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07. 휴가는 알차게 (10)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뭘?”
“우리 같이 사는 거.”
“아까 다 말했잖아.”
“뭔 소리야. 내가 잡아뗐잖아.”
박진철이 속으로 웃었다.
‘어후. 설마 모르겠냐. 여기서 헤어졌는데. 게다가 그렇게 난리를 피웠는데.’
하지만 안미숙은 여자이고 아직 두 사람은 이제 막 오랜 썸을 지나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단계였다.
그래서 안미숙의 기분을 맞춰줘야 했다.
“모르겠지. 우리가 설마 만나고 있을 거라 생각하겠어.”
“그렇겠지?”
“그럼. 그리고 만약에 진우가 알게 되더라도 우리 이해해 줄 거야.”
“그랬으면 좋겠다.”
“가자 자기야!”
“그래.”
방금 전까지 진우 앞에서 못 잡아먹듯이 싸우던 두 사람이 서로 팔짱을 끼며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
진우가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집으로 향하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씨익 웃었다.
‘훗! 급하셨나 보네.’
진우의 시선이 왼쪽 사선으로 향했다. 그곳에 폐공장이 있는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진우의 발걸음이 집이 아닌 폐공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인적이 드물고 어둠은 더욱 짙어졌다. 그때 뒤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형씨!”
***
“뭐 먹을래?”
커피숍에서 휴대폰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고 있던 박수혁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김미영이 시큰둥한 반응으로 말했다.
“몰라.”
“왜? 배 안 고파?”
“그냥······.”
“야. 밥 먹을 시간 다 되었잖아. 왜? 뭐 먹었어?”
“아니.”
“김미영. 너 진짜 자꾸 이럴래?”
“내가 뭘?”
“야! 내가 지난번에 아티팩트 안 사줘서 그래?”
“그런 거 아니거든?”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지금 차갑게 구는 게 그것 때문에 그런 거잖아. 그리고 내가 안 사준다고 그랬어? 그거 재고가 없어서 새로 나오면 바로 사준다고 그랬잖아.”
박수혁의 말에 김미영이 코웃음을 쳤다.
“흥! 거기 제품 완판되면 추가로 생산하지도 않거든?”
“야! 내가 물어봤거든? 추가로 생산한다고 했어.”
“됐어.”
김미영은 아예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미 맘이 상해버린 상태여서 박수혁이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안 사준다고 한 것도 아니고 추가 생산되면 사준다고 했잖아. 그리고 추가 생산 안 되면 다른 거 사주면 되잖아. 비슷한 걸로 말이야.”
“됐어요. 너나 많이 써.”
“야!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라. 기본 가격이 3천만 원밖에 안 되는데 5천만 원이나 더 주고 어떻게 사.”
“알았어. 너 잘났어. 너 엄청 똑똑해.”
“막말로 지나가는 사람 잡고 물어봐라. 3천만 원이면 사는 것을 1억 가까이 주고 살 사람이 있는지. 그게 제정신이냐고.”
“그래서 내가 뭐래? 알았다고 하잖아. 내가 알았다는데 왜 자꾸 그 얘기를 꺼내. 너 혹시 자격지심 있어?”
“뭐? 자, 자격지심? 야, 김미영!”
“아, 왜!”
“너 진짜······.”
박수혁이 얼굴을 와락 구겼다. 그 모습을 보던 김미영 역시 인상을 쓰며 고개를 홱 돌려 핸드폰을 봤다.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어? 됐다고 했잖아. 구차하게 자꾸 그 얘기를 꺼내고 있어.”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자. 그게 지금 알았다는 태도야? 솔직히 내가 그동안 너에게 얼마나 잘 해 줬는데 이러냐? 너에게 해 준 것이 얼마인데.”
“그래서 뭐? 지금까지 해준 것이 아까워? 그렇게 돈이 아까워서 나랑 어떻게 만났데? 그럼 헤어져!”
“야! 지금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그렇게 두 사람이 티격태격 거리고 있는데 딸랑 소리가 들리며 입구 문이 열렸다.
박수혁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그곳으로 페가수수 길드장인 안창기가 들어왔다.
박수혁이 바로 인상을 썼다.
