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숨긴 귀환자 142화
14. 일을 합시다(20)
“이제 좀 술기운이 올라오는군.”
한 시간이 좀 지나고 소주 두 병을 먹고서야 취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방에 있던 사모님이 거실로 나와 상을 확인했다.
“어……. 안주가 더 필요할까요? 국이 다 식었네. 제가 다시 데워드릴게요.”
“아뇨.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진우가 말했지만 사모님은 빈 접시와 식어버린 국을 들고 일어났다.
“저희 남편이 안주를 따뜻한 것만 먹더라고요. 안 그럼 술만 먹어서요. 그럼 속 버리잖아요.”
“아…….”
사모님은 미소를 보이며 부엌으로 들고 갔다. 그 모습을 보며 임경식 중령에게 말했다.
“부대장님 정말 좋은 사모님을 두셨습니다.”
“그래?”
아내 칭찬에 기분이 좋은 임경식 중령이었다. 그러곤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내가 자네에게 많은 얘기를 해줄 수는 없어. 정확히 말을 하면 나도 많이는 알지 못해. 다만 그때의 상황을 내가 얘기를 해줄게.”
“네.”
임경식 중령은 솔직히 각성부대를 휘어잡고 싶었다. 그래서 누군가의 줄을 잡고 싶어 했다.
“나는 이준식 대령의 라인이 아니야. 주위에서 어떻게 볼지는 모르겠지만……. 이준식 대령 스스로도 내가 자신의 라인이 아니라고 했으니까. 그래도 내가 각성부대장이니까. 이번 일에 대해서 내 도움이 받고 싶었나 봐. 그래서 날 불러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도움을 주면 믿어주겠다는 그런 얘기들을 했어.”
“그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솔직히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잖아. 어쨌든 그 당시 사단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은 이준식 대령이었으니까. 그때 당시 사단장님은 거의 뭐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였잖아.”
“……그건 그렇죠.”
진우도 그때 솔직히 군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군 전용 스킬만 아니었다면 당장에라도 전역하고 싶었다.
그리고 블랙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을 이준식 대령이 관할하고 있었다. 작전참모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을 안 거치지는 않았다. 게다가 사단장 얼굴 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 힘들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이준식 대령이 전면에 나서서 모든 일을 다 처리했다.
심지어 블랙 게이트 들어갈 때도 사단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타난 사람은 이준식 대령이었다.
“그리고 원래는 블랙 게이트에 들어갈 인원이 1,000명이 아니었네.”
“네?”
“이준식 대령이 갑자기 1,000명으로 인원을 늘렸어. 그런데 내가 최근에 작전처 장교 하나를 붙잡아 물어본 것이 있어.”
그 말에 진우의 눈빛이 반짝였다.
“어떤 얘기 입니까?”
“그 당시 블랙 게이트 회의에 대한 내용을 슬쩍 물어봤지. 그랬더니 재미난 소리를 하더라고.”
“무슨 재미난 얘기 말입니까?”
“인원에 대한 회의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대.”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러니까. 이준식 대령이 한 회의랑 내가 생각한 회의랑 다르다는 거지.”
임경식 중령의 말은 이준식 대령이 작전처라든지 군 내부에서 전력분석이라든지 그런 것을 통해서 게이트 인원을 정하는 것을 무시하고, 다른 모처에서 회의를 한 후 그냥 밀어붙였단 것이다.
그것을 숨기기 위해 작전과와 분석실을 통해서 나온 인원이라고 포장을 한 후 임경식 중령에게 공문을 보냈고, 그 공문을 받은 임경식 중령은 어쩔 수 없이 적힌 공문대로 인원을 편성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더 정확한 것은 이준식 대령이 안다는 거죠?”
“그렇지. 아마 그 양반이 자세히 알고 있겠지. 근데 그 양반의 입을 여는 게 쉽지 않지 않을 거야. 알겠지만 이준식 대령은 말 그대로 무궁화 세 개야. 별이 아니라는 말이지. 그런데 예전부터 사단장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는 거지. 그게 무슨 말일까? 이준식 대령과 엮인 사람들도 많고, 또 도와주는 사람도 많다는 소리가 아니겠어?”
