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숨긴 귀환자 91화
11. 쥐를 잡자(5)
“어. 이번에 확실히 300마리를 잡아서 그런지 효과가 좋다야. 그래서 진우야…….”
진우가 바로 손을 들어 막았다.
“안 돼요.”
“야아……. 병사들이 지쳤는데 내가 그냥…….”
“안된다고요.”
“진짜 너어……. 해도 너무한다. 누나 숙련도 올리면 안 돼?”
“안됩니다.”
진우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미숙의 눈으로 서운한 빛이 가득 올라왔다.
“누나는 헬퍼로 왔잖아요. 그리고 우리 병사들 숙련도 올려야 한단 말이에요. 지금 누나 때문에 숙련도 못 올린 것이 얼마나 쓰라린데요.”
“와. 이진우. 이렇게 치사하게 나온다 이거지.”
“누나!”
“왜?”
“방금 그 스킬 말이에요. 불의 심판…….”
“응?”
“그거 누가 사줬어요?”
진우의 말에 안미숙의 안면이 바로 돌변했다. 환하게 바뀌며 진우에게 말했다.
“참 그랬지. 진우야. 이 누나가 너무 욕심을 부렸구나.”
“알면 됐어요. 대신에 다음에도 게이트가 있으면 누나 부를 테니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요.”
“그래, 그래. 알았어.”
안미숙이 대답을 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 손에서 전해지는 짜릿한 느낌에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와, 이 느낌. 짜릿함! 전율! 쉽게 포기하지 못하겠어.”
안미숙이 중얼거리는데 박진철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왜? 나를 왜 그렇게 쳐다봐?”
“응? 설마 나에게 불의 심판을 쓰려고?”
“뭐라는 거야! 내가 왜 사랑하는 자기에게 불의 심판을 써.”
“그렇지? 나에게 안 쓸 거지?”
“당연하지. 쏠 거면 실수로 진우나 맞혀야지.”
“누나……. 지금 저 하수구 굴을 봐요. 저 꼴을 만들어 놓고 나보고 맞으라고요? 완전 나 죽으라고 하는 거잖아요.”
“야. 너는 알아서 피하면 안 되는 거니?”
“아까 맞힌다면서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수로 앞에 붙였잖아. 그리고 딱 보니 아까 완전 날아다니더라. 실력으로 따지면 나보다 더 센 것 같고 말이야.”
안미숙이 진우에게 장난식으로 말을 했다. 그러나 사실 아까 진우가 설치는 모습에 호승심이 올랐다. 진우는 아직 세부등급이 BS이고 물론 느낌상 A등급 이상일 거라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아직 겉으로 드러난 진우의 등급은 BS다. 그 등급으로 저렇듯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 손이 근질근질거렸다. 그래서 이번에 한 번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
그런 안미숙의 호승심을 잘 알고 있던 진우였다. 진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어! 누나가 최고예요. 누나가 짱!”
“자식 진즉에 그렇게 말을 할 것이지.”
그러고 있다가 박진철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야. 저거……. 거의 삼겹살 태운 냄새랑 비슷하지 않아?”
박진철이 코를 벌렁벌렁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안미숙이 기겁을 했다.
“자기 설마……. 저거 먹자는 소리야?”
“아니, 몬스터 중에서 먹어도 되는 것이 있다고 하잖아.”
“자기야! 농담하지마. 봐봐! 쥐잖아, 쥐! 어떻게 쥐를 먹을 생각을 해.”
안미숙은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박진철을 바라봤다. 박진철이 바로 꼬리를 내렸다.
“자기야. 그냥 농담이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리고 딱 겉모습은 쥐일지 모르지만 봐봐. 완전 통구이 냄새가 나지 않아? 딱 봐도 상태 괜찮은 것 같은데……. 진우야 괜찮지?”
박진철은 괜히 진우를 끌어들였다. 진우도 눈치를 보며 말했다.
“뭐, 그렇죠. 나도 블랙 게이트에서 몬스터의 사채를 뜯어먹고 그랬거든요.”
“아……. 블랙 게이트……. 거기서 그랬겠네.”
“네.”
안미숙이 박진철을 툭 쳤다.
“자기야. 아무리 그래도 블랙 게이트 얘기를 하면 어떻게 해.”
“괜찮아요. 이미 지난 일이고 내가 겪은 일인데요.”
“으응…….”
안미숙이 어색하게 웃었다. 박진철은 눈치 없이 자꾸 물었다.
