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07. 휴가는 알차게 (9)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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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그때는 정말 재미있었는데······.”
“말도 마. 진철이 너도 기억하지?”
“뭘?”
“아니, 얘 말이야. 그때 게이트에서 함정인지도 모르고 빨려 들어갔잖아. 뭐 쫓아간다고.”
“아. 그때? 이야 난 쟤 미친놈인 줄 알았다. 안 된다고, 안 된다고 했는데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뛰어가서는······.”
“그때는 진짜 얄미웠어요. 딱 한 대만 치면 죽을 것 같았거든요.”
“야. 그게 그 몬스터 주특기잖아. 앓는 척하는 거. 그때 함정에 빠진 녀석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때는 저도 몰랐죠.”
“인마. 너 미숙이 아니었으면 넌 뒤졌어.”
“그래서 제가 미숙이 누나를 좋아했다니까요. 누나도 알죠? 내 심정!”
“네 심정? 내가 어떻게 알아?”
“에헤이! 진짜······. 정말 몰라요? 누나도 누나의 목숨을 살려 준 누군가를 마음속에 품고 있거나. 그러고 있지 않아요?”
“아. 너 이진우. 진짜······. 너 일루와. 너도 오늘 박진철이랑 같이 묻히자.”
“누나 시체 둘을 처리하기에는 힘들죠.”
“나 안미숙이야. 아까 말했지. 지금이라도 나 도와줄 남자가 한둘이 아니야.”
“네네. 알겠습니다. 술이나 한 잔 받으시죠.”
술잔을 기울였다. 한참을 먹던 그때 오상진의 방광이 꽉 찼다.
플레이어라고 해서 취기가 안 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일반인보다는 잘 취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생리현상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억누를 수가 있는데 사실 게이트도 아니고 화장실 가기 귀찮아서 오줌을 참는 것 도 좀 그랬다.
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빨리 와라.”
“네네.”
진우가 화장실로 움직였다. 그러자 종업원이 바로 말했다.
“저기요.”
“네?”
“지금 가게 화장실이 공사 중이라 옆 건물로 가셔야 하는데······.”
“아. 그래요?
“네. 열쇠 드릴게요.”
종업원이 내민 열쇠를 받고 진우가 옆 건물 화장실로 갔다.
열쇠로 열어 화장실로 들어갔는데 누가 오바이트를 했는지 한쪽에 토사물이 있었다.
“아이씨······.”
진우가 비록 군인이고 게이트에서 별의별 것을 다 봤다. 몬스터의 내장까지 훑고 지나갔지만 이런 것은 좀 비위가 상했다.
반면 게이트에서 겪는 일든은 약간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비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게이트에서 피를 보거나 시체를 봐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소변을 보고 손을 씻은 진우는 손끝으로 물을 묻혀서 앞머리를 매만졌다.
군인이라서 머리가 짧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스타일이 있었다.
한참 머리를 만지던 진우가 입을 열었다.
“아니지. 내가 왜? 더럽게 깨진 전여친한테 잘 보일 일 있어?”
진우가 손을 탁탁 털며 나왔다. 괜히 머리에 힘을 줬다가 김미영이 보기라도 하면 비웃음을 살 것 같았다.
그렇게 화장실을 나와 가게로 돌아가려는데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진우야.”
흠칫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구석에 김미영이 서 있었다.
“오랜만이네.”
진우가 자연스럽게 말했다.
“어, 오랜만. 잘 지냈지?”
“나야 뭐······. 너 뉴스 안 봤어?”
“봤지. 너 그레이 게이트에서 살아 돌아왔다면서?”
“응. 그렇게 됐네.”
“뉴스에서 너 얘기 많이 하더라.”
진우가 피식 웃었다.
“그래서 뭐? 너도 같이 욕이라도 해 주려고 왔어?”
“무슨 욕이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너를 모르니. 너랑 1년을 만났는데.”
그 1년이라는 말에 진우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진우와 김미영은 거의 1년을 사귀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진우와 만나는 동안 다른 남자와 거의 반년 이상을 만나고 있었다.
