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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숨긴 귀환자-76화 (76/177)

힘을 숨긴 귀환자 76화

10. 바로잡아야겠어(1)

그날 저녁 진우의 집으로 임백호 상사와 최대근 중사, 김철수 중사가 찾아왔다.

“와, 여기가 대장 집입니까?”

“장난 아니다.”

“뭐냐, 최대근? 넌 이런 큰 집 처음 보냐?”

“그래, 처음 본다.”

“으그, 이런 촌놈!”

“야! 이건 촌 따지고 그럴 급이 아니야. 클라스가 다르거든.”

“됐고, 두 사람 다 그만 좀 돌아다녀라. 정신 사납다. 앉아!”

임백호 상사의 말에 김철수 중사와 최대근 중사가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 있는데 잠시 후 진우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모처럼 이렇게 만났는데 우리 소주 한 잔씩 해야죠.”

진우가 술을 꺼냈다. 그것을 본 최대근 중사가 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와, 역시 우리 대장……. 센스 넘치십니다!”

“나야 늘 센스가 넘쳤지.”

“그런데 대장님 부모님께는 인사 안 드려도 되겠습니까?”

김철수 중사가 깜짝 놀라며 최대근 중사를 향해 말했다.

“으엑? 넌 그 얼굴로 인사를 드리겠다는 거야? 지금 그 얼굴 들이대면 엄청 놀라실 텐데?”

“뭔 소리야. 우리에겐 인피면구가 있잖아. 그걸 쓰고 인사드리면 되는 거지.”

그러자 진우가 입을 열었다.

“괜찮아. 부모님에게는 아는 플레이어들이 놀러 왔다고 위에는 올라오지 말라고 했어. 동생은 데이트가 있다더니 안 들어오네.”

최대근 중사가 눈을 반짝이며 바로 진우 옆으로 바짝 붙었다.

“대장 동생분 여자친구 있습니까?”

“왜? 내 동생 여자친구 있으면 안 되냐?”

“부러워서 그러죠. 내가 진짜 블랙 게이트 나가면 부대 근처 여자들 다 후리고 다닐 생각이었는데…….”

김철수 중사가 곧바로 코웃음을 쳤다.

“어이쿠, 후리기는 뭘 후려. 안다리나 후려.”

“뭐야. 지금 태클 거냐?”

“너 인마! 정신 차리라고!”

그러자 지켜보던 임백호 상사가 한마디 했다.

“너희들, 대장님 부모님 아래층에 계시는데 소란스럽게 굴 거야?”

그 말에 둘 다 입을 꾹 다물었다. 진우가 그런 임백호 상사를 보며 활짝 웃었다.

“역시 우리 행보관님밖에 없습니다.”

최대근 중사가 바로 화제를 돌렸다.

“자자, 대장. 일단 사 온 것부터 주십시오. 빨리요.”

최대근 중사의 말에 김철수 중사와 임백천 상사도 눈을 빛내며 진우를 바라봤다.

진우가 피식 웃으며 인피면구를 하나씩 건넸다.

“와, 이것이 인피면구구나.”

세 사람은 그것을 받아 들고 잠시 살펴보더니 곧바로 얼굴에 썼다. 그런데 정작 얼굴에는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

“뭐지? 왜 안 바뀌지?”

“잠깐만 있어 봐요. 뭔가 인식을 해야 한다잖아요.”

“그래? 그런 것도 있어?”

“정 궁금하면 한번 써보시든가요.”

“그래?”

진우가 매장에서 살 때는 포장이 되어 있는 상태였기에 꼼꼼하게 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살펴보니 안쪽이 징그럽게 생겼다. 마치 사람의 얼굴을 진짜 뜯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진우는 질색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후, 난 됐다. 안 쓸란다.”

최대근 중사가 바로 놀렸다.

“징그러워서 그렇죠?”

“아니거든.”

“아닌 게 아닌데요. 와, 우리 대장 은근히 소심하시다니까.”

진우가 바로 정색하며 말했다.

“최 중사!”

“네?”

“너 죽을래?”

