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이어드-1화 (1/52)

[하이어드]

보낸이:김상현 (무원 )

제 목:[하이어드] Blood line. - 1 -

0.어스(EARTH).

지금쯤 궁성에는 비상사태가 선포되어 있겠지. 각료들이 전부 다 소집

되었을지도 몰라. 어쩌면 군 지휘관들까지 동원령이 내려졌을지도. 어찌

되었건 우리 반군 입장에서는 잘 된 일일 수밖에 없다. 틀림없이 당황하

고 있겠지. 이제 우리 반군으로서는 남아있는 마지막 전략을 택한 것이

다. 반드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만티드 레이스의 반 왕정군 소속 시크사는 항성간 셔틀 조종석에 앉아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자신의 배신행위를 자기 자신

이 용납할 수 없을 것이었다. 아무리 반군으로 태어나 왕가에 심어진 첩

자였다고 해도, 시크사의 성장을 도와준 것은 왕가였다. 하지만 시크사는

지금 왕가를 배신하고 궁정 깊은 곳에 숨겨 둔 보물을 훔쳐 이렇게 달아

나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도 자신을 돌봐주었던 궁정대학총장과 내치장관은 물론이고 자신

의 동료들 또한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운이 좋으면 해임이나 권고

사직 정도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우주공간에서 대기권 아래로 추

락한 셔틀에서 생존하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거였다.

틀림없이 목이 잘려나가거나 허리가 끊어져 나가거나 혹은 노예들에게

머리부터 잡아먹히게 되겠지. 사랑하던 사람들 모두가...

시크사는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도무지 울 수가 없었다. 만티드

레이스는 함부로 울지 않는다. 그것이 만티드 레이스의 자존심이었다. 운

다는 건 자신의 행위를 후회한다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시크사는 다

른 만티드 레이스와 마찬가지로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워왔던 것이다.

셔틀은 이제 게이트에 도착하였다. 주관시간으로 55초면 게이트가 열

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크사의 셔틀은 한 순간에 행성 어스 근처에

도착하게 될 것이었다. 행성 어스. 시크사는 입 속에서 그 별의 이름을

조그맣게 되뇌었다.

바로 그 때, 셔틀 게기판에 경고 신호가 들려왔다. 벌써 추적이 따라

붙은 것이다. 시크사는 경고 신호를 살펴보았다. 게기판에는 추적자의 정

보가 꽤 상세하게 출력되어 있었다.

추적자들은 왕립 직할 경전투기들이었다. 예상보다 빠른 대응이었다.

계획대로라면 경전투기는 기동훈련 중이기 때문에 쉽게 추적에 나서지

못해야 옳았다. 두 대밖에 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격납고에 예비로

남아있던 것을 부랴부랴 꺼낸 모양이었다.

시크사는 초조해졌다. 가족과 친지, 측근 모두를 버리고 감행한 일이었

다. 여기서 우주 속의 한줌 먼지가 되어 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울음이라도 터트려야 할 것인가.

시크사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가방을 살펴보았다. 긴 원통형의 가방

속에는 자신의 목숨 뿐 아니라 수많은 이의 피를 대가로 지불하고서 훔

쳐 온 왕가의 보물이 들어있었다.

시간이 없다. 행성 어스까지 가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 없이 죽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게 될지 모른다. 약간의 시간을 반군에 벌어 줄 수는

있겠지만... 나의 존재가 알려졌기 때문에 왕가에 침투해 있는 다른 반군

이 색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감행

한 일인데..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시크사는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를 두 손으로 꼭 쥐었다. 시크사는 다급한 상황이

되면 목걸이를 두 손에 꼭 쥐곤 하였다. 반군이 왕가에서 하사 받은 물

품을 쥐고 뭔가를 기원한다는 건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일일 수 있었지만

어차피 의식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라면 누구나 다 약한 면이 있는 게 아

니겠는가 하는 것이 시크사의 생각이었다.

경전투기에서 보내온 전문이 들어온 것은 시크사가 목걸이를 쥐고 있

을 때였다. 내용은 간단했다. 속도를 줄이고 정지하지 않으면 격추시키겠

다는 경고였다. 물론 직접 사격은 하지 않을 거였다. 소중한 보물과 함께

셔틀을 폭파시킬 만큼 멍청한 녀석들은 아닐 테니까. 아마도 위협 사격

한 두 발을 한 다음 EMP로 엔진을 정지시킬 게 분명했다. 방어막 따위

는 없었다. 시크사가 타고 있는 셔틀은 원래 화물 운송용으로 만들어진

비무장 셔틀이었다.

이제 게이트가 열리려면 30초 남았다. 게이트가 열리기만 한다면 경전

투기의 추적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왕궁 보호용 경전투기가 게이트를

통과할 때 생기는 충격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생각할 여유

는 없다. 이제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

시크사는 경전투기에 회신을 보냈다.

'왕가의 보물이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이대로 물러가라. 가까이

오면 자폭하겠다.'

