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생각해 봐, 왜 지금에서야―
디요네츠는 늦은 밤까지 집무실에 있었다. 이제 정정하다고 할 수 없는 나이와 체력이었지만 그는 스스로는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지 않았다. 약간 피로해진 얼굴로 그는 서류에 서명을 하고 국새를 찍었다.
똑똑―
문을 두들기고 들어온 것은 그의 비서관이었다.
“폐하, 밤이 늦었사옵니다. 이제 잠자리에 드심이 어떠실는지요.”
“몇 건만 더 처리하면 된다네. 걱정 말게.”
디요네츠는 얼마 남지 않은 서류들 중 하나를 펼쳤다. 흔들리는 촛불 밑으로 보이는 글씨들을 읽어 내려가던 도중 그가 얕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호오…….”
“폐하? 무슨 일이시옵니까?”
“이황자의 호위 부대가 제법 잘해 주고 있나 보군.”
“그렇습니다. 얼마 전 로미트랩 반란군 동맹을 호위 부대 인원만으로 무너뜨렸다고 합니다.”
“이런 보고서 한 장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공로로군. 텔리오트가 좋아하겠어. 백두 부대는 복귀했나?”
“어제 복귀하여, 오늘 곧바로 훈련에 들어갔습니다.”
“어제까지 임무로 힘들었을 텐데, 대장이 열성적이군…….”
“누가 뭐래도 이황자 저하께서 뽑으신 인재가 아니겠습니까.”
디요네츠가 잠깐 펜을 놓고 비서관을 쳐다보았다.
“자네는 이황자를 맘에 두고 있나 보군.”
“솔직히…… 이황자 저하께서 이 정도로 빨리 인지도를 확보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지금 현재 황성은 황위 계승전이 한창이다. 일황자파와 이황자파가 보이지 않는 대결을 계속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황성의 여론도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황자파에 속한 자들도 대부분 동의하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황자파의 빠른 성장이었다.
백두 부대가 첫 임무를 떠난 지 한 달이 되었다. 그 사이 텔리오트는 백두 부대를 움직여 동부 반란군 중에서도 골머릴 썩게 했던 로미트랩 반란군 동맹 색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에 열 곳에 달하는 반란군 본부를 괴멸시켰다.
그 말도 안 되는 임무 수행율의 선봉에는 당연히 소문의 여검사가 있었다.
백두 부대의 대장으로, 백두 부대의 적은 인원만으로 배를 넘는 인원을 상대하여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발생시키지 않은 지휘자. 그 스스로도 엄청난 실력의 검술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이름도 밝혀지지 않은 그녀를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풍뢰(風雷)의 검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황자파의 빠른 성장의 뒤에는 백두 부대가 있었다. 반란군을 처단했다는 것은 텔리오트에게 배당된 동부를 더욱 수월히 통치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황위 계승전은 황자마자 각각 배당된 지역을 얼마나 잘 통치하느냐를 겨루는 경쟁이다. 그런 의미에서, 출발은 늦었으나 텔리오트에게 보내는 신뢰는 대단했다.
“지금 인지도는 어느 정도인가?”
“반반…… 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아직은 이황자파가 조금 뒤처집니다. 하지만 아주 약간의 계기만 있으면 금방 역전도 가능할 정도로 상승세를 타고 있사옵니다.”
“흠…….”
디요네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비서관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을 같이 해 온 비서관이었기에 누구보다 정황을 보는 눈이 자신과 비슷했다.
“계기라…….”
디요네츠는 비서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텔리오트가 뛰어오를 수 있는 계기, 그것은 멀지 않은 미래에 곧 찾아올 것이라고.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
복귀한 이튿날, 미연은 부대원들은 전부 훈련장에 모았다.
일렬횡대로 모인 대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그녀가 단상으로 쓰고 있는 바위 위로 폴짝 뛰어 올라갔다.
“야, 이 바보들아!”
그리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너희들! 이번에 작전에서 대체 왜 그랬어? 호흡이 하나도 안 맞잖아! 내가 분명히 각 방향 잘 지키라고 했어, 안 했어! 적은 인원으로 다수를 상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줬잖아!”
