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숨긴 귀환자 148화
15. 바통 터치(5)
원래 불의 심판은 지정시킨 곳에서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스킬이다. 그리고 자신의 몸 주위로 펼치는 불의 심판이 가장 강하다.
그러나 안미숙은 섬세한 컨트롤로 퍼지는 불을 잡으며 천천히 벽을 세워 나갔다.
솔직히 진우가 원하는 불의 장벽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 비슷하게는 만들었다. 뒤쪽에서 밀려오는 지네들을 포위하듯이 둥근 불의 원은 만든 것이다.
‘어?’
그렇게 조정하던 안미숙이 순간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머릿속에서 확 하고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순간 안미숙은 깨달음을 얻었다.
화르르르륵!
불의 심판의 화력이 갑자기 올라갔다. 진우가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누나. 조금 줄여요. 너무 화력이 세! 그럴 필요가 없어요. 견제만 하라니까.”
“아니야. 갑자기 뭔가 환해지면서 똑같은 마나로 좀 더 짙은 화력을 뿜어낼 수 있게 되었어. 뭔가 영감이 확 올라오는 느낌이야.”
그 순간 진우도 누나가 깨달음을 얻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누나! 집중해! 불의 컨트롤에 더욱 신경을 쓰라고. 내가 유 중위와 진철이 형을 케어할 테니까.”
“…….”
안미숙은 대답을 하지 않고 바로 집중 모드에 들어갔다. 진우는 그런 안미숙을 힐끔 보고는 바로 앞으로 뛰쳐나갔다. 유지태 중위 뒤편에 내려섰다.
“유 중위.”
한참 지네와 싸우고 있던 유지태 중위가 숨을 돌리며 대답했다.
“네.”
“이제 내가 뒤에서 서포터해 줄 테니. 마음껏 날뛰어봐.”
“네. 알겠습니다.”
유지태 중위는 갑자기 든든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큰 기합 소리와 함께 다시 덤벼들었다.
“우오오오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
“안 중위!”
“네.”
“집중해! 지금 저쪽에서 지네가 넘어오잖아! 화살로 견제하라고!”
“네. 알겠습니다.”
안유정 중위가 힘차게 대답을 한 후 화살을 쟀다. 그리고 그녀 역시 자신이 원하는 곳에 화살을 꽂아 넣었다. 명중률이 확실하게 올라간 것이다. 안유정 중위 역시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한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안미숙이 쏘아낸 불의 장벽 안에 있던 지네들을 비명을 질러대며 꼼짝을 하지 못했다.
주변이 빠르게 정리된 후 진우가 소리쳤다.
“누나!”
“응!”
다시 안미숙 손을 움직여 불을 컨트롤했다. 불의 장벽 한쪽이 서서히 열렸다. 그곳으로 탈출하려던 지네 한 마리가 나왔다. 그곳으로 박진철과 유지태 중위가 뛰어들어 나오는 지네를 처리했다.
그런 식으로 차근차근 지네들을 처리해 나갔다. 그러자 전투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이미 눈빛만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된 그들은 첫 번째 굴에 있던 지네들을 모두 처리했다.
“자, 핵 줍자!”
유지태 중위가 소리쳤다. 각성병사들은 플총을 들고 미약하게 움직이는 지네를 확인 사살했다. 그와 동시에 몬스터 핵 수거를 했다.
진우가 안미숙에게 다가갔다.
“누나. 멋져요. 잘했어요.”
안미숙의 얼굴에는 들떠 있었다. 그녀는 다가와 말을 하는 진우를 향해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진우야. 나 잘하면 S등급으로 올라갈지도 몰라.”
“정말요?”
진우 역시 안미숙의 S등급 상승에 기뻐했다. 사실 안미숙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현재 미세등급으로 AS등급에 올라서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상태에서 S등급으로 가기 위해서는 확실한 깨달음이 필요했다.
그 깨달음이라는 것은 마법사별로 다 다르다. 누군가 이런 식으로 깨달았다고 해서 꼭 그렇게 해서 깨닫지 못한다. 보통은 게이트 활동을 하다가 깨닫는 경우가 많다. 사실 그런 것 때문에 안미숙은 일부러 터프하게 플레이해 왔다.
뭔가 자신이 위기를 겪어나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미숙의 깨달음은 세밀한 컨트롤이었다.
