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이어드-5화 (5/52)

4.갈색의 여왕.

시크사는 휴먼 레이스도 하나의 레이스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몸으로 깨닫기 까지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 털이 없는 외형도 외

형이었지만 겹눈이 아닌 눈을 바라보는 일에 적응하는 데에도 상당히 많

은 시간이 필요했다. 겹눈으로 원하는 위치의 물건을 그냥 바라볼 수 있

는 만티드 레이스와는 달리 휴먼 레이스는 고개를 심하게 돌리거나 심지

어 눈동자를 직접 움직여서 원하는 걸 본다. 시크사는 그 동작이 너무나

도 품위 없고 흉측하다고 여겼다.

무엇보다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은 휴먼 레이스의 물렁물렁한 피

부였다. 외골격에 익숙해져 있는 시크사 입장에서 흐물거리는 듯한 휴먼

레이스의 피부는 건드리기만 해도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 다른 레이스를 접했을 때는 누구나 그렇다네."

사친은 가볍게 웃으면서 시크사에게 말했다.

"예. 곧 괜찮아 질 겁니다."

시크사 역시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기는 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적응

하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겠는 걸. 시크사는 생각했다.

시크사가 휴먼 레이스를 하등동물이 아닌 하나의 레이스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연구소 식당에 도착해서였다.

호버콥터에서 내린 사친과 시크사는 먼저 식당으로 향했다.

사친은 꽤 오랜 시간동안 연구소에서 있었는지, 식당으로 향하는 동안

마주치는 휴먼 레이스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저 친구는 여기 소장이야. 여기 연구소의 총 책임자지. 얼굴이 다른

사람보다 크고 둥근 모양이지? 살이 찐 거라고 표현하는 건데, 그걸로

구분하면 될 거야."

사친은 시크사가 당연히 휴먼 레이스의 얼굴을 구분하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크사는 그런 사친의 마음이 고맙기는 했지만 사친

의 말이 그리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시크사의 입장에서는 누가 누구 건

별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저 친구는 잘 봐둬."

사친이 말했다.

"우리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한 친구니까."

사친은 이렇게 말하고는 방금 말한 바로 그 휴먼 레이스를 멈추어 세

우고는 휴먼 레이스의 언어로 뭐라고 말을 건네었다. 그러자 그 휴먼 레

이스는 껄껄하는 기묘한 소리를 내면서 시크사에게 다가왔다.

"인사해. 나와 이 연구소에서 가장 친한 친구야. 리사민이라고 해. 여

기서 만난지는 한 10년 됐지."

사친의 말에 시크사는 만티드 레이스 식으로 두 손을 앞으로 모은 뒤

고개를 숙였다. 리사민이라는 휴먼 레이스는 그 모습을 보고는 어설프게

따라서 두 손을 모은 뒤 고개를 숙였다.

"지금까지 본 휴먼 레이스에 비해서 흉부가 상당히 발달해 있군요. 기

형인가요? 아니면..."

"휴먼 레이스는 보통 남성 쪽보다 여성 쪽의 흉부가 발달해 있지."

사친이 말하자 시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사민이라는 이 휴먼 레이

스는 그렇다면 여성이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렇다면 지금까지 본 휴먼

레이스들은 전부 남성이었다는 말인가?

"자네 팔에 있는 흉터가 근사하다는 군. 전쟁터에 있었냐고 묻는데?"

사친이 리사민의 말을 통역해서 말했다.

"요리하다가 다친 거라고 해 주세요."

시크사의 말은 물론 농담이었다. 외골격에 생긴 흉터를 남겨 두는 것

은 일종의 상징이었다. 만티드 레이스의 의학 기술은 외골격을 복원하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었다. 만티드 레이스는 외골격에 문양을 새겨 넣어

자신의 신분을 표시하기도 하고, 혹은 멋으로 외골격에 문양을 그리기도

했다. 시크사의 팔에 있는 문양은 왕가에 출입할 수 있는 만티드 레이스

의 신분을 나타내는 문양이었다.

