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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숨긴 귀환자-164화 (164/177)

힘을 숨긴 귀환자 164화

16. 너, 내 동료가 되어라!(14)

“알고 있네. 이해해. 그래도 내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그레이 게이트는 현재 멈춘 상태라고 들었네. 그래서 별도의 게이트 움직임이 없다고 들었네. 그러니 들어가서 확인만 해 주게. 제발 부탁이네. 외손자의 생사라도…….”

“하아……. 일단 고민은 좀 해보겠습니다. 저 혼자 결정해야 할 것은 아닙니다.”

“고민……. 그래. 고민을 해야겠지. 그래도 좋은 쪽으로 생각해 줬으면 좋겠네. 어차피 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네. 마지막 소원은 우리 외손자의 생사라네.”

“……네. 알겠습니다. 일단 아까도 말했지만 고민은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더 하실 말씀은 없으시죠.”

“…….”

한대광 회장이 입을 다물었다. 진우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진우가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그렇게 몇 걸음 가기 전에 한대광 회장이 급한 마음에 입을 열었다.

“참, 자네 우리 유진이는 잘 만나고 있나?”

진우가 바로 멈췄다. 천천히 몸을 돌린 진우가 물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한대광 회장이 미소를 보였다.

“얘기 못 들었나? 유진이는 내 외손녀라네.”

그 말에 진우는 놀란 표정이 되었다.

‘조유진……. 조영진. 이름이 비슷하다고는 생각이 들었지만…….’

진우는 정말로 둘이 가족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진우가 떠나고 방 안에는 한대광 회장 혼자 있었다. 그는 창가에서 뒷짐을 진 채 하염없이 밖만 쳐다봤다. 그의 표정은 무심했기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조유진이 들어왔다.

“할아버지.”

그 목소리에 한대광 회장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외손녀인 조유진을 보며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왔느냐.”

“그 사람 어디 있어요?”

조유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진우를 찾았다.

“누굴 말하는 거야?”

“누구긴요. 진우 씨죠.”

“갔다.”

한대광 회장이 말을 하며 자리로 가서 앉았다. 조유진도 맞은편 자리로 가서 앉았다.

“할아버지가 왜 진우 씨를 만나요?”

“밥은 먹었어?”

“지금 밥이 문제에요? 왜 만나셨냐고요.”

“밥은 먹고 다녀라.”

“할아버지!”

조유진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 모습을 보며 한대광 회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원 녀석도…….”

“…….”

조유진은 말없이 한대광 회장을 노려봤다. 그 모습에 한대광 회장은 살짝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이 녀석아. 아무리 그래도 할아버지를 봤으면 먼저 인사부터 해야지. 잘 지냈냐. 건강은 어떠냐. 이런 것을 먼저 물어봐야 하지 않냐. 오자마자 할아버지부터 혼내기는…….”

“제가 말씀드렸죠. 진우 씨 일에 끼지 마시라고요.”

한대광 회장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렸을 적부터 너무 오냐오냐해서 키웠는지 자신을 대하는 행동에 버릇이 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원래 조유진의 성격이 이런 건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두 할아버지의 기대를 받던 친오빠 조영진이 블랙 게이트에 들어가 실종된 이후부터였다. 그때부터 조유진이 엇나가고 삐뚤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조유진이 저런 행동을 해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조유진에게만 맡겨 둘 수는 없었다. 아무리 조유진에게 염치없는 외할아버지라고 해도 여태까지 살아온 역사가 있고, 대광그룹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다.

“흥분하지 말고 진정 좀 해라.”

“무슨 얘기를 하셨어요?”

“이진우 그 친구가 블랙 게이트와 관련된 자료를 줬다. 그 일 때문에 만난 거다.”

“진우 씨가요?”

“그래. 사실 처음에는 기본적인 자료만 나올 줄 알았다. 그 녀석이 블랙 게이트에서 살아 돌아온 생존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마그마 길드 자료까지 가지고 있더라.”

“네?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조유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한대광 회장이 찬찬히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가 말하지 않았더냐. 마그마 길드가 털렸다고 말이야. 그런데 그곳에 있던 자료가 이진우의 손에 들어간 것 같다. 모르지, 그 녀석이 마그마 길드를 없애버렸는지 말이야.”

한대광 회장이 그렇게 말을 했지만 조유진은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솔직히 그 일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현재 중요한 것은 한대광 회장이 진우에게 무슨 말을 했냐는 것이었다.

그런 속내를 읽은 한대광 회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대로 말했다. 영진이를 찾아 달라고, 현재 그레이 게이트로 바뀐 그곳에 들어가 달라고 말이다.”

“그게 다예요?”

“네가 내 외손녀라는 것도 말했다.”

“할아버지!”

“언젠가는 들통 날 일이었다. 그리고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너도 부담스럽지 않냐. 내가 괜히 마음에 빚을 지고 그 녀석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그냥 내가 말한 거다.”

한대광 회장이 옆에서 지켜보는 외손녀의 모습에 답답해하며 말을 했지만 조유진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니야. 그런 것이 아니에요, 할아버지.’

