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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숨긴 귀환자-141화 (141/177)

힘을 숨긴 귀환자 141화

14. 일을 합시다(19)

“바쁜 일이시죠? 아무래도 군대 일인 것 같은데…….”

“네. 죄송합니다. 오늘 일은 제가 나중에 따로 꼭 보상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기대할게요. 그리고 휴가 일주일 아니에요?”

“맞아요.”

“그러니까요. 내일도 보고, 모레도 보고 그러면 되는 거죠.”

“어, 예! 그렇죠.”

진우의 얼굴에 슬쩍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진우는 택시를 타고 군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에 도착을 했다.

“도착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진우는 택시비를 지불한 후 내렸다.

“여기인 것 같은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임경식 중령이 편안한 차림으로 한 아파트에서 걸어 나왔다. 그 역시 진우를 발견하고 손을 들었다.

“이 소령. 여기!”

진우가 바로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임경식 중령이 환한 얼굴로 다가왔다.

“저 기다렸습니까?”

“아냐. 아냐. 나도 방금 나온 참이야.”

“담배 피우셨습니까?”

진우는 임경식 중령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껏 임경식 중령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

임경식 중령은 자신의 손에 들린 담배를 슬쩍 보고는 피식 웃었다.

“원래는 담배를 끊었었는데……, 여기 떠나서 서울로 간다고 하니까. 뭐, 마음이 싱숭생숭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좀 그렇네.”

임경식 중령은 담배를 비벼 끈 후 꽁초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곤 진우를 살폈다.

“응? 그런데 이 소령.”

“네?”

“여기 오는데 빈손으로 온 거야?”

“아……. 죄송합니다. 제가 사람을 만나다가 급히 온 것이라. 미처 준비를 못 했습니다.”

“하하하, 아니야. 아니야. 농담이야. 자자, 어서 들어가자고.”

임경식 중령이 껄껄 웃으며 진우를 데리고 아파트로 들어갔다. 그의 말에 진우는 멋쩍게 웃었다. 사실 진우는 밖에서 한잔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파트로 들어가는 것에 살짝 의아해했다.

“아. 원래 밖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말이지. 와이프가 왜 밖에서 먹냐면서……. 자기가 준비하겠다고 집에 초대를 하라고 하네. 부담되나?”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래. 그래. 들어가자고. 참고로 요리를 하긴 했는데 맛은 보장 못 하네.”

농담인 듯 진담처럼 말을 하는 임경식 중령을 보고 진우가 슬쩍 말했다.

“사모님께서 그 말을 들으면 서운해하시겠습니다.”

“괜찮아. 어차피 옆에 없잖아.”

“그래도……. 정말 괜찮습니까? 사모님.”

“괜찮아. 그리고 지금 애가 둘이나 되는데……. 우리가 무슨 신혼도 아니고 말이야. 어서 가지.”

“네.”

진우가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부대에서 제공한 총 5층짜리 아파트에는 승강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5층까지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그래서 짬이 되지 않는 소위나 중위 계급 정도가 맨 위층에 거주하고 계급이 높을수록 아래층에 머문다. 임경식 중령의 호수는 201호였다. 그래도 전자식 잠금장치가 달려 있었다.

띠리릭!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부대장 정도 되니 아파트 내부는 제법 넓었다. 딱 봐도 40평 정도는 되어 보였다.

“많이 누추해.”

“아, 아닙니다.”

그때 앞치마를 한 젊어 보이는 사모님이 환한 얼굴로 나왔다.

“어서 와요.”

“안녕하십니까. 사모님.”

“네. 반가워요.”

진우가 듣기에는 30대 초반으로 알고 있었다. 애도 두 명이나 나았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20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앳되어 보였다. 그것을 눈치챈 임경식 중령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우리 와이프가 좀 어려 보이지.”

“네.”

“솔직히 밖에서 같이 다니면 아빠와 딸인 줄 안다니까.”

그러자 사모님이 바로 말했다.

“이이는……. 그보다 이 소령님. 식사는 하셨어요?”

