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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숨긴 귀환자-78화 (78/177)

힘을 숨긴 귀환자 78화

10. 바로잡아야겠어(3)

일주일간의 휴가를 마친 진우가 부대로 복귀를 했다.

작전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자리에 앉아 있던 홍인욱 중위가 벌떡 일어났다.

“충성! 출근하셨습니까.”

“어, 그래. 홍 중위. 잘 있었나.”

“네.”

각성부대의 작전장교인 홍인욱 중위가 절도 있게 진우를 맞이했다.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든 진우였다.

‘이제 군인답네.’

그전까지 홍인욱 중위는 진우를 진심으로 상관으로 대우하지 않았다.

홍인욱 중위는 진우가 각성병사 시절 그의 교육 장교였다. 그런데 자신이 이등병일 때부터 봤던 진우가 플레이어라는 이유로 쭉쭉 치고 올라가 자신을 제치고 대위가 되고 소령까지 되었으니 속이 편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여태까지 그런 어떤 불편한 심사가 말과 행동으로 드러났었다.

한데 오늘 보니 그런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자신이 어떤 줄을 잡아야 하는지 완벽하게 인지를 한 듯했다.

진우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대대장님은 나오셨어?”

“네, 출근하시자마자 사단장님 호출을 받으셨습니다.”

“사단장님? 무슨 일로?”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으음…….”

진우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때를 같이 해 잠깐 자리를 비웠던 지휘 장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어! 충성. 부부대장님 나오셨습니까.”

“어. 그래. 잘들 쉬었어?”

“네. 그렇습니다.”

“부부대장님 이것 좀 드십시오.”

김슬기 대위가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책상에 내려놨다.

“됐어. 김 대위 먹어.”

“아닙니다. 저는 아까 마셨습니다.”

“그래? 고마워. 그럼 잘 마실게.”

진우가 피식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움직여 김슬기 대위와 유지태 중위, 안유정 중위를 바라봤다.

휴가를 다녀와서일까. 세 사람 다 표정이 많이 밝아져 있었다.

“표정이 좋아 보이네. 다들 제대로 쉬었나 보네.”

“네. 편안하게 쉬었습니다.”

“잘했어. 김 대위는 뭐 했어?”

“저는 모처럼 본가에 다녀왔습니다.”

“본가가 어디지?”

“전라도 광주입니다.”

“광주……. 평소에는 내려가기 힘들었겠네.”

“네. 이렇듯 길게 휴가를 받은 적이 없어서 말입니다. 이번에 모처럼 내려갔다 왔습니다.”

“부모님이 좋아하셨겠네.”

“네. 그런데 뜬금없이 선을 보라고 해서…….”

김슬기 대위가 살짝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른 장교들은 물론 진우도 놀란 얼굴이 되었다.

“어? 김 대위가 벌써 선볼 나이가 된 거야?”

진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로 얼마 전까지 박진철하고 안미숙의 러브스토리를 들었다. 두 닭살 커플의 애틋한 얘기를 듣고 와서인지 몰라도 자신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김슬기 대위가 벌써 선을 본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자 김슬기 대위가 해명하듯 말했다. 나이에 쫓기듯 선을 보는 게 아니라, 평소에 그녀를 좋게 보고 있던 집안에서 정식으로 요청이 들어온 경우였다.

“아버지가 잘 아시던 집안의 아들인데 어쩌다 보니 얘기가 들어와서요.”

“그래서? 선보기로 한 거야?”

“아니요. 저 당분간은 연애 생각 없다고 말씀드렸어요. 요즘 일하는 것도 좋고요.”

지난번 개미굴 게이트를 통해 실력이 향상되어서일까?

김슬기 대위가 씨익 웃었다.

진우의 시선이 이번에는 안유정 중위에게 향했다.

“안 중위는 어떻게 보냈어?”