한마디로 진우와 6개월을 만나고 난 후 양다리를 걸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미영은 진우와 새로운 남자와 저울질을 하더니 결국 그 남자에게 넘어갔다. 덕분에 얼마 있지 않아 진우도 길드를 그만두고 군대로 갔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군대에 입대를 하게 된 원인 중에 김미영과의 이별이 영향을 받은 것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진우는 김미영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었다. 하지만 강원도 길드 바닥은 좁아서 오다 가다 얼굴을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생각도 정리할 필요가 있었고 스킬까지 얻었으니 군대만큼 좋은 곳이 없었다. 그래서 군대를 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 자신의 앞에서 1년 타령을 하니 어이가 없었다.
진우는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화장실 가려면 들어가. 그런데 조심해라. 누가 토해놨다.”
그러면서 김미영을 지나갔다. 그런데 그녀가 진우의 팔을 붙잡았다.
진우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뭐하자는 거야?”
“잠깐 얘기 좀 해.”
“얘기? 나에게 할 얘기가 있어?”
“응.”
“정말 나에게 할 얘기가 있단 말이지.”
“그래. 너에게 할 얘기가 있어서 기다리고 있었어.”
“야, 김미영. 아니, 김미영 팀장님.”
“너 그렇게 정 없게 부르지 마.”
“그럼 내가 이 와중에 정 있게 불러야 할까?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 잊어버렸어?”
“너 설마 아직도 그 일 때문에 화가 나 있는 거야?”
“아직도? 하! 어이가 없네. 본인은 시간이 지나서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 이러고 있는 건가?”
“그때는 내가 사과했잖아.”
진우가 코웃음을 쳤다.
“사과? 무슨 사과? 나보다 돈 더 많은 남친 만났으니 나하고는 헤어져야 할 것 같다고 했던 그거?”
진우의 눈빛에는 경멸이 가득 차 있다.
“그게 사과야? 일방적인 통보였지.”
“진우야 그때 네가 상처받은 걸 알겠는데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우리 한때는 사랑했잖아.”
“그래. 한때는 사랑했지. 정말 너하고 사랑했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그 와중에 양다리였잖아. 내가 사랑한 만큼 너도 날 사랑은 했니?”
“당연하지. 나도 널 사랑했어.”
“아니! 너는 날 반만 사랑했지. 반은 박수혁 사랑한 것이 아니었어?”
“진우야. 너 정말 계속 이럴 거야?”
진우는 짜증이 확 치솟았다. 김미영의 팔을 확 뿌리치며 말했다.
“그러니까, 뭐하러 날 기다려. 내 입에서 좋은 소리 나올 거라 생각했어? 나도 너하고 헤어지고 맘 편하지 않았어. 그런데 뭐? 이제 와 만나면 달라질까?”
“그래도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너는 아직도 내가 미워?”
“맞아요.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왜 저에게 이러세요. 김미영 팀장님이 저에게 이러는 거 박수혁이 알아요?”
“······.”
진우는 매우 차갑게 말했다.
“아니면 나에게 미련 있어요?”
“어. 미련 있어.”
진우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뭐?”
“미련 있다고.”
진우는 어이가 없었다. 김미영이 말하는 미련이란 단어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마치 보배그룹에 미련이 있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김미영이 양다리를 걸쳤던 박수혁은 페가수스 부길드장이기 이전에 대원아이템이라는 강원도에서 유명한 아이템제작 회사의 아들이었다.
물론 장남은 아니고 차남이지만 그 당시에는 대원아이템이 보배실업보다는 훨씬 잘나갔다.
그 당시 보배실업이 게이트에서 나온 부산물들을 유통을 담당했다면 대원 아이템은 그런 부산물들을 가지고 고부가가치의 상품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아이템들을 가공하고 정제하면서 좀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산업 구조상 대원아이템이 보배실업보다 더 위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보배그룹은 완전히 다르다. 강원도 군부대와 거래를 통해 크게 급부상한 보배그룹은 대원아이템보다는 크게 성장을 했다.
게다가 보배그룹도 자체적으로 아이템 제작에 들어가면서 대원아이템이 힘든 상황이었다.
물론 얼마 전에 부도의 위기도 맡긴 했지만 그 일이 풀리고 나서 다시 보배그룹이 바쁘게 돌아가는 것을 어디서 들은 걸까?
