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숨긴 귀환자 111화
13. 잘못 건드렸어(2)
이태경 회장은 곽대식이라는 인물은 알고 있다. 바로 최명수 사장에게 들은 인물이었다. 최명수에게 듣기로 이 동네에 곽대식이라고 플레이어 출신 용역이 있다고 말이다.
‘이 양반이 힘쓰는 일을 참 잘해요. 곤란한 일 처리도 하고 있고. 그러니 처리할 일이 있으면 나에게 말해요. 내가 그 친구에게 말해서 깔끔하게 처리시켜 놓을 테니.’
최명수 사장이 실실 웃으며 자랑스럽게 곽대식에 관해 얘기를 했었다. 하지만 그 당시 이태경 회장은 딱히 ‘그런 도움’이 필요 없었다. 그래서 별말이 없었는데, 그 곽대식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순간 이태경 회장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설마 최명수 사장이 시킨 거요?”
곽대식이 피식 웃었다.
“아따. 이 회장님 눈치 하나는 빠르시네.”
“최 사장 어디 있소?”
“기다려 보시오. 연락을 했으니까. 곧 나타날 거요.”
이태경 회장이 잔뜩 인상을 썼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거요?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날 잡아 온 것이오.”
곽대식이 그런 이태경 회장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 회장요. 우리 그리 좋은 사람들은 아니오. 어디까지나 우리는 부탁을 받아서 하는 일이오. 그런데 자꾸 이런 식이라면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오. 내 소문은 대충 들었죠?”
곽대식이 씨익 웃으며 허연 이를 드러냈다. 그 모습에 이태경 회장이 아연실색하여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 이태경 회장도 곽대식에 대한 소문을 최명수 사장에게 들었다. 그가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사람이고 플레이어 출신이라 사람을 험하게 다룬다고. 그리고 그런 곽대식에게 당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까지 말이다.
물론 진우에게 SOS를 보낸 상태고 진우가 자신을 구하러 올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우가 오기 전까지 반병신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알았소. 당신이 시키는 대로 하겠소.”
곽대식이 바로 미소를 보였다.
“그래. 진즉에 이렇게 나오면 좀 좋아요. 최 사장 곧 온다고 하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시오.”
이태경 회장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진우가 최명수 사장과 어울리지 말라고 말을 했었다. 그런데 최명수 사장이 이런 식으로 자신을 납치할 줄은 몰랐다.
‘빨리 좀 와라, 진우야. 네 아버지 죽게 생겼다.’
이태경 회장이 머릿속으로 간절히 중얼거렸다.
그 시각 진우는 이태경 회장의 휴대폰에 심어놓은 추적 장치를 통해 달려가고 있었다.
휙! 휘휘휙!
진우는 건물 위를 날아다니듯 점프를 하며 거의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속도는 둘째 치고 진우에게 있어서 그 어떤 장애물도 소용이 없었다.
그때 건물 옥상에 남녀가 있었다. 그들은 건물 옥상에서 밤의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
“자기야.”
“응?”
“자기도 플레이어잖아. 그러면 막 건물 옥상이나 지붕 같은 것을 넘어 다니고 그럴 수 있어?”
여자는 천진난만한 눈동자로 옆에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가 허연 이를 드러냈다.
“당연하지. 충분히 넘어갈 수 있지.”
“그래? 그럼 저기 한번 넘어 볼래?”
여자 친구가 가리킨 건물 옥상을 봤다. 남자가 살짝 움찔했지만 이내 표정이 밝히며 말했다.
“자기야. 플레이어들은 밖에서 함부로 힘을 드러내고 그러면 안 돼.”
“정말? 못 넘는 것이 아니라?”
“그래. 충분히 넘어갈 수 있지. 그런데 힘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돼. 플레이어 협회에 걸리면 나 제명이야. 자기는 내가 그렇게 되면 좋겠어?”
“아니, 아니. 그러면 절대로 안 되지.”
“그런데 자기야.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어봐?”
“그게, 친구가 그러더라고. 자기가 아는 플레이어 중에 막 건물들 사이를 뛰어다니고. 어떤 때는 아파트를 기어 올라가고 그랬다더라.”
