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숨긴 귀환자 173화
16. 너, 내 동료가 되어라!(23)
신호음이 가고 있는데도 받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왜 이렇게 안 받으시는 거야?”
이준식 대령은 초조하게 종료 버튼을 누른 후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몇 번 하고 난 후에 딸깍하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충성. 대령 이준식입니다.”
-…….
“참모부장님.”
-무슨 일인가?
“저 지금 헌병대에 구금되어 있습니다.”
-구금? 그러게 이 사람아 내가 누차 말하지 않았나. 적당히 하라고. 일 처리를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참모부장님 저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정말 더 열심히 잘할 수 있습니다.”
-자네야말로 왜 이래. 상황이 그 정도까지 같으면 이미 내 손을 벗어났어. 똑똑한 사람이 왜 이래. 그 정도면 자네가 알아서 해야지.
“참모부장님.”
-이 사람 진짜……. 도대체 그 일을 어디까지 끌고 오려고 그래. 아무튼 나는 모르는 일이니까, 그리 알아.
“……참모…부장님.”
-이 친구가……. 그리 안 봤는데 사람이 영 못 쓰겠구만.
최준일 인사참모부장은 바로 이준식 대령과 손절을 해버렸다.
“참모부장님. 참모부장님…….”
하지만 이미 전화는 끊어져 버렸다.
“젠장할!”
이준식 대령이 강하게 욕을 내뱉었다. 그때 조사실 문이 열리며 김승철 소장이 들어왔다. 최준식 중령이 화들짝 놀랐다.
“추, 충성.”
“헌병대대장은 이만 나가봐.”
“네.”
최준식 중령이 재빨리 휴대폰을 챙겨서 조사실을 나갔다. 김승철 소장이 맞은편에 앉았다.
“자네 말이야. 꼴이 말이 아니군.”
“…….”
이준식 대령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입을 닫고만 있을 건가? 뭐라고 말을 해봐.”
“……절 어쩌실 생각입니까?”
“글쎄 말이야. 자네를 어떻게 할까?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군 검찰에 넘겨서 옷을 벗기고 싶어. 그런데 윗선들은 또 조용히 넘어갔으면 하는 것이 있어서 말이지. 아무래도 자네는 해외부대로 파병이 날 것 같다.”
“네? 해외부대로 말입니까?”
“그래.”
세계 각지에서도 게이트를 막는 부대가 존재한다. 우리 대한민국도 나름 플레이어 강국에 속해 있다. 그래서 플레이어가 적은 빈민국가 위주로 파견부대를 보내고 있다.
해외파병을 나가면 말이 좋아 파병이지 군인들에게는 유배나 다름이 없다. 거기 게이트가 생성되면 오롯이 거기 있는 물자로만 해결을 봐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지원을 받기에는 우선 시간이 많이 걸린다.
또한 빈민국가에서의 지원은 전혀 생각할 수도 없다. 게다가 다른 나라 플레이어 부대와의 마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한마디로 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해외파병은 말 그대로 군 생활 커리어는 끝났다고 봐야 했다.
“아니야. 아니야. 이건 말이 안 돼! 나를 왜…… 나를 어째서…….”
이준식 대령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앞에 앉은 김승철 소장을 날카롭게 노려봤다.
“제가 이대로 가만히 있을 것 같습니까?”
“자네가 가만히 안 있으면 뭐? 꼬우면 옷 벗고 나가면 돼. 예편하면 될 문제 아닌가.”
김승철 소장이 콧방귀까지 끼며 말했다. 이준식 대령이 까득 이를 깨물며 말했다.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 모습을 보며 김승철 소장이 말했다.
“기대하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김승철 소장이 조사실을 나갔다. 그리고 이준식 대령은 탁자 위에 올려놓은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진우는 언제나 그랬듯이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나면 항상 휴가를 나갔다. 그것은 지휘장교와 각성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게이트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휴가라도 주지 않는다면 아마도 병사들뿐 아니라 지휘장교들마저 엄청난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게이트에 한 번 들어가면 며칠은 기본이다. 클리어에 애를 먹으면 한 달도 있어야 한다.