대원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대꾸를 하지 못했다. 뒤편에서 지켜보고 있던 미소라도 슬쩍 한숨을 내쉬는 듯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이 바보 자식들!”
미연은 화가 나 있었다.
그녀는 지금 무리해서라도 백두 부대의 인원만으로 모든 임무를 완수하려고 하고 있었다.
이번에 로미트랩 반란군 동맹의 마지막 본거지를 쳐들어가면서도. 또 그들이 올 것을 예상하고 수많은 인원으로 지키고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까지 백두 부대의 인원만 고집했다.
결과적으로 일단 임무는 완수했다. 동맹은 완전히 깨졌고 각 본거지들은 모두 괴멸되었다.
하지만 미연은 불만스러웠다. 사상자는 없었지만 이번엔 꽤 큰 부상을 입은 녀석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 대원은 앞으로 한 달은 요양을 취해야 복귀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점에 미연은 화가 나 있었다.
“왜 다치고 난리야! 다치지 않도록 그렇게 주의를 하고 훈련을 했는데!”
모두 크고 작게 부상은 입고 있었다. 깨끗한 것은 미연뿐이었다. 워낙 숫자가 많았기에 미소라조차 상처 하나 없이 임무를 끝낼 수는 없었다.
경상으로 붕대를 감거나 치료를 받은 흔적이 역력한 대원들을 내려다보며 미연은 답답하다는 듯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 앞에 이시브가 달려 나왔다.
“대장님, 그만 화를 푸십시오. 대원들도 대장님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했습니다. 그건 아시잖습니까?”
가면 안에서 미연은 이시브의 얼굴을 흘겼다. 이시브 역시 이번 임무에서 턱 쪽이 깊게 베어 목 부분까지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화를 내는 것도 참 미안했다.
“으이그…… 알고 있어. 알아, 알아.”
미연은 바위 위에서 내려왔다. 대원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천천히 그들의 앞을 걷기 시작했다.
“그래, 이시브 말이 맞아. 다친 것은 좀 불만이지만 모두들 잘해 줬어. 점점 더 실력이 올라가는 것 같아서 나는 매우 기뻐. 조금만 더 훈련하고 실력을 쌓으면, 분명 카알트라즈하고 붙어도 이길 수 있을 거야.”
동부 반란군 최대의 요충 지역 카알트라즈. 동해상에 떠 있는 거대한 섬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의 말에 실소를 터뜨린 건 시엘이었다.
“어어, 시엘. 왜 웃어?”
“아무리 그래도…… 카알트라즈는 너무 꿈이 큰 건 아닙니까? 우리는 고작 스무 명인데, 추정 인원이 천에 가까운 인원과 어떻게 싸웁니까.”
“어머나, 못할 거 뭐 있어? 내가 좋아하는 어떤 만화의 주인공은 만 명의 적 사이에 홀로 뛰어들어서 헤집고 다녔는걸.”
……만화가 뭐야? 대원들 사이로 그런 수군거림을 지나다녔다. 미연은 잠시 뒤 실언했다는 것을 깨닫고 박수를 쳐 관심을 되돌렸다.
“자자, 아무튼 난 너희들 실력이 늘어서 기쁘다는 거야. 하지만 너희들도 알다시피 아직 한참 멀었다. 그러니까 오늘도 훈련이라는 거야. 알겠어?”
“아아, 대장님. 좀 쉬고 합시다!”
“시끄러! 훈련 시작!”
임무를 해 나가면서 대원들은 미연이 여타 다른 대장들처럼 딱딱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같이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해 온 사이다. 그동안 매우 친밀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놓고 구시렁거리는 대원들의 엉덩이를 걷어차면서 미연은 훈련을 시작했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조를 나누려고 할 때 미연이 제안했다.
“저기, 시엘과 레디오를 나한테 주면 안 될까? 당분간 둘이서 남은 녀석들을 좀 가르쳐.”
“시엘 중위와 레디오 대위만…… 가르치겠다는 것입니까?”
“응. 걔네들 싹이 보이니까. 당학류 해검도를 가르쳐 보고 싶어.”
미소라와 이시브도 미연이 배웠다는 검술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미소라는 조금 우려를 나타냈다.
