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숨긴 귀환자 147화
15. 바통 터치(4)
김치석 대위가 매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진우가 피식 웃었다. 정확하게 얼마나 걸리는지 예상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어떤 특정 시간 안에 게이트를 공략하는 것은 가능했다.
“어디 보자…….”
진우가 시계를 봤다. 대략적인 공략 시간을 가늠해 봤다.
“한 10시간? 지금이 11시이니까. 밤 11시까지는 끝내도록 할게.”
김치석 대위의 얼굴이 밝아졌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밖에서도 준비해 놓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모든 준비를 마친 진우와 헬퍼로 온 박진철 안미숙, 지휘장교들과 각성 병사들이 일제히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역시 알람이 울렸다.
띠링!
-퀘스트
어둠의 지네동굴을 소탕하라.
여왕지네를 처치하시오.(0/1)
단, 변형된 지네를 1,000마리를 처치하면 귀환 포탈이 열립니다.(0/1000)
박진철도 알람을 확인한 후 바로 껐다. 그러곤 모두 게이트 안으로 들어온 것을 확인한 박진철이 입을 열었다.
“자자. 모두 주목!”
모두의 시선이 박진철에게 향했다.
“자, 아까도 대충 말했지만 다시 한번 상기시킬 겸 공략 포인트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때 최민철 병장이 손을 들었다.
“헬퍼님!”
“왜요?”
박진철의 시선이 최민철 병장에게 향했다.
“그런데 아까 브리핑을 했는데 왜 안에서 또 하시는 겁니까?”
“아, 그 이유는 이곳에서 해야 시각적인 효과를 확실하게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한 회의는 대략적인 것이고, 지금 여기서 하는 브리핑이 더욱더 실감할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여러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가끔씩 어떤 몬스터가 있는지 알고 도망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러면 공략대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알겠죠?”
“네. 알겠습니다.”
“우리 공략대 같은 경우는 손발을 맞춘 사람들이나 전력을 딱 맞춰서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물론 항상 여유롭게 들어오면 참 좋은데, 그것이 안 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죠.”
박진철이 숨을 고른 후 이어 말했다.
“일단 첫 번째로 호흡의 문제. 호흡이 맞지 사람들이 중간에 끼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호흡이 흐트러질 수 있죠. 둘째로 안에서 뭐가 나올 줄 모르는데 잘 모르는 사람과 함께 어울린다면 견물생심이라고 하죠. 욕심이 생길 수가 있는 겁니다. 아이템이나 몬스터 핵으로 인해 싸울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적은 인력으로 들어가는데 그들 중에서 가끔씩은 제 몸을 사리는 경우가 없지 않아 있어요. 그럴 경우 이번에 게이트가 어렵다고 말을 해주면 도망치는 사람들이 간혹 나와요. 그런 사람들이 갑자기 빠져 버리면 그날 게이트 공략이 허탕을 치거나 대개 힘들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보통은 게이트에 진입해서 브리핑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박진철은 매우 길게 설명을 했다. 그걸 어느 정도 이해하는 각성 병사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하는 병사들도 존재했다.
“뭔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네.”
“그럴 때는 그냥 ‘네 알겠습니다.’ 하면 되는 거야.”
“네. 알겠습니다.”
박진철이 바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자. 오늘 우리가 공략해야 할 몬스터는 지네입니다. 지네 하면 생각하는 것이 뭐가 있죠?”
“절지동물입니다.”
“다리가 많습니다.”
“등이 딱딱합니다.”
“한약재로도 사용 가능 합니다.”
그 말에 다들 피식 웃었다. 처음과 달리 긴장하는 모습이 많이 누그러들어 있었다.
“맞아요. 지네는 한약재로 사용도 합니다. 그러나 몬스터는 다르죠. 우선 그 크기부터가 압도적이죠. 그리고 좀 느립니다. 다리가 많아서 생각보다 빠를 것이라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
박진철이 설명을 하는데 몇몇 병사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다리가 그렇게 많은데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아닌데. 내가 봤을 때 지네가 엄청 빨랐는데…….”