‘아이씨. 여긴 또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안창기 역시 두 사람을 발견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두 사람 곁으로 간 안창기가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아직도 싸우고 있냐? 제발 적당히 좀 해라. 적당히!”
“안 싸우거든요.”
“하아. 부길드장에 여성팀 팀장이 매일같이 싸우고 있어봐라. 그럼 길드 분위기가 어떻게 될까? 제발 부탁이니까 두 분 적당히 좀 하세요. 네?”
안창기의 말에 박수혁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박수혁은 페가수스 길드의 부길드마스터.
안창기가 게이트에 들어가면 길드를 이끌어야 할 중차대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박수혁의 서열은 2위가 아니라 3위였다.
박수혁의 여자 친구인 김미영이 여성 플레이어 팀장 자리를 맡고 나서 실질적으로 박수혁보다 입김이 세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된 것에는 박수혁의 잘못이 컸다.
공과 사를 분명히 해야 하는데 김미영이 페가수스 길드에 들어왔을 때부터 온갖 편의를 봐줬다. 그렇다 보니 김미영이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갔다.
안창기도 처음에는 저러다가 말겠지 했다.
박수혁이 여자가 바뀌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만약에 박수혁이 다른 여자라도 만나면 김미영은 알아서 도태될 터.
그래서 굳이 신경 안 쓰려고 했다.
그런데 박수혁 이 미친놈이 김미영을 4년이 넘도록 만나고 있었다. 심지어 만났다가 헤어졌다를 10번 이 넘도록 반복하고 있었다.
‘하아, 이만하면 헤어졌다고 보는데 아직도 김미영을 만나고 있네.’
솔직히 안창기는 김미영의 매력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예쁘장한 얼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길드에 김미영보다 예쁜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몸매도 빼어난 편도 아니었다.
이에 궁금증을 느낀 안창기는 몰래 박수혁에게 물었다.
“수혁아. 김미영의 매력이 뭐냐?”
그리고 박수혁이 하는 말이 압권이었다.
“형! 미영이 침대에서 완전 끝장이에요.”
그 말이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그 얘기를 듣고 난 이후로 안창기는 이 둘 사이에 끼고 싶은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다 무슨 일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한 달 전부터 두 사람 사이의 냉랭한 기운 때문에 길드 분위기가 완전 개판이 되었다.
그래서 김미영에게서 박수혁 좀 말려 달다는 메시지를 받고 어쩔 수 없이 나온 것이었다.
“너희는 밥은 먹고 싸우냐?”
“형은······. 이 와중에 밥이 넘어가요?”
“그러지 말고 뭐라도 먹어야지. 미영아, 뭐라도 먹자.”
“그래요.”
그러자 박수혁의 눈이 크게 떠지며 김미영을 쏘아봤다.
“웃긴다. 너 아까는 밥 먹기 싫다며?”
“내가 언제!”
바로 안창기가 나섰다.
“그만들 좀 해라. 우리 저기나 가자!”
“어디요?”
“삼겹살집!”
“에이, 형은 무슨 삼겹살집이에요.”
“그냥 삼겹살집 말고! 그 뭐냐 강힘길드 앞 삼겹살집 말이야.”
“아, 거기요?”
“솔직히 거기 삼겹살은 진짜 엄청 맛있지 않냐.”
안창기가 너스레를 떨자 김미영이 군침을 흘리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김미영을 보며 박수혁이 피식 웃었다.
‘핫. 이 와중에 삼겹살은 먹고 싶은 거지.’
박수혁이 어이없어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말했다.
“가요. 먹으러.”
“수혁이 네가 사는 거지?”
안창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는 형이 샀어요?”
안창기가 길드 마스터이긴 하지만 페가수수 길드가 엄청 잘나가는 길드는 아니었다. 게다가 요즘에는 중소형 길드의 설자리가 점점 줄어들다 보니 길드원들에게 편히 돈을 쓸 수가 없었다.
길드를 키우는 과정에서 이리 저리 대출 받은 것도 많았다. 지금은 상당 부분 갚은 상태이긴 했지만 나날이 나빠지는 길드 상황을 감안했을 때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그래서 안창기는 박수혁을 부길드장으로 삼았다.
실력은 떨어지지만 그의 집안이 대원 아이템이기 때문이었다.
예전만 못하지만 대원 아이템은 지역에서 알아주는 게이트 부산물 가공 업체.