“그들은 이미 제국 검술에 익숙해져 있다. 지금에 와서 다른 검술을 가르치는 건 찬성하기 어렵다.”
“괜찮아, 괜찮아. 제국 검술에 익숙하다는 건 기본 바탕은 있다는 거니까. 얘네들, 흡수가 빠르니까 금방 배울 거야.”
“과연…… 그럼 나도 제안할 게 있다. 나의 단검술에 어울리는 능력을 가진 녀석이 있다. 그 녀석에게 따로 단검술을 가르쳐도 되겠나.”
“아! 알겠다. 미티스인가 하는 그 녀석이지? 성이 같아서 친숙해?”
“……이 여자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대장과 부대장의 위치에 올랐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여전했다. 이시브는 웃음을 지으며 두 사람에게 동의했다.
“재능이 있다면 도전해 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본인들의 의향도 물어본 다음 따로 훈련해 주십시오. 나머지는 부대장과 제가 맡겠습니다.”
“응, 고마워! 미소라, 너도 나 끝나면 미티스 붙잡고 훈련해도 되니까 좀만 참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연이 훈련 전 준비 운동을 하고 있던 시엘과 레디오에게 달려갔다.
“시엘, 레디오! 날 따라와!”
의향은 묻지도 않는다. 어떤 말도 하지 않고서 미연은 두 사람을 끌고 훈련장 한편으로 이동했다.
두 사람을 세워 두고 미연은 그 앞에 팔짱을 낀 채 떡하니 섰다.
“시엘, 나를 이기고 싶지?”
“물론입니다.”
“레디오, 너도 나 이기고 싶지?”
“대장님을 이기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대장님만큼 강해지고 싶습니다.”
“음음! 착해, 착해. 그럼 두 사람에게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하겠어.”
웃음기가 묻어나는 어조로 미연은 물었다.
“내 검술을 배워 보지 않겠어?”
“……대장님의 검술을 말입니까?”
“응.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라고. 너희들은 실력이 있어. 당학류 해검도를 배운다면 훨씬 실력이 오를 거야.”
제국 검술과 당학류 해검도는 원리부터가 다르다. 근본적인 차이를 들자면 제국 검술을 말 그대로 검을 다루는 기술을 연마하지만 당학류 해검도는 검으로 신체를 다루는 기술에 가깝다.
거기다 무도로서의 정신적인 의미도 더해지면 제국 검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깊이를 나타내게 된다.
이것을 미연은 두 사람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다. 단순히 검을 다루는 것이 아닌 검으로서 도를 깨닫는 경지를 일러 주고 싶은 것이었다.
둘의 결정은 빨랐다.
“가르쳐 주십시오.”
시엘은 미연을 이기길 원한다. 레디오는 순순히 강해지길 원한다. 목표로 하는 것은 동일한 두 사람에게 미연의 제의를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좋아! 그럼 기초부터 하나하나 그 몸에 때려 박아 줄게!”
살벌한 소리를 하며 미연의 개인 훈련이 시작됐다.
당학류 해검도는 한국에서 고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무도였다. 그 역사만큼 그 이치를 깨닫기에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지금 당장 이들에게 도를 깨우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미연은 도장에서 사범을 한 경험도 있기에 이 두 사람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연이 속한 곳은 당학류 해검도 분파로, 본류와는 약간 다른 형식의 검도였다. 본류가 남성적이라면 분파는 여성적으로 기술에 좀 더 유연함이 깃든 것이 특징이었다.
미연은 무도(武道)에서 무(武)만을 두 사람에게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당장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이었다.
호흡법에서부터 시작한 훈련은 보법으로 나아갔다. 오전 시간이 끝날 즈음 되자 시엘과 레디오는 흙투성이로 변해 있었다.
“자, 여기까지! 일단 휴식!”
미연이 두 사람에게 신호를 보내자 즉각 그들의 자세가 무너졌다. 양다리를 벌린 기마 자세에서 검을 든 채 변형되는 보법들을 익히는 도중이었기에, 무게중심이 그대로 앞으로 쏠린 것이다.
바닥에 쓰러진 그들이 힘겹게 일어나려 하자 미연이 친절하게 일렀다.
“그냥 쉬고 있어. 휴식 시간에는 확실히 휴식해야지.”
