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 계기 (15/24)

3-7 계기

목에 다짜고짜 창날이 날아 들어오자 겁이 덜컥 났다. 

화정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결국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말았다. 아니나다를까, 조운의 한심하다는 표정과 맞딱뜨리게 

되어버렸다. 조운은 창을 거두면서 가시 돋친 목소리로 

꾸짖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미행해 온거야! 여기는 장난치는 곳은 

아니다!" 

화정은 오랫동안 앉아있어서 아직도 저린 다리를 펴고 

일어나면서 야무지게 답했다. 

"됐어요! 남은 실컷 생각해서 따라오니까 구박부터 

시작하네! 여하튼 걸림돌은 안 될 자신이 있으니까 

걱정......어, 자룡!" 

화정은 조운의 뒤에 나타나는 시꺼먼 그림자를 감지하고는 

곁에 있던 커다란 돌멩이를 주워 던졌다. 딱, 하는 소리가 

나면서 허공으로 붉은 피가 튀었고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코를 틀어쥐면서 물러섰다. 그는 쥐고있던 비도(飛刀)*를 

떨어뜨린 채 급히 사라졌다. 화정은 사내가 떨어뜨리고 간 

비도를 쥐고 살펴보는 조운에게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봐요, 내 말이 맞죠? 방금 전 일은 어디까지나 내가 

도와준......" 

"엎드려." 

조운은 짤막한 외침과 함께 몸을 재빠르게 일으키면서 화정의 

머리를 한 손으로 누르고 자신이 주워 들고있던 비도를 던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화정의 머리 위로 붉은 피가 쏟아져 

내렸다. 화정은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참았다. 

피비린내. 언제 맡아도 역겨운 냄새다. 게다가 자신이 그 

피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은 더더욱 참기 힘든 사실이다. 

구역질이 목까지 밀려오는 것을 겨우 참아낸 화정은, 쓰러진 

사내를 바라보았다. 정통으로 목줄기를 비도로 관통당한 채 

공포스런 얼굴로 죽어있는 모습은 정말 보기 싫었다. 

소설로 이 광경을 읽었다면 `진짜 솜씨좋네. 기습하는 

사람을, 오래 겨냥도 안한 채 비도를 던져 목줄기를 정확히 

관통시키다니!'하면서 감탄했겠지만, 실제로 이렇게 보니 

구역질만 나온다. 

"역시 도움을 주는 측은 내 쪽이군." 

조운의 얄미운 말에 화정은 눈을 흘기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집에서 빠져나왔지? 집을 비우면 안 

좋다는 건 잘 알텐데." 

화정은 일종의 쾌감을 느끼면서 그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아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말아요. 집을 봐주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구요." 

"......뭐?" 

의기양양하게 조운을 바라보았다. 분명 조운은 속으로 

`주변에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을 텐데?' 하는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유화정을 그렇게 

어벙한 사람으로 보면 곤란하단 말씀이야. 

"공손찬(꼭 존칭을 쓸 필요는 없다고 화정은 굳이 우기고 

있었다. 왜냐하면 알다시피 화정의 상전은 유비이지 

공손찬은 아니었기 때문이다)이 보낸 첩자들을 이용했는걸요." 

"......첩자들을 이용해?" 

다소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물론 조운이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닌 듯했다. 첩자라는 말 자체에 놀랐다면 반문은 분명 

`첩자가 있었다고?' 라는 식으로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첩자라는 말 자체에 놀랐다기보다 이용했다는 소리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화정은 속으로 얄밉다는 생각을 했다. 

뭐야, 첩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려고 여기까지 기를 쓰고 

온건데 이미 알고 있었다니, 맥빠지잖아. 

"네. 창문 틈새로 바깥을 엿보다가 첩자가 누군지 

알아냈거든요. 하지만 이 집안에 여자만 있다고 알고있는 

것 같아서 지금 차림으로 가서 꼬여냈죠." 

조운은 여전히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조금 기분이 좋지 

않은 듯했다. 분명 속으로 `또 말썽이나 피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식의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일부러 태연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다가가서 이 안에 조운의 사촌 여동생이 있는데, 그녀가 

잠시 나갔으니 집을 보아주면 좋겠다고 했죠. 나 역시 

공손찬의 첩자인데 우연한 기회에 조운의 여동생과 친해져서 

이 안에 자유자재하게 머물면서 동정을 엿보았다고요. 

그런데 오늘 여동생이 중요한 곳에 나갔다가 오는 것 같은데, 

감시가 꼭 필요하지만 나는 공손찬님의 급한 부름을 듣고 꼭 

가야 하니 그대들이 해 주었으면 좋겠다, 여동생에게는 

조서(趙徐), 당연히 내가 만든 가명이죠, 의 절친한 친구라고 

하면 의심않고 머물게 할 것이다, 뭐 이런 식으로 말하니까 

입이 귀밑까지 찢어지던데요." 

그때의 조운의 표정을 사진으로 찍어두었더라면 좋았을걸, 

하고 화정은 생각했다. 정말로 기가막히다는 표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았다면 어딘가 `깔보는 듯한' 표정으로 보였겠지만, 

한달 가까이 조운과 지내면서, 거의 표정이 없는 무뚝뚝한 

얼굴을 대하고 지낸 화정으로서는 기가막히다는 표정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화정은 `그렇잖아도 이 바깥에서서 매일같이 목을 빼고 있는 

것이 힘든 참이었네!' 하고는 기뻐하면서 얼른 자신의 집 

쪽으로 달려들어가던 첩자들을 회상하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물건을 훔쳐갈 일이야 없을 것이다. 그들도 엄연한 

관리들인데다 조운만큼 가난한 관리가 어디있는가. 화정이 

스스로 생각해봐도 `내가 관리라면 저렇게 안 산다.'는 다짐을 

끊임없이 솟게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들이 탐낼 물건은 당연히 

없다. 조운은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은 표정을 하면서도 화정이 

따라오는 것을 수락했다. 

"......하는 수 없군, 그렇다면 얌전하게 있어. 나선다거나 

말썽을 피는 일이 있으면 안돼. 여긴 엄연한 전투장이야." 

결국 화정을 데려가기로 한 셈이다. 그렇게까지 꾀를 부리는 

화정을 보니 한심했던 모양이다. 기쁘고 조금은 통쾌한 

심정으로 조운의 뒤를 따라가려는데 조운이 한 손을 들어 

허공에 떠오던 무엇인가를 낚아챘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조운이 찌푸린 얼굴로 화정을 바라보고 있자 화정은 

죄의식을 느끼면서 변명했다. 

"아, 그 새는 말이죠......애완동물이랄까......얼마나 

서찰 심부름을 잘 하는데요......유비님이 이전에 주신......." 

문득 유비들의 서찰을 조운이 직접 가져온 기억이 났다. 

자신의 거짓말 실력도 조운 앞에서는 항상 바보수준이 

되는 것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나오는데 이상하게 저 작자의 앞에서는 실없는 

헛소리만 나온다. 

역시,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하니까 하느님 - 화정은 

그래도 천주교신자였다 - 이 말을 꼬이게 만들어 

버리셨나보다. 고해성사를 빨리 받아야 할 것 

같다...... 

"유비님이 주셨는데 이제야 날 찾은 모양이네! 와, 

조운, 찾아줘서 고마워요!" 

대충 얼버무리고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조운이 

그 새를 놓아서 화정 곁으로 날려주고는 돌아서면서 

한마디 던지는 것이다. 

"어제 아침부터 나를 미행하는 새더군." 

이쯤되면 화가 안 날 사람 없다. 화정은 발끈해서 외쳤다. 

"아니, 그럼 그냥 그 잘난 무예 실력으로 비도(飛刀)라도 

던져서 죽이던지! 왜 미행하게 내버려둬 놓고는 사람 

뒤통수를 치고 난리에욧!' 

......현량한테 미안한 말이긴 한데...... 

"네 기운을 느껴서 내버려둔 것 뿐이야. 따라 오려면 얼른 

오고 가려면 얼른 되돌아가. 저쪽에서 병사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화정은 뒤에서 콧방귀를 뀌면서 잔뜩 찌푸린 얼굴로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아, 정말 얄밉다. 자신의 생애에서 

저렇게 얄미운 사람은 눈씻고 봐도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화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얄밉다는 말을 듣던 

타입이었으니까...... 

앞으로는 절대 다른 사람들에게 얄밉게 행동하면 안될 것 

같다. 그녀가 스스로 그 `얄미워.' 라고 말하는 입장이 

되고보니 이제서야 이해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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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조운에게 철저하게 복수할 날이 오기를 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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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1.비도(飛刀): 던져서 날리기 좋게 되어있는 작은 칼. 

가볍고 날이 날카롭게 서있어서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좀 나가는 편이다. 

기가 팍 죽는 것 같았다. 정말 보기만 해도 오싹했다. 저 

아래에서 우글거리는 개미떼처럼 빡빡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모두 산적떼란 말인가. 너무나 막막한 심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조운이 짧게 잘라말했다. 

"그렇게 만만하게 생각지 말았으면 좋겠군. 저 정도면 

산적으로는 어마어마한 수니까." 

......누가? 언제 만만하게 봤다는 거야?! 

