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숨긴 귀환자 140화
14. 일을 합시다(18)
“밥은?”
“밥? 지금은 별생각이 없는데.”
“알았어.”
이진상이 대답을 하고는 다시 몸을 돌려 내려가려다가 우뚝 멈췄다.
“참! 형.”
“응?”
“오늘 나갈 거야?”
“나?”
“어.”
“나가는데. 데이트가 있어서.”
순간 이진상의 눈이 크게 떠졌다.
“뭐? 데이트? 정말 데이트 나가?”
“그럼 인마. 이 형은 여자 만나면 안 되냐.”
“그건 아니고……. 밤 늦게 들어왔잖아.”
“그게 뭔 상관이라고……. 아니면 뭔 일이 있는 거야?”
진우의 물음에 이진상은 말을 얼버무렸다.
“아니……. 형이 괜찮으면 부모님 모시고 밖에서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그러려고 했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진우는 순간 찔끔했다. 지난번 휴가 때도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과 함께하지 못했다. 그때 엄마가 서운해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다음에 휴가 나오면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러자고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났다. 진우는 무척이나 곤란한 표정으로 뺨을 긁적였다.
“야, 오늘은 진짜 안 되는데…….”
“정말 안 돼?”
이진상이 재차 물었다.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오늘은 정말 안 되고……. 있잖아, 진상아.”
“응, 형.”
“네가 엄마에게 잘 말해서 다음에 꼭 가자고 말해줄래? 아니다, 내일하자! 그래, 내일.”
“내일?”
“내일은 정말 시간 낼게.”
“정말이지.”
“그래!”
“알았어. 내가 엄마에게는 잘 말해놓을게.”
“고맙다.”
이진상이 피식 웃으며 내려갔다. 진우는 잠깐 생각을 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아, 참…….”
진우는 뭔가 생각이 났는지 컴퓨터를 켰다. 그와 함께 검색엔진을 켜서는 ‘플레이어와 일반인의 사랑’이라는 검색어를 쳤다. 그러자 수많은 글들을 나타났다. 그중 주된 글들이 ‘제가 일반인인데 플레이어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런 글들이 거의 주를 이루고 있었다.
한마디로 가능한지 의견을 묻는 듯 보였다. 또 다른 글들은 ‘제가 플레이어인데 일반인에게 반했습니다.’ 이런 연애 상담들이 많았다.
“으음, 이게 아닌데……. 좀 노골적으로 써야 하나?”
진우가 다시 ‘사랑을 나눌 때’라는 글을 넣었다. 그럼에도 거의 똑같은 말만 올라와 있었다.
“하아, 이것 참……. 그래 이건 정말 순수한 의미야. 상대방을 배려하는 입장에서 알아둬야 할 거니까.”
진우는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하며 아예 직접적인 단어를 집어넣었다. 그러자 그제야 진우가 원하던 글들이 올라왔다.
-제가 일반인인데 플레이어 남자친구가 생겼습니다. 솔직히 겁이 나는데, 경험담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그 밑으로 수많은 댓글들이 달렸다.
-정신 바짝 차려요. 플레이어와 할 때는 정말 조심해야 해요. 무조건 받아줬다가는 탈이 날 수도 있어요. 조금이라도 부담이 된다면 바로바로 상대방에게 알려줘야 해요.
-그러면 분위기가 깨지지 않을까요?
-분위기 찾다가 응급실 찾아요.
-응급실이면 다행이죠. 초상 날 수도 있어요. 저 아는 언니도 플레이어 남친 처음 만났을 때 병원에 갔어요. 그때 이후로 남친이 트라우마가 생겨서 계속 관계를 회피해서 헤어졌어요.
-헐. 그래서요? 그 언니분은 어떻게 되었어요?
-그 언니요? 지금 다른 플레이어 만나서 지금 애 둘 낳고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뭐야. 완전 해피엔딩이네.
-대단하십니다.
-멋진 분이네요.
이런 댓글들을 쭉 읽다가 마우스를 쭉 내렸다. 그러던 중 어느 글이 눈이 들어왔다.
-플레이어가 일반인과 사랑을 나눌 때 유의사항.