“어떻게 먹었어? 구워 먹었어?”
“어떻게 불에 구워 먹어요. 뼈를 발라서 건조시켜서 육포처럼 먹고 그랬죠.”
“한참 걸렸겠는데…….”
“처음에는 고생했는데요 미리미리 준비를 하니까요. 괜찮았어요. 그래서 진철이 형! 뭐예요? 저거 한번 먹어보자는 거예요?”
“먹어보고 싶긴 한데……. 자긴 싫지?”
박진철이 안미숙을 봤다. 안미숙이 바로 두 손을 저었다.
“당연히 싫지. 쥐 고기잖아.”
그렇게 난리를 치던 안미숙이지만 막상 불의 심판을 직격으로 받아 새까맣게 탄 쥐 고기를 먹어보고는 엄지를 올렸다.
“와, 장난 아니다.”
“그렇게 맛있어?”
“장난 아니야. 뭐, 겉모습은 좀 징그러운데 맛은 일품인데.”
안미숙이 허겁지겁 먹었다. 그 옆에 병사들도 커다란 쥐를 가운데 놓고 뜯어 먹고 있었다. 처음에는 다들 꺼렸지만 먼저 한 입을 먹고는 다들 걸신 걸린 것처럼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누가 그랬다.
“전투식량 먹다가 이거 먹으니 완전 신세계네요.”
“그래서 게이트 요리사란 직업이 있잖아.”
“정말 있습니까?”
“그래!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 사체를 요리해서 먹는단다.”
“와. 그렇습니까? 완전 부럽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나 나가면 몬스터 요리사 자격증 한번 따보려고.”
“오오, 저도 도전해 보겠습니다.”
“저도…….”
“저도!”
그렇게 병사들끼리 얘기를 나눴다. 한편 진우도 잘 구원진 쥐 고기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한 입 뜯었다. 하지만 김슬기 대위가 고기를 앞에 두고 머뭇거렸다.
“김 대위. 못 먹을 것 같아?”
“네? 아, 아닙니다. 제가 배가 그다지 고프지 않아서 말입니다.”
“김 대위. 앞으로 게이트 활동 많이 할 거잖아.”
“네.”
“예전에 들었던 얘기인데 게이트에서 몬스터와 싸우다 보면 가끔씩 불의의 사고를 겪는 플레이어들이 있잖아.”
“……네. 그렇죠.”
“아니다. 예를 들면 등산을 해, 그런데 정말 운이 나빠 조난을 당해. 그 시체를 가끔 발견하는 것처럼 게이트에 공략대들이 나눠서 들어가다 보면 나중에 탈출하는 과정에서 동료들이 죽은 모습을 보기도 하거든.”
“예…….”
“그중에서 흔하게 보이는 죽음이 뭔 줄 알아?”
“뭡니까?”
“바로 아사야, 아사(餓死)! 굶어 죽는 거.”
“네? 왜 굶어 죽습니까?”
김슬기 대위는 이해되지 않는 눈빛이었다. 진우가 차분하게 설명을 해 줬다.
“처음에는 식량을 가지고 들어가지만 몬스터랑 싸우는 과정에서 만에 하나 식량을 잃어버려. 그럼 어떻게 할 거야?”
“아…….”
김슬기 대위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그래. 먹을 것이 없으면 힘이 약해지고 굶어 죽을 수밖에 없어. 그런데 게이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뭐라도 먹는 사람들은 버티지만 몬스터들의 사체를 못 먹는다고 생각하는 플레이어들은 싸우기도 전에 굶어서 죽어. 김 대위는 어떻게 생각해?”
“…….”
김슬기 대위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자신 앞에 놓인 고기를 집어 들었다. 눈을 꾹 감고 입안에 넣었다. 몇 번 씹지 않고 바로 삼켰다. 김슬기 대위가 눈을 번쩍 떴다.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그 맛이 정말 좋았다.
“어때? 맛있어?”
“네. 맛있습니다.”
“내가 이런 말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몬스터를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생각하지 마. 그냥 저 몬스터도 게이트를 통해 들어오기 때문에 외형이 바뀔 수도 있어. 원래는 다른 것일 수도 있고. 그러니 편안하게 우리가 생각하는 소, 돼지가 변했다고 생각하고 먹어. 그리고 모든 몬스터를 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야. 그나마 쥐 같은 경우는 지금처럼 먹을 수 있는 것이고. 내가 알기론 조리법이 따로 있어. 그렇지 않으면 누린내가 장난 아니야.”