“나도 시골에 있을 때 본 적이 있어요. 엄청 빨랐어요.”
각성 병사들 사이에서 그런 말들이 나왔다. 그러자 박진철이 박수를 치며 집중을 시켰다.
짝짝짝!
“주목! 다들 오해를 하는데. 시골에서 봤을 때 그 지네가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거예요. 하지만 아니에요. 우선 예를 들어볼게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일어나 봐요.”
박진철이 앞에 앉은 각성병사들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를 보고 그 뒤로 일렬로 쭉 서세요. 앞 사람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립니다.”
그들은 박진철이 시키는 대로 따라 했다.
“자, 지금부터 이 상태로 저기까지 전력 질주로 갑니다. 시작!”
어깨에 손을 올린 채로 뛰어가면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했다. 하물며 중간에 끊어져 버렸다.
“자자, 다시. 이리 와요. 앞사람 어깨에 올린 손을 놓치면 안 되는 겁니다. 잘 생각해 봐요. 이 상태가 유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사람이 뒷사람의 페이스를 맞춰줘야겠죠? 무조건 빨리 뛰는 것이 아니라.”
“네.”
“좋아요. 다시 해봅시다.”
그 말에 맨 앞에 있던 김영호 상병이 뒤를 신경 쓰며 달려갔다. 뒷사람들은 그 보폭에 따라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깨에 올렸던 손이 떨어지는 불상사는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서로 딱딱 발을 맞춰서 움직이다 보니 속도가 나지 않았다.
“자, 봤죠. 여러분 느끼고 있죠?”
“생각보다 느립니다.”
“그렇죠! 느립니다. 느려요. 일단 앞이 빨리 가야 뒤가 따라가죠. 그런데 반대로 앞에서 또 빨리 뛰어가 그럼 뒤에도 빨리 따라가야 할까? 뒤에서 무슨 수로 따라갈까요. 덩치도 크고 다리도 많은데……. 힘들겠죠?”
“네.”
“이렇듯 지네는 다리가 많아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많이 느려요. 그리고 또 하나 있어요. 뭘까요?”
박진철이 손가락 하나를 펼치며 물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아까 봤던 것처럼 서로 발이 꼬여 넘어집니다.”
“바로 그거죠. 큰 덩치인 만큼 움직이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겠죠.”
“네!”
“그럼 여기서 나오는 공략 포인트! 우리는 어딜 노려야 한다?”
“…….”
각성병사의 눈이 반짝였다. 박진철이 씨익 웃으며 답을 내려줬다.
“우리가 노릴 곳은 바로 지네의 다리입니다. 다리를 직접 노려 한두 개 정도 망가지게 합니다. 그렇다면 지네는 스텝이 꼬여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움직임이 둔화가 되겠죠. 맞죠?”
“네. 맞습니다.”
“그래요. 여러분이 할 일은 지네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다리를 노리는 겁니다. 그사이 저하고 유지태 중위가 앞에서 열심히 공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지네 몸을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됩니다. 지네 몸에서 독이 나오니까요. 독을 뒤집어쓰면 상당히 고통스럽고,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 얘기에 유지태 중위가 움찔했다. 그 역시도 조금 겁이 난 것이다. 그러자 유지태 중위의 파트너인 안미숙이 나섰다.
“유 중위님. 걱정하지 마요. 오늘 내가 뒤에서 확실하게 서포트해 드릴 테니까요.”
“정말요?”
유지태 중위의 표정이 다소 밝아졌다.
“네. 제가 최대한 시선을 잡고 끌어서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게 할 테니까. 유 중위님은 가능하면 약점을 노려서 정확하게 찔러야 해요. 스킬 숙련도가 높다고 함부로 막 사용하고 그러면 안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유지태 중위가 멋쩍게 웃었다. 박진철도 브리핑이 끝이 나자 박수를 치며 독려했다.