잠시 고개를 돌리자 다른 대원들도 딱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해를 올려다보며 시간을 가늠한 미연은 허기가 짐을 느꼈다.
“마침 점심시간인데, 모두 밥 먹으러 가자!”
훈련장은 이황자궁의 바로 옆에 있다. 시종들이 식사를 준비해 두기 때문에 백두 부대는 모두 이황자궁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오늘도 당연히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여 미연은 쓰러진 시엘과 레디오를 일으켜서 궁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훈련 끝났어?”
대원들이 모두 모였을 때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라, 테리? 웬일이야?”
“화, 황자 저하!”
이시브가 소리쳤다. 그 순간 미연과 미소라를 제외한 나머지가 무릎을 꿇고 부복했다. 미연은 무슨 일이냐는 듯 화들짝 놀랬다.
“아니, 뭐야? 얘들 왜 이래?”
대원들 측에서는 부복하지 않는 미연과 미소라가 이상했다. 오전 훈련이 끝날 시간에 맞춰서 럭커를 대동하고 나타난 텔리오트가 느긋하게 웃었다.
“너희 둘이 이상한 거야. 보통 황자가 나타나면 이런 반응을 보여야 하는 법이라구.”
“아, 그래? 그건 또 몰랐네. 다음부턴 그래 줄까?”
“됐어. 오히려 인사 받는 내가 껄끄러울 것 같으니까.”
손을 내저은 텔리오트가 대원들을 일어나게 했다. 명색이 호위 부대지만 안타깝게도 대원들은 아직 텔리오트를 만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소문으로만 들은 가면의 황자를 처음 보고 존경심에 차오른 표정을 만들었다. 딱 한 명, 미티스만이 불만스러운 듯 고개를 돌린 채였다.
“어때, 훈련은 잘돼 가?”
“그냥 그래. 훈련이야 늘 하는 거니까 잘되고 못되고가 어딨겠어.”
“어제 복귀했는데 오전 정도는 쉬었어도 되지 않아?”
“안 돼. 한번 쉬면 몸이 거기에 익숙해지려고 한단 말이야. 자고로 훈련은 밸런스가 중요한 법이거든.”
“밸런스? 과연.”
납득했다는 듯 텔리오트는 긍정했다. 그리고 아침부터 흙투성이가 된 대원들의 모습을 보고, 적당히 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냅둬. 내 부대 내 맘대로 하겠는데 누가 뭐라 그래.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우러러보기에도 황송한 황자에게 반발을 틱틱 던져 대는 미연의 태도에 대원들이 경악을 하든 말든, 미연은 여전한 말투로 물었다.
“지금부터 점심 식사 시간이지?”
“응. 아, 우리하고 같이 먹으려고 일부러 나온 거야?”
텔리오트는 대답하지 않고 이시브를 돌아보았다.
“중령, 잠깐 대장을 빌려 가도 될까?”
“굳이 제게 허락을 얻지 않으셔도 되지 않습니까, 저하.”
“그냥, 대화의 흐름이라는 거야.”
가면 속에서 미연이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나? 어디 가는데?”
“황제 폐하의 부르셔. 나와 형님, 둘 다 황궁에서 점심을 먹으라는 부름이야.”
“그래? 그럼 갔다 오면 되잖아. 내가 굳이 갈 필요 있어?”
“갈 필요야 많아. 일황자도 올 거야. 호위로서 네가 따라가는 건 아주 당연한 거야.”
“에에― 귀찮아아! 배고프단 말야. 지금 당장 밥 먹고 싶다고오―”
투정부리듯 말을 줄줄 늘어놓는 미연. 미소라가 고개를 젓더니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갔다 와라. 이것도 임무다.”
“윽, 미소라가 날 버렸어…….”
미소라는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똑같은 가면 셋이 모여 있었기에 서로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텔리오트도 미소라도 미연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으으, 알았어. 갔다 오면 되잖아.”
우는 소리로 미연은 동행을 승낙했다.
이황자궁 앞에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텔리오트, 럭커와 함께 마차에 오른 미연은 마차가 출발하자마자 다시 투정을 부렸다.
“배고파― 가면 밥 줘?”