사친은 리사민에게 뭐라고 휴먼 레이스의 언어로 말했고, 리사민은 긍

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대로 말해줬어. 자네를 명가의 후손이라고 말 해 줬지. 화내지 말

게. 여기서 자네는 내 동생이니까. 여기 사람들은 날 귀족이라고 생각하

고 있다네."

사친의 말에 시크사는 웃음을 터트렸다. 명가의 후손이라니. 이 문양을

귀족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있을 리사민을 생각하지 시크사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명가의 상징물이냐고 묻는군."

사친이 시크사의 목걸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시크사의 목에는 아무

문양도 새겨지지 않은 동그란 장식이 달려있는 목걸이가 걸려있었다. 시

크사의 손때로 번들거리는 목걸이는 왕가로부터 지급 받은 것이었지만

시크사에게는 꽤 소중한 물건이었다.

"정식으로 왕가에 임용 될 때 받은 겁니다."

시크사가 말했다.

"그랬군. 그런데 그거, 꽤 소중하게 생각하는 거 같던데?"

"오래됐으니까요. 그 뿐입니다."

시크사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반군의 일원이 왕가에서 받은 물건을

소중히 한다는 건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을 수는 있어도 사친을

납득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사친은 별 이

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리사민이 그러는 군. 상당히 아름답다고 말이야."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시크사는 이렇게 말하면서 리사민을 바라보았다. 리사민은 호기심 가

득한 눈을 하고서 사친에게 뭔가를 계속해서 묻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있었느냐고 묻는데?"

사친이 리사민의 말을 통역했다. 시크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자친구라는 게 뭡니까? 친구는 있었지만 남자친구라면... 남성 친

구?"

"참. 자네가 아직 모르는 게 많다는 걸 잊었군. 휴먼 레이스는 남녀 성

비가 1:1이야."

시크사는 알듯 모를 듯한 사친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만티드 레이스에게 있어서 남성이라는 건 100개의 알 중 하나가 태어날

까 말까하고, 오직 후손을 퍼트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계급에 불과하다.

물론 많은 짐승들이 1:1의 성비를 가지고 있다는 걸 시크사가 모르고 있

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고등생명체가 그렇다는 건 쉽게 납득이 가질 않

았다.

"그럼 오면서 본, 그 살 찐 휴먼 레이스나 호버콥터 조종사, 모두 남성

이었습니까?"

시크사는 조금 전에 품었던 의문을 사친에게 물었다. 사친은 고개를

끄덕였다.

"휴먼 레이스는 남녀 성비가 같기 때문에 하나의 여성이 하나의 남성

을 소유하지. 리사민의 질문은 그렇게 소유한 남성이 있었느냐는 물음이

야."

"전 아직 알을 낳아 본 적이 없습니다."

시크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 몇 번의 기회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시크사는 그

때마다 일을 만들어서 '행위'를 피했다.

그런 나에게 남자 '친구'라니. 별 해괴한 질문도 다 있군.

시크사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시크사의 말을 사친이 통역하자 리

사민은 이빨을 드러내면서 시크사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이빨을 드러내

는 것이 친근감을 표시하는 거라는 건 사친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

만, 아무래도 포유동물이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 친근감의 표시라는 것

역시 시크사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자기도 마찬가지라는 거야. 설명해 주지. 휴먼 레이스 여성에게 있어

서 나이가 들어서도 소유하고 있는 남자가 없다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거

든."

리사민은 시크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시크사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물끄러미 사친을 바라보았다.

"악수... 라고 하는 건데, 휴먼 레이스 간의 친근감을 표시하는 행위이

지. 우리가 더듬이를 비비는 것과 같아."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시크사는 조금은 포기한 듯이 이렇게 물었다. 앞에 있는 가슴이 툭 튀

어나온 휴먼 레이스와 더듬이를 비비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쓸

데없이 경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 호감을 잃을 필요 또한 없을 거였

다.

"저 손을 맞잡아."

"예?"

시크사는 깜짝 놀라면서 되물었다.

"저... 물컹물컹한 손을 잡으라고요?"

시크사는 이렇게 말하고는 몸서리를 쳤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기분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만티드 레이스의 손가락은 다른 외골격과는 달리 섬세한 신경을 가지

고 있었다. 휴먼 레이스의 손을 잡는다면 틀림없이 불쾌한 기분일 것 같

았다.

