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 엉뚱한 결말 (12/24)

3-4 엉뚱한 결말 

"이럴 수가!" 

왕광의 탄식과 함께 군사들이 사기를 잃고 조용해졌다. 

하내의 명장 방열(方悅)이 단 4합만에 목과 몸뚱이가 분리되어 

말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절대로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방열을 놀리듯 거꾸러뜨린 여포(呂布)는 그 기세를 

몰아 자신의 방천화극을 어지러이 휘둘러대면서 왕광의 진을 

공격해 들어오고, 그 뒤를 3천의 철기가 뒤따르자, 왕광의 

군사는 배겨내지 못하고 짓밟혔다. 

여포는 사람없는 들판을 누비듯 왕광의 군사들을 베며 함부로 

주변을 누볐다. 왕광이 그 광경을 보며 탄식하고 있는데 

때마침 교모와 유유의 군사가 당도하여 왕광을 안전한 곳으로 

이끌고 여포의 군사들을 교란시켰다. 결국 여포가 후퇴하자, 

왕광은 교모와 유유의 두 손을 마주잡고 무한한 신뢰와 감사를 

담아 그들에게 인사하였다. 

간신히 여포를 물러가게는 하였으나 많은 인마가 꺾인 세 

명의 제후들은 30여 리를 물러 진채를 세웠다. 나머지 다섯 

제후가 뒤이어 도착하기는 하였으나 이름높은 여포를 당해낼 

자신은 모두 없는 듯하였다. 무엇보다도,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는 것은 앞선 무장(武將)의 무예(武藝)일 터인데, 

여포에 대항할 장수가 흔하겠는가. 

여포의 날카로운 무예에 입모아 감탄하고, 대책이 없다고 

한숨만 내쉬고 앉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여포는 이 제후들과 

입장이 달라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전령이 날듯이 달려와 

알렸다. 

"여포가 싸움을 돋우고 있습니다." 

굳은 얼굴로 교모가 이야기하였다. 

"모두 한꺼번에 군사를 몰아 대적하는 것 이외에 방도가 

없을 것 같소." 

다른 제후들이라고 별다른 뾰족한 수가 있을 리가 없었다. 

여포가 또다시 싸움을 걸어왔다는 말에 간이 콩알만하게 

작아진 제후들은 수라도 많으면 방도가 생기겠다고 급한 김에 

마음먹고 찬성표를 던진다음, 각자의 군사를 끌고 높은 

언덕에서 여포를 지켜보았다. 

이미 제후들의 군사를 함부로 짓밟고 있는 여포는, 그를 

보다못해 덤벼든, 상당태수 장양(張楊)의 부장(副將)인 

목순(穆順)의 몸뚱이를 기세좋게 창에 꿰고 있는 중이었다. 

창솜씨가 깨끗하고 신속한 나머지, 날카로운 빛이 도는 

여포의 방천화극에는 핏방울 하나 묻히지 않았다. 목순의 

몸뚱이는 이내 말 아래로 팽개쳐졌고 그 광경을 본 제후들은 

더욱 놀라고 당황했다. 

그렇다고 하여 아무런 대책없이 당하고만 있을 제후들은 

아니었다. 공융의 부장 중 무안국(武安國)이란 자가 철퇴를 

휘두르며 달려나갔다. 그의 용맹한 위용을 본 제후들은 

마음을 놓으며 지켜보았으나...... 

"욱!" 

목순에 비해 조금 오래 버틴 차이뿐이었다. 여포의 창에 

왼팔이 잘려나갔다. 무안국은 철퇴를 던져버리고 말머리를 

돌려 재빠르게 달아났다. 공융이 외쳤다. 

"무안국을 구하라!" 

"한꺼번에 여포를 쳐라!" 

제후들은 순서를 정할 겨를도 없이 외치며 휘하의 

군사들을 이끌고 한꺼번에 여포를 공격해 들어갔다. 여포의 

군사는 용맹하기는 하였으나 머릿수가 많지 않았다. 여포가 

제아무리 뛰어난 무예를 지니면 무엇하겠는가. 무안국을 

내버려두고 군사를 물리기 시작했다. 겨우 여포가 물러가자 

제후들은 회의를 소집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소식을 들은 

조조도 상태가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지원 온 참이었다. 

"별 수 없소이다. 여포의 무용을 상대할 사람만 있다면 

어느정도 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오. 우리 18제후들이 

모두 모여 함께 토의를 합시다. 여포만 막을 수 있다면 

동탁 또한 그리 두렵지 않소." 

결국 끙끙대던 끝에 조조가 내놓은 결론이었다. 다른 

제후들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보고 지켜보고 있던 

화정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관우와 장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여포라는 인물이 역시 대단하기는 한지, 관우와 

장비도 섣불리 나서지는 않고있는 눈치였다. 제후 

하나가 - 18명의 제후 중 다른, 이름없이 죽어갈 

제후까지 모두 기억할 정도로 여유가 있지는 

않았다 - 나섰다. 

"그럴 수는 없소. 사수관은 어찌되라는 소리시오? 

그쪽의 적이 우리를 뒤쫓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결국 등과 

배가 모두 막히는 꼴이 되지않소?" 

제후들이 또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조용히 관람하고 

있던 화정은 `머리라고는 조금도 없는 제후들 같으니, 별 

생각도 없으면서 찬성, 아니면 반대라고만 말할 줄 아는 

작자들이란 말이야.'라고 속으로 비웃으면서 혼란스러운 

제후들을 눈으로 흘겨보았다. 그런 화정의 마음을 읽은 

것인지 우연히 생각이 일치했는지 모르지만 관우조차도 

중얼거렸다. 

"한심하기 짝이 없군요." 

그 말에 유비는 직접 대답하지는 않았으나 고개를 살짝 

움직임으로써 조용한 동조를 나타냈다. 장비는 곁에서 

콧바람만 세게 내뿜으면서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저마다 

이래저래 떠들어대고 있는데 전령이 날듯이 달려들어와 여포가 

또다시 싸움을 걸고있다는 전갈을 던졌다. 제후들이 쓴 

얼굴로 조조를 보았으나, 조조라고 별다른 도리가 있을 리 

없었다. 

"한꺼번에 머릿수로 대항하는 수밖에 없으외다." 

제후들이 투덜거리면서 하나 둘 순서대로 빠져나갔다. 

