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숨긴 귀환자 75화
09. 현질의 맛(4)
“네. 바로 가져갈 수도 있고, 저기 옆에 스킬을 익힐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요. 물론 계산만 된다면 말이죠.”
점원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안미숙이 바로 말했다.
“지, 진우야 왜?”
“누나 사요. 그냥 내가 빌려줄게요.”
“빌려준다고? 정말?”
안미숙은 처음으로 눈이 커졌다. 강한 소유욕이 용솟음쳤다. 진우가 피식 웃으며 박진철을 봤다.
“형은 어때요? 누나가 이 스킬을 배웠으면 좋겠죠?”
“미숙이가 익히면 당연히 좋지. 그렇지만 너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박진철도 사람이다. 아무리 염치가 없어도 120억이나 하는 스킬북을 넙죽 받을 수는 없었다.
“에이, 형. 죽을 때 이 돈 다 싸 가지고 가요? 다 필요할 때 쓸려고 그러는 거지. 우리고 아까 말했잖아요. 우리 길드에 메인딜러는 누나라고요. 메인딜러가 강해지는 것이 길드로서 당연히 좋아지는 거 아니에요?”
“진우야…….”
안미숙이 그런 진우를 바라봤다. 진우는 망설임 없이 카드를 꺼냈다.
“일단 이걸로 계산해 주세요.”
황금빛 감도는 무제한 카드를 즉시 내밀었다. 점원이 환한 웃음으로 즉시 계산을 마쳤다.
안미숙이 스킬북을 품에 안으며 말했다.
“진우야. 정말 고마워. 내가 이거 3년, 아니, 1년 안에 꼭 갚을게.”
“누나. 천천히 갚아도 되니까. 부담스러워하지 마요. 그리고 누나 나 예전에 길드 있을 때 내 목숨 열 번 넘게 구해줬잖아요. 내 목숨 그렇게 싼 편 아니에요. 그런데 뭘 이런 걸 가지고 그래요.”
“진우야 그래도…….”
진우가 저렇게 말을 하는 이유를 안미숙도 알고 있었다. 자기가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 그러지 말고 저러는 것을 말이다.
안미숙도 그 맘을 잘 알고 있었다.
“진우야.”
“응?”
“한번 안아봐도 돼?”
“으음……. 그건 좀 사절입니다.”
“칫! 매정한 놈!”
여기서 스킬북을 익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게이트 안에서는 제대로 스킬을 익힐 수 있는데 밖에서는 임시로 각인만 시킬 수 있다. 그냥 스킬북을 들고 다니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잠시만 나 각인시키고 올게.”
안미숙이 옆방으로 이동해서 스킬 각인을 하러 들어갔다. 30여 분이 흐른 후 안미숙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나왔다. 박진철이 바로 다가가 물었다.
“익혔어?”
“어. 나 어떻게 하지? 지금 당장 게이트에 들어가고 싶어 죽을 것 같아.”
“진정해, 자기야.”
안미숙이 바로 진우을 바라봤다.
“진짜, 진짜 고마워, 진우야.”
“에이. 그러지 말라니까요. 그보다 누나 더 살 것 있어요?”
“아니. 없어. 이거 하나면 돼.”
안미숙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마법사다 보니 기본적인 방어구는 필요가 없었다. 그런 것은 안미숙이 플레이어 활동을 하면서 착실히 맞춰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추가적인 구매는 필요가 없었다.
안미숙의 유일한 약점이 바로 필살기, 즉 궁극기 스킬이었다. 그것을 불의 심판을 배움으로 인해 해결이 되었다.
“진우야. 너는 뭐 살 것 없어?”
“저요? 으음…….”
진우가 잠깐 생각을 하다가 손미현을 바라봤다.
“저기 혹시 말이에요. 인피면구 같은 것은 있을까요?”
“인피면구요? 네, 당연히 있어요. 저 따라오세요.”
손미현의 얼굴은 잔뜩 들떠 있었다. 아까 박진철이 산 방어구 145억. 그것만 해도 자신에게 떨어지는 보너스가 1억4천5백이었다.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뜻밖의 행운을 만난 기분이었다.
처음 온 고객인데, 큰돈을 서슴지 않고 쓰는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자신을 귀찮게 하지도 않았다.
간혹 몇몇 VIP 고객들이 와서는 물건구매를 핑계로 치근대거나 그런 사람들도 있었는데, 진우는 매우 매너 있게 물건을 판매하고 구매를 했다. 그래서 손미현은 기분이 좋았다.