“이거다.”
진우는 바로 글 내용을 확인했다. 대부분 플레이어가 주의해야 할 것들이었다.
-무조건 여자가 위로 올라가야 하고, 남성 플레이어는 절대 과하게 흥분을 해서는 안 된다. 과하게 흥분을 했을 시 자신도 모르게 힘 조절이 되지 않는다. (물론 남녀가 바뀌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절대 술이라든지 다른 약을 섭취해서도 안 된다. (약으로 인해 시간이 길어지면 상대방이 크게 다칠 수도 있다.)
진우는 이러한 내용을 숙지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호……. 알았어.”
매우 흡족한 미소를 보이며 하나하나 머리에 담았다. 그렇게 확인하고 있는데 조유진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이잉, 지이잉.
“응?”
모니터를 보고 있던 진우가 휴대폰 진동소리에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조유진이라고 발신자가 떴다.
“어? 유진 씨다.”
진우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유진 씨.”
-진우 씨. 재촉하는 것은 아닌데요. 혹시 몇 시쯤 출발할까 해서요.
“아. 지금 옷 다 갈아입었어요. 저 지금 나가요.”
-아, 그래요? 저 때문에 서두르시는 것은 아니죠?
“아닙니다. 저도 유진 씨 빨리 보고 싶내요.”
-그래요?
조유진이 씨익 웃었다.
-저도 진우 씨 보고 싶어요. 그럼 제가 어디로 갈까요?
“우리 지난번에 만났던 커피숍 어때요?”
-알았어요. 거기서 봐요.
진우는 바로 통화를 종료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컴퓨터를 종료한 후 서둘러 방을 나섰다. 후다닥 1층으로 내려가 현관으로 갔다.
“저 다녀올게요.”
진우는 큰 소리를 내고는 후다닥 밖으로 뛰어나갔다. 대문을 벗어나 미리 부른 택시에 몸을 실었다.
20여 분이 흐른 후 진우가 약속 장소에 도착을 했다. 택시비를 지불한 후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진우 씨!”
저기 안쪽에서 조유진이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진우도 환한 얼굴로 다가갔다.
“어? 저보다 먼저 왔네요.”
“저도 금방 도착했어요.”
“그럼 우리 데이트 뭐부터 할까요?”
진우의 물음에 조유진은 그저 환하게 웃기만 했다.
“그냥 진우 씨가 하고 싶은 거 하세요. 저는 그냥 따라갈게요.”
“아, 그래요? 으음, 제가 준비를 했으면 좋았는데 별생각 없이 나온 거라…….”
진우가 살짝 민망한 얼굴이 되었다. 조유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 일반적인 데이트를 해볼까요?”
“일반적인 데이트요?”
“네. 뭐, 그냥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그런 거요. 이야기도 하면서 근처 공원 산책도 해도 되고요.”
“좋아요. 그렇게 합시다.”
“그럼 먼저 밥부터 먹으러 갈까요? 저 배고파요. 아침도 안 먹고 나왔거든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뭐 먹을까요?”
“으음……. 시원한 국물이면 좋겠는데.”
조유진의 말에 진우가 피식 웃었다.
“혹시 부대찌개 좋아해요?”
“부대찌개! 저 좋아해요.”
“근처에 괜찮은 곳이 있는데 거기로 가요.”
“네!”
조유진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렇게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갔다. 조유진은 진우 옆에서 서서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 진우가 움찔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걸어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아주 평범하게 일반적인 데이트를 했다. 밥도 먹고, 영화도 관람하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들고 공원을 산책하며 데이트를 즐겼다.
“호호호, 어머. 그래요? 정말 놀랐겠어요.”
“많이 놀랐죠. 저도 처음이었거든요.”
“어머머. 서울에 그런 곳도 있었구나.”
“그렇죠. 시간 되면 저랑 같이 가실래요?”
“정말요? 제가 가도 돼요?”
“그럼요. 저 거기 VVIP고객입니다.”
“와아!”
조유진은 박수까지 치며 좋아했다. 공원산책까지 하고 저녁은 레스토랑으로 갔다. 스테이크를 썰며 와인을 마셨다.