공손찬이 긴 한숨과 함께 유비들을 바라보았다. 

"도와 주시겠는가, 아우?" 

유비는 정중히 포권해보였다. 

"백규 형님의 일인데 어찌 이 현덕이 모른 척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공손찬이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전령이 또다시 들어와 공손찬의 앞에 엎드렸다. 

"공손찬님, 여포가 공손찬님의 진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공손찬은 안색이 하얗게 바꾸며 달려나갔다. 유비는 

관우와 장비를 보았고 그들은 오히려 신이 난다는 기색을 

하면서 벌떡 일어났다. 화정은 유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승리하고 오시길 예서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유비는 그녀의 말에 온화한 미소를 얼굴에 띄웠다. 

"예 있으면 절대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니 안심하고 있게." 

화정은 고개를 숙여보였고 유비는 미소를 그대로 올린 

채 등을 돌려 막사의 장막을 열었다. 그때 화정이 등뒤에서 

조용한 음성을 냈다. 

"여포를 만나시면, 관우님과 장비님......주공께서 

협공하신다면 물러나게 할 수 있으십니다." 

그 말에 유비는 흠짓했다. 자(字) 대신 이름을 부르기를 

즐기는 저 소녀 - 여인이라 하기에는 아직 어린 느낌도 

없잖아 있었다 - 는 때때로 알지 못할 말을 했다. 유비는 

하지만 경솔하지 않은 사람인지라, 그 말을 새겨두기로 

하고는 사의를 표했다. 

"고마우시군, 그래." 

그런 유비의 뒷모습에 화정은 표정을 풀면서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자신이 이런 말을 한다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지만 그저, 이야기해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친절하고 온화한, 그리고 화정이 다칠 것을 염려하며 

신경써주는 온화한 유비의 성품은, 정말로 아버지 

같으면서도 화정 자신의 아버지와는 대조적인 곳이 있었다. 

시간이 흐를 수록, 화정은 유비가 참으로 좋은 사람이라 

느꼈으며, 책에서 읽은 것보다 훨씬 부드러운 느낌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따스하고 좋은 느낌을 줄 수 있었으니 수하들이 

목숨걸고 따랐을 것이다. 심지어는 이후에 목숨을 걸고 

따르는 백성들마저도. 자신이 기억하기로, 삼국지에서 

군주에 대한 수하의 배반이 비교적 적은 측이 아마 유비 

세력일 것이다. 

현대로 다시 가겠다는 뚜렷한 목적을 지니고 있는 화정도 

이후에 유비를 등지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면, 

무의식적으로 뜨끔해졌다. 유비란 사람, 정말 대단하다. 

돈이나 권력이야 있으면서도 없어질 수도 있고, 없으면서도 

생길 수도 있다지만, 저렇게 사람을 진심으로 

우러러보도록 하는 기질은 아무나 지닐 수 없다. 

때때로 유비에게서 호감 이상의, 아주 친밀하면서 이전부터 

알고 있던 것 같은 느낌마저 받을 때가 있었다. 중얼거려보았다. 

"정말......좋으신 분......." 

******* 

자신의 창인 삭( )을 휘두르며 여포와 맞섰으나, 공손찬 

역시 당할 수 없었다. 조금만 있다면 목이 날아갈 노릇임을 

감지한 공손찬은 몇 합 제대로 붙기도 전에 말을 달렸으나...... 

"게 섰거라!" 

여포는 무지막지했다. 공손찬이 달아나는 것을 보며 

적토마(赤 馬)를 몰아 뒤쫓았다. 공손찬의 백마는 변방의 

오랑캐가 공손찬을 `백마장사(白馬壯士)'라 부르며 두려워하게 

만들 정도로 명마이기는 했으나,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적토마에는 미치지 못했다. 여포는 한창만 휘두르면 닿을 

정도로 공손찬을 따라붙었다. 

"네놈의 목숨은 끝이다!" 

여포는 기세등등하게 외치며 방천화극을 높게 들어올렸다. 

햇살을 받아 소름끼치게 빛나는 화극의 빛에 공손찬은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림을 느꼈다. 보는 이들은 당황하면서도 여포가 

두려워 감히 다가오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성(姓) 셋 가진 종놈아, 연인(燕人) 장비, 여기있다!" 

조상들의 고향인 연(燕)을 내세우는 장비의 버릇이었다. 

어쨌거나 여포로서는 최대의 모욕인 성 셋이라는 적나라한 

욕설에 - 여포는 본래 정원(丁原)*이란 자의 양자였다. 

동탁이 내린 패물과 적토마에 회유되어 양부이던 정원의 

목을 직접 베고는 동탁의 양자가 되어있다 - 분노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민 여포는 공손찬을 내버려두고 말머리를 돌렸다. 

가늘게 찢어진 고리눈에 빳빳하게 뻗친 수염을 세우고 

장팔사모를 옆구리에 낀 채 자신만만하게 말 위에 올라타고 

있는, 덩치좋은 장비에게, 여포는 적토마를 박차 응전하였다. 

그러나 세상에 이름난 여포가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닌 만큼, 

장비 또한 무예에는 일가견이 있는지라, 두 사람은 50여합이 

되도록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그 광경을 보던 관우가 말을 

달려 82근의 청룡도를 휘두르며 협공을 시작했다. 

사실 무예가 부족하다기보다, 여포가 타고있는 말이 워낙 

명마인지라 보통말을 탄 장비가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함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말이란, 곧 타고있는 장수의 움직임에 

직결되는 요소인데 물러섬과 나아감이 재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이는 여포의 적토마에 비해, 장비의 말은 움직임이 

둔하였다. 

세 장수의 말은 정(丁) - 화정이 보았다면 분명 T자 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 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장비의 

장팔사모가 휘둘러져 화극으로 걷어내면, 어느새 청룡도가 

날아와 여포의 빈틈을 공격하나, 워낙에 출중한 무예의 

소유자인 여포의 화극은 청룡도를 쳐내버렸고, 그 사이에 

또다시 사모가 여포를 노렸다. 

아무리 명마의 공이 크다고는 하나, 역시 여포는 세상에 

이름을 헛되게 날리는 자는 아니었다. 관우와 장비라는 

당대의 호걸을 한꺼번에 상대하면서도 전혀 밀림이 없었다. 

