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숨긴 귀환자 101화
12. 봄날은 간다(1)
“조합형 게이트는 정식 명칭이 아니야. 흔히들 어떤 조건을 완료했을 때 열리는 조건부 게이트를 조합형 게이트라고 불러. 또 다른 말로 퍼즐 게이트라고도 해. 중국에서는 환상 게이트? 그렇게 말하기도 하더라. 또 다른 나라에서는 신의 게이트라고 하고 말이지.”
그러자 김슬기 대위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부르는 것이 제각각이네요.”
“그건 어쩔 수 없죠. 부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중요한 것은 조합형 게이트에서 어마어마한 아이템이 나온다는 거죠.”
진우가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형은 들어가 봤어요, 안 들어가 봤어요?”
“나야 들어가 봤지. 내가 들어갔던 게이트가 B등급이었던가? 맞아, B등급 조합형 게이트.”
그러자 옆에서 안미숙이 약간 실망한 듯 말했다.
“어? 고작 B등급 게이트?”
“자기야 고작 B등급 게이트라니. 이 조합형 게이트는 등급으로 따지면 안 돼. B등급 게이트라고 하면 거의 난이도는 A등급 수준이라고 보면 돼. 그런데 문제는 뭐냐. 공략대는 그렇게 준비를 하지 않는다는 거지.”
“왜?”
안미숙 역시 박진철의 설명에 빠져들었다.
“왜긴. 조합형 게이트는 아이템이 잘 나온다고 했잖아. 일설에 의하면 플레이어 유형에 따라 최고급 아이템이 떨어진다는 설도 있고. 막타를 친 플레이어에게 최고의 아이템이 떨어진다는 설도 있어. 그러다 보니 조합형 게이트를 여는 플레이어가 상위 랭커를 부르겠어?”
“아니, 안 부르지.”
“그래. 절대 안 불러. 왜? 죽으나 사나 자신들이 잡으려고 하겠지. 조합형 게이트에서 정말 좋은 아이템이 떨어졌어. 자신보다 훨씬 높은 애가 옆에 있어. 그런데 감히 먹을 수 있겠어?”
“그러네······.”
모두들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박진철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조합형 게이트는 정말 공략하기 빡빡해. 이런 것들 때문에 말이야.”
조합형 게이트의 난이도도 어려운 것이지만 그 난이도를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정말 빠듯하게 공략대를 구성한다.
“마치 우리처럼 말이야.”
그러자 진우가 피식 웃었다. 솔직히 그럴 의도를 이런 공략대를 짠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우리 공략대가 정말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그런 공략대가 되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유지태 중위가 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B등급 게이트하고 오늘 게이트하고 따지면 어떤 것이 더 힘듭니까?”
“당연히 전자가 더 힘들죠. 그런데······ 개개인의 난이도를 따졌을 때 오늘 게이트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 얘기에 유지태 중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난번 개미굴을 공략했을 때보다 오늘은 조금 빠듯하고 힘들긴 했다. 그만큼 숙련도도 많이 오르고 많이 성장을 했다.
그런데 박진철이 냉정하게 얘기를 해줬다. 거의 A등급에 육박하는 게이트에 비하면 쉬운 게이트였다.
그렇게 유지태 중위도 마음을 다잡았다. 안유정 중위 역시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러자 안미숙이 슬쩍 말했다.
“자기. 오늘 너무 잘난 척한다.”
“내가 또 그랬나? 아무튼 마저 얘기를 하자면 조합형 게이트가 재미있어. 여기서 말이야. 조합형 게이트도 종류가 많아. 내가 갔던 조합형 게이트가 어떤 것이었냐면, 그 안에서 모든 열쇠가 다 나와. 예를 들면 방이 9개가 있어. 그 방마다 열쇠가 나온다는 거지. 그 9개의 열쇠를 가지고 보스를 잡으면 히든 게이트가 나와. 그런 게이트야. 뭐 그런 게이트가 있지만 다른 게이트도 존재해.”
“어떤 거죠?”
