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숨긴 귀환자 144화
15. 바통 터치(1)
촤르르르르.
커튼이 걷어졌다. 창을 통해 따스한 아침 햇살이 들어왔다. 침대에 누워 있는 조유진의 얼굴 위로 햇살이 드리웠다.
“으으음…….”
그녀는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몸을 돌렸다. 그때 그녀 몸 위에 올려 있던 이불이 살짝 내려가며 고운 살결이 드러났다.
진우는 평소처럼 일찍 잠에서 깼다. 커튼을 젖히고 몸을 돌렸다. 침대 위에서 자고 있는 조유진을 바라봤다. 그녀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흘러내린 머릿결을 쓸어 올렸다.
“으음…….”
조유진이 눈을 찡긋거렸다. 그리고 힘겹게 눈을 떴다.
“일어났어요?”
진우의 음성을 들은 조유진의 입가로 미소가 스르륵 번졌다.
“오빠 언제 일어났어요?”
하룻밤 사이에 진우 씨에서 오빠로 호칭이 바뀌어 버렸다. 진우가 씨익 웃었다.
“방금요.”
조유진은 몸에 걸쳐 있던 이불을 당기며 슬쩍 상체를 일으켰다.
“또 존댓말 한다.”
“아. 미안……. 말 놓기로 했지.”
“오빠가 자꾸 그러니까. 거리감이 느껴지잖아요.”
“알았어. 알았어. 안 그럴게.”
진우가 웃으며 일어났다.
“좀 더 잘 거야?”
“아뇨. 일어나야죠.”
그런데 조유진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진우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안 일어나?”
“칫……. 무드 없어.”
“응?”
“모닝키스 정도는 해줘야죠.”
“모닝키스? 나 아직 양치질도 안 했는데.”
“뭐 어때요. 아니지. 내 입에서 냄새나려나?”
순간 당황한 조유진이 급히 자신의 입을 가렸다. 진우는 그 모습마저 귀여운지 바로 다가가 입에 쪽 하고 뽀뽀를 했다.
“어멋!”
조유진이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했다.
“냄새 안 나요?”
“안 나. 전혀!”
“오빠도 안 나요.”
바로 수줍어하는 조유진. 진우는 옆 테이블로 가서 유리컵에 물을 따라 마셨다. 그리고 조유진에게도 미지근한 물을 가져다줬다.
“고마워요.”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며 진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어, 유진아.”
“네?”
“어디 아픈 곳은 없지?”
“나 괜찮은데요.”
“그래?”
진우의 표정이 밝아지며 뭔가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조유진이 미소를 지었다.
“오빠. 나를 너무 소중하게 대해줘서 어디 아픈 곳 한 군데도 없어요.”
“그럼 다행이고.”
“그런데 오빠는 어땠어요?”
“응?”
“아니. 오빠는 너무 조심만 해서……. 내가 별로였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조유진은 대담하게 말을 하면서도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사실 조유진에게 있어서는 심각한 얘기였다. 그녀가 여기까지 온 것은 진우를 통해 블랙 게이트와 관련된 것들을 알아낼 생각도 있었다.
조유진은 자신의 오빠가 아직도 블랙 게이트에 갇혀 있다고 생각을 한다. 절대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 오빠를 구하려면 누군가가 블랙 게이트에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블랙 게이트에 들어가라고 하면 선뜻 나서는 플레이어는 없을 것이다. 만약에 들어간다면 단 한 사람, 바로 진우일 것이라 여겼다.
진우는 블랙 게이트에서 그레이 게이트로 바뀐 곳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었다. 감히 그 누구도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믿었던 바로 그레이 게이트에서 말이다.
그래서 그라면, 진우라면 분명 블랙 게이트에 들어가도 살아 돌아올 것이라 믿고 있었다. 블랙 게이트 내부 그 환경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진우이기 때문이다.
