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숨긴 귀환자 85화
10. 바로잡아야겠어(10)
안미숙이 진우에게 물었다.
“진짜야, 진우야?”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에요. 제 위로 제법 있어요. 여기 사단이잖아요.”
“야. 사단장이면 투스타?”
“네. 소장이요.”
“그럼 작전참모는 대령이고?”
“원래는 연대장급인데요. 작전참모도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보다 형. 군대에 대해서 잘 아네요.”
“내가 군대만 안 다녀왔다뿐이지 군대 간 친구 놈들하고 술을 얼마나 마셨는데? 당연히 그 정도 기본은 알고 있지.”
박진철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제저녁에 부지런히 인터넷을 검색해 알아낸 사실이었다.
안미숙은 사실 귀찮은 것은 질색하는 성격이라 공부하라고는 할 수 없지만 박진철은 최소한 자신은 알아야 한다면서 공부를 해온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 많이 빠진 강힘길드라 할지라도 길드장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었다.
진우는 그런 박진철이 대견해 보이긴 했다. 약간 덜렁대는 것 같고 매사에 장난기가 가득한 듯 굴었지만, 일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진지했다.
그런 박진철을 항상 보며 배웠고, 또 그런 그를 좋아했다.
진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직 식사 전이죠? 우선 밥부터 먹자고요.”
진우가 두 사람을 데리고 부대 식당으로 향했다.
일반 병사들과 함께 식사하는 식당이 아니라 플레이어 전용 식당이었다.
물론 플레이어들이더라도 밥은 똑같이 식판에다가 준다. 다만 자율배식에 다른 일반 군인들보다는 영양가가 풍부한 식단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박진철과 안미숙은 적당히 밥을 퍼 자리에 앉았다.
밥을 한 숟갈 뜬 박진철과 안미숙은 다소 놀랐다.
“와, 군대 식당 맛있다. 이 정도면 여기서 계속 먹어도 될 것 같은데?”
박진철의 말에 안미숙이 입을 열었다.
“자기야. 그런 소리 하지 마. 우리야 처음 먹어보니 맛있는 거지. 이걸 계속 먹어봐. 어떨 것 같아?”
“왜?”
“왜라니? 이 밥이 내가 차려준 밥보다 나은 것 같아?”
“솔직히 그렇긴 한데…….”
순간 안미숙의 얼굴이 사납게 바뀌었다.
“야. 박진철! 뭐?”
“으응? 내가 뭐라고 했어?”
“너 다시 기회 준다. 말 잘해라. 내가 차려준 밥보다 이게 낫다고?”
박진철이 바로 표정을 바꿨다.
“그럴 리가 있겠어. 여기는 그냥 밥이고, 자기가 차려준 것은 사랑이 담겨 있는데.”
“그렇지?”
진우는 여기까지 와서 알콩달콩하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더니. 여기까지 와서 그러고 싶어요?”
“우리 지금 엄청 참고 있는 거다.”
“그래. 맞아. 단둘이 있었으면…….”
“어우, 됐어요. 그만 말해요. 상상할 뻔했잖아.”
“그런데 이번에 들어가려는 게이트는 뭔데?”
“뭘 벌써부터 물어봐요. 어차피 조금 있다가 브리핑할 건데.”
“그래도 미리 알아두려고 그러는 거지 인마.”
“저도 거기가 무엇인지 정확히는 몰라요. 대충 게이트 밀도가 160 정도 된다고 해요.”
“160이라……. 그 정도면 B등급 상급 정도 되겠네. 거기에 너랑 나! 그리고 미숙이. 그다음 B등급 플레이어는 몇 명 있어?”
“B등급은 형하고 내가 다예요.”
“뭐? 우리 둘이? 그럼 좀 빡센데.”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박진철이 뭔가를 깨달은 듯 중얼거렸다.
“아. 네가 가라 B등급이지?”
진우가 씨익 웃었다. 역시 박진철은 눈치가 빨랐다.
박진철은 그 누구보다도 진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게이트라면 항상 안전하게 공략했던 그였다. 진우는 그 가르침을 항상 생각하고 움직였다.
그런 진우가 자신 둘만 불렀다는 것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진우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는 훨씬 강하다는 뜻이었다.
