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유비(劉備) (5/24)

(4)유비(劉備)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감소저(甘小姐)를 보면서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녀의 곱고 얌전한 미간에는 

기대와 희망 같은 것이 가득차 있었다. 그녀는 유비가 한숨만 

내쉴 뿐 말이 없자 살짝 다가앉으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덕(玄德)님, 무슨 일이십니까. 수심이 가득합니다." 

유비는 감소저를 바라보았다. 결심을 이미 단단히 하고 왔다. 

이 이상 지체하면 안된다. 장부(丈夫)란 검을 뽑았으면 그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유비는 속으로 감소저를 향해 

사죄하면서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끌어당겨 잡았다. 그리고 

비탄에 젖은 마음으로 탄식했다. 

"소저, 이 현덕이 어리석어 소저의 가녀린 마음을 상처입힐 

수밖에 없게 되었구려.......뜻한 바는 크나 재주는 미약하고 

마음은 시급하지만 때는 오지를 않소." 

그의 탄식에 감소저까지 눈물을 머금었다. 고개를 숙이고 소매 

끝으로 살짝 눈가를 찍는 감소저를 향해 유비는 조용히 말했다. 

"허나, 이제 그 때가 온 것일지도 모르겠소. 이제야 내가 

세상에 나설 기회를 만난 것 같으니 이 평원을 떠나야 할 

것이오." 

그 말에 감소저는 매우 놀라 가슴이 뛰는 듯, 그 작은 손을 

가슴에 얹고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유비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맺힌 채 동그랗게 떠진 그 눈은, 그리 예쁘지는 않았지만 한 

떨기 꽃이 피우는 향처럼 감미롭게 보여서 유비의 가슴 한 

구석이 시큰해왔다. 유비는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알고는 일부러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려 술잔을 들었다. 곁에서 

떨림을 담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정녕 떠나시옵니까?" 

유비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숙인 자세에서 

조용히 그를 긍정하였을 뿐이었다. 헤어져야했다. 혼란한 

시대에 태어나 혼란한 시대를 바로잡을 뜻을 품었지만 강성한 

세력도, 풍족한 재물도, 어떠한 기반도 없는 유비로서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반동탁 연합. 어쩌면 이것은 유비가 비상하도록 돕는 기반이 

될 지도 몰랐다. 어느 정도의 명성이라도 쌓을 수 있을 거라고, 

그는 믿었다. 그러자면 평원을 떠나야 했다. 곁에서 그녀가 

흐느끼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감소저. 그녀는 전장을 

떠돌며 혼란하게 살아온 유비에게 한때나마 따뜻했던 여인이었다. 

그래서 유비 역시 정을 주었으며, 그녀 역시 보잘 것 없는 

자신에게 정을 주었다. 그러나.......떠나야했다. 유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저, 이만 가야 하오. 오늘은 이별을 고하러 온 길이오." 

그리고는 아픈 가슴을 안고 떠나가는 유비의 소매를, 그녀는 

뒤에서 말없이 붙들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돌아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안 되었다. 

돌아보면 안 된다. 돌아보면 안돼......그렇게 속으로 열심히 

중얼댔다. 그러나 그도 소용없이, 그는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그녀는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맺은 채 유비의 소매를 붙들고 

있었다. 양 뺨에는 고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가 외쳤다. 

"정녕 가시옵니까! 정녕 가시려 하십니까! 그래야만 하십니까?" 

괴로웠다. 아아, 뿌리치기가 이렇게나 힘이 들었다니. 생각 

같아서는 그 뺨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 이상 아우들에게 수심을 끼칠 수는 없다!' 

분명 관우와 장비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단지 유비가 

부호들의 협력을 얻기 위하여 부호들의 잔치에 불려나가고, 

부근에서 가장 부자인 감가장(甘家莊)에 다니고 있는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이상 그들을 속이면 안된다고 유비는 

다시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소. 그러니 이 손 놓으시오." 

감소저는 유비의 그러한 차가운 눈이 더더욱 서러운지 흐느껴 

울면서도 소매를 놓지 않았다. 그녀는 한참을 흐느껴 울다가 

결심한 듯 유비에게 단단한 목소리로 간청했다. 

"그렇다면 현덕님, 부디 이 미천한 것도 데려가 주십시오. 

굳이 떠나셔야 하신다면, 이 미천한 것도 데려가세요. 가서 

비질이라도 하게 해 주세요. 현덕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부디, 그 크신 뜻을 꺾을 수 없으시다면 저도 데려가 

주시옵소서." 