물론 이 말은 허풍이었다. 자폭은 시크사가 결코 원하지 않는 것 중

하나였다.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고 행한 일이었다. 어쩌면 반군 전체의

미래가, 혹은 만티드 레이스의 미래가 달려있는 일인지도 몰랐다. 자폭

따위로 깔끔하게 끝을 맺어서는 결코 안될 일이었던 것이다.

경전투기에서는 아무 회신이 없었다. 아마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상부

에 보고를 하고 있을 것이었다. 경전투기는 왕립 직할대 소속이니 왕립

직할대장과 교신을 하고, 또 왕립 직할 대장이 왕립 경호실장과 연락을

하는 사이, 30초만 지나 주면 된다.

하지만 시간이 그리 길게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셔틀 게기판에 이번

에는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던 것이다. 레이저 조준이 감지되었다는 경

고 메시지였다. 게기판에는 30초 메시지가 떠 있었다.

바로 쏘지는 못할 것이다.

시크사는 생각하면서 셔틀을 게이트 근처에 유지시켰다. 만약 지금이

라도 EMP가 발사된다면 셔틀은 고철덩이가 되어 우주 미아가 되어 버

릴 거였다. 그리고 트랙터를 이용한 나포. 곧 이어질 심문과 고문... 시크

사는 조정간을 잡고 있는 손이 심하게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셔틀에 심한 충격이 다가왔다. EMP인가? 시크사는 충격을 조금이라도

덜 받기 위해서 고개를 숙였다. 시크사의 두 손은 목걸이에 가 있었다.

눈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의 강한 빛이 시크사의 머리 위에 떠돌

았다가 금새 사라져갔다. 타버린 걸까? 조심스럽게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시크사는 멀쩡하게 작동하고 있는 게기판을 볼 수 있었다.

성공이다.

여기까지는 운이 좋았다고 시크사는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운이

따라 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시크사는 게기판을 보았다. 게기판에는 지금 현재 행성간 좌표가 나타

나고 있었다. 모성의 위치와 게이트의 위치를 입력받은 셔틀의 연산장치

가 계산을 시작했다. 불과 1, 2초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시크사는 이곳이 어디일까 하는 불안감에 떨었다. 엉뚱하게도

왕립 궁성의 안마당이거나 추적 중이던 경전투기의 바로 뒷편일지도 몰

랐다. 어차피 게이트를 이용한 여행은 완벽하지도 안전하지도 않은 것이

다. 시크사는 자폭 장치를 살펴보았다. 잡혀 고문당하다 죽느니 자폭이

나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반군의 계획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고 만다...

잠시 후 게기판에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행성의 이름이 나타

났다.

행성 어스.

시크사는 한 숨을 토해내었다. 행성어스는 불과 1만광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셔틀 안의 식량이 떨어지기 전에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거

리였다. 아직 운은 내 편이다. 그리고 조금만 더 운이 닿는다면 행성 어

스에서의 접선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되겠지. 시크사는 생각했다.

시크사는 예정된 주파수로 신호음을 날렸다. 행성 어스에서 접선하기

로 되어 있는 만티드 레이스만 알고 있을 주파수였다.

주파수를 왕립 군대가 받을 확률은 생각하지 않았다. 또, 다른 어떤 레

이스가 받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도 않았다. 만티드 레이스의 언어를 아

는 레이스가 이 넓은 우주에, 하물며 행성 어스 같은 좁은 곳에 있을 확

률은 자신과 완전히 같은 또 다른 개체를 같은 시간대에서 만날 확률보

다 낮을 것이었다.

혹 다른 만티드 레이스가 신호를 듣는다고 해도 행성 어스에 있는 만

티드 레이스라면 자신과 같은 반군 출신일 것이 틀림없었다. 어쩌면 왕

정파의 망명객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하는 일을 특별히

방해할 리 없었다. 자신을 붙잡아 다시 왕궁으로 복귀하려고 하는 멍청

한 시도는 만티드 레이스답지 않은 일이다. 만티드 레이스는 배신자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다만 문제는 접선하기로 되어 있는 쪽에서 실험실과 연구를 준비해 두

었는가 하는 일 뿐이었다. 시크사는 사실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았다. 갈

색의 여왕 계획에 대해서 대강은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

될지는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힘이 들었다. 행성 어스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는 만티드 레이스가 과연 어느 정도 준비를 갖추고 있을지도 미지수였

다.

시크사가 판단하기로는 반드시 연구실이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연구

도 어느 정도 이상의 성과가 있어야 했다. 반군이 가지고 있는 계획은

그것이 핵심이니까. 만티드 레이스에게는 금단의 기술. 과연 접선할 대상

이 그 기술을 확보했을 것인가. 과연 거기까지 운이 닿아 줄 것일까.

시크사는 이제는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생각했다. 남은 것은 결

과를 기다리는 일밖에는 도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시크사는 천천히,

서두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행성 어스 쪽으로 셔틀의 기수를 돌렸다.

게이트 여행을 막 마친 셔틀의 동체가 마치 시크사의 앞날을 예견이나

하는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고, 시크사는 목걸이를 꼭 쥐고 있었다.

제 목:[하이어드] Blood line.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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