“이야. 너는 등급이 올랐으면 재검사를 받지. 왜 계속 B등급으로 있냐?”
박진철의 물음에 진우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재검사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요. 그때는 BS등급이었거든요. 그리고 A등급 올랐다고 해도 대단한 것은 없잖아요.”
“그래도 네가 단순히 A등급은 아닌 것 같은데. 막말로 네가 오히려 미숙이보다 강할 것 같단 말이지.”
안미숙이 갑자기 호승심이 동했는지 바로 반박했다.
“자기야. 그건 모르는 거야. 나 불의 심판 익힌 여자야.”
“아, 맞다. 그렇지.”
박진철은 또 철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가 피식 웃었다.
“누나! 누나 마법 실력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저 감당할 수 있겠어요?”
“뭐?”
“저 알잖아요. 엄청 빠른 거. 맘먹고 공격하면 저 막을 수 있겠어요?”
안미숙이 바로 정색했다.
“와. 이진우. 너 이씨……. 방금 그거 뭐야?”
“네?”
“아무리 플레이어이더라도 해야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말이 있어. 너 인마 누나에게 그럴 거야? 누나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설사 누나가 불의 심판으로 널 맞혀도 너는 아, 누나가 실수를 했구나. 이런 식으로 웃고 넘어가야 할 것 아니야. 박진철 그래, 안 그래?”
“생각해 보니 그러네. 이진우 넌 인마 미숙이가 게이트에서 너 목숨 구해준 적이 몇 번인데……. 해도 너무하네.”
갑자기 두 사람이 같은 편을 먹으니 진우는 어이가 없었다.
“형! 불의 심판 제대로 맞으면 죽어요. 나도 감당이 안 된다니까. 그런데 그걸 맞고 실수다 하고 넘어가라고요?”
그 말에 박진철이 바로 수긍했다.
“그렇지? 불의 심판은 좀 너무 갔지? 자기야, 불의 심판은 좀 너무 간 것 같아.”
“그런가? 불의 심판은 좀 아닌가?”
“그래. 그냥 파이어볼 정도는 괜찮을 것 같은데.”
“오케이!”
그렇게 두 사람이 키득키득 웃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진우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형하고 누나. 다 좋은데 게이트 안에서는 이러면 안 돼요.”
“뭐가?”
“나는 괜찮은데. 이곳은 군대라는 조직이잖아요. 아무리 플레이어로 구성된 각성부대라고 하지만 상명하복이 있고 군기가 있어요. 이렇듯 자유분방하게 웃고 떠들면 안 돼요. 그럼 애들에게도 영향이 가고, 그러다 보면 사고 나요.”
“에이……. 게이트 들어갈 때 긴장하면 안 돼! 오히려 긴장으로 몸이 굳어서 제대로 싸우지 못해. 긴장은 풀고 들어가야지.”
“그것도 맞는데요. 군대는 군대 나름의 규율과 방식이 있어요. 그리고 두 사람 오늘 용병으로 온 거예요. 군대 방식에 따라줘야 해요. 무슨 말인 줄 알죠?”
“그래, 뭐……. 네가 그렇다면 그래야지.”
“또한 당연한 것이겠지만 내가 공략대 대장입니다. 그건 이해해 주시고요.”
“그거야 당연하지. 네가 우리들 중에서 제일 강하잖아.”
박진철이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안미숙이 고개를 살짝 틀어 입술을 삐죽거리면서도, 더 이상 군소리는 하지 않았다.
솔직히 안미숙이 불의 심판을 익혔다고 해도 진우는 홀로 S등급 몬스터를 잡았다.
물론 다운 게이트였다고 해도 그 실력과 노하우가 있으면 안미숙이 아무리 마법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진우처럼 치고 빠지는 딜러는 마법사에게 천적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무슨 게이트인지 전혀 모르는 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그건 들어가 봐야 해요.”
“게이트 탐지 아직 안 한 거야?”
“우리 부대에 탐지꾼이 없어요.”
“헐……. 대박! 여기가 강원도 부대에서 제일 큰 곳 아니냐?”
“그렇긴 한데…….”
“그런데 어떻게 탐지꾼이 없냐.”