그런 집안의 자식이다보니 박수혁 본인도 부길드 마스터로서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가요. 가. 내가 배 터지도록 먹게 해줄게요.”
“어후야. 그럼 길드원들도 좀 부를까?”
“아 좀!”
“왜 인마. 길드원들 어차피 많이 먹지도 않는데.”
“형! 지난번에 길드원들 회식하면서 거의 1억 쓴 거 알아요? 나 살다 살다 고기에 그렇게 환장하는 새끼들은 처음 봤어요.”
“야. 아무리 그래도 길드원에게 새끼가 뭐냐. 새끼가······.”
“그럼요?”
“······새끼 맞는 듯?”
빠른 태세 전환에 박수혁이 피식 웃었다.
“아무튼 빨리 가요.”
그렇게 세 사람은 터벅터벅 걸어서 강힘길드 근처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이곳 삼겹살집은 예전부터 유명했다. 고기가 맛있는 이유가 돼지를 게이트 안에서 키워서 도축한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그만큼 이 삼겹살집만의 특별한 뭔가가 있다는 소리였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위를 잠깐 확인하던 안창기가 말했다.
“오늘따라 사람 진짜 많네.”
그 때 종업원이 바로 다가왔다.
“세 분이세요?”
“네.”
“그럼 저쪽으로 앉으실게요.”
“그래요.”
세 사람은 종업원이 안내해 준 곳으로 갔다. 다행인 구석진 빈자리가 있었다.
박수혁이 인상을 썼다.
“구석은 별로인데······.”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자리에 앉았다.
종업원이 물을 가져오고 김미영이 슬쩍 눈을 돌렸다.
예전에 강힘길드에 있을 때 여기가 주 회식 자리였다. 여기만큼 싸고 맛있는 고깃집은 없었다.
하지만 페가수스로 옮기고 나서 여기는 거의 잘해야 1년에 한 번이나 왔던 것 같다.
‘오랜만에 와서 그런가, 인테리어가 바뀐 것 같기도 하고······.’
김미영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렸는데 어디서 많이 본 인물들이 앉아 있었다.
‘진철이 오빠네.’
그 옆에는 안미숙이 앉아 있었다. 김미영이 피식 웃었다.
‘미숙이 언니는 아직도 있구나.’
김미영이 고개를 돌리려는데 갑자기 자석에 끌리듯 어딘가로 시선이 향했다.
뒤통수만 봤는데 그 주인이 누군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저 사람은 설마······.’
안창기가 그런 김미영을 보며 물었다.
“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났어?”
안창기가 고개를 돌렸다가 박진철과 바로 눈이 마주쳤다.
“아, 시발······.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그 소리에 단말기를 보고 있던 박수혁이 고개를 들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수혁아 저쪽에······.”
“네?”
박수혁이 고개를 들어 봤다. 박진철을 확인하고 바로 인상을 썼다.
“저 인간들은 죽지도 않나······. 아니 여긴 어쩐 일이래요?”
“그러게나 말이다. 길드는 아예 폭상 망해가고 있다고 하던데······. 팔자 좋게 삼겹살 구워먹고 있는 거 보면 아직 버틸 만한가 보다.”
“내버려 둬요. 신경 쓰지 말자고요.”
박수혁이 말을 하고는 다시 시선을 휴대폰으로 향하는데 멈칫했다. 박진철 안미숙 외 제3의 인물이 신경이 쓰였다.
‘잠깐만, 저 새끼 설마······.’
박수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뒤통수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박진철과 안미숙하고 어울리는 것을 보면 이진우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시선을 김미영에게 향했다.
그런데 김미영 역시 그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핫! 시발······. 어이가 없네.’
박수혁이 단말기를 내려놓으며 김미영에게 말했다.
“김미영. 너 지금 뭐 하냐?”
“뭐가?”
“너 지금 어디 보고 있냐?”
“뭐? 내 눈 가지고 어딜 보든 뭔 상관이야.”
“누구 봤냐고!”
박수혁이 목소리를 깔며 묻자 김미영이 말했다.
“진철이 오빠 봤다. 왜?”
“확실해?”
“그럼 확실하지.”
“박진철 아니고 그 옆에 있는 쟤 이진우지?”
“뭐?”
“이진우잖아.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