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숨긴 귀환자 106화
12. 봄날은 간다(6)
“어후, 시원하다. 너 제법 한다.”
진우가 만족감을 느끼며 입가에 미소를 보였다. 이진상이 이를 악물며 더욱 힘껏 밀었다. 그러다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형. 때가 계속 나오는데.”
“야, 때를 미는데 때가 계속 나와야지.”
“와, 나 형 등에서 나오는 때 보고는 밥을 못 먹을 것 같은데.”
“이 자식이 진짜······. 형은 군대에서 개고생을 하고 있는데. 너 누구 덕분에 군대에 안 가고······.”
“알았어. 알았어. 그것 좀 그만 우려먹어라.”
“그러니까 잘해, 인마.”
모처럼 이진상이 고생하는 것을 보며 진우가 피식 웃었다.
목욕을 마친 진우가 1층으로 내려갔다.
부엌에서는 상차림을 어마어마하게 한 상태였다. 내려온 진우를 보며 엄마는 살갑게 맞이했다.
“우리 아들, 잘 잤어?”
“집에서 진짜 푹 잤어요.”
“그러니 집인 거야. 그보다 우리 아들 얼굴이 많이 수척해졌네.”
그러자 식탁에 앉아 있던 이태경 회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얼굴이? 아닌데? 오히려 좋아 보이는데.”
“이 양반이 뭐라는 거예요. 아빠가 되어서 이렇듯 무심해서는······.”
이태경 회장은 대번에 핀잔을 들었다. 진우가 바로 입을 열었다.
“엄마. 나 살쪘어.”
“살찌긴······. 예전의 포동포동한 모습은 어디 가고······. 이렇게 삐쩍 말라서는······.”
“엄마 예전에는 젖살이 안 빠진 거고.”
“시끄럽고 어서 먹어.”
엄마는 진우를 바로 자리에 앉혔다. 옆에서 음식 하나하나를 직접 먹여줬다.
“아들, 이거 어때?”
“맛있어.”
“이건?”
“이것도 맛있어. 엄마 요리는 다 맛있지.”
“그렇지? 많이 먹어, 아들.”
“응!”
그 모습이 부러웠던 이태경 회장이 슬쩍 말했다.
“여보 나도······.”
“당신은 손이 없어요? 직접 먹어요.”
그러자 바로 이태경 회장이 시무룩해졌다. 그 앞에 이진상은 그러려니 하며 알아서 밥을 챙겨 먹었다.
어쨌든 진우가 집안을 위해 고생을 한 것은 사실이었고, 엄마에게 저런 대접을 받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
“참! 우리 큰아들.”
엄마가 밥 잘 먹고 있는 진우를 불렀다. 진우는 입안 가득 음식을 오물거리며 엄마를 바라봤다.
“······?”
“혹시 만나는 여자 있어?”
진우는 입안의 음식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내가 만나는 여자가 어디 있어. 군 생활하기도 바쁜데.”
“진상이도 여자 친구가 있는데 형이 되어서 없으면 어떻게 해.”
“아이고, 엄마. 내가 알아서 해. 걱정하지 마.”
“알아서 하긴, 도대체 뭘 알아서 해. 너 그러다가 서른 되는 거 금방이다.”
“서른은 무슨······. 엄마. 나 플레이어야. 엄청 잘나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엄마가 선 자리 한번 알아볼게.”
진우가 바로 기겁했다.
“엄마! 내 나이가 지금 몇인데 선을 봐.”
앞에 있던 이태경 회장도 거들었다.
“그래, 당신······. 선은 좀 너무했다.”
“당신 아무것도 모르는 소리 하지 마요. 진우가 가정을 꾸려서 토끼 같은 새끼들도 낳고 그래야지 몸조심하면서 플레이어 생활을 하죠. 당신은 진우가 걱정되지도 않아요?”
그런 엄마의 말을 들은 진우는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지난 1년간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도 알 수 없는 블랙 게이트에 있다 나왔으니, 오죽하면 저런 말을 하겠는가.
하지만 이해는 되어도, 선은 보기 싫었다.
“엄마. 나 이번에 소개팅하기로 했어요.”
“소개팅? 누군데?”