실로 귀신같은 무예솜씨였다. 그 광경을 보면서 유비가 

나직하게 한마디를 내뱉았다. 

"실로 대단하다! 익덕과 운장을 한꺼번에 맞이하여도 

밀리지 않는다니, 이를 어쩐단 말인가!" 

한탄하던 유비의 머릿속을 울리는 음성이 있었다. 

<여포를 만나시면, 관우님과 장비님......주공께서 

협공하신다면 물러나게 할 수 있습니다.> 

또렷하게 귓가를 흔들고 지나간다. 유비는 허리에 

차고있던 쌍고검을 꽉 쥐었다. 

"화정이 이야기 한 것이 이런 것이었단 말인가! 그렇군! 

비록 실력이 미치지 못한다고는 하나, 이 현덕 역시 

마땅히 아우님들을 도와야 할 것이다!" 

유비는 그제야 화정이 무슨 뜻으로 이야기 한 것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는 예견하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유비는 속으로 화정에게 새삼스럽게 감탄하면서도 

갈기 누런 말을 박차 역대의 장군전(將軍戰)* 사이로 

뛰어들었다. 사수관의 싸움에서 화웅을 목벤 공을 

세우고도 업신여김을 당한터라, 되도록 앞장서고 싶지도 

않았으나, 결국 또다시 앞장서 어려운 싸움을 떠맡고 말았던 

것이었다. 

자연, 여포에게 이목을 집중하고 섰던 제후들의 관심은 

3형제에게 쏠리게 되었다. 용장 여포를 어찌 막을 것인지 

골똘해 있던 제후들은, 그들의 최대 골칫거리인 여포 저지를 

삼형제들이 해결해줌에 따라 한편으로는 안도하고 있음이요, 

한편으로는 생각보다 출중한 삼형제의 공헌에 놀라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여하튼 관우의 청룡도가 여포의 머리 위를 노리고 내리치면 

곧장 장팔사모가 여포의 흉갑을 찔러왔으며, 허리로는 유비의 

쌍고검이 바람소리를 내며 공간을 베고 지나감이 반복되었다. 

군사들조차 그 화려한 싸움에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였다. 

"흥!" 

제아무리 여포가 신기에 가까운 무예를 자랑한다지만 세 

명을, 그것도 실력만으로는 거의 맞수에 가까운 호걸 둘과 

보통 이상의 수준은 넘는 무장 하나를 한꺼번에 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오래 지탱되지는 못했다. 

날카롭고 정신없는 3인의 협공에도 전혀 쉴새없이 완벽하게 

방어해내던 화극이 속도를 늦추더니 청룡도를 사납게 밀쳐냄을 

마지막으로 장팔사모가 찔러 들어오기도 채 전에 가장 미숙한 

유비의 얼굴로 무섭게 날아갔다. 

그 바람에 당황한 장비가 유비를 방어해주기 위해 사모를 

유비의 얼굴 앞으로 날렸으며, 유비가 재빨리 몸을 피함과 

동시에 관우가 청룡도를 다시 내리치는데, 바람과 같이 재빠른 

적토마는 빈틈이 생긴 유비의 방향으로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삼형제는 여포의 약삭빠른 도망에 분노하며 급히 그의 뒤를 

쫓았다. 여포가 쫓기는 예상치 못한 광경을, 멍해진 얼굴로 

보고 있던 제후들 사이에서 가장먼저 소리를 지른 것은 

공융이었다. 

"여포가 쫓기고 있다! 공격하라!" 

뒤이어 엄청난 함성과 함께 이번에는 반대로 제후들의 

군사들이 신나게 돌격을 감행하였다. 대장이 도망가는 

광경을 보고 힘이 빠져있는데다, 상대편 군사들이 모두 사기가 

바짝 올라 덤벼드니 그렇잖아도 머릿수가 적은 여포의 

군사들은 모두 호로관 안으로 앞장서 도망가기에 바쁠 

따름이었다. 적토마 덕에 쏜살같이 내뺀 여포를 뒤쫓던 

유비 삼형제가 호로관 아래 이르러 살펴보니, 화려한 

청비단 일산(日傘)이 보였다. 장비가 잘 탄 구릿빛의 

얼굴에 노기를 띠며 외쳤다. 

"저건 역적 동탁 임에 틀림없다! 여포를 쫓기보다 

동탁을 사로잡음이 나으리라!" 

성질급한 장비는 관우가 무어라 할 새도 없이 말을 

달려 관문을 향해 달렸다. 그러나 성벽 위에서 화살과 돌이 

마치 비오듯 쏟아지는 바람에 포기하고 군사를 물릴 

수밖에 없었다. 뒤따라온 여덟의 제후들은 그들 형제의 

공을 크게 치하함과 동시에 원소에게 승전보를 전하였다. 

조조는 전령에게 승전보를 올릴 것을 당부하여 떠나보낸 

후에 마침 자신의 뒤에 서있던 공손찬 일행을 돌아보았다. 

특히, 유비 삼형제를 바라보았다. 

"현덕공과 그 아우님들의 공로가 크셨소이다. 이제 

원본초께서도 곧 소식을 전해 올 것이오. 내 공들의 

노고를 절대 헛되지 않게 하겠소."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유비가 허허거리며 공손하게 받아넘겼다. 조조군을 

따라서 천천히 왔던 화정이 한숨을 내쉬면서 입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곧 동탁이 장안으로 도망갈테니까 제후들의 

동맹도 끝날 때가 되었네......그럼......" 

"무어라 했는가, 화정?" 

조조가 갑작스럽게 끼어드는 바람에 화정은 화들짝 

놀라면서 한발짝 물러섰다. 아, 실수했다! 무의식적으로 

말을 내뱉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지만, 그녀는 태연한 

표정을 지어 고개를 살짝 숙여보였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맹덕공. 그저 앞으로의 진로를 

생각해보았을 따름입니다." 

조조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 조조의 낯에는 `저 서생, 

이전부터 봤지만 역시 신경쓰인다.'하는 생각이 

떠올라있었다. 조조의 조금은 치밀한 곳이 있는, 

무서운 면을 알고있는 유비가 곁에서 조마조마한 

얼굴로 그녀와 조조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는 장비와 관우의 표정도 편하지는 않았다. 

일행의 두근거리는 마음을 배경으로 하고 조조가 

화정에게 대뜸 물었다. 