최대근 중사가 바로 꼬리를 내렸다.

“대장 왜 그래요. 그냥 농담한 겁니다. 농담! 하하하…….”

그러고 있는데 김철수 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됐다!”

일제히 김철수 중사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김철수 중사 본인의 얼굴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세 사람은 깜짝 놀랐다.

“와……. 김 중사!”

“네?”

“너 예전의 얼굴로 변했다.”

“정말입니까?”

김철수 중사는 잔뜩 기대에 찬 눈빛으로 옆에 있던 거울을 들여다봤다.

김철수 중사가 거울을 들여다보며 씨익 웃었다. 입 모양도 움직여봤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자신의 의지대로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김철수 중사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진짜 좋은데요.”

“그럼. 그거 하나에 20억이야.”

“역시 게이트 아이템들은 비싼 것이 제대로네요.”

인피면구는 종류가 여러 개가 있다. 그중에서 상대방을 모방할 수 있는 도플갱어의 인피면구가 최고로 쳐진다.

그 외에도 마법적 기능을 더해서 저장된 얼굴 형태만 복제하게끔 저가의 인피면구도 있지만 저가의 인피면구는 아무래도 티가 난다.

너무 과하게 웃거나 하다 보면 부자연스러움이 확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인피면구는 잠깐 신분을 감출 때는 유용할지는 몰라도 오래 쓸 수는 없다.

그런데 진우가 준 이 인피면구는 얼굴에 딱 달라붙어 완전 자신의 얼굴처럼 느껴졌다.

“와이씨. 나는 왜 안 되는 거지?”

최대근 중사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리저리 해봐도 잘 되지 않았다. 그것을 김철수 중사가 보고 혀를 찼다.

“쯧쯧. 최 중사!”

“왜?”

“행보관님보다 늦으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러자 임백호 상사가 뜬금없이 자기 이름이 불리자 말했다.

“뭐? 내가 뭐 어때서?”

“아니, 최 중사가 행보관님보다 훨씬 젊은데 저렇게 손이 느려서 그러는 거죠.”

임백호 상사가 눈을 슬쩍 흘겼다. 그런 모습마저 매우 자연스러워 보였다.

“오우, 진짜……. 행보관님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진우의 말에 임백호가 미소를 보였다.

“그렇습니까, 대장? 아무튼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얼굴 때문에 제대로 조사도 못 했는데 이제야 본격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그제야 최대근 중사가 얼굴에 인피면구를 똑바로 썼다. 그러면서 의아한 시선으로 물었다.

“행보관님. 그러면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했습니까?”

김철수 중사가 바로 말을 받았다.

“으구. 그러는 너는? 너는 뭐 했는데?”

“아니. 행보관님께서 조사를 하신다고 했으니까.”

임백호 상사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대장! 제가 조사하겠다고 말은 했는데……. 아무래도 얼굴이 이렇다 보니 돌아다니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진우가 곧바로 손을 내저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행보관님이 어려운 일 맡아주시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괜찮습니다. 오히려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자꾸 그러시니 오히려 제가 민망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에 김철수 중사는 괜히 최대근 중사를 나무랐다.

“너는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는…….”

“저는 그냥 해본 말인데……. 죄송합니다, 행보관님.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

“괜찮아. 최 중사. 뇌가 해맑은 것 어디 하루 이틀이야.”

“그렇죠. 제가 뇌가……네?”

최대근 중사가 바로 눈을 크게 했다. 임백호 상사는 그런 최대근 중사를 뒤로하고 진우를 향해 말했다.

“그렇다고 너무 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저하고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 집들을 좀 찾아봤습니다.”

“그래요? 뭐라도 좀 나왔어요?”

“으음……. 뭐랄까요? 좀 좋지 않았습니다.”

“좋지 않다니……. 무슨 말입니까?”

진우의 물음에 최대근 중사와 김철수 중사도 임백호 상사에게 집중했다.

“블랙 게이트에서 그레이 게이트로 바뀌고 난 후부터 말입니다. 월급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네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그것이 일단 블랙 게이트에서 그레이 게이트로 바뀌면 일단 던전 폐쇄가 되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두고 시간이 걸렸던 모양입니다.”