“소개팅이니까, 당연히 모르지. 부대 부하 장교 여자 친구의 친구를 소개해 주기로 했어요.”
“여자 친구의 친구? 플레이어야?”
“플레이어는 아니라고 하던데······.”
“예뻐?”
“아직 얼굴도 몰라요.”
“사진 안 받았어?”
“네.”
“아무리 그래도 사진은 받아야지.”
바로 이진상이 거들었다.
“그래, 형. 나갔다가 이상한 여자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이태경 회장도 슬쩍 말했다.
“어험, 나도 예비 며느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긴 하다.”
그러자 바로 엄마가 나섰다.
“누구 맘대로 예비 며느리에요.”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태경 회장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진우는 그런 엄마의 말에 휴대폰을 꺼내 유지태 중위에게 문자를 보냈다.
-유 중위, 미안한데 소개팅해주기로 한 분 말이야. 혹시 사진 있을까?
-아, 유진 씨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바로 답장이 왔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문자를 통해 사진 한 장이 날아왔다. 그것을 본 진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정말 예쁘장하게 생긴 미인이었다. 진우는 사진 속 여자가 마음에 들었다. 엄마에게도 휴대폰 속 사진을 보여줬다.
“엄마 소개팅할 여자 이렇게 생겼다는데.”
엄마는 곧바로 휴대폰을 낚아채 뚫어져라 바라봤다.
“으음······. 예쁘긴 한데 한 성격 할 것 같은데.”
“어디, 어디 나도 좀 보자.”
이태경 회장이 바로 손을 내밀어 휴대폰을 받았다. 휴대폰 속 사진을 보며 말했다.
“에이. 예쁘기만 한데 무슨······.”
그러자 바로 엄마의 공격이 이어졌다.
“당신이 뭘 알아요. 여자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아요.”
엄마의 말에 이태경 회장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바로 휴대폰을 엄마에게 줬다.
“내가 보기에 그렇다는 거지······.”
이진상도 슬쩍 휴대폰 속 사진을 보며 깜짝 놀랐다.
“오오. 엄청 예쁜데요. 형에게 아까운데요.”
“이놈의 자식이. 형에게 아깝긴 뭐가 아까워.”
“말이 그렇다는 거죠.”
“형도 꾸며놓으면 얼마나 멋있는 줄 알아? 군대에서 고생을 해서 그렇지.”
엄마도 지금은 은근 진우를 까고 있었다.
엄마?
진우가 그런 엄마를 슬쩍 바라봤다. 하지만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예전에는 얼마나 잘생겼었는데.”
“에이, 엄마. 그 정도는 아니었다. 난 오히려 지금이 더 멋있는데.”
이진상의 말에 엄마가 바로 반박했다.
“얘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살 다 빠져서 뭐가 멋있다고.”
엄마의 말은 들었지만 진우 본인도 현재의 모습이 좀 마음에 들긴 했다. 예전보다는 좀 더 잘생겨진 느낌이었다.
‘관조를 해서 그러나?’
조금씩 관조를 하다 보니 몸의 노폐물도 다 빠져나가고 상태가 좋아진 기분이었다. 엄마가 진우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이 아가씨 언제 만나기로 했어?”
“내일 만날 것 같은데요.”
“내일? 너 내일 입고 나갈 옷은 있어?”
“엄마는······. 옷이야 있죠. 예전에 사 놓은 것이 있는데.”
“그러지 말고. 기왕 소개팅 나가는데 옷이나 좀 사 입고 그래.”
“그럴까?”
진우도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엄마의 시선이 곧바로 이진상에게 향했다.
“진상아. 네가 잘 알지? 나가서 형하고 쇼핑 좀 해.”
진우가 바로 말했다.
“엄마. 내가 애도 아니고 진상이랑 가요. 나 혼자 해도 돼요. 그리고 나 뭐 하는 줄 아는데 굳이 안 차려입고 가도 돼요.”
“어이구······. 엄마 속도 모르고······.”
“알았어요. 장 여사님. 나가서 잘할게요.”
진우가 그런 엄마를 달랬다.
식사를 마친 진우와 이태경 회장은 서재에서 같이 차를 마셨다.
“엄마가 저러는 거 어디 한두 번이냐. 이해해라.”
