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 재회 (13/24)

3-5 재회 

"아!" 

화정은 나지막하게 소리를 냈다. 사실 이건 나지막하게 소리를 

낼 정도의 일이 아니었다. 머리칼이 바짝 곤두설만한 일이었던 

것이다. 화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허리에 양 손을 

얹었다. 

`그럴 리가 없어! 여기는 나 혼자 있어!'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수상한 

소리는 또다시 귓가에서 맴돌았다. 

"흐흑, 흑.......흐흑......!" 

조용하게 흘러가는 듯한, 여자의 흐느낌이었다. 매우 서글프게 

울고 있었다. 그것도 화정의 바로 귓전에서 들려왔다. 화정은 

고개를 또다시 돌려보았다. 하지만, 작고 비좁은 방안에는 분명 

그녀 홀로 있을 뿐이었다. 분명, 홀로 있다. 화정은 머리칼이 

통째로 곤두서는 감정을 느꼈다. 소름이 돋았다. 애써 크게 

떠들었다. 

"나도 참.......요즘에 밤을 새서 피곤했나, 별 이상한 

착각이 다........" 

"흑흑흑, 흐흐흑......." 

`여긴 공포체험 소설 속이 아냐!' 

화정은 그렇게 불만을 터트리면서도 몸이 후들거리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울음소리는 계속해서 새어나왔다. 그녀는 

이전에 장비가 호신용으로 주었던 짧은 단검을 들면서 몸을 

문 곁으로 바짝 붙였다. 여차하면 문을 박차고 튀어나가려는 

것이었다. 소리가 들렸던 곳, 즉 자신이 서 있던 곳을 향해 

겨누었다. 

"뭐냐!" 

"흐흐흐흑........!" 

다음순간, 화정은 그만 자지러지고 말았다. 그녀의 손목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짐과 동시에 단검을 누군가 빼가는 듯한 

느낌이 왔기 때문이었다. 단검이 공중에 동동 떠서, 마치 

누군가 들고 가는 듯이, 이동했을 때는 웬만하면 참으려 

했던 화정은 그만 공포에 차서 마음껏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꺄아아악!" 

높은 음성의 비명소리는 공기를 타고 놀랄 만한 크기로 

퍼져나갔다. 그만 옆으로 쓰러져 앉아버린 화정은 윗니와 

아랫니를 딱딱거려 부딪으면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오래지 

않아, 쿠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문이 거칠게 

부수어졌다 - 화정이 평소에 늘 문을 잠그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콰당! 

"화정! 무슨 일인가?!" 

"이봐, 왜 소리를 지르고 그......에?" 

연장이라도 나르고 있었는지, 온 몸에서 쇠냄새를 풍기고 

있는 관우와 장비가 각자 한 손에 이것저것 든 채 들어왔다. 

그들은 새파랗게 질린 화정과, 그 앞에 둥둥 떠있는 단검을 

차례로 훑어보았다. 두 사람의 얼굴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관우는 혀를 차면서 덜덜 떨고있는 화정을 

조심스럽게 붙들어 일으켰고, 장비는 뒤통수를 긁으면서 

투덜댔다. 

"뭐야, 이거. 질질 짜고있는 잡귀(雜鬼)따위 때문에 

소리질러서 오게 만든겨?" 

"그렇군, 놀란 게로군......." 

"임마! 너 때문에 놀라서 혀 깨물었다, 이거봐라, 

피가......아얏!" 

투덜거리던 장비는 관우에게서 주먹으로 뒤통수를 

쥐어박혔는지 외마디의 엄살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화정은 

별로 놀라지도 않는 두 사람을 돌아보면서 입을 열었다. 어찌나 

놀랐는지 말이 다 헛나온다. 

"귀, 귀신......어, 저.......!" 

"그럼 저게 귀신이지 사람이냐?! 그것도 모......알았수, 

참나, 난 말도 못하나......." 

면박을 주려던 장비는 관우의 시선에 잔뜩 주눅만 들어서 

입을 다물었지만, 수염이 가득한 그의 입은 잔뜩 튀어나와버렸다. 

관우는 그런 장비에게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호령했다. 

"가서 저 원귀(寃鬼)를 내쫓고 오게." 

"형님, 난 저딴 원귀나 쫓으려고 무예를 익혀온 건 아니우! 

이래뵈도......." 

"어허!" 

관우의 지시에 입이 아까보다도 더 튀어나와버린 장비는 이를 

득득 갈면서 떠있는 단검 쪽으로 갔다.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려서 제대로 서지 못한 채 관우의 부축을 받고있는 화정은 

멍한 눈으로 앞을 응시했다. 장비는 쥐고있던 호미로 뒤통수를 

득득 긁으면서 - 괴상한 취미다. 저렇게 날카로운 호미로 

뒤통수를 긁으면서도 상처가 안 나는 것을 보면 역시 장비 

익덕은 최고의 무예인이다. 아마 저쪽 세계에 가서 

`안 믿거나 말거나' 같은 곳에 출연해도 될 거다 -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야, 못생긴 너! 나 따라 얼른 와!" 

"흑흑흑흐.......흐흑.......!" 

계속해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내 뭐라고 중얼거리는, 

울음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정은 잘 듣지 못했지만, 그 

소리를 듣고나자 장비의 안 그래도 험악한 얼굴이 더 

우락부락해지고 말았다. 

"뭐가 어째? 안 따라와? 생긴 것도 거지같은 잡귀 주제에 

말도 많네. 안 따라오면 죽는다?! 잔말말고 따라나왓!" 

또다시 흐느낌이 새어나왔지만 장비는 한 팔을 뻗어서 

누군가를 움켜잡는 손모양을 취하였다. 동동 떠있던 단검이 

땅에 툭 떨어지면서, 장비가 욕을 내뱉으면서 바깥으로 나갔다. 

그 모양을 보고있던 화정은 또다시 놀림감이 된 기분이었다. 

징그러운 아귀강시도 봤는데 이번엔 공포체험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혹시, 그 다음엔 관우가 부적이라도 써 주면서 

`이걸 꼭 간직하고 다녀야 귀신이 너를 못 해쳐.' 같은 대사를 

해 주는 것 아닐까? 아니면 혹시......`내가 아직도 관우로 

보이니?' 같은 구절? 아아, 싫다! 

"이제 나갔으니 놀랄 것 없네. 보기보다 담이 약하구먼, 

전혀 안 그럴 것 같은 사람이 기껏 원귀에게 놀라서 그렇게 

얼굴색이 안 좋아져있다니." 

어쨌든 다행히도 화정이 상상한 구절들은 아니다. 아, 이 

세계는 공포체험을 통한 담력훈련도 함께 있는가보다, 정말 

죽고싶다. 자신은 이래뵈도 - 사람들은 화정이 무슨 강철 

심장이라도 가진 것처럼 얘기를 하곤 한다. 다시한번 더 

강조하지만 그녀는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 지금 

이 나이가 되도록 어두컴컴한 집안에 혼자 못 남는 겁쟁이이다. 

특히, 이전에 아는 아이 중 하나가 `내가 아직도 네 엄마로 

보이니?(어떤 여고생이 엘리베이터에서 귀신을 보고 나서 

엘리베이터에 혼자 타는 것이 무서워서 어머니를 불러 함께 

타고 올라갔더니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머니가 돌아보면서 

이렇게 얘기했다는, 유명한 괴담이 있었다. 필자도 들었던 

이야기다.)' 라던가 엄마 기다린다던 꼬마귀신 이야기(경비원이 

순찰을 돌다가 난간에 고개를 내밀고 턱을 괴고 앉은 꼬마를 

보고 위험하다면서 내려오라고 하자, 꼬마는 엄마를 

기다린다고 했다. 경비는 여기 내려와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꼬마는 머리와 목, 팔만 남은 모양으로 팔꿈치로 기어서 

다가왔다는 괴담인데, 실제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과 턱을 괴고서, 마주보고 있다가 팔꿈치를 움직여 

갑작스럽게 얼굴을 마주대면 정말 놀란다. 필자도 

친구에게 당해본 경험이 있다)를 해주었을 때는 며칠간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갔고, 잠도 못 잤었다. 

그 정도로 공포시리즈에 대해서는 겁이 많은 화정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무서웠어도 `나에게 설마 귀신이 나타나겠어? 

웃겨, 그런 게 어디있어?'하고 굳게 믿어왔는데 그 위로도 

소용이 없게 되어버렸다. 정말 너무하다. 이런 세계에 온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공포체험까지 하다니. 

"저, 저는.......저는, 운장.......!" 

말해야 할까? 내 눈에는 그 귀신이 안 보인다고 말이다. 

"그래, 말해보게." 

관우의 목소리가 유난히 따스하게 들릴 정도로, 그녀는 

겁에 잔뜩 질려 있었다. 관우가 계속해서 화정을 달랬다. 

"뭔가 불편한 듯하군. 괜찮네, 이제." 

관우는 온화해지면, 그리고 좋을 때는 한없이 좋은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역시, 그렇게 무서웠어도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니 알게모르게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겨우 마음을 가라앉혔는데, 관우의 태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런, 또 잡귀가 하나 들어온 모양이군."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화정은 자신의 옷이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것을 보고 말았다. 그녀는 그대로 얼굴 표정이 

얼어버렸다. 다음 순간....... 

쿵! 

"화정! 이런, 정신차리게!" 

여기는 무서운 세계임에 틀림없었다. 

******** 

"으하하하하하!" 

장비가 어찌나 웃어댔는지 숨이 넘어가지나 않을까 걱정이 

다 될 정도였다. 화정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가......그리 우습......습니까?!" 

"우헤헤헤, 잡귀가 안 보였대! 그래서 기절했대, 

기절......우하하하하.......!" 

야속했다. 정말 이렇게 바보가 된 느낌은 싫었다. 난 

저쪽에서는 지극히 평균치의 시력을 가졌던 사람이란 말이야! 

정신없이 웃던 장비의 커다란 침방울이 얼굴에 튀자 

소매자락으로 침을 닦으면서 유비가 언짢은 표정으로 저지했다. 

"익덕, 그만 웃게. 화정이 난처해하지 않나." 

"헤헤헤, 형님, 아무리 그래도 저 얼굴로, 기껏 잡귀 때문에 

기절하다니, 웃기지 않수? 우하하하하!" 

`내 얼굴이 무슨 상관이야?!' 

"익덕, 그만두지 못하겠나." 

나직하지만 분명한 위압을 담은 관우의 목청이 울리고야 

장비는 입을 다물었다. 역시, 장비에게는 관우가 가장 위험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아직도 웃음을 미처 못 삼긴 

장비는 끅끅거리면서 몰래 웃다가, 결국 숨이 넘어갔는지 

켁켁댔다. 관우는 헛기침과 함께 미간을 애써 펴면서 시선을 

돌렸다. 

"......너무 신경쓸 것 없네, 화정. 그렇군, 화정은 분명 

아귀강시와도 소통이 안된다고 하였으니......잡귀와도 소통이 

되지를 않겠군, 그래. 그런데 잡귀는 아예 볼 수도 

없다니......으음......." 

역시 관우는 아무리 생각해도 장비보다는 낫다. 그나마 

이해라도 해준다. 하지만 귀신은 의사소통 뿐 아니라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는 구절에서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슬며시 부아가 치밀었다. 아직도, 손목의 차가운 감촉이나 

단검이 떠서 이동한 것, 흐느낌 소리, 옷이 공중에 둥둥 떠있던 

것을 생각하면 심장이 다 내려앉는데 말이다. 곁에서 열심히 

끅끅대며 웃음을 참던 장비가 갑자기 덤벼들었다. 

"그럼 그건 뭐야? 형님, 분명 그 잡귀가 나한테 화정이 

필요하다고 사정했단 말이오!" 

"사정?" 

끼어드는 장비를 한 대 쥐어박으려는 태도를 취하던 

관우마저도 표정을 굳혔고 유비는 장비에게 의아한 음성으로 

되물었다. 장비는 관우의 주먹을 막는 시늉을 하고 있다가 

반응이 돌변하자 안심했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관우의 

눈치를 슬쩍 보고는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다. 

"그렇수! 내가 그 못된 것을 끌고 나가는데 글쎄 그게...... 

쩝, 자신은 화정을 꼭 만나 이야기해야 한다면서 사정사정을 

하더라구요." 

"잡귀가......? 그럴 리가 없네, 자네가 잘못 들었겠지. 

잡귀가 만나려 하는 사람이라면 원려......!" 

"화정!" 

`귀신과 만나 이야기하는 것은 절대 사절이라고!' 하면서 

속으로 불만스럽게 투덜거리는데, 갑자기 쿠당당탕, 하고 

요란한 소리가 들리면서 문이 급하게도 열렸다. 그러나 

문보다도 더 급하게 달려들어온 것은 훤칠한 키를 지닌 

청년이었다. 

"저런, 똘마니 또 왔군." 

여느때와 다름없이 곁에서 시비성 비아냥을 내뱉는 장비를, 

웬일로 신경도 안 쓰면서 마초가 화정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혼절했다면서?" 

`아니, 뭐, 혼절이라고 할 것까지야......'하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정말 어쩔 수 없다. 

"응, 별 일 아니야. 괜찮으니까 걱정 마." 

다행이라는 듯 제법 깊게 한숨까지 내쉬는 마초의 옆에서 

장비가 피식거렸다. 

"또 뭐냐, 말먹이? 역시 누구누구 일에는 가장 민감하다니까." 

"동료인데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장비의 익살에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진 마초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참, 저렇게 반응을 격렬하게 해 대니까 늘 장비의 

먹이가 되는 것임에 틀림없다니까. 원래, 반응이 없는 

사람보다도 반응이 격렬한 사람을 놀리는 것이 더 재미있는 

법이다. 그것을 모르는 걸까? 장비는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또다시 익살을 떨었다. 

"누가 뭐라고 했었남? 단지 민감하다고 했지 꼭 찍어서 

누구 일이라고는 안 했는데 왜 흥분하고 그러는 거지?" 

"이것 보세욧!" 

잔뜩 흥분해서 숨까지 들이마시는 마초였다. 화정은 

속으로 `놀리는 사람이나, 반응하는 사람이나......하여튼 

둘다 똑같아.'하고 한탄하면서 마초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자신이라도 말리지 않으면 이 두사람은 영원히라도 싸울 수 

있을 듯했기 때문이었다. 

"나 괜찮으니까 걱정마. 그런데 무슨 일을 하다가 온 거야? 

낮에 찾았었는데." 

화제를 엉뚱한 곳으로 돌리는 화정의 솜씨에, 마초는 

또다시 넘어가버렸다. 

"응? 아, 아하.......잠시 거리에 나갔었어. 좀 살 것이 

있어서......." 

갑자기 마초의 얼굴에 또다시 노을이 떴다. 말꼬리를 흐리는 

마초의 곁에 앉았던 장비가, 뭔가를 아는지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리면서 마초가 장비를 슬쩍 노려보는데 화정은 

마초에게 흥미를 보이면서 질문했다. 

"거리 구경 간거야? 에이, 뭐야! 거리 갈 때는 꼭 데려간다고 

했으면서! 뭘 샀는데?" 

그 말에 마초의 얼굴이 그야말로 사과보다 더 붉어져버렸다. 

영문을 모르는 화정이 그 광경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관우가 한숨을 내쉬면서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유비는 입을 다물면서 화정에게서 시선을 뗐고, 마초는 무어라 

말할까 망설이는 것 같았다. 어색하고 한편으로는 답답한 

분위기가 되려는데 장비의 절대로 아름답지 않은 흥얼거림이 

들려왔다. 

"말먹이는 여자의 장신구에 관심이 많다네에~ 그는 몰래몰래 

품안에 예쁜......우악!" 

딱, 하고 엄청나게 위압적이고 폭력적인 소리가 들리면서 

장비가 뒤통수를 감싸쥐었다. 장비의 머리통수 위로 귀엽고 

앙증맞기까지 한 혹이 반짝거리면서 생긴 것 같았다. 마초는 

한 손으로 장비의 뒷덜미를 붙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얼굴을 아직도 홍당무처럼 만든 채 피식거렸다. 

"하, 하......무슨 소리지......아무튼 그럼 나중에 

잠깐 봐......장익덕님은 저와 할 이야기가 좀 

있으시.....죠......네, 그럼 현덕님, 운장님...... 

나중에......하, 하......" 

웃는다고 볼 수 없는 얼굴만 기억에 남기고서, 마초는 

엄청난 체구를 자랑하는 장비를 참 가볍게도 끌고 나갔다. 

화정은 그런 마초의 머리 위로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본 것 

같은 착각이 들었지만 별 일 아니려니, 하고 넘겨버린 채 

유비에게 말을 건넸다. 

"주공, 그게 무슨 말씀이셨지요? 잡귀가 사람을 만나려 

하면 이상한 건가요?" 

마초와 장비로 인해 일시적으로 썰렁해졌던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았다. 유비는 화정의 질문에 관우를 바라보았다. 

관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표정을 차분히 하고는 다가앉았다. 

"대신 이야기해주지, 화정. 자네는 참으로 특이한 곳이 

있어서......잡귀나 그 밖의 사물(邪物)에 대해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자네도 알겠지만 세상에는 산 자만 존재하고 

있는 건 아니네. 죽은 자들도 가끔씩 함께있지. 

즉, 저 세상으로 미처 가지 못한 가엾은 자들이 있다는 

소릴세. 이들은 대부분 사물(邪物)이라는 형태로 존재하는 

거지." 

`결국 다들 귀신이라는 거지, 무슨 형태로 존재해? 말도 

참 거창하게 하시네......' 

불만을 몰래 삼키면서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관우는 친절한 설명을 이어주었다. 

