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을 숨긴 귀환자-80화 (80/177)

힘을 숨긴 귀환자 80화

10. 바로잡아야겠어(5)

“……!”

임경식 중령이 놀란 눈으로 김승철 소장을 바라봤다. 하지만 김승철 소장은 단호했다.

“지금까지는 양쪽에 줄 타느라 정신이 없겠지만 이제는 확실하게 하나만 타! 서울에 가고 싶으면 내 말 들어! 언제까지 이준식 대령이 자네 뒤를 봐줄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자네는 어차피 이준식 대령 라인이 아니잖아.”

“아, 네에…….”

“이번 기회에 말이야. 이 사단에 썩은 고름을 다 짜내버릴 생각이야. 자네가 가지고 있는 자료들 전부 다 나에게 넘겨. 이준식이 잘못한 것처럼 잘 만들어서 가져오란 말이야. 알았어?”

김승철 소장의 말은 간단했다. 임경식 중령 같은 사람은 그 비리에 대한 흔적들을 남겨 놓는다. 그 흔적을 이준식 대령이 시켜서 했다는 식으로 적당히 조작해 놓으면 그것을 가지고 그를 몰아붙일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런 확실한 무기가 있으면 부국강병회도 이준식 대령의 편을 들어주지 못한다.

김승철 소장이 속으로 생각했다.

‘진급해서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이준식 이 새끼는 내가 잘근잘근 짓밟아 놓을 거야. 싸가지 없는 새끼! 어디 감히 사단장을 우습게 알아!’

김승철 소장은 자신이 육군본부에 올라가는 사이에 이런 어마어마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에 너무 화가 났다. 진급을 부탁하기 위해 어렵게 만든 자리들을 전부 취소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마 이준식 대령은 자신이 차를 돌리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고 일을 벌였겠지만 김승철 소장에게 진우는 구명줄이나 다름없었다.

만에 하나 진우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다면 자신도 다시 허수아비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진급을 포기하고 다급히 차를 돌린 것이었다.

그나마 진우가 게이트에서 무사히 나와 일단 넘어갔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화가 났다.

‘날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이런 짓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블랙 게이트와 다른 모든 일들 역시 자신을 우습게 알고 벌렸을 거라는 생각 말이다.

그러다 보니 더 이상 이준식 대령이 설치게 그냥 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부국강병회의 눈치를 봐서 참았지만, 요즘 들어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에 부국강병회 몫이 어디 있고, 평화수호회 몫이 어디 있어! 군인들은 자고로 나라를 지키는 것이지. 두고 봐, 이준식! 내가 널 그냥 두지 않을 테니까.’

김승철 소장의 결연한 눈빛이 임경식 중령에게 향했다. 그러자 임경식 중령이 슬그머니 고개를 떨어뜨렸다.

사단장실을 나선 임경식 중령은 휴대폰을 꺼내 자신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울리고.

-네, 여보.

수화기 너머 앳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종교 활동을 통해 만난 아내와는 남들이 보기에는 삼촌과 조카로 보일 정도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하지만 아내는 아빠 같은 사람이 이상형이라며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임경식 중령에게 잘했다.

그래서 임경식 중령도 아내의 유일한 소원 중 하나인 서울로의 복귀를 꿈꾸고 있었다.

만약 아내가 다른 이유로 서울에 살자고 했다면 승낙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가 서울에 살자고 한 이유는 간단했다.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아빠와 엄마는 게이트 때문에 돌아가셨잖아요. 그런데 강원도에는 의외로 게이트가 많고……. 난 그래서 그것이 걱정이에요. 서울은 그래도 게이트 공략이 많이 된 상태고, 플레이어들도 많잖아요. 우리 자기가 아니더라도 괜찮은데……. 그런데 자기가 현재 각성 부대장이라고 하니까 만날 걱정이 되는 거 있죠?”

이렇듯 착한 아내는 임경식 중령을 진심으로 걱정했다. 그럴 때마다 임경식 중령이 말했다.

“어휴. 별걱정을 다 해. 내가 말 했잖아. 난 각성 부대장이지만 게이트에 들어가진 않아.”

이렇게 설명을 해도 아내의 걱정은 사라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부대는 각성부대인데 혹여 게이트에 들어간다거나 아니면 지휘하는 와중에 큰일을 당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아내와 단둘이 살았을 때는 그녀만 다독이면 되었다. 그런데 애들까지 점점 커가고 있었다.

사실 수도권이 강원도보다는 치안이라든지 모든 편의시설이 안정되어 있으니, 임경식 중령도 아내와 애들에게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살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군대에 엮인 몸이다 보니 군인으로서 자신이 가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옮길 수가 없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조금만 더 돈을 모은 다음 옷을 벗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다 버리고 장사를 해볼까 생각할 만큼 말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사단장이 서울로 보내주겠다는 제안을 하자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때 수화기 너머로 아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여보? 전화 끊겼어요?

“으응? 아니야. 아니야. 애들은?”

-애들은 아직 어린이집에 있죠. 당신 점심은 먹었어요?

“아직 점심시간도 아닌데 뭐…….”

-그래도 당신 잘 챙겨 먹어야죠.

“걱정 마. 당신 덕분에 잘 먹고 있으니까.”

임경식 중령이 항상 자신을 위해주는 아내가 너무도 고마웠다.

“만약에 당신, 내가 서울로 가게 되면 어떨 것 같아?”

-서울로요? 갑자기 왜요? 그런 말 없었잖아요.

“아니, 사단장님 뵙고 왔는데. 사단장님께서 그러더라고, 서울 쪽에 자리 나면 보내준다고.”

-그럼 너무 좋죠. 나는 당신이 하루라도 편안하게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이렇듯 고생하는데요.

