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을 숨긴 귀환자-109화 (109/177)

힘을 숨긴 귀환자 109화

12. 봄날은 간다(9)

“문부터 시작해서 전부 다 싹 몬스터 합금으로 대체할 거야.”

“그래도 괜찮겠어요? 어차피 지금 형이나, 나랑 누나뿐인데.”

“지금은 지금이고. 나중은 또 나중이지. 그리고 요즘은 길드 사무실에 돈 안 쓰면 애들이 잘 안 와. 우리 언제까지 둘이서 헬퍼만 하고 있을 거야.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도 자체적으로 게이트를 뛰든지 해야지.”

“그렇긴 한데요. 지금 당장 부를 사람 있어요?”

“그래서 말인데 다른 곳에 갔던 애들을 부르면 안 될까?”

박진철이 말하는 그들은 홍찬수, 김윤석, 안보라, 최미진 그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네 사람 다 강힘길드에서 뼈를 묻었고 오랫동안 함께 했었다. 지금은 사정 때문에 잠시 떨어져 있는 것이다.

어쨌든 박진철은 이 네 사람을 다시 불러오고 싶었다.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는 않은데요. 다 부르려면 재정적으로 빠듯하지 않아요?”

“그건 좀 그런데······. 그래도 좀 후려쳐 봐야지.”

“요새 대형 길드에서는 돈을 얼마씩 줘요?”

“요새? 대형 길드 기준으로는 A등급은 한 30억 정도는 받아. 물론 A등급 나름이지만 우리 미숙이 정도라면 50억 정도는 되지.”

박진철의 여자 친구라서가 아니라 안미숙은 제법 실력 있는 마법사였다. 강원도 내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특히 공격력과 몸을 사리지 않는 것은 최고 수준이었다.

사실 마법사들은 몸을 사리고 마나를 아끼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막상 등급 대비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안미숙은 워낙에 성격이 불같고 타인을 위하는 이타적인 플레이어를 좋아해서 다른 길드에서도 그녀를 스카우트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B등급은요?”

“B등급은 거의 10억 정도 받지. 거기서 조금씩 더 주거나 덜 주거나 하는데 요즘 금액은 거의 비슷하게 가. 그 외 아이템이나 다른 것으로 차등을 주더라.”

“그럼 C등급은 5억 좀 하겠네요.”

“거의 그 정도 하더라.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C등급 정도는 어지간하면 다 B등급까지 올라가니까. 미리미리 챙겨 주는 거지. 그래도 길드에서 B등급이 주력 아니냐.”

박진철의 말에 진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길드에서 게이트 공략의 핵심은 B등급으로 보고 있다. A등급 게이트를 공략할 때도 B등급 플레이어가 주력이고, S등급 게이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B등급 게이트는 말 그대로 B등급이 들어가야 하고 말이다. 한데 C등급 이하 게이트는 조금 어려운 게이트라면 C등급 플레이어가 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점에서는 B등급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은 C등급 플레이어를 우대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발에 치일 정도로 많은 D등급 이하는 일반인보다 연봉을 많이 받지만 생각만큼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한다.

“그럼 형. 대형 길드에서 그 정도라면 우리는 얼마를 줘야 해요?”

“사실 우리 정도는 70%에서 맞춰주는 거지.”

70% 정도면 A등급은 20억, B등급은 7억 정도 잡아야 했다. 진우가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그럼 전부 다 B등급이니. 7억으로 잡고 대충 30억으로 잡아야겠네요.”

“크음, 진우야 나랑 미숙이는 왜 빼?”

진우가 다시 생각했다.

‘넷에 7억이면 21억에다가 미숙이 누나는 20억. 진철이 형은 길드장이니까 10억 정도는 받아야겠네.’

거의 이렇게만 해도 거의 60억이라는 돈이 나가는 것이었다. 1년에 60억이니 이걸 유지하려면 최소한 1년에 B등급 게이트를 5개 정도는 꾸준하게 클리어를 해야 했다.

물론 안미숙이 있으니 그들만 불러온다면 인건비는 맞춰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요.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해요. 나도 크게 상관없어요.”