"진로라......자네가 생각하는 진로란, 필히 우리 

제후들의 앞길에 도움이 되는 것이렷다?" 

`큰일났네!' 

화정은 약간 당황했다. 태연한 표정을 짓고는 있지만 

그녀는 적잖이 긴장하고 있었다. 역시 조조다. 조금의 

틈이 보여도 무심코 넘기는 법이 없다. 보통 사람같으면 

그저 농담으로 여기고 넘어갔을 것이다. 조조의 말에 

심한 부담감이 밀려왔다. 

그 `진로' 란 단어조차 시대차를 지니고 있었을 줄이야.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그녀는 단지 앞으로 유비를 따를 

것인지 어떻게 할 것인지, 즉 `자신의 나아갈 길'을 

의도한 것이었는데, 군중에서의 `진로'란 분명 `단체의 

나아가야 할 길'을 의미하는 듯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 화정은 급하게 둘러댔다. 

"물론입니다. 허나, 저는 고민만 했을 뿐 확실한 답을 

찾지는 못했으니 맹덕께서 가르침을 주신다면 기쁘게 

배우겠습니다." 

그 말에 조조는 표정을 누그러뜨렸고, 곁에서는 유비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는 것이 느껴졌다. 의외로 잘 

해결된 모양이다. 순간적으로 고마워졌다. 아직 확실한 

태도도 보이지 않은 채 비밀이 많은 화정을, 단지 

동지라는 이유로 저렇게 가슴을 졸여가면서 근심해주고 

있는 유비가 말이다. 여하튼 그녀의 자연스럽고 교묘한 

넘김에 조조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저런, 그랬는가. 나 역시도 아직은 알 

수 없네, 원본초의 답신을 기다려야 하겠지. 나는 자네가 

영민한 사람이라 믿고 있다네." 

말을 맺은 조조는 공손찬에게 인사를 하고는 장막을 걷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끝까지 의심스런 색을 지우지 못하고 

있던 것이 보였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이것으로 일단락을 

지은 것은 사실이다. 기타의 제후들도 하나 둘씩 각자 

자신의 막사로 가기 시작했다. 저도 모르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화정의 근처로 장비와 관우, 

그리고 유비가 다가왔다. 유비가 그 온화한 얼굴에 웃음을 

띄우면서 말했다. 

"조금은 조마조마했네. 그런데......그게 무슨 의미인가? 

우리는 한 배를 탄 사람들이니 이야기해줘도 괜찮지 

않겠는가?" 

`뭐지? 곁에서 걱정해 준 것이 유비님에게 이야기할 것을 

조조에게 이야기하게 되면 어쩌느냐는 것이었나?' 

부아가 조금 치밀었다. 분명 그렇다. 유비는 어쩌면 

화정을 걱정했다기보다 자신에게 도움이 될 정보가 미리 

조조에게 넘어가면 어쩌나, 하고 가슴을 졸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속으로 `조조가 

노골적으로 야심차고 약은 사람이었다면 유비는 은근히 

야심차고 약은 사람이었다고 삼국지에 새로 써야해.'라고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물론입니다." 

어차피 유비는 서서나 제갈공명을 만나기 전까지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현실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그때까지 무사히, 유비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당연한 말이지만 유비가 무사해야 수하로 있는 화정도 

고생을 덜 하고 무사하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세계에서 지내보고 있는 것도 

꽤 즐거운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고도 있었다. 늘 입시와 

아버지의 교육에 시달려 살던 저쪽에 비해서, 이렇게 실전도 

겪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필요했건 어쨌건간에 유비는 화정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이고, 신경도 써 주고 있는데다, 최근에 태도를 바꾼 

관우 역시 그러했고, 장비는 순수한 면이 있었으므로 썩 

마음에 드는 동지이니 말해주어도 괜찮겠다고 화정은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전 이미 삼국지를 다 읽었어요. 그러니까 

아는데요......' 식으로 말했다간, 성질급한 장비나, 화정에 

대해 의심을 아직까지 완전하게 풀지 못하고 있는 관우에 

의해, 삼국지 식으로 서술하면 `잘 다져진 고깃덩이'가 

될 지도 모른다. 이럴 때는 말투를 바꿔야지. 

추리하는 식으로. 

"아마 현재도 사이가 좋지않은 손견과 원술이 한바탕 

다투고, 동탁은 사람을 보내 손견을 설득하려 들 것입니다. 

내부에서 호응을 얻으려는 얕은꾀이지요. 허나, 손견이 들을 

리가 없지요. 여포가 패했으니 동탁은 싸우면 이득은커녕 

패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동탁은 낙양을 버리고 

장안으로의 천도를 감행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순간적으로 막사 내에 찬바람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관우와 

장비는 말이 없었고, 유비는 표정이 얼어버렸다. 화정은 

자신감있는 표정으로 그들을 훑어보았다. 한참만에야 유비가 

그 묘한 분위기를 깨뜨렸다. 

"......처, 천도......? 그리고 동탁이 문대(=손견)를 

설득하려한다고? 장안으로의 천도라니, 그 무슨......" 

"근거 없는 소리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야, 화정!" 

웬일로 장비가 화정을 꾸짖고 나섰다. 그리고 험악한 표정을 

지은 관우 역시 그런 장비를 말리지 않았다. 하기는, 

저들에게는 천도란 단어가 엄청난 것이겠지. 기껏 낙양까지 

쫓아갔더니 그 동탁이란 놈이 재물 하나 안 남기고 긁어가서 

장안으로 도망갔다고 하면, 얼마나 맥빠지는 일이겠어? 

내가 내뱉은 말이지만 저 사람들 입장이라면 정말 어이없고 

짜증나는 일일거야. 속으로 그런 공감을 내리면서 화정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모르겠습니다. 이 미련한 것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썩 

맞을 리는 없지요. 그......" 

"아니, 그렇지 않다." 

갑자기 유비가 화정의 말허리를 자르고 나섰다. 그 바람에 

자신도 놀란 화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끼면서 

물러섰다. 유비가 단언하는 것이었다. 

"이전에도 화정의 말은 항상 옳았다. 또한......지금의 

화정의 이야기는 있음직한 이야기이지. 충분히 있음직한 

이야기야!" 

유비까지 화정을 옹호하고 나서자 관우의 표정이 바뀌었다. 

