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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숨긴 귀환자-74화 (74/177)

힘을 숨긴 귀환자 74화

09. 현질의 맛(3)

언제 이런 소원이 있었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방어구를 보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에 진우가 피식 웃었다.

진우는 디카페인 출입증이자 신용카드가 되어버린 황금빛 감도는 카드를 내밀었다.

“이걸로 결제해 주세요.”

“네. 바로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박진철은 10년이 넘도록 플레이어 활동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사용해 보지 못했던 최신식 방어구 세트 아이템을 얻게 되었다.

박진철이 방어구를 착용하고 나오자 종업원이 다가와 말했다.

“배송은 원하는 곳으로 저희가 직접 배달해 드립니다. 각인까지 다 완료한 후에 진행될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박진철이 방어구를 도로 벗은 후 내려놨다. 진우가 모든 계산을 마친 후 방어구점을 나왔다.

안미숙이 미소를 지으며 박진철 옆으로 다가왔다.

“자기야, 좋아?”

“당연히 좋지.”

그리고 가게는 나오는 진우를 바라봤다.

“진우야.”

“네, 형.”

“진짜 고맙다. 이 은혜를 어떻게 다 갚냐.”

“에이, 형. 부담 갖지 말라니까요. 솔직히 형이 저 처음에 들어왔을 때 많이 알려줬잖아요. 형 말이 맞아요. 형에게 착실히 배우지 않았다면 그레이 게이트에서 살아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빈말이 아니라 진짜 게이트에 관한 모든 것을 박진철에게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박진철이 사람 좋고 허당 기가 있긴 하지만 게이트 안에서는 정말 철두철미한 사람이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심정으로 게이트 공략을 해왔기에 10년간 길드를 운영하면서도 사망자가 한 명도 없었다. 게이트 내에서는 철저히 안전 위주로 공략을 했기 때문이었다. 진우 역시 그런 모든 것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

그런 두 사람의 대화에 안미숙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기는 참 좋겠다.”

“그렇지? 자기도 부럽지?”

“아니, 그게 아니라. 진우가 자기를 저렇게 생각해 줄 줄은 몰랐는데.”

안미숙의 말에 박진철은 괜스레 코끝이 찡해졌다.

“그러게, 내가 앞으로 플레이어를 계속해야 하나 싶었거든. 진우가 저런 말을 해주니 좀 감동이네.”

박진철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안미숙이 바로 박진철을 툭 쳤다.

“울긴 왜 울어. 벌써 갱년기야?”

“갱년기는 무슨…….”

“무슨 남자가 눈물이 이리도 많아.”

“그래서 싫어?”

“싫다기보다는……. 아무튼 여기서 울지 마. 창피하니까.”

“알았어.”

진우가 말했다.

“형은 살 것 다 샀죠?”

“응! 저거 하나만 있으면 다 필요없어.”

박진철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안미숙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맞다. 자기야. 아까 산 건?”

“아아! 자, 잠깐만 나 금방 환불하고 올게.”

박진철이 후다닥 뛰어갔다. 안미숙이 그런 박진철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진우가 물었다.

“뭐 사셨는데요?”

“으응. 방어구 몇 개.”

“얼마짜리인데요.”

“다해서 8천2백.”

진우가 깜짝 놀랐다.

“그거 쓸 수 있는 거예요?”

“으응……. 연식이 좀 오래되긴 했는데 쓸 수는 있어. 괜히 말도 안 되는 것을 샀겠니. 어쨌든 고맙다. 내 남친 생각해 주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

“에이……. 뭘 그렇게 생각해요. 형이나 누나는 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요.”

“뭐야. 나까지 그렇게 생각해 주는 거야? 이거 너무 감동인데?”

“아, 됐어요. 빨리 가요.”

진우는 괜히 민망한지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때마침 환불하러 갔던 박진철도 뛰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이번에 향하는 곳은 안미숙을 위한 마법 서적이 있는 곳이었다.

“누나는 마법 서적이 필요하다고 했죠?”

“응.”

“그럼 스킬북 상점을 가야겠네요.”

진우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스킬북 상점을 찾았다.

“저기 있네요.”

딸랑!