“에이. 그런 플레이어 없어. 영화일 거야. 영화! 실제로 그런 플레이어는 없어. 게이트 외부에서 힘을 쓸 수 없어. 그리고 그렇게 함부로 쓰다가 걸리면 플레이어법 위반으로 잡혀가.”
“그래?”
여자 친구가 고개를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여자 친구의 눈에 뭔가가 보였다.
“어? 저, 저기······.”
“응 뭐?”
“저기 저 사람 말이야.”
여자 친구가 가리킨 곳으로 남자가 시선을 돌렸다. 어둠 속 어떤 인영이 건물 옥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 빠른 속도로 말이다.
“저거 사람 아냐?”
여자 친구 물음에 남자는 당황했다.
“뭐, 뭐야······. 저 사람.”
그때 여자 친구가 눈을 슬쩍 흘기며 팔짱을 꼈다.
“뭐야, 자기? 자기는 저런 거 못 하지?”
“나도 할 수 있거든.”
“그럼 한번 해봐.”
“뭐?”
“한번 해보라고. 저 사람처럼 말이야.”
그러자 남자가 바로 짜증을 냈다.
“아이씨! 예뻐서 좀 만나줬더니······. 야, 헤어져.”
“뭐?”
여자는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설마 저거 넘어가 보라고 했다고 헤어지자는 거야?”
“됐어! 헤어져!”
남자가 투덜거리며 몸을 돌렸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멋지게 건물 옥상을 뛰어넘고 싶었지만 E등급 플레이어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진우는 휴대폰으로 아버지 이태경 회장의 위치를 확인하며 직선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어떤 미친 새끼가 우리 아버지를 건드려!? 걸리기만 해봐 가만두지 않아!”
그때 왼쪽 창에 알람이 깜빡거렸다. 그것을 클릭하자 애들이 미친 듯이 글을 남기고 있었다.
-대장, 대장. 우리를 부르라니까요. 대장이 나설 때가 아닙니다.
그 글을 보던 진우가 뛰던 것을 멈췄다. 그리고 창을 통해 입을 열었다.
“뭐야? 왜?”
-대장은 군인이잖아요. 군인이 민간인을 처리하게요?
“너희도 군인 아니야?”
-에이. 우리는 지금 신분이 없는 상태잖아요.
“그러다가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대장도 참······. 벌써 잊어버린 겁니까? 대장이 우리에게 뭘 줬는지 잊었어요? 인피면구를 줬잖아요.
-맞아요. 우리가 처리할 테니 위치만 알려줘요.
그때 진우가 바로 인벤토리를 열었다. 거기 한 곳에 자리한 인피면구를 봤다.
“나도 인피면구가 있는데?”
-에헤이. 대장. 그러지 말라니까요.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그래요. 우리에게 좀 맡겨요. 대장 아버지 절대 이상 없도록 잘 처리할게요. 대장은 그냥 지켜보고 있어요. 우리가 알아서 다 처리할게요.
진우는 속에서 들끊는 기운을 가라앉히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물론 김철수하고 최대근에게 일을 맡기면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진우는 이런 일을 벌인 녀석에게 경고를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이 나서서 아버지를 구해야지 만약 다른 사람을 시켜서 구한다면 저쪽에서 또 다른 짓을 저지를지도 몰랐다.
“아니야. 이건 일단 내가 가서 아버지를 구할게. 대신에 내가 아버지를 데리고 나오면 최 중사하고 김 중사, 뒤처리를 부탁해.”
-어? 그것도 나쁘지 않은데요.
-확실히 이 일을 뿌리째 뽑는 것이 나을 겁니다.
-진짜 모처럼 힘 좀 쓸려고 했더니. 그걸 못하게 하시네.
-야! 대장 성격에 이 정도 양보한 것이 어디야.
-하긴 그렇지.
-아무튼 대장. 우리도 대장 따라가고 있으니까. 언제든지 우리가 필요하면 신호를 보내요.
“알았다.”