장비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쳇, 뭐가 그래!' 하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었다. 유비는 화정을 

바라보며 포권을 해보였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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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1.정원(丁原): 병주자사였던 사람이다. 동탁의 횡포에 

맞섰으나, 가장 믿던 여포에게 배반당하여 죽었다*작가주 

2.장군전(將軍戰): 장수끼리의 일대일 무예 대결이다. 

대부분 말을 탄 자세로 행해지지만 꼭 말을 탈 필요는 없다. 

삼국지 게임의 대가라 불리는 일본의 koei사는 이를 

일기토一騎討라 지칭하고 있다. 하지만 본래 일기토란 

단어는 koei사의 조어造語이다. 본인이 사용하는 

장군전이란 단어는 만화가 박수영씨의 작품 

<삼국장군전>에서 따 온 것임을 밝혀둔다*작가주

진심으로, 유비는 진심으로 조언을 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화정에게 웬 헛소리냐는 식으로 질책의 눈길을 보내고 있던 

관우와 장비가 놀람은 물론 그녀까지 당황했다. 강렬하면서도 

온화한 유비의 눈은, 진심으로 묻고 있었다. 

자신들의, 불가능에 가까운 꿈을 위해서, 막막한 경로에 

그나마 작은 길잡이라도 되는 방도가 있는가. 지금 너무나 

미약한 자신의 세력으로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하고 말이다. 화정 자신까지 진지해 질 것만 같다. 

저런 열정과 겸손, 강렬한 바람을 담은 눈빛은, 다른 이로 

하여금 절로 돕고 싶게 한다. 사람에게 부탁을 할 때 저런 

눈빛으로 할 수만 있다면 그 누구라도 들어줄 지도 모르지, 

중얼거렸다. 

마음을 다잡고 자신이 알고있는 삼국지의 다음 순서를 

조용히 정리해보았다. 분명 동탁은 낙양에서 장안으로 

가혹한 이주를 벌인다. 그리고 가장 먼저 낙양에 도착한 

손견의 군대가 옥새를 얻고......조조는 의기소침해진 

제후들 사이에서 홀로 동탁의 뒤를 쫓다가 머릿수의 

부족때문에 참패하고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원소가 손견에게 옥새에 대해 문책을 할 것이고 이 

일로 둘의 사이는 크게 틀어져 손견은 강동(江東)으로 다시 

돌아가며 제후들 역시 그들 내에서 크고작은 의심이 생겨든다. 

조조는 참패하고 돌아와 격분하면서 역시 돌아가버리고, 

중심되는 조조가 가버리면 맹주인 원소도 또한 진채를 뜯는다. 

그리고 반동탁 동맹은 끝나는 것이었다. 화정은 검지를 턱에 

대고 열심히 생각해보았다. 

`조조를 도우러 가보았자......유비님의 군사는 5천밖에 

안돼. 별 도움도 안되는데다 조조는 훗날 적이 될 

위인인데.....쓸모가 없는 일이야. 그러니까 그만두자. 

그리고 낙양에 가서 옥새를 가지라고 하자니......훨씬 수도 

많고 세력도 큰 손견보다 빨리 당도하려면 그만큼 무리가 

가게 된단 말이야. 그리고 황제도 아니고 기껏 옥새인데...... 

그 도장이 뭔 필요가 있어? 상징일 뿐이지......' 

옥새란 것은 분명 그 시대 사람들이라면 목숨을 걸 만한 

물건이다. 하지만 몇천 년이나 지난 시대에서 온 화정의 

계산에는, 단지 도장 하나일 뿐이었다. 

어차피 훗날 유비가 황제가 된다해도 새로 팔 것이 옥새 

아닌가. 그런 것에 목숨을 거는 만큼 짜증나는 일은 없다. 

화정은 그냥 이 싸움에서 물러날 것을 권고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따위 쓸모없는 결과를 쫓느니 일찍 돌아가 군사나 더 

키워두는 것이 낫다. 음성을 낮추어 조심스럽게 간하였다. 

"주공, 들어주십시오. 필시 낙양으로 동맹군은 추격을 

가기는 할 것이지만 그 이상은 갈 수 없습니다. 제후들 

사이에서는 크고 작은 불만과 내분이 있으며 신뢰도 

돈독하지 못합니다. 이는, 조금만 눈여겨 보셨다면 

주공께서도 아셨을 상황입니다." 

"그건 나도 잘 알고 있네. 안타깝지만 다소의 다툼도 

꽤 있던 것으로 들었네." 

유비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찬성하였다. 곁에 서있던 

관우는 유비마저도 화정의 말을 심각하게 듣는 분위기로 

흘러가자, 그리고 화정의 심각한 표정에 동화되었는지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장비는 

아직도 불만이 있는 듯했으나 많이 누그러든 모습이었다. 

화정은 그런 세 사람을 곁눈질하면서 말을 이었다. 

"이후에 손견이 떠나고 조조가 떠나고 나면 곧 깨어질 

동맹에 불과하니......이곳에 길게 머물러 군량과 시일을 

낭비함은, 서둘러 평원으로 돌아가 힘을 기르심보다 못할 

것입니다." 

장비는 눈알만 굴렸고 관우는 그 길고 아름다운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생각에 잠겨있었다. 조용한 침묵이 흘러가고, 

관우가 입을 열었다. 

"화정, 한가지만 질문하겠네." 

의심하거나 고깝게 여기는 그런 얼굴은 아니었다. 

진심으로 자문을 구하는 표정. 관우도 드디어 이렇게 

표정을 바꾸어 주는구나, 그런 생각을 감추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시지요." 

"분쟁이 꽤 있으니, 당연히 제후님들의 사이가 갈라질 

것이다. 물론, 손견이 이전에 원술과 작은 다툼이 있었으며, 

손견이 아무리 담이 크고 대범하다고는 하나, 이들 역시 

언젠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은, 이 운장도 염두에 

두고는 있었다. 

허나, 왜 하필 이들인가? 왜 하필 원술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손견이 떠날 거라 생각하시는가?" 

공손한 말투이면서 날카롭다. 관우는 무인으로서는 

드물게 섬세하고 통찰력이 예민한 것 같다. 곁에 서서 코를 

후비면서 하품을 하고 있는 누구누구(?)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화정은 속으로 `나 삼국지를 미리 안 읽었으면 여기서 분명 

쫓겨났을 거야.' 하고 안도 아닌 안도를 하면서 태연하게 

답해주었다. 

