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07. 휴가는 알차게 (5)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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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핵을 처분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는 상위 길드나 전문처리 업체에게 넘기는 것이었다.
보배그룹도 몬스터 부산물을 처리하는 업체지만 개인 물건은 받지 않았다.
반면 명수유통은 개인 물건을 받는다. 그렇다고 진정한 어둠의 여왕개미 핵을 명수유통에 넘길 생각은 없었다.
명수유통은 이 핵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뿐더러, 설사 알아봐도 어떻게든 가격을 후려칠 생각만 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경매에 올리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자신이 얻은 핵이 비쌀 것 같다면 경매에 올린다.
한데 문제는, 경매를 통해 고가의 물건을 팔다 보면 필연적으로 파는 사람의 신상이 알려지는 단점이 발생했다.
진우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신분을 숨겨야 했다.
그레이 게이트의 생존자로서 육군 본부 조사는 잘 넘겼지만 그렇다고 대중의 인식까지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대중들은 여전히 진우 혼자만 살아 나왔다고 생각했다. 같이 들어간 부하들은 다 죽었는데 혼자만 뻔뻔하게 나왔다며 비난을 하고 있었다.
물론 육군 본부에서도 진우의 사정을 애둘러 잘 설명했다.
하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S급 몬스터의 핵을 경매에 내놓았다가 정체가 발각된다면 여러모로 곤란해질 수 있었다.
마지막은 블랙마켓, 흔히 말하는 암시장을 통한 밀거래였다.
블랙마켓의 최대 장점은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감출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진우는 세 번째 선택지인 블랙마켓을 통해 진정한 어둠의 개미 핵을 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일단 그 블랙마켓으로 자신을 안내해 줄 사람을 찾아 움직였다.
“어디보자. 여기였나?”
진우는 예전 군대에 입대하기 전 잠깐 몸담았던 길드로 향했다. 강원도의 힘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강힘길드였다.
입대하고 한 번 찾아온 이후로 한 번도 찾지 않았으니 무려 3년 만의 발걸음이었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네.”
진우는 피식 웃으며 강힘길드의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딩동!
그런데 아무런 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몇 번 더 초인종을 눌러봤지만 반응이 없었다.
“뭐지? 아무도 없나?”
그러면서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이 잠겨 있지 않고 열렸다.
“어? 열려있네. 계십니까?”
진우가 일부러 목소리를 내며 강힘길드 내부에 들어갔다. 플레이어들이 득실득실한 길드 사무실에 소리 없이 들어갔다간 침입자로 오해받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퀴퀴한 냄새만 날 뿐 예전 자신이 알던 길드 사무실이 아니었다.
그래도 강원도의 힘이 중소형 길드고 나름 이름값 있는, 강원도에서는 잘 나가는 길드이기도 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사무실은 방치된 지 몇 개월은 된 것처럼 먼지며 청소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뭐지. 망했나?”
진우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바로 뒤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망하긴. 오랜만에 와서 참 좋은 소리 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걸걸한 목소리였다. 진우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대번에 알았다.
“오오. 진철 형.”
진우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덩치 큰 곰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오오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나쁜 자식! 종종 찾아오겠다더니······. 이게 얼마만이야?”
진우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전에 강힘길드에 있을 때 길드에 뼈를 묻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원하는 길드에 들어갈 때 별다른 의미 없이 그런 식으로 말하곤 한다.
당시 길드장인 박진철도 뼈를 묻겠다고 하는 놈치고 1년을 버티는 놈을 보지 못했다며 진우에게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진우는 강힘길드에서 1년 넘게 생활을 하며 게이트 플레이어에 대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래서 박진철 길드장도 진우가 계속 길드에 남아주길 바랐다. 워낙에 성장도 빨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우가 게이트 플레이를 하는 과정에서 군인 체질이라는 특수 스킬을 얻다 보니 군대에 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보배그룹에서 새로운 사업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태경 회장이 군부대와 사업 관련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진우가 아들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때마침 실력 있는 지휘 장교 플레이어가 필요했던 군부대는 진우가 입대하면 보배그룹과 계약할 의향이 있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때 박진철 길드장이 말했다.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으면 돌아와. 길드 문은 활짝 열려 있으니 말이다.”
이에 진우도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천년만년 군대에 있을 것도 아니고. 가서 경험 좀 쌓다가 돌아올게요.”
그 때 까지만 해도 금방 돌아올 줄 알았는데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 있었다.
박진철 길드장이 푹 꺼진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네 소식은 들었다. 그레이 게이트에서 나왔다며.”
“어후. 우리 진철이 형 소식 빠르네. 그 얘기는 또 어디서 들었어요.”
“어디서 듣긴. TV 틀어봐라, 뉴스에서 엄청 떠들어 댄다.”
“뉴스에서 내 이름까지 나와요?”
“너 뉴스 안 보냐?”
“그걸 뭐 하러 봐요.”
진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처음 블랙 게이트에서 나오고 난 후에는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기 위해서 봤다. 그러나 TV에서는 하루 종일 빠져나오지 못한 천 명의 인원에 대해 떠들어댔다. 마치 큰 자연재해로 인해 죽은 사람들을 한 명씩 알려주듯이 말이다.
거기까지는 이해하는데 블랙 게이트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가십거리 취급하는 언론의 태도를 참을 수가 없어서 그때 이후로 TV를 보지 않았다.
“그런데 여긴 무슨 일이야? 벌써 전역한 거야?”
“전역은 무슨요. 휴가 나왔어요.”
“휴가? 그러고 보니 지금껏 휴가를 엄청 나왔을 텐데······. 5년 동안 한 번도 안 오냐. 네가 사람 새끼냐.”