뾰루퉁해진 화정은, 사람들이 그녀의 표정으로 자신의 

감정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은 버리기로 했다. 언제, 

어디서나 무슨 표정을 지어도 사람들이 보기에는 `똑같은 

고고한' 표정인 것 같으니까. 남몰래 콧방귀를 뀌면서 

팔짱을 끼고 고개를 휙 돌리는데, 키가 좀 작고 얼굴이 

가무잡잡한 병사하나가 다가왔다. 

"보고드립니다, 대장님! 우리가 토벌하러 온 사실을 

이미 알았던 모양입니다. 이쪽으로 군단을 편성해서 

몰려오고 있습니다." 

`호, 산적이 군단을 편성해? 꽤 머리가 있는 

놈인가본데......보통 산적들은 저번에 그 녀석들처럼 

마구잡이로 우루루......몰려오는 것 아니던가?' 

화정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저번에 쳐들어왔던 그 산적 

군단은 아닌가보다, 하고 확신했다. 그 머리나쁜 녀석이 

대장이니, 이렇게 토벌대가 오는 것을 관찰해내고 

군단편성까지 해서 올리는 없었다. 

"군세는 얼마나 되는가?" 

조운의 질문에 병사는 잠시 머뭇거렸다. 화정은 

머뭇거리는 병사의 표정에서 역력한 공포감과 난처함이 

교차하고 있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꽤 많은 모양이지? 하기는, 저 아래에 보이는 수만도 

꽤 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천 정도 된다고 합니다." 

"이천!!" 

병사의 보고에 화정이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조운이 

자신에게 따가운 시선을 - 고개는 돌리지 않았지만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 보내는 것을 알아채고 한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얼떨결에 나온 소리라 

여자의 음성이 그대로 나와버렸던 것이었다. 병사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화정 쪽을 보려 했으나 다행히도 

조운이 병사에게 하명함으로써 대충 넘어가게 되었다. 

"기병대와 노병대, 그리소 보병대로 나뉘어서 정렬시키게." 

호기심이 잔뜩 일었는지 고개를 연신 화정에게로 

돌리려고 하던 병사는 결국 화정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물러갔다. 조운이 눈살을 약간 찌푸리면서 화정을 

돌아보았다. 뜨끔해진 화정은 시선을 얼른 내렸다. 

"정말 가지가지로 힘들게 하는군그래......" 

낮은 음성, 짧은 질타였지만 `찔리게' 하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조운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고 화정 역시 

뜨끔한 심정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 채 그 뒤를 따랐다. 

지긋지긋하고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여기 

홀로 남아보았자 무엇하겠는가. 속으로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잘난 척은!' 하고 잘근잘근 씹던 화정은 주변 

병사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들었냐? 산적이 이천이래, 이천!" 

"우린 오백이라고! 곱절의 곱절일세......" 

"다 죽었군, 다 죽었어!" 

`뭐야, 이거......군기가 왜 이래? 안 그래도 수가 

적은데 사기까지 이렇게 낮다면 어쩌려고?' 

화정은 그제야 자신의 앞을 걸어가는 조운의 뒷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훤칠한 키에 잘 잡힌 체격. 보기좋은 

모습이다. 하지만....... 

`이렇게 승산이 없다는 것을......저 사람이 모를 리가 

없어! 적어도......그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을 텐데 무슨 

생각으로 이 토벌에 응한거지? 게다가......' 

죄책감이 밀려왔다. 화정은 입술을 깨물면서 주변에서 

벌벌 떨고있는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이건 조자룡의 잘못이 아니야! 내가 그런 사건을 

일으켜서......의심많은 공손찬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뒤틀린 상황이었다. 냉정히 

생각하면 자신만의 잘못은 아니다. 자신은, 조운에 대해 

가지않는 정을 억누르고 치안대장이란 자리를 주었던 

공손찬이 꼬투리를 잡을만한 계기를 제공한 것에 불과하다. 

아끼는 많은 수하들을 제치고 갓 얻은 새파란 젊은이에게 

그 자리를 흔쾌히 줄 정도로 공손찬은 과감한 위인은 

아니었던 것이다. 꼭 삼국지를 읽지 않았어도 공손찬을 

만나보고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아챘을 점이다. 

화정이 몇 번의 마주침을 겪고서 판단을 내린, 

공손찬이라는 사람은 의심이 많고 크게 과감하지는 않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 생각하면 마음이 가벼워질 것 

같았지만......화정의 양심은 그런 생각에 안주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내가 잘못한 것은 사실이야. 내가 

그런 일만 안 일으켰어도 큰 무리는 없이 지냈을 텐데, 

이런 무모하기 짝이 없는 토벌도 해야 한다는 것은......' 

죽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하다. 삼국지 상에서, 공손찬은 

말할 나위도 없고 유비보다도 더 오래살던 조운이다. 그런 

사람이 기껏 여기서 죽는다는 것은 역사가 바뀐다는 소리가 

된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화정은 벌써 멀리 떨어진 조운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도울 방법이 있다면 도와주고 싶었다...... 

"저......" 

"에? 아, 예!" 

화정은 누군가 뒤에서 조심스럽게 부르자 화들짝 놀라면서 

고개를 휙 돌렸다. 아까 조운에게 보고를 올렸던 그 병사였다. 

병사는 얼굴을 약간 붉히면서 - 왜 붉히는 걸까, 하고 화정은 

생각했다 - 포권을 해 보였다. 

"실례합니다, 조운님께서 부르십니다......" 

화정은 얼른 고개를 대충 끄덕이고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흥분해서 여자 음성을 냈었던 화정을, 저 병사는 의심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남장을 해도 얼굴 생김새까지 

바꿀 수는 없다......저벅저벅, 느리고 자신없는 발걸음으로 

조운에게 다가갔다. 곁에 있던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 조운은 그를 물리치고 화정을 향해 찌푸린 얼굴을 

돌렸다. 

"뭘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되도록이면 여기서 

떠나지 말고 있어." 

생각없이, 방금 전에 했던 미안한 생각을 유지한 덕분에 

고개를 끄덕이려던 화정은, 조운이 몸을 돌렸을 때에야 

발끈하면서 반박을 시작했다. 

"자암깐! 뭐라구요? 여기 있으라고요?" 

"......분명 그리 말했지. 뭐가 잘못됐나?"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조운에게, 화정은 그때껏 지니고 

있었던 미안한 마음을 까마득하게 날려버리고 외쳤다. 

"여기 목석처럼 있어봤자 뭐해요! 나도 주술을 쓸 줄 

안다고요! 적어도 호신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조금 화가 났다. 무조건 자신을 무시하기만 하는 태도에 

화가 난 건지, 아니면 이렇게 무책임한 전투를 앞두고도 

홀로 안전한 곳에 있게 해서 화정은 파렴치하게 만드려는 

그 생각에 화가 난 건지는 몰랐다. 여하튼, 화정은 그것이 

옳은 지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계교전투에서와 입장이 달라. 그 때는 우리 군이 

적군과 대등했으니 상관없지만 이건 일방적인 살육전이 

될거다. 그러니 철없는 소리 그만하고 여기 있어." 

저 태연하고 흔들림없는 태도가, 본래대로라면 믿음직해야 

할 저 태도가 더 화가 나고 불안했다. 철없는 태도라니, 

뭐가 어째?! 화정은 점점 감정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웃기지 말아요! 인원수가 배 이상 부족하다는 것을 

모를 줄 알아요?! 그런 상황이면, 단 한 명이라도 도와야 

하잖아! 나는 여기서 같은 편인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구경만 하라는 소리냐고요! 나도 욕먹기는 싫어요!" 

화정의 말에 조운은 피곤하다는 듯 이마에 손을 

갖다대면서 한심하다는 투로 대꾸했다. 

"그럼, 나더러 어쩌라는 말이지? 나도 네가 보통 

사람같으면 죽든말든 상관없어. 하지만 넌, 어떤 분께서 

특별히 신경써서 보낸 사람인데, 어찌 죽든말든 

내버려두겠어?" 

울컥, 하고 어떤 것이 목까지 올라왔다. 죽든말든 

상관없다......어떤 사람 때문에 신경쓸 뿐이다......? 

하, 참.....똑똑하기도 하군.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런 

대꾸를 하면서도 그렇게 교묘하게 유비님의 이름을 담지 

않게 말하고 있으니......왜 자신이 이렇게 발끈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조운의 태도가 

절대로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저 사람은, 나를 잘 모르고 

있는거야, 이렇게 속으로 되뇌이면서 화정은 조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훨씬 키가 큰 조운의 얼굴을 보려면 

조금 시선을 위로 올려야 했지만 상관없었다. 

"조자룡, 당신같은 사람은, 죽든말든 상관않아도 될 내가 

그저 신경써야할 입장이라는 것만 강조해서 나를 걱정하지만, 

난 그런 걱정같은 것 필요없어요. 지금 당장 그쪽이 죽으면, 

혼자 여기 멍하니 서 있던 나라고 멀쩡하게 마을로 콧노래 

부르면서 돌아갈 것 같은가요?!" 

화정의 말에 조운은 어이없다는 빛을 눈에 담았다. 