본래 게이트에 들어간 날짜만큼 추가 활동비가 나온다. 그래서 게이트에 들어가면 평소에 받던 두 배 이상의 월급이 지급되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대다수의 병사들은 게이트에 들어가 있는 동안엔 자신들의 월급을 가족들에게 주기 위해서 계좌 연동을 해놨다. 어쨌거나 가족들도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알아본 바로는 블랙 게이트로 있었을 때 6개월 동안은 꼬박꼬박 월급이 입금되었지만 그레이 게이트로 바뀐 후부터 월급 지급이 중단되어 버렸다고 한다.

원래라면 월급이 중단되고 나면 사망자 처리를 하고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마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레이 게이트가 그 상태 그대로 유지가 되고 있었고, 하물며 천 명이나 되는 인원을 사망 처리한다는 것이 부담이 제법 컸다. 11사단에서는 말이다.

그런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는 상황이 지속되자 남은 가족들의 삶이 궁핍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진우는 매우 심각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최대근 중사가 화를 버럭 냈다.

“이런 빌어먹을 놈들! 그래도 지들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인데 그걸 빼 먹으려고 해?”

“최 중사. 진정해!”

“야, 김 중사. 지금 이게 진정할 일이야! 우리가 좃나게 게이트에 들어가면 뭐 해. 죽어도 보상은 개뿔…….”

최대근 중사는 좀처럼 화를 참지 못했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게 더욱 분해 콧김을 뿜어내며 열을 냈다.

그 모습을 보며 임백호가 씁쓸하게 웃었다.

“병사 가족들이 그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진우의 중얼거림을 듣고 최대근 중사가 말했다.

“대장이야 금수저니까 모를 수밖에 없죠. 돈에 대해 신경을 안 쓰잖아요. 대장은 대장이 번 돈을 혼자 쓰죠?”

“뭐, 그렇긴 한데……. 사실 나 통장 잔고 확인도 안 해봤다. 그런데 지난번에 보니까 월급이 얼추 다 들어온 것 같던데.”

김철수 중사가 입을 열었다.

“아마도 대장은 생존자니까. 그레이 게이트까지 포함해서 한꺼번에 입금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 김 중사는? 확인해 봤어?”

“저도 거기까지는 확인 안 해봤습니다.”

“김 중사 부모님들은 뭐라고 안 하고?”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 부모님하고 사이 안 좋은 거. 옥탑방에 숨어 있는데도 저희 부모님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데요.”

이번에 진우가 최대근 중사를 봤다.

“에이, 저는 혼자 사는데요.”

“아차. 그렇지.”

최대근 중사는 고아였다. 그것도 일가친척 하나도 없는 완전한 고아였다.

군대에 들어온 것도 사람이 그리워 평생 직장이라 생각하고 들어온 것이었다.

최대근 중사가 임백호 상사를 보며 물었다.

“행보관님은요?”

“나도 뭐……. 딸아이 하나 있는데. 알잖아, 우리 딸아이도 플레이어인 거. 내 통장 비밀번호를 알려주긴 했는데 신경도 쓰지 않을걸. 아, 그런데 말입니다. 저희 같은 경우는 많지 않을 겁니다. 블랙 게이트에서 죽은 이들은 다들 누군가의 아들이고, 남편이고, 아버지 아니겠습니까.”

임백호 상사의 말에 진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게이트 들어가는 인원들은 나이가 천자 만별이었다.

각성병사들이야 대부분이 20대 초 중반이지만 부사관들 중에서는 30대가 넘어가는 장기복무자들도 있었다.

그들 역시 결혼을 했다. 아내가 있고, 태어난 아이들이 있었다.

또 각성 병사들 중에서도 돈 벌어 부모님을 호강시켜주기 위해 들어온 이들도 있다.

군대 월급은 밀리는 일 없이 제때 꼬박꼬박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월급이 끊어져 버리면 그 월급으로 먹고사는 가족들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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