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숨긴 귀환자 138화
14. 일을 합시다(16)
“저기 유진 씨.”
“네?”
“정말 이 시간에 영업하는 거 맞아요?”
“으음……. 사실 VIP 고객에게는 이 시간에 오픈을 해요. 제가 또 자랑은 아니지만 저희 부모님 덕분에 제가 VIP거든요.”
“아, 그렇구나.”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도 싫지는 않았다. 만날 만나는 여자들마다 진우의 재력만 봤지 다른 것은 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조유진이 저렇게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집 안 역시도 잘사는 것 같았다.
그런 것을 보니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잠시 후 식사가 나오고 스테이크를 썰어 먹으며 말했다.
“와. 여기 스테이크 맛있네요. 정말 맛집이네요.”
“그렇죠. 제가 보장한다니까요.”
그렇게 얘기를 나누며 고기를 써는데 조유진이 칼질을 멈추고 슬쩍 말했다.
“저어, 진우 씨.”
“네?”
진우가 고기를 입안에 넣으며 대답했다.
“솔직히 아까 진우 씨 문자를 받고 당황했어요.”
“아……. 미안해요. 내가 마음이 급해서요.”
“아뇨. 그거 말고요. 진우 씨가 내일 말고 오늘 보자고 하는 말에 살짝 설렜어요.”
“네?”
“일부러 못 알아듣는 척하시는 거예요?”
“아, 아니, 그것이 아니라…….”
진우 역시도 당황스러웠다. 솔직히 지금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할지 몰랐다. 어쨌든 여자가 먼저 저렇듯 마음을 드러내니 진우도 다른 생각이 들었다. 오늘따라 조명이 은은해서 그런지 예전보다 더 예쁘고 섹시해 보였다. 그리고 매번 플레이어들만 상대하다가 일반인 여자와 그것도 단둘이 있으니 기분마저 묘했다.
그녀의 직진 발언에 진우 역시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조금 붉어진 얼굴로 더 이상의 대화는 없이 식사를 했다.
모든 식사를 마치고 후식이 나올 때쯤 조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참! 진우 씨, 오늘은 어디 게이트 들어갔다가 나오셨어요?”
“아, 오늘 게이트요. 박쥐가 나오는 곳이었습니다.”
“아! 박쥐요. 박쥐가 얼마나 커요?”
그녀의 물음에 진우가 얘기를 해줬다.
“얼마나 컸냐면요.”
진우는 오늘 공략했던 게이트에 대해서 설명을 해줬다. 조유진은 두 팔까지 괴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얘기를 들었다. 간혹간혹 리액션을 할 때마다 조유진이 정말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나. 세상에……. 정말요? 와, 대단하다.”
그런 그녀의 리액션을 보며 진우는 더욱 신나게 설명을 했다. 그렇게 한참을 얘기를 듣다가 어느덧 새벽 1시가 다 되어갔다.
“유진 씨 새벽 1시네요. 우리 슬슬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그럴까요?”
“네.”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방을 챙기는 조유진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진우 씨. 저어…… 집에 데려다 주실 거예요?”
“그럼요. 당연하죠. 데려다 드릴게요.”
순간 조유진은 실망한 표정이 되었다.
“어……. 난 그걸 물어본 것이 아닌데.”
“네?”
진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 조유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정말 모른 척하시는 거예요?”
“…….”
진우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조유진의 말뜻을 왜 모르겠는가. 바로 조유진이 보내는 그린 라이트였다. 진우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런데 불현듯 유지태 중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부부대장님. 만약 일반인과 플레이어가 서로 사랑을 나누게 된다면,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만약 그러지 않으면 다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쿵쾅거리던 심장이 언제 뛰었냐는 듯 잠잠해졌다.
“저기 유진 씨.”
“네?”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진우의 말에 조유진이 두 눈을 끔벅거렸다.
“음, 제가……. 플레이어가 되고 일반인을 만난 것이 유진 씨가 처음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직 준비가 덜 되었습니다.”
“네? 무슨 준비를…….”
“그, 그게 말이죠. 플레이어랑 일반인은 다르잖아요. 뭔가 공부도 해야 하고……. 힘 조절이라든지……. 감정이냐, 힘 조절이냐 기로에…….”
진우는 붉어진 얼굴로 자신도 알지 못하는 듯 횡설수설거렸다. 그 모습에 조유진이 피식 웃었다.
“괜찮아요. 아니면 같이 공부해도 되는데…….”
“네? 하하하…….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오늘은 정말 죄송하지만 이해해 주십시오. 다음에는 절대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다음에도 호텔 온대요?”
조유진은 살짝 토라진 얼굴로 말했다. 진우가 바로 당황했다.
“어? 그, 그러면 안 되는데…….”
그 말에 조유진이 풋 하고 웃었다.
“농담이에요. 그리고 나는 진우 씨라면, 이 사람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 그랬어요. 그렇다고 제가 다른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에요.”
“네.”
조유진이 수줍게 말했다. 진우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호텔을 나왔다.
그런 두 사람의 행적이 누군가에게 즉각즉각 보고가 되고 있었다. 보고를 받은 사람은 바로 조유진의 할아버지 조영찬 회장이었다.
“네. 회장님. 네. 지금 두 분 택시를 탔습니다. 네. 바로 뒤따르겠습니다. 네. 회장님.”
저 멀리 차량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 사람은 조유진의 기사 겸 보디가드였다.
두 사람이 탄 택시가 떠나고 보디가드도 바로 시동을 걸어서 뒤따라 갔다.
그렇게 조유진을 집에 데려다 주고 진우 역시 집에 돌아왔다.
택시에서 내린 후 집에 가려는데 그 앞에 김미영이 턱하니 기다리고 있었다.