"......이봐." 

"혹시 알아요? 산적들이 염탐이라도 하러 몰래 잠입했다가 

내가 여기 혼자 있는 것을 발견하고 죽일지? 그렇......" 

말이 맺어지기도 전에,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조운이 허리에 차고있던 검을 뽑아 화정의 옆을 베어냈다. 

검을 뽑아서 벨 때까지의 동작이 너무나 빨라서 화정의 

눈에는 그저 곁에서 은색이 번쩍하면서 시뻘건 것이 튀는 

장면으로밖에 안 보였다. 엄청난 속도의 행동이었다. 

화정은 다만 자신의 곁에 뿌려진 무수하게 많은 양의 붉은 

피와, 웬 사내의 시체가 나직한 신음과 함께 쓰러져있는 

것만을 볼 수 있었다. 놀란 나머지 목으로 마른침을 삼키는데, 

조운이 이맛살을 찌푸린 채, 검을 허리의 검집에 다시 

넣으면서 돌아섰다. 

"그렇군, 이번만은 옳은 소리를 했군......안심할 수 없겠지. 

좋아, 그럼 따라와. 단지, 곁에서 떨어진다면 나도 목숨을 

보장해 줄 수는 없어." 

다소 언짢았던 모양이다. 시체만은 보고 싶지 않았기에 

황급히 고개를 돌려 조운의 뒤를 따르면서 화정은 천천히 

생각을 해 보았다. 죽든말든 상관이 없다......그런 나를, 

죽든말든 상관이 없던 나를, 이렇게 신경써 줄만큼 

유비가......조운의 마음에 들었던 걸까? 

분명 삼국지에는 유비나 조운, 양자 모두 첫 대면부터 

크나큰 친밀감과 공경이 싹텄다고 적고 있다. 혹시 유비에 

대한 공경심보다도 조운이 화정 자신에 대한 호감을 

지녀서 꽤나 신경을 쓰는 걸까......라고 반문한다면, 

그건 어이없는 생각이다. 많은 남자아이들의 고백과 

눈치주는 행동을 겪어보았던 화정은, 조운이 자신에게 

이성으로서의 호감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호감은커녕 짐짝처럼 귀찮게 생각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게다가 저런 타입은 여자들이 걸림돌이 될수록 

싫어하고 거리를 두려는 심리를 지닌다. 저렇게 잘생긴 

얼굴을 지니고도 여태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연인조차도 

없다는 사실은 화정의 그런 분석을 증명하기에 좋은 증거다. 

그렇다면 가능한 해석은 딱 한가지다. 그만큼 유비에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결론이다. 조운이 공손찬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 또는 내쫓김을 당하거나 해서 유비에게 

간다면, 그런데 유비의 상황도 뭔가 어려운 점 - 예를 

들어 주변인물들이 공손찬을 섬기던 자라면서 믿을 수 

없다고 반대를 한다던가 - 이 있다면 그때는 일부러 함께 

보냈던 유비의 측근인 화정이 해결의 열쇠가 될 것이다. 

그만큼, 조운은 유비를 주군으로 모시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그것이 화정이 내린 정확한 

해석이었으며 절대적으로 옳은 결론이었다. 

`......그래, 그것을 나는 알고 있어......그런데 왜 

그렇게.......죽든말든 상관없다는 말이 자꾸만 

신경쓰이는 걸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무 가치도 없는 짐짝 취급을 당해서, 

그래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서 그런 걸까? 그랬다, 분명 

화정은 이렇게 가볍게 취급당한 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해......화가 나고, 마음이 아프고......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감정이 격해지기 시작한 걸까? 4년이 넘는 

세월을, 남에게 큰소리로 대든 적이 없고 감정에 큰 격차도 

모르고 살던 내가......왜?' 

화정은 입술을 깨물었다. 왜 자신이 이런 대우를 받고 

걸림돌 취급을 당하는 건지......그 현실이 너무 싫었다. 

자신을 도와준다던 인간도 기껏 한다는 소리가 `죽든말든 

상관없는데 유비님이 맡기신 열쇠니 어쩔 수 없다.'라니...... 

사람의 자존심은 상처입으면 한없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일 

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녀가 조운의 앞에서는 그리 많은 

실수를 했으며 그리 많은 미움을 지녔던 걸까? 자존심의 

아성(牙城)에 금이 갔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면서 화정은 

눈을 감았다. 

*******

"기병대는 정 중앙을 돌파한다! 노병은 50명씩 나뉘어 

양측에 매복하고 있으라! 보병대는 기병대의 뒤를 따른다!" 

아무리 사기가 낮다지만 역시 훈련받은 군사는 뭔가 

달라도 달랐다. 대부분 겁에 질린 표정을 하고 있어도 그 

명령에 군소리 없이 따랐다. 질서정연하게 열을 지어 곁의 

울창한 숲 속으로 매복을 가는 노병들과, 열을 정비하고 있는 

기병대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보병대는 불안한 

기색으로 자신들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씁쓸한 심정으로 그 

광경을 보고있는데 조운이 은빛으로 빛나는 것을 내밀었다. 

"......뭐에요?" 

얼떨결에 양손으로 무기를 받아드는 화정에게서 등을 

돌리면서 조운이 차갑게 대꾸했다. 

"검이야. 내가 널 지켜준다해도 한계가 있으니 만약의 

경우 쓰도록 해. 창이 더 좋겠지만 창은 능숙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헛손질만 나오기 쉬우니 검이 더 나을거야." 

고마운 심정으로 화정은 검을 받아들었다. 하얗게 빛나고 

있는 검은 정말 차가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칼날을 

손으로 살짝 쓰다듬어보았다. 

"미리 말하자면 마음을 단단히 먹는 것이 좋아. 직접 

전장에 나가기는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한번도 

직접 전투를 겪어보지는 않았겠지?" 

교관이 쓰는 듯한 말투지만, 화정은 별다른 언짢음도 

못 느끼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정말 그렇다. 반동탁 

연맹군의 전투들과 계교전투, 모두 주변의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구경만 했었다. 특히 화정이 여자이고 아직 

어리다는 것을 감안한, 너그러운 유비의 배려 덕에 전장을 

구경한 일도 별로 많지 않았었다. 

`분명 끔찍할 거야.......아니, 끔찍하다는 말로 모두 

설명될 수가 없겠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좋게 말해서 `소탕' 또는 `공을 

세우는 일' 이다. 하지만, 명백한 살인이다. 과연 자신이 

그 광경을 눈앞에서 보고 겪고........또는 스스로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것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전란의 시대에 그런 것을 아예 모르고 

산다는 것도 말이 안되지. 그러니 이번 기회에 똑똑히 

봐두는 것이 좋아. 마음을 단단히 먹어. 만약 아귀강시를 

네가 정말로 잘 부릴 수 있다면 괜찮았겠지만......" 

조운은 잠시 말을 끊었다. 화정은 속으로 `괜히 

따라온건가......' 하고 후회를 시작했다. 이런 점을 좀더 

면밀히 생각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걸. 그런 점은 생각도 

못하고 궁금한 심정에 따라온 것에 불과했는데......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화정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의심이 고개를 드는 것만은 막을 

수 없었다. 사람을, 과연 자신이 벨 수 있을 것인가. 

긴장하며 심호흡을 깊게 하는데 주변이 쿵쾅거리면서 

울리기 시작했다. 

"알려드립니다! 산적떼가 드디어 다가왔습니다!" 

그 보고에 눈길을 돌린 화정은 기절이라도 할 것 같았다. 

물론 이후에는 수만, 수십만의 대군을 보게 될지 모르지만, 

그건 이후의 일이고......사람이란 `처음' 이란 것에 큰 

의미를 두게 마련이다. 화정이 `처음' 본 대규모의 부대다. 

아무래도 기억에 남을 것이다. 과장하는 표현이 아니라 

새까맣게, 정말 개미떼처럼 새까맣게 이 작은 숲을 온통 

메우고 있었다. 조운이 이끌고 온 소수와는 비교도 안 되는 

느낌이었다. 마치 지도에서 중국의 땅덩이와 한국의 

땅덩이를 비교해보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과장된 표현이기는 했지만 여하튼 그 정도로 

화정으로서는 압박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중앙에는 갑옷을 

입지 않은 사내가 말을 타고 서있었다. 머리에는 조잡한 

쇳덩이 같은 것을 - 투구라기보다 쇳덩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나았다. 그만큼 무식한 디자인에 무식한 무게감을 

자랑하는 듯 했으니까 - 쓰고 손에는 특이한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화정이 얼굴을 찌푸리면서 말고삐를 천천히 쥐는데, 

그 대장인 듯한 남자가 커다랗게 외쳤다. 

"관군이다! 우리 수의 반도 안되니 두려워 할 것 없이 

한번에 싹 쓸어버리자!" 

"와아아!" 

"죽여버리자!" 

`......군단은 꽤 그럴듯하게 정렬해서 좀 다른가 

싶었더니만, 연설은 품위없게 하는 것으로 보아 역시 

산적은 산적인가.....쳇......' 

잘하면 대화로 끝날 수도 있을 거라고 내심 기대하고 

있던 화정은 뾰루퉁한 심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곧이어 

땅이 요란하게 울리면서 산적들은 돌격해왔다. 