‘오늘 무슨 날인가? 일이 너무 잘 풀리고 있는데.’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진우와 함께 인피면구를 판매하는 곳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역시 이곳도 VIP 전용 상점이었다.
“혹시 쓸 만한 인피면구가 있을까요?”
“인피면구요? 혹시 이건 어떻습니까?”
가게 점원이 내민 인피면구는 뭔가 특색이 없었다. 그냥 살구색을 띤 하나의 면피처럼 보였다.
“이게 뭐죠?”
“아. 이것은 말이죠. 도플갱어 인피면구입니다.”
“네?”
“아시다시피 도플갱어는 타인의 외모를 완벽하게 구현하지 않습니까.”
“그럼 이 인피면구를 쓰면 본인이 원하는 얼굴로 바꿀 수 있다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오우, 괜찮은 것 같네요.”
진우가 감탄하고 있을 때 왼쪽 채팅창 불빛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저 깜빡거림은 확인을 하지 않아도 무슨 내용인지 알 것만 같았다.
“이건 얼마인가요?”
“이것이 좀 비싼 편입니다. 개당 20억 정도 합니다. 주의 사항도 있어요. 플레이어 등급보다 높은 몬스터를 만나게 될 경우 인피면구의 기능이 해지될 수 있어요.”
“기능이 해지돼요?”
“네. 원하는 외형이 풀릴 수 있어요. 그것은 염두에 두시면 됩니다.”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최대근, 김철수, 임백호가 쓰기 때문에 딱히 그런 걱정이 없었다. 게이트 안에서는 원래의 흑룡인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그보다 찢어지거나 문제가 있으면 A/S는 가능하죠?”
“그럼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 경우 2년간 무상으로 A/S가 가능합니다. 만약 수리가 되지 않을 경우 새 제품으로 교환을 해드립니다.”
“오, 좋네요. 알겠습니다. 네 개 주세요.”
“네 개요? 알겠습니다.”
진우는 곧바로 황금 카드를 내밀었다. 그때 박진철이 나섰다.
“잠깐만요.”
“네?”
진우 역시 그런 박진철을 봤다. 박진철이 슬쩍 웃으며 물었다.
“네 개나 구입하는데 서비스는 없습니까?”
“서비스요. 하하하. 네, 그럼 따로 고객님께서 필요한 아이템 몇 개를 사은품으로 넣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미숙이 슬쩍 다가와 박진철을 툭 건드렸다.
“오오, 자기……. 센스 있네.”
“당연하지. 무려 네 개나 구입하는데 말이야. 당연히 서비스를 받아야지.”
“그럼. 그럼.”
그리고 박진철이 궁금증을 느끼며 물었다.
“그런데 왜 네 개야? 우리 말고 또 줄 사람 있어?”
진우가 피식 웃었다.
“형, 미안한데 이거는 형하고 누나 줄 것이 아니야. 필요한 사람이 있어서 내가 대리로 구매하는 거야.”
“아, 그래?”
“좋다가 말았네.”
“왜요? 형 필요하면 추가로 구매하고요.”
“아니야. 됐어! 우리가 받은 것이 몇 개인데…….”
“맞아. 염치가 있지.”
박진철과 안미숙은 정말 쿵짝이 잘 맞는 듯 말을 주고받았다.
“괜찮아 인피면구 필요 없어.”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인피면구를 어디에 쓰냐며 물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전혀 묻지 않았다. 그렇게 진우는 인피면구까지 구매를 완료했다.
모든 쇼핑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 손미현이 공손한 자세로 말했다.
“쇼핑은 즐거우셨습니까.”
“네.”
“혹시 불편하셨다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나 개선할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아뇨. 그런 것은 없습니다. 잘 안내해 주셔서 덕분에 쇼핑 잘한 것 같아요. 그렇지 형?”
“어어, 그럼!”
박진철이 안미숙을 바라봤다. 안미숙은 불의 심판 스킬을 쓰고 싶은 생각에 손이 막 근질거렸다.
진우는 그녀을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손미현을 바라봤다.
“매니저님도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요. 이런 말씀 드리기 그렇지만 지금까지 제가 모셨던 고객님들 중에 가장 편안하게 가이드를 했던 것 같아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100억 이상 물품을 구입한 고객님들은 VIP등급이 자동으로 1년간 유지됩니다. 그런데 오늘 총 합산 금액이 215억이라서 제가 담당 매니저 권한으로 세 분 모두 VVIP 권한을 1년간 유지할까 하는데 괜찮으신 거죠.”