그런 아내의 말을 들으니 울컥 감정이 올라왔다.

사실 그는 전 부인과 좋게 헤어지지 못했다. 거의 가진 것을 다 내주면서 이혼한 수준이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맨몸으로 나온 그가 만약 군인이 아니었다면 재기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만난 아내는 자신을 너무 존경해 주고 존중해 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 임경식. 남은 인생은 가족들을 위해 살자.’

임경식 중령의 결정은 빨랐다.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위해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야. 어쩌면 조만간 서울로 갈 수 있으니까. 당신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으라고.”

-제가 마음의 준비를 할 것이 뭐가 있어요. 그냥 당신을 따라가면 되는 건데요.

“그래도, 알았지?”

-네. 어머님에게는 알려드렸어요?

“어머니에게는 아직 알리지 마. 확정되면 그때 알려드리자.”

-알겠어요. 오늘 일찍 들어오실 거죠?

“그래. 일찍 들어갈게.”

그렇게 전화를 끊은 임경식 중령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이준식 대령이었다. 순간 행복했던 임경식 중령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아, 이 양반 또 무슨 일이지?”

임경식 중령은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어! 난데. 어디야?

“사단장님 호출받고 왔습니다.”

-그래? 지금 사단장실이야?

“아닙니다. 나와 있습니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당황했잖아.

“무슨 일 있습니까?”

-됐고. 일단 내 방으로 와.

“네?”

-지금 사단이라며. 내 방으로 오라고.

“아, 네에…….”

휴대폰 종료 버튼을 누른 임경식 중령이 짜증을 냈다.

“하, 시발. 내가 무슨 꼬봉도 아니고 왜 찾고 난리야.”

임경식 중령이 투덜거리며 작전과를 향했다. 긴 복도를 따라서 작전과에 도착을 했다. 문을 열자 작전과 사무실이 보였다.

“작전참모님 뵈러 왔다.”

“안 그래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작전장교 한 명이 말했다. 임경식 중령은 작전참모실을 바라보고는 그곳으로 향했다.

똑똑!

“각성 부대장입니다.”

“들어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이준식 대령은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 주위에는 역시 작전과 장교들이 있었다. 분위기로 봐서 그들과 매우 심각한 얘기를 나눴던 모양이었다.

그때 이준식 대령이 임경식 중령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어, 일단 다들 나가봐.”

“네.”

작전장교들이 다이어리를 덮고는 하나둘 일어나 사무실을 나가고, 임경식 중령이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사단장이 뭐래?”

“네?”

“사단장이 자네를 왜 불렀냐고.”

“그렇게 물어보시면 제가 뭐라고 답을 합니까?”

“이 친구 보게. 아니, 사단장하고 무슨 얘기를 했는지 말하는 것이 어려워?”

그 얘기에 임경식 중령이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사실 지금까지 이준식 대령이 물어보면 막힘없이 대답을 했다. 11사단에서 이준식 대령이 원래 실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우가 그레이 게이트를 나온 이후 권력 구도가 바뀐 것 같았다.

태풍의 핵으로 등장한 진우는 김승철 소장을 밀어주고 있었다. 김승철 소장도 더 이상 뒤에서 지켜보고 있지 않고 전면에 나선 상황이다.

반면 이준식 대령은 이런저런 실책을 연달아 한 후 입지가 많이 흔들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사단장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리에 앉자마자 사단장하고 나눴던 내용이 뭐냐고 대뜸 물어보는 것은 좀 기분이 상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은 중령이었다.

까라면 까는 위관급 장교가 아니었다.

이건 자신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는 것이었다.

그런 속내를 읽어서일까?

이준식 대령이 띠꺼운 표정으로 말했다.

“왜? 말하기 싫어?”

“그건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 물어보시는지 저에게 얘기를 해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이준식 대령이 살짝 어이없어했다.

“임 중령. 너 많이 컸다. 왜? 이제 사단장이 목에 힘 좀 주니까. 그쪽으로 붙고 싶고 그래?”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야! 임경식. 너 잔머리 굴리지 마. 사단장이 천년만년 여기에 있을 것 같아? 저 양반 말이야. 지난번 육본에 올라가서 진급시켜 달라고 징징거리고 그랬단다. 뭐, 어쨌든 이진우 소령 게이트 들어갔다는 소리에 핸들을 꺾었는데 일이 잘 풀렸다면 저 자리에 있지도 않았어. 진즉에 다른 곳으로 갔지. 그러면 저 빈 자리에 누가 앉을까? 머리가 안 돌아가?”

그 말에 임경식 중령이 입을 꾹 다물었다. 만약에 진짜로 현 김승철 소장이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지금 11사단 사단장은 이준식 대령이 할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부국회에서는 블랙 게이트 사건 때문에 이준식 대령에게 다음번 사단장은 어렵다고 미리 통보를 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는 임경식 중령은 만에 하나 이준식 대령이 사단장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김승철 소장이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었는데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이준식 대령이 말만 자신이 올라갈 것이라고 했지. 아직 되지도 않았고, 현재 사단장은 김승철 소장이었다.

그리고 김승철 소장은 당장에라도 자신을 서울로 보내줄 수 있다고 말을 했다.

그래서 임경식 중령이 적당히 말을 돌렸다.

“별말씀은 없으셨습니다. 그냥 이진우 소령이 공략한 게이트에 대한 보고서를 올렸는데 거기에 약간의 문제가 있어서 절 부르셨습니다.”

“문제? 무슨 문제?”

“그게…….”

임경식 중령이 말을 하려는데 이준식 대령이 먼저 눈치를 채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해 먹었구만. 또 해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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