"이대로 중앙 돌파를 시도한다!" 

조운이 크게 외치자 요란한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조운은 

화정을 돌아보았다. 

"어떤가, 말을 탈 수 있겠어?" 

화정은 입술을 깨물었다. 승마는 물론 해 보았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부잣집 외동딸이니 승마 정도야 어릴 적부터 

취미삼아 해 왔기에 몸에 익어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말을 `탈 수 있겠느냐'는 의미는, 그녀가 생각하는 `탈 

줄 안다'는 의미와 천지차이일 것이다. 함성으로 인해 

주변이 시끄러운 가운데, 화정은 얼굴을 붉히면서 외쳤다. 

"어느 정도는 감당할 수 있지만, 자룡의 기마술에는 

따를 수 없을 거여요......" 

말꼬리가 흐려졌다. 조운은 화정의 자신없는 말에 

얼굴을 찡그렸다. 화가 날만도 하다. 기병의 생명은 

전진속도다. 말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는 것이다. 무안해진 화정은 힘껏 외쳤다. 

"하지만, 절대 넘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걱정이 안될 리가 있나......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했다. 

조운은 옅게 한숨을 내쉬고 화정에게 눈짓을 했다. 중앙 

위치에서 물러나라는 뜻 같았다. 화정은 말고삐를 쥐고는 

살짝 말을 달랜 다음 물러났다. 조운이 화정의 곁에서 

한 팔을 들자 중앙에 있던 남자가 우렁차게 외쳤다. 

"적의 수가 많지만, 기병은 대장 하나뿐이다! 마음껏 

짓밟아라! 돌진!" 

"와아아!" 

함성과 함께 땅을 울리는 소리를 내면서 백여 명의 말탄 

기수들은 앞으로 돌진했다. 화정이 예상했던 대로 `그냥 

안 떨어지고 타는' 수준과는 천지차이였다. 약간 훈련을 

받고 타는 보통 수준의 기병들도 저렇게 대단한 기마술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조운은 어느 정도로 말을 잘 

탄다는 것일까? 화정은 그제야 조운이 합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옆을 돌아보았다. 조운은 기병들이 돌진하는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짧게 말했다. 

"말에 올라타. 그리고 기병대의 뒤를 따르도록 하지." 

아, 역시......본래 선진에 서서 돌격하려다가 화정 

때문에 그만둔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조자룡......선진에 서야 하지 않아요? 난, 

기병대 속에 섞여있을테니 걱정말......" 

"널 어떻게 믿는단 말이야? 잔말말고 말에 올라타. 

기마술이 생각 이하면 아예 말에서 내리게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라도 좀 부드럽게 하면 어디가 덧나나? 사람 기분 

상하게 하는 것에도 이가견이 있다. 화정은 속으로 

투덜투덜 거리면서 말에 올라탔다. 이미 기마병들은 

굉장한 속도로 떠나가고 거의 말꼬리부분이 스쳐가던 

판이었다. 화정은 급한 마음에 말고삐를 당겼지만...... 

"히히힝......" 

말은 크게 울부짖으며 화정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화정은 마음이 더욱 다급해진 나머지 다시한번 고삐를 

쥐었다. 곁에서 조운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네가 다뤄온 말도 아닌데 쉽게 따를 리가 없지.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루도록 해." 

화정은 그제야 말이, 처음 보는 사람의 지시를 쉽게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조심조심 말을 달래어 

기마병들의 뒤쪽으로 나아갔다. 조운은 천천히 화정의 

곁으로 말을 몰아 다가왔다. 여전히 조심스럽게 말을 

달래고 있는 화정의 곁에서 말을 몰던 조운이 앞을 

힐끔 보았다. 외쳤다. 

"하(河)!" 

화정이 아닌 하라고 부르자 안 익숙해서 지나칠 뻔했지만 

화정은 빠르게 반응했다. 

"네엣!" 

얼떨결에 존대가 나왔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말고삐를 꼭 쥐어! 말에서 떨어지지만 않으면 된다!" 

조운의 말에 고개를 무의식적으로 끄덕거리는데...... 

철썩! 

"히히히히힝!" 

조운이 화정의 말 엉덩이를 내리쳤다. 화정의 말이 

요란하게 울면서 엄청난 속도로 내닫기 시작했다. 당황한 

화정은 말고삐를 쥔 손에 힘을 주고 자세에 균형을 

잡으면서 외쳤다. 

"자룡! 어떻게 따라잡으려고 그......" 

하지만 기우였다. 어느새 조운은 화정의 조금 앞에서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새......?' 

화정으로서는 정신이 없을 정도의 속도였다. 그러나 

조운은 여유있는 태도로 말고삐를 쥐고 몸을 약간 숙인, 

잘 잡힌 태도로 말을 몰아가고 있었다. 멍하니 조운을 

보던 화정은 하마터면 균형을 잃을 뻔했다. 몸이 

비틀거리는 것을 겨우 바로잡는데 조운이 외쳤다. 

"상체를 조금 숙여!" 

"아, 네!" 

화정은 조운의 자세를 본떠서 약간 몸을 숙였다. 뺨에 

와닿는 바람의 세기가 한결 완화된 것 같이 느껴졌다. 

겨우 적응을 하려는데 바로 앞에 기병대가 보였다. 이미 

산적들과 맞닥뜨린 상태였다. 정신없이 산적떼를 찌르고 

있는 것 같았다. 

퍽! 

화정의 바로 앞에 있던 기병이 장창을 산적의 이마에 

정통으로 찔러넣는 중이었다. 화정은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머리 뒤통수로 나온 기병의 창날에는 

산적의 골수와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기병이 창날을 빼자 

산적은 수도관을 틀어놓은 것 같은 양상으로 피를 뿜으며 

쓰러졌고, 그 기병의 곁에서는 다른 기병이 말발굽으로 

산적 하나를 통째로 짓밟으며 또다른 산적의 목을 날리는 

중이었다. 

어느덧 화정과 조운의 말이 기병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잔인한 광경에 넋을 빼고있던 

화정은 조운이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이봐, 말고삐를 당겨!"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있는 화정은, 자신의 목으로 

뭔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웩!" 

구역질이 나왔다. 화정은 바로 앞에 있는 산적을 

자신의 말이 밟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자신에게 

달려들던 산적의 머리 위로 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메스꺼웠다. 아래쪽에서는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참혹한 비명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너무나 혼란한 나머지 화정은 자신의 말고삐를 

당기지 못했다. 결국, 흥분해있던 화정의 말은 바로 

앞의 다른 산적을 또 짓밟고 있었으며 화정의 구역질을 

뒤집어쓴 산적은 악착같이 화정에게 덤벼들었다. 

화정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있었을 뿐이었다.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물론 사람 죽는 것이야 몇 번 본적은 있다. 아귀강시가 

사람을 통째로 먹던 것도 본 적 있다. 아귀강시가 사람을 

먹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어차피 괴물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저렇게 잔인하게 죽이고 있다는 

것은, 심적으로도, 육안으로도 동조하지 못했으며, 

화정의 육체 또한 그것에 동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구역질이 나온 것 같았다. 졸지에 

구역질 세례를 받은 산적은 화가 났는지 화정에게 철퇴를 

휘두르면서 덤벼들었다. 조운이 건네주었던 검을 뽑으려 

했지만 또 한바탕 구역질이 나오는 바람에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보기에도 엄청난 무게를 지닌 듯한 철퇴가 

가속까지 붙어서 화정의 얼굴로 날아오는데...... 

파캉! 

요란한 소리와 함께 창날이 철퇴와 긴 장대를 잇고있던 

쇠사슬을 끊어버렸다. 창날은 그대로 경로를 바꾸지 

않고 휘둘려져 산적의 목을 정확히 잘라냈다. 너무나 

신속한 속도감과 깨끗한 솜씨 덕에 창날에는 핏방울조차 

묻지 않았다. 산적의 목은 축구공이라도 되는 마냥 

날아가 땅에 떨어졌다. 

아, 산적의 목에서, 공포가 잔뜩 담긴 눈이 화정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목부분에서 늘어진 식도를 화정의 

말이 짓밟고 있었으며, 목에서 피가 콸콸 흘러넘치는 

산적의 몸뚱이는 그보다 조금 있다가 땅에 쓰러졌다. 다른 

기병의 말이 그 몸뚱이를 밟고 나아갔다. 

파사삭...... 

또다시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산적의 몸에서 피가 

물처럼 새어나왔으며 구겨진 천조각처럼 일그러졌다. 화정이 

그 광경을 보면서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데 또다른 산적이 

덤벼들었다. 긴 장창 날이 산적의 목줄기를 꿰뚫었다. 애써 

또 나오려는 구역질을 막는 화정의 귀에, 성난 음성이 들려왔다. 

"여긴 전투장이야! 못 싸우겠거든 차라리 내 뒤로 물러서!" 