"두 가지 유형이 있네. 첫 번째는 사람들이, 주로 

주술사들이지만, 필요에 의해 불러 일으키는 경우와, 

두 번째는 아직 승천하지 못한 영혼이 강한 집념을 지니고서 

형체를 희미하게나마 지닌 경우. 이렇게 나눌 수 있지." 

`여기까지 와서 수업을 하기는 싫어......라지만 들어야겠지, 

이런 무시무시한 - 귀신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고 나서 

이곳은 화정에게 무시무시한 세계로 둔갑하였다 - 곳에서 

살려면 말이야. 게다가 장비님에게 이 이상 무시당하기는 

싫다구. 쳇!' 

불만 때문에 입을 뾰족하게 내미려던 화정은 자신에게 

관우의 진지한 눈빛이 날아오자 조금 뜨끔한 심정으로 표정을 

바로잡았다. 관우는 조용히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먼저 첫 번째를 설명하지. 자네가 이미 겪은 아귀강시도 

이 경우에 속하니 말이네." 

`아아, 그 지저분하고 짜증나는 괴물?' 

생각도 하기 싫다. 하지만 싫다고 피하기만 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화정은 불만을 거두고 열심히 경청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녀는 애써 의욕적인 표정을 지으면서 

관우를 쳐다보았다. 관우는 그녀의 눈빛이 진지해지자 

그제야 만족스런 표정으로 강좌를 계속했다. 

"첫 번째의 경우는 또다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지. 

그들의 혼이 승천을 하였느냐, 못하였느냐, 하는 것이 

바로 그 차이일세. 첫 번째의 경우에 속하는 사물은 

강시(畺屍)와 아귀강시(餓鬼畺屍)가 있어. 

강시는 이미 혼이 승천한 자이지만, 시체를 이용당하는 

사물이지. 혼이 없고, 맹목적으로 조종만 당하네. 하지만, 

이 보통의 강시란 사물은 주술사가 필히 시체를 구해서 

주술을 행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기 때문에 물리적 힘이 강하고 

명령을 잘 따르지만 부르기 힘들어서 잘 사용되지 못하지. 

대조적으로, 아귀강시들은 시체가 필요하지 않아. 약간의 

소환(召喚)절차만 거치면 영혼을 불러내어 반형상화 시킨 

후에 조종할 수가 있지. 아귀강시는 일반강시에 비해 약간의 

지능을 지니고 있다네. 그래서 스스로도 주술을 아주 소량 

구사할 수 있지만 물리적 힘은 일반강시에 비해 월등히 

떨어지지. 화정!" 

"아하~암, 아앗, 네에!" 

늘어지게 하품을 하려던 그녀는 관우가 얼굴을 들이밀자 

하마터면 침대에서 떨어질 뻔했다. 너무 재미없다. 정말 

지루한 이야기였다. 아무튼, 대략 정리해보면 강시와 

아귀강시의 차이는 주술을 쓰고 못쓰고 차이와 시체가 

필요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라는 거겠지. 그렇게 고개를 

끄덕거리는데 관우의 강좌는 끊기지 않았다. 

"두 번째, 승천하지 못한 영혼이 강한 집념을 지니고서 

형체를 희미하게나마 지닌 경우네. 이 사물을 

원령(怨靈)이라고 부르네." 

`원령?' 

강시나 아귀강시에 비해 훨씬 자주 들었다. 옛날에 

했었던 `전설의 고장'같은 것에 자주 나오던 단어다. 하긴, 

그때, 베개 껴안고 그거 보다가 귀신 나오는 장면이 닥치면 

베개로 얼굴을 가렸지. 휴, 하지만 그것을 봤던 날 역시 

잠을 자지 못했다. 나도 참 미련하단말야, 어째서 그렇게 

무서운데 꾸준히 봤는지...... 

"생전에 어떤 한(恨)을 품은게지. 그 한 때문에 혼이 

승천조차 못하고 헤매는 것이네. 이들은 자신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일을 이루려고 돌아다니네. 사물 중에서 그나마 이성이 

가장 남아있어. 이들은 대부분 원령이라고 부르거나 

잡귀라고도 하네." 

`윽, 그냥 죽지 뭘 또 한을 품어서 산 사람 심장을 

떨어뜨리냐구!' 

"예를 들어, 살해당해 죽은 사람이 있는데 너무나 

억울하다면, 그는 혼백만 남아서 자신을 죽인 자에게 복수를 

하려는 거네. 이 원령들은 대부분 매우 집념이 강해서 

반형체화를 스스로 이루게 되는거지." 

화정은 생각없이 질문했다. 

"만약에, 자신의 복수를 다 이루면?" 

관우는 뜻밖에 손뼉을 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지금 말하려던 참인데, 참 예리하구먼. 복수를 다 이루면 

원령들은 승천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네. 이들은 

강시나 아귀강시와 달리 산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사고할 수 

있는 자들도 꽤 있어. 게다가 원령을 부릴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지. 현 시점에서는 아예 없다고 보는 것이 옳네." 

`에, 뭐야! 시시하잖아.' 

"그런데......" 

관우가 말을 끊더니 화정을 보고는 유비 쪽을 돌아보고는 

잠시 머뭇거렸다. 화정은 어깨를 으쓱했다. 왜 저럴까? 유비도 

얼굴이 잔뜩 굳어있었다. 관우가 자신의 손을 꼼지락거리면서 

망설이는데 유비가 그런 관우의 어깨에 손을 얹더니 나섰다. 

"다음은 내가 얘기하지.......원령은 사람과 대화는 

기본적으로 가능하네. 보통 사람이면 모두 볼 수 있고 대화도 

가능하지. 원체, 지능이 있는 사물이기 때문일세." 

아, 기분이 나빠졌다. 

`뭐야, 그럼 내가 또 덜떨어진 인간이라는 거지?! 그래, 

나 아귀강신가 뭔가하고도 안되고 원령하고도 안된다! 으휴, 

정말.......' 

얼굴을 찌푸리려는 찰나, 유비가 말을 조심스럽게 이어나갔다. 

"그런데.......원령이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아. 자신과 

원한이 있거나 지켜주려는 경우이거나 자신을......" 

잠시 말을 끊는다. 화정은 머리칼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난 누구와 원수 진 일 따위도 없고 지켜줄 사람도 없단말야! 

여기 떨어진지 얼마 안 된 사람이라고요! 

"......승천시키고 부릴 수 있는 사람이네." 

`헉!' 

승천시키고 부려? 참나, 기가 막히는 노릇이다. 화정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럼 저한테 원한이 있거나 도와주려는 원령이었나 보죠." 

이렇게라도 둘러대지 않으면 대단한 취급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피곤하다.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인식되어야 

앞으로 무슨 요상망측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둘러댈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관우와 유비는 넘어가주지 않는다. 

"아닐세, 그런 경우에는, 원령이 꿈에 나타나거나...... 

곧장 행동으로 옮기네. 이렇게 직접적으로 다가와서 만나야 

한다고 사정하지는 않아. 원령사 이외에는 찾아와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사정을 하는 일은 없거든." 

관우의 말이 더 소름끼친다, 그 귀신보다도. 

"하지만......익덕님과는 이야기를 나눴잖아요!" 

"대화는 가능하네, 누구와도. 하지만 오죽 간절했으면 

장비에게까지 사정을 설명하고 간절히 빌었겠는가. 뻔한 

일이네......" 

화정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긴장된다. 그리고 걱정된다, 

자신의 갈 길이! 한탄하는데 투덜거리면서 장비가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섰다. 장비는 모여있는 세 사람 쪽으로 

쿵쿵거리는 발소리를 내면서 다가왔다. 

"이런......원령사는 이미 오래전에 없어졌다고 

들었는데......게다가 상당한 고차원의 술사도 원령사 

역할을 하기는 힘드......." 

"아녀요! 생각해보니까 꿈에서 웬 여자분이 나타나서 

저한테 무어라고 했었네요......" 

식은땀을 등으로 흘리면서 둘러대는 화정에게 의심스런 

눈길을 보내면서 유비가 질문했다. 

"그 여자분이 어떻게 생겼는가?" 

화정은 목으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전설의 고장'에 

나오던 귀신 모습을 말해버리면 되겠지, 뭐. 

"아, 그, 그러니까 말이죠......하얀 옷을 입고 이렇게 

머리가 긴데다 아주 마른......" 

"틀렸다, 임마! 검은 옷에 머리가 짧게 잘려있고 

엄청 뚱뚱했어엇!" 

장비가 바로 잡았다. 

"......" 

*******

화정은 감탄하면서 팔찌를 만지작거려보았다. 정말 

예뻤다. 금으로 만들어진 가는 링 팔찌의 가운데에는 

청금석(靑金石)*이 박혀있었다. 푸르게 윤을 내는 동그란 

청금석은 정말 예뻤다. 

"이거 청금석이네?" 

"응, 서역에서 온 상인들이 왔다고 해서 거리에 나가봤어. 

상인들이 팔고 있길래 샀어." 

마냥 기쁘던 화정은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보석. 보석을 주는 것, 그것도 이 시대에는 

귀했을 이런 보석 팔찌를 준다는 것은......화정은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꽤 비쌌을 텐데......저어, 그런데 이걸 왜 나한테 

주는 거야?" 

"......" 

마초의 얼굴이 굳었다. 부담스러운 생각이 들어서 

자신이 만지작거리던 팔찌를 마초에게 도로 내밀려고 했다. 

그 순간, 마초가 결심이 선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나와 함께 가자." 

조용한 음성으로, 한 손을 내밀면서 이야기했다. 저렇게 

진지한 표정이다.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겠다. 함께 

가자고......? 

"나와 함께 서량으로 가자. 난, 장래에 제후 중 하나가 

될 거야. 원한다면, 더 강해져서 너에게 모든 것을 주겠어." 

"아, 나는......" 

화정은 당황한 나머지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더듬었다. 

장난으로 넘기기는 힘든 상황이다. 저 진지한 표정과 흔들림 

없는 음성이, 그녀가 장난으로는 넘길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었다. 마초는 화정이 머뭇거리면서 주저하자 내밀었던 한 

손을 조용히 내렸다. 

"......내가 싫은 거야?" 

싫다니! 화정은 고개를 서둘러 저으면서 부정했다. 

"아니야! 아니야, 맹기! 단지......난 너무 이른 것 

같아서......그래서......" 

"뭐가 이르다는 거지? 우리, 이제 나이가 열 다섯이 훨씬 

넘었어. 이 정도면......" 

`그거야 여기 기준이지. 사실 난 스물 여섯, 일곱은 되어서 

결혼하는 풍조에 더 익숙하단 말이야!' 

속으로 그렇게 부정하면서 화정은 마초를 올려다보았다. 

새빨갛게 붉어져서는 저렇게나 상심한 표정을 하고 있다. 

자신이 거절당할까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바보같이, 난, 

내가 거절을 하면서 상대방의 표정에 이렇게 신경을 써 본 것은 

처음이란 말이야! 나도 네가 좋아.......이렇게 외치고도 

싶었다. 하지만...... 

`하지만 뭘까, 이 느낌은.......뭔가, 아니라는 느낌......' 

아직은 분명 아니었다. 청혼까지 받아들일 만큼 사랑하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물론, 마초가 좋다. 정말 좋은 

사람이고......함께 다니고도 싶었다. 그리고, 마초를 

따라가면 좀더 편안하게는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그녀는 본능적으로 그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기에 난......네게 말할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가지고 있단 말이야.....애써, 태연한 

척 입을 떼었다. 

"나는......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유비님의 곁에서 

해야할 일도 있어......그때까지, 그때까지 네가 날 

기다린다면, 그리고 인연이 닿아서 우리,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렇게 된다면 대답할께." 

이런, 손끝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마초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화정은 자신이 쥐고 있던 팔찌를 내밀었다. 

돌려주어야 한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화정이 자신의 떨리는 

손끝을 보면서 입술을 깨무는데 - 처음이었다, 마음을 

거절하고 이렇게나 힘이 드는 것은 - 마초의 손이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는 팔찌를 화정의 손에 꼭 

쥐어주면서 화정의 손을 도로 그녀쪽으로 들이밀었다. 

당황한 화정은 얼굴을 붉히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 조르지는 않겠어. 

다만, 무사히......무사히 있어줘. 내가 더 성장하고, 

더 명성을 떨치게 되면 꼭 너를......데려갈께. 네 말이 

맞아. 아직 우리는 많이 부족하고......인연이 닿는다면 

필히 다시 만날거야.......믿을께......이건, 다시 만날 

때까지 간직하고 있어줘. 그때는 확실한 대답을 듣고 싶어." 

따뜻하다. 이렇게나 따뜻하다니. 화정은 마초를 

바라보았다. 기다려준다는 사람이 있다. 거절당하고도, 

그러고도 이전의 남자아이들이 그랬듯 멸시하고 욕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준다고 했다.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 

소설에만 나오는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이 말이 이후에 

거짓이 될 지라도, 지금은 만족한다. 화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초가 화정의 뺨에 손을 살짝 가져다댔다. 

"너, 이래도 아직은 웃어주지 않는구나.......하지만 

언젠가 웃게 될 때, 처음 웃을 그 때는 꼭 내 앞이여야 

한다고 약속해줘야해. 그럴 거지?" 

화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마음은 이미 기쁘다. 정말 

기쁘다. 이런 사람이 나를 기다려준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다. 

하지만......난, 왜 웃지 않는걸까? 이래도 부족한 걸까? 

이래도? 무엇을 더 바라고 있지, 나는.......? 갑자기 

마주보고 있던 마초의 얼굴이 굳었다. 

"어엇, 화정! 뱀이다, 피해!" 

"꺄아악!" 

비명을 지르면서 후다닥 비켜서는데, 마초가 지니고 

있던 단검을 던졌다. 빠른 속도로 날아간 단검은 정확하게 

뱀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안심한 화정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피해!" 

마초가 또다시 소리를 지르면서 단검을 뽑아 화정에게로 

던졌다. 화정은 얼떨결에 옆으로 발걸음을 놓았다. 퍽,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또다른 뱀이 단검을 맞았다. 뱀이다, 뱀! 

정말 싫다! 화정은 울고싶은 심정으로 마초의 옆으로 

다가가 버럭 외쳤다. 

"뭐야! 웬 뱀이 이렇게나 많아?!" 

"모르겠어, 여기는 뱀이 별로 없는 곳인데......일단 

여기를 빠져나가자!" 

"당연히 그래야지, 아앗!" 

화정은 순간 다리를 꺾으면서 풀썩 주저앉았다. 

당황하면서 땅을 짚고 일어나려는데, 뱀 한 마리가 화정을 

향해 기어오는 것이었다. 그대로 얼어버렸다. 너무 징그럽다. 

"뭐하는 거야!" 

마초가 달려왔다. 그때, 굵직한 음성이 귀를 때렸다. 

"야, 너네 뭐하냐? 맹기, 내일 떠난다면서 여기서 뭘 

느기적거려?! 이런 걸로 장난이나 치고 있을래엣!" 

두툼하고 우악스럽게 생긴 손이 뱀을 휙 집어올리더니 

달려오던 마초를 향해 던지는 것이었다. 

"장익덕님, 이럴 때가 아니라고요!" 

마초가 신경질적으로 외치면서 한 손으로 뱀을 후려쳤다. 

덩달아서 뱀의 미끌미끌하고 길쭉한 몸통이 화정의 얼굴을 

후려쳤다. 화정은 순간 몸을 그대로 정지시켰다. 그녀가 

한동안이나 앉은 자세 그대로 눈 한번 안 깜빡이자 조금 

놀랐는지 장비와 마초가 다가왔다. 

"화정?" 

"임마, 왜 그래, 기껏 뱀 하나로?" 

"기껏 뱀이 아니라고요! 여자들은 뱀을 싫어한다고요!" 

"조금 놀란 것 뿐일거야. 저봐, 소리 한번 안 지르고 

멀쩡하게 앉아있......." 

쿵! 

화정은 그대로 눈 뜬 채로 기절하고 말았다. 

"이봐!" 

"그것 봐요! 화정!" 

이 세계에 와서 몇 번을 기절하는 건가. 벌써 두 번째다. 

나도 내가 이렇게 기절을 잘 하는지 몰랐어.......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동물은 다 좋지만 쥐와 뱀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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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1.청금석(靑金石): 보석의 일종. 벽옥과 약간 비슷해서 

벽옥으로 모조품이 만들어진다*작가주 

"바깥 세상은 시끄러운데 우리만 조용하게 지내고.....쳇, 

이것봐, 화정!" 

투덜투덜 불평을 늘어놓던 장비는 곁에서 서적을 나르던 

화정에게 고개를 불만스럽게 돌리면서 그녀를 불렀다. 장비가 

들고있던 연장 몇 개를 집어던지면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나른하게 있을 셈이냐?! 지금 

저쪽에서는 공손찬님과 원소가 화끈하게 싸우고 있는데, 

명색이 고향 친우이신 형님은 왜 가만히 계시는 게야?!" 

장비의 불만에 화정은 자신이 나르던 서적을 건물의 

기둥뿌리 위에 잠깐 얹어놓았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장비는 목에 핏대를 세웠다. 

"왜 대답이 없어?! 앙?! 네말 믿고 여기 평원으로 왔는데 

아무 일도 없잖아!" 

"어차피 곧 부르심이 있을 터인데 왜 그리 서두르십니까? 

주공께서는 공손백규의 서찰을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어야?" 

장비가 화정의 말에 잠깐 멈칫했다. 뒤에서 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 말이 맞다. 형님께선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장비가 화들짝 놀라면서 뒤를 돌아보았고 화정 역시 고개를 

들어 관우를 바라보았다. 관우는 자신의 긴 수염을 한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장비를 바라보았다. 

"공손백규께서 위험하시다하여 막무가내로 간다면 그것은 

우리의 체면이 별로 서지 못할 일이지. 사람들은 형님께서 

객장(客將)이 아니라 수하라고 수군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후에 공손백규의 세력 바깥으로 나가기가 힘이 들게 될 것이 

아니냐. 때가 되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배신하게 되어 떠나는 

것같이 보일 것이야." 