어찌 보면 장기 파병을 간다고 보면 된다. 그런 면에서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나온 병사들과 장교들에게는 보상 차원에서 휴가를 준다.
하지만 진우 공략대 같은 경우는 워낙에 빨리 클리어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한 달에 두 번이나 게이트를 클리어한 적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자주 휴가를 나간다고 봐야 했다.
진우 공략대에 들지 못한 병사들은 그들을 보며 많이 부러워했다.
“와이씨! 진짜 개 부럽네.”
“맞습니다. 도대체 휴가를 얼마나 나가는 겁니까?”
“요 몇 달 사이에 게이트만 무려 6번이나 클리어했어. 그럼 말 다 한 거지.”
“그것도 아십니까?”
“뭐? 부부대장님 말입니다. 알고 보니 S등급이었다는 소식 말입니다.”
“뭐? 에이, 그게 무슨 말도 안 돼!”
“아닙니다. 진짜입니다. 제 동기 중에 부부대장님 공략대에 포함되어 있지 말입니다. 걔가 그랬습니다.”
“정말?”
“네.”
“우와. 그럼 진짜 그 녀석들 부럽잖아.”
이렇듯 진우 공략대에 포함되지 못한 각성 병사들은 부러움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한편, 진우는 휴가를 나와 곧장 강힘길드로 갔다.
“형, 나왔어.”
진우가 불러봤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사무실에 있나? 그보다 다른 길드원들은 뭐하지?”
진우가 중얼거리며 길드장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천천히 문을 연 진우는 깜짝 놀랐다. 다크써클이 턱 밑까지 내려온 박진철이 책상 위에 높이 쌓인 서류철에 묻혀 있었다.
“형?”
“지, 진우니?”
“이게 다 뭐야?”
“으응…….”
박진철은 컵에 담긴 커피를 쭉 들이켰다.
“하아, 그냥 죽겠다.”
“지금 뭐 하고 있었어?”
진우의 물음에 박진철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 이거……. 네가 지난번에 말한 재단 말이야. 지금 그 밑 작업 중이야.”
“아…….”
진우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말해놓고 그 모든 작업은 박진철에게 맡겨 놓은 상태였다. 그래서일까? 괜히 민망한 진우가 서류 한 장을 들고 대충 보는 척했다. 그러자 박진철이 바로 앓는 소리를 한다.
“그런데 이거 진짜 완전 복잡해! 너무 힘들다.”
“그래요?”
“응.”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도와주겠다, 힘들겠다느니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박진철이 살짝 서운한 얼굴이 되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그보다 너희 보배그룹에 이런 것 잘하는 사람 없냐?”
“잘하는 사람요? 잠깐만요.”
진우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동생인 이진상에게 연락했다.
-응, 형 왜?
“내가 지금 재단을 하나 만들려고 하는데 말이야.”
-재단? 형이? 갑자기 왜?
“그건 나중에 말해줄게. 그보다 재단을 만드는 데 필요한 서류나, 법적인 작업을 해줄 사람 있어?”
-으음, 글쎄. 우리도 그와 관련된 일은 전부 외주로 돌리는데.
“그래? 회사 내부에 따로 팀을 만들어 놓지 않는다고?”
-에이, 형. 우리가 말만 그룹이지 그런 팀이 어디 있어. 우리 보배그룹이야 강원도에만 그나마 좀 알아주지 다른 곳에서는 알아주나. 게다가 그 팀을 운영하는 데 자금이 얼마나 드는데. 그리고 예전에 있던 법무팀 지금은 해산시켰지……. 왜? 필요하면 팀을 만들어주고.
“아니다. 그걸 기다릴 시간 없어. 알았다.”
진우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박진철이 바로 물었다.
“왜? 없대?”
“네. 상황이 이렇게 되었네요.”
“아이참……. 이거 변호사 써야 하나?”
“원래 변호사 써야 하지 않아요?”
“돈이 아까우니까 그렇지. 돈이!”
“형, 진짜……. 연봉도 많이 받아가면서 그래요.”
“아껴야 잘살지. 나도 미숙이와 언제까지 월세방에서 살아야 해.”
박진철의 말에 진우가 바로 물었다.