“…….”
“생각을 해봐. 이준식 대령이 권력의 중심에 있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승승장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
“그렇겠죠.”
“그러니 블랙 게이트 건이 단순히 사단 내부의 문제는 아닐 거야. 더 위쪽에, 어쩌면 부국강변회 내부에서 거대한 딜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거야.”
“…….”
진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를 같이해 요리를 다시 한 사모님이 부엌에서 나왔다. 요리를 다시 상 위에 올린 후 도로 방으로 들어갔다.
“어묵 국물이 끝내주지? 자네도 먹어봐.”
“네.”
어묵 국물 한술에 다시 술을 따랐다. 그러면서 임경식 중령의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말이지. 최근에 작전처 장교 하나와 얘기를 하다 보니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작전처에 있던 서류가 일부 유출이 되었다고.”
그 말에 진우는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그랬습니까? 아니, 사단 작전처에서 어떻게 서류가 유출이 됩니까?”
“내 말이! 그런데 유출이 되었데.”
“누가 훔쳐 간 겁니까?”
“몰라. 거기까지는 얘기를 하지 않더라고. 아무튼 이준식 대령이 그 자료를 찾기 위해 엄청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하더라고. 아마 그 자료에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야.”
“으음, 그렇습니까?”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행보관님께서 가져간 그 자료에 뭔가가 있는 것이 확실하네.’
진우는 임백호 상사가 작전처에 들어가 훔쳐온 그 자료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임경식 중령이 술잔을 비우며 얘기했다.
“어후, 취한다. 그리고 이건 내 생각이야. 으음, 신화그룹하고 뭔가 연결이 되지 않을까?”
“네?”
진우의 눈이 커졌다.
‘신화그룹? 여기서 왜 신화그룹 얘기가 나오지?’
진우는 의문 가득한 눈으로 임경식 중령을 바라봤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말해달라고 재촉하는 눈빛을 보냈다.
“왜 신화그룹이라고 생각하냐면 말이야. 그게…….”
임경식 중령의 눈빛이 점점 흐릿해졌다. 그리고는 그대로 뒤쪽으로 풀썩 쓰러졌다.
“부대장님. 부대장님.”
진우가 냉큼 임경식 중령 쪽으로 갔다. 그러나 임경식 중령은 잔뜩 술에 취한 상태로 잠에 빠져 있었다.
“부대장님. 부대장님.”
흔들어 깨웠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렇듯 취한 상태에서 최대한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 얘기를 해주려고 한 것 같았다.
‘설마 이 얘기를 해주려고 그런 겁니까? 그래서 이렇듯 술을 과하게 마신 겁니까?’
진우가 속으로 생각했다. 아마 술이 깨면 다시 얘기는 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모님.”
사모님도 진우의 목소리를 듣고 방에서 나왔다. 거실 바닥에 쓰러진 임경식 중령을 봤다.
“제가 방으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아휴, 그래 주시겠어요?”
“네.”
진우가 임경식 중령을 부축해 안방 침대로 가서 눕혔다. 그러고는 사모님께 말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빈방 있는데 자고 가지 그래요.”
“아니에요. 저 술 많이 취하지 않았습니다. 음식 대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때 놀러 와요.”
“네.”
진우는 대답을 한 후 휴대폰을 꺼냈다.
“저, 사모님 계좌번호 좀…….”
그녀가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했다.
“계좌번호는 왜요?”
“제가 이번에 부대에서 중령님 서울 가시는 것 때문에 모금을 좀 했습니다. 그런데 급히 오느라 제가 들고 오지를 않았네요. 그래서 제가 계좌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두 손을 흔들며 거절을 했다. 진우가 다시 공손하게 말했다.
“저희 부대원들 생각입니다. 받아 주십시오.”
“……받아도 되려나.”