"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거야."

시크사는 망설이다가 결국 리사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리사민은 시크

사의 손을 잡고는 가볍게 위 아래로 흔들었다. 처음에는 물컹하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만큼 물렁거리지는 않았다. 아마도 근육 속에

들어있는 뼈 때문일 것이라고 시크사는 생각했다. 외골격을 가진 시크사

에게 뼈가 몸 속에 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생경하기만 했다.

"자네가 마음에 든 모양이야. 같이 식사나 하자는 군."

물을 건넌 후에 다시 물을 만난다는 만티드 레이스의 격언이 생각나는

상황이었다. 시크사는 겹눈의 초점을 여기 저기 돌리며 어쩔 수 없이 리

사민을 뒤따랐다.

제 목:[하이어드] Blood line. - 11 -

식당은 깨끗해 보였다. 휴먼 레이스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

지만 가끔 낯선 레이스들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외골격을

가진 레이스는 눈에 뜨이지 않았다.

"절대로 제가 음식투정을 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이건 도

대체 뭡니까?"

접시에 담아져 나온 곤충을 바라보면서 시크사가 말했다.

"행성 어스에서 나는 특산물이야. 여기 주방장이 신경 쓰는 요리니 잘

들게."

접시에는 한 가득 날개를 떼어낸 곤충이 담겨져 있었다. 늘 먹던 왕궁

의 고급 요리들 -딱정벌레의 겹눈 무침이나 날벌레의 알 구이 같은- 에

익숙해져 있는 시크사에게는 이런 요리가 입에 맞을 리 없었지만, 셔틀

에서 먹었던 유동식에 비한다면 만찬에 가까운 요리였다. 시크사는 어쩔

수 없이 곤충을 하나 집어서 입에 넣었다.

하지만 뜻밖이었다. 외골격이 부서지는 느낌 뒤에 달착지근한 속살이

느껴지자 시크사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 질렀다. 한번도 맛보지 못

한 근사한 맛이었다.

"단맛이 나는 군요. 꼭... 과일 같습니다."

요리의 맛을 보고 나서야 시크사는 휴먼 레이스가 꽤나 진보된 레이스

라는 걸 인정할 수 있었다. 이 정도의 요리를 만들 수 있는 레이스라면

고등 생명체가 틀림없다고 시크사는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그랬잖아. 여기 요리사가 신경 써서 만든 거라고."

사친은 이렇게 말하고는 익숙하게 곤충을 먹기 시작했다.

시크사는 곤충을 계속해서 입으로 가져가면서 겹눈의 초점을 옮겨 리

사민이 식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휴먼 레이스는 금속으로 된 칼

과 꼬챙이를 이용해서 고기를 먹고 있었다.

"손가락에 힘이 없는 모양이군요. 저런 걸 이용하다니."

"사실 휴먼 레이스는 맨손으로 뭘 먹는다는 걸 품위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네. 도구를 사용하는 걸 일종의 특권으로 생각하는 거지."

시크사의 말에 사친이 설명했다. 시크사는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그래

서 식탁 위에 놓여 있는 깨끗한 칼 하나를 집어 곤충을 자른 다음, 꼬챙

이로 찍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자 리사민의 눈동자가 커졌다.

"교양 있는 행동을 보여줘서 고맙다는 건가요, 지금 저 행동은?"

"아니. 그냥 놀란 것 뿐이야."

리사민은 먹는 것을 중지하고 사친에게 뭐라고 묻는 듯 했다. 사친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시크사에게 말을 전했다.

"그 칼을 쓸 줄 알면서 맨손으로 먹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는 군. 나

한테 몇 번 물은 적이 있지만 난 대답하지 않았다네. 자넨 뭐라고 대답

해 주겠나?"

"맨손으로 음식을 먹는 행위가 더럽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시크사의 질문은 그저 직감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리사민이 가지고 있

는 의문의 본질을 파고드는 것이었다. 사친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크사는 말 대신 보여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팔을 뻗어

손과 손가락을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손가락이 섬세하게 움직여 손 속으

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하면 깨끗해진다고 해 주세요."