“알아요. 그보다 아버지.”
“오냐.”
“최 사장하고는 연락 안 하죠?”
“안 해, 안 해! 네가 그때 하도 뭐라고 해서 최 사장에게 얘기했어. 안 하겠다고.”
“그래서요. 최 사장이 뭐래요? 별말 없어요?”
“별말 안 하지. 내가 그때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고. 우리 큰아들이 안 된다고 했다고 말이야.”
“진짜 그렇게 말했어요?”
“그래!”
“최 사장이 그렇게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닐 텐데요.”
“최 사장도 이 아빠의 고집을 아는 거지.”
이태경 회장이 그렇게 말은 했지만 진우가 아는 최 사장은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아버지.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무슨 일 있으면 저에게 바로 얘기해 주셔야 돼요.”
“알았다. 알았어. 절대 연락 오지 않을 거야.”
진우는 이태경 회장의 확신에 찬 말에 뭔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일단은 속는 셈 치고 넘어갔다.
다음 날.
커피숍에 유지태 중위와 한선영이 먼저 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조유진이 들어왔다. 한선영이 바로 손을 흔들었다.
“유진아. 여기!”
“어!”
조유진이 환한 표정으로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갔다. 조유진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나 안 늦었지?”
“늦기는······. 20분이나 먼저 와 놓구선.”
“그랬니? 난 정시에 나온다고 나왔는데 나도 모르게 들떴나 봐.”
조유진이 들뜬 목소리로 대답하자 한선영은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어머머머, 뭐야. 너.”
“왜? 뭐가 잘못됐니?”
조유진이 당황하며 물었다. 그러자 한선영의 표정이 환해지며 말했다.
“너, 오늘 신경 좀 썼다? 왜 그렇게 예쁘게 하고 나왔어.”
한선영은 앞에 앉은 조유진을 보며 감탄하듯 말했다. 조유진은 살짝 붉게 물든 얼굴이 되었다.
“그, 그래? 그냥 평소대로 하고 나왔는데······. 오히려 네가 더 예쁘게 하고 온 거 같은데?”
“어머. 나도 평소대로인데?”
“그러니? 호호호.”
“호호호.”
두 사람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그 옆에서 유지태 중위는 살짝 땀을 흘리며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한선영은 모델 출신이었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키를 자랑했다. 하물며 예쁘기까지 했다. 그 덕에 주변의 권유로 모델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이 일을 해보니 자신과 맞지 않았다. 그래서 모델 일을 포기하려던 찰나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유지태 중위를 만났다.
그때 당시 스토커와 한선영에게 집적대던 난봉꾼을 플레이어로 막 각성한 유지태 중위가 혼내주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유지태 중위는 자신의 실력을 키우기 위해 군에 입대를 했고, 그때를 같이해 두 사람의 동거도 시작되었다. 한선영도 그때 모델 일을 그만두고 아예 집에서 살림만 하게 되었다.
물론 한선영은 집에서 아줌마처럼 퍼지지는 않았다. 모델 출신답게 자기관리는 철저했다.
조유진과는 봉사활동에서 만났다.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마음이 참 잘 통하는 친구였다. 그래서 몇 번 대화도 하고 술도 한잔하다 보니 어느새 절친이 되어 있었다.
조유진의 시선이 한선영 옆에 있는 유지태 중위에게 향했다.
“지태 씨죠? 선영이에게서 얘기 많이 들었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아, 예에. 저도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사진으로 볼 때보다 실물이 훨씬 미인이시네요.”
“어머, 그래요? 고마워요.”
유지태 중위의 멘트에 조유진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물론 한선영보다는 아니지만 조유진도 나름 매력적인 여자였다. 유지태 중위는 한선영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자기는 유진 씨를 어디서 만났어?”
“내가 말 안 했나? 우리 봉사활동에서 만났어.”
“봉사활동? 아, 일주일에 한 번씩 나간다는 거기?”
“응.”
게이트 시대가 열리고 난 후 그로 인해 피해받은 사람들이 적잖았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플레이어들의 와이프들이나 가족들이 나름의 봉사활동을 했다. 전국적으로 그런 봉사활동이 있는데 한선영은 그곳에서 조유진을 만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