방울 소리가 들리며 그곳으로 세 사람이 들어갔다. 각 책장에 잘 진열된 스킬북들을 보며 안미숙의 눈빛이 반짝였다.

“와, 많다.”

박진철도 스킬북을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진우가 안미숙을 돌아보며 물었다.

“누나는 불 계열이죠?”

“응.”

안미숙의 마법은 불 마법이 주특기다. 강력한 불 마법으로 적을 순식간에 녹여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플레이어 등급이 올라가고 경험이 쌓이는 것에 반해 익힌 마법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안미숙은 약간 정체가 온 상태였다.

진우가 턱에 자신의 손을 가져갔다.

“으음. 그러니까 누나는 지금 강력한 스킬 한 방이 필요하다는 거죠? 일종의 필살기 같은?”

“뭐, 그렇지. 그런 것들은 너무 비싸서 엄두 못 내고 그랬거든. 그런데 네가 운영비도 보태주고 그러니까. 이번에 큰맘 먹고 한번 질러보려고.”

“잘 생각하셨어요.”

“아, 그리고 진우야.”

“네?”

“너에게 말은 안 했는데 스킬북 사는 데 부족하면 길드 운영비에서 쓰고 나중에 내가 채워넣으면 안 될까?”

“그렇게 해요. 원래 다 그렇게 하는데 왜 그래요. 그리고 우리 길드에서 메인 딜러는 누나인데.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요.”

“고맙다. 진우야.”

“아이참!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요.”

“아니야. 이 은혜 잊지 않을게.”

“그러지 말라니까!”

안미숙은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커 진우에게 재차 고마움을 전달했다.

그러곤 스킬북을 찾아 열심히 상점을 돌아다녔다.

안미숙은 자신의 주특기인 불의 마법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스킬북을 쭉 훑어보던 안미숙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왜요?”

“으응, 내가 원하는 공격 마법이 없네.”

“그래요?”

안미숙은 몇 번 더 스킬북을 확인하고 올렸다가 내렸다가 그랬다.

“그것도 아니에요?”

“등급이 낮네.”

스킬북에는 두 개의 레벨이 존재했다.

하나는 마법 스킬 레벨. 다른 하나는 마법 숙련 레벨.

마법 스킬에는 마법사 협회에서 정한 전체적인 등급이 있었다. 이걸 마법 스킬 레벨이라 불렀다.

예를 들면 불 마법의 기본은 화염구, 즉 파이어볼 마법이었다. 뜨거운 불덩어리를 통해 몬스터에게 데미지를 입히는 마법으로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기 때문에 불 마법에서는 최하 등급으로 분류가 됐다.

하지만 최하 등급 마법이라고 해서 무시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파이어볼을 꾸준히 연마해서 A등급 이상의 스킬 숙련도를 만들면 어마무시한 파괴력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런 숙련도를 마법 숙련 레벨로 표기했다.

같은 스킬북이라 해도 숙련 레벨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숙련 레벨을 올리는 게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파이어볼을 익힌 최하급의 몬스터를 사냥해 파이어볼 스킬북을 얻었다면 십중팔구 숙련도는 낮을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 등급이 낮다는 건 전체적인 스탯이 낮다는 뜻이라 마법 숙련도 자체를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숙련도가 낮은 스킬북을 익힐 경우에는 거의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쌓아나갈 수밖에 없다.

반면에 상위 몬스터가 떨어뜨린 스킬북은 기본적으로 스킬 숙련도가 높았다. 그래서 그걸 익히는 것만으로 상위 몬스터가 쌓아 올린 숙련도를 흡수해 보다 강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처음 마법에 입문한 플레이어들은 싼 스킬북을 찾지만 어느 정도 경험 많고 수준이 있는 마법사들은 가능하면 기본 숙련 레벨이 높은 스킬북을 찾는다.

그런데 이곳에는 안미숙이 찾는 그런 숙련 레벨이 높은 스킬북이 없었다.

“왜? B등급도 없어?”

“없네. 거의 다 C등급이네.”

“아까 그건 B등급이었잖아. 그건 별로 끌리지가 않고?”