“저는 그냥 푹 잤습니다. 먹고, 자고 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안유정 중위는 처음에 개미굴에서 나왔을 때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플레이어가 폭식을 한다고 해서 살이 찌거나 그러지는 않으니까.

“안 중위는 플레이어라서 참 다행이야.”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플레이어로 각성하기 전에는 다이어트하느라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런 걱정 없어서 참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래…….”

진우는 마지막으로 유지태 중위를 바라봤다. 유지태 중위는 진우의 시선을 받고 바로 움찔하며 차려자세를 취했다.

“유 중위는 뭐…… 잘 지냈어?”

“네. 부부대장님 덕분에 모처럼 여자친구랑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잘했네. 결혼은 언제 할 거야?”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얘기가 나왔는데 말입니다. 잘하면 일찍 결혼을 할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 여자친구가 결혼해 준대?”

“네. 실은 제가 부부대장님의 자랑을 좀 했습니다.”

“내 자랑? 자랑할 것이 뭐가 있다고 그래.”

“그런 말씀 마십시오. 부부대장님하고 함께 하면서 실력도 늘고 그래서 스킬 숙련도도 올라가고 플레이어 세부 등급도 올라갈 것 같다고 하니 여자친구가 엄청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결혼하재?”

“네. 실은 제가 좀 더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결혼을 하려고 했는데 여자친구가 알아보니까. CS등급만 되어도 대출이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CS등급은 B등급으로 올라갈 수 있는 마지막 단계였다. 게다가 B등급으로 올라가면 벌이 자체가 달라진다.

군을 제대해도 어느 길드를 가도 대접을 받는다.

그래서 은행권들은 CS등급부터 B등급에 준하는 금융상품을 지원해 준다.

그도 그럴 것이 일찍 고객으로 만들어놔야 나중에 B등급이 되어서도 끝까지 자신의 은행을 이용해 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플레이어 활동을 오래 하다 보면 은행 대출은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때부터는 예전에 자신에게 잘해줬던 은행에 돈을 차곡차곡 쌓아둔다.

그래서 은행들은 발전 가능성이 있는 플레이어들을 선점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번에 유지태 중위는 저번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 C4등급에서 C5등급으로 올라갔다.

물론 정확한 등급은 측정을 해봐야 알겠지만 유진태 중위 본인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한동안 멈춰 있던 세부 등급이 올라가고 어찌 보면 성장 가능성이 열렸다고 봐야 했다. 잘하면 CS등급까지 금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여자친구도 안심하고 결혼 생각까지 한 것이다.

“잘됐다, 잘됐어!”

“그래서 말인데 부부대장님!”

“응?”

“앞으로도 잘 챙겨 주십시오.”

그러자 뒤에 있던 다른 지휘 장교들도 거들었다.

“저희도요.”

“저도요.”

“아이고, 다들 내가 할 소리를 하네. 그런데 나랑 함께하면 엄청 고생스러울 텐데……. 괜찮겠어?”

“차라리 부부대장님이랑 같이 가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짬이 안 된다는 이유만으로 만날 뒤치다꺼리만 하고 그런 일은 그만하고 싶습니다.”

“저도요. 저도요!”

그렇게 얘기들을 하고 있고 어쨌든 그들 모두 환한 눈빛으로 변한 것에 진우도 나름 흡족했다.

그때 뒤쪽에서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흠…….”

진우가 고개를 돌렸더니 김세령 소령이 서 있었다. 진우가 먼저 인사를 했다.

“김 소령님 오셨습니까.”

“네. 부부대장님. 혹시 저랑 잠깐 얘기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그러죠.”

진우는 김세령 소령을 따라서 자리를 옮겼다. 두 사람이 간 곳은 상황실이었다.

“여기 말씀하셨던 자료입니다.”

김세령 소령이 자료를 내밀었다. 진우가 그것을 받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지난번 게이트와 관련해서…….”

“아아!”

진우가 바로 이해를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리에서 바로 자료를 꺼내 확인했다.