관우의 자상하면서 사려싶은 설명에 장비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관우는 그런 장비를 보고 부드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한편으로는 얼굴 한 구석에 근심을 드리웠다. 약소 세력. 

그렇다. 유비는 아직 약소 세력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아직까지 그 모든 수모와 슬픔을 감내해야만 한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듯하던 관우는 화정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백규께서 유리한 상황은 아니신지가 

꽤 되었는데, 어째서 아무런 연락도 없는겐가?" 

관우의 질문에 화정은 포권을 하며 고개를 약간 숙였다. 

"근심 놓으십시오. 곧 글이 닦아져 올 것입니다." 

"믿어도 되겠는가?" 

화정은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 말에 관우의 얼굴 

한 구석의 근심이 밀려나고, 표정이 금방 환하게 풀어졌다. 

그리고 관우는 장비가 던져버린 연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 장비야. 이 무슨 짓이냐. 하던 일을 다 한게냐?" 

장비는 황급히 연장을 모아 품에 안아들면서 불만스럽게 

쏘아붙였다. 

"이, 일하려던 참이우. 그런데 형님께서 오시니 

방해받아서......땅에 떨어진거유!" 

어리숙하고 핑계라는 것이 훤히 보이는 그 말에 관우는 

너털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장비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그렇게 웃고있는 자신의 의형을 불만스럽게 홀겨보았다. 

화정은 그런 그들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평원에서 지낸 지 두달 가량이 지났다. 그녀가 이곳에 옴에 

따라 시간 전개가 조금 빠르게 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여하튼 

삼국지의 세계는, 본래의 흐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화정이 

생각했던 대로 동맹군은 손견의 옥새를 시발점으로 하여 

참패하여 분노한 조조가 떠남을 기점으로 해산되고 말았고, 

유비들은 화정의 말에 따라 기회를 엿보다가 동맹군이 

낙양으로 진격하던 시점에 적당하게 둘러대고 평원으로 돌아왔다. 

물론, 마초가 잠시 평원에 머물다가 떠난 것은 흐름에 

어긋나기는 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평원으로 돌아온 그들은 

군사를 부지런히 모집하고 훈련시키고, 화정의 권유에 따라 

유비는 주변의 부호들과 친분을 쌓으며 원조를 청했다. 

장비와 관우는 군사를 훈련시키고 병장기를 만드는 일을 

도왔으며, 화정은 유비를 도와 세금을 거두고 장부를 관리하며 

내정을 거들면서 지냈다. 또한 그녀는 군량을 약간이나마 

털어 민중에게 베품을 정기적으로 할 것을 권유하였고, 

결국 평원은 살기좋은 곳으로 이름나 백성들이 점차적으로 

이주를 오는 일도 많이 늘어났다. 유비는 가끔씩 화정에게 

이렇게 치하하였다. 

"화정은 하늘이 내게 내려준 신녀(神女)일세!" 

관우 역시 초반의 태도를 완전히 버린지 오래였다. 아니, 

오히려 엄청난 신뢰와 거의 핏줄이라 여겨질 만큼 아끼며 

총애하였다. 장비는 이전보다 더더욱 화정을 아끼어, 그녀를 

데리고 가끔씩 저자거리에도 나갔고, 관우에게 어쩌다 화정이 

꾸지람을 들을 때면 몰래 술을 가지고 와서 `아차, 화정은 

술을 안 좋아하지.' 라고 머리를 긁적여 화정의 기분을 밝게 

할 때도 종종 있었다. 

어느덧 화정은 낯선 세계에 적응하고 있었고, 도리어 이들 

삼형제의 호의와 친절,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정(情)에, 

자신의 본래 세계로 돌아갈 생각을 거의 지워가고 있었다. 

어찌 생각하면 이곳으로 떨어진 것은, 그녀에게 도리어 더 

좋은 결과가 되었는지도 몰랐다. 비록, 원령사의 능력을 

조정하기 위해서 관우에게 매일같이 배우고 있는 수련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말이다. 

그때의 잡귀 사건 이후, 관우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부적을 몇 개 사다가 원령을 불러들이고는 화정에게 그들과 

대화하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투덜거리던 

화정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고생했지만, 꾸준히 수련을 

거듭한 덕에 잡귀를 볼 수 있게 되었고 제법 대화를 나눌 

수도 있게 되었다. 

대화를 나누어서, 그의 원한이 풀리고 심리상태가 

안정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떠나라.'고 한마디하여 

승천시킬 수도 있게 되었다. 아, 자신도 드디어 능력 하나를 

익히게 되어 무시당하지 않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온순하고 생전에 지적 수준이 

높았던 원령만 그렇게 할 수 있고 포악한데다 생전에 지적 

수준이 거의 없었던 원령은 아직 볼 수도, 이야기할 수도, 

승천시킬 수도 없다. 그래서 가끔씩, 물건이 혼자서 움직이는 

것을 보면, 이제는 기절하는 대신 `무식한 잡귀같으니!'하고 

마음껏 비웃어주고 있다. 그러면 이놈의 잡귀가 그 말을 

알아듣는건지,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던 물건이 움직임을 멈춘다. 

이런 점 역시 매일 밋밋하게 흘러가는 그녀의 세계보다, 

이 곳이 더 재미있어서 마음에 든다. 어쩌면 여기에 더 

머물렀다간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을 수도 

있어. 

"관우님! 관우님!" 

한 병사가 급하게 소리치며 엎어질 듯 달려왔다. 멈추어 

선 채 숨을 정신없이 몰아쉬고있는 그 병사를 관우가 

엄중하면서도 조용한 태도로 꾸짖었다. 

"군중에서 무슨 소란인가! 성급하구나!" 

군사는 고개를 잠시 숙여 사죄하고는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유현령께서 너무 급하게 찾으셔서...... 

화정님과 장비님도 함께 오시라는 전갈이십니다. 어서 

가보십시오, 급한 듯했습니다." 

그 말에 관우가 화정을 바라보았다. 화정은 짧게 답했다. 

"결국......우려하던 일이 벌어졌군요. 서찰은 

당도하지않고 세작(細作 = 첩자)만 왔던 모양입니다. 

일단 가시죠." 

장비가 곁에서 혀를 끌끌 찼다. 

"아니, 화정......나도 아직 소식을 못 들었고, 자네 

역시 그럴 텐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는거지? 운장 

형님도 모르시는 눈치신데......" 

"그렇군, 나도 도착한 것이 서찰인지, 아니면 세작인지 

모르겠네만......" 

말끝을 흐리며 의견을 구하는 관우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짓고 섰는 장비를 두고 화정은 나르던 서적을 다시 

들어올리면서 발걸음을 먼저 옮겼다. 관우와 장비는 알수 

없다는 표정만 지어보이고는 일단 화정의 뒤를 따랐다. 

화정은 쓰게 입맛을 다셨다. 아, 맞다. 내가 잠시 

까먹었는데, 유비는 공손찬의 원조 요청 때문에 간 것이 

아니라 공손찬이 자수성가한 사람 특유의 자존심 때문에 

원소를 가볍게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전쟁터에 나가는 

것이었지......화정은 관우와 장비 몰래 신경질적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

"출전이라뇨?!" 

웬 난데없는 소리냐는 표정을 지으면서 장비가 기겁을 했고 

관우 역시 얼굴을 약간 찌푸렸다. 화정만이 별 반응 없이 

조용히 듣고 있었을 뿐이었다. 유비는 자신이 구겨쥐고있던 

서찰을 화정에게 내밀었다. 화정이 유비를 올려다보자 유비는 

부드럽지만 어두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읽을 것을 권하였고, 

화정의 속깊은 심성을 잘 알고있는 관우가 곁에서 거들었다. 

"상관없네, 화정. 먼저 읽도록 하시게." 

"그럼." 

화정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보인 후 유비가 건넨 서찰을 

받아들였다. 이미 이들과 함께 지낸 세월동안 자신이 중국어를 

능숙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화정이었다. 서찰에는 

공손찬의 경과와 군사 사정, 원소의 군세 등이 세밀하게 

적혀있었다*. 공손찬이 크지는 않은 군세로 맞서고 있다는 

사실이 나와있었다. 그를 깨달은 화정의 얼굴이 약간 

어두워지자 유비가 한숨을 내쉬었다. 

"보았다시피......백규 형님께서 연(燕)과 대(代)의 

군사들만 끌고 원소를 치러 떠나셨다구먼. 역시, 아직도 

원소를 가볍게 보고 계시는 것이 틀림없는 듯하군, 그래......" 

유비의 말을 들으면서 화정은 말없이 관우에게 서찰을 

내밀었다. 관우가 서찰을 펼치는데, 곁에서 장비가 머리를 

불쑥 내밀며 뒤통수를 긁적이더니 관우에게 조심스럽게 

한마디했다. 

"좀 읽어주슈. 난 잘 모르겠소." 

그 말에 유비와 관우의 얼굴에서는 더운 김이 솟는 듯했다. 

화정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또 시작이군..... '하고 생각했다. 

"이런이런, 익덕......내가 그렇게 누누이 말하지 않았더냐. 

글 정도는 읽어야 할 것이 아닌가." 

장비에게 유비의 가벼운 핀잔이 날아갔고, 태평한 장비는 

키득거리면서 넘겼다. 장비는 누가 어떤 잔소리를 하던 항상 

무사태평하다. 무예에 대한 것 빼고는 그 어떤 핀잔도 

장비에게는 충격을 줄 수 없다. 글에 대한 것, 덜렁대는 

성격에 대한 것, 늘 대책없이 사는 그 생활태도도 

절대로 장비에게는 심각한 점이 아니다. 

결국에는 늘 그렇듯이, 관우가 서찰을 소리내어 장비에게 

읽어주었다. 그렇게, 모두가, 심지어는 장비까지도 - 다 

읽고 나서도 무슨 소린지 몰라 딴 소리를 잔뜩 하던 장비는, 

관우로 인해 머리에 혹을 잔뜩 쌓고 나서야 설명을 듣고 

조금 파악이 된 듯하다 - 알게 된 연후, 유비는 화정을 

바라보았다. 

"어찌 생각하시는가?" 

화정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작에서도 도우러 갔으니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백규께서 위험하시게 되었습니다. 실로, 도울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곁에서 관우가 끼어들었다. 

"허나 화정, 자네는 분명 공손찬님의 서찰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말에 뒤에서 장비가 `맞다맞어.' 라고 떠들다가 유비의 

눈총을 맞고 있었다. 화정은 조용히 그들을 둘러보았다가 

잠시 생각에 다시 잠겼다. 기억을 돌이켜보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그 부분을 잘못 오해하여 - 라기보다 잘못 

기억하여가 옳을 것이다 - 생긴 일인 듯했다. 물론, 그녀가 

잘못 헤아렸다고 고백하더라도 크게 책임을 추궁할 유비 

일행은 아니었지만, 화정은 단 한번의 실수가 얼마나 

치명타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한번 실수를 하고 나면, 이후로는 어떤 제안을 하더라도 

`저번처럼 틀리는 것 아니냐는 식의 의심을 동반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생각대로 유비 일행이 움직여주지 않는다면, 

정말 큰 사건 앞에서 유비가 자신의 말을 안 믿을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커다란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그녀는 잠시의 

궁리 끝에 해결책을 생각해냈다. 늘 그렇듯 거짓말에 능숙한 

그녀는 또다시 솜씨를 발휘해버렸다. 그것도 아주 태연한 

얼굴로. 

"기다릴 생각이었습니다만......자세한 상황을 모르고 

한 짐작이니 정확하지는 않았습니다. 공손찬님께서 그렇게 

원소를 낮게 보실 줄은 몰랐습니다......" 

".....하기는 자네는 백규공께서 원소같은 사람들을 크게 

달가워하지 않는데다 가볍게 보시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몰랐겠군, 그래......" 

유비의 말에 관우와 장비의 표정 역시 당연하다는 것이 

되었다. 

'아뇨, 사실은 책 읽은 사람은 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너무 황당한 세계에 있다보니까 까먹었던 거지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화정은 속으로 유비만세를 부르면서 고개를 천연덕스럽게 

끄덕였다. 더 길게 변명을 늘어놓으면 안된다. 적어도 난 

`도둑이 제 발 저리다.' 란 말의 표본이 될 생각은 없단 

말씀이야. 짧게만 말하고 넘겨야 의심을 덜 받는다. 

"예......어쨌거나, 백규 공을 구하러 가셔야 하겠지요. 

이 상태에서 백규 공을 무난히 도우실 수만 있다면 세상은 

주공을 달리 보게 될 것입니다." 

"좋-았어! 오늘 같은 날을 내 애써 기다려왔도다! 

싸움판아, 이 익덕을 기다려라! 핫핫!" 

역시 장비는 싸우는 것 외에는 머릿속에 들어간 것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런, 익덕, 또 덜렁대지는 않았으면 하네." 

가볍게 장비를 질책하면서도 관우의 표정은 밝았다. 

유비는 화정을 슬쩍 바라보았다. 화정의 반동탁 연합군의 

해산 예언이 들어맞은 이후로 유비 일행은 남다른 

자신감을 조금이나마 얻었다. 그들은 화정이 영리하고 

도움이 되는 이라고 믿었으며, 실제로 그녀가 여성이라는 

결점을 넘어서기 위해 장비와 관우는 화정에게 틈틈이 

호신술과 무예를 가르쳤다. 

그리고 그들이 깨달았던 점은 그녀의 몸이 매우 날래다는 

것이었다. 장비나 관우는 화정에게 무예를 배운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화정은 그녀가 익혀온 무예일 뿐이라고 답했고, 

그 이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가지를 빼먹었다. 관우는 말했었다. 화정이 무예를 익힌 

적이 있어서 날랜 곳은 있어도 선천적으로 정말 재능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둔치라고. 그 혹평은 화정으로서는 눈물겨운 

것이었지만, 부정은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이전에 

태권도나 검도를 배울 때, 사범들이 모두 그랬다. `사범생활 

십여 년 만에 이렇게 재능이 없는 사람은 처음입니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한동안 말이 없었고, 화정은 고개만 

푹 숙이고 앉아있었으니까. 재능이 없다는 말은 결코 반가운 

말이 아니다. 여하튼, 유비는 그런 관우의 보고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그들 형제는 그러한 사실들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실제로 대륙에는 수만 가지의 다른 무예가 

있었다고 생각했고, 첫인상부터 화정은 무예를 잘할 리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즉각 서둘러 채비를 하세. 얼마나 시일이 걸리는가?" 

유비의 질문에 관우가 유비에게 포권해보였다. 

"워낙에 평상시의 대비와 훈련이 철저했던지라, 일부 

부장들과 저, 그리고 익덕과 화정이 조금만 수고한다면 

내일 정오라도 출발이 가능합니다." 

유비는 그 말에 만족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늘 그렇지만 

유비의 표정은 온화하고 잔잔하지만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화정은 유비가 그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삼국지에서 묘사한 

바와 약간 틀리다고 생각을 했다. 그녀가 알던 유비는, 

매사 우유부단하며 겸손과 낮춤의 화신이었기 때문이었다. 

화정은 속으로, 유비 뿐 아니라 관우나 장비 또한 자신이 

알던 것과 다른 점이 많은 것을 살피고는 `역사소설도 결국 

필자의 주관이 배여서,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겠군.'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거리곤 했다. 

의외로 의심도 많고 겸손한 점도 있으며 때로는 과격한 

관우나, 덜렁대고 순진하기는 해도 군사적인 면에서는 

가끔씩 형인 관우나 유비보다도 치밀한 곳이 있는 장비는 

여러모로 화정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또한 성질이 급하고 과격한 마초가 보기보다 쑥스럼을 

잘 타며 조용한 면이 다소 많고 실수도 자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그러했을 것이다. 화정은 자신이 어느덧 

이 삼국지의 세계에 빠져든 것을 후회하고 현세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줄어들고 있음을 알고 한숨을 내쉬었다. 

태어나서 부모의 무관심속에 자라 사람 사이의 정에 약한 

화정에게는 유비 삼형제의 호의와 따뜻한 대접이 - 비록 

그것이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 그만큼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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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1.서찰에는~적혀있었다: 경과를 좀더 설명하자면 대략 이렇다. 

제후들의 동맹이 파기되고 나자 그들은 모두 자신의 근거지로 

돌아갔다. 하내로 돌아온 원소는 군량의 부족으로 곤란을 

겪고 있었는데 기주목冀州牧 한복韓馥이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공손찬을 견제해달라는 목적을 지니고, 원소에게 보태 쓰라며 

군량을 보내왔다. 

한복은 자신의 기주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공손찬을 견제할 

세력이 원소밖에 없음을 알고 호감을 사 두었던 것이었다. 

한복은 명문가 출신인 원소가 은인을 침공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계산에서 보내왔지만 원소는 곡식이 풍부한 기주를 

차지하기 위해 잔꾀를 썼다. 

공손찬에게는 함께 기주를 공격하여 이득을 나누자고 글을 

보내고, 군사를 일으키게 시켰다. 그리고 한복에게는 공손찬이 

군사를 일으킨 사실을 가르쳐주고, 자신의 군사를 받아들이게 

한 다음에 기주의 성안으로 들어가 기주를 차지해버렸다. 

화가 난 공손찬은 그 때문에 원소와 대적하고 있다*작가주

"부탁입니다. 제발 유현덕 공을 뵙게 해 주십시오." 

병사들이 한 사람과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그 장면은 화정과 

함께 한낮의 여유로운 거리를 잠깐 산보하고 들어오던 관우의 

눈에도 들어왔다. 이마에 식은땀을 맺은 채 병사들을 

밀치려고까지 하고있는 삽십대 후반 가량의 사람은 단정하고 

곧게 생긴 그 느낌과는 다르게 억지로라도 안으로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것이었다. 관우가 화정을 내려다보았다. 