박진철이 물었다. 안미숙이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어떻게 한다. 자기도 이번 기회에 스펙업을 좀 해야 하는데.”

그러고 있는데 뒤따라온 손미현이 말했다.

“저기, 괜찮으시다면 VIP 전용 거래소를 안내해 드릴까요?”

“VIP 거래소요? 그런 곳이 있었어요?”

“네. 그런 곳이 존재합니다. 고객님처럼 VIP 고객님을 위해 따로 마련된 곳이에요.”

“그런 곳이 있었다면 진즉에 말해주시죠.”

박진철이 괜히 짜증을 냈다. 그도 그럴 것이 30여 분 동안 스킬북을 들었나 놨다 했으니 툴툴댈 만했다.

하지만 손미현도 어쩔 수 없던 것이, 무작정 그곳으로 끌고 가려는 모습으로 비치면 매매를 강요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규정상 필요한 것들이 있을 시에만 조언하게 되어 있었다.

물론 앞으로 자주 만나게 된다면 즉시 그곳으로 안내를 하겠지만 말이다.

“그쪽으로 안내해 주세요.”

“네. 한 층 더 올라가면 됩니다.”

손미현의 안내를 받아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구석진 곳으로 갔다.

그곳엔 역시나 고급진 스킬북들이 있었다. 그중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스킬북을 들었다.

“헉!”

안미숙이 화들짝 놀라며 헛바람을 삼켰다.

“왜요, 누나?”

“잠깐만 있어 봐.”

안미숙이 재차 스킬북을 확인했다. 서서히 안미숙의 얼굴이 환해지며 스킬북을 손에서 떼지 못했다. 박진철이 다가와 물었다.

“왜 그래? 무슨 문제 있어?”

“이거 불의 심판 스킬북이야.”

“불의 심판?”

불의 심판은 불의 마법사들 중 원하는 몇 개의 궁극기 중 하나였다.

물론 불의 심판보다 더 강력하고 파괴력이 넘치는 마법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마법들은 거의 다 S등급으로 분류되는 마법들이었다.

안미숙은 현재 A등급 플레이어였다. 세부등급은 A7 정도 되었다. 그래서 S등급 마법을 익힌다 한들 실전에서 써먹을 수가 없었다. 익히는 것 자체가 일인 데다가 마나 소비가 어마어마할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안미숙이 배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스킬은 불의 심판이었다.

불의 심판은 A등급 최상위로 분류된 마법으로 마나 소비량이 크지 않고 숙련도에 따라서 범위 공격도 가능했다. 무엇보다 파괴력이 크고 추가 대미지까지 이어진다.

한 방에서 끝나지 않고 누적 대미지가 쌓이는데 공격이 추가로 적중되었을 때 쌓였던 대미지가 폭발해 더 큰 피해를 입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불의 심판은 궁극으로 익히게 될 경우 대상의 마법 방어력까지 완전히 무효화시키는 효과도 들어가 있다.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불의 심판 스킬북은 잘 나오지 않아 가격이 어마어마했다. 때문에 그런 불의 심판 스킬북이 이곳에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안미숙이 점원을 보며 물었다.

“이 스킬북, 불의 심판 맞죠?”

“네. 바로 알아보시네요. 맞습니다.”

“이거 얼마나 해요?”

“네. 현재 경매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래요?”

안미숙이 바로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점원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즉시 구매가가 책정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안미숙의 표정이 환해졌다.

“즉시 구매가요? 얼마인데요?”

“현재 즉시 구매가로 120억에 측정되어 있어요.”

“120억이요?”

안미숙의 입에 쩌억 벌어졌다. 사실 안미숙이 스킬북을 구매하기 위해 모아둔 돈은 10억 정도 되었다.

거기다가 진우가 준 돈 중에 50억 정도는 일단 빌리기로 한 상태였다.

‘가만 그럼 60억인데…….’

안미숙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대략 2배의 가격이 필요했던 것이다.

진우가 준 돈을 다 털어도 이 스킬북을 사지 못했다.

“너무 비싼데…….”

박진철 역시 표정을 굳혔다.

“그러게. 무슨 스킬북 가격이 100억이 넘냐.”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진우가 나섰다.

“120억이면 바로 가져갈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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