“재료가 나오는 게이트가 따로 있고. 보스방이 열리는 방이 따로 있는 거야. 예를 들어 그 게이트에 열쇠가 9개가 필요하다. 그러면 9개의 게이트를 따로 돌아야 한다는 말이지. 그래서 열쇠를 다 먹었어. 그게 끝이냐? 그게 아니라는 거지. 이 열쇠가 열리는 게이트를 찾아야 해. 이게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거지.”
“와. 그건 너무 힘든 거 아닙니까?”
안유정 중위가 한마디 했다. 박진철이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힘들죠. 그런데 그런 게이트일수록 묘한 쾌감이 있단 말입니다. 이렇게 힘들게 조합형 게이트를 열면 얼마나 좋은 아이템이 떨어지겠어요. 이것이 대박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모르긴 몰라도 대형 길드들 대부분이 조합형 게이트를 끼고 있을 겁니다. 뭐, 정확하게 공략을 못 해서 문제지. 다 조합형 게이트에 대한 단서들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서로서로 입장이 맞으면 거래하는 경우도 있고요.”
“오오, 그렇구나.”
“갑자기 돈 많은 회사에서 어떤 길드를 밀어주는 경우가 있죠? 해외에도 많고.”
“네.”
“그런 경우 대부분 조합형 게이트를 끼고 가는 겁니다. 한마디로 조합형 게이트의 권리를 회사가 가지고 있다는 거죠. 회사는 거기서 나오는 부산물과 핵들을 처리해서 길드들에게 파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대형 길드에게 맡기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먹고 째겠지.”
안미숙이 바로 말했다. 박진철이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자기는 역시 똑똑해. 그러지 않기 위해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길드를 끼고 하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지금의 대형 길드들이 많이 생겨난 겁니다.”
“아. 그렇구나.”
진우도 박진철의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앞으로 5개의 조각을 더 먹어야 한다는 거지?’
일단 오늘 먹었던 것이 1-6, 지난번 것이 1-7이었다. 이 이후에 다른 번호가 나올 가능성도 존재했다. 하지만 진우는 거꾸로 번호를 먹어 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렇듯 7개를 다 먹고 나면 그다음 어떤 게이트로 들어갈지는 모른다. 게다가 7개 조각을 모은다고 해도 조합형 게이트를 또 찾아야 하니 언제 열릴지 장담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래도 5개의 게이트에서 S등급 몬스터 핵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5개면 얼마지? 수수료 제하고 500억 정도 잡고······. 오늘까지 먹은 것까지 하면 대략 3천억? 이 정도면 생각보다 많은 것은 아닌데······.’
진우가 단순 계산한 것이었다. 지난번에 조사하기로 블랙 게이트에 들어간 병사들 가족들이 대략 4천 명 정도였다.
그 4천 명에게 1인 기준 이백만 원을 준다고 가정했다.
‘그럼 거의 한 달에 지출되는 돈이 80억 정도네.’
그럼 단순 계산으로 3천억 정도를 80억으로 나누면 남는 개월 수는 37.5개월이라는 결과나 나왔다.
‘뭐야. 그럼 고작 3년이잖아. 빠듯하게 돈을 벌어야겠네.’
3년 안에 정부나 11사단에서 제대로 된 지원금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 지원금이 생각만큼 많이 나올 가능성은 적었다.
그래서 진우의 편의상 1인 기준을 잡고 계산을 한 것이다.
군대에서는 한 가구당 2백만 원 수준이나 3백만 원 수준으로 많이 낮춰서 지원할 게 뻔했다.
그마저도 게이트 관리공단에서는 블랙 게이트에서 사망한 각성 병사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게이트 안에서 어떻게 죽었는지 정말 몬스터들에게 죽었는지, 아니면 견디지 못해 자살을 했는지에 대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각성병사들 든 보험도 어떻게 죽었는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지급보류 상태였다.
한마디로 각성자 보험도 정말 까다롭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우가 각성자들 가족들에게 유일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열심히 게이트 활동을 통해서 돈을 버는 것뿐이었다.