“네. 밥은 먹고 왔습니다.”

“그래요? 그럼 제가 간단하게 술안주만 준비할 테니까. 거실에 앉아 계세요.”

“네. 사모님.”

“이리로 와.”

임경식 중령이 거실로 안내했다. 소파가 있고, 한쪽엔 책장이 있었다. 그곳에는 군과 관련된 책들이 많았다. 특히 플레이어에 관한 책들, 몬스터 도감, 및 게이트 서적들이 많았다. 아마도 각성부대장이 되면서 공부했던 것들이 분명해 보였다. 그것을 본 진우가 좀 놀랐다.

‘전부 공부한 것인가?’

진우는 솔직히 그가 그냥 군 생활을 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진우의 시선을 본 임경식 중령이 웃었다.

“왜? 내가 게이트 관련해서 공부한 것이 이상해?”

“아닙니다. 그보다 플레이어가 되고 싶으셨습니까?”

“아니. 솔직히 그 반대야. 저 책들은 처음 각성부대장에 부임하고 아무것도 모를 때 산 거야. 그래도 내가 부대장인데 알아야지. 안 그런가? 그리고 뭔가 유념해야 쓸데없이 플레이어가 되지 않지. 예방 차원에서 본 거야.”

“아, 그러십니까?”

“물론. 플레이어가 안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자네도 알지 않나. 내가 서울에서 밀려 밀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을 말이야. 그때 나는 별생각을 다 했지. 그런데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나니 그게 꼭 그렇게 사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지.”

그렇게 자신의 푸념을 늘어놓는데 아내가 부엌에서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갖가지 음식들이 들려 있었다.

“날 부르지.”

임경식 중령이 재빨리 일어나 아내가 가지고 온 음식들을 상에 놓았다. 진우도 몸을 일으켰다.

“아니야. 아니야. 자네는 앉아 있어. 그래도 손님인지 않나.”

“아닙니다. 저도 돕겠습니다.”

“됐다니까. 여보, 더 있어?”

“하나만 가져오면 돼요.”

“그래?”

“네. 어서 앉아요.”

“알았어.”

그렇게 하나만 가져오면 된다던 안주가 몇 개 더 나왔다. 커다란 상에는 호프집에서 봤던 온갖 안주들이 싹 다 올라왔다. 진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이걸 다 하셨어요?”

“제가 이이랑 결혼하기 전에 호프집에서 일을 했거든요.”

그러자 임경식 중령이 거들었다.

“사실은 내가 거기 호프집에서 이 사람을 꼬셨거든.”

“그렇습니까?”

“응. 지금 우리 처남이 하고 있는 호프집인데 거기서 아내가 안주를 만들어주니 장사가 잘되었거든. 뭐, 어째저째 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지.”

그러면서 잠깐 임경식 중령과 아내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때 여보가 일했던 그때 말이야.”

“네.”

“당신을 건드리는 남자들이 참 많았어. 그렇지?”

“술집이었으니까요.”

임경식 중령은 아내가 일하는 호프집에서 가끔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일하는 아내를 가볍게 생각하는 부류들이 그곳에 많았다. 그럼에도 아내는 언제나 미소를 보이며 대처를 했다.

“그러니까, 한 날은 술을 먹고 있는데 당신을 희롱하는 남자들이 있었지.”

“아마도요.”

“맞아. 그때 처음 내가 나서서 그 남자들로부터 당신을 지켰던 것 같아.”

“아, 맞아요. 그랬었죠. 그때 이 아저씨는 뭐지? 그렇게 생각을 했죠.”

“아저씨?”

“그럼요. 그때 당신은 아저씨였죠. 뭐, 이렇게 남편이 될 줄은 몰랐죠.”

“하하하. 그랬지.”

그날도 임경식 중령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든 잔뜩 술에 취한 남자들이 아내를 희롱하고 있었다. 이에 참지 못한 임경식 중령이 나서서 몇 번 막아줬다.