"......저 자는......?" 

화정은 평소의 습관대로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꾸했다. 

"만나보십시오. 해가 될 사람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렇게 대꾸하는 화정의 머릿속에도 저 사람이 누구일지에 

대한 의문이 샘솟고 있었다. 화정은 초기에 유비들의 일행이 

되는 사람들의 이름을 차례로 생각해보고 있는 중이었다. 

누구더라......화정이 턱에 검지를 뻗어 대고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생각에 골몰해있는 사이, 관우는 그 장신을 움직여 

작은 소란이 일고 있는 상황 속으로 걸어갔다. 

병사들은 옥신각신하다가 관우가 다가오자 급히, 그러나 

여전히 그 사내를 붙든 채로, 물러서면서 허리를 굽혀보였다. 

관우는 조용히 그들을 훑어보면서 어조를 부드럽게 하여 물었다. 

"어떤 분이신가?" 

병사 하나가 얼굴에 긴장을 담고는 사내를 힐끗거리면서 

쳐다보다가, 다른 동료들이 말이 없자 앞으로 나섰다. 

"잘 모르겠습니다만......현령님을 뵙게 해 달라고 억지를 

부려서......." 

관우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얼굴에 담았다. 하지만 그것은, 

약간의 부드러움을 가미한 것이어서, 병사를 반쯤 안심시키고 

있었다. 관우의 얼굴은 그만큼, 어딘가 후덕한 곳이 숨어있다는 

점에서 가끔씩 유비를 닮았다고 화정은 생각했다. 

"형님을 뵙게 해 달라셨다? 그럼 뵙게 해 드리면 될 것을 

왜 이리 소란을 피우는 건가." 

그녀가 들이닥쳤던 때에는 바쁘다면서 알현을 거절시키려던 

관우였다. 그랬다. 화정이 짚어넘기는 사실에 불과했지만, 

관우 역시 화정과의 첫 대면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는, 여러모로 자신들 일행을 감탄시켰으며 

도움이 될 듯한 영특한 화정을, 그 당시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알현을 거절해버려서 만나지 못한다면 얼마나 후회했을 것인가 

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저렇게 너그럽게 

방문객을 맞아들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 인위적이고 이해타산적이라는 느낌은 들었다. 하지만, 

화정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중요한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증거가 

된다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저 완고한 관우가, 태도를 저리 

바꾼 것을 근거로 삼는다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여하튼, 관우의 온건하지만 힘이 실린 말에 병사는 고개를 

천천히 조아렸다. 

"저는 내일 있을 출전 준비하시느라 바쁘실 듯하여......" 

"상관없다. 자, 어서 함께 가십시다. 저와 저쪽에 있는 저의 

동지도 모두 형님을 뵈오러 가는 길이었으니 동행하면 되실 

것이오." 

조금은 오만한 억양에 경건한 말투가 어우러져서, 언뜻 

듣기에는 온화하고 부드럽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어딘가 

오만한 느낌이 남는 것이 관우의 말투였다. 이는 화정이 

오랜 시간동안 관우와 함께 지내오면서 터득한 사실이었다. 

아무리 별 뜻이 없이, 꾸짖는 것이 아닌 말이어도 관우가 

말하면 부아가 치밀게 되어버리는 경우도 적잖이 있었다. 

대조적으로, 장난이 다소 심하고 말을 험하게 하는 장비는, 

특별히 악의가 있는 사람 외에는 절대로 그런 말투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 순진하고 덩치가 크며 완력이 강한 무사는 조금의 

입단속만 하면 되려 귀여운 면이 있을 정도였다. 화정은 

자신이 상상하던 거칠고 무력적이며 저돌적인 장비의 이미지를, 

어느새 단순무식하고 친근한 아저씨의 이미지로, 그리고 다소 

신격화되었으며 관대하고 늘 공정하게만 느껴지던 관우의 

이미지는 엄격하면서 오만한 곳이 있지만 약간은 약한 면도 

많이 지니고 있는, 지극히 평범하고 인간적인데다 충실한 

무인의 이미지로 바꾸고 있었다. 

여하튼 그 삼십대 정도의 사내는, 어찌할 줄을 모르면서 

관우와 화정의 곁으로 다가왔고 병사들은 우물거리다가 

조금은 부아가 치미는 듯한 얼굴로 휙 돌아서서는 다시 

보초자리로 되돌아갔다. 관우와 남자의 뒤를 따르던 화정은, 

두 사람의 엄청난 덩치차이를 보고는 저도 모르게 어색한 

느낌을 받았다. 

보통의 사람에 비해 키가 작고 체격이 왜소한 남자에 

비해서 키도 훨씬 크고 덩치도 곱절은 비대한 관우의 몸집은, 

마치 고목나무와 보통의 나무가 나란히 서 있는 듯한 광경으로 

보였다. 

에, 말해두지만 이 사내, 왠지 삼국지에서도 그렇게 유명하고 

영향력이 있는 인물은 아닐 것 같았다. 조금 영향력이 있던 

사람들은 어떤 느낌같은 것을 받았기 때문일까. 아무리 체구가 

왜소하고 인물이 볼품없어도 느낌까지 저렇게 평범해 보이지는 

않았다. 관우라는 거물에 비해 좀 영향이 적은 인물일 것이다. 

여하튼 관우는 걸어가면서도 고개를 옆으로 약간 숙여 남자에게 

이름을 묻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존함이 어찌 되십니까. 이 사람은 유현덕님의 큰 

의제(義弟)되는 관우라 하오만." 

남자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포권을 해 보였다. 

"아, 이거 실례했습니다! 이 미천한 자는 간옹(簡擁), 

자(字)는 헌화(憲和)라고 합니다. 경우가 없어 미처 소개를 

못했습니다. 공께서 유현덕공의 아우이시라는 운장이시군요." 

역시 생각대로 그리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물론 매니아였던 

화정은 간옹을 알고 있지만, 그다지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은 

아니다. 여하튼 화정은 속으로 `아는 척은......' 이라고 

뇌까리면서 간옹에게 눈을 흘기고는 팔짱을 꼈다. 분명 이 

때의 관우가 그렇게 이름이 알려졌을 리는 없다. 

물론, 화웅을 벤 것으로 유명해졌을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여하튼 아직은.....관우가 그다지 유명한 인물이 아닌 것만은 

확실한 것이다. 화정은 한숨을 옅게 내쉬면서 `그렇다면 이 

사람이 간옹이구나. 맞아, 이 사람이 따라갔지......그리고 

곧 계교 전투가 벌어질 때 등장하는 사람이 누구더라......?' 

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는데....... 

"뒤의 서생은 유하, 자는 화정(和貞)이라고 합니다. 함께 

현덕공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간옹은 몸을 돌려 화정을 돌아보면서 그 두툼한 눈꺼풀을 

지닌 작은 눈을 크게 떴다. 

"그렇습니까! 매우 젊은 분이시군요. 간옹이라 합니다." 

"......아, 예. 운장께서 말씀하신 대로, 유하입니다. 

가르침 부탁드리겠습니다." 

화정은 속으로 `누가 소개해달랬나......'하는 다소의 

원망을 관우에게 품은 채 고개를 마주 숙여보였다. 그녀는 

대인관계가 원활하지는 않은 편인지라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소개되고 소개받는 것을 그다지 즐겨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색않고 최대한 겸손을 떨어주었다. 간옹은 키가 작은 

편이어서, 여자 중에서는 키가 꽤 큰 편인 화정과 비슷할 

정도였다. 간옹은 화정의 말에 손을 황급히 저어보였다. 

"가르침이라니, 당치 않습니다. 도리어 제가 가르침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소개는 이만 해 두고 일단 들어갑시다. 형님께서는 예서 

집무를 보고 계실 것입니다." 

걷다보니 어느덧 현청 앞에 당도한 세 사람이었다. 평원 

현청은 그다지 크지 않았기에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관우의 재촉에 인사를 거둔 화정과 간옹도 고개를 들고 

돌단을 올랐다. 관우는 늘 그렇듯이 - 이 신중하고 근엄한 

무인은 항상 형에 대한 예의를 잊지 않기에, 형이 혹여 

놀라기라도 할까봐 아무리 급한 전언을 해야 할 때여도, 이 

행동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 두어 번 헛기침을 하여 

기척을 낸 이후 공손한 투로 말했다. 

"형님, 뵙고자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안으로 모시게." 

유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에게 안정을 

주고 이상하리만치 한없이 믿음을 주는 그 어조에 관우는 

간옹과 화정을 돌아보면서 양손으로 안으로 들어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너무나 익숙한 화정은 별 망설임 없이 

앞장섰고, 간옹은 잠시 멈칫하다가 관우의 이끌림대로 

열린 문안으로 발을 집어넣었다. 

산더미 같은 문서와 책을 쌓아놓은 속에서 유비가 급히 

몸을 일으켜 일행을 맞았다. 비좁은 방안에 놓인 작은 

탁상에, 먼지가 잔뜩 쌓인 책더미를 헤치고 나타나는 

유비는 모습이 후줄근하게까지 보였다. 하지만, 역시 

유비의 주변에는 늘 모를 광채같은 것이 따라다니는 것 같다. 

아무리 볼품없게 해도 뭔가 느낌을 주는 것이 유비였다. 

화정은 속으로 `하긴, 이후에 황제가 될 사람인데,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하고 생각해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관우가 뒤를 돌아보려 하고, 화정은 조용히 서 있는데, 

작은 체구에 걸맞는 재빠른 행동으로 유비에게 다가간 간옹이 

갑작스럽게 유비의 앞에 털썩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절을 

하였다. 어안이 벙벙해진 일행에게 간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덕공, 공의 존함은 익히 들었습니다. 주공으로 모시도록 

해 주십시오." 

그 말에 관우와 화정은 얼굴을 마주보았고 당황한 유비는 

황급히 간옹의 소매를 붙들어 몸을 일으키게 하였다. 

"아니, 이 무슨 일이십니까!" 

유비의 당황한 표정을 바라보는 간옹의 일그러진 얼굴에는, 

간절하기 그지없는 표정이 담겨져 있었다. 간옹은 역시 

간절함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오래전부터 귀공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 주공으로 

모시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장부로서 마음에 정한 주군을 

모시지 못함은 욕이 되는 법입니다. 간청하니 수하로 

받아주십시오." 

당황한 표정으로 간옹에게 무어라 하려하는 유비에게, 

관우가 한걸음 앞으로 나서 간옹에 대해 설명을 덧붙였다. 

"간옹이라 하는 분이십니다. 앞에서 병사들이 막아서고 

있었지만 열심히 형님을 뵙게 해 달라고 청하고 계셨던 것을 

이 운장, 모시고 왔습니다." 

유비는 조용히 간옹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천천히 자신의 턱에 손을 가져다댔다. 무엇인가 잠시 생각에 

잠길 때의 버릇이었다. 화정과 관우는 말없이 그런 유비와, 

또다시 바닥에 엎드리는 간옹을 번갈아보았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방안을 휩쓸고 흘러가자, 

간옹이 입을 열었다. 

"제 능력이 부족하여 망설이시는 것입니까." 

그 말에 유비는 화들짝 놀라는 시늉을 - 화정이 보기에 

유비는 참으로 시늉을 잘 해내는 사람이었다 - 하면서 

황급히 간옹을 일으켰다.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청컨대 헌화께서는 그런 말씀으로 

높으신 능력을 비하하시어 이 비(備)의 가슴에 비수를 꽃지는 

마십시오! 단지 이 사람은 보잘 것 없는 세력과 부족한 능력으로 

감히 헌화를 받아들일 자격이 있는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을 

따름이오!" 

유비의 간곡하면서 부드러운 말에 간옹은 손을 내저었다. 

"그럴 리 있겠습니까! 이미 이 간 아무개는 공을 모시기로 

결정한 사람이외다! 그러니 부디 사양마시고 수족처럼 부려 

주십시오! 적어도 이 부근에 대해서는 아는 점이 다소 있으니 

미력하게나마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유비는 그 온화한 얼굴에 은은한 미소를 담았다. 그 얼굴에 

조금의 자신감과 새로운 동지를 맞아들인 것에 대한 기쁨이 

퍼져가고 있다고 화정은 생각했다. 어쨌든 간옹은, 의형제인 

관우와 장비를 제외하고 보면 화정에 이은 두번째의 동지다. 

간옹의 손을 일으켜 자리를 권하고 있는 유비를 보면서 

관우가 낮은 목소리로 화정에게 질문을 던졌다. 

"해가 되지 않을 사람이란 것을 어찌 알았는가?" 

화정은 관우의 질문에 조용히 답했다. 

"그저......그럴 것 같았습니다. 사람이란, 때로 자신의 

느낌을 믿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화정의 야무진 답에 관우는 옅은 너털웃음을 내면서 자신의 

아름다운 수염을 쓰다듬었다. 화정은 그런 관우를 힐끔 

곁눈질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팔짱을 끼었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관우는 화정의 속에서 나온 말을 대략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래. 형님께서도 조금씩 동지들을 모으실 수 

있겠지......." 

"걱정않으셔도 됩니다." 

화정의 말에 관우는 천천히 자신의 팔을 그녀의 어깨에 

올렸다. 관우는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간옹과 유비를 

보면서 화정에게 따뜻한 말을 실어보냈다. 

"자네가 오고나서부터 그나마 일이 풀리는 것 같다는 

느낌도 다소 받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여하튼 알 수는 

없지만 나와 익덕, 그리고 형님께서는 늘 자네를 믿고 존중하고 

있네. 그를 알아주었으면 좋겠군. 도움이 되던 안되던, 자네는 

우리 삼형제에게 있어서 상징적인 의미를 띄고 있거든." 

그 말에 화정은 가슴이 찡해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 천천히 손을 올려보았다. 어깨에 얹어진 

관우의 커다랗고 단단한 손바닥으로, 체온이 느껴져왔다. 알 

수 있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화정을 생각해주고 있다....... 

`도움이 되던 안되던 상징적인 의미를 띄고 있다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참으로 오랫만에 이런 느낌을 가져본다고, 

화정은 생각했다. 자신에게 저런 의미를 부여할 사람들을 

만나다니, 어쩌면 이 세계로 떨어진 것은 자신에게 있어서 

불행이 아니라 행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입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화정은 관우에게, 진심이 담긴 감사를 했다. 

`참으로 자상한 분이시군요, 관우님은.......' 

*******

"우웃! 이런......!" 

북방의 패자라는 명칭도 이런 때에는 소용이 없는 듯했다. 

전혀 상대가 될 수 없는 장수에게 쫓기는 비참한 심정은 

공손찬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한참 말을 닫던 공손찬은, 

몸이 요란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히히히힝-" 

말이 구슬프게 울부짖으면서 몸을 기울였다. 오랜 

기마(騎馬)가 몸에 밴 공손찬은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았다. 재빠르게 몸을 옆으로 날렸다. 동시에 말이 쓰러지고 

말았다. 

"공손찬, 각오해라!" 

낙마(落馬)는 가까스로 피했으나 그보다 더 큰 재앙이 

눈앞에 있었다. 우락부락하고 광대뼈가 불쑥 튀어나온 얼굴에 

집채같은 체격을 지닌 장수가 시퍼렇게 날이 선 무기를 

치켜들었다. 공손찬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가누려 애를 

쓰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이대로 끝나고 마는가......!' 

공손찬의 안타까운 절규와 함께 장수의 무기가 힘있게 

내리쳐지는 소리가 났다. 바람을 가르는 그 차가운 소리를 

들으며 공손찬은 그만 눈을 감고말았다. 순간 차가운 

금속성의 소리가 울려퍼졌다. 

챙! 

그것은 공손찬에게는 구원의 소리임과 동시에 공손찬을 

공격하려던 장수에게는 방해물이 나타났음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했다. 공손찬은 웬 창이 자신을 공격하던 무기를 마주받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놀라면서도 자신의 몸을 재빠르게 

일으키는 것을 잊지않았다. 

"문추(文醜), 이 창을 받아라." 

침착하면서 낮은 톤에, 당당함을 갖추었지만 부드러운 

느낌마저 드는 목소리였다.  공손찬은 몸을 완전히 일으켜 

앞을 응시했다. 문추의 창을, 다른 한 줄기의 창이 가로막고 

있었다. 문추의 험악한 얼굴이 더더욱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이건 또 뭐야!" 

다소 천박스럽고 무지한 느낌의 억양과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방금전의 목소리와 대조되는 것이었다. 여하튼 

공손찬은, 갑자기 나타난 뜻밖의 구원자가 흰 갑옷과 흰 

전포를 걸치고 흰 투구를 쓰고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문추는 근육덩어리의 단단한 팔을 움직여 장수를 

향해 무기를 내리쳤다. 

챙! 

맑은 소리가 나면서 장수는 문추의 창을 마주받았다. 

공손찬은 여기까지는 별 생각이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놀라게 한 것은, 이어진 장수의 창놀림이었다. 뺑그르르 

회전하면서 문추의 가슴팍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파악! 

"흡, 이, 이녀석!" 

젊은 장수는 문추의 창에서 자신의 창을 재빠르게 빼내어 

믿을 수 없을만큼 신속한 놀림으로 문추의 흉갑(凶鉀)을 

깨부수었다. 비록 문추의 몸에는 상처가 나지 않았지만 그 

두꺼운 흉갑을 통째로 분쇄시켜버린 것으로 보아, 엄청난 

속도에 못지않은 상당한 파괴력도 동반하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공손찬은 감탄을 보냈다. 

문추는 자신의 창을 들어 장수의 어깨를 노렸지만 장수는 

공격하던 자세 그대로 창의 뒷꼬리를 이용하여 문추의 

창날을 수비해낸 후 곧장 문추의 왼팔을 찔렀다. 

