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숨긴 귀환자 134화
14. 일을 합시다(12)
진우가 바로 부정을 하지만 박진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쭈……. 인마 내가 이 바닥 짬이 얼마인데 그 정도도 모르겠어? 그리고 나 탐지꾼이야. 내 기감이 얼마나 발달되었는지 알지? 내가 봤을 때 미숙이는 거의 S등급에 준하는 실력이야. 아니, S등급에 오르는 것도 시간문제야. 어쩌면 본인이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미 S등급으로 올라갔을지도 모르지.”
사실이 그랬다.
안미숙은 요즘 불의 심판을 무리 없이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그 스킬을 컨트롤까지 하고 있었다. 불의 심판 숙련도가 A등급까지 올라오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안미숙은 마법사 계열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 그래서 불의 심판을 A등급 숙련도만큼이나 잘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만 봐도 안미숙은 이미 S등급에 발을 디뎠다고 봐도 무방했다. 한데 그런 안미숙이 진우에게는 벽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박진철은 이미 확신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솔직하게 말해봐. 너어……. S등급이지?”
진우가 곤란하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머리를 박박 긁었다.
“와. 이러면 안 되는데……. 형. 정말 알아야겠어요? 솔직히 얘기해 줘요?”
진우가 묻자 박진철이 바로 손을 들어 막았다.
“아니. 더 이상 말하지 마. 됐다. 너의 그 말로 난 모든 것을 알게 되었어. 와, 미친……. 너 그곳에서 헛고생을 한 것은 아니었구나.”
“혀엉…….”
“알아, 알아.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진짜 말도 안 되는 말로 제물이니 뭐니 그런 말을 지껄이겠지. 그런데 진우야. 내가 널 몰라? 보나 마나 마지막까지 죽어라 싸웠겠지. 그러면서 힘겹게 S등급으로 올라섰겠지. 그걸 내가 다 안다. 그러니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돼. 우리가 어디 한두 해 본 사이도 아니고 말이지. 하지만 이 사실은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말하지 마. 나도 나만 알고 있을게.”
박진철이 오히려 진우를 위로했다. 진우는 살짝 감동받은 얼굴이 되었지만 이내 코웃음을 쳤다.
‘만약 다른 사람이 그 말을 했다면 내가 진짜 믿었겠지만…… 그런데 형이?’
진우가 바로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
“퍽이나요.”
“응?”
“퍽이나 형만 알고 있겠어요. 또 이리저리 알게 모르게 다 퍼뜨릴 거면서.”
그러자 바로 돌변하는 박진철이었다. 박진철이 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크크크, 눈치챘어?”
“그럼요. 형이 아까 그랬듯 내가 형을 몰라요?”
“그럼, 그럼. 알지, 다 알지. 내가 또 동생 바보 아니냐. 우리 동생이 이렇게 강한데 그걸 나만 알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손해라는 거지. 당연히 주변 사람도 알아야 하지 않겠냐. 어떻게 말도 안 하고 다녀.”
그 말에 진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형! 부탁인데요. 소문 좀 내지 마요.”
“그건 두고 볼 일이고. 어쨌든! 너 말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뭐가요?”
“나와 미숙이에게 말도 하지 않고…….”
“그건 말이죠.”
“됐어! 말하지 말라니까.”
박진철이 바로 또 손을 들어 진우가 말하려던 것을 차단했다. 그러고는 홀로 감탄을 하고 있었다.
“와. 어쩐지……. 아무리 다운 게이트에 들어갔다고 해도 S등급 몬스터야. 그렇게 척척 잡을 수가 없지. 그래! 내가 뭔가 미심쩍다 싶었어. 이제야 모든 미스터리가 풀리네. 네가 S등급이니, S등급을 잡을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렇지. 이게 맞지.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 형이 널 그동안 좀 의심했잖아.”
“의심요? 무슨 의심을 해요?”
“아니. 나는 네가 아주 비싼 아이템을 가지고 다니는 줄 알았지.”
“아이템요?”
“그래.”