그런데 그들 중 한 녀석이 마치 스토커 비슷하게 아주 집요하게 쫓아다녔고, 호프집에 나타났다.

“그때 아마 한 녀석이 있었지. 당신을 죽어라 쫓아다니는 녀석 말이야.”

“네. 있었죠.”

그때를 생각하는 듯 아내는 지금도 무서운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임경식 중령 역시 화가 난 듯 인상을 썼다.

“내가 그놈을 그때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놔야 했어.”

“됐어요. 이미 지난 일인데요.”

“그래도!”

“이미 지난 일이에요. 그래도 저는 당신을 매일 봐서 좋았는걸요.”

“정말?”

“네.”

그 당시 너무 불안해 임경식 중령이 거기 호프집을 거의 출퇴근하듯 매일 찾아갔다. 그때는 이 여자랑 잘되어야겠다 이런 생각보다는 약간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늦게까지 술을 마셨고, 괜히 치근덕대는 사내들을 막아주고 그랬다. 그러다 보니 서로에 대한 감정이 생겼다고 한다. 이런 얘기를 두 사람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늘어놓았다.

“그때는 진짜 당신을 지켜야겠다는 마음뿐이었으니까.”

“저도 그때만 생각하면 항상 고마웠어요.”

“그랬으니 당신을 얻었잖아.”

“이이는…….”

부끄러워하는 사모님을 보며 진우는 미소를 보였다. 이렇듯 두 사람을 대화를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러다가 아내가 진우를 봤다.

“어머나! 내 정신 좀 봐. 너무 우리 두 사람 얘기만 했네요. 그럼 두 사람 대화 나누세요. 저는 애들하고 있을게요.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르고요.”

“네. 사모님.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그럼 말씀들 나눠요.”

사모가 방으로 들어갔다. 이제 거실에는 임경식 중령과 진우만 남았다. 임경식 중령이 먼저 술을 들어 따랐다.

“그런데 이 소령은 여자친구 있어?”

“최근에 소개로 만났습니다.”

“그래? 예뻐?”

“네. 예쁜 편입니다.”

“이 소령은 잘나가고 능력이 있고, 인기도 많으니까. 너무 조급하게 굴지 마.”

“네네.”

“자, 한잔하자고.”

“네.”

두 사람의 술잔이 부딪쳤다. 그렇게 시원하게 한 잔 마시고 안주를 먹었다. 그러더니 임경식 중령이 입을 열었다.

“미안하네. 이렇게 불러서 말이야. 와이프 핑계를 댄 것도 있지만 내가 사는 모습을 한 번은 보여주고 싶었어.”

“무슨…….”

“나도 맘 편히 산 것은 아니었어. 막말로 나도 기분이 좋았겠나. 물론 블랙 게이트에 들어가서도 이렇듯 살았겠지만……. 그때 블랙 게이트가 그레이 게이트로 바뀌고 난 후 정말 막막하더라. 그때 이후로 내가 전역증을 품속에 넣고 다녔어. 그런데 도저히 제출을 못 하겠더라.”

“사모님과 애들 때문에요?”

“그래. 미안하네. 나 먹고살자고 비겁하게 뒤에 숨었어.”

“아닙니다. 만약 제가 부대장님 입장이었다고 해도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이해해 줘서 고맙네.”

그렇게 다시 술잔을 부딪치며 마셨다.

“이야. 안주가 아주 맛있습니다.”

“그러게. 역시 옛날 그때 그 시절의 솜씨가 죽지 않았네.”

임경식 중령도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두런두런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진우는 그런 임경식 중령에게 재촉하지 않았다. 사실 처음에 블랙 게이트에 관한 정보가 있다는 것에 너무 궁금했다.

이곳에 오자마자 제일 먼저 그것부터 알고 싶었다. 하지만 임경식 중령이 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재촉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임경식 중령도 일부러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시간을 끄는데 그렇다고 말을 돌리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처했던 현실. 그래서 정면으로 나서지 못했던 그런 것을 먼저 알아줬으면 해서였다. 또한 어느 정도 술기운에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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