그녀는 안방에 쓰러진 임경식 중령을 바라봤다. 그러면서 매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사모님! 받아도 되는 겁니다.”
“그럼…… 감사히 받을게요.”
사모님이 계좌번호를 불러줬다. 진우는 5천만 원을 찍었다. 하지만 혹시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 도로 지웠다. 그러고는 천만 원을 찍어 보내드렸다.
휴대폰을 통해 찍힌 숫자를 봤다.
“헉! 뭘 이렇게 많이…….”
“저희 부대의 마음입니다. 저희 각성부대가 최근에 게이트에 들어가서 돈을 좀 많이 벌었습니다. 하하하.”
진우가 애써 웃음 지었다.
“서울 가서도 저희 부대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당연하죠.”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진우는 인사를 하고는 아파트를 나왔다. 1층으로 내려와 밖으로 나온 후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후욱, 후욱.”
시원한 밤공기를 들이마시자 약간 취기가 올랐던 것이 사라졌다.
“음, 신화그룹……. 신화그룹이란 말이지.”
그때 알람창이 깜빡깜빡거렸다. 진우가 바로 그곳을 클릭했다. 임백호 상사가 보낸 것이었다.
-대장. 그렇지 않아도 신화그룹과 관련되어서 자료가 많아서 나도 조금 의심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자료 정리는 다 끝났습니까?
-일부는 암호화되어 있어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요. 알겠어요. 천천히 준비하세요.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요.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끝이 났다는 것을 안 김철수 중사와 최대근 중사의 말이 올라왔다.
-참, 대장. 요즘은 왜 게이트에 안 들어갑니까? 게이트 좀 들어가죠.
-이봐. 게이트가 열려야 들어가지. 벌써부터 난리야.
-와. 혼자 꿀 빨고……. 좋으시겠습니다.
-됐고! 나 지금 취기 오른다. 알림창 닫을 테니까. 그리들 알아.
바로 알림창을 닫아버리고 터벅터벅 어둠을 뚫고 걸어갔다.
“그런데 택시가 오려나?”
한편 최대근 중사의 말이 씨가 되었을까? 게이트 탐지 연구소에서 게이트 생성 반응이 탐지되었다.
다음 날 진우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부스스한 머리를 뒤로하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으윽, 속 쓰리네.”
어제 과하게 먹지도 않았는데 속이 쓰렸다. 그대로 1층 부엌으로 내려갔다. 그곳에 엄마가 있었다.
“아들 일어났어?”
“네.”
그러곤 냉장고 문을 열고 찬물을 꺼냈다. 컵에 따라 마시는데 엄마의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왜요?”
“오늘…… 잊지 않았지?”
“오늘……요?”
진우가 눈을 끔뻑끔뻑거렸다. 순간 엄마의 얼굴에 서운함이 밀려왔다.
“뭐야. 몰라?”
그 순간 어제 이진상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헤헤헤. 모르긴 뭘 몰라요. 오늘 식사하기로 했잖아요. 방금 것은 장난이었어요.”
그제야 얼굴이 환해진 엄마였다.
“그렇지? 지금 나갈래? 어차피 점심때도 다 되었는데.”
“알겠어요. 그럼 지금 나가요.”
“알았어.”
엄마는 신나 하며 방으로 갔다. 진우도 다시 2층으로 올라가 샤워를 시작했다. 말끔하게 옷을 갈아입고 1층으로 내려왔다.
엄마도 준비를 마쳤는지 기다리고 있었다.
“가실까요, 사모님.”
“네.”
그렇게 강원도 속초로 가서 거기서 회를 먹고 오랜만에 바람도 쐬며 보냈다. 그곳으로 아빠인 이태경 회장과 이진상도 함께 나타났다.
“식사 맛나게 먹었어?”
“네. 오랜만에 큰아들이랑 먹으니 좋았어요.”
“그랬어요.”
이태경 회장도 기분이 좋은지 껄껄 웃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갔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진우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형. 결혼은 언제 해?”
이진상이 뜬금없이 질문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