진우가 무슨 뜻인지 대번에 눈치를 했다.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뭐 항간에 떠드는 것처럼 천 명의 희생을 통해 히든 아이템을 얻었다고 생각했어요?”
“에이…… 꼭 그렇다기보다는…….”
“뭐야. 형이 말했잖아요. 언제는 나 의심하지 않는다면서요. 방금도 의심했네.”
“에헤이.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하고 그러냐. 혹시라도 그렇다면……. 그 전제를 깔아야지. 너도 알잖아. 히든 아이템 획득 조건이 너무 까다로운 걸 말이야. 혹시라도 네가 얻은 것은 아닌가 잠깐, 아주 잠깐 의심을 했다.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거잖아. 안 그래?”
“뭐, 인정해요. 그런데 형이 보기에 그건 아닌 것 같다?”
“맞아. 그건 아니네. 미숙이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더라고. 제일 먼저 네 옆에서 지켜봤으니까. 미숙이 말로는 너 자체 능력이 자신을 초월했다고 그러더라고. 난 그런 미숙이의 말을 믿어.”
“어이구……. 참 진짜로……. 대단하신 분이 나셨네.”
“인마. 자고로 여자 말 들어서 안되는 일이 없다고 했어. 난 우리 미숙이 말이라면 콩으로 팥죽을 만든다고 해도 믿을 거야.”
“네네. 아주 애처가가 따로 없으십니다.”
“애처가? 흐흐흐, 그거 좋은 말이네.”
박진철이 실실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에 진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웃던 박진철이 진우의 팔을 잡았다.
“진우야!”
“왜요?”
“아무튼 잊지 마! 나 A등급으로 올라가는 거.”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그러자 박진철이 눈을 끔벅끔벅 거렸다.
“와! 너 잊었어?”
“뭐, 뭐가요?”
순간 진우는 뭔가 오싹함을 느꼈다. 박진철이 씨익 웃었다.
“네가 A등급만 되면 뭐든 다 해준다면서.”
그 순간 진우는 아주 오래전 옛 기억이 떠오르며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그게 언제 적 했던 말인데요.”
“어쨌든 네가 직.접. 말했잖아. 약속까지 했으면서…….”
“나참…….”
진우가 군대에 오기 전 강힘길드원으로 있을 때 그냥 스쳐 지나가듯 흘린 말이었다. 그러나 박진철은 그날 그때의 추억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이 바로 안미숙이 A등급으로 올라가고 자신이 키웠던 애들 역시 한 등급씩 올라갔던 시기였다. 그런 한편으로 박진철 본인은 점점 처졌던 시절이기도 했고 말이다. 철없던 진우가 친했던 박진철을 놀렸던 날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때 박진철도 이런 말을 했다.
“너어. 내가 A등급으로 되는 날 너희 집 재산은 내 거다.”
“어후, 마음대로 하세요.”
진우가 불현듯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박진철을 보며 말했다.
“아직 A등급으로 올라가지 않았잖아요.”
“곧이야! 곧! 조만간!”
“그럼 그때 가서 말해요.”
“말할 거야. 그전에 그때 약속한 것을 기억하고 있는지 알아본 거야.”
“……그래서 줘요? 보배그룹?”
박진철이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인마. 보배그룹이 네 것도 아닌데 뭘 줘. 게다가 내가 A등급이 되었는데 이제 와 보배그룹이 성에 차겠냐.”
“그럼요?”
“그건 나중에 말할 테니까. 너, 너, 너……. 앞으로 잘해라. 나 말이야 감정 상하게 하고 막 그러면 말도 안 되는 거 사달라고 할 수도 있어.”
“와. 그걸 이런 식으로 협박하고 그럽니까?”
“그러니까, 앞으로 잘하라고. 알았어? 나 곧 A등급이야.”
“네네. 곧 A등급 되실 길드장님.”
진우와 박진철은 그렇게 웃고 넘어갔다. 진우는 그렇게 말하는 박진철이 얄미웠지만 A등급으로 올라선다는 말에 기분은 좋았다.