이제껏 그녀는 특별하게 마법을 컨트롤하지 않았다. 그저 강한 공격과 한 방으로 몬스터를 처리해왔다. 그런데 오히려 담을 쌓았던 그런 것을 사용하다 보니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아무튼 진우야 고맙다.”
이번 역시 진우의 도움으로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안미숙이 환하게 웃었다.
“고맙긴요. 누나가 강해지면 나도 좋죠.”
“그래서 말인데 진우야.”
“네?”
“나 S급 되면 알지?”
“하하하. 걱정 마요. 우리나라에 있는 S등급 마법서 다 사 줄게요.”
“진짜지? 정말이지? 딴말하기 없기다.”
“그럼요.”
“좋았어. 다음 굴로 가자!”
안미숙이 신나 하며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진우가 피식 웃었다.
대부분의 방 공략을 끝낸 후 보스 방에 들어가기 전 간식 타임을 가졌다.
“여기서 잠깐 휴식 및 정비를 한 후 갈까?”
“네. 부부대장님.”
유지태 중위가 병사들에게 갔다.
“자! 다들 이곳에 집합!”
“집합!”
“모두 자리에 착석 후 전투식량들을 꺼내라.”
“네. 알겠습니다.”
병사들이 전투식량을 꺼내다가, 그들의 시선이 어딘가로 향했다. 유지태 중위 역시 고개를 갸웃하며 병사들이 바라보는 곳을 봤다.
“뭐야? 뭔데?”
유지태 중위의 시선이 닿은 그곳에는 안미숙이 자신의 아공간에서 뭔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어? 저거 뭡니까?”
“뭐지? 뭐야!”
“우리 미숙 님께서 또 뭘 사 오신 거지?”
병사들 전부 안미숙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유지태 중위가 시선을 돌려 말했다.
“야 이것들아. 괜히 저곳에 신경 쓰지 말고 어서 각자 챙겨 온 전투식량이나 열어. 저거 너희들 것 아니야.”
“그래도 모르지 않습니까.”
“지금 꺼내는 양을 보니 제법 많습니다.”
“맞습니다. 엄청 많은데 말입니다.”
그때 박진철이 나섰다.
“자자! 우리 병사님들 그동안 짬을 먹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습니까. 오늘도 우리 마법사님께서 준비를 해왔습니다. 그 전투식량 도로 가방에 넣으시고, 밖에서 사 온 사제 간식 좀 먹어볼까요?”
“오오오오!”
“역시 믿고 있었습니다.”
“최곱니다. 우리 마법사님.”
진우도 멍하니 안미숙을 바라봤다. 안미숙의 아공간에서 나온 것은 일회용 그릇이었다. 일회용 그릇을 잔뜩 꺼내는데, 그 안에 뭔가 하얀 것들이 담겨 있었다. 진우의 눈이 반짝였다.
“누나!”
“응?”
“혹시 이거 삼계탕이에요?”
“오오. 눈썰미 좋네. 어떻게 알았어?”
“냄새도 그렇고, 왠지 느낌이 삼계탕 같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삼계탕을 가져올 생각을 다 했어요?”
“날이 덥잖아. 기력 보충할 겸 해서 가져왔지. 복날은 아니지만 미리미리 챙기는 것도 좋잖아. 진우는 왜? 너 삼계탕 싫어해?”
“에이. 없어서 못 먹죠. 그런데 누나. 이렇게 해도 괜찮아요?”
안미숙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어때! 우리 부부대장님께서 S급 마법서도 사 주실 텐데.”
안미숙의 말에 진우가 피식 웃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요새 물가가 많이 올랐다. 삼계탕도 제대로 사 먹으려고 하면 4~5만 원 돈은 줘야 한다.
하지만 안미숙이 이런 식으로 매번 간식을 직접 준비를 한다면? 그것도 공략대 인원만큼 삼계탕을 준비해 봐야, 2백만 원도 들지 않았다.
반면 S등급 마법서는 부르는 것이 값이다. 하물며 지난번 구입한 불의심판보다도 3~4배는 비쌀지도 몰랐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백억에 달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에 S등급 마법서를 삼계탕으로 퉁 친다고 하더라도 죽을 때까지 먹어도 다 못 먹을 정도다.
그런 진우를 보며 안미숙이 입을 열었다.