진우를 잡는 김미영의 얼굴에 탐욕이 깃들었다.
하지만 진우는 돈 가지고 사람을 저울질하는 김미영하고는 두 번 다시 상종하고 싶지 않았다.
“됐으니까. 그렇게 좋다던 박수혁 씨하고 백년해로하세요.”
진우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겠다는 듯 찬바람 쌩 불며 몸을 돌려 가게로 갔다. 그런 진우를 애타게 부르는 김미영이었다.
“진우야! 진우야!”
김미영이 불렀지만 진우는 대답 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진우가 자리에 앉자 안미숙이 힐끔 입구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만났어?”
“누구요?”
“누구긴. 김미영이지.”
“아, 네에.”
“그 미친년이 뭐래?”
“우리 분위기도 좋은데 김미영 얘기하지 말죠.”
바로 박진철이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러자. 미숙이 넌 눈치도 없어. 뭐하러 김미영 얘기를 해.”
“뭐래. 미친······. 네가 궁금하다고 방금 전까지 떠들었잖아. 방금 뭐라고 그랬어! 몰래 엿들으러 가자고 했잖아.”
“내, 내가 언제?”
“이야. 진철이 형. 언제쯤이면 길드장으로서 진득한 모습을 보여 줄 거야.”
“풉!”
안미숙이 바로 웃었다.
“진득? 진우야. 꿈 깨. 얘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그런 모습 못해.”
박진철이 괜히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형이 걱정되어서 그랬어. 내가 설마 너랑 김미영이랑 물고 빨고 할 것 같아서 그랬니.”
“형. 아무리 그래도 그런 더러운 상상은 하지 말죠.”
“알았어. 자자, 마시자.”
박진철이 맥주잔을 들었다. 진우도 안미순도 함께 잔을 부딪치며 마셨다.
그렇게 박진철이 분위기를 살리려고 노력했지만 김미영과 나눴던 대화 때문일까?
진우는 술을 마실 기분이 아니었다.
그런 진우의 표정을 읽은 안미숙이 말했다.
“진우야. 그러면 우리 여기까지만 마시자.”
박진철이 안미숙을 툭 쳤다.
“아, 왜! 이제 시작인데.”
“내일 진우 데리고 거기 가기로 했잖아.”
“맞다. 거기 가기로 했지.”
“미숙이 누나도 같이 갈 거죠?”
“그럼 내가 같이 가야지. 막말로 얘 믿고 어떻게 거길 가니. 나라도 있어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지.”
“역시 두 사람 원 플러스 원! 환상의 조합!”
“야이씨. 원 플러스 원이라니.”
그러고 있다가 박진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누가 원이고, 누가 플러스 원이야?”
안미숙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박진철 그걸 몰라서 묻냐?”
“그래. 내가 플러스 원하자.”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진우가 피식 웃었다. 계산대 앞에서 진우가 계산하려고 했다.
그런데 기어코 안미숙이 계산을 했다.
“어이구 우리 길드에 일거리 주셨는데 제가 사야죠. 선생님.”
“무슨 삼겹살에 선생님 소리까지 나와요.”
“야. 이 바닥에서는 말이다. 잘나가는 사람이 형이고. 선생님이야.”
“그걸 아는 놈이 내게 이래!”
“너랑 나랑 그런 사이는 아니지.”
진우가 바로 캐치하며 물었다.
“무슨 사이인데요.”
안미숙이 바로 정색하며 소리쳤다.
“아 쫌!”
그렇게 가게를 나온 세 사람. 안미숙이 슬쩍 얘기를 꺼냈다.
“이왕 왔는데 올라가서 커피나 마시고 가.”
진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됐습니다. 두 사람의 오붓한 보금자리를 헤치고 싶지 않네요.”
“에헤이. 그게 아니라니까.”
박진철이 슬쩍 안미숙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진우가 인사를 했다.
“편히 주무십시오. 저 먼저 가겠습니다. 내일 봐요.”
“그래. 점심때까지 와.”
“알겠어요.”
진우가 손을 흔들며 두 사람에게서 멀어졌다. 가는 진우를 보며 안미숙이 입을 열었다.
“진우가 설마 눈치를 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