“점심 식사니까…… 하지만 식사 시간 때는 내 뒤에 서있어야 할 거야.”
“에? 밥은?”
“그 후에 먹어야지. 그게 관례야.”
“그런 게 어딨어! 이렇게 배가 고픈데, 밥을 앞에 두고 보고만 있어야 한다고?”
세상을 비관하기 시작한 미연을 가까스로 말린 텔리오트가 미안한 듯 말했다.
“그 대신 먹고 싶은 걸로 전부 대령할 테니까 조금만 참아 줘.”
“쳇. 왜 하필이면 오늘 불러서 난리래, 그 영감은.”
미연에게 걸리면 대륙 최대의 나라, 아키레마 제국의 철혈 황제도 단순한 영감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텔리오트는 경고를 줘야 할까 아주 잠깐 고민했다가 포기했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어. 하지만 얼마 전에 로츠왈드 왕국에서 전령이 도착했다고 해. 아마 그 일에 관련된 용건이 아닐까 싶어.”
“로츠왈드 왕국에서?”
“그래, 그래서 너를 데리고 가는 거야.”
미연에게 로츠왈드 왕국은 큰 의미를 띄는 곳이다. 본인을 스스로 투신의 전사라고 칭하는 그녀인 만큼 텔리오트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그녀와 같이 동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가 정말로 투신의 전사인지는 둘째 치더라도 그녀가 흥미 있어 하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미연은 배고픔도 잊고 흥미를 표했다.
“무슨 전령이래?”
“글쎄…… 독립 전쟁이 끝난 후 지난 30년간 두 나라 간의 교류는 거의 없다시피 해. 시쳇말로 하자면 원수니까 서로를 견제하기에 바빴지. 그런데 먼저 저쪽에서 전령을 보내 온 거야. 대체 어떤 전령인지 상상도 안 돼. 럭커, 어떻게 생각해?”
“저도 마찬가지이옵니다, 저하.”
“럭커도 그렇다면 역시 그런 거겠지…….”
무척 실례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중얼대는 미연에게 텔리오트는 보이지 않는 쓴웃음을 지어 주었다.
마차는 천천히 달려, 이윽고 황궁 앞에 도착했다. 궁 입구에 도달했을 때 미연은 창밖으로 또 하나의 마차를 발견했다. 텔리오트가 말했다.
“형님의 마차로군.”
두 마차에서 두 명의 황자가 내린 것은 거의 동시였다. 텔리오트는 예의바르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일찍 오셨군요, 형님.”
“아니! 이게 누구신가, 우리 병약한 동생 아닌가.”
만나자마자 이죽거리기부터 시작하는 레키엔. 그는 여전했다. 몸 전체에 호기로운 분위기를 두르고 있었다.
텐시언 비서관과 럭커가 마부에게 대기하고 있으라는 지시를 내리는 사이 레키엔이 텔리오트에게 다가왔다.
“요즘 제법 힘 좀 쓰나 보더군, 병약한 동생.”
“형님의 위용도 익히 듣고 있습니다.”
“병이 나았다고 너무 무리했다가는 뒤집어쓴 가면도 무색하게 도로 쓰러지고 말 테니까 적당히 하도록 해,”
“형님도 부디 건강부터 챙기시길.”
둘 사이에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다. 애초에 레키엔은 텔리오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텔리오트도 알게 모르게 레키엔을 확실히 견제하고 있었다. 황위 계승전의 상대라는 자각은 둘 모두에게 있었다.
황궁 앞에서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난 김에 웃는 얼굴의 신경전을 벌였다.
두 비서관이 언제쯤 말려야 좋을지 타이밍을 재고 있을 때, 이 상황과 따로 노는 인물이 한 명 있었다.
“와아, 여기는 정말 쓸데없이 화려하다니까.”
황궁 앞에서 미연은 태평하게 구경을 하고 있었다. 두 명의 황자가 신경전을 하든 수중전을 하든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레키엔은 혀를 차고 미연을 흘겨보더니 텔리오트에게 한마디 했다.
“관리 잘해라. 그렇지 않으면 뼈아픈 일을 당할 테니까, 병약한 동생.”
“충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형님.”