“그런데 이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마도 불의 심판 때문에 그렇겠지.”
“네?”
“불의 심판이라는 것이 강력한 불의 힘과 열기로 인해 순식간에 적들을 태워 버리기 때문에 고기가 맛있는 거야.”
그래도 김슬기 대위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뜨거운 불로 겉을 태우는 것뿐만이 아니라. 강력한 열기로 그 속까지 다 타들어 가버리는 것이야.”
“아, 겉과 안이 한 번에 다 익어버린다는 말씀이죠.”
“그런 거지.”
김슬기 대위가 미소를 보였다. 진우가 그녀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대충 다 먹은 것 같았다.
“자! 식사 다 했으면 슬슬 다음 굴로 이동할까?”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다섯 번째 하수구 굴을 지나 여섯 번째 하수구 굴로 향했다. 그런데 여섯 번째 하수구 굴에 도착을 하자 몬스터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 저 녀석들 왜 저래?”
박진철이 몬스터들의 이상행동을 보며 말했다. 진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 녀석들 누나 소문을 들었네.”
“뭐?”
“아니, 누나 소문을 들었다고요. 전 방에서 누나가 한 방에 모두 보내버렸잖아요. 아마도 그 소문이 여기까지 퍼졌나 봐요.”
“응? 쟤네들이 어떻게 알아?”
“누나! 쟤네들도 다 커뮤니케이션이 있죠. 설마 모르겠어요?”
“그래? 흐흐흐, 그럼 여기도 내가…….”
안미숙이 활짝 웃으며 앞으로 나서려는데 진우가 말렸다.
“누나. 이럴 때일수록 뒤로 좀 빠져 있죠.”
“뭐?”
진우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 방금 내가 말하는 거 들었지?”
“네!”
“쟤네들 겁먹었다. 마음 편히 사냥하자.”
“알겠습니다.”
“그리고 진철이 형.”
“어.”
“형도 이번은 뒤로 빠져 있어요.”
“왜? 나 조금만 하면 숙련 오를 것 같단 말이야.”
“그럼 형은 좀 늦게 투입하는 걸로 하고. 안 중위!”
“네!”
안유정 중위가 나섰다.
“이번에는 안 중위가 유 중위 서포트해.”
“알겠습니다.”
“유 중위 들었지?”
“들었습니다.”
“뒤에 있는 사람 미숙이 누나 아니야. 안 중위야. 물론 안 중위도 실력이 많이 늘긴 했지만 A등급 마법사하고는 좀 다르겠지?”
“네.”
유지태 중위가 비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김 대위. 모든 버프는 누구에게?”
“유 중위에게 돌리겠습니다.”
“그래. 자, 그럼 시작해 보자.”
진우의 말에 유지태 중위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유지태 중위의 기합 소리에 다시 한번 전쟁이 치러줬다. 물론 몬스터들이 몸을 사리는 바람에 앞선 공략시간보다는 조금 더 걸렸지만 덕분에 유지태 중위도 마음껏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진우가 게이트를 공략하고 있는 그 시각. 강원도 어느 시골에 김철수와 최대근이 나타났다. 김철수는 최대근과 함께 진우의 부탁대로 블랙 게이트에서 죽은 동료들의 집을 돌아보는 중이었다.
“주혁이 집에 다 온 것 같은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김철수가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저기 죄송한데요. 말 좀 물을게요.”
“그래요.”
“혹시 임주혁 씨 집이 어디인 줄 아세요?”
“누구요?”
“임주혁 씨요.”
“으음……. 모르겠는데요.”
“그럼 혹시 블랙 게이트…….”
“아아. 거기! 저어기 저기! 빨간 지붕 집 보여요?”
“네.”
“저기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김철수가 인사를 하고 그곳으로 갔다. 빨간색 페인트칠이 된 집으로 가는 김철수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하아……. 임 상사님. 가족들 걱정을 엄청 많이 했는데.”
고(故) 임주혁 상사는 함께 블랙 게이트에 들어갔던 부사관이었다. 임백호 상사와 함께 고참급 간부였다. 처음에는 진우와 트러블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진우를 믿고 따르고 보필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진우가 보급부대를 맡겼는데 약탈당하던 그 날 임주혁 상사는 어떻게든 그 보급을 지키려고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런 착잡한 마음으로 가고 있는데 그 집 안에서 시끄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