“너! 솔직히 말해봐, 방금 계산했지?”
“아니. 무슨 계산을 해요.”
“아닌데 너 눈빛이 살짝 계산하는 눈빛이었는데.”
“아니에요. 어쨌든 고마워요. 누나. 우리 애들 잘 먹는데 넉넉하게는 사 왔죠?”
“1인 3닭으로 준비했어. 우리 그 정도는 먹어야 하지 않냐?”
“후후후, 역시 우리 누나! 최고네요.”
진우는 진심으로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사실 안미숙은 예전부터 손이 큰 것으로 유명했다. 뭘 하나를 만들거나 준비를 하더라도 항상 넉넉하게 준비했다. 워낙에 안미숙이 잘 나갔기 때문에 그렇게 준비를 하는 것에 그 누구도 터치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안미숙이 뭔가 아이템 분배를 할 때도 나름 공헌도에 따라서 달라졌다. 또한 안미숙이 아이템 분배에 있어서 많이 가져가도 그것에 대해 전혀 불만을 토로하는 이도 없었다.
그리고 안미숙 역시도 자신보다는 길드가 우선이었다. 길드를 살리기 위해서 엄마처럼 퍼주고 그런 것이 없잖아 있었다.
물론 박진철 역시도 알아서 길드원들에게 많이 퍼주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길드원들은 박진철과 안미숙을 또 다르게 불렀다. 바로 엄마 아빠라고 말이다.
“자자. 다들 이리와 한 명씩 와서 그릇 가져가.”
안미숙이 따뜻한 음성으로 각성 병사들을 불렀다. 병사들도 쭈뼛쭈뼛하며 유지태 중위의 눈치를 살폈다. 유지태 중위가 말했다.
“뭐 하고 있어. 안미숙 님께서 준비해 온 것인데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말하고 가져와.”
“넵! 알겠습니다.”
병사들은 밝은 표정으로 안미숙에게 다가갔다. 안미숙 역시 인자한 미소로 병사들에게 삼계탕을 한 그릇이 건넸다. 그렇게 병사들은 밝은 얼굴로 삼계탕을 뚝딱 먹어 치웠다.
“와. 맛있다.”
“네. 맛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살짝 아쉽습니다.”
“뭐가?”
“삼계탕은 식으면 좀 그렇지 않습니까.”
“하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맛은 있었다. 그런데 식으니까 살짝 아쉽긴 했다.
“뭐랄까? 팔팔 끊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 병사들의 말을 들은 안미숙이 눈을 반짝였다.
“오! 잠깐 내가 그 생각을 못했네. 가만히 있어 봐요.”
안미숙이 마나를 끌어올렸다. 그 순간 점점 열이 올라오더니 삼계탕들이 하나둘 보글보글 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진우와 병사들이 감탄하고 있는데 박진철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스톱! 스톱!”
“왜?”
“열 더 올리다가는 그릇 자체가 녹을 수가 있어.”
그 말에 안미숙이 피식 웃었다.
“이 그릇 게이트에서도 쓸 수 있는 특수재질이라 괜찮아.”
“에이. 그건 C등급 마법사한테나 통하는 소리고……. 자기는 아니잖아.”
“아!”
그제야 깨달은 안미숙이었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얘기했다.
“하긴 내 마나가 장난 아니지.”
그 말에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하하하 웃음을 흘렸다. 그러는 사이 적당히 달궈진 삼계탕을 다들 허겁지겁 먹었다. 이곳 게이트에서 먹는 삼계탕의 맛은 엄청 맛이 있었다.
진우도 삼계탕 한 그릇을 잡고는 아주 맛나게 먹었다. 지휘장교들도 삼계탕을 바라보며 살짝 허탈한 모습으로 바라봤다.
“진짜 삼계탕이야.”
“정말이네.”
“게이트에서 삼계탕을 먹는 것은 또 처음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면서 진우를 향해 유지태 중위가 말했다.
“부부대장님 맛있게 드십시오.”
“그래. 유 중위도 맛있게 먹어.”
“넵!”
보스 방을 남겨두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공략대들은 다들 소풍을 온 기분이었다. 이렇듯 게이트 안에서의 여유는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안유정 중위가 유지태 중위를 바라봤다. 예전 같으면 유지태 중위가 피를 덮어쓰고 그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