“자자, 이번 게이트도 빨리 클리어합시다. 아셨죠!”
“네!”
“좋아요. 아주 박력이 있습니다.”
박진철이 환하게 웃었다. 그사이 진우가 나섰다.
“자, 장비 최종 점검을 하고 움직이도록 하자.”
“네. 알겠습니다.”
각성병사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플총과 게이트 보조장치를 재차 확인했다.
“이상 없습니다.”
“이상 무!”
“좋았어. 그럼 사냥 시작하자!”
유지태 중위와 박진철이 선두로 천천히 첫 번째 굴로 이동했다. 저 멀리 지네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네다!”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선두에 있던 각성병사들의 플총이 불을 뿜었다.
탕탕탕탕탕탕!
견착을 한 후 달려드는 지네들의 다리만 노렸다. 그러자 서서히 달려드는 속도가 느려지고 그 뒤에 따라 나오던 다른 지네들이 뒤엉키며 넘어졌다. 일종의 병목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앞에서 둔화된 지네로 인해 뒤에 있던 수많은 지네들 역시 움직임이 느려진 것이다. 그사이 유지태 중위와 박진철이 앞으로 나서며 하나씩 지네들을 정리해 나갔다.
서걱! 서걱! 서석!
등 쪽이 아닌 배 쪽을 노리며 한 마리씩 지네를 공격했다. 그래도 지네의 더듬이 부분을 잘라내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더듬이부터 잘라야 해. 그래야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해요.”
“네.”
박진철의 지시를 받은 유지태 중위의 검이 사선을 그리며 그어졌다. 그사이 뒤에서는 안유정 중위의 화살이 날아왔고, 안미숙의 화염 공격 역시 날아와 전방에서 활약하는 두 사람의 운신의 폭을 넓혀줬다.
김슬기 대위는 버프 담당답게 각종 버프를 두 사람에게 걸었다.
진우는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상황을 지켜봤다. 솔직히 말해서 위험한 상황에 놓이면 당연히 그가 나설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네 병력이 많을 뿐이지 공략하는 것에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다.
문제는 딜러의 수가 적기 때문에 점점 밀려 나오는 지네들이 많았다. 설상가상 뒤에서 따라 나오는 지네들이 자신들의 죽은 동료들을 밟고 올라서서 넘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확인한 진우가 바로 안미숙을 불렀다.
“누나!”
“응?”
“저쪽에다가 불의 장벽 하나 날려줘.”
“뭐? 불의 장벽? 나 그 스킬 안 배웠는데.”
“누나!”
“말해.”
“지난번에 보니까 불의 심판 컨트롤이 가능하더만. 불의 심판을 적절하게 펼쳐서 저쪽 편에 뿌리는 것이 가능하지 않아?”
그러자 바로 안미숙이 정색했다.
“야이씨! 그런 것은 정말 어려운 거야. 잘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어.”
“그러면 거창하게 할 필요 없이 적당히 겁만 줘.”
“야! 그럴 거면 그냥 내가 뒤쪽에다가 불의 심판 한 방 날려 버리는 것이 낫지 않냐?”
“에헤이. 내가 누차 말했죠. 우리 병사들 성장시켜야 한다고. 누나가 그래버리면 우리 애들 성장 못 해요.”
그러자 안미숙이 바로 못마땅한 얼굴이 되었다.
“너는 진짜 만날 나에게 어려운 것만 시키더라.”
진우가 피식 웃었다.
“아니. 나는 누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 누나 컨트롤도 최고잖아.”
그 말에 안미숙의 눈이 반짝였다. 진우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한번 해볼게.”
그리곤 전방을 보며 집중했다. 위치한 곳에 타깃팅을 두고 마나를 순환시켰다.
펑!
위치한 곳에 불의 심판을 생성시켰다. 그때 불길이 치솟았고, 안미숙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 순간 치솟았던 불이 점점 엷어지며 옆으로 번져나갔다. 그것을 안미숙이 컨트롤한 것이다.
‘후후후, 역시 누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