두 사람이 말도 안 되는 걸로 티격태격거릴 때 각성 병사들을 지휘해 차에 다 태운 유지태 중위가 달려왔다.
“부부대장님. 인원 체크 끝났습니다. 아무 이상 없습니다.”
“그래. 그럼 출발하지.”
“네.”
진우가 차량에 올라타자 곧바로 출발했다. 선두에 게이트 헌병대 차량이 있었다. 그곳에 김치석 대위가 있다. 그는 출발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네네. 작전참모님.”
-뭐야? 벌써 끝났어?
“네. 그렇습니다.”
-이야. 진짜……. 너 뭐 하냐?
“네?”
-일을 이따위로 할 거야?
다짜고짜 언성을 높이는 이준식 작전참모의 말에 김치석 대위는 미리 준비한 멘트를 날렸다. 하도 이런 식으로 얘기를 많이 들어서 말이다.
“작전참모님. 헬퍼들의 등급이 너무 높습니다. 그들이 너무 활약을 하다 보니 이게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거야?
“정말입니다. 제가 게이트 감지기를 뚫어져라 바라봤는데 말입니다. 어떤 방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또 어떤 방은 시간이 걸리고 그럽니다. 그래서 딱 뭐라고 평균치를 내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게이트 안에 들어간 사람들에게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걸 왜 못 물어봐? 원래 게이트 헌병대에서 어떻게 공략을 하는지 알아보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그건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지휘장교급이 들어갔을 때 얘기입니다. 하지만 부부대장님께서 직접 들어가시지 않습니까. 제가 어떻게 물어봅니까.”
-하아, 이놈의 군대. 진짜……. 계급이 깡패네. 깡패야.
그 말을 듣는 순간 김치석 대위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사돈 남 말 하네. 그럼 넌 인마…….’
-알았다.
뚝!
이준식 작전참모가 전화를 끊었다. 김치석 대위가 전화가 끊긴 휴대폰을 내려다보고는 주머니에 넣었다. 운전을 하던 나성욱 소위가 걱정스레 물었다.
“그렇게 말해도 되는 겁니까?”
“뭐가?”
“그러다가 작전참모님 눈 밖에 나시면 어떻게 하시려고 말입니까.”
“됐어. 이미 눈 밖에 났어. 나도 더 이상 이 짓거리는 못 하겠다. 내가 중간에서 무슨 짓거리야.”
“하긴 그렇습니다. 저희는 그냥 고생이라는 고생만 잔뜩 하고 뭐만 하면 깨지고 말입니다. 저도 좀 그렇습니다.”
“그래. 우리는 그냥 이대로 살자. 나도 굳이 이런 곳에서는 별까지 달 생각 없다.”
김치석 대위의 말에 나성욱 소위가 깜짝 놀랐다.
“와. 정말입니까? 별까지 달 생각이었습니까?”
“그럼! 남자로 태어나 군대에 들어왔으면 그만한 포부는 가지고 있어야지.”
“대단하십니다. 작전참모님도 아직 별은 달지 못하셨는데 말입니다.”
“어? 생각해 보니 그러네. 내가 꿈을 너무 크게 꿨네.”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래. 더도 말고 딱 대령까지만 달지 뭐.”
김치석 대위의 말에 나성욱 소위가 속으로 생각했다.
‘와, 이 양반은 평생 욕심이 없다고 하더만……. 별까지 달 생각을 하고 있었어?’
나성욱 소위가 혀를 쯧쯧 찼다.
부대에 도착을 한 진우는 바로 각성 병사들에게 휴식을 부여했고. 몇몇 병사들에게 수거한 몬스터 핵을 들고 행보관에게 보냈다.
“행보관에게 가자.”
“네. 부부대장님.”
그때 임경식 중령은 사단장실에서 김승철 소장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 김승철 소장이 흐뭇한 얼굴로 임경식 중령에게 말했다.
“각성 부대장. 아니, 임 중령. 그동안 고생이 많았네.”
“아닙니다, 사단장님. 제가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서울 쪽으로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임경식 중령은 감격한 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