감소저의 눈물겨운 말에 현덕 역시 눈물을 거둘 길이 없었다. 

이 어리석은 여인은 아비의 그 엄청난 부력(富力)에도 불구하고 

보잘 것 없는 나를 택해주었다. 유비로써도 그녀를 떨치고 가는 

것은 힘겹기만 했다. 생각 같아서는 동행하고 싶기도 하였다. 

하지만, 유비가 가는 곳은 다른 곳이 아닌, 피가 튀는 전장. 

그녀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녀에게 조금이나마 자신이 

정이 남아있다면 데려가서는 안된다. 눈물을 억누르고 차게 

대꾸했다. 

"그곳은 전장. 여인이 갈 곳이 아니외다. 게다가 그대는 내게 

방해가 될 뿐이니 눈물 거두고 놓으시오." 

"유비님!" 

그녀가 유비의 소매를 더 단단히 붙들면서 극렬하게 흐느꼈다. 

"놓지 않겠사옵니다! 데려가겠다고 하실 때까지 현덕님의 

소매를 놓지 않겠사옵니다!" 

유비는 눈을 감았다. 장비와 관우를 생각해야 한다. 나만의 

뜻이 아니다. 보잘 것 없는 나를 택하여, 함께 고생하고 있는 

나의 의제들. 유비는 검을 꺼내 뽑았다. 

챙. 

검은 유비의 애타는 마음과는 상반되게 차고 시린 소리만 냈다. 

그러나 감소저는 차갑고 잔인하게 번뜩이는 검날을 보고도 

유비의 소매를 더 굳건히 붙들었다. 유비는 속으로 흐르는 

자신의 눈물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검을 내리쳤다. 그리고 

비틀거리면서 그녀의 방을 나온 유비는 그제야 흐느꼈다. 

미인이지도, 요염하지도 않았으나 감소저는 그에게 따스한 

가슴을 주었던 사람이었다. 유비는 속으로 감소저의 눈물이 

헛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뜻을 이루어야 하리라. 

눈물을 삼킨 유비는 터덜터덜 발걸음을 몇 발자국 옮겼다가 

나란히 시립해 서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였다. 그는 깜짝 놀랐다. 

"자네들이 어인 일인가?" 

관우가 정중히 포권(包拳)*하며 차분한 어조로 답하였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았습니다. 일단 거처로 

가서 조용히 얘기를 나누는 것이 좋겠습니다." 

침착한 관우에 비해 곁에서 장비는 무언가 당장 묻지 못하여 

안달이 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관우 역시 그런 장비의 낌새를 

알아챈 듯 헛기침을 가볍게 하였다. 그러자 장비는 입을 한 척이나 

앞으로 내민 채 태도를 가라앉혔다. 유비는 속으로 옅게 웃었다.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두 의제가 재미있는 관계에 있음은 그도 

익히 알고 있던 터였다. 

엄격하고 침착한 관우와 늘 덜렁대면서 성질이 급한 장비는 

마치 스승과 제자, 아비와 아들처럼 한편은 혼을 내고 한편은 

겁내면서 의식하는 관계이기도 했다. 물론 어떤 때는 고지식하고 

저자거리의 소문에 어두운 관우에게, 소문에는 바싹한 장비가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는 사실도 무시해서는 안되겠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유비는 그제야 두 아우가 시립해 있는 까닭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저자거리의 소문에 밝은 장비라.......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다. 이미 감가(甘家)의 하인들이 수군대고 있음을 

유비도 알고 있었으니까. 여하튼 유비는 긴 한숨을 내쉬며 

관우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고 세 사람은 또다시 침묵 속에서 

밤이슬을 맞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장비는 궁금해서 참기 힘든지, 몇 번이나 유비의 팔을 붙들려 

했으나 그때마다 관우의 헛기침소리가 가볍게 들려왔다. 현청과 

감가장은 그다지 멀지 않았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당도할 수 

있었다. 새까만 밤 속에 현청은 마치 빨려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인구가 15만이라는 수에 불과한 평원의 현청이 커 보았자 

얼마이겠느냐만, 유난히 평소보다 작아보였다. 유비는 속으로 

쓰게 웃었다. 버리고 가야 할 때가 옳기는 한 것이다. 대문을 

조용히 지나자 열심히 보초를 서고있던 보초병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예의바른 관우는 `수고하는군.' 하면서 그에게 답례를 

하였다. 대문을 한참 지나 그들의 숙소 앞에 다가왔는데, 귀가 

가장 밝은 장비가 돌아보면서 중얼거렸다. 