"원술은 사촌 뻘 되시는 원소가 맹주로 있는 한, 떠나지 

않습니다. 사촌형인 원소가 편을 잘 들어주고 있는데 

불만일 것이 무엇입니까." 

아, 너무 교묘한 핑계다. 저 무서운 유비와 관우가 얼굴을 

마주하고 `너무 당연한 이유로군.'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주고 있다. 스스로 흐뭇해졌다. 그렇게 속으로 

만족하고 있는데, 유비가 화정에게 질문을 날카롭게 던졌다. 

"물론 그런 이유라면 문대가 떠날 수도 있다. 허나, 

손문대가 떠나고나서, 왜 하필 다른 이도 아닌 맹덕이 떠날 

거라 예상하는가? 그는 자신이 중심 세력인데다, 되려 동탁을 

뒤쫓아 한황실에 충성하는 결과가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은가?" 

"아직은 주공께서 세력이 미미하십니다. 동탁이 죽고나면 

다른 자가 뒤이어 황상을 감히 이용하여 뱃속을 채울 것 

역시 자명한 일입니다. 

이 제후들이 지금은 황실에 대한 충성을 부르짖으나, 

동탁을 몰아내면 다들 여봐란 듯 태도를 바꿀 것입니다. 

그러니 주공께서는 후일을 기약하심이 옳습니다. 

손견이 이미 원술과 다투었으니, 작은 꼬투리가 생긴다면 

금방 떠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고, 조조 또한 

그렇게 혼란이 거듭된다면 실리적인 그의 성품으로는 

이득이 되지 않는 동맹군에 계속 매어있을 리가 만무합니다." 

옥새사건이나 추격사건까지 이야기했다간 예언자, 아니 

이 시대 단어로 말하자면 점술가 소리를 들을 것 같아서 

그럴싸한 이유를 대었다. 아마 이천 년대로 돌아간다면 

그녀는 아이큐 지수가 10은 족히 올랐을 것 같다. 이렇게 

머리를 굴려댔으니 머리가 나빠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좋아졌다면 더 좋아졌겠지. 화정의 슬픈 지능발달 

확신을 모르는 유비가, 무릎을 탁 쳤다.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난 유비는 갑자기 화정을 향해 절을 하였다. 이건 또 

무슨 일이람! 당황한 화정은 황급히 유비를 일으켰고 

관우와 장비도 눈이 커졌다. 

"주공!" 

"화정은 실로 하늘이 내게 내린 사람이구나! 자네 말을 

들으니 이 미련한 현덕, 눈앞이 환해지고 가슴이 탁 

트이네! 그렇다면 적당한 핑계거리를 대어 평원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형님, 제가 화정을 믿고는 있으며, 또한 화정의 말이 

일리가 있기는 합니다만." 

곁에서 사태를 관람하고 있던 관우가 반대하고 나섰다. 

"지금 한창 사기가 올라있는 것으로 보면, 화정이 내다보는 

바는 너무나 과장되며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어떤 부대가 

조그만 균열조차 없겠습니까!" 

"그렇지 않다. 이 유비가 보기에도 지금 이 동맹은 

부질없다. 조공이 겨우 수습하여 유지하고 있지만 조맹덕 

역시 지쳐가고 있음이 분명하며, 그의 실리적인 성품은 

앞으로 조금의 사건이 더 벌어진다면 금방 그를 등지게 

할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이름을 떨쳤으매, 더이상 

나아가보았자 지금의 세력으로 이 이상의 소득을 바라는 

것은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적당히 기회를 노리는 

것이 옳네." 

`아휴, 내 말보다 이 아저씨 말이 훨씬 명물일세......!' 

마음에서 감탄을 우러나오게 한다는 것은 바로 유비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벌써 유비 때문에 감탄을 한 

것이 몇 번째인지 기억도 안난다. 살필수록 무섭고도 

대단하며 정이 가는 사람이다. 이 세 가지 감정을 한번에 

일으킬 줄 아는 사람은, 저쪽 세계에서도 본 적 없다. 

심지어 그녀의 아버지도. 

삼국지를 재평가할 때, 흔히 사람들은 조조는 칼 같은 

결단, 유비는 우유부단함의 화신으로 결론짓는다. 그러나 

이럴 때의 유비는 도리어 조조보다 빠르게 판단하고 자신의 

옳다 여기는 바를 망설임없이 밀고 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렇게나 공을 세웠으며 이 정도의 진척이 있는 상황에서 

계집아이 하나의 말을 듣고 군대를 물리는 것은 우습게 

생각되는 일이다. 기껏 여포까지 깨뜨리고 왔는데 군대 

물러서 돌아가 도나 닦읍시다, 하는 식의 말에 동조해주었다. 

사람들이 아무리 `공명 덕에 유비는 황제 노릇했네' 하고 

비웃어도, `유비는 훌륭하다' 는 주장은 이런 이유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제아무리 공명이 똑똑해도 유비가 공명을 

믿고 올바르게 판단해주지 않았다면 촉은 성립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역사에 깊게 남는 사람은 무엇이 달라도 다르다. 이후 자신이 

기업을 이끌어 갈 때, 저렇게 다른 이의 의견을 나름대로 

잘 판단하여 믿어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부딪혔다. 

`......어려울 거야.'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다시한번 유비를 곁눈질하던 

화정은 시선을 주변으로 돌렸다. 관우는 아직도 불만이 있는 

듯했지만 조용히 물러섰고 장비는 여지껏 했던 이야기를 

재미없는 듯이 듣고 있더니 결국은 멍한 질문을 하고 말았다. 

"그럼 형님, 우리는 계속해서 여기 있는게유?" 

정말 장비답다. 

"아니 장비야, 무얼 들은게냐! 핑계가 생기는 대로 서둘러 

동맹군을 뜨는 거다!" 

유비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정리를 해 주었고 

장비는 자신을 노려보는 관우를 향해 `알았수, 알았다구!' 

라고 불만스럽게 투덜거려보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유비는 

화정을 향해 다시한번 기쁜 표정을 지어보였다. 

"실로 자네의 지혜는 거침이 없으며 또한 깊기까지 한 

듯하이. 내 일찍 자네의 지혜를 알아보지 못함을 

용서하시게." 