"쿠악!" 

문추는 괴성을 지르면서 말을 물러나게 했다. 그러나 장수는 

그마저도 가만두지 않았다. 그의 창대가 문추의 말을 거세게 

후려쳤던 것이었다. 

"히히히힝!" 

졸지에 소스라치게 놀라버린 문추의 말이 펄떡 뛰어오르자 

문추는 당황하면서 자신의 왼 팔을 감싸쥐었던 손으로 

말고삐를 힘껏 쥐었다. 그러나 말은 진정하기는커녕 문추가 

갑자기 말고삐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더욱 놀랐는지 미친 듯이 

공손찬의 반대방향으로 내닫기 시작했다. 공손찬은 그 광경을 

반은 안도감과 반은 우스운 심정을 담은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문추의 모습이 시야에서 채 모두 사라지기도 전에 그는 

장수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말을 걸었다. 

"영용하신 분을 뵈온 덕에 이 백규가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되었소. 성함이라도 알려줄 수 없으시오?" 

장수는 말에서 내려 투구를 벗었다. 장수의 맨 얼굴을 본 

공손찬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이런, 아직 젊은 사람이었구려!" 

그의 얼굴은 날카로운 선이 있었으며 차갑고 어두운 눈매를 

지니고 있는, 준수하면서도 가라앉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지만, 아직 앳된 기운이 약간 돌고 있는, 어린 얼굴이었다. 

아마 채 스물도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공손찬은 생각하면서 

장수를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이 사람은, 아시다시피 공손찬 백규라 한다오. 

장군은.......?" 

"조운(趙雲). 자(字)는 자룡(子龍)을 씁니다." 

그는 천천히, 침착하게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였다. 조금도 

서둘거나 당황하는 기색이 없이 차분한 그의 모습은 아직 

어릴 것이 틀림없는 그의 나이에 비해 상당히 깊은 인상을 

공손찬에게 남겨주었다. 공손찬은 조운을 향해 물었다. 

"어째서 이곳에 있었소? 내 휘하는 아니라 알고 있소만, 

원소 군이면서도 적군인 이 공 아무개를 구해줄 리도 

없고......." 

"본래 원소 휘하에 있었습니다. 허나, 그가 

충신구민(忠臣救民)의 마음은 전혀 없음을 알고 실망하여 

떠나려던 길이었습니다." 

공손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가 차오르고 있었다. 속으로 원소에게 아둔하다고 

비웃으면서 공손찬은 조운의 양 손을 가만히 붙들었다. 

"원소놈.......아까운 사람을 잃었구려. 어떻소, 자룡. 

그렇다면 내게 힘을 빌려주지 않겠소?" 

공손찬의 말에 조운은 조금 망설이는 눈치였다. 조운이 

선뜻 허락을 내리지 않자 애가 탄 공손찬은 이런 훌륭한 

장수를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 아직 청년에 불과한 

그가 원소의 가장 자랑하는 상장인 문추를 물리쳤다는 것은 

그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실력자임을 시사하는 

바이리라 - 간절하게 말했다. 

"부탁하오. 이 공 아무개를 위해 힘을 빌려주시오!" 

조운은 잠시 그런 공손찬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태도에는 왠지 모르게 아쉬움과 마지못해 답하는 듯한 

느낌이 섞여있었지만 공손찬은 기쁨을 억누르지 못하며 

조운에게 감사를 하고는 얼른 자신의 부하들이 있는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금 현재 상황이 급하오. 자세한 이야기는 이후에 합시다. 

일단 저 쪽으로 가야하오." 

공손찬의 그 말에 조운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무심히 살펴보았다. 그는 지나가던 기마병 하나를 

번개같은 창놀림으로 찌르고는 말을 빼앗아 공손찬에게 

시선을 돌렸다. 조금은 씁쓸한 심정으로 - 자신이 이렇게 

궁한 신세가 될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은지가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따위의 생각을 공손찬은 해보고 

있었다 - 자신을 바라보는 공손찬을 향해 조운은 신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전세가 상당히 안 좋은 듯 보입니다." 

공손찬은 그 말에 주름진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당초 너무 소수의 군대를 끌고 

온 것이 잘못이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조운은 자신의 

말고삐를 끌어당기면서 공손찬에게 권유하였다. 

"언제까지 한숨쉬고 계시겠습니까. 이 자룡, 부족한 

능력이오만 힘껏 돕겠습니다." 

그 늠름한 모습에 공손찬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조운이 

권하는 말 위에 올랐다. 그는 천천히 말을 몰았다. 조운은 

그런 공손찬을 조금 실망스런 눈으로 보면서 천천히 뒤에서 

따랐다. 그의 또렷하고 영민한 눈매가 어딘지 모를 주저의 

뜻을 담고 있었음을 공손찬은 정확히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

"형님!" 

"현덕! 잘 왔네! 자네 덕분에 한 위기 넘겼네, 그려!" 

공손찬은 환한 빛을 얼굴에 잔뜩 띄우면서 유비의 양손을 

붙들었다. 유비가 무어라고 하려는데 뒤에서 관우가 조용히 

공손찬을 향해 물었다. 

"전세가 어떻습니까?" 

공손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고개를 흔들면서 

가라앉은 목소리를 냈다. 

"별로 좋지 않네......원소가 생각보다 병력이 많더군......" 

화정은 그런 공손찬을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속으로 혀를 찼다. 

`하기는, 나라고 해도 삼국지를 먼저 읽지 않았더라면 

속았을 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공손찬이 조금 가엾기도 했다. 어차피 

얼마후에 망할 세력이라지만 딱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유비가 그나마 현재의 명성이나마 얻고 평원의 현령이라도 된 

것은 알고보면 공손찬 덕분이 아니던가. 여하튼 이것저것 

생각하던 화정은 무의식적으로 눈길을 공손찬의 곁으로 돌렸다. 

그 순간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저 사람!' 

키가 크고 훤칠한 체격에 흰 전포와 흰 투구를 쓰고 있는 

청년은 진중이라 그런지 흰 투구를 천천히 벗고 있었다. 

단정하게 하나로 묶어올린 긴 검정머리칼에 오똑한 코, 

서글서글하고 차가운 눈매와 날카로운 턱선이 어우러져 다소 

서구적인 모습이 있는 얼굴은 분명 화정으로써는 낯익은 

모습이었다.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이 세계에 처음 떨어졌을 때 

건달들에게서 구해주고 그냥 가버렸던 청년이었다. 

워낙 잘 생겨서 그런지 아니면 눈매가 차갑고 턱선이 

날카로워서 그런지 모르지만 어쨌든 기억에 남았던 그 

청년이었다. 기가 막혔다. 

화정이 계속해서 그 쪽을 보고 있자 청년 역시 화정의 

모습을 발견했는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 

큰일났다!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으면 안되는데! 무안해진 

화정은 얼른 고개를 유비와 공손찬에게 돌려버렸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던 화정은 조금 

호기심이 동해서 슬쩍 곁눈질을 해 보았다. 

청년은 말없이 공손찬의 옆에 시립해 서 있을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됐다, 이대로 그냥 넘어가면 된다. 유비가 

어서 공손찬과 대화를 마치고 헤어져야 할 텐데. 저 청년이 

공손찬의 수하라면, 분명 공손찬도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 참 묘하단 말이야.......저 사람이, 

기껏 망할 세력인 공손찬의 수하였나? 난, 꽤 인상을 강하게 

받았는데......좀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별로......아니었나? 역시 사람의 느낌은 

믿을 것이 못되나봐.' 

화정이 긴장한 상태로 열심히 청년을 훑어보는데, 뒤에서 

장비가 커다랗게 하품을 했다. 화들짝 놀란 그녀는 제발이 

저려저서, 괜히 헛기침을 하고는 자세를 바로 잡았다. 기껏 

하품소리에 놀라냐고 할지 모르지만, 장비의 하품소리는 

`기껏' 이 절대 아니다. 거의 꼬마 아이가 비명지르는 소리와 

크기가 비슷할 정도다. 어쩌면 저렇게 건강하고 뻔뻔한데다 

눈치라고는 없는지...... 

장비가 지루한 척을 하자, 한참 담화하던 유비가 잠시 

대화를 중단하고 공손찬의 곁에 시선을 돌렸다. 그는 약간 

놀라면서 공손찬에게 질문했다. 

"아니, 백규 형님. 못 보던 얼굴입니다." 

"아, 그렇군!" 

공손찬은 유비의 말에 그제야 기억이 난다는 듯 정색을 

하면서 그 청년을 앞으로 약간 나오도록 끌면서 소개했다. 

"인사하시게. 내가 원소의 상장(上狀) 문추(文醜)에게 

몰려있을 때 도와준 사람이네. 매우 뛰어난 무예솜씨를 

지니고 있더군. 자룡(子龍), 이 분은 내 아우 뻘 되는 유비, 

자(字)는 현덕이네." 

그의 소개에 청년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밝아졌으면서도 얼굴에 수심과 후회같은 것이 잠시 

지나갔다는 것이었다. 덩달아 화정은 얼굴이 잔뜩 굳어진 

것을 느꼈다. 그는 조용히 포권하여 고개를 숙였다. 

"유비님, 조운(趙雲)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에는 조금의 이상한 어감이 

숨어있는 것을 화정은 느낄 수 있었지만 공손찬은 모르고 

있는 듯 했다. 여하튼 화정은 속으로 `세상에, 이 사람이 

조자룡(趙子龍)이었다니!'하고 감탄하는 중이었다. 

사람일이란 참으로 묘하다. 함께 보낸 시간도 없었고 단지 

구해주고 사라진 사람에 불과했건만 그녀는 아직까지도 

그의 얼굴을 머릿속에 새기고 있었다는 것, 오히려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정이 든 마초보다도 더 그랬다. 워낙, 

삼국지를 읽을 때 좋아했던 조운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가 조운이라는 것을 모르면서도 그렇게 느낌이 가까울 

수가 없었다. 

하긴 삼국지를 읽은 사람들 중 조운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주변에서 그나마 삼국지를 좀 읽었다는 

친구들은 대부분 조운이 가장 멋있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화정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설을 읽을 때 가장 좋아했던 

인물은 유비와 손권이었지만, 조운도 멋지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느낌이 은연중에 가미되어서 첫 인상이 그렇게 기억에 

남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혹시 이것은 그녀 자신이 느끼는 

`친근감' 이라기보다 이후에 거물로 성장할 인물이라서, 

그래서 뭔가의 빛나는 느낌을 받았던 것을, 그녀가 익숙한 

느낌으로 바꿔서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차, 그러고보니, 이 즈음에 등장하는 인물이 

조운이었구나! 원래 공손찬의 수하로 있다가 유비한테 

오는 거였지......맞아!' 

화정도 화정이었지만 이상한 것은 유비도 마찬가지였다. 

유비에게 있어 조운은 처음 보는 순간부터 이상한 친밀감 

같은 것이 솟는 존재였다. 사람이란 오랜 세월을 늘상 

대하고도 멀고 불편하게 여겨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초면인데도 마치 몇 십 년을 알고 지낸 듯 친근하고 

우러르는 마음이 생기는 사람도 있다. 

소위 말하는 인연이라든가 상성이 좋다는 소리로 설명되는 

것일 듯하다. 유비에게 조운은 오히려 공손찬보다도 더욱 

친밀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 훤하고 준수한 얼굴과 

더불어 다소 조용하고 고독한 듯한 그의 인상은 유비에게 

`친밀'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다. 유비는 조운의 손을 붙들었다. 

"백규 형님을 구하여 주다니, 이렇게 고마울 데가! 유현덕이오." 

그런 유비를 보는 조운의 눈에도 은근한 친밀감이 들어있었음을, 

화정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속으로 `하기는, 

이후에 그런 인연을 지니는 사람들인데.'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여하튼 그녀로서도 이 세계에서 자신의 첫 번째 인연이라면 

인연이라 할 사람이 조운이었다니 조금은 황당한 경우가 

아닐 수 없었다. 

`아, 난 아무래도 유명한 사람을 주변에 깔고 다니다봐. 

첫 등장부터 화려했지. 구해 준 사람이 조운, 다음에 도와준 

사람은 마초, 그 다음에는 장비님, 그 다음에는 유비님과 

관우님......덕분에 공손찬에게 소개받고 반동탁 연맹군까지 

쫓아가서 조조도 보고 마등도 보고......아차, 내가 지금 

뭐하나? 다른 사람에게도 `님'자를 붙여야 하는데...... 

모르겠다! 친하지도 않은데 뭣하러 생각에서까지 예절 따져야해? 

가만, 나 왜 이렇게 변했담?' 

알 수 없다. 이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깍듯한 예절교육을 

받은 덕에 이런 일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친하지도 않은데 

왜 생각에서까지 예절을 따지나?' 식의 생각은 더더욱 그렇다. 

아무래도 여기 와서 자신은 너무 많이 변한 것 같다. 

잡생각이 많아지고 사고방식이 편해진 것 같다. 잔뜩 다른 

생각이 묻혀있는데 유비는 조운의 손을 이끈 채 사람들을 

소개하였다. 

"이 사람은 나의 의제 관우. 자는 운장이네." 

관우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조운을 바라보았다. 

"고맙게 생각하오. 나보다 연배가 어린 듯하니 말을 편히 

해도 되겠소이까?" 

다소 오만한 관우 특유의 말투에 화정은 `역시 할 수 

없다니까.'하는 심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유비의 

세력이 낮고 관우 자신의 명성도 별로 높지 않다. 그런 현재도 

저 정도이니......이후에 사망 이유가 지나친 오만일 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아예 틀린 것은 아닌 것 같다. 

일설에는 관우가, 자신이 사망한 곳인 맥성(麥城)에 

포위되어있을 때,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수많은 군사들을 

손가락질하면서 `미련하게 에워싼 꼴들을 보게.'하고 비웃었다는 

소리도 있으니 정말 짐작할 만하다. 그 오만을 조금만 덜어내고 

겸손과 신중을 유지해 갈 수만 있다면 더 좋은 결말이 나지 

않을까 싶다. 조운은 동요하거나 불쾌해하는 낯빛 하나 없이 

정중하고 고개를 숙였다. 

"화웅의 목을 베신 명성에 관해 들었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공손하면서도 관우의 자존심을 높여주는, 한마디로 뭐랄까, 

요령이 들어있는 것이었다. 화정은 그 말에 만족한 표정으로 

변하는 관우를 보면서, `조운은 좀 요령이 있는 사람.' 으로, 

오늘도 나름대로의 삼국지 인물의 재평가를 해 보고 있었다. 

곁에서 장비가 나섰다. 

"현덕 큰형님의 막내 의제 장비, 자는 익덕이우. 으하하, 

이것 참, 마초 놈하고 참 다르기도 하지. 이렇게 공손하다니!" 

또다시 자신의 으르렁대던 숙적 마초를 내세우면서 조운을 

칭찬하는 장비였다. 장비 역시도 유비와 비슷한 친근감을 

느끼는 것일 지도 몰랐다. 화정은 그렇게 생각하였다. 

조운을 대하는 삼형제의 태도는 참으로 부드럽고 친근하여서 

그렇게 느껴졌으며, 이는 실제로 장비가 생각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장비 역시 조운을 본 순간 친밀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오똑하고 다소 차가운 곳이 있는 생김새는 마초의 

치어올라간 눈썹으로 인한 인상과 많이 달랐다. 마초의 첫 

인상이,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끈끈한 정이 느껴진 

것이 아니었던 것에 반해, 조운은 차가우면서도 자신과 

오래 지낸 형제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어쨌든 단순한 장비로서는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리였으므로 그냥 장비는 그것을 `나쁘지 않고 좋은 

인상'으로 - 단어사용도 간결하기 짝이 없다 - 결정지어 

두었다. 그리고 유비는 간옹을 소개한 이후 화정에게 

다가왔다. 화정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제발 소개하지 

말아주세요!'하고 속으로 외쳤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것을 어쩌리...... 

"아, 그리고 이쪽은 유하(柳河). 자는 화정(和貞)일세. 

내게 늘 좋은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지. 자가 여성스럽고 

외모가 어여쁜 덕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네, 허허......." 

다른 때 같았으면 고마웠을 유비의 마지막 말에 

이번에는 진땀이 났다. 분명 조운은 자신이 여자임을 알 

것이었다. 옷차림이 달라지고 머리를 두건으로 싸매고 있어 

못 알아본다면 좋겠지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운은 

유비의 말에 한쪽 눈썹을 약간 꿈틀하고 움직였다. 

조금 의심스럽다는 얼굴이기는 했다. 화정은 속으로 `윽, 

혹시 여자 아닙니까, 하고 말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을 

앞세웠다. 장비같았으면 `어? 낭자, 어디서 본 얼굴인데? 

낭자 맞지 않아?' 하고 대번에 튀어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조운은 역시 장비와 틀렸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까딱해 

보였다. 

"반갑소." 

건방진 곳이 있어보이면서도,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다른 이들에게는 고개를 꽤 숙여 인사를 하더니 

그녀에게는 가볍게 끄덕이는 정도였다. 의외로 자신의 눈에 

들지 않는 사람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나보다. 

조운, 다소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재평가에 오점을 

남기는걸. 화정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덩달아 인사했다. 

유비가 말했다. 

"실례오나 자룡은 연배가 어찌 되오?" 

조운은 그 말에 잠시 조용했다가 이내 답했다. 

"올해로 열 여덟이 됩니다." 

`윽, 나랑 한 살 차이네?' 