“그래. 너랑도 잘 지냈잖아.”

“네. 그렇게 하자고요. 한번 얘기해 보세요.”

“그래.”

진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미숙이 누나는요?”

“어. 미숙이는 여기 먼지 날리고 시끄러워서 커피숍에 가서 쉬라고 했어.”

“어이고. 애처가 나셨네.”

“왜? 나는 애처가 하면 안 되냐?”

“내 말이······. 도대체 이렇게 하고 싶어서 그동안 어떻게 참으셨대. 아주 활활 타오르는구만.”

“진우야. 내가 이제 와 하는 말인데. 내가 그동안 미숙이 때문에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어.”

“요즘이 아니라, 예전에?”

“어.”

“왜요? 미숙이 누나랑 연애하고 싶어서요?”

“그래, 인마. 솔직히 나 어렸을 때부터 미숙이 좋아했었거든. 그런데 미숙이는 그때도 인기도 많았고······. 그저 난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있었지.”

“그래서 미숙이 누나가 게이트에 빠졌다고 했을 때 물불 안 가리고 들어갔구먼.”

“솔직히 말해서 나는 미숙이 구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그냥 마지막으로 너 좋아한다고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 얘기를 하지 못한다면 서러울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런데 그걸 또 구하네? 게다가 뜬금없이 플레이어가 되어버렸고. 그래서 고백을 좀 미뤘지.”

“나중에 좀 잘 되어서 고백하려고?”

“그렇지. 나도 남자인데 B등급 플레이어가 되어서 좀 멋있게 응! 내 아이를 낳아도! 이렇게 멋지게 말하려고 한 거지.”

“와, 내 아이를 낳아도. 가 뭐야.”

“말이 그렇다고. 아무튼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와, 안미숙 이 나쁜 계집애. 나보다 더 세진 거 있지. 그래서 이것저것 해보려고 노력했지. 길드도 키워보려고 했고. 그것도 안 되고······. 그러고 있는데 미숙이는 나 불쌍하다고 끝까지 옆에 붙어 있고.”

“형은 진짜 모른다.”

“뭘 몰라 인마.”

“미숙이 누나가 형이 불쌍해서 옆에 붙어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럼 뭐?”

“당연히 미숙이 누나도 형을 좋아해서 그런 거죠.”

“그렇지? 내가 좀 그런 매력이 있지.”

박진철은 꽤나 자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진우는 한심스럽게 바라보다가 박진철 어깨너머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누나. 누나는 형이 뭐가 좋아서 만나요?”

“뭐? 누나?”

박진철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뒤쪽으로 했다. 그러자 안미숙이 손을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인마. 내가 말하지 말라고 사인 보내고 있었잖아.”

진우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두 사람 진짜 뭐 해요? 솔로인 날 두고 염장 질러요?”

“염장은 무슨······. 그런데 자기는 왜 왔어?”

박진철의 시선이 대번에 안미숙에게 향했다. 안미숙 역시 미소를 보였다.

“어떻게 자기 혼자 두고 나만 쉬어. 여기 커피.”

안미숙이 박진철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그런데 진우를 보며 미안한 얼굴이 되었다.

“미안. 네가 온 줄을 몰랐네. 그래서 커피 한 잔만 가져왔는데······.”

“괜찮아요.”

“아니면 누나 거 먹을래?”

“됐어요. 저 차 마시고 왔어요.”

“그래?”

안미숙은 바로 대답을 하며 박진철을 봤다.

“커피 맛 어때?”

“자기가 가져왔는데 당연히 맛있지.”

“그렇지.”

그런 두 사람의 닭살 행각에 진우는 인상을 썼다.

“어디 게이트 안 열리나? 두 사람을 거기다가 집어넣어 버리게.”

진우의 살벌한 말에도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았다. 안미숙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게이트? 좋지! 우리 게이트에서 데이트하면 돼.”

“네가 모르나 본데. 우리 여친. 불의 심판 쓰는 여자야.”

박진철이 당당하게 말했다. 안미숙이 덩달아 말했다.

“그리고 내 남친은 B등급 탐색꾼이거든. 우리 어지간해서는 잘 안 죽어.”