3장의 자료였는데 첫 번째는 게이트 탐지 연구소에서 보낸 공문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에는 추정 게이트 지수 130으로 되어 있고, B등급으로 적혀 있었다.

그다음 11사단 게이트 관리과에서 작전처로 보낸 공문이었다. 거기에도 게이트 탐지 연구소 공문처럼 똑같이 추정 게이트 지수 130, B등급으로 적혀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 작전처에서 이곳 부대로 넘어온 공문에는 이상하게 게이트 지수가 적혀 있지 않고, 등급만 C~B로 되어 있었다.

딱 봐도 누가 봐도 이거 누가 장난을 친 것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진우가 그것을 챙겨서 김세령 소령을 봤다.

“이 자료 확실한 거죠?”

“네.”

“원본입니까?”

“원본은 제가 따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면 게임 끝났네요. 고생하셨습니다.”

김세령 소령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부부대장님…….”

“네?”

“아마 사단작전과에서는 분명히 제 핑계를 댈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사단작전과에서 제가 일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몰아붙일 거란 말입니다. 만약 그리된다면 어쩔 수 없이 제가 책임을 질 수밖에 없습니다.”

김세령 소령의 눈빛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진우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요? 겁나십니까?”

“겁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일을 바로잡지 못할 것 같아서 그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그런 김세령 소령의 말에 진우가 피식 웃었다.

만약에 김세령 소령이 모든 것을 자신이 다 뒤집어쓸 것 같다며 한 번만 봐달라고 말을 했으면 실망할 뻔했다.

그런데 이 일을 어떻게든 바로잡자는 식으로 말을 하자 안도감이 들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김 소령님에게 책임을 전가하게 두지 않을 겁니다. 설마하니 제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아시죠? 저 그레이 게이트 생존자입니다.”

“네. 알고 있죠.”

김세령 소령이 흔들리지 않도록 진우가 슬쩍 다가갔다.

“저기, 이거는 당분간 숨기려고 했는데요.”

“네?”

“저 A등급으로 넘어간 것 같습니다.”

진우가 말을 하며 씨익 웃는데 김세령 소령이 번쩍 떠졌다.

‘A등급 플레이어?’

A등급 플레이어는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단순히 한 등급 차이가 아니라 공략 가능한 게이트의 등급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처음 진우가 홀로 B등급 게이트를 쓸어버렸다는 얘기를 듣고 김세령 소령도 설마설마했다. 그런데 진짜 A등급 플레이어라니!

이젠 확실히 진우의 손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각 김승철 소장은 안일국 비서실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네가 방금 올린 보고가 맞아?”

“네.”

“정말 작전과에 귀신이 들었다고?”

“그렇습니다.”

안일국 비서실장은 담담하게 보고를 올렸다.

“작전과에 있었던 장교의 말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하아, 진짜 어이가 없어서는…….이젠 하다 하다 귀신까지 들먹여?”

김승철 소장은 헛웃음을 흘렸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작전과에서 올라온 급한 보고가 ‘귀신출몰’이라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뜬금없이 귀신 타령이라니……. 이건 뭐……. 내가 어떻게 이해를, 아니. 받아들여야 해? 비서실장.”

김승철 소장이 안일국 비서실장을 황당하게 바라봤다. 안일국 비서실장도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일단 보고가 올라왔고, 그 장교가 귀신을 봤다고 하니 말입니다.”

“됐고! 작전참모는 뭐라고 해?”

“별일 아니라며 신경 쓰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 별일 아니라니 신경 꺼야지. 그 일 말고도 신경 쓸 것이 한두 개가 아닌데.”

“참! 사단장님…….”

“왜?”

“그 일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그 일을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어.”

김승철 소장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현재 김승철 소장이 하려는 일은 지난번 게이트 사건을 정리하려는 것이다. 원래 B등급인데 C등급을 하향 조정해 보고를 하는 바람에 큰일이 날 뻔했던 사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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