손미현의 말에 박진철과 안미숙의 표정이 밝아졌다. 박진철은 지난번에 디카페인에 놀러 왔던 게 전부였다. 하지만 진우에게 100억 투자를 받고 15억짜리 A급 장비 풀세트까지 사고 나니 앞으로 디카페인을 자주 올 것 같았다.
게다가 디카페인에 그냥 등급도 아닌 VVIP등급이니, 그것만으로 충분히 메리트가 있었다.
다른 플레이어의 부탁으로 물건을 구매해서 수수료를 챙길 수 있으니 말이다.
안미숙 역시 마찬가지였다. 디카페인에서 불의 심판 스킬을 구매했다. 향후 또 스킬 구매를 위해 디카페인 VVIP 상점을 이용해 고급 스킬북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아서 VVIP 등급을 1년간 유지해 준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손미현도 그냥 유지해 주는 것이 아니었다. VVIP 등급을 유지해 주는 것도 어찌 보면 일종의 상술이었다.
1년 안에 물건이나 스킬북을 구매하면 조금 싸게 구입할 수 있다. 그러면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VVIP 등급이 유지되는 1년 안에 무조건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VVIP 등급을 유지하려면 말이다.
VVIP 등급의 한 단계 아래 VIP 등급과 수수료 차이가 크다. 특히나 고가의 아이템을 거래할 때 수수료 차이가 몇억, 혹은 몇십억 차이가 날 수도 있다. 그러니 어찌 보면 족쇄나 다름이 없었다.
“아. 그리고 여기 제 명함입니다.”
손미현이 세 사람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혹시라도 다음에 저희 디카페인에 방문하실 때 미리 저에게 연락을 주시면 오늘처럼 번거로우실 일이 없도록 세팅하고 있겠습니다.”
“오, 그래요? 그것도 가능하세요?”
“네. 대신에 세 분 다 제 담당 고객님으로 등록을 해도 되겠습니까?”
담당 고객으로 등록이 되면 모든 업무는 손미현이 보게 된다는 뜻이다. 진우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박진철과 안미숙도 고개를 끄덕였다. 손미현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방문을 하실 때는 더욱 성심껏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손미현은 밖으로 안내를 했다.
“혹시 차량은 가지고 오셨습니까?”
“네.”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손미현이 귀에 꽂힌 이어폰을 통해 어딘가로 얘기했다. 잠시 후 디카페인 정문 입구 쪽으로 차량이 도착했다.
“혹시 괜찮으시면 차량 등록을 해도 괜찮을까요?”
“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그럼 차량도 등록해 놓겠습니다.”
손미현은 끝까지 미소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VVIP 스티커를 내밀었다.
“추후에 방문하실 때 차량 앞 유리에 부착해 주시면 더욱 편안하실 것입니다.”
“네. 고마워요.”
박진철이 스티커를 챙겼다. 차량 등록을 하면 번호판을 통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앞 유리에 있는 등록된 스티커를 봐도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게 준비를 해놓는 것이다.
한마디로 혹여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할까 봐, 이중으로 해놓는 것이었다.
박진철은 그 스티커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이야. 이것 봐라. 이게 VVIP 전용 스티커다. 진우야.”
“형. 그렇게 좋아요?”
“그럼! 나 플레이어 생활 하면서 이런 대접은 처음이다.”
안미숙도 바로 호응해 줬다.
“나도!”
그러자 진우가 입을 열었다.
“에이. 무슨 형은 그런 거 가지고 그래요. 그리고 걱정 마요. 앞으로도 계속 이런 대접 받게 해드릴게요.”
“진짜? 정말이지? 나 너만 믿고 있으면 되는 거지?”
“그렇다고 저에게 길드 넘기겠다는 소리는 하지 말고요.”
“이씨……. 아까비! 그냥 너에게 다 넘기고 꿀만 빨 생각이었는데.”
“어림없거든요.”
진우가 웃으며 뒷좌석에 앉았다. 박진철과 안미숙 역시 자연스럽게 운전석과 조수석에 착석했다.
“다른 곳에 들를 곳 없지?”
“네. 바로 강원도로 가요.”
“그래!”
차량이 출발하고 세 사람이 다시 강원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