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숨긴 귀환자 125화
14. 일을 합시다(3)
“하아……. 김 소령. 그렇게 안 봤는데 말이야. 계속 거기 있고 싶은 건가 봐.”
이준식 대령이 은근슬쩍 협박을 했다. 물론 김세령 소령 입장에서는 여기 있어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그걸 내색할 수는 없었다.
-아닙니다.
“내가 김 소령 생각해서 얘기를 해주는 건데……. 그런데 이렇듯 비협조적이면 곤란해.”
-죄송합니다.
“이봐. 김 소령.”
-네.
“지난번에 서운한 것이 있더라도 다 우리 잘되자고 하는 일이잖아.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지.”
사실 지난번 게이트 정보 오류 건은 결국 김세령 소령의 잘못으로 끝을 맺었다. 작전처에서 그렇게 징계가 내려왔다. 물론 진우 눈치를 봐서 구두경고를 내렸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정말 더러운 처사였다.
막말로 위에서 다 짜고 해놓고선 책임은 자신보고 지라고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기분이 좋겠나.
어쨌거나 공식적인 이의제기는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일단 자료와 데이터만 갖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이준식 대령을 날릴 목적으로 말이다.
이준식 대령은 김세령 소령이 서운해하고 있다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김세령 소령은 이미 진우와 한배를 타기로 했다.
“됐어! 그만 끊어.”
-충성. 수고하십시오.
전화를 거칠게 끊은 이준식 대령은 정말 못마땅한 얼굴이 되었다.
“정말이지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한편 김세령 소령은 전화를 끊고 한숨을 내쉬었다. 홍인욱 중위가 그 모습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과장님 작전참모님이십니까?”
김세령 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하십니까?”
“나보고 이 소령님 감시나 잘하라고 하네.”
“네에? 부부대장님 말입니까? 아니 그렇게 감시를 하고 싶으면 본인이 직접 하면 될 것을 말입니다.”
“내 말이…….”
김세령 소령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고 있는데 또다시 전화기가 울렸다. 김세령 소령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통신보안 각성부대장 작전과장 김세령 소령입니다. 네? 게이트 말입니까?”
김세령 소령의 눈이 커졌다. 그 소리를 들은 홍인욱 중위가 재빨리 움직였다.
게이트 관리과에서 각성부대로 넘어온 게이트 관련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일단 게이트 등급은 B등급이고 게이트 밀도는 180으로 나왔습니다.”
홍인욱 중위의 보고를 받은 김세령 소령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180? 어떻게 저번 게이트보다 20이 더 높네.”
“네.”
“계속 게이트 밀도가 높게 나오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 게이트가 너무 자주 생성되는 것이 아닙니까?”
“제가 어디서 봤는데 말입니다.”
“……?”
“이전 게이트를 빨리 깨면 새로운 게이트가 빨리 생성된다는 보고서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 그것 때문 아니겠습니까?”
홍인욱 중위의 보고에 김세령 소령이 쓴웃음을 지었다. 일전에도 홍인욱 중위가 비슷한 보고를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김세령 소령도 그런 얘기를 종종 들었다. 게이트라고 하는 이계의 존재가 마구 생성되는 것은 아니었다. 특정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열리는 것이 게이트였다.
게이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존재했다. 게이트를 이른 시간 만에 클리어하면 그 게이트는 여물지 않은 상태로 존재해 버린다.
그래서 그 게이트가 가지고 있던 힘이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곧바로 다음 게이트가 생성된다는 설이 있다. 물론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미신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게이트 공략이 빠르면 빠를수록 그 주변에 새로운 게이트가 생성될 확률이 높았다.
때문에 S등급 게이트가 발견될 경우 국가가 철저하게 통제를 했다.
S등급 게이트에는 당연히 엄청난 아이템과 고가의 장비들, 마정석이 나온다. 게다가 그곳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도 했다. 만약에 그곳에 들어갔다가 주요 전력이 죽거나 다쳐 버리면 국가적으로 큰 손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S등급 게이트는 공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소요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만약 S등급 게이트가 빨리 클리어되면 그 근처에 S등급 게이트가 또다시 생성될 수 있으니,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함이라는 말도 있었다.
어쨌든 3번째 B등급 게이트가 생성되자 김세령 소령도 홍인욱 중위의 말을 그냥 농담처럼 웃어넘기기 힘들었다.
“홍 중위.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말 하면 안 돼.”
“제가 그렇게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과장님.”
“그래.”
그렇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진우가 들어왔다.
“뭔 얘기를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까?”
진우가 환한 웃음을 보이며 물었다. 김세령 소령이 깜짝 놀랐지만 이내 침착한 표정이 되었다. 홍인욱 중위가 바로 나서며 말했다.
“게이트가 또 생성되었다고 합니다.”
“게이트가?”
“네. 현재 등급은 B등급이고. 게이트 밀도는 180으로 전해졌습니다.”
“B등급에 180이라……. 또 세졌네.”
“네, 그렇습니다.”
보고를 받은 진우는 전 게이트보다 밀도가 더 높아진 것에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 아까 그 얘기는 뭐야?”
“아, 그것이…….”
홍인욱 중위가 슬쩍 김세령 소령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김세령 소령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앞으로 나섰다.
“그냥 저희끼리는 부부대장님께서 게이트 공략을 빨리하셔서 새로운 게이트가 빨리 생성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저도 그런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아마 아예 없는 말은 아닐 겁니다.”
“그렇습니까?”
“네.”
“플레이들 사이에서도 그런 말들이 나오긴 합니다. 뭐, 얼마나 빨리 깨느냐가 중요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이른 시간에 클리어를 하냐. 여기서 오해가 살짝 있습니다.”