"음... 아무래도 그 말은 다음으로 미뤄야 겠군."

리사민은 뭐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테이블 밑으로 내리곤 기묘한 신음

소리를 연달아 내었다.

"뭐하는 건가요?"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게. 소화가 잘 되지 않는 모양이야."

사친은 이렇게 말하면서 낮게 웃음소리를 내었다.

"혹시 남자 친구... 가 없는 이유가, 식사 때마다 저렇게 소화가 잘 되

지 않아서 아닐까 모르겠네요."

시크사가 사친에게 물었다. 물론 사친은 이 말을 리사민에게 통역해

주지는 않았다.

한동안 대화 없이 식사가 이어졌다. 리사민은 컵으로 물을 계속해서

마셨고, 얼굴빛은 처음의 밝은 갈색에서 붉은 기가 도는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소화가 심하게 되지 않는 모양이군요. 소화가 되지 않을 때는 소화액

을 나누어주면 좋을 텐데... 참. 휴먼 레이스가 우리 소화액을 받을 수 있

나요?"

"우리가 소화액을 나누어 먹는 걸 보여주면 아마 지금까지 먹은 것을

다 토해낼 걸세."

웃음을 꾹 참으면서 사친이 말했다. 시크사는 역시 다른 레이스와 접

촉한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걸 깨달아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 계실 수 있게 되신 겁니까?"

시크사가 사친에게 물었다.

"처음에 여기 왔을 때, 참 막막하더군. 휴먼 레이스들은 나를 보면 소

리를 지르면서 도망쳤지. 몇 번은 거의 죽을 뻔하기도 했었다네. 내 몸에

있는 상처 중에 반은 그 때 생긴 거야."

사친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휴먼 레이스의 언어는 어떻게 배우셨습니까? 누가 먼저 와 있었나

요?"

"아니. 내가 처음이었어. 자네가 두 번째고."

"그럼...?"

"말하지 않았던가? 휴먼 레이스 중에는 트랜서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말씀하시긴 했습니다만, 그게 뭔지는 말씀 안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통역 같은 거야."

사친은 마지막 곤충을 집어삼킨 후, 손가락을 손에 집어넣으면서 말했

다.

"여기 행성 어스는 정치적으로 중립 지역이라네. 과학적으로 매우 낙

후된 곳이기도 하고, 근처에 게이트가 많아서 이기도 하고. 정확하게는

예전에 있었던 어떤 전쟁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 같은데, 우리 레이

스와는 관계없는 일이어서 잘 모르겠네. 역사를 공부하기는 했지만 나는

고대사 쪽에 더 관심이 많아서... 하여간 그래서 이곳에는 너무도 많은

레이스가 찾아오지. 이곳을 찾는 레이스의 종류가 너무 많다는 건 결국

어떤 레이스도 제대로 상대할 수 없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그래서 생긴

게 트랜서라는 직업인 것 같아."

식사를 마친 사친은 여유롭게 말을 했다.

"말하자면 자신의 생각을 그 종족의 언어로 전달 할 수 있는 직업인

데... 경험해 보지 않으면 좀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군. 어찌되었건 상당

히 유용하고 뛰어난 능력임에는 틀림없어. 그 능력이 진화한 것인지, 원

래 있던 능력이 학습을 통해 인위적으로 개발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일세."

"그렇군요. 그런데 여기서는 식사 후에 음료수가 안나오나요?"

시크사는 트랜서 일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사실 시크사의 관심은 여

전히 자신이 가지고 온 가방과 갈색 여왕 계획뿐이었다.

"나올 거야."

사친은 이렇게 말하고는 말을 이었다.

"하여간 트랜서를 통해서 내가 만티드 레이스의 과학자라는 걸 휴먼

레이스에게 알릴 수 있었지. 이곳 시장은 내 말을 듣곤 날 여기로 보냈

어. 여기에서 외골격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면서 말이야. 그래서 도움

을 주기로 하고 여기서 살게 된 거지. 리사민은 같이 연구하는 동료라

네."

"그렇군요."

"본론은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지. 음료수가 나오는 군."

음료수에는 친절하게도 빨대가 꽂혀 있었다. 시크사는 음식 맛만큼의

맛을 기대하면서 빨대를 빨았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음식 맛과는 달리

음료수의 맛은 지독했다.