“참! 형은 미숙이 누나와 언제 결혼할 거예요?”
“우리? 내가 좀 미루고 있어.”
“아니, 왜요?”
“미진이는 이제 S등급이고, 나는 A등급이잖아.”
박진철도 이번에 A등급으로 올라섰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박진철의 얘기를 가만히 들었다.
“내가 좀 S등급으로 올라가야 미숙이에게 프러포즈를 하지. 이거 내가 쪽팔려서 미숙이랑 결혼하자고 하겠냐.”
“어후, 형! 그러다가 평생 결혼 못 한다. 무슨 남자가 그런 걸로 자존심을 세워요. 형은 단 한 번도 미숙이 누나보다 센 적이 없었잖아요.”
“알아, 인마! 평생 못 쫓아가는 것도 알고. 그래도 인마, 그래도 체면이 있지.”
“형. 체면 찾다가 평생 혼자살 수도 있어요. 헛소리 말고 얼른 결혼이나 해요. 형 결혼하면 내가 축의금 든든하게 줄게요. 형이 상상할 수 없는…….”
그 말에 박진철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정말? 진짜야?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네.”
“그럼 말이야. 축의금 좀 미리 당겨주면 안 되겠냐?”
“네에?”
“아니, 우리 아파트 살 돈에 좀 보태고 싶어서 그러지.”
박진철의 목소리가 거의 기어들어 가며 말했다.
“아파트요? 무슨 아파트요?”
진우가 의문을 가지며 물었다. 그러자 박진철의 눈빛이 반짝이며 책상 서랍에서 캘린더를 내밀었다.
“이게 말이야. 대광그룹에서 이번에 강원도에 새로운 대광 시그니처를 올린다고 해.”
“대광 시그니처요? 그거 엄청 비싼 아파트 아니에요? 그게 강원도에 올라간다고요?”
“그러게나 말이다. 그거 원래 서울과 광역시에만 있었는데 이번에 새로 올린다고 해.”
대광그룹에서는 대광건설을 통해 크게 돈을 벌었다. 그중에서 대광 시그니처가 정말 유명하다. 전 층에 몬스터 감지장치가 있고, 몬스터 뼈로 뼈대를 만들어 어마어마할 강도로 지어졌다.
최고의 장점은 주변에 게이트가 드러날 경우 아파트 전체를 다른 곳으로 이주시켜 준다. 한마디로 새로운 아파트를 지어서 무료로 입주시켜 준다는 내용이다.
다른 곳 같은 경우는 만약 게이트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자연재해와 같은 범주에 들어가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국가에서 보상을 받고 알아서 해라. 이런 식이다. 대광그룹은 이런 A/S까지 해준다.
그러다 보니 부자들이나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엄청 인기가 높다. 찾는 사람이 많다 보니 분양가가 어마어마했다. 건축설계 역시 달라져서 1년 안에 아파트를 다 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같은 경우 평당 분양가가 5억 이상이라는 소리가 있다.
“형, 강원도는 평당 얼마라고 해?”
“땅값이 싸서 30평대가 아마 100억 정도 할걸.”
“100억? 와……. 몇 년을 모아야 하는 거야?”
“그래도 우리는 플레이어니까 낫지. 다른 사람 같으면 평생 모아도 그 집 못 들어가!”
“으음……. 그보다 형. 미숙이 누나 이번에 S등급 올라갔으니까. 연봉 새롭게 책정해야 하지 않아?”
“그것까지 계산한 거야?”
“응?”
“그래요?”
“그래. 야, 우리도 세금 떼고 뭐 떼고 하면 남는 것도 없어. 그리고 미진이가 마법수련실이 필요하다고 해서 큰 평수도 알아보고 있고.”
“그래서 뭘 알아보고 있는데요?”
“50평짜리……. 한 200억 든다.”
“와이씨…….”
“심지어 펜트하우스다.”
“형 너무 부리는 거 아니에요?”
“살 때 좋은 곳에 살아야지. 그리고 솔직히 길드를 서울로 옮길까 생각도 했지. 그런데 거기 땅값은…….”
박진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우도 공감을 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러다가 진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