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32)

나가는 막

햇살이 비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물론 오랜 습관으로 눈은 저절로 떠졌기에 망막을 따갑게 만드는 햇살에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태진은 커튼을 투과해 비치는 아침 햇살 속에서 눈을 떴다. 잠시 정신을 차리듯 가만히 누워 있다가 문득 왼쪽 어깨의 무게를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작은 머리가 그의 어깨를 베고 잠들어 있었다. 흘러내리는 기다란 흑발이 침대에 이리저리 펼쳐져 있어 태진은 작게 풋 실소를 터뜨렸다. 그 소리를 듣고 미연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하아아음.”

“일어났어?”

“졸려…….”

투정부리듯 어깨에 얼굴을 비비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태진. 한참을 앙탈을 부리던 그녀도 행동을 멈추고 눈을 똑바로 떴다.

“몇 시야?”

“일곱 시. 아직 시간 많이 남았어.”

“그래도 평소보단 늦잠이네. 역시 어젯밤에 무리였나.”

“그러게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셨냐.”

“시진이가 먹였단 말야. 그 녀석은 술이 너무 세.”

“어젯밤에 데리러 갔을 때 둘 다 취해 있더만. 현 씨랑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으으, 몰라, 그런 거. 해장국 해 줘, 해장국.”

그녀의 앙탈에 태진이 피식 웃으며 침대에서 일어섰다. 속옷 위에 적당히 반바지를 걸치고 부엌으로 간 그가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미연은 부스스하게 일어나 세면을 마쳤다.

미연이 씻고 나오자 아침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맛나게 끓여 나온 콩나물국을 보고 미연이 고양이처럼 의자 위로 뛰어올랐다.

“와아― 잘 먹겠습니다!”

즐겁게 아침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녀가 콩나물국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았고 태진은 우쭐거리며 그 말을 들어 줬다. 언제나처럼 즐거운 아침이었다.

“참. 그러고 보니 꿈꿨어.”

미연이 문득 젓가락을 물고 그렇게 말했다.

“무슨 꿈?”

“로츠왈드에서의 꿈. 그 녀석들하고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의 꿈이었어.”

“그래? 신기하네. 나도 꿨는데.”

간밤에 꾼 꿈이 매우 생생했다. 그럴 만도 하다. 원래 경험했던 장면이 그대로 꿈속에서 재생되었으니까. 둘은 오랜만에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즐겁게 담소했다. 이야기하다 콩나물국을 한 번 더 데워야 했을 정도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참…… 신기한 동네였지?”

“응, 맞아. 거기선 태진이도 마법을 썼었지. 난 무아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었고.”

“하지만 해와 달이 있고, 운석조차 있었어.”

태진은 조금 심각하게 말했다. 미연도 지그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작은 의문이었다. 분명히 지구와는 다른 세계였을 텐데도 지구와 똑같은 환경이었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별이 반짝이고 별자리도 있었다. 지구에서 책으로 익혔던 지식이 바운스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태진이가 조사하고 있는 거잖아. 잘 되어 가?”

“그럭저럭. 그렇지 않아도 오늘 시진 씨에게 그에 대한 자료를 받기로 했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몰랐다. 태진은 오전의 약속을 기억해 내고 서둘러 준비했다. 미연도 어차피 도장에 나가야 했기 때문에, 둘은 분주하게 집안을 오고 갔다.

말끔하게 준비한 뒤 현관 앞에서 서로의 옷매무새를 점검한 뒤 미연이 물었다.

“그거 챙겼어? 오늘은 그거 가져가서 시진 씨한테 보여 준다며.”

“물론. 어제 다 챙겨뒀어.”

태진이 가방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꺼내 보여줬다. 겉에는 분명 지구의 언어가 아닌 언어가 적혀 있었다.

“트레빌 성에서 가져나온 건데…… 쓸모가 있을까 모르겠다.”

“솔직히 말야, 태진이 네가 사라진 대륙의 조사를 한다고 해서 처음에는 드디어 미친 건가 하고 생각했다니까?”

“그래도 낭군님한테 그렇게까지 말하기냐.”

“에헤헤헤― 그래도 성과가 있으니까 됐잖아?”

얼버무리듯 웃는 미연을 보고 태진도 별수 없다는 듯 미소 지었다.

같이 집을 나온 그들은 집 앞에서 헤어지기로 했다. 서로 반대편으로 가야 되었기에 둘은 하루를 시작하는 인사를 던졌다.

“오늘도 힘내자, 현신의 전사!”

“너도, 투신의 전사.”

2014년 한국의 서울. 그들의 이야기는 아직 이어진다―

(히어로즈 리턴 완결)

■ 나간 후에

돌아온 영웅들이 벌이는 이야기―

처음 하고 싶었던 소재는 그것이었습니다. 조금씩 살이 붙고 인물들이 만들어지면서 완료된 형태가 바로 이 책입니다.

영웅들이 다시 돌아온 그 기쁨을 현실에서 가장 근접하게 느꼈던 것은 인터넷에서 태권브이의 만화를 봤을 때였습니다.

한때 우리 곁을 떠났던 태권브이가 지구의 위기로 인해 다시 돌아와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묘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런 느낌을 전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5권으로 끝을 맺은 지금 그 느낌이 제대로 전해졌는가에 대해서는 걱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즐겨주신 분들 중 일부라도 같은 감정을 가져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후기마다 늘 하는 말이지만, 마지막까지 이 편집자님께 엄청난 신세를 졌습니다. 잠을 줄여 가며 제 글을 읽고 손봐 주시는 이 편집자님께 가슴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무거운 희망사항이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아직 써 보고 싶은 글도 많고 해 나갈 이야기도 많은 것 같습니다. 또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책방에서 눈에 익은 이름이 보이신다면 집어들어 주세요.

그럼 또, 다음 글로 자주 가는 책방에서 뵐 수 있기를. 자까였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