조유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처음 그를 만나려고 했을 때는 솔직히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접근을 한 것은 맞았다. 하지만 진우라는 사람을 만나면서 그가 좋아져 버렸다. 자신을 부모처럼 보살펴 줬던 오빠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같이 있으면 심적으로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런 느낌을 채워준 진우가 너무 고마웠다. 이제는 어떤 목표가 아닌 진정으로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의 몸도 허락을 했고, 미래에 대한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친오빠에 대한 아쉬움, 그리움이 옅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할아버지가 말해버렸다는 것에 화가 났다.

“왜 그러셨어요, 진짜……. 할아버지가 그렇게 먼저 말해버리면 저는요. 저는 뭐가 돼요.”

조유진이 살짝 울먹이며 말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한대광 회장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후, 유진아. 만약 그 녀석이 널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네가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충분히 널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이해를 하지 않는다면…… 그 녀석과 이어지지 않는 것이 맞다.”

“할아버지는 늘 그런 식이에요. 매번 멋대로 행동하시고, 맘대로 하시고. 할아버지 때문에 오빠가 그리되었잖아요.”

“이, 이 녀석이! 그것이 어떻게 나 때문이야. 막말로 내가 그레이 게이트로 바뀔지 알고 있었냐.”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두 분께서 계속 10대 게이트 재벌 안에 들어가야 한다며 오빠를 압박하지 않았어요. 그 욕심 때문에 오빠의 등을 떠민 거 아니에요. 오빠 하나로 부족하세요?”

“이 녀석이…….”

한대광 회장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눈은 부릅뜬 채로 조유진을 바라봤다. 하지만 조유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됐어요. 앞으로 할아버지랑 얘기하지 않을 거예요. 연락하지 마세요.”

조유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을 돌려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한대광 회장은 화를 내기는커녕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솔직히 조유진의 말처럼 10대 게이트 재벌 욕심 때문에 조영진의 등을 떠민 것은 사실이다. 그로 인해 하나뿐인 혈육이 죽었다.

한대광의 시선이 비서실장에게 향했다.

“자네도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나?”

비서실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회장님.”

“응?”

“댁으로 모시겠습니다.”

그의 대답에 한대광 회장은 무거운 한숨을 또다시 내뱉었다.

대광호텔을 나선 조유진은 곧바로 진우를 찾았다. 몇 번이나 연락을 했지만 받질 않았다.

“오빠…….”

그녀는 안타까운 눈길로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연결 끝에 딸깍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유진이 다급하게 말했다.

“오빠!”

-으응…….

“지금 어디예요?”

-나? 지금 집에 들어왔어. 왜? 무슨 일 있어?

“오빠 미안해요.”

-…….

조유진의 울먹이는 말투에 잠시 말이 없어진 진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괜찮아. 사람마다 사정이 있지 않아. 나도 유진이 너에게 말 못 할 사정이 있어. 그래서 유진이 너의 심정 충분히 이해해.

“흐흑…….”

조유진은 손으로 입을 막으며 눈물을 터뜨렸다. 그 울음을 들은 진우가 물었다.

-너 지금 어디야? 내가 거기로 갈게.

그 말에 조유진은 또다시 흐느꼈다. 안도감? 혹은 미안함이 가득 내포되어 있었다.

-우리 유진이. 생각보다 울보네.

“……흐흑…….”

-거기 있어. 내가 지금 바로 갈게.

진우가 전화를 끊었다. 조유진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흐흐흐흑…….”

그 옆에 서 있던 조유진 여비서가 휴대폰을 들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진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조유진 씨 비서입니다. 조유진 씨는 현재 대광호텔에 있습니다.

그렇게 문자를 보낸 후 흐느끼고 있는 조유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가 대광호텔 앞에 도착을 했다. 그곳에서 진우가 내렸다.

그는 잠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저 멀리 차량 한 대가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걸어갔다. 차량에 도착한 진우가 차량 뒤 차 창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차창이 내려가고 그곳에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조유진이 보였다. 그녀는 얼마나 울었는지 화장은 다 지워져 있고, 두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오빠.”

그 모습에 진우는 웃고 말았다.

“왜 이렇게 울었어. 너 지금 판다가 다 되었네.”

그러자 화들짝 놀란 조유진이 바로 고개를 돌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췄다.

“보, 보지 마요.”

그런 조유진의 귀여운 모습에 진우가 환하게 웃었다.

“나 계속 밖에 서 있게 할 거야?”

“아, 아니요. 미안해요.”

조유진이 바로 옆자리로 이동했다. 진우는 문을 열고 바로 옆에 탔다. 그러자 여비서가 차에서 내려 자리를 비켜줬다.

조유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진우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조유진을 보며 말했다.

“뭐해? 나 안 볼 거야? 나 좀 봐.”

그 말에 조유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진우를 바라봤다. 정말 많이도 울었는지 퉁퉁 부은 눈에 슬픔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진우가 환하게 웃었다.

솔직히 여기까지 오면서 진우는 많은 생각을 했다. 만나서 어떤 말부터 해야 할까? 이런저런 고민을 했다. 그러나 지금 울먹이는 그녀를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그녀를 안아 주었다.

물론 조유진이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처음 만났을 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접근을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많이 심란했다. 하지만 이렇듯 조유진이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그 눈빛 속에서 용서를 바라는 애절함도 느껴졌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괜찮아. 너무 미안해하지 마. 네가 그러면 내가 더 속상할 것 같다.”

“알았어요. 안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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