현실에서는 열 아홉이라는 소리다. 생각보다 조운의 연령이 

어리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이 삼국지에 대한 게임을 할 때 

조운의 나이가 몇이더라.......? 구에이라는 회사의 삼국지 

게임*을 한 적이 있었는데, 조운의 나이가 이 때쯤 꽤 들게 

만들었던 기억이 났다. 하기는 조운은 몇 년도에 출생했다는 

정확한 자료가 없으니 나이를 대부분 추측만 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추측이니 당연히 오류가 났을 수도 있고 말이다. 빨리 

연도를 기억해내야겠다. 자신의 시대로 돌아가면 화정은, 

나이가 추측이 안되는 많은 인물들의, 정확한 나이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 될 지도 모른다. 이제는 돌아가서 돈 버는 일만 

남았다. 어쨌거나 이러쿵저러쿵해도 조운 역시 어릴 적부터 

인재로 나섰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여하튼 

유비는 기뻐하였다. 

"화정, 모처럼 비슷한 연배가 또 보이는군. 유하의 나이는 

열 일곱이라오. 두 사람이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군. 화정, 

마맹기와 그랬듯 잘 지내시오." 

물론 유비로서는 별 뜻 없이 잘 지내라는 소리였겠지만 

마초의 이야기가 나오자 화정은 왠지 머쓱해졌고 뒤에서 

장비가 킬킬거리는 소리가 옅게 들려왔다. 장비의 웃음소리는 

관우의 헛기침소리와 함께 사라졌고 화정은 속으로 `두고보자, 

익덕님! 운장님께, 벌 설 때 보초병 기절시키고 몰래 나가서 

술 먹고 왔다는 것까지 다 일러버릴테다!' 하고 이를 갈면서, 

겉으로는 최대한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조용하게 숙였다. 

"자자, 인사는 이제 적당히 했으니 본격적으로 전황을 봅시다." 

유비들이 되려 자신보다 이상하리만큼 조운에게 친밀감을 

내세우자 불안했는지 공손찬이 조금 가시 돋친 듯한 

목소리로 주의를 집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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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1.삼국지 게임: 삼국지를 소재로 한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이 게임은 현재 시리즈로 8편까지 나와있으며, 삼국지 

인물들의 생김새, 하면 보통 이 코에이Koei사社의 삼국지 

게임에 있는 일러스트를 생각하게 될 정도로 유명하다. 삼국지 

매니아 치고 이 게임을 안 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작가주

조운은 답답한 심정으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유비. 

틀림없었다. 또한 장비와 관우. 틀림없었다. 조운은 

탄식하였다. 

`평원에 갔을 때에 진즉 찾아뵙고 모시겠다고 말씀드려야 

했을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하였다. 이전에, 원소의 명으로 

도적을 소탕하면서 다니다가 잠시 돌아다녀볼 목적으로 

휴가를 얻고서 이곳저곳을 다녀본 적이 있었다. 한때, 평원에 

도적이 들끓는다는 소리를 듣고 평원에 들러보았는데, 그곳의 

새로 부임한 현령이 매우 통치를 잘 하고 그의 두 의제가 

무술이 뛰어나 도적이 거의 소탕되었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때는 관우와 장비의 이야기만 들었을 뿐 평원의 그 통치 

잘 하는 현령이 유비였음을 알지는 못했다. 사실 원소에게서 

공손찬에게로 옮겨오기는 하였으나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을 

보면서 이야기하던 상산초옹(常山樵翁)*의 말을 잊지 못하였다. 

한심하였다. 좀더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불찰이었다. 조운은 

씁쓸한 심정을 미처 모두 지우지 못한 채 다시 술자리로 

돌아가기 위하여 장막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그때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무인으로서의 자동적인 반사신경은 

그로 하여금 창대를 꼭 쥐도록 하였지만 상대를 본 그는 

다시 창대를 내렸다. 

그, 아니 그녀는 놀란 기색도 없이 조용히 조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환한 달 아래에서 그녀의 하얀 얼굴은 더욱 희게 보였고 

회색의 눈동자가 더욱 투명하게 보였다. 조운은 아까 진중에서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공손찬의 뒤에서 시립해있던 그는 

약간의 후끈함을 느끼고 투구를 벗던 참에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황급히 고개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그 서생을 본 조운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때, 분명 평원에 갔을 때에 보았던 

소녀였다. 남자라기에는 작은 키와 여자라기에는 큰 키, 그리고 

두건으로 완전히 가리지 못한 검고 빛나는 앞머리칼과 유난히 

흰 피부는 그를 증명하고 있었다. 옷차림이 달라 모를 뻔했지만 

틀림없었다. 남몰래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그 아가씨로군.' 

조금의 의문도 일었다. 그때의 그 요란하고 야하기 짝이 

없던 옷차림은 어떻게 되고 이곳에서 남자 행색을 하고 있는 

것인가? 눈앞의 사람이 유비였음을 알고는 씁쓸하게 분노가 

일던 터라 잠시 그녀에 대한 의문은 잊었었다. 

유비. 크고 긴 귀와 점잖은 생김새는 그에게 귀공자적인 

느낌을 주었으며 후덕한 성품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그의 

의제들 역시 어딘가 모르게 익숙했다. 다소 오만한 듯하지만 

어찌보면 공손하고 사려깊은 듯한 그의 큰 의제 관우와, 

거칠고 말을 고를 줄 모르지만 악의는 보이지 않는 작은 의제 

장비. 

그들은 조운에게 있어 이상할 만큼 가족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도리어 몇 년 전에 잃었던 친가족들보다도 더 친하게 느껴졌다. 

유비에게 관우와 장비, 그리고 간옹을 소개받은 이후, 그녀를 

유비가 남자로 소개했을 때에 의뭉스러움도 느꼈지만 생각이 

깊고 품성이 함부로이지 않은 그는 여인의 몸으로 전장에 

있기에는 힘드니 남자행색을 하고 있으려니, 하는 생각으로 

조용히 속은 척을 했던 것이었다. 

역시, 그녀였다. 자신을 올려다보았던 그 청초하면서도 

도도한 회색 눈동자와 아름다운 눈매는 그 사실을 

확신시켜주었다. 

"아, 조운님." 

잔잔하고 흔들림 없는 태도였지만 그녀도 조금 놀라기는 

한 모양이었다. 가녀린 목소리에 작은 떨림을 담고는 조용히 

인사하였다. 조운도 덩달아 인사하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직 술자리는 파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만." 

화정은 조용히 조운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차분하고 

고우면서 기품있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남장을 하고 있어도, 

저런 분위기가 흘러나오는데 어째서 사람들은 그녀가 여인인 

것을 모르고 속고 있을까. 여하튼 이런 생각을 하면서 조운은 

그녀의 답변을 잠자코 들었다. 

"주공께서 명령하신 바가 있어 잠시 나왔소. 그쪽이야말로 

어쩐 일이십니까." 

목소리는 가늘고 예쁘지만 남성의 어조를 잘 내는 사람이었다. 

속으로 조금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스스럼없이 대해주었다. 

"잠시 생각할 것이 있어 나왔소." 

남성을 대하는 어조로 바뀐 조운의 말에 그녀는 말없이 

돌아섰다. 그리고는 이내 장막을 걷고 들어가버렸다. 쌀쌀한 

여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조운은 `그렇군, 군중에서 사내 행색을 

하려면 그리 해야 할 것이겠군.' 하고 짐작했다.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는 장막을 보면서 조운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유비. 어찌하여 인연이 이제야 닿았단 말인가. 공손찬에게 

고개를 숙이기는 하였으나 이미 강자가 된 자로서 권력의 맛을 

잘 알고있는 공손찬을, 조운은 꿰뚫어보고 있었다. 공손찬의 

모습과 태도에 숨어있는, 은연중에 드러나던 그 오만과 독선을 

그는 잘 기억하고 있었다. 사회적 강자가 되면 역시 사람은 다 

저렇게 되는가. 역시, 거절했어야 했다. 

`상산초옹......어찌하여 현덕공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시지 않았는지......' 

이제 막 만난 것에 불과한 조운의 마음에 이런 수심을 던질 

만큼이나 유비는 매력있는 인물이었다. 조운은 그제야 상산초옹의 

안목을 깨달을 수 있었다. 화가난 마음을 겨우 삭히면서 천천히 

팔을 뻗는 순간, 갑작스레 탁한 공기가 느껴졌다. 

"!" 

조운은 긴장하면서 허리에 찬 검에 손을 댔다. 처음에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자 이내 탁하고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 있어!] 

`......원령이로군.' 

조운은 검을 천천히 뽑았다. 전장이니 원령이 나타나는 것은 

별반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이곳에 있다고 하는 그 말에 의해 

짐작하건대, 진중의 누군가가 죽인 원령일 것이었다. 

[이곳에 있어! 이곳......여기.......아, 나를 정화시켜 

줄 것이 이곳에.......!] 

순간 조운은 잠시 멈칫하였다. 정화시켜주는? 자신이 알기로 

원령사는 없었다. 공손찬은 자신이 자랑하는 기마대를 이끌고 

왔다. 하지만 주술사를 크게 천시하는 그였기에 이곳에 데려온 

주술사가 없었다. 게다가, 원령사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주술사 중에서 실력을 겨룰 자가 없다던 사현조차 

원령을 정화시키고 다룰 수는 없다고 들었다. 그런데 누가 

원령을 정화시킨단 말인가. 하지만 원령이 떠드는 소리이니 

틀림없었다. 

더럽혀지고 원한으로 가득차 세상을 떠도는 원령은 자신을 

정화시킬 사람들이 어느 곳에 있는지 아주 잘 알았으며, 또한 

그들을 스스로 찾아오는 법이었다. 조운은 검에 기를 조금 

불어넣어 옅은 검기(劍氣)를 일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뿌옇고 반투명한 형체가 다가오고 있었다. 지저분한 색의 몸과 

붉게 충혈된 눈. 틀림없었다. 

[나, 나를 막는 놈은 다 죽일테다! 난 가야한다. 정화.......!] 

원령에게 가장 강한 욕망은, 당연한 말이지만 원한을 갚는 

것이다. 원한을 갚겠다는 본능만이 그들의 정신을 온통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가끔씩은 그 대상이 이미 죽거나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승천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원한을 

갚겠다는 욕망 다음으로 강한 욕망은 정화되어 저승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정화할 수 있는 자를 찾은 원령은 맹목적이다. 

현재의 이런 난세가 온 것도, 원령사가 없기에 원령들이 

승천하지를 못하여, 그 수가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승천하지 못한 원령은 원한을 풀지 못한 상태보다 더 

악독해지고 포악해져서 사람을 함부로 해치고 다닌다. 조운은 

검을 뽑아들며 낮게 꾸짖었다. 

"네가 정화될 수 있도록 도울 자는 이곳에 없다! 잘못 찾은 

모양이니 돌아가라." 

그러나 원령은 조운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면서 울부짖었다. 

[지쳤어......정화받아야 해.......날 막는 놈...... 

죽인다......죽인다......] 

순간 원령의 입에서 희뿌연 덩어리가 토해졌다. 살아있는 

자들의 숨을 막히게 하고 살점을 썩게하는 공기였다. 꽤 

오랫동안 떠돌았던 모양이다. 원한을 풀고나서 오래지 않은 

원혼은 그나마 이성적으로 사람과 대화를 하지만, 승천하지 

못하고 목적없이 떠도는 기간이 너무 길면 그들은 강시보다도 

더 이성이 없어진다. 조운은 피하려다가 자신이 피하면 장막에 

명중된다는 사실을 상기하고는 검을 휘둘렀다. 

파파팍! 

검은 불꽃이 튀면서 파란 검기를 머금은 조운의 검이 

원령의 공기를 파쇄시켰다. 원령은 괴상한 울부짖음을 토하면서 

조운에게 자신의 팔을 휘둘렀으나 조운의 재빠른 검은 원령의 

팔을 잘라버렸다. 원령은 조운이 잠시 몸을 틀어낸 사이 

장막으로 들어가려 하였으나 조운의 주먹이 원령의 가슴팍을 

강하게 때렸다. 

퍽! 

둔탁한 소리가 나면서 원령이 조금 물러났다. 원령이 

애통하게 울부짖었다. 

[가게 해! 가게 해줘! 난 가야해! 가야해!] 

보통 원령들은 생전에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이정도로 당하면 

가버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원령은 끝까지 가지 않는 

것을 보아, 짐작했던대로 꽤 오랫동안 이승을 헤메었던 

모양이었다. 아마도, 아주 오래전에 원한을 갚았거나, 원한이 

풀렸지만 정화되지 못하여 긴 세월을 떠돌았을 것이었다. 

조운은 품안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어 자신의 검에 붙인 후 

검기를 좀더 크게 일으켰다. 검에 또렷하고 진한 푸른색의 

검기가 맺힘과 동시에 종이가 붙은 부분은 하얗게 타올랐다. 

조운은 원령의 목을 겨냥하고는 베려 하였다. 그때였다. 

"그만 두세요, 안됩니다!" 

또렷한 목소리가 그를 만류했다. 조운은 아랑곳않고 빠른 

칼놀림으로 원령의 목을 그었다. 

[키익! 저, 정.......정화 할 분이.......!] 

`뭐? 정화할 사람?' 

조운은 그제야 조금 어이없는 심정으로 원령의 목이 떨어지고 

반투명한 그 형체가 사그라드는 것을 바라보았다.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나면서 누군가 그에게 뛰어왔다. 짐작한대로 그녀였다. 

그녀는 원령이 사라진 자리를 손으로 잠시 짚어보더니 조운을 

매서운 눈초리로 올려다보았다. 

"쓸데없는 일을 하셨군요. 이미 힘이라고는 없던 원령입니다." 

화가 난 나머지 여인의 말투가 또다시 나오는 그녀였다. 조운은 

검을 허리에 찬 검집에 집어넣으면서 차게 대꾸했다. 

"원령이란 그렇습니다. 그대로 두면 더 큰 한을 품고 떠돌게 

되는 것이니 제거하는 편이 좋습니다." 

조운의 대꾸에 그녀는 화가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조운의 어깨정도밖에 안 오는 그 키로 

올려다보면서 또박또박 말했다. 

"이렇게 소멸시키면 환생조차 하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이 원령 역시 한때는 사람이었던 자입니다. 이왕이면 정화를 

시키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하지 못한다고 들었다니? 말투가 수상하군.......' 

은연중에 의심이 갔다. 원령사가 있었다는 것도 의외지만, 

원령사 정도 수준의 주술사이면서, `환생조차 하지 못한다' 는 

확신의 말투가 아니라 `환생조차 하지 못한다고 들었다' 는 

식의 말투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수상하다는 생각은 감추기로 

했다. 이 사람에 대해 아는 바도 없는데 섣불리 추궁하는 것은 

좋지 않다. 조운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대가 하시겠습니까? 안에 계신 분들께는 해악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베었습니다." 

그의 말에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눈치였다. 

"화정, 그대가 여인임은 이 운(雲)도 알고는 있습니다. 

좀더 행동을 조심하시는 것이 좋겠소. 원령에게 그런 정(情)을 

베푸는 것은 전장의 사내가 할 일이 아니니 말이오." 

조운은 차갑게 잘라 말하고는 고개를 약간 숙여보이고 다시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에서는 찬 바람소리만 불 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장막 안은 따뜻했고, 술과 고기의 

향기로운 냄새가 사람들의 즐거운 목소리와 어우러져 있었다. 

조운은 다시한번 유비와 공손찬을 바라보면서 턱에 한 손을 

가져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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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1.상산초옹(常山樵翁): 상산의 나뭇꾼 늙은이란 뜻. 삼국지를 

읽은 사람은 알지만 조운의 고향은 상산이다. 유비에게 

고목나무를 통해 깨달음을 준 현자로 이야기된다. 썩은 고목의 

힘을 의지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땅을 의지해 새로이 자라야 

한다는 교훈이다. 썩은 고목은 망해가는 한나라를 상징한다. 

조운의 스승이 상산 초옹과 막역한 벗이었다고 조운이 유비에게 

이야기하는 구절이 있다*작가주

"의외로 조용하구만......." 

장비가 입맛을 쩍쩍 다시면서 못마땅하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평소 같으면 장비에게 한소리 했을 관우이겠지만 이번만은 

관우 역시 기분이 좋지는 않은 듯 굵직한 눈썹 사이에 의문을 

잔뜩 담고는 화정에게 질문했다. 

"이보게, 화정. 뭔가 순조롭지 않다는 느낌이네. 백규 

형님께서 아예 공격할 생각을 거의 않으시는구먼........" 

화정은 관우의 질문에 쉽게 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기억하는 

바로는 곧 동탁이 의로운 체, 원소와 공손찬을 화해시키는 

서찰을 보내올 것이었다. 화정이 대답이 없자 장비가 곁에서 

괴물같은 소리를 내면서 하품을 해댔고 그 바람에 조금 놀란 

화정이 고개를 들자 관우는 자신의 아우를 노려보았다. 

또 관우의 잔소리를 듣게 될 것같은 장비는 일찌감치 입을 

다물면서 히죽 웃어보였고 그 모양을 보고있던 조운이 피식 

웃었다.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들어보이는 사람이 저렇게 

순진하게 - 라고 표현을 해야 할지 필자도 망설이고 있다 - 노는 

것을 보니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화정은 잠시 눈을 감았다. 

고민이 되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유비에게 득이 될 일은 

없었다. 단지, 이 전투에서 공손찬을 도왔다는 것 하나로 

약간의 명성이 올라갈까, 그 정도일 뿐 아무 득이 없다. 이제 

곧 돌아가게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름이 알려질수록 좋을 테지.......' 

화정은 그렇게 결론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정이 한참동안 

말을 않자 관우 역시 대답을 포기했는지 아무런 재촉도 하지 

않고 관우는 조운에게로 말머리를 돌렸다. 

"조운이라 했는가?" 

"그렇습니다." 