그런 진우에게 조유진은 희망을 걸고 있었다. 오빠가 죽었든 살았든 간에, 그 흔적이라도 찾아줄 것이라는 희망 말이다.
물론 조유진은 그런 진우를 이용해 먹으려는 생각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진우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듯 그와 하룻밤을 감히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일반인이 조유진과의 하룻밤이 별로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녀에게 있어서 매우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렇듯 조심스럽게 물어본 것이다.
“나?”
“……네.”
“너무 좋았는데.”
진우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제야 긴장했던 조유진의 입가에도 어느덧 미소가 번졌다.
“그렇구나……. 나는 좀 걱정을 했어요. 일반인과는 처음이라고 해서…….”
그 말에 진우가 솔직히 당황했다. 너무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바람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 그게…… 그러니까…….”
진우는 말을 끝까지 잊지 못하고 멋쩍게 웃었다. 사실 진우는 플레이어 김미영과 관계를 가진 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김미영은 플레이어답게 상당히 저돌적이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푹 빠졌던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물론 그전에 성인이 되고 난 후에 몇 명의 여자를 만나긴 했다. 플레이어가 되기 전에 말이다. 그러나 플레이어가 된 후 일반인과의 만남은 처음이다.
진우는 이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했다.
“일단 우리 아침 먹을까?”
“그래요. 그전에 오빠!”
“응?”
“저기 제 옷 좀…….”
“아……. 그렇지. 옷…….”
진우는 당황한 얼굴로 재빨리 그녀의 옷을 챙겨서 줬다. 그 속에는 속옷도 있었다. 헛기침을 하며 방을 나섰다.
“나 거실에 있을게. 다 갈아입으면 나와.”
“네에.”
진우가 황급히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예쁘게 옷을 입은 조유진이 나왔다.
“저 화장 안 했는데…….”
“괜찮아. 예뻐.”
“그래요?”
조유진이 배시시 웃었다. 머리를 살짝 귀 뒤로 넘겼다.
“오빠.”
“응? 우리 룸서비스 시켜요.”
“그럴까?”
“네. 여기 룸서비스도 괜찮아요.”
“알았어.”
“그럼 전 잠시…….”
“어어. 내가 주문해 놓을게.”
“네.”
조유진은 그 길로 화장실로 향했고, 진우는 소파에 앉아 옆 테이블에 있는 전화기를 들었다.
“네. 여기 스위트룸인데요. 네. 룸서비스 좀 할게요. 네. 뭘 하냐면요.”
진우가 이것저것 주문을 했다. 그 사이 조유진은 간단히 세수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 방 거울에 앉아 화장을 했다. 화장을 다 하고 나오자 때마침 룸서비스도 들어왔다.
“와. 아침부터 뭘 이리 많이 주문했어요.”
“그냥. 어제 고생했잖아. 체력 보충도 할 겸…….”
“아…….”
조유진이 씨익 웃었다. 그녀도 솔직히 알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의 식성이 남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진우 역시도 양이 좀 많은 편이었다. 그런데 호텔의 음식은 맛도 있었다. 그래서 푸짐하게 주문을 했다.
“먹자.”
“네.”
진우는 격식 차릴 것 없이 보이는 족족 포크로 꾹 찔러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면서 진우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우리 매번 이렇게 먹으면 식비 엄청 나오겠다. 그치.”
그 말에 조유진이 빙그레 웃었다.
“걱정하지 마요. 나 여기 지배인을 잘 알아요. 그래서 많이 할인 많이 받아요. 그리고 오빠 나 생각보다 돈 많이 벌어요. 저축한 돈도 많고요.”
“오오. 그래? 그럼 나 유진이가 평생 먹여 살려주는 거야?”
“뭐, 못할 것도 없죠.”
“그래. 고맙다. 완전 기대되네.”
“호호호. 기대하세요.”
그렇게 두 사람은 아침부터 웃음꽃을 피우며 식사를 마무리했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10시가 넘어서 퇴실을 했다. 호텔을 나오며 진우가 물었다.