‘그래. 5년이든 10년이든 열심히 게이트를 통해 돈을 벌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야.’
진우가 마음을 다잡았다. 그사이 각성부대원들이 탄 게이트 차량이 11사단 위병소를 통과하고 있었다.
선진, 대해, 황룡, 성일, 중후, 대륙, 현호, 명성, 평화, 신화 등 이렇게 10개 그룹을 가리켜 대한민국 10대 게이트 재벌이라고 부른다.
물론 게이트와 관련된 기업들을 모두 따지고 보면 이보다 훨씬 많다.
한데 언급된 10대 그룹은 게이트 세상을 통해서 이전 세상에서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고 예전보다 훨씬 크게 성장했다.
원래부터 대기업에 속했던 선진그룹과 평화그룹 외의 나머지 8개 그룹은 중견 기업이었다가 게이트 대박을 맞아 대기업으로 성장을 했다.
신화그룹 역시 그런 축에 속했다. 경상북도와 강원도 쪽에 자리를 잡은 기업이었는데 게이트가 생기고 나서 적극적으로 길드들을 지원하고 게이트 탐사에 나서면서 10여 년 만에 10대 게이트 재벌 반열에 올라섰다.
신화그룹 황상욱 회장은 게이트 시대에 대해 얘기를 할 때 빠질 수 없는 이름이다.
하지만 그는 언론이 포장하고 역사에 기록된 만큼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남 잘되는 꼴 못 보고 애들의 코 묻은 돈을 훔쳐서라도 자신의 배를 채워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인간이었다.
오늘도 황상욱 회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비서실장에게 보배그룹에 대해 물었다.
“보배그룹은 아직이야?”
“저쪽에서 좀 뜸을 들이는 모양입니다.”
최기준 비서실장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황상욱 회장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아니, 엄청 대단한 기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짜 그룹도 아니잖아. 계열사 몇 개 가지고 있다고 해서 개나 소나 다 그룹이야?”
“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나 보배그룹은 11사단 쪽 부산물 처리를 맡으면서 요즘에는 입지가 좀 올라간 상태입니다.”
“하아······. 그래서 뭐? 내가 직접 찾아가서 같이 일하자고 부탁이라도 해야 한다는 거야?”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보배그룹을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일을 시켰는데 얘기가 잘되는 것 같다가 갑자기 난색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뭐? 원하는 것이 뭐래?”
“그것이······. 돈 아니겠습니까?”
“핫! 아무튼 이놈이나 저놈이나······. 주둥이에 돈을 쑤셔 넣지 않는 이상 일하는 꼴을 못 보지.”
황상욱 회장이 잠깐 고민을 했다. 그러곤 최기준 비서실장을 보며 말했다.
“100억 정도 지원해 줄 테니. 확실히 책임지고 도장 찍어와.”
“네, 알겠습니다.”
최기준 비서실장이 바로 고개를 숙였다. 황상욱 회장은 영 못마땅한 얼굴이 되었다.
“이만 나가봐.”
“네.”
최기준 비서실장이 나갔다. 그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자인 황준수가 들어왔다. 그는 앞 소파에 털썩 앉았다. 황상욱 회장은 손자를 보며 환한 얼굴이 되었다.
“어이쿠. 손자 왔어?”
그러나 황준수는 그런 할아버지의 말을 무시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짜증을 냈다.
“아, 시발······. 짜증 나! 에이씨······. 왜 매번 이러냐.”
그 모습을 보고 황상욱 회장이 물었다.
“왜 그러냐. 무슨 일이야?”
“디카페인요.”
“또 디카페인 다녀왔어? 거긴 왜······. 너 설마?”
황상욱 회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디카페인에는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아이템 거래소이면서, 도박장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황준수도 황상욱 회장이 뭔 말을 하는지 바로 알고 인상을 썼다.
“할아버지는······.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뭔데?”
“아니, 이번에 S등급 몬스터 핵이 새로 나왔다고 해서요.”
“S등급 몬스터 핵? 어디서?”
“그건 저도 잘 모르죠. 아무튼 소문 듣고 갔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