전투장......화정은 멍한 눈으로 자신의 주변을 피바다로 

만들고 있는 조운을 바라보았다. 전투장이라......맞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이 이렇게 죽어나가는 꼴을 본 일이 

없는 자신에게 이런 것은......감당이 안된다. 엄청난 

속도로 창을 휘두르는 조운의 창솜씨는, 정말 소설에 

묘사되었듯 신기(神技)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 화정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조운의 창술이 

아니라 주변의 피바다, 그리고 사냥으로 인해 참혹하게 

죽은 것 같은 동물의 시체.......에 가까운 사람의 

시체......조운은 화정이 멍하니 말고삐를 쥐고 서있자 

자신이 화정의 앞으로 말을 몰아나가 주변의 산적들을 

무자비하게 베었다. 그리고 외쳤다. 

"돌파가 얼마나 남았는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어떤 목소리가 조운의 질문에 답하였다. 조운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힘차게 외쳤다. 

"좋다, 그럼 신호를 해서 양측의 노병들이 화살 세례를 

하도록 하라! 보병대 역시 기병대의 뒤를 따르도록! 

돌파를 끝내면 기병대는 방향을 틀어 다시한번 

반대방향으로의 돌파를 시도한다! 보병대의 경로와 

겹치지 않도록 하라!" 

조운의 외침이 있고 얼마 후에 보병들이 몰려와 

기병대가 미처 다 베지 못하고 지나간, 산적들과의 

격투를 시작했을 때까지......화정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지독한 피비린내와......근처에서 

피어나던 수많은 진홍의 색깔들......짙은 아우성과 

쇠가 부딪히는 소리.......그녀는 마냥, 마냥 조운을 

따라 말을 몰아갔을 뿐이다....... 

`전쟁......이 이런 것이었어? 내가 이렇게 철이 

없었나......? 난, 삼국지를 읽을 때 그저, 모사들의 

꾀와 지략, 인물들의 삶이 흥미로워서 즐겁게 읽을 

뿐이었어. 이런 피비린내가 삼국지에 대해 느낄 수 

있는 매력의 일부였다는 것을......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야......! 인간이 이렇게나 잔인한 

동물이라니......!' 

"그만 정신차리지 못해!" 

방향을 바꾸어 재돌파를 시도할 때쯤, 조운이 

화정에게 질타하듯 외쳤다. 화정은 눈앞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을 그제야 다시 깨달았다. 뿌옇게 흐린 

시야......입술을 깨물었다. 

`전쟁이란 것을......내가 너무 만만하게 

보았구나.......' 

깨달았다. 이때껏 그녀는 그저 어떻게 하면 현대시대의 

지식을 이용해서 돈을 더 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미리 아는 삼국지의 사실을 이용해서 잘 지내볼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이것이 가장 정확한 사실이었다. 

혼란스러운 시대를 배경으로 씌어진 소설, 삼국지....... 

그녀가 그토록 즐겨보고 좋아했던 삼국지의 매력 중 

하나는......이런 인간의 잔인성이었다는 것......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화정은 받았던 검을 꽉 쥐었다. 

사람을 베는 감촉이란 것에......어느 정도는 익숙해져야 

한다. 저 조운처럼 익숙하게, 업으로 삼지는 못해도, 

필요할 때는 벨 줄 알아야 한다! 힘껏, 이전에 검도를 

배웠을 때를 기억하면서 검을 내리쳤다.

"꾸에엑!" 

참혹한 소리가 나면서 화정의 칼에 맞은 산적은, 

머리가 반쪽으로 쪼개지면서 쓰러졌다. 그녀의 검에 묻은 

골수와 피......살덩어리.......화정은 가슴이 아픈 것을 

느끼면서 심호흡을 했다. 조운을 돌아보았다. 조운은 화정의 

근처를 피바다로 만들며 화정을 보호하고 있었다. 

`저 사람......은 이런 것을.......언제부터 저렇게 

태연하게 했을까? 저 사람뿐 아니라 무인이라면 누구나 

그랬겠지.......? 마초.......그래, 마초도 당연히 그랬을 

거야.......' 

늘 싱글싱글 웃어주던 마초가 기억났다. 안 겪었을 리가 

없다. 그 나이에 벌써 스승이 없을 정도로 무예실력이 

고강한 마초가 이런 일을 모를 리 없다. 마초 역시 저 

조운처럼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베어냈을 것이다. 그런 

것을 어릴 적부터 배우고, 매양 겪었으면서, 어떻게 그런 

표정을 자주 지을 수 있었던 걸까. 참으로 강한 사람이었던 

걸까, 마초는......? 

"아!" 

시선을 돌렸던 화정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던 조운의 

종아리에 산적의 창날이 스치는 것을 목격하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운의 종아리에서 피가 솟았지만, 조운은 

신음한번 내지 않고 산적의 머리를 창날로 꿰뚫었다. 

당황한 화정은 조운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가만히 있어!" 

조운이 그렇게 외치면서 아까 자객을 죽이고 입수했던 

비도를 화정에게로 던졌다. 화정은 당황하여 `하긴, 

이렇게 정신없는 전장이면 아군도 실수로 얼마든지 죽일 

수도 있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끝이라는 심정으로 

눈을 감았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고 퍽, 하는 둔탁한 

소리를 세 개 들었다. 

"어라......?" 

천천히 눈을 뜬 화정은 자신의 뒤로 달려들던 산적이 

얼굴에 비도를 관통당한 채 죽은 것과 조운이 자신의 

곁에 있던 병사 둘에게 팔과 어깨를 공격당한 것을 

목격했다. 

"조운!" 

벌써 세 군대의 상처다. 그것도 팔과 다리, 즉 다치면 

계속해서 전투를 하기에 곤란한 곳이다. 섬뜩해진 화정은 

자신 때문에 조운이 그렇게 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기는, 천하의 조운이 저딴 산적에게 세 군대나 다칠 

리는 없어! 내가 멍해있으니까 보호하면서 

싸우느라고......안 그래도 보호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텐데, 더더구나 내가 멍청하게 있으니까.......!' 

화정은 자신의 더러운 검을 단단히 쥐었다. 이런 시대에, 

자신 혼자만이 손을 피로 물들이지 않고 살 수는 없다! 

"하앗!" 

화정은 자신에게 달려들던 산적을 힘껏 베었다. 그나마 

검도를 해서 그런지 어느정도 적응은 되었다. 사람을 

베는 감촉은, 역시 예상했던 대로 이상했다. 물컹물컹한데다 

어딘가 비린내가 풍겼다. 조운은 화정의 등뒤를 창날로 

찌르면서 외쳤다. 

"그렇게 태도가 크면 적에게 기습의 기회를 주게 되는거야!" 

화정은 자신의 뒤를 지켜주던 조운이 등과 어깨에 

비도(飛刀)를 맞은 것을 알고는 신경질을 내며 외쳤다. 

"이봐요, 조운! 남 걱정말고 벌써 몇군데 다친 스스로 

걱정이나 하시죠?! 나도 한두군데 다쳐도 견딜 줄은 안다고요!" 

화정은 그렇게 외치면서 검을 힘주어 휘둘렀다. 누구의 

팔인지 모를 한쪽 팔이 튀어올랐다. 조운은 산적 둘의 목을 

한꺼번에 날리면서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죽는 광경을 보기만 해도 넋을 놓고 있는 사람이, 베인 

상처를 견딜 리가 없잖은가! 조금만 견뎌, 거의 끝났어!" 

화정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그제야 신기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산적들은 거의 전멸에 가까운 듯 보였지만 

조운의 기병대와 보병대는 수가 비교적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졌다. 산적이 달려드는 수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조운은 한 팔을 들어 외쳤다. 

"좋아, 정렬한다!" 

그 말 한마디에 기병대와 보병대, 그리고 노병대가 

재빠르게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집결했다. 한 노병대의 

병사가 외쳤다. 

"산적들은 저 쪽으로 물러가있습니다! 피해는 매우 

소수인 것으로 보입니다!" 

조운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정을 돌아보았다. 

화정은 정신이 약간 돌아온 지금에서야, 조운의 상처에서 

적지않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화정은 

얼떨결에 말했다. 

"괘, 괜찮......아요......? 많이 다친 것 같......" 

"상관없어." 

조운이 차갑게 잘라 말하는데 뒤에서 커다란 일갈성이 

들려왔다. 

"이봐! 넌 누구냐?! 공손찬의 군인 중에서 이렇게 실력이 

좋은 놈은 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산적 중에서 유일하게 말을 타고 있던 그, 대장인 

듯했다. 

"젠장, 내 병사의 반 이상을 기껏 그 정도의 숫자로 

꺾다니! 뭣하는 놈이야?!" 

조운은 산적 대장의 외침에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대꾸했다. 

"이쪽의 피해는 크지 않다. 항복하라. 하지 않는다면 

모두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다!" 

조운의 외침에 잠시 상대편이 조용했다. 관군들은 뜻밖에 

자신들이 크게 승리하자 사기가 올랐는지 의기양양해 있는 

듯했다. 하기는, 화정도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돌파력이 

센 기병대로 중앙을 돌파하여 산적들을 혼란시키고 열을 

흩뜨린다. 훈련이 잘 된 정규군이라면 중앙을 돌파당해도 

열을 유지하겠지만, 산적이 그 정도의 훈련도를 갖추었을 

리는 없다. 