진우는 창을 다시 작게 만든 후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두 다리에 힘을 주며 힘차게 박찼다. S등급으로 올라서며 그 어떤 상대도 가뿐했지만 그래도 두 사람이 도움을 준다고 하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명수유통 최명수 사장은 차를 타고 곽대식이 있는 폐공장 창고로 이동 중이었다. 차 안에서 휴대폰을 꺼내 최명수 사장이 최기준 비서실장에게 연락을 넣었다.
“네네. 비서실장님. 그렇지 않아도 지금 이태경 회장 만나서 도장 찍으러 가는 중입니다.”
-그래요? 이번에는 확실한 거죠?
“네. 걱정 마십시오. 확실하게 도장 찍어서 가져가겠습니다.”
-알겠소. 이번만 믿고 있겠소.
그렇게 전화를 끊은 최명수 사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시발······. 지긋지긋한 이태경 영감하고 이제야 끝내겠네.”
앞에 앉아 있던 운전수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사장님.”
“왜?”
“이태경 회장 큰아들이 플레이어인데 괜찮을까요?”
“큰아들? 이진우?”
“네.”
“그 이진우가 뭐? 그 녀석 군인이잖아. 플레이어이기 이전에 군인이야. 군인은 함부로 민간인을 어떻게 하지 못해.”
“그런데 곽대식도 플레이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곽대식하고 지랄을 할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뭐라고 하지 못한다니까. 내가 왜 남아도는 플레이어들을 두고 너에게 운전대를 맡겼겠어. 이게 다 법 때문에 그래. 그놈의 플레이어 법 때문에 말이야.”
플레이어가 무섭긴 하지만 그래도 플레이어가 막무가내로 하지는 못한다.
물론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불법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플레이어 협회라든지 법에 저촉이 될 경우 일반인들보다 더 세게 중징계를 받게 된다. 예를 들어 권투선수나 유단자가 함부로 폭력을 사용하면 가중처벌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뭔가 사건에 연루되면 플레이어 등급에 따라서 그 처벌의 수위가 올라간다. 현재 진우는 B등급으로 등록되어 있다. 함부로 민간인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가 플레이어 자격 박탈을 당하거나 혹은 막대한 금전적 보상금을 물어내야 했다.
그래서 최명수 사장은 언제나 자신의 샌드백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내들을 함께 데리고 다니는 것이다.
“야. 만약 이진우가 덤벼들면 어떻게 하라고 그랬어?”
최명수 사장이 물었다. 그러자 운전하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예, 한 대 맞고 뻗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만에 하나 너의 생명에 문제가 생기면 약속한 대로 너희 가족이랑 보상금을 다 지급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설마하니 이진우도 그러겠습니까?”
“그러니까. 일단 한 대 맞고 쓰러지면 되는 거야. 그럼 평생 먹고 살 수 있고. 플레이어 협회 지정병원에서 치료도 받고. 알지? 플레이어가 사고 치면 협회에서 힐러 보내줘서 치료해 주는 거.”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인생 역전하는 거야. 안 그래?”
물론 플레이어에게 누가 대놓고 맞고 싶을까? 한 대 맞으면 그 고통이 어마어마할 텐데 말이다. 자칫 잘못했다간 평생 병신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심각할 경우에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명수 사장은 한 대 맞고 수십억의 위자료를 받으면 남는 장사라고 생각을 했다. 그만큼 최명수 사장은 돈이 최고고 남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았다.
어쨌든 두 사람을 태운 차는 그렇게 한참을 달려 폐공장에 도착을 했다.
“다 왔습니다, 사장님.”
“그럼 가 볼까?”
최명수 사장이 차 문을 열었다. 최명수 사장이 폐공장 입구 쪽으로 갔다. 입구에는 플레이어 출신 덩치들이 서 있었다.
“오셨습니까.”
“그래. 곽 사장은?”
“안에 계십니다. 들어가시죠.”
“어. 그래.”
최명수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폐공장 안에 들어가니 저 멀리 이태경 회장이 의자에 묶인 채로 앉아 있었다.
“아이고 이태경 회장님 반갑습니다.”
최명수 사장이 실실 웃으며 인사를 했다. 이태경 회장은 그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최명수 사장이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