우선은 그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레키엔이 콧방귀를 뀌며 먼저 황궁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따라 들어가던 레키엔의 호위병과 미연의 눈길이 마주쳤지만 그녀는 지나가던 강아지 보는 이상으로도 생각하지 않았다.
“들어가죠.”
텔리오트가 그 뒤를 따라 황궁으로 들어갔다. 시종에게 안내되어 두 황자가 도착한 곳은 화려한 식탁이 놓인 만찬실이었다. 화려하고 기다란 식탁을 보며 미연은 100m 달리기를 해도 되겠다고 중얼거리다 텔리오트에게 지적당했다.
디요네츠는 이미 자리해 있었다. 두 황자는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를 향해 인사를 보내고 각각의 자리에 앉았다. 마주 앉아야 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텔리오트의 뒤에 선 미연도 레키엔의 얼굴을 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밥맛은 떨어지겠네.”
작게 중얼대다 이번에도 텔리오트에게 혼이 났다.
조용하게 점심 식사가 시작됐다. 푸짐하게 올라온 점심의 향기는 미연의 위장을 자극했지만 미리 들은 말도 있고 해서 미연은 허기를 눌러 참았다.
이 위기를 넘기면 원하는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것만을 목표로 그녀는 눈앞의 음식들을 책이나 돌덩이 등으로 바꿨다.
“레키엔, 지금까지처럼 잘하고 있다고 들었느니라. 서부엔 판샤란 산맥과 함께 어려운 문제들이 많을 텐데도 잘해 주고 있다.”
“황송하옵니다, 폐하.”
“텔리오트도 요새 황성 안에서 소문이 자자한 것을 알고 있느니라. 몸은 괜찮으냐?”
“폐하께서 걱정해 주셔서,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사옵니다.”
적당한 근황이 오갔다. 디요네츠도 이미 모든 보고를 받아 모를 리 없기에, 이것은 본론을 위한 서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모두가 알고 있었다.
식사 중반. 잠깐 식기를 내려놓은 디요네츠가 비서관을 불렀다.
대기하고 있던 그가 두루마리를 디요네츠의 앞에 두고 물러났다. 두 황자의 시선이 그것에 쏠렸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로츠왈드 왕구에서 온 전서 아니옵니까?”
“그래, 이미 들어서 알고 있을 게다. 이것은 로츠왈드 국왕이 판샤란 산맥 주변 국가에 보낸 전서니라.”
“판샤란 산맥 주변 국가 전부에 말입니까?”
텔리오트는 즉각 그 범주에 해당하는 국가를 떠올렸다. 아키레마 제국, 나파즈 공국, 마니크 왕국. 해당되는 것은 이 세 나라였다.
“어떤 내용이옵니까, 폐하?”
“지금 읽어 주겠다. 기다리거라.”
디요네츠는 전서를 비서관에게 넘겼다. 날카로운 음성으로 비서관은 전서의 내용을 읊었다.
만찬실에 무겁게 퍼지는 전서의 내용. 동요하지 않는 것은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 디요네츠뿐이었다. 레키엔과 텔리오트. 둘은 반응은 다르지만 분명히 동요를 나타냈다.
“……이상, 전서의 내용입니다.”
낭독이 끝이 났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레키엔이었다. 그의 성격답게 그는 부술 듯이 식탁을 내려쳤다.
“폐하! 대체 이게 무슨 헛소리입니까!”
레키엔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는 씹어뱉듯이 외쳤다.
“감히 로츠왈드 반란군의 왕국 따위가 제국에게 평화 회담을 제의하다니! 건방진 놈들!”
전서의 내용을 줄이자면 바로 ‘평화 회담 제의’였다. 로츠왈드 독립 전쟁에서부터 30년.
두 나라 간에 있었던 해묵은 감정을 씻고 판샤란 산맥을 중심으로 새로운 평화 시대를 이야기하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잠자코 있던 텔리오트가 말했다.
“폐하. 제가 직접 전서를 읽어 봐도 되겠사옵니까.”
디요네츠가 고개를 끄덕이자 비서관이 그에게 전서를 넘겼다. 두루마리를 다시 펴서 텔리오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글을 읽어 내렸다.
