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숨긴 귀환자 132화
14. 일을 합시다(10)
“어? 어어, 뭐……. 오늘도 문자는 주고받고 그랬는데. 조만간 식사나 하자고 말이야.”
“오오. 그러시면 말입니다. 혹시라도 말입니다. 진도 빼실 때…….”
유지태 중위가 작은 목소리로 슬쩍 말했다. 진우가 바로 주위를 확인했다.
“어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에이. 뭘 숨깁니까. 남녀가 좋아하면 서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거죠. 아무튼 그럴 때는 조심하셔야 합니다. 일반인과 플레이어는 달라서 과하게 압력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 그래?”
“네. 물론 부부대장님께서는 워낙에 실력이 좋으시니 그런 것도 잘 컨트롤하시겠죠. 하지만 잘못했다가는 상대가 다칠 수도 있습니다.”
“으흠. 오케이. 참고할게.”
“그냥 참고만 하시면 안 됩니다. 상대방이 다치면 병원에서 엄청 민망해집니다. 그리고 잘못하면 상대에게 고소가 들어올 수 있습니다.”
“뭐? 고소까지? 도대체 얼마나 심하게 다치면?”
진우는 유지태 중위가 하는 말에 점점 빠져들었다. 이미 보스방을 클리어해야 하는 생각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럼 말입니다. 그런 사례들을 인터넷을 찾다 보면 나옵니다. 그럼 꼭 확인을 해보십시오. 보시면 해외사례에 깜짝깜짝 놀랄 만한 사례들이 많습니다.”
“어어, 그래?”
“네.”
“이야. 갑자기 겁이 나네. 그럼 플레이어를 만나야 하나?”
진우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그 얘기를 멀리서 듣고 있던 김슬기 대위와 안유정 중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런데 유지태 중위는 그것을 못 보고 입을 열었다.
“에이, 그래도 플레이어보다는 일반인이 낫습니다.”
“그래?”
“플레이어들은 아무래도 각성을 해서 그런지 좀 기가 세지 않습니까.”
“그런가?”
진우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렸는데 하필이면 안미숙과 눈이 마주쳤다.
“으음. 하긴…….”
진우는 바로 공감이 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진우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여자 플레이어는 안미숙과 전 여친이었던 김미영이었다. 둘 다 기가 무척이나 센 편이었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플레이어가 얼마나 힘든 줄 알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맞춰주는 그런 편입니다. 제 여자친구만 해도 그렇게 안 보이시겠지만 집안 살림부터 시작해서 어지간하면 척척 다 해냅니다. 절 부를 때는 힘쓸 때, 그때만 절 부릅니다.”
“오, 그래? 그렇게 안 봤는데 제수씨가 생활력이 강하구나.”
진우의 칭찬에 유지태 중위는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제가 아직 어리지만 결혼까지 생각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저희 와이프 말이 유진 씨도 그런 쪽으로는 확실하다고 합니다.”
“아, 그래?”
“네네. 두 사람 봉사활동 하면서 만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봉사활동 할 때 보면 그렇게 잘한답니다.”
“으음…….”
진우의 고개가 작게 끄덕였다.
“부부대장님도 보셨다시피 딱 봐도 곱게 자랐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답니다.”
“아하, 그렇군.”
진우는 마음에 드는 듯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김슬기 대위와 안유정 중위이 굳어졌다.
“진짜 얄미워.”
“누가?”
김슬기 대위가 안유정 중위를 봤다.
“유 중위님 말입니다.”
“그렇지? 나도 그래.”
“우리 앞으로 밥 먹을 때 말입니다. 유 중위님 빼고 먹도록 하시죠.”
“그래. 동감이야.”
두 여자 장교가 유지태 중위의 말에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반복했다.
그러고 있는데 안미숙이 진우에게 다가갔다.
“진우야. 이번 보스 방은 어떻게 진행할 거야?”
“왜요? 이번에도 누나 들어가서 불의 심판을 날려버리게요?”
“그래도 돼?”
안미숙이 바로 표정이 밝아졌다. 진우가 인상을 썼다.
“와. 누나! 양심 좀 있죠. 이번에 숙련치 얼마나 올렸어요?”