그리고 흐트러진 산적들을 양쪽에서, 숨어있던 노병이 

요격한다면, 아무리 노병이 소수라고 해도 산적들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기병대가 돌파해 지나가면 보다 숫자가 

많은 보병대가 그 뒤를 이어 돌격하며 산적이 계속해서 

혼란스럽게 우왕좌왕하도록 한몫하고, 기병대의 뒤를 

받친다. 

그리고 기병대는 경로를 180도 바꾸어 또다시 돌파를 

거꾸로 감행하여 흐트러진 산적들에게 또다시 큰 타격을 

입히는 것이다. 물론, 아군인 보병대까지 밟으면 안되므로 

경로를 조금 옆으로 치우치도록 바꾼다. 어차피 기병대는 

기마에 의해 속도라는 이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활이 

없다면 돌파를 하면서 큰 타격은 안 입는다. 

상당히 빨랐기에 화정으로서는 그저 `순식간에 싸움은 

끝났다.'라고 밖에 묘사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무예가 

뛰어나기로는 워낙에 유명하니까, 그리고 돌파하면서 

보인 그 창솜씨를 보았으니까 알고 있었지만 결과가 이 

정도로 좋게 나타나자 화정은 내심, 조운의 용병술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산적들 쪽으로 

천천히 눈을 돌리는데 산적 대장의 목소리가 주변을 

울리게 했다. 

"......좋다! 내 부하들은 죽었다고 보고를 올린 다음, 

자유롭게 풀어주어라! 그렇게 한다면 나는 붙잡혀 가겠다!" 

`에, 예상외로 쉽게 끝내는데? 하지만 저 징그러운 

광경을 또 보는 것보다야......' 

화정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럽게 산적 떼 

사이에서 큰 소란이 일고 있었다. 

"싫소, 두목! 우린 두목만 죽게 할 수는 없소!" 

"같이 싸우다 차라리 죽겠다!" 

"우리만 도망가지 않을 거요!" 

함성이 일면서 저쪽의 산적들이 모두 무기를 힘차게 

치켜들었다. 

"그래봤자 우리 수는 아직 칠 팔백정도 남았잖소!" 

"와아! 힘내서 관군을 타도하자!" 

예상보다 더 강맹한 태도였다. 산적 대장은 다소 감격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의 부하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시끄럽다!" 

"!" 

"두목!" 

"왜 그러우?" 

웅성거림이 일면서 사나운 기세가 꺼졌다. 두목은 그런 

자신의 부하들에게 소리를 버럭 지르는 것이었다. 

"네놈들이 왜 여기서 죽느냐! 나는, 그저 내가 죽거든 

네놈들이 살아남아 복수를 해 주길 바라는 거란 말이다!" 

산적에도 여러 부류가 있는 모양이다. 적어도 이들은 

이전에 조운의 집에 다짜고짜 쳐들어왔던 그 산적과는 

다른 부류로 보인다. 좀더......의리는 있다는 

느낌이랄까......화정이 그 기백에 질려서 한숨을 내쉬는데, 

조운의 곁에 있던 부관이 묻는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장? 다시 돌격하겠습니까?" 

"기다려라." 

조운이 낮게 제지했다. 화정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조운을 쳐다보았다. 삼국지를 읽은 사람은 모두 

알 것이다. 만약 장비나 마초같았다면 이대로 돌격을 

감행했겠지만, 저렇게 여느 산적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저들을, 지용(智勇)을 겸비했다고 일컬어지는, 또한 화정이 

스스로 판단하기에도 그런, 조운이 밀고 들어갈 리는 없었다. 

어차피 조금 기다려도 조운이 이길 형세였다. 그렇게 불리한 

상황에서도 소수의 희생으로 산적의 반 이상을 꺾은 조운이, 

기껏 이, 삼백 정도 많은 산적떼를 겁낼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이후에는 수만을 이끌 그릇이었다. 얄밉기는 해도, 

화정이 판단하기에 조운은 충분히, 훗날의 명성과 위치가 

합당한 인물이다. 하기는, 다소 실력에 비해 자리가 높지는 

못하지만 - 유비가 촉한을 세웠을 때, 조운은 

오호장군(五虎將軍: 관우, 장비, 황충, 마초, 조운)이 된다고 

연의에 나오지만 이것은 나관중의 연의에서 사용된 말이다. 

실제로 조운은 오호장군에서 가장 지위가 낮았거나, 아니면 

아예 오호장군이 아니었다고 한다. 위연이 그 오호장군 중 

하나였다는 소리가 있다. 어느 쪽이 사실인지는 잘 

모르지만 조운이 유비를 장기간 따랐으며 장판파에서 

그의 후계자를 목숨걸고 구해낸 것이나 제갈공명을 

오나라에서 호위했던 공적에 비해 차가운 대접을 받았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 말이다. 어쨌거나 조운은 부관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저 두목이란 자, 어찌 낯이 좀 익은 듯하다." 

"예?!" 

동시에 화정과 부관의 낯이 시퍼렇게 변했다. 두 사람 

모두 놀랐지만, 속은 순전히 달랐다. 화정은 조운이 

걱정되어서, 부관은 자신에게 하달되었던 지시사항에 - 

뻔하다. 조운을 좌천시킬 꼬투리를 잡아오라고 공손찬이 

지시했겠지 - 드디어 조운이 걸린 것에 대해서 

놀라서......식의 차이였다. 여하튼 화정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조운에게 외쳤다. 

"조자룡! 산적두목을 조자룡같이 고지식한 사람이 

어떻게 알겠어요?! 그냥 대충 진군해요!" 

잘못하면 산적두목과 내통했다는 의심만 받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꼬투리가 잡혀서 출전한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그러나 조운은 화정의 말을 무시했다. 

"이대로 기다린다. 급할 것은 없으니 저쪽에서 제안을 

해올 때까지 일단 기다리도록." 

"예, 아, 알겠......습니다......." 

부관은 천천히, 눈치를 보면서 동조했고, 화정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화정은 자신에게서 떨어진 위치에서 

날고있는 현량을 보면서 - 머리 위나 어깨 위에 있으면 너무 

눈에 뜨일 것 같아서 일부러 떨어져서 다니도록 했다 - 저 

부관이 살아 돌아간다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왁자지껄하던 산적부대에서 이윽고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산적두목이 우렁차게 외쳤다. 

"이봐, 그렇다면 이렇게 하자! 보기에 그릇이 작은 

무장은 아닌 듯한데 너와 나의 일대일 장군전을 

하는거다! 지는 측이 군사를 물리도록 한다! 네가 이기면 

우리를 네 마음대로 하고, 내가 이기면 내 뜻대로 하는 

거다! 어떠냐?!" 

"조운님, 산적 따위의 타협을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대로 돌격해서 쓸어버리는 것이......" 

"좋다!" 

부관이 나직하게 권고하는 것을 차갑게 자르면서, 

조운은 호응했다. 화정은 조운의 어깨와 팔, 다리에서 

아직도 조금씩 피가 나오는 것을 의식하고 날카롭게 

외쳤다. 

"안돼요, 조운!" 

그러나 조운은 두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두꺼운 투구에 얼굴이 가려진 산적대장 역시 

말을 몰아 나오고 있었다. 

`장군전이라......분명히 조운이 이기거나, 못해도 비길 

거야. 삼국지에서 말했던 것이 사실이라면......무장들 

중에서도 무예 솜씨가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사람이니까......하지만 산적 두목의 요구 따위를 들었다는 

것은...... 

아아, 이 시기에는, 공손찬과 조운이 어떻게 지냈는지는 

자세한 기록도 없고 묘사도 없어! 그저 동탁과 손견에 대해 

묘사하고 있을 때 쯤일거야, 아마....... 

조운은 그저 공손찬에게서 홀대를 받다가 공손찬이 

망하고 나서야 유비를 찾아 나서는 정도의 묘사밖에 

없다고.......그런데 내가 뭘 알 수 있겠어! 죽지 않는다는 

것밖에.......감옥에 갇혀서 죽을 고생을 하다가 겨우 

용서되어서 변방에 좌천되어 있는건지, 잘 먹고 잘 

지내다 공손찬이 망해서 떠나는지, 그런 세부사항은 

알 수 없단 말이야!' 

화정은 다소 절망적인 심정으로 두 장수가 창을 

휘두르는 것을 보았다. 이제는 그 움직임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처음엔 은색의 빛만 그려진다고 생각했는데, 

관우와 장비에게서 적게나마 무술을 배운 것, 그리고 

조운에게 아주 잠깐의 순간이라도 배웠던 것과, 이전에 

무술을 해 두었던 것이 기초가 되어서 그런 것 같았다. 

화정이 보기에도 산적두목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지만, 

지금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산적두목의 창이 

겨우 4, 5여 합만에 날아가 땅에 박혔을 때, 일시적으로 

`이겼구나!'하고 안도했던 화정의 기쁨은 다시 절망으로 

변하고 말았다. 

"훗, 하하하.......! 이런, 역시 조자룡이군, 그래! 하긴, 

이 영각을 상대로 오 합 안에 창을 날릴 수 있는 사람은 

자네뿐이지!"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반갑게 떠드는 산적두목과는 

대조적으로, 조운은 다소 화가 난 음성이었다. 