“집에서 외박했다고 혼나는 거 아니야?”
“오빠는 무슨…….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성인이잖아요.”
“어? 그럼 외박을 많이 해봤나 봐.”
“아니거든요. 나 오빠 만나기 전까지 진지하게 만난 남자 한 명도 없거든요.”
“어, 그래?”
그러다가 눈이 점점 가늘어지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그 눈빛을 본 조유진이 움찔했다.
“왜, 왜요.”
“진지하게 만난 남자가 없었다며. 그렇다면 내가 어제…….”
“뭐야. 몰라요!”
그런 조유진의 토라진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진우가 잠깐 시간을 보며 말했다.
“오늘 어떻게 할 거야?”
“저는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출근해야죠. 그보다 오빠는요?”
“나? 으음……. 나는 아무래도 집에 가 봐야겠지.”
“알겠어요. 집에 가서 푹 쉬어요. 내일 우리 다시 만나요.”
“그래. 알았어. 저기 택시 오네.”
“오빠가 먼저 타요.”
“내가?”
“네. 저는 회사에서 저 데리러 오기로 했어요.”
“그래?”
진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 먼저 갈게.”
“네.”
진우가 택시에 탔다. 차창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진우를 태운 택시가 떠나고 잠시 후 검은색 세단이 조유진 앞에 섰다.
조수석에서 비서가 내려 뒷문을 열어줬다.
“아가씨 타세요.”
“고마워.”
조유진이 타고 다시 조수석으로 비서가 올라탔다. 여비서는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뒷좌석에 앉은 조유진에게 물었다.
“아가씨. 어제는 별일 없으셨어요?”
“별일 없었겠어. 김 비서. 말이 좀 이상하네.”
조유진이 씨익 웃었다. 김 비서가 눈을 크게 떴다.
“혹시 설마…….”
“뭘 그렇게 놀라. 내가 납치를 당한 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같이 하룻밤을 보냈는데.”
“그래도 아가씨.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요. 너무 무리하시는 것은 아닙니까?”
조유진이 피식 웃었다.
“김 비서가 생각하는 그런 것 아니야. 처음에는 오빠 때문에 접근한 것은 맞아. 보면 볼수록 사람이 참 좋아. 순진한 면도 있고. 그리고…….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
“정말요?”
조유진이 품 안에서 목걸이 하나를 꺼냈다. 그걸 김 비서에게 보여줬다.
“김 비서 이 목걸이가 어제 무슨 색깔로 변한 줄 알아?”
“무슨 색깔로 변했습니까?”
“검은색으로 변했어.”
“네에? 검은색이라면 설마 S등급 아닙니까?”
“그래! 난 솔직히 A등급만 되어도 다행이라 생각을 했는데.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진우 씨가 훨씬 능력이 대단한 것 같아.”
“어쩌면 도련님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조유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만약 오빠가 살아 있다면…….”
조유진의 시선이 차창 밖으로 향했다. 조유진을 비롯해 가족들은 오빠인 조영진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여러 보고에 따르면 조영진은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사람들도 조영진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계속 블랙 게이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이유는, 그래도 조영진에 대한 흔적을 찾고 싶기 때문이었다. 살아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만약 죽었다면 그의 유품이나마 찾기 위해서였다.
그랬는데 진우가 그레이 게이트에서 나온 이유로 가족들의 생각이 달라졌다. 특히나 조유진의 생각 자체가 달라졌다.
조영진도 나름 그 당시에도 A등급 플레이어였고, 진우도 B등급에서 살아 돌아왔다. 진우가 숨은 등급으로 A등급이었다고 해도 블랙 게이트에서 살아 돌아왔으니, 당시 잘나갔던 조영진도 어쩌면 갇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생존확률은 아직도 많이 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진우가 블랙 게이트에서 살아 돌아왔다고 해도 조영진이 살아 있다고 보장은 못 한다. 게다가 진우는 조유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