"정말 쓰군요."

시크사는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설탕을 타."

사친이 말했다. 시크사는 설탕을 듬뿍 넣은 다음 다시 음료수를 들이

켰다. 하지만 조금 달아졌다 뿐, 끔찍한 맛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건 도대체 뭡니까?"

"커피라는 거야. 휴먼 레이스가 먹는 음료수지. 자꾸 먹으면 입에 맞을

거야. 난 아주 좋아하지. 카페인이 들어있어서 중독성이 있는 게 흠이긴

하지만 말이야."

"카페인이라고요?"

시크사는 놀라서 이렇게 되물었다. 카페인은 만티드 레이스에게 있어

서 마약으로 분류되어 있는 약품이었다.

"조금 마셔 두게. 정신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

사친의 말을 들으며, 시크사는 사친의 겹눈 중 반이 어둡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시크사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조금 마신

것만으로 환각이 보일 것 같은 기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크사. 자네 갈색 여왕의 계획은 어느 정도나 알고 있나?"

"저도 상당 부분 이해하고 있습니다. 왕가의 보물, 그리고 이곳의 기

술. 둘이 합쳐져서 전세를 뒤집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게 우리 반

군의 마지막 희망이 될 것입니다."

향이 나지 않도록 커피를 멀찌감치 치우면서 시크사가 대답했다. 시크

사의 대답은 핵심적인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사친이 듣기에 충분

한 이해를 하고 있다는 말로 들렸다.

"보안유지가 잘 된 모양이로군. 그래. 자네 말이 맞네. 자네가 여기까

지 왔다는 건 이제 반군의 활동은 머지 않아 종결될 거라는 뜻이지."

사친의 말은 진실이었다. 반군은 희망이 없었다. 물자는 떨어져 가고

있었고, 병력은 의미 없이 소모되고 있었다. 적은 기세를 올려 반군의 본

거지로 진격해 들어오고 있었고, 전세를 뒤집을 그 어떠한 국면도 반군

에게는 찾아오지 않고 있었다.

"내가 갈색의 여왕 계획을 세운 건 여기 행성 어스로 오기 얼마 전이

었다네. 40년도 훨씬 전의 일이지. 그리고 그 계획의 진행상황을 계속해

서 반군에 알리기 위해서 내가 여기서 번 돈을 모두 투자했지."

"트랜서를 통해서 하셨나요?"

사친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대부분의 트랜서는 시에 소속되어 있다네. 시는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기 때문에 반군의 입장을 대변할 순 없지. 그래서 존재하는 게 카운

셀러라는 직업이라네."

사친이 말했다.

"그렇다면 카운셀러는 일종의 청부업자로군요."

"그래. 바로 맞췄어. 그 친구들은 무슨 일이건 다 해 줄 수 있는 친구

들이지. 돈만 있다면 말이야. 여기서 그런 친구들을 부르는 말이 있어.

뭐라고 하더라?"

사친은 이렇게 말하고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지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

다가 단숨에 커피를 들이켰다. 그러자 카페인의 독성이 몸에 퍼지는지

살짝 몸을 떨었다. 시크사는 그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몸서리를 치

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때 반군의 꽤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을지 모

를 만티드 레이스가 지금 약물 중독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될 수 없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연구소에 가서 나누지."

약물에 취한 몽롱한 목소리로 사친이 말했다. 시크사는 고개를 끄덕였

다.

"그런데 여기는 안전할까요?"

"물론이야. 휴먼 레이스가 있는 곳 중에서 가장 보안이 잘 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자객에 대한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요."

시크사가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그렇다고 무장을 풀지는 말게. 왕족들이 무슨 짓을 할지는 알 수 없

으니까."

사친의 걱정은 지나친 것이 아니었다. 둘이 식사를 마치고 리사민과

실험실로 향하는 사이, 이미 왕족이 고용한 자객은 서서히 독을 품고 있

던 중이었다. 단숨에 둘을 살해하고 가방을 되찾아 가는 것이 그 자객의

임무였다.

제 목:[하이어드] Blood line. -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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