 서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야. 기왕이면 잘 아는 곳이면 좋고. 또 친한 곳이면 더 좋고 말이야. 무조건 공정하고 투명하게 할 것 같냐?”
이태경 회장의 말에 진우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래서요? 최 사장이 뭐라고 해요? 신화그룹과 연을 댈 테니까 돈 좀 준비하라고 해요?”
“커험. 그건 뭐 그렇고······.”
“아버지! 회사 사정 좋아진 것이 얼마나 되었다고 또 그럽니까.”
“아이고 알았다. 알았어, 이놈아. 그리고 내가 뭐 허튼 곳에 쓰냐. 다 회사 잘되라고 그러는 거지.”
“아무튼 아버지 자꾸 이러면 저 진짜 앞으로 회사 안 도와줍니다.”
“알았어. 안 할게. 안 하면 되잖아.”
이태경 회장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아버지고 보배그룹의 회장이었다. 자신이 못미더운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아들의 잔소리를 듣는 건 거북했다.
진우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후우, 아버지. 그 문제는 제가 부대를 통해서 따로 알아보도록 할게요. 그러니까 제가 다시 연락 드릴 때 까지 절대 최 사장하고 어떤 일도 하지 마세요.”
“네가 알아본다고? 정말 그렇게 해 줄래?”
“만에 하나 정말로 신화그룹에서 협력업체를 구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우리 군부대 쪽에도 소식이 들어오겠죠. 아시죠? 저 사단장님과 친한 거.”
“어어. 얘기는 들었다. 지난번에 얘기해잖아.”
“그러니까요. 제가 사단장님께 얘기하면 바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설마 사단장님께서 신화그룹에 아는 사람이 한 명 없겠습니까.”
“그래?”
이태경 회장의 눈이 번쩍 떠졌다.
“네. 그러니까 괜히 최 사장 말 듣지 마세요. 기다려 보세요. 제가 한번 알아볼 테니까요.”
“그래. 알았다. 그렇게 해줘. 역시 내가 장남 하나는 잘 뒀다니까.”
이태경 회장이 든든한 얼굴로 진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모습을 보며 진우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이고 아버지······.’
진우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태경 회장과 얘기를 마친 후 진우는 어머니가 차려주신 든든한 점심을 먹었다.
“저 잠깐 나갔다가 올게요.”
“저녁에 들어오니?”
“네.”
진우는 문제의 진정한 어둠의 여왕개미 핵을 팔기 위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