“에이. 형. 한 번도 안 온건 아니거든요?”
“내 기억에는 한 번도 없는데?”
“바빴잖아요. 이해 좀 해주세요.”
“바쁘기는 개뿔! 군대에서 탱자탱자 놀다 와놓고선.”
박진철 길드장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누렇게 변한 냉장고 쪽으로 갔다.
“뭐 마실래?”
“근데 그거 작동은 해요?”
“인마. 이거 겉모습만 이럴 뿐이지 잘 돌아가. 그리고 뭐? 냉장고가 제 기능만 하면 되는 거지. 최신 냉장고를 사서 얻다 쓸려고.”
“하긴 뭐, 그렇긴 하죠.”
솔직히 길드에 있는 가전제품들 같은 경우 워낙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아 금세 고장이 나버리기 때문에 좋은 것 가져다 놓아봤자 소용이 없다.
한 달쯤 지나면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망가져 있고 누가 망가뜨렸는지 찾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길드 돈으로 고치고, 고치고 하다 보면 너덜너덜해지는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차라리 박진철 길드장처럼 적당히 괜찮은 중고제품을 싸게 가져와 고장 나면 바꾸고 그런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아무거나 줘요.”
“옛다, 아무거나.”
박진철 길드장이 던진 것을 받고 보니 오렌지주스였다. 그것도 예전 진우가 좋아했던 음료였다.
“이야. 오렌지주스 오랜만이네.”
진우가 따서 벌컥벌컥 마셨다. 냉장고에 얼마나 오래 있었으면 뼛속까지 시원해졌다.
“그런데 길드에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은 무슨······. 그냥 뭐 경쟁에서 도태된 길드의 운명이라는 것이 다 이런 거지.”
박진철 길드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뭔가 해탈한 표정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뭔가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것 같았다.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뭘 그걸 물어봐. 딱 보면 알잖아.”
“진짜 망했어요?”
“이 새끼가 진짜 말을 해도 꼭······. 아직 망한 것은 아니고 망해가는 중이다.”
“형! 어쩌다가요.”
“어쩌다가는 뭘 어쩌다가야. 알잖아. 실력 괜찮은 애들은 전부 다 대형 길드로 스카우트되어서 가고 싶어 하는 거 말이야. 그렇게 한 명 두 명 가고 나면 지들만 가냐? 미운 정 고운 정 든 친구고 동료고 한 명씩 부르고 하지.”
“그렇게 다 빠져나갔다고?”
“그러는 너는? 너는 군대 간다고 1년 좀 지나니 나가버렸잖아.”
“에이, 형. 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사정이 좀 다르죠.”
“다르긴 뭐가 달라? 아버지 회사 때문에 간 거잖아.”
“그렇죠.”
“걔들 역시 다 먹고살자고 가는 거 아니야. 그런 애들을 내가 어떻게 막아! 길드에서 제대로 해준 것도 없는데······.”
“에효······.”
박진철 길드장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너무 좋았다. 좋은 플레이어이지만 길드장이라면 사람 욕심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계약을 할 때도 깐깐하게 하고 면접을 볼 때도 의무적으로 몇 년은 함께해야 하고 그런 조항들이 없었다.
진우도 맨 처음에 강힘길드에 들어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설마 형 혼자 있는 것은 아니죠?”
“그냥 뭐······. 미숙이하고······.”
박진철 길드장은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 진우가 피식 웃었다.
“이야. 그래도 미숙이 누나는 안 갔네요.”
“야! 미숙이가 가긴 어딜 가! 그나마 우리 길드 미숙이 때문에 버티고 있는 건데 미숙이 다른 곳으로 가면 우리 길드 간판 내려야 해.”
“오우, 형. 알긴 아네요.”
안미숙과 박진철 길드장은 소위 말해 부랄친구였다. 어릴 적부터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그녀다 보니 볼 것 못 볼 것 다 본 사이였다. 심지어 어릴 때는 함께 목욕도 한 사이라고 했다.
워낙에 친하게 지내다 보니 어쩌다가 물어본 적이 있다. 둘이 사귀냐고 말이다.
그때마다 안미숙이 정색하며 한마디만 더 하면 입을 찢어버리겠다며 악담을 했다.
그렇지만 박진철 길드장 옆에서 가장 잘 챙겨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 역시 안미숙이었다.
남은 플레이어가 아무도 없는데도 안미숙이 계속 박진철 길드장과 함께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예전 안미숙이 게이트의 틈에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그걸 박진철 길드장이 구해준 것이다.
물론 박진철 길드장이 직접 구해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알고 지내던 길드에 의뢰까지 하면서 안민숙을 구출했다.
보통 이런 일이 발생하면 국가나 군부대에서 출동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 시간이 지체되기 때문에 열에 아홉은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그러나 박진철 길드장은 친구라고 개인 사비까지 동원해 안미숙을 구하러 갔다.
다행히 구조대가 도착하면서 안미숙은 구조가 되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박진철 길드장과 안미숙이 각성을 해버렸다.
어쩌면 둘이 게이트에서 고생하는 과정에서 게이트에 감화된 것인지도 몰랐다.
그때 박진철과 안미숙은 괜찮은 길드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수준 높은 마법사로 각성한 안미숙과 달리 박진철은 각성 등급이 낮았다.
D등급.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발에 채일정도로 많은 게 D등급이었다.
박진철은 낮은 등급 탓에 길드에서 잔심부름만 하고 게이트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이대로 있을 수 없어서 스스로 독립을 했다.
D등급 플레이어가 길드를 만드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