어느 전서가 그렇듯 대륙 공용어가 깔끔한 필체로 쓰여 있었다. 그 필체가 뜻하는 바는 조금 전 비서관이 읽은 내용과 동일했다.
왕국에서부터 온 평화 회담. 두세 번 읽어도 바로 그 내용이었다.
“……흐음.”
텔리오트는 전서를 꼼꼼하게 모두 읽었다. 그러고 나서 두루마리를 다시 접으려 할 때, 텔리오트는 뒤쪽에서 미연이 전서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깐 눈을 돌리자 그녀는 이내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전서를 다시 넘긴 후 텔리오트는 심각한 어조로 입을 뗐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옵니까?”
“그 때문에 두 황자를 이리로 부른 것이니라. 두 황자는 이 전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레키엔이 분연히 소리쳤다.
“상대해 줘선 아니 됩니다! 평화 회담이라니! 30년 전에 제국의 땅덩어리를 훔쳐 간 녀석들입니다! 평화 회담 같은 건 어불성설이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거절할 수도 없느니라. 로츠왈드 왕국은 우리 제국만이 아닌 다른 두 나라에도 이 전서를 보냈다. 그들이 평화 회담에 동의하는데 우리가 거절을 할 수는 없지 않느냐.”
판샤란 산맥 너머의 두 나라는 각각의 국력은 아키레마 제국보다 뒤지지만 철저하게 동맹 관계를 맺고 있었다. 제국이 산맥을 쉽게 넘지 못하는 것은 그런 이유가 있었다.
만약 그 두 나라가 평화 회담에 참석한다면 제국도 참석을 거절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 쪽에서 먼저 거절하면 되지 않겠사옵니까!”
“그건 안 됩니다, 형님.”
반박을 한 것은 텔리오트였다.
“분명히 나파즈 공국과 마니크 왕국은 회담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거절할 의사를 밝히면 훗날 전쟁의 씨앗을 줄 수도 있습니다.”
“흥! 전쟁이야 하면 되는 거다. 뭐가 무섭더냐! 아키레마는 대륙 최고의 국가다. 그런 나라 한둘쯤 덤빈다고 질 것 같으냐!”
“형님, 생각해 주십시오. 30년 전, 제국의 모두가 그렇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독립 전쟁이 맨 처음 터졌을 때 아무도 로츠왈드의 승리를 점치지 않았다. 한 달도 되지 않아 반란군은 정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전쟁은 1년 동안 지속되었고, 급기야 제국의 남부를 빼앗긴 채 로츠왈드가 왕국으로 독립했다.
레키엔도 더 이상 말이 떠오르지 않는 듯했다. 디요네츠는 이황자로 눈을 돌렸다.
“그래서 이황자의 의견은 무엇이냐.”
“물론 회담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담에 참가하여 직접 타국의 대표를 만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봅니다.”
디요네츠는 잠시 눈을 감았다. 황제로서 오랜 시간 제국의 이끌어 왔기에 레키엔의 마음도, 텔리오트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이야말로 황제로서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한참 뒤 눈을 황제가 두 황자에게 말했다.
“지금은 황위 계승전 중이다. 국내에서도 힘이 나누어질 수밖에 없는 시기니라. 그렇기에 타국에게 어떠한 계기도 줘서는 아니 될 것이다. 평화 회담은 받아들이는 것으로 결정하겠노라.”
“폐하! 그것은!”
“레키엔, 난 이미 결정했다. 더 이상 말하기 말라.”
일황자의 입을 막고서 디요네츠는 텔리오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가면 뒤의 눈동자를 찾고 있었다.
“텔리오트. 제국의 대표는 너다.”
“폐하……?”
“난 이미 많이 늙었느니라. 먼 길을 갈 체력이 못된다. 그러니 텔리오트 네가 평화 회담에 참석하여 제국의 뜻을 알리고 오도록 하여라.”
텔리오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가면 밖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놀라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디요네츠는 레키엔이 다시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도록 비서관에게 결정을 통보했다. 비서관은 곧바로 전서를 쓸 준비를 하기 위해 만찬실을 나갔다.
“이황자는 궁으로 돌아가면 곧 사절단의 조직하여 보고하라. 내일 중에 전서를 보낼 테니 오전까지는 보고하도록. 알겠느냐?”