“우리 저녁 다 먹으면 뭐 해요?”
조유진이 물었다. 진우는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글쎄요. 뭐 할까요?”
진우가 오히려 되물었다. 그러자 조유진이 씨익 웃었다. 그녀는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는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진우 씨. 솔직하게 말해봐요. 어제 많이 아쉬웠어요?”
“어…….”
진우가 잠깐 생각을 하더니 그도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놨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신 후 입을 열었다.
“솔직한 것이 좋겠죠? 유진 씨도 그걸 원하는 것 같고.”
“그럼요. 전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것은 별로예요. 어차피 원하는 것이 있으면 딱 말하면 좋잖아요. 괜히 말 돌려서 그게 무슨 뜻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좀…….”
“네. 그럴 것 같았어요. 그래서 솔직히 말할게요. 어제 유진 씨를 그렇게 보내고 좀 많이 아쉬웠던 것은 맞아요. 유진 씨가 많이 생각났어요.”
“어? 저도인데…….”
조유진이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솔직히 저도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진우 씨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 내가 너무했나 생각도 들고요. 아니, 내가 괜히 호텔로 데려가서는 몹쓸 짓을 했나 싶기도 하고요.”
“아니에요. 전혀요.”
조유진이 두 손으로 턱을 괴며 진우에게 가까이 갔다. 그러곤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오늘 어때요?”
“네?”
조유진의 노골적인 유혹에 진우의 심장이 멈출 것만 같았다. 하지만 태연한 척 물었다.
“오늘 괜찮아요?”
조유진이 수줍게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진우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와 동시에 휴대폰이 울렸다.
지잉, 지잉.
“응? 뭐지?”
진우는 곧바로 조유진에게 양해를 구한 후 휴대폰을 꺼냈다. 발신자는 임경식 중령이었다.
‘응? 부대장님께서 왜?’
진우는 잠깐 생각을 하고는 바로 버튼을 눌렀다.
“네. 부대장님. 이진우 소령입니다.”
-이 소령. 오늘 시간 어떻게 돼?
그 말에 진우의 시선이 앞에 앉아 있는 조유진에게 향했다. 그러곤 고개를 돌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부대장님. 저 지금 약속이 있어서…….”
-아, 그런가? 그래도 괜찮다면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시간을 내줬으면 하는데. 늦은 시간도 상관이 없네.
그 말에 진우는 매우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부대장의 부탁이기에 쉽게 거절하지는 못하였다.
“지금 말입니까?”
-그래! 내가 갑자기 전출 명령이 떨어져서 오늘이 아니면 이 소령을 만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아…….”
진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임경식 중령과 술 한잔하기로 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예의상 한 말이었다. 그런데 이렇듯 진짜로 하자고 할 줄은 몰랐다. 당혹스러워하는 진우를 본 조유진이 매우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잠시만요.”
진우는 조유진을 보며 말을 한 후 속으로 생각했다.
‘일단 거절하자.’
그러곤 휴대폰에 대고 말을 하려고 했다.
“부대장님…….”
그런데 임경식 중령이 먼저 선수를 쳤다.
-가능하면 시간을 좀 내줘. 내가 이 소령에게 해줄 말이 있어서 그래.
“해줄 말씀이라는 것은…….”
-지난번에 말했잖아. 블랙 게이트와 관련해서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 있어. 그때 말을 다 못 해준 것이 있더라고.
그 말에 진우의 얼굴이 진지한 표정으로 확 바뀌었다.
“그렇습니까.”
-그래. 어떻게, 가능한가?
진우는 블랙 게이트와 관련된 내용이라면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주소 보내주십시오.”
그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진우는 미안한 얼굴로 조유진에게 말했다.
“유진 씨 미안해요. 제가…….”
하지만 조유진은 임경식 중령이 내뱉은 목소리가 워낙에 커서 그런지 그 일부를 들을 수 있었다.
‘블랙 게이트?’
그 소리를 들은 후 그녀 역시 웃던 표정이 확 바뀌었다. 그리고 곤란해하는 진우를 보며 괜찮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