관우의 질문에 조운은 포권하면서 정중하게 답했다. 화정은 

속으로 불이 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은 늘 그렇게 무시하는 

투로 대하면서 관우에게는 저렇게 정중하다. 아까만 해도 

그렇다. 원령을 정화시켜주려고 기운을 느끼고 나갔는데, 

죽이지 말라는 자신의 만류는 들은 척도 않고 베어버렸다. 

그리고 그를 탓하는 자신을 무안하게 만들고는 깨끗이 무시하고 

여기로 들어가버렸다. 철저히 무시당하기는 처음이다. 공손한 

조운의 태도에 만족했는지 관우는 자신의 아름다운 수염을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지껏 관우의 눈치를 살피던 

장비가 얼른 끼어들었다. 

"그런데 조운, 당신은 대체 무엇 때문에 백규 형님을 따른 

거유? 우리 형님께서는 당신을 꽤 맘에 두어하시던 눈치......." 

"자룡, 자네의 무예를 잠시 곁눈질 한 적이 있었네. 매우 

출중하더군." 

관우가 눈치없는 장비의 말을 자르면서 재빠르게 나섰다. 

조운은 그런 관우의 뜻을 알아챘는지, 장비의 질문을 못 들은 

척하면서 조용히 답했다. 

"운장이나 익덕의 고강한 무예에 비할 바이겠습니까. 그저 발 

밑도 못 따라올 실력이지요." 

겸손한 그의 인품은 관우나 장비에게도 상당히 호감을 주는 

것이었다. 화정은 그런 세명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큰 일을 할 사람들이었다. 그렇다. 이름도 길이길이 

남겠지. 하지만........조운은 당분간은 유비를 섬기지 않을 

사람이었다. 아마 유비가 원소 아래에 있을 즈음해서야 만나게 

될 터이지만.......화정은 몸을 일으켰다. 관우가 시선을 돌렸다. 

".......곧 종결될 전쟁입니다. 원소 또한 지쳐있으니 함부로 

공격하지 않을 것이며, 이쪽도 공손찬님의 엄명으로 섣부른 

공격을 삼가고 있지 않습니까." 

장비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장비는 그 험악한 얼굴에 약이 

잔뜩 오른 듯한 표정으로 화정에게 검지를 뻗어 삿대질을 해댔다. 

특별히 나쁜 뜻은 아니었지만, 흥분하면 일단 몸짓부터 나가는 

장비로서는 많이 참은 행동임을, 관우는 물론 화정도 잘 알고 

있었다. 

"이봐아! 뭐셔?! 그럼 우린 애매하게 고생만 하고 득이 없는데 

왜 쫓아온 거야?!" 

그의 말에 화정이 장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순간 장막 내는 

조용해졌다. 화정의 똑바로 바라보는 눈동자는 너무도 맑고 

아름다운 회색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고고한 기품은 이렇게 

무엇인가를 똑바르게 응시할 때에 가장 빛났다. 명령에 

익숙하고 강한 행동력을 나타내는 표정. 그녀의 그런 표정은 

거친 전장에서 살아온 남자들마저 압도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렇다면, 장 익덕께서는 백규께서 위급한 것을 두고 보실 

참이셨단 말씀입니까!" 

낮지만 힘이 있고, 힘이 있지만 구슬이 구르는 듯 맑은 

목소리가 쩌렁하고 울렸다. 순간 장비는 입을 다물었다. 관우 

역시도 의외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고 조운만이 조용히 팔짱을 

끼고 서서 그 광경을 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장비는 화정의 

눈빛이 수그러들지 않자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의외로 순진하고 다른 사람의 지적인 - 무력적인 것은 

절대적이지만 지적인 곳에서는 가장 약한 것이 장비라는 

작자다 - 압박에는 약한 장비는 얼른 양팔을 휘휘 내저었다. 

"아, 아니, 화정......그게 아니라........!" 

"이득이 되지 않겠다하여 빠지겠다는 것은 주공의 후덕하신 

인품에도 반(反)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세상 사람들이 

비웃을 것은 어찌 생각을 못하십니까!" 

어느새 이 세계에 너무나 잘 적응해가는 화정의 말에 

장비는 조용해졌다. 뿐만 아니라 관우까지도 숙연해지는 

분위기였다. 화정은 이들이 유비를 들먹이는 것에 가장 약하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책으로, 또는 경험으로. 

영리한 그녀는 책을 미리 읽고 추리하여 이곳 삼국지의 

세계에서, 자신의 추측을 행동으로 겪고 관찰하여 확신을 내린 

이후 배워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때껏 말이 없던 조운이 

차분한 음성으로 받았다. 

"그만들 하시지요. 어차피 전란의 시대에, 전투 하나하나에 

모두 의미를 둘 수는 없습니다." 

그 말에 도리어 화정이 입을 다물었다. 정말 할 말이 없다. 

전란의 시대. 그렇다. 평화로운 시대는 결코 아니다. 이곳은 

화정이 살던 곳처럼 늘상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러가지 않는다. 

화정이 살던 곳은 사는 것 자체보다도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옷과 더 좋은 생활을 향해 나아갈까를 고민하던 곳이었지만, 

즉 삶의 질을 문제삼던 곳이었지만 이곳은.......생존을 

문제삼는다. 

어제는 농사를 짓고 가족과 웃고 있었더라도 곧 도적이나 

적군이 쳐들어와 자신의 목을 깨끗이 잘라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몇 번의 전투를 보고서 화정은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전쟁터에만 닿으면 귀를 울려오는 수많은 원령들의 

억울한 울음소리. 죄없이 죽어간 많은 원령들과, 더러는 

자신의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아 원령이 된 그들의 소리는 

화정의 귀를 아프게 하였다. 

그 많은 수의 전쟁을, 일일이 무엇을 위한 것이며 누구를 

위한 것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셀 수는 없다. 억울하게 

죽은 전우의 이름조차 일일이 기억할 여유도 없다. 지난 

달포간, 유비와 관우, 장비와 평원에 있으면서 화정은 원령의 

모습을 보고, 기척을 느끼며, 그들의 소리를 듣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술을 약간 더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세계에 놀랄 정도로 적응할 수도 있었다. 유비 

삼형제와 마초의 호의, 친절에 자신의 세계보다 오히려 더 

즐겁고 좋은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 낯선 세계에 

대해 두려운 곳이 남아있던 이유는......그랬다. 하루도 진정 

편하게 잘 수 없다는 것. 화정이 있던 세계에 비해 생존의 

가능성이 더 적은 곳. 여하튼 화정의 어둑어둑해진 심리도 

모른 채 장비는 그저 자신을 책망하던 무서운 화정의 기세가 

가라앉은 것만 기쁜 듯했다. 

"자자자, 조운, 당신 보기보다 똑똑한데! 그렇지, 뭐. 

그냥 단순히, 단순히 보자구. 핫핫핫.......아니, 화정, 뭘 

또 그렇게 고민해! 인생이란 말야, 즐겨야 더 재밌는 거야! 

게다가 화정은 여인의 몸이니 더더욱 그.......힉!" 

장비는 자신의 또 연이은 실수를 깨닫고 그 두툼하고 단단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그 시꺼먼 얼굴에 

벌건 빛이 떠올랐다. 손을 틀어막고 고개를 돌려 얼떨결에 

관우를 쳐다보는 그를, 화정이 한숨을 내쉬면서 바라보았다. 

뒤이어 관우가 험악한 표정을 하면서 장비를 노려보았고 연달아 

장비의 머리에서는 또다시 혹이 겹겹으로 솟아올랐다. 관우는 

역시 대단하다. 저렇게 빠른 속도로, 사람들이 눈치도 못채도록 

혹을 쌓아주니 말이다. 화정이야 너무 많이 본 광경이라 무섭지도 

않지만. 관우는 헛기침을 하면서 수습에 나섰다. 

"허, 험.......익덕, 또 지나친 농을 하는군! 화정이 아무리 

좀 예쁘장한 구석이 있다하......!" 

"근심 놓으십시오. 이곳엔 네 사람뿐입니다." 

순간 조운이 의외로 시원한 소리를 하고 나왔다. 관우는 조금 

당황한 듯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연신 헛기침을 하면서 주변을 

돌아보았고 장비는 뒤에서 화정에게 미안하이하는 소리를 연달아 

해대고 있었다. 

"실은 이 사람도 알고 있었습니다. 주공께는 발설치 않을 

것이니 안심하시지요." 

조운의 말에 관우와 장비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화정이 

그런 그들을 보면서 `저 두 사람도 의외로 눈이 컸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조운은 그들 형제를 돌아보면서 

고개를 숙이고 포권하였다. 그리고는 장막을 제치고 조용히 

나갔다. 장막이 흔들리는 양을 가만히 살피고 있는 관우에게 

장비가 대뜸 물었다. 

"형님! 저.......괜찮을까요?" 

아직도 죄책감에 휩싸인 듯 덩치와 인상에 안 어울리게 

조심스런 음성이었다. 관우는 의외로 장비에 대해 일체의 

매서운 음성도, 쏘아보는 눈길도 안 날리고는 장막에 시선을 

계속해서 고정한 채 평상시의 부드러운 곳이 있는 음성으로 

답하였다. 

"하찮은 자가 아니다. 반드시 지키리라 믿네." 

사실 장비의 의도는 괜찮으냐를 묻는 것이 아니었다. 관우가 

자신의 덜렁거리는 성품에 대해 또다시 질책을 할 것인지 그냥 

넘겨줄 것인지를 알기 위해 괜히 꺼내본 말일 것이었다. 다만 

관우가 중점으로 두고 있는 것과 장비가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빗나간 덕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화정은 관우가 웬일로 

잠잠한지 약간은 궁금해졌다. 정말로 장비의 질문을, `조운이 

말을 안 한다고 믿어도 될까요?' 로 해석했던 것일까? 

장비가 관우의 덤덤한 상태에 운이 좋다고 여기면서 한숨을 

쉬는데 갑작스럽게 청룡언월도의 자루부분이 장비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갈기는 통에 화정까지도 놀라 벌떡 일어설 뻔했다. 

눈물지으면서 자신의 뒤통수를 문질러보는 장비에게 관우가 

험악한 표정으로 명령했다. 

"익덕, 돌아가면 자네는 사흘간 외출 금지일세." 

`의외로 괜찮은 벌이군, 금주와 시문낭독만 없다면야......' 

하고 중얼거리는 장비의 소리를 바로 옆에 있던 화정이 들었다. 

그러나 관우는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금주와 시문 낭독은 당연하게 함께 내려지는 벌이네." 

장비는 관우가 소매를 떨치고 나가고 한참이 지나서야 자신의 

눈앞을 지나다니는 수많은 혼란을 수습한 듯하였다. 장비는 

애처로운 눈길로 화정을 바라보았다. 

"화정, 내가 그렇게 큰 벌을 받을 정도로 잘못한 거여?" 

화정은 한숨을 내쉬었다. 

*******

신나게 싸워댔지만 이득이 없기는 공손찬이나 원소나 양측 

모두 마찬가지였다. 원소는 원소대로 호된 맛을 한번 본 이후 

섣불리 군사를 움직이지 않았고, 공손찬은 공손찬대로 역시 

함부로 공격하지 않았다. 

양군이 대치한 채 꽤 긴 나날이 지나가자 꾀를 쓴 것은 

공손찬도, 원소도 아닌 동탁이었다. 동탁은 양군의 화해를 

시켜 전란을 막아보고자 하는, 제법 거창한 내용의 문서를 

작성하여 - 사실은 의로운 척하여 세상의 민심을 적게나마 

사보려는 얕은 꾀였을 것이었다. 

화정은, 만날 읽던 수많은 종류의 삼국지 책들에 씌어있던 

평론이 아니더라도, 정말 속이 훤히 보인다고 생각하였다 - 

양군에 전달하였고, 그렇잖아도 군량만 낭비하고 있던 양군은 

얼씨구나하면서 어쩔 수 없는 척 협정을 맺었다. 그 결과, 

당연히 공손찬군을 돕던 유비군도 서둘러 평원으로 되돌아가야 

할 일이 생겼는데, 여하튼 돌아가게 된 것은 제껴두더라도, 

특이한 것은 화정에게 떨어진 유비의 갑작스런 명령이었다. 

"예?! 공손찬님을......?!" 

화정의 잘 다듬어진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곁에서 눈알만 

굴리고 있던 장비도 - 이 순진하고 얌전한 작자는 전투와 

술을 마실 때 이외에는, 관람이나 서서 취침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 이 대목에서는 대뜸 끼어들었다. 

"아니, 형님! 그게 무신 소리요? 화정에게 공손찬 님을 

모시라니! 안 그래도 동지가 거의 없는 실정인데!" 

"형님, 이것만은 장비가 옳습니다. 화정은 게다가 꽤나 

주력시 되는 사람입니다만......." 

장비처럼 무대포적으로 끼어들지는 않았지만 늘 온건한 

관우로서는 꽤나 강하게 하는 반대이기도 하였다. 곁의 간옹은 

사태를 관람만 하고 있었을 뿐 입을 다물고 있었다. 관우는 

그래도 유비가 뜻을 고칠 생각을 않는 듯 보이자 답답하다는 듯 

다시한번 입을 열었다. 

"화정은 영특합니다. 필요한 사람이오니 제발 다시한번 

고려해 주십시오, 형님. 비록 익덕 아우가 옳은 소리를 한 

적이 없다하나......." 

"아아니, 작은 형님! 그 말 칭찬이오, 욕이오?!" 

"익덕의 이번 의견은 이 운장으로써도 찬성하........" 

"작은 형니임! 제 말이 왜 옳은 적이 없었단 거욧?!" 

"아우는 입 좀 다물게!" 

"형님이 자꾸 열받게 만드니까 그렇죠!" 

"조금만 참을성을 기르면 어디가 덧나나?!" 

"덧난다면 그 말 취소하실라우?!" 

단순한 장비는 성질 급하게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열심히 

잘라댔다. 화정이 과학 시간에 배운 바를 대조하여 말하자면, 

지극히 `단세포적인' 장비는 자신이 주장하는 바와 관우가 

주장하는 바가 같다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단지 장비에게는 관우가 자신을 모독한 그 한마디가 중요한 

것이었다. 티격태격하는 장비와 관우를 보면서 화정은 

관우에게서도 또다른 면을 보았다. 관우는 상당히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는 것이었다. 엄격하고 고지식하여 이런 

일에는 다툼을 피할 것 같으나, 의외로 말다툼이 벌어지면 

사소하더라도 이기려고 하는, 한마디로 끝까지 대꾸하려는 

면이 있는 사람이 바로 관우였다. 

화정은 관우와 장비가 사사건건 다툴 때마다 대부분 단순한 

장비가 설득 당하고 나서야 다툼을 끝내는 관우를 이제는 

너무나 익숙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적응이 

안 되었지만 말이다. 관운장이라는 인물이 이렇게 유치한 

말다툼에 끼어든다는 것이......여하튼 유비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두 아우 모두 그만두지 못하겠는가!" 

큰 형님이라는 것은 이럴 때 쓰는 것일지도 몰랐다. 유비의 

말 한마디, 찡그린 얼굴 한번에 관우와 장비는 둘다 말을 뚝 

끊었다. 관우가 얼굴을 붉히며 유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형님. 이런 분별없는.......!" 

그러면서 관우는 아직도 씩씩대고 있는 장비에게 엄격하게 

타일렀다. 

"어서 사죄드리게!" 

"싫수! 운장 형님이 잘못하신거요! 그렇죠, 큰 형님?! 난 

절대 이번에는 내가 사죄 못하오!" 

어린아이같은 장비였다. 자신이 잘못한 사실을 납득하면 손이 

모래가 되도록 닳게 빌지만 반면에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믿으면 그 자리에서 목이 날아가도 태도를 수정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우직하면서 단순무식한 장비였다. 화정은 속으로 

이런 점에서 일부는, 마초와 비슷하기 때문에 그렇게 마초와 

잘 붙어다녔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관우가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그를 따질 때인가! 어서 사죄드리도록 하게!" 

"싫수! 이번엔 운장형님께서 잘못하셨으니 이번엔 내가 벌 

내릴 차례유! 평원 돌아가면 운장 형님께서 내리신 벌 안 

받을꺼요! 대신 운장형님이나 글 외우고 외출하지 말고 

금주하시우!" 

장비의 불같고 단순하기 짝이 없는 태도에 관우로서도 적잖이 

할 말은 없고 화는 나는 모양이었다. 유비가 두 아우를 잔뜩 

찌푸린 얼굴로 노려보자 관우는 장비의 고개를 팔로 눌러 

강제로 사죄를 시켰고 눈치없는 장비는 `내가 뭘?!' 하고 

뻗대다가 결국 유비의 눈길을 못 이기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난 잘못같은 것 안했수다.' 하고 발뺌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유비는 엄격한 눈길로 - 가끔의 유비는 상당히 강하고 맺고 

끊음이 분명했다. 화정의 판단에 유비가 우유부단하다고 책들이 

써 갈겨댄 것은 아마도 `작전상 후퇴' 를 몰라본 소간이 

아닐까 싶었다 - 두 아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이번에 유하(柳河) - 유비는 화정을 일반적으로 

부를 때에는 이렇게 불렀다. 사실 화정이라는 그녀의 자는 

일단 너무도 여성스러운 것이었다. 또한 간옹은 화정이 

여인인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 - 를 보내는 것은.......연유가 

있어서다." 

입을 다물고 있던 간옹이 물었다. 

"어떤 연유이십니까?" 

엄청나게 소극적인데다 나서는 점도 별로 없는지라 

화정으로서도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여하튼 똑똑한 

인물임에는 분명하다는 것이 그녀 나름대로의 결론이었다. 

사실 간옹은 삼국지에서도 그다지 자주 등장하지도 않았고 

중요한 역할도 없었으니 제아무리 화정이 삼국지를 수십 번을 

넘게 읽었어도 제대로 기억이 날 리가 없었다. 