“알겠사옵니다, 폐하.”
예기지 못한 황제의 부름은 의외의 결론이 난 채 끝이 났다.
식사가 끝난 후 다시 잠깐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그 사이 레키엔은 드물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국내, 국제 정세에 관하여 디요네츠와 텔리오트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는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황궁을 나서며 마차를 기다리고 있을 대가 되어서, 레키엔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이걸로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라. 황위 계승전은 황위가 결정되는 그 순간까지 계속된다. 알겠냐, 건방진 병약한 동생.”
수식어가 하나 늘었군요. 그렇게 받아쳐 주는 대신 텔리오트는 겸손하게 목례했다.
“충고 감사합니다.”
올 때와는 반대로 이번엔 텔리오트의 마차가 먼저 황궁 앞을 떠났다. 시야에서 마차가 사라질 때까지 레키엔은 끝까지 마차를 노려보고 있었다.
황궁이 완전히 뒤로 멀어져 보이지 않게 된 후에야 텔리오트가 후우 하고 진득한 한숨을 토해 냈다.
“저하, 괜찮으시옵니까.”
럭커가 걱정하자 그는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 긴장이 이제야 풀려서 그래. 어깨가 조금 결리는 거 빼곤 괜찮아.”
어깨를 조금씩 움직이는 그의 양해를 구해 럭커가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미안해하면서도 그의 손길에 어깨를 맡긴 텔리오트는 의문을 토해 냈다.
“우리가 평화 회담에 참가해야 하는 이유는 알겠어. 하지만 아무래도 도저히 모르겠단 말야.”
“무엇이 말이옵니까?”
“럭커 시종장. 생각해 봐, 왜 지금에서야 로츠왈드 왕국이 평화 회담을 제의한 걸까?”
텔리오트에게는 그것이 가장 큰 의문이었다. 시기가 너무 애매하다.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지만 ‘30’이라는 숫자 자체는 굉장히 어중간하다.
로츠왈드 왕국이 신흥 강국이라 불리며 성장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기반을 더 잡아야 할 나라이다. 평화 회담은 보통 강국이 제의하는 법인 것이다.
시기도 그렇고 제의한 나라의 사정도 그렇다. 이번 평화 회담은 그 자체가 의문덩어리였다.
“분명히 내 입지에 도움이 되는 일이긴 하지만, 왕국이 회담을 제의한 이유는 도저히 모르겠군.”
누구에게 묻는 것도 아닌 혼잣말에 가까운 중얼거림이었다. 그렇게 텔리오트는 로츠왈드 왕국에 대해서 잠깐 상념에 빠졌다가 문득 미연에 대한 사실을 깨달았다.
“왜 그래? 아까부터 전혀 말이 없네.”
황제와의 식사가 끝난 후 대화를 나누는 틈에 미연을 비롯한 자들이 모두 식사를 했다.
“그때부터 미연 님은 말이 없으십니다.”
“그래? 희한하군. 무슨 일이라도 있어?”
럭커의 증언을 듣자 텔리오트는 본격적으로 그녀를 심려했다. 그녀답지 않은 태도로 묵묵히 창밖만 쳐다보고 있다가 갑자기 얼굴을 이쪽으로 돌렸다.
“평화 회담 사절단. 거기 물론 나도 포함되는 거겠지?”
“당연하지. 호위 부대로서 백두 부대 전원이 가야 해.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는 거지?”
“아무것도 아냐. 그럼 됐어.”
미연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텔리오트가 몇 차례 물음을 던졌지만 그 이후로는 묵묵부답이었다. 역시 다루기 어려운 여자야. 텔리오트는 새삼 또 생각하고 말았다.
창문 밖을 보는 시선을 유지한 채 미연은 머릿속으로 복잡하게 고심하고 있었다. 텔리오트에게는 섣불리 이야기할 수 없다. 잘은 몰라도 그가 ‘그 일’을 알게 되면 분명 귀찮은 사태가 되고 만다.
이 사실을 믿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 말 없이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가면 속에서 눈을 깜빡이다 미연은 깨달았다. 한 명, 그녀의 곁에 단 한 명이 있었다. 이 믿지 못할 일을 들어줄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