"영각(營覺)! 자네가 왜 여기서 산적질을 하고 있는건가!" 

"훗, 고명한 자네와 달라서 난 관리 노릇은 못하겠더군. 

특히 공손찬같은 꼰대 아래서는." 

`꼰대?' 

화정이 얼굴을 찡그리면서 어안이 벙벙한 심정으로 그 

상황을 살피는데, 조운은 자신의 주군을 모욕하는 그 

언사에도 표정 한번 안 바꾸고 대꾸했다. 

"황호(況浩), 그만해 두게. 자네를 압송해야 하는 

나로서는 적잖이 심정이 불편할 뿐이야!" 

"압송? 그렇군, 자네는 꼰대의 녹을 먹고살지? 

잡혀줘야겠군, 그래." 

투덜거리면서 불평하는 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장난끼가 

숨겨져 있었다. 영각인지 황호인지 알 수 없는, 아무튼 그 

산적두목은 머리 위에 있던 쇳덩어리 - 아무리 봐도 투구라고 

하기에는 너무 투박했다 - 를 벗었다. 조운은 눈짓으로 

자신의 부관을 부르는 것 같았다. 부관이 천천히 조운과 

산적두목에게로 다가가자 화정도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뒤에서 병사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부터 대장님 곁에서 따라다니는 저 곱상한 녀석, 

뭐지?" 

"아아, 저 녀석? 나도 잘 모르겠어. 부관 말로는 

보좌하라고 공손찬님이 붙이셨다나?" 

조운이 미리 부관에게 말을 해 둔 것 같았다. 여하튼 

화정은 `의심은 안 받겠군.' 하고 내심 안심하면서 천천히, 

조운과 산적두목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산적두목은 태평한 

어조로 조운에게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잡혀 줄테니까 걱정은 말게. 하지만 이 녀석들을 

살려주었으면 하네." 

"......자네는 잡혀가면 십중팔구 참형(斬刑)이네!" 

산적두목이 조용히 미소를 띠었다. 좀 마른 느낌을 주는 

얼굴에 오똑한 콧날이 유난히도 높아보이는 그는 어찌보면 

날카롭고 어찌보면 장난스러운 인상이 있는 사람이었다. 

조운과 꽤 친분이 있는 듯했다. 화정은 속으로 큰일났다, 

싶어서 곁에 서있는 부관에게 말했다. 

"이런, 대장님께서 중대한 이야기를 하고 계신 듯합니다. 

그대는 저쪽으로 가서 군열을 정돈하고 산적을 압송할 준비를 

해 주시겠습니까?" 

공손찬이 보좌하라고 보낸 사람으로 알고 있으니 화정의 

말을 안 들을 리가 없다. 부관은 망설이다가 말머리를 

반대방향으로 돌렸다. 화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조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각! 부하 걱정을 할 때가 아니야! 부하들은 

항복한다면 관군의 일부로 들어가 지낼 수 있네. 

주공께서는 현재 징병에 열중하고 계시니 말일세...... 

문제가 되는 것은 수뇌인 자네야." 

조운의 질책하는 말투에 영각이라 불린 산적두목은 

장난끼와 심각한 어조가 반씩 섞인, 묘한 억양으로 

받아쳤다. 

"뭐, 걱정말라구. 공손찬 같은 위인에게 잡혀가서 무사할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멍청한 건 아닐세. 목숨이 아까웠다면 

산적질 따위 했을 리가 있나? 자네처럼 똑똑한 친구가 

그걸 모른다는 건 말이 안되지. 괜히 한번 물어본 

거겠지, 조운?" 

영각의 태평끼가 섞인 말에 조운은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조운이 무어라고 대꾸를 하려는데 그대로 두면 끝이 없겠다고 

판단한 화정이 끼어들었다. 

"이봐요! 언제까지 떠들 건가요? 다들 기다리고 있잖아요!" 

영각이 시선을 그녀에게 던졌다. 천천히, 화정의 모습을 

훑어보던 영각은 턱에 검지를 가져다대면서 가늘게 찢어진 

눈을 흡뜨면서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이다. 

"호, 호오.......흐음......." 

`뭐, 뭐야? 좀 기분나쁜데......' 

뭔가 뜯어보는 듯한 그 시선에 기분이 나빠진 화정은 

이맛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나 찌푸리는 화정의 표정에도 

아랑곳않고 계속해서 화정을 바라보던 영각은 조운에게 

고개를 휙 돌리더니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봐, 자룡! 자네가 이런 일도 다 할 줄 안단 말이야? 

이야, 대단한걸?" 

무슨 뜻인지 화정은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조운은 

알아들은 모양이다. 다소 기분 나쁜 빛을 얼굴에 담으면서 

조운이 영각에게 뭐라고 하려던 참에, 대뜸, 화정은 외쳤다. 

"뭐가 어쨌건 간에, 지금 저렇게 관군들이 기다린다고요!" 

"음, 그래? 저 분의 걱정은 저것인 모양인데......좋아, 

그럼 내 부하들의 목숨은 자네 손에 맡기도록 하지!" 

다음순간, 붕, 하고 은색의 날이 화정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을 때, 화정은 얼떨결에 고개를 뒤로 젖혀 피하면서도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화정이 놀란 

가슴을 제대로 진정시키기도 전에 영각은 능숙한 기마술을 

자랑하면서 숲 안쪽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화정은 고개를 

홱 돌렸다. 

"조운! 산적 두목이 도망치......!" 

뒤쫓자고 말하려던 화정은 그만 입을 다물었다. 조운의 

표정에는,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하는 듯한 어떤 것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화정은 그제야 약간은 짐작할 수 있었다. 

영각이라는 자는, 아까 말에서 증명이 되었듯이, 관리였던 

사람같다. 

보통의 사람은 아니고, 공손찬의 아래에 있다가 뭔가 

회의를 느끼고 떠나가 저렇게 산적질을 하게 되었음이 

분명하다. 게다가, 냉랭한 조운이 말없이 보내주고 걱정까지 

조금이나마 했을 정도라면, 분명 보통의 사이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추리하기 힘들지 않다. 화정이 조금 멍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깨달았는지 못 깨달았는지 모르지만, 

조운은 자신의 부관을 향해 외쳤다. 

"산적 두목이 도망갔다! 남은 산적들 중 항복하는 자는 

받아들이고, 끝까지 저항하는 자는 죽여라! 나는 도망간 

놈을 뒤쫓겠다!" 

태연하게 명령을 내렸지만,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조운이 

저렇게 신경을 쓰는 걸까? 화정은 그것이 내심 궁금했지만 

일단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것이 더 우선이었기에 

모르는 척 넘기기로 했다. 

*******

"여기까지다!" 

영각의 뒤를 쫓던 조운과 화정의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다. 쌍꺼풀이 없고 얇은 눈꺼풀에 길게 찢어진 눈매, 

가늘고 높은 콧날이 매서운 여자였다. 무거운 갑주를 입고 

허리에는 특이한 막대기같은 것을 차고 있었지만, 화정처럼 

남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운이 얼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길을 비켜라. 잡아야 할 자가 있다!" 

여자가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코웃음을 쳤다. 

"황호를 잡으시겠다? 안되지, 그의 의남매인 이 

아현(我炫)이 용서할 수는 없지!" 

`의남매?' 

의남매, 의형제, 의자매.......의형제야, 뭐 도원결의로 

유명한 유비를 보면 잘 알지만 의남매라니, 어감이 좀 

익숙하지가 않구나, 하면서 화정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조운은 자신의 창을 치켜들면서 아현이라는 여자에게 차갑게 

말했다. 

"괜한 수고말고 비켜라. 너는 내 상대가 못 된다." 

`잘난 척은......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내가 보기에도 

그렇게 느껴지네. 쳇......' 

화정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영각도 그리 위풍당당했지만 

조운은 그를 겨우 5합만에 제압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이 여자는, 체격도 좀 작은 편이었으며 언뜻 눈으로 보기에도 

그녀의 움직임에서는 무인다운, 그런 날렵함과 힘은 느껴지지 

않았다. 보통의 여자보다 조금 단련되어 보이는 정도였다. 

조운이 그렇게 `깔아뭉개는' 식으로 말하자, 아현이라는 

여자는 발끈하면서 허리춤에 매어져있던 망치같은 것을 

빼들었다. 

"감히 나를 도발하다니! 후회하도록 해주지!" 

"이봐요, 아가씨! 불쌍해서 해 주는 말인데요, 제가 

보기에도 상대가 안되니 물러나시죠?" 

화정은 좀 측은한 심정에, 그리고 또 칼질하는 장면을 

보기가 지겨워진 참에, 겸사겸사해서 혀를 차면서 아현이라는 

여자에게 쏘아붙였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외쳤다. 

"넌, 입이나 닥치고 있어! 너는, 이놈을 응징한 후에 

지옥을 보여줄테니!" 

화정은 그녀의 거친 대꾸에 화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팔짱을 끼고 콧방귀를 꼈다. 

"이보세요,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무장을, 움직임을 

보고도 못 알아본단 말인가요? 그 정도 안목도 못 

갖추었으면서, 영각을 다섯 합만에 이긴 사람에게 덤빈다는 

건가요? 안 비웃게 생겼어요?" 