“좀 올리긴 했지만……. 야! 그건 약속한 거잖아.”
“그랬죠. 그런데 누나가 숙련치를 올리는 것만큼 다른 사람들의 경험치가 오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봐봐요. 우리 병사들 경험치를 올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잖아요. 누나가 그건 이해를 해주셔야죠.”
“그래서 뭐?”
“좋아요. 불의 심판을 쓰는 것은 오케이! 대신에 힘 조절은 합시다.”
“힘 조절?”
“지난번처럼 어그로만 끈 상태로. 아니, 그로기 상태만 만들어주세요.”
“와, 그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건데…….”
진우의 말은 간단했다. 불의 심판을 통해 천정에 붙어 있던 박쥐들을 떨어뜨린다. 그런데 그냥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대미지를 줘서 병사들이 쉽게 사냥할 수 있게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야! 그럴 거면 보스 몬스터 잡는 것이 낫지 않겠어?”
진우가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진철이 형이 그러던데요. 보스 몬스터를 잡고 나서 일반 몹들 처리하려면 경험치 반도 건지지 못한다고요.”
“에이. 진철이는 쓸데없이 그런 말을 한단 말이야.”
“아무튼 누나가 좀 도와줘요.”
“그래. 알았어. 이번에는 나도 좀 도움받은 것이 있으니까. 대신에 다음번에는 알지?”
“걱정하지 마요. 누나. 이번에도 히든 게이트가 나와서 하나 건지면…….”
“건지면?”
안미숙의 눈이 번쩍였다. 진우는 큰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누나 스킬북 하나 사준다.”
그러자 바로 태세를 전환하는 안미숙이었다.
“어멋! 부 부대장님. 그런 말은 먼저 말씀을 하셨어야죠. 제가 몹들을 그로기 상태로만 만들면 되는 거죠?”
진우기 피식 웃었다.
“네, 누나.”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한 마리도 상하지 않게 밥상을 잘 차려놓을게요.”
“좋아요.”
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따라 유지태 중위도 일어났다.
“유 중위. 병력들 집합시켜.”
“네.”
유지태 중위가 쉬고 있는 병력들에게 갔다.
“자. 휴식 끝!”
“휴식 끝!”
“장비 챙겨서 집합한다.”
“알겠습니다.”
각성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잠시 후 모두 집합을 완료했다.
“부부대장님 집합 끝났습니다.”
진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각성 병사들 앞에 섰다.
“잘 쉬었나.”
“네. 그렇습니다.”
“좋아. 보스 방 하나만 남았다. 아무리 편안하게 각 방들을 클리어해 왔다고 해도 긴장 늦추지 말고.”
“네!”
“저번처럼 여기 계신 A등급 마법사 안미숙 님께서 먼저 길을 뚫어 주실 거다. 바닥에 떨어진 박쥐들을 잘 조준해서 사냥하면 된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질문 있는 사람?”
진우의 물음에 다들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나 질문자는 없었다.
“좋아. 그럼 바로 들어간다. 긴장 늦추지 말고.”
“네.”
진우가 몸을 돌렸다. 안미숙이 옆에 섰다.
“누나 들어가죠.”
“좋아.”
진우가 먼저 문을 열었다. 그 안으로 안미숙이 당당하게 들어갔다. 그런데 박쥐들이 덤벼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 뒤로 진우가 진한 살기를 내뿜으며 견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미숙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안미숙이 씨익 웃으며 양팔을 벌렸다. 박쥐들이 붉은 눈을 빛내며 바라봤다. 그리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 뭐 하니? 왜 가만히 있어? 아니지. 무서워서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는구나. 그럼 내가 해야지.”
이미 캐스팅을 마친 안미숙의 양손에서 뜨거운 열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살며시 공중으로 몸이 띄워졌다. 역 중력 마법을 사용한 후 천장에 붙었다.
“자, 시작해 볼까? 호호호!”
쾅! 콰콰쾅!
양손을 천정에 내려쳤다. 뜨거운 붉은 구가 천장을 강하게 강타하며 쫙 퍼져 나갔다.
쾅! 쾅! 쾅! 쾅!
중간중간 불의 기둥이 솟아오르며 박쥐들을 태워버렸다.