“하아…….”
진우는 바로 한숨이 나왔다.
“너 뭐냐.”
“그러는 넌 뭐야?”
“뭔 소리야.”
“아까 그 여자 뭐냐고.”
“보면 몰라?”
“너 어디서 왔어?”
“뭘? 너는 뭐가 그렇게 궁금해.”
“너, 진짜 이럴 거야?”
“내가 말했을 텐데……. 나는 널 다시 만날 생각이 없어.”
김미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진우. 도대체 내가 뭘 얼마나 잘못했다고 이렇게까지 빌어야 해?”
그런 김미영의 뻔뻔함에 진우는 어이가 없었다.
“내가 말했지. 너 적당히 하라고. 나 쫓아다니지 마. 스토커처럼 왜 이래? 그리고 내가 예전의 이진우일 거라는 착각하지 마. 나 블랙 게이트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야.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알아?”
“내가 왜 그것을 알아야 해? 그리고 너 내가 아는 이진우가 맞아. 내가 아는 이진우는 나에게 이래서는 안 돼.”
김미영이 당당하게 말했다.
“야. 김미영. 너 제발 정신 좀 차려. 언제까지 네 위주로, 네 생각만 하면서 살래? 난 너 좋아하지 않아.”
“그래. 내가 너 상처 준 것은 정말 미안해. 그런데 너 나에게 이러지 마. 이렇게 나에게 모질게 굴어야 해?”
“어. 그럴 거야.”
“뭐?”
순간 진우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다.
“이제 이렇게 말로 하는 것도 마지막이야. 경고하는데 이제 내 주변에 얼씬거리지 마.”
“야. 이진우. 너 진짜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지. 그러니 이러고 있는 거 아니겠어? 그리고 한 가지 더! 그 여자 건드리지 마. 만약 손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내가 너 가만 안 둬!”
진우가 싸늘하게 말을 했다. 그 순간 진우의 눈빛이 붉게 바뀌었다. 서늘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김미영의 그 기운을 느끼고는 흠칫 놀랐다.
김미영이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런 김미영을 뒤로하고 진우가 집으로 들어갔다. 김미영은 한동안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못했다.
“뭐, 뭐지? 그 기운은? 블랙 게이트에서 나와서 A등급이라도 된 건가?”
김미영은 혼잣말을 했다.
“그럼 내가 더 포기 못 하지.”
김미영은 조금 전 무서워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자신이 여태 만났던 남자들 중에서 A등급은 진우가 처음이었다.
“이진우. 네가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어림도 없지. 그보다 그년은 누구지? 내가 다시는 진우 곁에 있지 못하게 만들어버려야지.”
김미영이 조유진을 떠올리며 까득 이를 갈았다.
진우가 휴가를 떠나고 한참 휴식을 취하고 있을 그 다음 날 이준식 대령의 짜증 난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준식 대령 사무실에는 작전처 김태식 소령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그 보고는 각성부대장인 임경식 중령이 서울로 보직이동을 명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네.”
“정말이야? 진짜냐고!”
“그렇습니다. 이미 서울에서도 승인이 떨어진 모양입니다.”
그 소리에 이준식 대령은 헛바람을 삼켰다.
“허참……. 임경식 이 새끼가 내 뒤통수를 치고 서울로 올라간다는 말이야!”
“…….”
김태식 소령은 심각한 얼굴인 채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보며 괜히 짜증을 내는 이준식 대령이었다.
“야, 김 소령.”
“네.”
“너는 일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몰랐단 말이야? 이렇듯 정보가 늦어서야 어떻게 사단 작전처에서 근무한다고 말을 할 수 있어!”
이준식 대령의 괜한 짜증에 김태식 소령 역시 속으로 짜증이 났다.
‘젠장. 내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해? 그리고 언제 나한테 임경식 중령을 감시하라고 했어.’
속으로 짜증을 냈지만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게다가 이준식 대령이 김태식 소령에게 내린 지시는 딱 하나였다. 김승철 소장 주변을 살피고, 이준우 소령의 주변 역시 살피라는 얘기였다.
이 말 중에 임경식 중령의 명령은 없었다. 그런 와중에 부대 업무까지 봐야 했다. 한 번에 3가지 일을 하니 머리가 빠개질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김승철 소장에게서 별다른 행동도 없고, 이진우 소령 역시 게이트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 말고는 딱히 없었다.
만에 하나 김승철 소장이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다니고, 진우 역시 그렇게 행동했다면 현재 있는 작전처 인력으로는 커버가 되지 않았다.
그런 실정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임경식 중령은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애당초 이준식 대령은 임경식 중령을 자신의 명령에 따를 놈이라고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김태식 소령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말이다.
물론 김태식 소령이 임경식 중령을 선배로서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중령이지만 자신이 언제든지 임경식 중령 정도는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임경식 중령이 이런 식으로 서울로 전출을 갈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이제 와 자신에게 성질을 내는 이준식 대령의 행동에 살짝 불만이 느껴졌다.
이준식 대령이 입을 꾹 다문 김태식 소령을 보며 물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거야?”
“아무래도 사단장님께서 무슨 수를 쓴 것 같습니다.”
그러자 이준식 대령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바로 김태식 소령을 질책했다.
“뭐? 너는 새끼야. 내가 사단장 잘 지켜보라고 했지. 사단장이 그런 짓거리를 했는데도 넌 미리 감지하지도 못했단 말이야?”
“저어……. 일이 이렇게 되어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이미 윗선에서 얘기를 주고받은 것 같습니다. 설령 제가 알았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뭐라고? 윗선에서 몰래 얘기가 오고 갔단 말이야?”
“네. 그런 것 같습니다.”
“하아…….”
이준식 대령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는지 한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