"별말씀을, 주공." 

아, 조금 찔린다. 그저 삼국지를 미리 읽은 덕분인데. 

반대의견을 내기는 했지만 관우 역시 이전과 같이 찡그린 

얼굴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화정에게 따뜻하게 

말을 걸었다. 

"이 운장 역시 미처 생각이 닿지 못했네! 앞으로도 

우리 큰형님과 대의(大義)의 성립을 위해 힘써주게." 

"미천하고 둔하다 여기지 않으시니 오히려 제가 

다행입니다." 

관우가 마음을 풀었다는 것이 점차적으로 증명이 된다. 

"자자, 오늘은 기분을 풀어야겠군! 자네들과 내가 

공을 세웠으되 화정 또한 자신의 재주를 우리에게 기꺼이 

빌려주었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않으리! 가서 장비를 

불러오시게, 운장!" 

유비가 뒤에서 모처럼 기쁘게 너털웃음을 터트리면서 

관우의 등을 쳤다. 그 말에 관우는 그 너그러운 얼굴에 

화정으로서는 드물게 보는 환한 미소를 띄우고 장비를 

찾으러 나갔다. 유비가 고개를 돌리려는데 장막이 다시 

젖혀졌다. 관우였다. 

"아, 이런, 깜빡 잊었습니다, 형님. 마공자와 마소저를 

함께 모셔도 되겠습니까? 그들 역시 화정의 벗인데다 

마소저는 어차피 군중의 사람들이 모두 공자로 알고 있으니 

괜찮을 듯 싶습니다. 그들은 마수성(=마등)과 떨어져 

이곳에 주둔하고 있습니다만. " 

순간 화정의 표정이 약간 밝아짐을 본 유비는 기꺼워하면서 

허락했다. 

"그래야지." 

왠지 관우가 정말 고마워졌다. 이렇게나 관우가 고맙다니. 

`감사합니다, 관우님.' 

화정은 관우를 향해 난생 처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았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첫 간언이자, 유비를 위해 

처음 일한 셈이 되는 화정은 어딘가 심적인 부담이 생기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아무리 앞으로 일어날 일을 훤히 

꿰뚫고 있으며 그에 맞춰 둘러댔다고 해도 그녀의 부담감은 

당연한 결과였다. 

낯선 세계에서 유일한 벗이 있다면 마초였다. 운록은 

아직 친하지는 않지만 여러가지로 자신에게 신경을 쓰는 

듯한 사람이다. 여하튼 그들 남매는 낯선 이세계에서 화정의 

유일한 동갑근처 친구들이었다. 화정은 자신이 그들과 만나고 

싶었던 것을 어찌 알았을까 생각하며 관우에 대한 호감을 

증가시켰다. 

*******0

"당신이 이전에 궁금해 했었죠. 무경미석이 

무어냐고요......." 

무슨 일로 저 괄괄하고 자신을 쥐보다 보기 싫어하는 

아가씨가 불렀을까, 하고 긴장하고 있었던 화정은, 운록의 

낮은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운록은 애써 눈을 돌려 

화정에게서 시선을 떨어뜨리면서 말을 천천히 이었다. 

"그건 말이죠......아주 귀한 보석이에요. 정말 귀한 

거죠. 황실(皇室)에 조차도 단 하나가 있다고 해요. 동탁이 

그것을 황제에게서 감히 강탈했다는 말도 있어요. 그만큼 

귀한 보석이에요." 

"무엇때문에 그렇게 귀한거죠?" 

하기는 이 시대면 보석이 좀 귀하기는 할 것이었다. 

지금처럼 발굴 기술이 발달되어있지도 않을뿐더러 가공은 

더욱 어려울 테니 말이다. 상식적으로, 동양에 존재하는 

보석은 옥이나 금, 은 정도이다. 서양은 이미 루비,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같은 갖가지 보석들로 왕관을 

장식하고 있었겠지만, 동양은 금과 옥, 구슬이 대부분이다. 

위와같은 보석들을 구하려면 여기서는 소위 `서역' 이라고 

부르는 곳과의 거래를 통해, 아주 고가로 소량만 구매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렇게 귀한 보석이라면, 

아마 금, 은이나 옥은 아닐 것이고 서양에서 사용하던 

것임에 분명하다. 운록은 반대 방향의 숲을 바라보면서 

답했다. 

"무경미석은......아주 아름다워요. 옅은 적색(赤色)..... 

그러니까 아, 그래요! 적색에 백색(白色)을 섞은 듯한 

색상을 지니고 있죠." 

`분홍이라 말하면 될 거 아냐?' 

긴 표현에 지쳐서 샐쭉해진 화정이 속으로 말을 

정정해주는 것도 모른 채, 운록의 말은 계속 흘러갔다. 

"그런 아름답고 미묘한 색을 지니고 있는데......오색으로 

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빛나요. 매우 투명하고요......" 

별 생각이 없던 화정의 머릿속을 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분홍, 또는 자주색의 찬연한 보석? 화정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목 주변을 눌러보았다. 있었다. 그녀가 어릴 

적부터 하고있던 아름다운 분홍색의 사파이어! 주변에 아주 

작은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있는 그 아름다운 금목걸이! 

화정은 침을 꿀꺽 삼켰다. 

`뭐지, 그럼 설마 이게.....?!' 

자신이 아무리 눈치가 있는 편이라고 뻐겨댔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이 얼마나 둔했는지에 대해서 반성해 볼 

차례가 된 듯하다. 여지껏 이 목걸이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경미석이 혹시 이거라면......잠시 

멈칫하는 화정의 태도를 눈치채지 못했는가보다. 운록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었다. 

"음, 외관도 그렇게 아름답지만......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해요. 그 보석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다른 이들을 

끌어들이는 듯한 매력을 얻을 수 있다더군요. 즉, 어떻게 

보면 심리조정술이 가능하다는 소리로 해석되기도 해요." 

`뭐야, 그렇다면.......?' 

<어떻게 심리조정술을 알고 있었지요?> 

운록의 말이 뇌리를 때리고 지나갔다. 기억났다. 화정은 

머리에 한 손을 얹었다. 골치아프다는 말이 하고싶었다. 