“다 불타버려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우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
“누, 누나? 지금 박쥐들 타고 있는…….”
“오호호호호! 다 타버려. 다!”
이미 안미숙은 흥분한 듯 불의 심판을 갈겼다.
후두두둑!
박쥐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박진철이 다가와 진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도 바닥에 떨어졌네.”
“혀엉!”
“그래, 그래. 우리 미숙이가 좀 세잖아. 힘 조절을 한다고 했는데도 저러는 걸 보면 말이야.”
“하아……. 일단 병사들 진입시키죠.”
“그래!”
박진철이 고개를 돌려 유지태 중위를 바라봤다. 그러자 유지태 중위가 바로 검을 높이 들며 말했다.
“모두 진입!”
“진입!”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불에 타고 있는 박쥐들을 플총으로 쏘기 시작했다.
탕! 타타타타탕!
진우의 시선이 천정으로 향했다.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어둠의 대왕박쥐는 날개로 자신의 몸을 감싸며 방어를 했다. 그나마 대미지는 덜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미 뜨겁게 달궈진 천정에서 버티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쿵!
그때 진우가 어둠의 대왕박쥐에게 바싹 붙었다. 그 순간 진우의 기운을 감지한 어둠의 대왕박쥐가 흠칫 놀랐다. 지금 날아올라야 하나 말아야 하나 눈치를 살피는 듯 보였다.
그 순간 진우가 흑룡의 기운을 방출하며 어둠의 대왕박쥐를 붙들었다.
“야. 다 끝날 때까지 가만히 있어. 만약 내 말 무시하고 쓸데없이 움직이면 바로 회를 떠버린다.”
진우의 살벌한 경고에 어둠의 대왕박쥐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끼이이이이…….”
각성 병사들의 플총이 불을 품었고, 유지태 중위는 언제나 그랬던 제일 먼저 앞으로 뛰쳐나가 태산검법을 사용했다.
“태산분출!”
쾅! 쾅! 쾅!
땅에서 솟은 기운이 박쥐들을 강타했다. 그럴 때마다 흔적도 없이 먼지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곳에는 몬스터 핵이 툭 하고 떨어졌다.
그렇게 열심히 사냥들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최민철 병장이 플총을 내려놓았다. 그런 후 손에서 단검을 꺼냈다. 그 모습을 본 김영철 상병이 말했다.
“최 병장님 뭐 하는 겁니까?”
“야. 잘 봐 인마. 언제까지 플총만 쓸 거야? 다른 스킬들도 숙련치 올려야지.”
그러면서 단검을 빼 들고 불에 타고 있는 박쥐를 공격했다. 물론 정상적인 박쥐였다면 그대로 하늘로 날아오른 다음에 역으로 최민철 병장을 공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불에 타고 맛이 간 상태로 최민철 병장의 단검 공격을 그대로 맞았다.
“크익!”
단 한 번의 단검 공격으로 죽지 않아 여러 번 찔렀다. 하지만 결론은 단검으로 박쥐를 잡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띠링-
바로 떠오르는 알람과 문구.
-단검으로 박쥐를 처리했습니다.
-단검술(D)이 생성됩니다.
그 알람을 본 최민철 병장이 바로 환호성을 질렀다.
“아싸! 드디어 플총에서 해방이다.”
그 이후에 숙련치를 쌓기 위해 신나 하며 단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박쥐를 사냥하는데 그런 최민철 병장 뒤로 박쥐 한 마리가 날아왔다.
그것을 발견한 김영호 상병이 소리쳤다.
“최 병장님!”
그때 어느 곳에서 단검이 쓩 하고 날아와 박쥐의 몸에 박혔다.
푹! 푸드득! 쿵.
최민철 병장이 흠칫 놀랐다. 그리고 단검이 날아온 방향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진우가 단검을 던진 자세로 있었다.
“최 병장. 그 단검 빼서 사용해.”
“저 단검 있습니다.”
“그 단검 상태 좋지 않아. 내가 주는 걸로 써.”
진우가 던진 단검은 A등급 이었다. 그래서 내구력이 상당히 높았다. 게다가 웬만해서는 날도 잘 상하지 않았다. 하물며 진우의 단검은 블랙게이트에 들어갔을 때 사용했던 단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