"응? 뭐가 저리 시끄럽지?" 

그제야 유비와 관우에게도 적막한 밤의 고요를 깨고 조금의 

소란스러움이 들려왔다. 보초병이 일으키고 있는 소란 같았다. 

뜻밖의 불청객이라도 다가온 것인지? 관우는 신경쓸 것 없다는 

태도로 방문을 열려고 하였으나 호기심이 인 유비는 몸을 돌렸다. 

그러자 관우도 유비와 장비를 뒤따라 천천히 몸을 돌렸다. 대문 

가까이로 가자 다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예상했던 대로 

보초는 웬 서생 하나와 다투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부탁입니다......" 

"안돼 , 허가장이 없이는 들여보낼 수 없다." 

"미처 허가장이 필요한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니 들어가게 해 

주......" 

"안된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겠는가?!" 

장비가 보초에게 다가가 그를 툭툭 건드리면서 물었다. 

"이봐, 무슨 일인데?" 

보초가 얼굴을 짜증스러움과 난처함을 가득 담아 세 사람에게 

돌아섰다. 

"아, 이 사람이 아까부터 아무런 허가도 없이 장비님을 뵙게 

해 달라고......" 

"뭐? 나를?" 

장비의 작은 고리눈이 놀람과 황당함을 담고 커졌다. 관우가 

한심하다는 눈길로 장비를 향해 칼날 눈빛을 날렸다. 일을 자주 

저지르는 편인 장비에게 질책을 하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공사에 바쁜 유비에게 폐를 끼칠 수 없다며 장비의 뒷수습을 

도맡은 관우로서는 또다시 귀찮은 일이 생긴 것에 화가 났으리라. 

장비는 그런 관우의 얼굴을 보면서 급하게 두 손을 휘휘 내저었다. 

"나 이번에는 아무런 실수도 하지 않았수. 이것 보시......엥?!" 

시선을 돌린 장비도 멍해졌지만 덩달아 그제야 서생에게 시선을 

준 유비와 관우 역시 놀랐다. 머리를 묶어 올려 큰 천으로 

새까만 앞머리만 보이도록 싸맨 서생이었다. 크고 또렷한 눈매에 

회색의 눈동자가 빛나는 그는, 피부도 유달리 희고 깨끗한, 

절색(絶色)이었다. 

남자라기보다 아주 당연하게 여자처럼 보이는 그는 청순한 

느낌과 세련된 기품 같은 것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여하튼 그 

아름다운 서생을 보면서 장비가 더듬거렸다. 

"뉘......뉘시우......?" 

유비도 얼얼한 표정으로 장비를 바라보았다. 

"아는 분인가, 익덕(翼德)?" 

"아, 아니 그것이......엥?" 

장비는 잠시 멈칫하더니 `아!'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서생이 

한숨을 조용히 내쉬었다. 별안간 장비가 호랑이 수염을 

곤두세우면서 경악스러운 목소리로 서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나, 낮에 보았던......그 낭자?!" 

낭자? 유비가 역시나 싶은 심정으로 그녀에게 다시 시선을 

던지는데 관우가 검지를 턱에 대며 고개를 조용히 끄덕거렸다. 

"어쩐지, 너무 체구가 가녀리다 했더니....." 

유비는 이제 의문보다 걱정이 앞섰다. 미색(美色)이라던가 

태도, 기품같은 것을 보면 틀림없이 꽤 높은 양가집의 규수처럼 

보이는데 이 철없는 막내가 이 여인에게 실례라도 한 것이 아닐까? 

곤란하다 싶은 유비가 장비를 향해 약간 질책하는 투로 물었다. 

"웬 낭자냐? 설마 무슨 실례를 했던 것은......" 

장비가 유비의 말을 끊으면서 얼른 부정했다. 

"아, 아니우, 아니라니까 그러오!" 

관우가 한숨을 내쉬면서 서생에게 다가갔다. 관우로서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낭자는 여인의 몸으로 이 늦은 밤에 무슨 

일이시오? 그것도 남장을 다 하고......익덕이 뭔가 죄를 

지었습니까?" 

여자가 고개를 조심스럽게 저었다. 

"아닙니다, 단지.....유비님을 만나뵙기 위해 실례를 

무릅쓰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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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1.포권(包拳): 한 손으로 주먹을 쥐고 다른 한 손바닥으로 그 

주먹을 감싸서 상대에게 내보이는 예법. 중국의 인사법 중 

하나다*작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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