“그럼, 그럼.”

진우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진우의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응 누구지?”

진우는 혹시나 조유진에게서 온 문자인가 싶어 황급히 확인했다. 그런데 아버지인 이태경 회장의 문자였다.

-아들. 오랜만에 아빠랑 술 한잔할까?

문자를 확인한 진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져갔다. 이 말은 진짜 술을 먹자는 것이 아니었다. 살려달라는 아버지의 SOS 신호였다.

신화그룹 한상호 회장은 최기준 비서실장에게 100억을 줬다. 하지만 최기준 비서실장은 그 돈을 전부 다 쓰지 않았다. 이태경 회장을 꽉 잡고 있다는 명수유통 최명수 사장을 만나서 50억을 건넸다.

“이게 마지막이야. 이 돈을 받고도 이태경 회장을 판에 못 앉히면 최 사장 각오해.”

“그럼요. 저만 믿으십시오. 이번에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해먹을 생각하지 말고 쓸 때는 제대로 써. 자꾸 딴 주머니를 차려고 하니까 일이 안되는 거잖아.”

최명수 사장이 멋쩍게 웃었다.

“에이. 제가 설마 그러겠습니까. 지난번에 주신 것도 거의 다 이태경 회장 입에 들어갔습니다.”

“그럼 뭐? 이태경 회장이 뻔뻔하게 먹고 모른 척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말이에요. 그 아들내미 있는 것 가지고 어지간히 유세를 떨어요.”

“아무튼 오래 못 기다려. 이 계약서에 이태경 회장 도장 찍어와.”

“네. 알겠습니다.”

최명수 사장이 힘차게 대답했다. 최기준 비서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배웅해 주고 다시 들어온 최명수 사장은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러곤 바로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와, 시발······. 나이도 나보다 어린 자식이 신화그룹 비서실장이라고 어지간히 목에 힘주고 말이야.”

최명수 사장의 시선이 탁자 위에 쌓인 007가방을 봤다.

“그나저나 50억이라······.”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예나 지금이나 불법적인 것은 돈 가방이 최고였다. 50억이면 5만 원권 지폐가 무려 10만 장이었다.

“아이고 많이도 가져왔네. 그보다 계약서라······.”

최명수 사장은 최기준 비서실장이 놓고 간 계약서를 들어 확인했다. 그 계약서에는 보배그룹은 신화그룹이 요청한 부산물에 관한 처리를 전부 해야 한다는 계약조건이 쓰여 있었다.

계약 내용만 본다면 그냥 파격적이었다. 신화그룹이 일본에서 들여오는 모든 부산물을 보배그룹에 맡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세히 따져보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조건이었다. 신화그룹이 얼마의 양을 주든지 보배그룹은 전부 다 처리를 해야 하고, 만에 하나 처리를 하지 못할 경우 전부 배상해야 했다. 그것도 10배로 말이다.

이런 계약이라면 처음에 잠깐 돈을 벌 수 있을지 몰라도 신화그룹이 마음먹고 장난을 쳐버리면 보배그룹은 수많은 회사들처럼 그저 그런 하청업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계약서를 다 확인한 최명수 사장이 인상을 썼다.

“와, 보배그룹 내가 먹으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대기업은 달라도 너무 달라. 이 종이 하나로 먹어버리려고 하니 말이야. 나도 태어나면 재벌가의 자식으로 태어나고 싶다.”

최명수 사장은 혼잣말로 구시렁거리다가 옆에 있는 전화기를 들었다.

“어디 보자, 이태경 회장 전화번호가······.”

몇 번 뒤적거리던 그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한참이나 전화를 걸었는데도 받지를 않았다.

“아, 진짜 이 인간은 왜 전화를 안 받아. 전화를 받아야 무슨 얘기를 하지.”

최명수 사장이 잠깐 생각을 하다가 다시 전화기를 들어 몇 번 뒤적거렸다. 그리고 하나의 전화번호를 찾아 눌렀다.

“어. 곽 사장. 납니다. 최명수.”

-아이고 최 사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수화기 너머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