그저 이름만 기억이 날 뿐이었고, 그에 대한 어떤 평가도, 

그가 어떤 활약을 했는지도, 그가 어떤 결말을 맞이했었는지도 

몰랐다. 여하튼 간옹의 질문에 유비의 답변이 날아왔다. 

"하(河)를 그저 우리에게서 떼어놓자는 것은 아닐세. 

그에게는 임무가 있어." 

임무라는 말에, 입이 퉁퉁 부어서 몇 미터는 나와있던 장비도 

고리눈을 번쩍 떴고 관우도 궁금해 못견딘다는 투로 유비에게 

물었다. 

"임무라니, 무엇입니까, 형님?" 

유비는 잠시 망설였다. 그가 망설이는 것은 무언가 조금 

곤란한 임무라는 뜻일 것이었다. 그를 추측한 화정은 긴장으로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으나 내색않고 조용히 말했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겠습니다, 주공. 무슨 일이십니까." 

유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네들이 이 현덕을 믿어주었으면 좋겠네......." 

"아니, 큰 형님, 웬 오밤중에 냉수욕하는 소리요! 우리가 

언제 큰 형님을 안 믿었다고 그......." 

성질급하고 가만히 있기 싫어하는 장비가 대뜸 

떠들었으나......(그리고 그는 분명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라는 것과 혼동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누구도 발설치 않을 것이니 안심하고 

말씀하시지요, 형님." 

관우가 늘 그렇듯 장비를 뒤로 밀치고 나섰다. 장비는 

뒤에서 `쳇, 만날 나만 무시하는군. 손님 오면 간식 들고오기나 

시키고. 간식 당번인줄 아나!' 하고 긴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이럴 때에는 관우의 승부욕이 발동하지 않았는지, 관우는 모른 

체 넘겼다. 유비는 관우가 그리 말하자 간옹을 바라보았다. 

간옹은 허리를 굽히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유비는 긴 한숨과 

함께 뜻밖의 소리를 토했다. 

"......조자룡, 그 사람이 참으로 탐이나네......." 

그 말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요즘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한마디로 `썰렁'이었다. 주변이 조용해졌다. 화정과 관우, 

장비는 물론 간옹도 조금은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또 

속없는 장비가 나섰다. 

"큰형님, 그게 뭔 소리유?! 물론 조운이란 그 새파란 놈이 

괜찮기는 하더이다만, 어쩌시려구? 공손찬님 수하잖아유? 그럼, 

혹시 화정의 미모로 꼬셔서 데리고 오기라도 하는......읍! 

우어, 간우헝니(관우형님이 아닐까?).......!" 

"형님, 저 역시도 조운이란 청년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압니다만......." 

관우는 예의 그 침착하고 온화한 어조를 구사하면서 장비의 

거칠고 조심성없는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부드러운 표정으로, 

힘이 세기 그지없는 장비의 입을 막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 

관운장은 대단한 인물이었다. 사실,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화정은 이때만큼 관우가 존경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관우는 아직도 자신의 손에 입을 틀어막힌 덕에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떠드는 장비와, 미모라는 소리에 놀랐을 것임에 

틀림없는 간옹의 어안이벙벙한 얼굴을 멋지게 무시하고 말을 

이어냈다. 

"공손찬님의 아래에 그가 있는 한, 데려오기는 힘들 것으로 

압니다. 게다가 형님과 동문이신 공손찬님이 아니십니까. 

동문의 수하를 빼앗아 온다는 것은 세상의 이목을 버리는 

일입니다, 형님." 

구구절절 옳은 소리였다. 하기사, 관우가 틀린 말을 하는 

것은 장비와 억지로 다툴 때 그 묘한 승부욕과 오만이 고개를 

들 때 빼고는 거의 없었다. 여하튼 관우가 꽤나 지혜가 있고 

통찰력도 꽤 깊다는 점에는 역사의 평가가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여하튼 관우는 그제야 이상하다는 표정인 간옹을 발견하고는 

수습에 나섰다. 

".......에, 하(河)가 사람의 호감을 잘 살 수 있는 미청년에 

언변도 능하지만......자룡은 의(義)를 모르는 이는 아닙니다. 

분명 이 운장의 어리석은 눈에 조자룡 역시 형님을 흠모하는 

듯하였습니다만......." 

유비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으나 관우는 모르는 척 

헛기침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형님, 조운은 포기하시는 것이 옳습니다. 괜하게 유하만 

잃게 될 지도 모릅니다." 

다소 냉정한 곳이 있는 관우의 결론에 유비는 더더욱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화정은 유비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조운은 유비를 주군으로 모시지 못한 자신의 

현실을 한탄했을 것이요, 조운에게서 친밀감을 느낀 유비 역시 

조운이 다른 이도 아니고 공손찬의 사람임을 한탄했을 것이었다. 

그녀가 기억하기에 이 시점쯤, 조운과 유비의 대면에서 분명 

이런 구절이 있었다. 

******* 

『참으로 묘한 것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다. 어떤 사람과는 

매일 얼굴을 맞대고 지내도 언제나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처음 만나도 오래 전부터 다정하게 지내 온 사이처럼 

친하고 가깝게 느껴진다. 조운을 처음 보는 유비의 마음이 

그랬다. (이문열의 삼국지 中)』 

******* 

그만큼 서로 친근감을 느꼈을 것이다. 또한 두 사람에게 

헤어짐이 얼마나 아쉬웠을 것인가. 하기는, 일생을 그런 연을 

맺고 모시고 아끼게 될 사이인데 아무런 예감이 없을 리가 없다. 

화정은 유비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주공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기꺼이 가겠습니다." 

그 말에 주변이 또 조용해졌다. 관우의 손에서 입을 떼어내려고 

용을 써대던 장비조차도 그 극성을 잠시 중단하였을 정도였다. 

되려 간옹이 조금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유하님, 어쩌려고 하시는 겁니까. 무슨 뜻으로......" 

"주공, 주공께서는 제가 조운님과 함께 잠시 몸을 굽혀 

공손찬님을 모시다가 때를 엿보아 함께 오라는 말씀이 아니십니까." 

그 말에 관우와 장비의 눈이 유비에게로 돌아갔다. 유비는 여전히 

얼굴에 그늘이 진 모습으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여보였다. 

"그렇소, 유하.......과연 그대로군. 역시 알아주는구려. 당장은 

아니지만......언젠가......." 

유비는 이 구절에서 잠시 말을 끊었다. 혹시 공손찬의 멀지 

않은 몰락을 예감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하고 화정은 

생각해보았다. 어렵잖은 일이다. 공손찬의 독선과 지나친 오만이 

이대로 계속 늘어간다면 머잖이 몰락할 것이란 것은, 세상의 

자명한 이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음이 분명한, 유비의 옆모습은 

조금 씁쓸한 듯한 느낌을 띄우고 있었다. 유비는 옅은 미소를 

띄우면서 일행을 둘러보았다. 

"......언젠가는 자룡을 데려올 일이 있을 것이오. 내, 

이렇게나 사람이 탐나 보기는 처음이오. 그러니 화정, 그대의 

재주를 믿고 부디 부탁하오.......기회가 오면 그를.......내 

곁으로 인도해 주시오. 명령이 아니라 간곡한 부탁이오." 

그 말에 주변이 다시 조용해졌다. 그러나 이내, 역시 

분위기라고는 눈꼽만큼도 볼 줄 모르는 장비가 투덜거리면서 

나섰다. 

"이보슈, 형님! 그럼 우린 뭐유?! 우린 탐 안나? 쳇!" 

아, 장비는 언제 보아도 천상 어린애다. 

"너희는 내 의제들이요, 다른 두 사람은 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어리석은 내가 주공이 되기를 청하여주었으니, 

당연한 것 아니더냐." 

그 말에 화정은 속으로 은근히 감격하였다. 정말 무섭다. 

삼국지를 읽은 사람들은 모두 조조가 일반적으로 유비보다 

간계와 혀놀림에 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보통의 똑똑하다는 작자들이 삼국지에 대해서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침을 튀겨가면서 며칠을 논쟁하고 손 아프게 

원고지 백장도 넘게 글을 써내려 간 덕일 테지만, 여하튼 

화정도 그 작자들에게 속은 `삼국지 매니아' 중의 하나였으니 

할 말은 없었다. 

보통 삼국지를 꽤나 읽었다는 인간들은 다 그 소리를 하고 

앉아있다. 그러나 지금의 화정이 판단한 바에 의하면 유비의 

언변이 절대로 `조조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조조는 

직격 언변에 능했다면 유비는 돌려서 은근히 말하는 언변에 

능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것이 화정의 개인적 판단이었다. 

저렇게 돌려 말하고 의를 앞세움으로써 챙길 건 다 챙기는 

것이 유비이다. 공손찬도 지금 유비를 막장 부리듯 하는 것 

같지만, 공손찬이 한 일은 결국 모두 유비에게 좋은 일이다. 

반동탁 연합군에 데려가 명성을 얻게 해 준 것도, 평원 현령이 

된 것도. 주변 사람들을 절묘하게 이용해먹으면서 그것을 

당연하게 믿게 만드는 것이 유비의 재주다. 여하튼, 지루해 

빠진 개인 삼국지 평가는 집어치우고 화정은 본래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화정이 입을 열려고 하는데 곁에서 

간옹이 조용히 말했다. 

"어쩌면 주공.......방금 전의 그 말씀은 공손찬님의......." 

"나도 알고 있소. 허나, 매우 탐나는 사람이니......화정이라면 

능히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을 뿐이외다." 

유비는 의외로 덤덤하고 강건한 태도로 말을 잘랐다. 화정은 

고개를 숙였다. 이미 화정의 마음이 반허락임을 알아챈 유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서 장비가 그 우락부락하고 조심성 없는 

얼굴을 또다시 불쑥 내밀었다. 

"하지만 형님, 백규님의 진영에는 화정을 감쌀 만한 분도 없고 

아귀강시의 의지도 아직 잘 못 듣는 유하를 홀로 보내면.......!" 

"조운님께 부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조운님 또한 영특한 

사람이니 유하님이 자신을 따르는 연유를 짐작은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간옹의 진언이 나오자 모처럼 쓸만한 걱정을 한 장비의 말에 

얼굴이 어두워졌던 유비의 낯빛이 다시 환해졌다. 화정은 그런 

유비를 보면서 남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재물이나 토지, 이런 

것보다도 인재를 탐할 줄 아는 사람. 그것이 바로 유비가 지닌 

매력일 것이다. 

제갈 공명을 얻어 기반을 세우기까지 숱하고 긴 세월을 

쫓겨다니지만 그의 수하들이 변함없이 유비를 따랐던 이유는 

혹시 저것이었을까. 수하를 믿고 신뢰하며 아끼고 탐낼 줄 안다. 

군주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실감났다. 화정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보았다. 

<효진 그룹의 차기 회장이 될 사람으로서........> 

<화정아, 넌 보통의 아이가 아니야. 그러니 그런 곳에 신경을 

써서는 안된다.> 

머리가 아팠다. 화도 났었다. 차기 그룹의 회장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단지, 다른 아이들처럼 웃고 떠들고 다니면서 

떡볶이도 함께 먹고 오락실도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늘상 

들리는 말은 `안된다.' 였다. 하긴 그래서 몰래 가보긴 했지만 

늘 혼자였었지......화정은 늘 곰곰이 생각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째서 자신은 평범한 아이들의 것도 누릴 수 

없던 걸까. 그녀는 속으로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역시, 난 삼국지를 미리 읽은 것이 아니었다면 이 세계에 

떨어졌어도 평범하게 살 사람이었던 거야. 난 유비님처럼 

스스로 인재를 탐하고 찾기 위해 궁리하는 그런 것이 

부족했으니까.......모든 것이 주어지는 환경에만 너무 

익숙해져 있었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저 원망만 할 뿐 이용하는 법은 

너무도 모르고 있었다. 부잣집 공주님이라는 사실로 아이들이 

그녀를 멀리 할 때에도, 그 사실을 이용하여 아이들을 끌어오지 

못했고 그런 생각조차도 안 해보았다. 그녀가 아무리 똑똑한 

척을 하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눈치채고 이용해 먹는 것에 

능했어도, 정작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줄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위해 주변의 탐나는 것을 지니기 위해 그렇게까지 

애를 쓴 적은 없다. 가만히 있었어도 모두 주어졌으니까. 사실, 

그녀는 무기력하다. 그러나 유비는 달랐다. 저 의리를 내세우는 

이가, 자신이 탐하는 인재를 끌어오기 위해서, 의리에 반할지도 

모르는 그 일로, 저렇게나 고민을 하고 있다. 신임하게 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화정까지 수단으로 사용할 정도로....... 

수단? 가만있자, 수단? 

`그렇군, 난 유비님의 수단이 되어가는구나......' 

언뜻 생각하기에는 당연히 기분이 안 좋아야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쁘지는 않다는 기분이었다. 이상했다. 늘 위에 섰던 

화정으로서는 기분이 나빠야 할 것인데 전혀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살짝 감았다. 어느덧 익숙해져가는 세계. 

하지만 가끔씩 드는 낯선 느낌. 감싸줄 가족도, 의지가 될 만한 

친구도.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자신을 신기하고 가엾게 생각하는 

무리들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대가 하시겠습니까? 안에 계신 분들께는 해악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베었습니다.> 

화정의 눈이 커졌다. 왜 이 음성이 생각나는 걸까. 그녀가 

지금부터 쫓아야 할 사람. 설득하여 유비의 곁으로 데려와야 

할 사람. 하지만 어차피 유비의 수하가 될 사람. 그리고....... 

그녀가 이 세계에서 첫 인연을 맺었던 사람. 아무런 조건없이 

그녀를 도왔던 첫 번째 사람. 화정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서 너무나 멀었다. 그러면? 

<......맹세할게, 내가 스물이 넘고 기반이 조금 더 

생긴다면......너와 혼례를 치를 거라고 말이야.> 

순간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면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렇다. 마초. 마초가 있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 마등을 따라가던 

마초가, 그녀의 곁에 있겠다고 하다가 아버지를 따를 것을 

권유하던 화정의 말에 마지못해 결국 아버지를 따라 떠나가던 

마초가, 곁에서 킥킥대던 그의 여동생 운록이 온통 머릿속을 

하얗게 헤집고 지나간다. 화정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 말......정말이었을까? 놀리는 말은......아니었을까? 

마초가 갑자기 만나고 싶었다. 

".......하!" 

"아? 아, 네에!" 

갑작스럽게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화정은 조금 놀라면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로 동요가 없게 보인 모양이었다. 장비가 

꺼벙하고 졸음이 온다는 눈으로 - 이 장정은 회의란 것과는 

당초 인연이 병아리 눈물만큼도 없던 사람이었다 - 투덜댔다. 

"뭐야, 화정! 형님께서 실컷 말씀하고 계셨는데 딴 생각이라니! 

그러면서도 별로 놀라지도 않냐? 어째 저렇게 놀라는 일도 별로 

없는 거람." 

"괜찮다, 화정. 별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단지, 급한 일이 

있을 때에는 전령을 보내라." 

또다시 장비가 말실수를 할 것이 두려웠을까? 관우는 재빨리 

장비의 말을 막으면서 다정하게 화정에게 알려주었다. 화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서 장비가 쭈뼛거리다가 유비와 간옹이 

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화정 역시 어딘가 허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그들의 나가는 모양을 지켜보고 있는데 

장비의 우레같은 목소리가 귓가를 쩌렁쩌렁하게 장식했다. 

"화정, 꼭 돌아오는 거겠지?" 

그 말에 화정은 장비를 바라보았다. 조금은 쑥스러웠는지 

얼굴을 약간 붉히고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고 있는 장비는 

정말 어린아이같았다. 바보같을 정도로 순박한 곳이 있는 이 

무사를, 화정은 진심으로 좋아하였다. 그는 마치......어릴 

적의 화정이 바랐던 가장 이상적인 사람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어릴 적에, 감정에 솔직하고 순수한 면이 

있는 사람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되고 싶었다. 

마치......그녀의 어머니처럼......분명 장비는 화정이 다시 

돌아오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화정이 조금 주저하고 있자 

곁에서 관우가 화정의 팔을 가볍게 쳤다. 

"나 역시도 이번만은 아우의 말에 찬성이네. 자네가 

돌아온다고 믿겠네." 

관우의 말에 화정은 감격을 담고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이곳이 참으로 좋은 곳이라 생각하였다. 그렇다. 그쪽 

세계는 풍족하고 이런 전쟁같은 생존의 위협 따위는 없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었다. 편했다. 그녀의 호화로운 침대는 

늘 따뜻하고 푹신했으며 유명 상표인 옷들은 부드럽고 예뻤다. 

하지만......진심으로 걱정해주고 곁에 있기를 바래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에는......비록 그런 따뜻하고 푹신한 침대도 없고 

늘 생존과 위협의 두려움에 떨지만......그녀를 진심으로 

걱정하여 주는 사람이 있다. 화정은 감격어린 눈으로 장비에게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장비에게서 터져나온 말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화정!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기분 나빴냐? 왜 날 

무섭게 쳐다보고 그래!! 불만 있으면 그냥 화끈하게 털라고 

내가 얘기했지!" 

"......" 

화정은 물론, 눈썰미 있는 관우도 무슨 연유인지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제서야 화정은 반 아이들이 늘 자신을 보고 

`얼음공주' 라고 불렀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난 내 나름대로 감격해서 보고 있었는데.......표정이 

그렇게 얼어있었나......?' 

나름대로 불만인 화정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사실을 

발견하고는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한편 속으로는 의아해지기도 

했다. 그녀는 늘, 불만도, 만족도 없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그녀는 지나칠 정도로 불만과 만족을 자주 

느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장비의 투덜거림이 화정의 고민을 

깨버렸고 관우가 조용조용 타이르는 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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