나도 보통 사람은 아닐 지도 몰라, 이렇게 소지품마저도 

대단한 물건으로 둔갑시키는 재주가 있으니 말이야. 절대로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여하튼 운록의 이어지는 말은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황실의 여자 자손들에게 대대로 계승되는 보석이라고 

하더군요.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단 한번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어하죠, 심지어는 신분이 아주 높은 재상가에서도 말이에요." 

`뭐가 그리 거창해! 단지 엄마가 주신 건데......! 내가 

살고있던 시대에서 이런건 대략 몇십 만원 정도 주면 살 수 

있는데, 거참......' 

하지만 납득은 간다. 화정의 세계에서는 그다지 희귀품이 

아니라고 해도 이곳에서는 엄청난 보물이 될 수도 있다. 

가공 기술이 덜 발달된데다 사파이어, 그것도 핑크색으로 

취색이 된 것은 충분히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간다. 상식이 허락하니까. 그러나 그 

심리조정술과 연관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은 그녀로서도 

어딘가 수상한 말이었다. 그냥 생각없이 지니고 다녔는데, 

여기와서 사람의 심리까지 조정해대는 힘이 있다는 건가? 

생각에 골똘하게 잠겨있다가 운록이 휙 돌아보는 바람에 

화정은 자신만의 생각에서 깨어났다. 운록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그녀는 똑 떨어지는 어조와, 그녀 특유의 

높고 째지는 음성으로 채근하였다. 

"솔직히 얘기해요. 정말로 무경미석을 지니고 있나요? 

그래서 전음도 못하면서 심리조정술도 할 수 있었던 건가요?" 

생각이 조금 갈피가 잡히고 나자, 그제서야 전말이 대충 

짐작이 갔다. 스스로 생각해도 당혹스럽기 짝이 없지만 정말 

모르는 척 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혹시라도, `능력을 

시험해보겠어요.' 라던가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이에요.' 하는 식으로 목걸이를 빼앗을 궁리를 

한다면 어쩔 것인가. 

나가는 가격이 얼마이며, 누가 무어라고 해도 이 목걸이는 

화정에게 있어서 정말 소중한 것이었다. 적당히 알고 있던 

척을 해야한다. 그녀는 시치미를 떼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운록에게는 `이전부터 나는 

심리조정술은 연마해 왔었다.' 라는 식의 거짓말은 통하지 

않았다. 

이미 운록은 화정이 이세계(異世界)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물론, 그것을 따져묻는다면 `당신은 어째서 그런 

눈동자 색깔과 그런 머리칼을 지니고 있는데다 이세계의 

존재를 알고 있나요?' 라고 물어서 상대도 당혹스럽게 만든 

후에 빠져나가도 된다는, 화정 나름대로의 계산도 있지만. 

"어려울 것 없어요. 내가 지닌 능력을 여기서는 

심리조정술이라고 하는군요. 나는 우리 세계에 있을 

때부터 `마인드 콘트롤'을 배워왔는데, 그게 심리조정술인지 

몰랐을 뿐이에요. 무경미석요? 적색의 아름다운 보석? 

그렇게 값진 것을 가졌을 리 없잖아요? 그런 것이 있었다면 

벌써 그걸 이용해서 훨씬 편하게 지내고 있었을걸요?" 

운록은 화정만큼, 추리하는 측면에서, 똑똑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럴싸한 거짓말 한마디에 금방 표정을 풀었다. 

"하기는......" 

"그렇죠? 무경미석이 내게 있다니, 그 청광체라든가 

아귀강시들이 잘못 안 것일 거여요." 

화정의 성급한 결론에 운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납득이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아가씨도 조금 불쌍한 

구석이 있다. 그냥 사실대로 `어, 저 잘 몰랐는걸요?' 하고 

말했어도 자신을 속일 생각은 조금도 못했을 지도 모른다. 

금방 속아넘어가는 것을 보면 세상 참 고달프게 살아갈 

거라는 걱정도 된다. 어차피 화정과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저쪽에서는 마초와 장비가 한창 떠들고 있었고 그들의 

근처에서 유비와 관우가 연신 껄껄거리고 있었다. 유비가 

공손찬도 부르려 했으나 그는 바쁘다는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화정은 운록과 나란히 앉아 

그들을 지켜보면서 속으로 이것저것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문득, 그녀는 한가지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바로 그녀가 그들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현실세계에서 풍요하고 편하게 지내던 때보다 그들과 어울릴 

수 있는 지금을 좋아하고 즐기고 있는지도 몰랐다. 

편하다......참 좋은 느낌이다. 필요에 의해서 여기 있던 

어떻던 간에 이렇게 편한 느낌을 지닌다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스스로에게 중얼거려보았다. 

"꼭 서서나 공명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도......유비님을 

그냥 돕는 것도 나쁘지 괜찮을 거야. 저렇게 좋은 

사람들인데......아무리 승산이 있고 더 세력이 강해질 

것이라해도 조조같이 삭막한데다 눈치는 정말 더럽게 빨라서 

피곤한 사람 밑에서 가슴을 졸인다는 건, 기껏 기적이 

일어나 이런 세계까지 떨어진 보람도 없다구. 내가 살던 

곳에서의 환경과 똑같은 결과잖아?" 

"뭐라고요? 유비님이 어떻고 조조님이 어째요?" 

`에구, 이런! 무슨 망상을 하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난, 

돌아가야 한다고! 돌아가려면 훗날 아무리 조조가 싫어도 

빌붙어야 할 지도 모르는데 말야!' 

화정의 중얼거림을 똑바로 듣지는 못하고 웅얼거린다고만 

알아낸 운록이 물어보았지만 기분이 나빠진 화정은 속으로 

스스로를 구박하면서 대충 얼버무렸다. 

"아니요, 또 아귀강시가 나타나면 차라리 유비님께 

말씀드려서 도움을 얻겠다고요. 아니면 조조님께서 

동맹군으로써 어떻게 해 주시겠지요, 뭐." 

적당히 둘러대는 화정에게 운록이 쏘아붙였다. 

"좋겠군요, 도와줄 사람도 많아서! 그렇게 안해도 우리 

오라버님이 가만히는 안 계실 거여요!." 

"네에?!" 

이번에는 운록이 - 얼굴이 벌개지면서 뾰루퉁한 

얼굴로 - 얼버무렸다.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 

`이 아가씨야, 나도 당신이 생각하는만큼 편하기만 

한 건 아니란 말이야!' 

불만은 화정도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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