“오해 말입니까?”
“네. 단순히 게이트 생성되고 빨리 클리어를 했다고 해서 게이트가 생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김세령 소령이 의문을 가졌다. 홍인욱 중위도 마찬가지였다. 진우는 그들에게 친절히 설명을 했다.
“공략시간이죠. 게이트라는 것을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홍인욱 중위가 슬쩍 끼어들었다.
“아, 부부대장님께서도 우주의 힘이 우리 인간들에게 시련을 주기 위해 게이트를 만든다는 것을 믿고 계시는 겁니까?”
“엄청 믿는다기보다는 그걸 믿는 것이 속 편하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상황을 받아들일까? 진정 우리가 게임 속에 들어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이렇듯 몬스터하고 싸울 일은 없는 것이 아니야.”
홍인욱 중위가 씨익 웃었다. 자신도 어떤 우주의 음모론의 추종자였다.
“아무튼 게이트가 우리에게 시련을 주기 위해 생성되었는데 너무 빨리 클리어를 하면 할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엿 먹어봐라 그런 심정으로 또 게이트가 생성되는 것이죠.”
김세령 소령이 웃으며 말했다.
“부부대장님께서는 본인 때문에 게이트가 생성되었다고 인정하시는 겁니까?”
“어느 정도 인정은 합니다. 그래서 내가 또 이렇듯 몸으로 때우는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바로 인정을 하시니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럼 지난번 헬퍼 분들을 또 부르시는 겁니까?”
“네.”
김세령 소령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홍인욱 중위를 봤다.
“그럼 홍 중위가 연락을 해.”
“네. 알겠습니다.”
진우는 박진철과 안미숙이 연락을 받자마자 달려와 줄 줄 알았다. 그런데 두 사람은 거의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나타났다. 진우가 바로 인상을 썼다.
“아니, 연락을 한 지가 언제인데 이제 나타납니까.”
진우의 한마디에 박진철이 바로 대답했다.
“야! 우리도 좀 바빴어.”
“맞아! 우리는 뭐 만날 부대에서 연락 오는 것만 기다려야 해?”
“와……. 이런 식이면 우리 헬퍼 계약 못 하지.”
그러자 바로 태도가 돌변하는 박진철이었다.
“에헤이. 우리 부부대장님께서 또 왜 이러실까? 마음이 태평양만큼 넓은 양반이 말이야.”
“됐고! 솔직히 말해봐요. 두 사람 뭐 했어요?”
진우는 이미 다 안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박진철과 안미숙이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허허, 우, 우리가 뭘 해?”
“맞아. 우리가 뭘 했다고 그런 눈빛으로 바라봐.”
두 사람은 뭔가 괜히 찔리는지 큰 소리로 대답했다. 진우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뭔데요? 설마 또 불장난?”
“이씨……. 너는 우리를 무슨 짐승으로 봐. 그것이 아니고 미숙이랑 바닷가에서 회 좀 먹고 있었어.”
“아이고 팔자가 폈나 봅니다.”
“에헤이. 진우야. 좀 봐주라. 우리 한동안 라면만 먹고 살았어. 우리 A등급 마법사가 라면에 밥 말아 먹는 것이 얼마나 슬펐는지 아냐.”
박진철의 말에 동조하듯 안미숙도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했다. 진우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그만 웃음이 나왔다.
“네네. 알았어요. 어쨌든 회의부터 합시다.”
세 사람이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장에는 각성 부대장은 오지 않았다.
진우는 헬퍼 두 사람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부대를 소집했다. 그래서 현재 회의실에는 각 지휘장교들과 게이트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진우와 헬퍼 두 사람이 자리에 착석하자 홍인욱 중위가 일어나 전반적인 보고를 시작했다.
“보고 시작하겠습니다.”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홍인욱 중위는 빔프로젝터를 이용해 설명을 했다.
“게이트 밀도 180을 가진 B등급 게이트입니다. 그전 게이트에서 남동쪽으로 30㎞ 떨어진 지점입니다.”
홍인욱 중위가 보고를 하는데 박진철이 손을 들었다.
“저기 잠시만요.”
“네?”
“맨 처음 것이 저기고 그다음이 여기, 이번에 생성된 게이트가 여기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이상하네. 게이트가 생성된 곳으로 이어가다 보면 다각형 모양이 그려 질 것 같은데.”
“네?”
“아니,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박진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빔프로젝트가 쏟아지고 있는 칠판으로 갔다. 거기서 대충 선을 쭉 이었다.
“이렇게 말이에요. 이런 식으로 연결하면 칠각형? 아님 팔각형? 그렇게 연결될 것 같은데. 안 그래?”
박진철이 말을 하며 진우를 바라봤다. 진우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해졌다. 안미숙도 박진철의 말에 동조했다.
“나도 그렇게 보이는데. 진우 너의 생각은 어때?”
“크흠…….”
“어어. 부부대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그렇게 따지면 팔각형보다는 칠각형이면 좋겠는데.”
“응? 왜? 팔각형은 싫어?”
“아니요. 아무튼 일단 그렇다고 치고. 이렇게 게이트가 만들어지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데요?”
진우의 물음에 박진철이 바로 답을 했다. 칠각형으로 선을 그린 후 그 한 가운데를 꼭 집었다.
“바로 여기에 보다 센 게이트가 생성되는 거죠.”
박진철의 확답에 진우가 물었다.
“보다 센 게이트라면 A등급입니까?”
“A등급일 수도 있고, S등급일 수도 있고요. 운이 좋다면 B등급 중에서도 밀도가 최고등급으로 나올 수도 있겠죠. 확실한 것은 모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