“알잖아요. 좀 한다는 녀석이 있다면 서울에서 다 빼가버리는 것을요.”
“야이씨, 이래 가지고 나라를 지키겠냐. 이런 외지에 실력 있는 애들을 배치해야지. 서울만 지킨다고 장땡인 줄 아나. 막말로 전쟁이 서울에서만 터지나.”
“그러게 말입니다.”
“근데 자기야. 탐지꾼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긴……. 일단 들어가서 어떻게든 해결을 하는 거지.”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아? 그래도 탐지꾼이 들어가서 어떤 게이트인지 확인을 해야 편하지.”
원래 게이트 공략은 탐지꾼의 보고로부터 시작된다.
탐지꾼에게는 게이트 공략을 하지 않더라도 언제든지 게이트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스킬이 존재했다.
그렇다고 게이트를 무한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게 가능한 건 아니었다.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한 번 들어간 게이트는 일정 기간 동안 다시 들어갈 수 없다.
그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다시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탐지가 아닌 게이트 공략으로 인식이 되어버리고 게이트 공략조건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게이트 밖으로 나올 수가 없다.
어쨌거나 탐지꾼들은 게이트에 들어가면 대략적인 게이트 상태나, 나오는 몬스터를 체크한 다음 재빨리 게이트 밖으로 나온다.
그런데 탐지꾼이 없다면 그냥 맨땅에 헤딩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만큼 위험은 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너 지난번 게이트도 그랬어?”
“네, 그랬죠.”
“어떻게 클리어했냐?”
“어떻게 클리어했겠어요. 군대는 원래 하라고 하면 다 하게 돼 있어요.”
진우는 지원이 미비한 강원도 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것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심지어 진우는 블랙 게이트에 들어갔다 나왔다.
고작 탐지꾼 가지고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규모는 작지만 누구보다도 원칙을 중요시여겼던 강힘길드의 두 사람은 당혹스러웠다.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아무리 그래도 탐지꾼 불러서 체크는 하고 가자.”
“그래! 나에게 탐지 스킬북을 사주든가. 내가 들어갔다 올게.”
박진철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때 불현듯 진우의 머릿속에 뭔가 번뜩했다.
“맞다. 나 탐지 스킬북 있는데…….”
“뭐? 진짜?”
“네. 있어요.”
“그, 그걸 어디서 구했냐?”
“지난번 게이트 공략했을 때 몬스터가 떨어뜨렸어요.”
“야! 그러면 진즉에 말을 하지, 디카페인에 팔았으면 10억은 넘게 벌었을 텐데.”
탐지 스킬북도 나름 비싼 편에 속했다. 탐지 스킬이 워낙에 희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S등급 플레이어 경우 대부분이 탐지 스킬을 가지고 있다.
탐지꾼의 보고에 의존하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들어가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익혀야 공략이 더 잘된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탐지꾼들은 던전 탐사가 끝나면 실제로 공략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자들은 아무래도 자기가 공략할 게이트가 아니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건성으로 조사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 경우에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거나 돌발 변수가 존재한다. 그래서 실력 있고 책임감 있는 탐지꾼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가 않다.
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형도 알잖아요. 괜찮은 탐지꾼 얻는다는 게 쉽지 않은 것을요. 그래서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괜찮은 사람이 있으면 탐지꾼으로 키워볼까, 했죠.”
“그래? 그럼 그거 나 주라. 내가 익힐게.”
“그런데 형 괜찮겠어요?”
“뭐가?”
“형이 혼자였을 때는 괜찮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진우가 슬쩍 안미숙을 바라봤다.
“왜?”
“누나 진철이 형이 탐지꾼을 해도 괜찮겠어요?”
“뭐 어때? 솔직히 우리 중에서 제일 몸 사리고 제일 안전주의인데 뭐가 문제야. 쟤는 탐지꾼으로 들어가더라도 몬스터가 저 멀리 보이면 바로 도망 나올 거다.”
안미숙의 핀잔에 박진철이 눈을 부릅떴다.
“그 정도는 아니거든.”
“그 정도 맞거든?”
“나도 탐지꾼이 뭘 해야 하는지 기본적으로 알고 있거든?”
“퍽이나 그러겠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거리든 말든 진우는 매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