그 말은 효과가 있었다. 물론, 그 세 마디 중 어떤 것이 

그렇게 와닿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성공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아현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더니 무기를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분한 표정으로 화정과 조운을 번갈아 노려보던 

그녀는 자신의 무기를 거두고 말고삐를 꽉 쥐었다.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말머리를 휙, 하고 돌린다. 

"좋아, 오늘은 이만 물러나지! 하지만......건방진 너! 

언젠가 후회하도록 만들어 주겠어!" 

기마술은 꽤 괜찮은 모양이다. 아니면, 화정이 이 시대 

사람들의 기마술 기준을 잘 모르기 때문인지는 - 화정의 

눈에는 잘 타는 말솜씨로 보여도, 이 정도의 속도를 내는 

것이 여기서는 평균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 확신할 수 

없지만,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아현은 사라졌다. 조운은 

말없이 다시 말을 몰았고 화정은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꽤 긴 거리를 갔을 무렵, 조운이 물었다. 

"......움직임으로, 무장의 솜씨를 알아낼 수 있는건가?" 

화정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네, 잘은 못하지만 대략적으로......몸놀림이 빠른 

느낌이라던가, 강인한 힘......을 느끼는 거죠. 하지만 

능숙한 건 아니에요. 아까 그 여자는 자룡과 너무 차이가 

많이 났으니까 알아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관우님이 

가르쳐 주셨거든요." 

"......" 

조운은 입을 다물었다. 화정은 그 뒤를 따르면서, 문득 

유비 삼형제가 생각났다. 지독하게 무술에 둔치인 화정을, 

그래도 성의껏 가르쳐주면서 관우가 해주었던 말이었다....... 

<사람의 몸놀림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다. 

특히, 무장들 같은 경우는, 조금더 안목이 숙련되면 그의 

움직임만으로 졸오(卒伍)의 그릇인지, 천명을 거느릴 

기량인지, 수만의 수뇌가 될 자인지 알아보는 수가 있지. 

내가 이를 네게 가르치는 것은, 전장에 나가게 되거든 

너보다 훨씬 우세한 자를 알아보고 피하라는 뜻에서이다. 

본래 무장된 자로서 도망치거나 피한다는 것은 어리석다고 

하지만, 그건 그릇된 생각이다. 

본인이 천하에 위명을 날릴 정도의 무예라 확신하지 않는 

한은, 우선은 피하고 훗날 그를 능가할 생각을 해야 실력이 

늘며,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고 참된 무장으로 성장하는 길인 

것이다. 게다가, 너는 무장으로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호신(護身)의 용도로 배우는 것이니, 이러한 

안목을 더더욱 길러야 할 것이다.> 

자상하게 하나하나씩 일러주는 관우를 보면, 가끔씩 

눈물진 마음이 솟을 때도 있었다. 이런 사람이...... 

아버지였다면......아버지란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다면...... 

`그랬다면 나도......어릴 때처럼 잘 웃고 잘 울고...... 

잘 떠드는 보통의 소녀로 자랐을 지도 모르는데......' 

화정에게 있어서 삼국지의 인물들이란 그러했다. 

우유부단한 유비보다도......사람을 부리는 일에 능하며 

숨은 지모를 활용할 줄 아는, 어찌보면 화정의 아버지와 

가장 많이 닮은 유비가......신격화된 관우보다 자상하고 

이상형의 아버지로 보이는 관우가......거칠고 단순한 

장비보다도 함께 있으면 즐겁고 도리어 어떤 때는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장비가......더 익숙했다. 

'그리고......' 

화정은 곁에서 여유있게 말을 달리는 조운을 힘들게 

따라잡으면서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공손한 조운보다......조금 

고집이 세고 외곬수적인 조운.......' 

******* 

".....저, 조운, 긴밀하게 할 말이 있어요." 

화정은 조운의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피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조운은 앞을 똑바로 보고 말을 몰아갈 뿐 대답하지 

않았다. 화정은 목으로 마른침을 한번 삼킨 후에 강경하게 

말했다. 

"아까의 그......부관이라는 사람......죽이는 것이 좋을 

거여요......" 

"......뭐?"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조운의 얼굴에 짙은 멸시가 

띄워졌던 것을 화정은 읽었다. 하지만......화정은 고개를 

약간 치켜들었다. 그래, 어차피 살기 위해서는 죽고 죽이는 

것이 필요한 세상이니까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그렇다면....... 

"죽여요! 그 사람은 공손찬이 조운에게 트집을 잡으려고 

보낸 사람이에요......영각이라는 사람과 내통했다고 보고할 

거여요. 틀림없어요." 

조운은 입을 다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정은 

그런 조운의 옆모습을 힐끗 보았다. 그렇다. 조운은 냉랭하기는 

할망정 잔인한 사람은 아니다. 한달 넘는 기간동안, 화정은 

그 사실을 알아냈었다. 그리고 방금 전의 순간적인 

멸시는......분명히 화정에 대한 것이다. 그것을 모를 화정은 

아니었다. 

"빨리 쫓아간다면, 군단을 이끄는 입장이니까 따라잡을 수 

있어요! 내 말, 들어요, 자룡! 그 사람은 틀림없......" 

"내가 그를 여기서 죽이고, 순간의 위기를 벗어난다고 해도, 

언제고 닥칠 일이야. 그걸 너같이 똑똑한 아이가 모를 리는 

없을 텐데." 

조운이 화정의 말을 잘랐다. 할 말이 없어졌다. 옳은 말이다. 

언제고 공손찬은 조운에게 트집을 잡아서 좌천시킬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화정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는 것을 

느끼면서 외쳤다. 

"물론이죠! 언제고 그렇게 되었겠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물러난다는 것은 좋지 않아요! 사실 자룡이 뭘 잘못했어요?! 

나이가 어리고 공손찬이 왠지 정을 주지 못한다는 것 외에, 

큰 잘못이 있나요?! 이런 식으로 물러 설 거여요?" 

"그렇게 분하다면 네가 쫓아가서 죽이든지. 나는 내키지 

않아." 

화정은 조운의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속으로 답답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녀로서도 절대 반가운 일은 아니다. 

그녀가 살던 시대는, 도둑이 들어서 그 도둑을 실수로 죽였다고 

해도 살인범이 되던 곳이다. 그런 곳에서 지내다 여기서 막 

전쟁을 겪어, 살육전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구역질까지 했던 

화정이 할 말은 아니다. 

하지만 화정은, 급박한 상황이고 필요한 것이라면 살인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의였다. 하물며, 이런 시대에는 죽고 

죽이는 것은 정당화시킬 구실도 얼마든지 있다. 하다못해, 

삼국지 최고 인자(仁者)라고 일컬어지는 유비만 해도 얼마나 

숱한 사람들을 죽였던가. 

`어쩔 수 없어! 인자함만으로는 살아나갈 수 없어! 이런 

식으로 밀려나면, 이후에 조운이 감옥에도 안 간다는 보장은 

할 수 없단 말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야 공손찬이 

쉽게 대우를 못할 텐데!' 

화정은 눈꼬리를 치켜세우며 외쳤다. 

"조운! 지금 피해내지 않는다면 공손찬은 계속해서 

조운의 지위를 낮추려 들 거여요! 이번에 순순히, 만만하게 

좌천된다면 감옥에도 안 간다는 보장은 없어! 게다가 내 

기마술로는 갈 수 없어요! 그러니 다시 생각해봐요!" 

조운은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음이 다소 

급해진 화정은 재촉했다. 

"조운!" 

"내가 여기서 널 두고 그를 홀로 쫓아간다면,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길 지도 모를텐데?" 

화정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녀는 설득을 포기하기로 

했다. 방금 전의 그 말은, 화정에게 조운이 `찬성하지 

않는다.'고 간접적으로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말이다. 

죽든 살든 상관없는 화정을, 홀로 내버려둘 수 없다는 방금 

전의 말은, 조운이 이미 반쯤 포기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화정은 문득 깨닫고 있었다. 

`......각오가 아니야, 이 사람은 작정하고 있는거야!' 

화정은 말고삐를 꽉 쥐었다. 앞에서 진군하고 있는 병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손찬에게서 쫓겨날 것을 말야!' 

유비에게 조운이 그토록이나 평생도록, 변치않는 충성을 

바쳤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관우와 장비는, 

의형제이며......이후에 엄청난 명성과 직위로 대우받았으니 

답이 대강 짐작된다. 하지만 화정이 알고 있는 조운은....... 

별다른 직위도, 그들만큼이나 엄청난 명성도, 부여받지 

못하면서도 유비에게 그들만큼의 충성을 바친 사람....... 

그리고 지금의 상황을 보면 충분히 깨달을 수 있는 점이 또 

있다. 벌써부터 공손찬에게 쫓겨날 것을 작정할 정도로...... 

조운에게 있어서 유비란 존재는 강렬한 군주상으로 다가왔다는 

것.......화정은 눈썹을 찌푸리면서 조운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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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가엾은 사람......보상받지도 못할 것이면서 

바보같을 만큼 맹목적인 충성을 바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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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는 오직 해만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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